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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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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 리뷰-

<거미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作-

 

 

****동우***

2010년 5월 30일

 

책부족 이번 달 독서과제 ‘거미여인의 키스’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작가 : 마누엘 푸익(Juan Manuel Puig Delledonne, 1932~1990)

국적 : 아르헨티나

출판년도 : 1976 년도

 

영화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

제작년도 : 1985 년

제작국 : 미국 外

감독 : 헥토르 바벤코

출연 : 윌리엄 허트, 라울 줄리아, 소냐 브라가, 데니스 더몬트

 

동서고금, 동성애(남성)를 그린 텍스트는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언뜻 생각나는, 창세기 ‘소돔과 고모라’와 바울이 질타한 로마서... 무수한 역사서... 추신구라... 소설 장길산... 심지어 백범일지에서도 ...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필라델피아, 왕의 남자, 쌍화점, 브로크백 마운틴, 메종 드 히미코(게이의 세계를 음습하지 않게 잔잔하게 그린 영화) 로드 무비 (김인식 감독 황정민 정찬이 출연한 격럴하고 처절한 호모 섹슈얼의 세계), 해피 투게더 (왕가위 감독 양조위 장국영 출연의, 쓸쓸하고 애잔한...이 영화의 원작은 ‘마누엘 푸익’의 다른 소설이다), 패왕별희, 써전트 등등등...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거미여인의 키스’일 것이다.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여장을 한 ‘윌리엄 허트’의 교태가 잘 상상이 되실까마는.. ㅎ)

 

호모섹슈얼, 게이.

불결한가, 역겨운가.

그러나 어쩌란 말이냐, 그런 성적취향을 가지고 태어난걸.

동서고금, 하나의 성적정체성(性的正體性)으로 편만하게 실재하는 사실 아닌가.

성적 마이너리티의 감옥에다 가두어둘게 아니라, 문화적 사회적 일반론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나로서는, 남자끼리 생물학적 구조의 성적결합을 연상하면 혐오스럽기는 하다.

요즘 군대에서의 동성애 허용에 대하여도 논란이 없지 않는바, 나로서는 찬성할수 없다. (아닌 사람도 동성애가 생성될 개연성이 충분한 남자들만의 생활공간. 굳이 그래야 하는가)

‘거미여인의 키스’, 이 책에서는 정신분석학적 사회과학적으루다 동성애에 관하여 천착한 글이 페이지마다 실려있는데 작은 활자체라서 대충 읽고 말았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 

포맷이 기묘한 소설이다.

본문은 전부 꺾쇠표(「 」)로서 묶여진 대화체로서 지문(地文)은 하나도 없다.

대부분의 내용은 감방안의 두 죄수, 게이와 혁명가 간에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주인공은 동성애자와 마르크스주의자 두 사람, 그 너머에 파시스트 당국의 음험한 기도(企圖)가 도사리고 있는 삼각 구도.

1970년대 군사독재하의 아르헨티나.

미성년자 성범죄로 갇힌 서른 여덟쯤의 호모(영화에서는 윌리엄 허트粉) ‘몰리나’와 맑시스트인 스물 여섯의 ‘발렌틴’.

게이와 혁명가, 어울리지 않는 두 캐릭터가 같은 감방에 갇혀 있는 것인데, 이것은 모종의 음모로서 당국이 만들어 놓은 상황이었다.

지독한 고문에도 조직(組織)을 불지 않은 투철한 맑시스트인 발렌틴, 당국으로서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가 좌익혁명조직의 분쇄를 위하여 매우 절실한 것인지라, 가석방을 조건으로 게이 몰리나에게 발렌틴의 입으로 부터 발설되는 정보 고지의 은밀한 임무를 부여하여 한 감방에 가두어 놓았던 것이다.

 

감방 안에서의 생활은 단조롭다. (아르헨티나의 감방이란 것은 좀 상식을 벗어나 있었는데 감방이 무슨 살림집 같기도 하다,)

주로 독서를 하지만, 한편으로 몰리나의 영화이야기에 빠져 들기도 하는 발렌틴. (몰리나의 영화이야기는 ‘거미여인의 키스‘의 중요한 모티프이다.)

영화 ‘캣 피플’의 표범여인 이야기(나스타샤 킨스키가 나오는 영화가 아니라 오래전 만들어진 흑백영화), 나치가 선전용으로 만든 프랑스 여가수와 나치장교의 로맨스 영화(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악당으로 묘사), 좀비 귀신 영화, 멕시코의 사랑타령 영화등 육칠편의 영화가 몰리나의 입을 통하여 펼쳐진다.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두 편의 영화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들은, 우리식으로 말하면 죄다 신파 멜로물들이다.

뛰어난 기억력과 묘사력을 지닌 몰리나.

오리지널 영화를 한층 더 로맨틱하고 센티멘탈하고 멜랑꼬리한 신파적 감성으로 윤색하여 발렌틴에게 들려준다. (때로 몰리나가 모놀로그로 독자에게만 들리는 영화이야기도 있다)

발렌틴으로서는 몰리나의 빼어난 이야기 솜씨에 하릴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감방이라는 고립된 상황이 아니었다면 저속한 의식구조를 가진 게이 ‘몰리나’의 이야기를 들어줄리가 없었을테지만)

재미로움을 느끼면서도, 초장에 발렌틴은 사상가다운 기질이 발현되기도 한다.

영화 이야기 속에 나오는 계급구조를 지적하며 비평을 가하는 발렌틴.

 

발렌틴 : 네가 영화를 이야기할 때 내가 그것에 대하여 조금 평을 하고 싶어. 너는 어떻게 된 사람이길래 나치를 미화하는 영화를 그처럼 아름답게 묘사할수 있어?

 

몰리나 : 난 볼레로가 좋아. 이 볼레로는 너무 아름다워

발렌틴 : 사랑타령들. 유치하기 짝이 없는 사랑 노래잖아. 정신차려.

 

발렌틴 : 몰리나, 난 현재의 이 순간을 즐기는 것에 동의할수 없어. 아무도 현재의 순간만을 위해 살수는 없어. 정치투쟁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 내가 이곳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참아낼수 있는 것도 모두.. 계획이 있기 때문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혁명이고, 감각적인 기쁨같은건 부차적인 것이야.. 위대한 기쁨은 다른 것이야.. 가령, 내가 가장 고귀한 명분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러니까 바로 내가 가진 모든 사상이...

몰리나 : 네 사상이 무엇인데?

발렌틴 : 한마디로 마르크스주의야. 난 그 사상의 기쁨을 어느 곳에서나 느낄수 있어. 심지어는 고문받는 순간에도. 이것이 나의 힘이야.

 

몰리나는 처음부터 남자다운 발렌틴을 사랑하고 있었으며, 나날이 그 사랑은 깊어가고 있다.

몰리나에게 당국의 은밀한 명령 따위는 애초부터 발렌틴과 함께 할수 있다는 기쁨의 수단일 뿐이었던 것이다.

영화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몰리나의 지독한 멜로성(? 신파성)에 동화되어 간다.

차츰 거미여인의 거미줄에 걸리는 것이다.

 

발렌틴 : 몰리나, 네게 묻고 싶은게 있어. 넌 신체적으론 나처럼 남잔데... 그런데 왜 남자처럼 행동할 생각을 하지 않는거지? 여자와의 관계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야. 여자들은 네게 매력적인 존재가 아니니까. 그것과는 다른 의미의 남자, 즉 왜 남성적인 태도를 가지려고 하지 않느냐는 것이야.

몰리나 : 안돼, 난 그렇게 할 수가 없어.

발렌틴 : 왜 안되지? 그 점이 바로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야. 동성애자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잖아.

몰리나 : 그래, 게이 중에서도 별의별 종류가 다 있어. 하지만 난 안돼. 난 그저 여자일 뿐이야.

 

발렌틴 : 나는 일부일처제를 믿지 않아. 그건 여자가 남자에 예속되는 계급적 관계이니까.

몰리나 : 허지만 부부가 평생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건 얼마나 아름다워.

발렌틴 : 그렇게 살고싶니?

몰리나 : 그게 내 꿈이야. 난 평생동안 한 남자와 결혼해서 살고싶어

발렌틴 : 그렇다면 전형적인 부르주아 신사군

몰리나 : 부르주아 숙녀지.

 

발렌틴 : 네게 남자답다는건 도대체 무어야?

몰리나 : 멋지게 생기고, 힘이 센 것. 뚜렷하고 당당한 것, 어떤 상황에서도 겁내지 않는 것. 침착한 것.

 

몰리나가 감옥에 오기전까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은 어머니와 가브리엘이라는 남자뿐이었다.

 

몰리나 : 삼년전 만났던 가브리엘. 너를 보면 그에 대한 기억이 떠올라서 울었어. 그는 노동운동도 하였고 정의감에 불타고, 타인을 위하여 실업자가 되었고,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남색이라곤 전혀 생각지도 않았고. 아내가 있었고 아내를 사랑했어. 하지만 그의 아내와의 섹스를 생각하면 나는 질투하였어. 너는 또 추잡하다고 말할테지?

 

가브리엘도 발렌틴과 닮은 모습이었지만 몰리나가 독점하여 사랑할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가브리엘은 몰리나의 간곡한 동침 요구도 거절하였다.

그러나 발렌틴은 몰리나가 처음으로 찾아 낸 완벽한 남성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단 두사람만이 갇힌 감방에는 발렌틴을 향한 사랑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몰리나의 소망은 발렌틴을 유혹하여 그의 사랑을 쟁취하는 것이고 그 수단이 바로 영화이야기였던 것이다.

 

몰리나 :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자기뿐인줄 알아? 진정한 남자를 찾는게 그리 쉬운줄 알아? 아, 품위와 겸손을 갖춘 남자, 진정한 남자. 나는 일생동안 그를 찾아 헤맸어. 조롱과 경멸의 시선에 둘러 쌓인채. 나에게 소원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한 남자를 모시면서 함께 인생을 보내는거야. 그리고 내 남편은 내게 명령을 해야만 돼. 그건 자연스러운 거야. 남편이란 한 가정의 가장이니까...

발렌틴 : 아니야. 가장과 주부는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그건 착취야

몰리나 : 그러면 남자다운 매력이 없어지는데. 남자다운 매력은 한 남자가 널 안을 때..그가 조금은 두렵다는 느낌을 받게 되어야 느껴지는거야.

 

시나브로, 의지와 극기로 무장된 신념의 사나이 발렌틴도 몰리나의 그 말랑말랑한 신파적 감성에 젖어들어 가고 있었다.

어느날 음식을 잘못 먹어(당국의 음모) 토사곽란에 괴로워 하는 발렌틴.

그 괴로움으로 혁명가적 의지로 한치 흔들림 없던 발렌틴의 감성이 고백하는 말랑말랑한 것들.

 

발렌틴 : 이 순간 내가 꼭 안아주고 싶은 사람은 그 조직의 여자가 아니라 바로..이 여자야, 반동분자인 그 여자..마르타. 사랑하는 마르타..난 외로워... 내가 이토록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게 내 자신도 부끄러워..마르타.. 난 아직 조금은 더 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 상처에 꿀을 조금이라도 발라달라고 할 수 있는 권리도... 내 인생이 이 조그만 감방 안에서 끝날지 모른다는게 너무나 겁 나..내 손 끝에는 당신의 피부를 어루만졌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어. 난 무신론자인데..지금 기독교도처럼 말하고 있어. 마치 저 세상에 다른 삶이 있는것처럼 말이야

 

발렌틴의 더러운 토사물을 아무런 혐오감없이 치우고 닦고 씻겨주고, 당국을 속여 귀한 음식을 구해다 먹여가면서 간호하여 주는 몰리나의 헌신은 눈물겨울 정도이다.

드디어 두사람의 남자는 정사를 나눈다. (호모의 사랑이 반드시 애널섹스를 동반하는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떤 것이었을까)

다음날 아침.

말할수 없이 행복한 몰리나.

발렌틴도 다정하게 웃는다.

 

몰리나 : 나는 없고..너 혼자만 있는 것 같았어. 내가 아닌 것 같았어.. 지금 난..네가 된 것 같아.

발렌틴 : 네게 슬픈 생각을 하게 만들지는 않을거야.

 

그러나 몰리나는 알고 있었다.

이러한 행복이 오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당국은 발렌틴의 조직 궤멸을 위한 단서를 얻기 위하여 그에게 다른 식의 음모를 꾸미리라는 것을.

과연 당국은 몰리나를 미끼로 하기 위하여 그의 석방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몰리나는 자신의 사랑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한다.

 

몰리나 : 그래, 난 살아있어. 그런데 내 삶은 언제부터 시작하지? 언제가 되어야 내가 내 것을 만질수 있고, 내 것을 가질수 있지?

발렌틴 : 몰리나, 각자의 상황에 만족해야 돼. 석방시킨다니 넌 횡재한거야. 그것에 만족하도록 해.

몰리나 : 난 너와 함께 남아 있고 싶어. 지금 내 단 한가지 소원은 너와 함께 있는거야.

몰리나 : 이봐, 내게 있어 출옥한다는 것은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만 좋은 일일뿐, 다른 것은 하나도 좋은게 없어. 그런데 내가 떠나버리면 아무도 널 보살펴주지 않을거라는 걱정 때문에...

발렌틴 : 네 자신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아?

몰리나 : 응, 생각하지 않아

몰리나 : 네가 여기 있는 동안 난 내가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가벼워져. 네가 내 침대로 올 때 마다.. 그러고 나서 일단 잠이 들면, 난 더 이상 이 잠을 깨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해. 정말 내 유일한 소원은 죽는거야.

몰리나 : 그냥 죽고 싶을 뿐이야. 발렌틴, 난 지쳤어. 고통받고 참는게 이제 지겨워. 내 몸안이 모두 아픈걸 넌 모를꺼야

발렌틴 : 어디가 아픈데?

몰리나 : 가슴, 그리고 목 안쪽이..왜 슬픔은 항상 그 부분에서 느껴지는 것일까?

 

그리고 결심한다.

조직원과 접선하여 달라는 발렌틴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몰리나 : 네 대의명분을 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면 좀 더 빨리 네 혁명을 완수할수 있을 것이므로, 그렇게 되면 어쩌면 너도 세상에 나올수 있겠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만날수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몰리나의 영화이야기.

이제 발렌틴은 그 신파의 이야기에 슬퍼할 줄을 알게 되었다.

 

발렌틴 : 아주 멋진데, 그 부분이 영화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야

몰리나 : 왜 그렇게 생각해?

발렌틴 :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잃었지만 적어도 일생에 한번은 진정한 관계를 가질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다는 의미니까...널 그리워 할 것 같아. 몰리나... 넌 거미여인이야. 네 거미줄에 남자를 옭아매는....

몰리나 : 아주 멋진 말인데! 그 말 정말 마음에 들어.

 

초반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발렌틴의 허위의식. (남녀평등을 부르짖지만 그는 남성우월주의자, 인간 평등을 주창하지만 지적우월감에 젖어있기 일쑤였고, 의식이 없는 자라고 몰리나를 비웃지만 그의 속물성이 곳곳에서 드러났고..)

그런 발렌틴이지만 필경 거미여인의 거미줄에 걸려버리고 말았다.

몰리나는 석방되었고, 언제나 감옥 쪽을 바라 보면서 발렌틴을 그리워 한다.

그리고 발렌틴의 부탁대로 전화로 조직과 접선하여 모종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당국은 몰리나가 조직과의 접선중 기습하지만 조직원은 도주한다.

도주하면서 체포되는 몰리나의 자백을 막기 위하여 조직원은 총을 발사한다.

거리에서 개처럼 죽는 몰리나.

시종 몰리나를 미행 도청하였던 당국의 보고서에서, 몰리나가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였음이 모든 정황으로 드러났다.

몰리나의 지극한 순애(殉愛)였던 것이다.

  

조직 파악에 실패한 당국에 의하여 전기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발렌틴.

간호사의 동정(同情)으로 모르핀 주사를 맞은 발렌틴은 환상을 본다.

남국의 아름다운 섬에 등장하는 혁명의 반동이었던 옛 애인 마르타와 거미여인.

그 환상은 몰리나가 이야기한 영화와 버무려서 발렌틴 자신의 작품으로 윤색한 한편의 영화였다.

 

<왜 훌륭한 대의명분이지요? 음. 난 그가 스스로 그런 죽음을 택했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여주인공들이 그렇게 죽었으니까요, 그러니 훌륭한 대의명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요....그 자신만이 알겠지, 아니 그 자신도 모를지 몰라, 하지만 난 감방에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매일 밤 자장가처럼 그의 영화 이야기를 듣는데 습관이 들었기 때문이야, 내가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더라도 이젠 그에게 전화를 할 수도, 저녁식사에 초대도 할 수 없어, 그는 나를 수 없이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말야....우리가 깨달은 가장 어려운 일이 뭐지? 그것은 내가 당신 마음 속에 살아 있고, 그래서 당신과 항상 함께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은 절대로 홀로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죠...난 그 말을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거야,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면, 우린 함께 있게 될 거야, 비록 볼 수는 없어도 말이야...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영원히 있고 싶지 않아요?...아니, 이젠 됐어, 충분히 쉬었어, 음식도 모두 먹고 한잠 푹 자고 나니 다시 기운이 솟아나, 내 동지들이 투쟁을 계속하기 위해 날 기다리고 있어...당신 동지를 이름, 그 말이 바로 내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에요...마르타, 얼마나 사랑하는지 당신은 모를거야! 이 말만은 당신한테 할 수 없었어. 당신이 그것을 물어볼지 몰라 두려웠고, 그러면 당신을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았어...아니에요,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

 

짧지만 행복한 꿈.

 

이 소설에 대한 어느 분의 평.

<거미여인의 키스'의 섹슈얼리티는 권위에 대한 반란이며, 사회의 경직된 것에 대한 반란이고, 또한 모든 잠재되고 억눌린 것들에 대한 해방이다. 어쩌면 자아와 개성의 죽음이며, 이러한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려는 예술혼이다. 이 예술혼이란 위대한 분노이며 동시에 처절한 자기파괴이며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자기사랑이다.>

 

이상(理想), 이념, 사나이다움, 의지, 신념... 존재의 무거움.

그리고 감각, 센티멘탈, 멜랑꼬리, 여성스러움, 교태, 신파, 멜로...존재의 가벼움. 

도스토예프스키와 도어즈, 베토벤과 이미자, 넥타이와 작업복, 학삐리와 공돌이, 엄숙과 경박,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근엄한 주제와 경박한 주제,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

어느 것이 그대의 삶인가.

아니, 그대를 살게 하는 것은 어느 쪽인가.

나의 옛날이 부끄럽다.

멜로영화를 볼 적에는 깔깔거리며 웃었거나 흑흑 느껴 울었던 주제에, 밖으로는 저질이니 실존적 고뇌가 없었느니 문제의식을 방기했느니 어쩄느니 똥폼잡기 일쑤였으니.

이제 철이 좀 들었을랑가 모르겠다.

얼마든지 가벼워도 좋은 것들.

사람을 살게하고 변하게 하는 것은 프로파간다의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만들어 내는 삶의 디테일이다.

존재가 무거운 척, 똥폼의 지사의식(志士意識)으로 남을 계도하려는 치들 그들이 신파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삶에 저급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몰리나는 뼛속까지 타고난 여자다. (‘윌리엄 허트’를 떠올리면 상상이 힘들테지만 영화를 보시라.) 

사랑하는 남자를 향한 그윽한 배려의 마음씨, 따뜻하고 섬세하게 감싸 안는 풍성한 감성,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끝없는 헌신의 자세...

몰리나의 순애보(純愛譜)는 심수봉의 노래처럼 젖어드는 여성적 애상(哀想)이다.

심수봉 노래의 뒷태는 요염하고 농염하다.

비음(鼻音)으로 속삭이는 흐느낌, 그건 육정(肉情)의 도발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짙은 연민(憐憫)이기도 하다.

사내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그대 여성이여.

그리하여, 그런 여성적 수동성(受動性)이 굴욕이란 말가.

진정한 페미니즘은 남자는 남자이고 여자는 여자임을 자각하는 것인줄 깨닫기를 바란다. (D.H 로렌스를 읽어보라).

“이제 페니스 선망같은건 없다 . 쪼그리고 오줌을 누는 굴욕적인 일은 안한다.”

그렇게 외치면서 기구를 사용하여 남자처럼 다리를 쫙 벌리고 오줌을 갈기는데 있는게 아니다. (귄터 그라스 ‘넙치’)

창조주가 부여한 태초의 여성적 디테일, 사내들은 그런 여성성에 익애(溺愛)하도록 만들어진 동물이다.

 

덜렁거리는 물건을 달고 있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저 순정한 여성성.

그에 대한 나의 상상적, 지적(知的), 경험적, 감정적... 등등의 모자람에 대하여는 이해를 구한다, 책부족 제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