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리뷰-
<도가니>
-공지영 作-
***동우***
2011년 10월 7일
‘도가니' 열풍이다.
‘공지영(1963~ )’의 소설 발표(2009년 6월 출간) 즈음, 일각에서 다소 술렁거리는 것 같더니만 ‘황동혁’ 감독의 영화(공유,전뉴미,김현서 출연)가 개봉되자 바야흐로 센세이녈한 이슈가 되어 버렸다.
소설은 뒤늦게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입소문으로 영화에는 줄지어 관객이 몰린다.
소설이나 영화를 접한 사람들은 어린 장애인들이 당하는 참혹한 사실에 혀를 차면서 노호(怒號)한다.
여론의 냄비는 뜨겁게 달구어져 부글부글 끓는다.
이토록이나 들끓으니 이슈가 되지 않을수 없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무슨 위원회를 구성하여 대책을 세운다고 야단이고, 사법부는 양형기준을 바꾼다나 어쩐다나 법석, 입법부는 입법부대로 공소시효 연장 어쩌구 관련입법 운운 열을 올리고, 경찰은 경찰대로 그 몹쓸 인화학교에 대하여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비껴갈 새로운 혐의를 찾겠다고 재수사 어쩌고 난리법석이다.
제도와 법률의 빈틈에 숨어 저질러지고 있는 부당부정(不當不正)한 문제들.
그런걸 척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거든 들끓게 만들어야만 한다.
우야든둥 목청이 커야만 한다는 말이다.
꽝꽝꽝꽝 귀청이 쩡쩡 울리도록 떠들던지, 엉엉엉엉 울음이 터져나오도록 불쌍함이 만발하던지.
소곤소곤이나 훌쩍훌쩍 정도로는 이슈는 커녕 공염불이거나 헛된 메아리로 그치고 만다.
그렇게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야만 사람들은 해결방도를 모색한다.
좌우당간 이 나라에서는 그래야만 되는 모냥이다.
'도가니'는 그러니까 두 종류 들끓음에 대한 함의(含意)가 있지 않겠는가.
안개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복마전(伏魔殿)속 부정의(不正義)한 들끓음이거나 그에 맞서는 정의로운 분노의 들끓음...
공지영은 ‘도가니’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틀림없이 '아서 밀러’가 쓴 동명의 희곡 ‘크루서블(the Crucible '도가니')'을 떠올리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혹시 거기서 제목을 차용한 것인지도 모른다.>
'크루서블'은 1950년대 미국을 휘몰아 쳤던 ‘매카시즘’을 빗대어 쓴,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의 광풍을 그린 작품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위노나 라이더'가 출연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한 처녀의 삿된 욕망으로 인한 거짓말, 거기서 촉발된 집단적 광기, 자신의 정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지극히 비지성적인 종교재판, 멀쩡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처단하는 야만적 행태들....>
장애인 특수학교 ‘자애학원’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었던 광기의 행각들.
‘교장’과 ‘행정실장(교장의 쌍둥이 동생)’과 '담임교사'의 파렴치함. <농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남색(男色)이거나 아동에 대한 변태적 욕정의 성범죄>
그리고 무진(霧津)이라는 시골도시의 기득권자들의 뻔뻔스러운 작태들. <끼리끼리 짝짝꿍하여 서로들 눈 꿈쩍꿈쩍해가면서 진행되는 오도(誤導)된 재판..>
한켠은 지나치게 변태적이었고 한켠은 지나치게 뻔뻔스런 놈들이었다.
공지영이 보여준 이야기는 픽션이 아니고 사실이었던 것이다. (가상의 地名과 人名으로)
소설의 배경, '무진(霧津)'이라는 이름처럼 짙은 안개로 감싸여진 도시.
그 안개는 온갖 부당하고 부정의하고 부정직한 것들을 은폐하고 있는 것의 알레고리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의 안개가 방향을 상실한 청춘의 관념성 짙은 안개였다면, 공지영의 ‘무진’의 안개는 진실이 감추어진 우리 사회의 액추어리티 짙은 안개일 것이다.
그리고 '도가니'는 안개 속 진실을 밝은 세상으로 드러내 보여주고, 그를 위하여 싸우는 사람들의 얘기였다.
<전과가 없다니! 십여년간 수십명의 아이들을 성폭행했는데 집행유예라니!>
'무진'의 재판정은 가중처벌하여야 할 아동성범죄자들에게 솜방망이 처분을 내린다.
오래 징역을 살려도 모자랄 판의 범죄자들, 만기석방되더라도 전자발찌를 채워놓고 감시하여도 모자랄 변태 파렴치범들.
그런데 두목격인 교장 이강석에게는 고작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행정실장 이강복에게는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담임교사 박보현은 징역 6개월. (빽줄이 가장 약한 박보현만이 실제 감옥살이를 한다)
이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자마자 원직(原職)으로 복귀하였다. (박보현은 형기를 마친 후)
존경받는 교육자이며 독실한 신앙인, 학교의 교장이며 교회의 장로.
그들과 얽혀있는 판사와 변호사와 검사와 증인들.
그들은 '무진'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절대적 기득권의 지위를 누리는 자들이다.
그들이 연대하면 팥을 콩이라 하여도 통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다.
<“그런데 말이야, 점점 더 나도 이해할수 없는 건,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철학의 문제도 아니고 그냥 지저분한 성폭력 문제에 왜 이렇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달려들어 목숨을 걸고 있느냐는 거야.”>
<"나도 그걸 잘못 판단했어. 아주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어. 아주 간단한... 그것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싸움이 될줄은 몰랐어.”>
기득권, 가진 자들의 두려움이 끼리끼리 결속케 한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었다.>
그런 행태는 그들로서는 사람의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웃기지 않니?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 일일까? 대체 누가 이 사태를, 이 어이없음을 책임져야 할까? 장경사는 아주 조금 수사를 늦추었을 뿐이야. 수사를 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늦게 그리고 약간 소극적으로 했을 뿐이지. 황변호사는 평생 단 한번 있는 전관예우의 기회를, 그의 수많은 동기와 선배들이 그러하듯 그렇게 딱 한번 사용하고 있을 뿐이고. 그 사람 훌륭한 판사였다고 하더라. 청렴했기에 그만큼 모아놓은 돈이 없었고 앞으로 변호사 활동을 하려면 서울 강남의 법원 앞 빌딩에 사무실을 열어야 했고, 그 비용은 청렴한 판사 출신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크고. 그로서는 부귀도 마다하고 이십년을 국가에 봉사해 왔으니 이제 이 정도의 보너스는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을 했겠지. 아니 물질적인 이유말고도 그에게는 오십여년간 무진의 복지를 책임진 이강석 형제(교장형제)를 보호하고 싶은 동기가 있었을지도 몰라. 그게 자신의 고향, 무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훌륭한 일이라고 나름대로 판단했을지도 말야. 장애아들 몇 때문에 이 오랜 자애학원의 봉사활동을 무위로 돌리고 그 무진의 상류층과 무진의 명예를 더럽힐수 없다고 말이야. 산부인과 의사 또한 그래. 약간의 여유가 있었을지도 몰라. 정신이 또렷하지 않은 소녀의 처녀막이 파열된 상처를 가지고 자신의 동창의 남편이자 무진 골프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을, 한 다리만 건너면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다 아는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을 오욕의 구덩이 속으로 밀어넣을수 없다고 생각했을거야. 제 눈으로 강간의 현장을 확인한 바도 없고 피를 철철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급박하게 병원을 방문한 것도 아니잖아.">
기득권자는 필경 보수꼴통이 되게 마련인가 보다.
<장경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 그렇다면 당신은 무진시민 모두와 싸워야 할거요. 사방에서 거짓말을 하며 서로서로를 눈감아 주고 있어요. 시의원과 건설업자의 처남이, 운전면허시험장 직원과 병원장 사모님이, 룸쌀롱 마담과 경찰서장이, 밤무대 무명가수와 외로운 사모님이, 유부녀와 목사가, 교수와 교재 출판업자가, 시교육청과 입시학원이 서로를 봐준다며 눈을 감고 거짓말을 해대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정직도 정의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쩌면 그들은 더 많은 재물은 가끔 포기할수 있어요.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거예요. 한번만 눈감아 주면 다들 행복한데, 한두명만 양보하면-그들은 이걸 양보라고 부르죠.- 세상이 다 조용한데, 그런데 당신은 지금 그걸 흔들고 있어요.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변화를 하자고 덤빈단 말이지요.”>
거짓이 진실을 눌러 버리고 거짓이 진실인양 득세하면 그걸 다시 맑게 만들기 위하여 세상의 에너지는 헛되게 낭비되는 것이다.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게 뭐지?하고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 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지고 있는 자들, 거짓으로라도 지켜내야 할 절대적 가치라는 게 그 기득권이라는 것이다.
사회지도층이란 입장에서 언필칭 진실이란 외피(外皮)로서 소중한 가치로 포장하고 있지만 기득권의 시스템으로 성립된 기존의 질서는 더욱 소중한 것이다.
그것의 수호를 위해서 어느 정도의 진실훼손이란 용납될수 밖에는 없다.
'진실'은 스스로 '진실'이므로 호들갑 스럽지 않고 항용 게으르다,
그러나 '거짓'은 스스로 '거짓'이므로 '거짓'을 진실로 꾸미기 위해서는 교활하고 호들갑스럽고 바지런해야만 한다.
공지영은 멋진 말을 하였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젠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라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 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거짓은 여론을 호도한다.
<"생각해 봐. 선생들 다 있는데, 애들 보는 눈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아무리 말이야. 그리고 교직자잖아. 그냥 좀 집적거린 거겠지. 사춘기 아이들이니까 그걸 예민하게 받아들인 거고 말이야. 에잇! 사람들이 말이야. 설마 그랬을 리가 있겠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어린 것들한테...>
책 뒷장에서 '염무웅'은 '상호보험'에 대하여 말하였다.
<이 나라 서민의 돈을 끌어 모아 사리사욕을 채운 작금의 저축은행 사태에서도 '상호보험'은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는듯 하다. 대통령의 형을 빗대어 '만사형통'이라니, 그 재판을 우리는 지켜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교묘하게 상호보험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 인간의 악마성과 사회적 불의가 얼마나 높은 성벽을 구축하고 있는가.>
그리고 양심의 법정을 환기시킨다.
<법정소설이라 할때, 이 소설은 두 개의 법정을 상정한다. 세속의 법정에서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와 증인등 온갖 실정법적 장치의 동원에 의해 진실을 위조하고 사회적 강자에게 공개적인 합법성을 부여한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의 내면에 각인시키는 또 하나의 법정이 있다. 바로 양심의 법정이다.>
무진(霧津)은 어쩌면 나의 고향이기도 할 터이다.
나 또한 안개 속에 숨어 부정직하고 비겁하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르랴, 아무도 몰래 뉜가 내게 일확천금의 낚시밥 드리우면 나는 서슴없이 그것을 덥석 물 것이다. 진(眞)과 위(僞)를 따질 겨를없이.>
낫살 먹을수록 무언가 움켜 쥐고 변하지 않으려는 태도 역시 작지 않을 것이다. <실속없는 것일 망정>
낫살 먹을수록 꼴통이 된다는 것, 노추함은 안개 속에 숨어 있다.
나는 어쩌면 지금도 안개 속에 무언가 감추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부끄러움 있어 그나마 구원인가.
'안개'는 부정의의 은폐물질이기도 하지만 '안개'는 한켠 양심의 감옥이기도 할터이니까 말이다.
나는 나부대는 공지영이 가끔은 싫었다.
그런데 낫살 들면서 공지영이 좋아진다.
그녀의 문학도 아름답거니와, 공지영은 적어도 나보다는 백배나 준열하게 정의로운 여자다.
그리고 나는 마음으로 부러워 한다.
부정의한 연대에 항거하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연대를.
그리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정의로움이 점점 많아짐으로, 내 손주 비니미니의 세상은 좀 더 좋은 쪽으로 가고 있음을.
작가의 후기.
<이 글을 쓰면서 나는 행복했다. 우리 사회에 그렇게 천사들이 많은지 몰랐다.>
<삶과 현실은 언제나 그 참담함에 있어서나 거룩함에 있어서나 우리의 그럴듯한 상상을 넘어선다.>
아래는 이 책에 실린 ‘엘리아르’의 말이다.
<미화된 언어나 진주를 꿴듯 아름답게 포장된 ‘말’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다. 진정한 시에는 가식이 없고 거짓 구원도 없다. 무지갯빛 눈물도 없다. 진정한 시는 이 세상에 모래사막과 진창이 있다는 것을 안다. 뻔뻔스러운 희생자도 있고, 불행한 영웅도 있으며 훌륭한 바보도 있다는 것을 안다. 삶 속에 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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