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은교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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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은교>

2012 6 8

 

소설 : 은교

저자 : 박범신(朴範信, 1946~ )

발표년도 : 2010

 

영화 : 은교

감독 : 정지우

출연 : 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제작년도 : 2012

 

1.

 

정지우 감독박해일 김고은 김무열 출연한 '은교', 며칠전 영화를 보았다.

그리고 박범신의 소설 '은교', 조금전 책장을 덮었다.

예순아홉 늙은 시인과 열일곱 소녀와 마흔줄 장년의 작가를 등장시켜서 ‘꾸민’ 이야기, '은교'.

영화에서 김고은이 연기한 '은교'의 캐릭터는 선명했다.

반면 이적요 시인 역을 맡은 박해일은 좀 흐릿했다. (박해일의 늙은이 분장은 그럴듯 했지만 나이에 걸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다)

 

이 소설을 강추하였던 친구.

가파도에서 이 소설을 읽었을 적무척 감상적이었던가 보았다. (소설의 후기에서 작가는 밤에만 쓴 소설이니독자들도 밤에만 읽기를 바란다고 썼던데 친구는 아마 밤중에 은교를 읽지 않았을까.)

박범신의 감각적인 미문(美文)에 마음을 빼앗긴게 분명해 보였다.

또 한 친구도 은교 영화를 보고서 소설을 읽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이 소설이 좀 맞뜩치 않았던가 보다.

<순수문학?. 장르문학?... 필연성이 모자란 플롯.. 몰개성한 캐릭터.. 부조화스런 인용구들.. 밀란 쿤데라의 불멸 티도 좀 나고..>

라고 말씀하신다.

내 두 분을 잘 알거니와, '은교'에 대한 상반된 리뷰는 두 분의 기질적 차이다.

무지개빛 감성을 사랑하는 편인 한 분(이런 현란한 감성을 스스로는 마땅치 않아 하지만)과 생각에 논리와 분석을 싣고자 하는 다른 한 분.

다른 기질은 서로를 끌면서 보완하여 훌륭한 관계를 이룬다.

두 분끼리는 친자매만큼이나 가차운 벗 사이다.

 

내가 읽은 '은교'는 일견 추리소설이었다.

전개되는 사건과 등장인물의 심리가중첩된 복선(伏線)깔고 복합적으로 얽혀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긴장을 동반한 재미와 반전의 묘가미 없지 않았다.

그런데여럿(여럿이기도 하려니와 사뭇 무거운)의 주제를 소설 하나에다 탑재한 것처럼 버거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늙음과 젊음육체와 정신()와 미(), 인간관계와 열등감과 복수심섹스라는... 게다가 불멸까지.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서걱거리는 맛이 씹혀 졌지만운문(韻文)의 문체에서는 작가의 시적 재능을 한껏 드러냈다. (작가 박범신은 시인이기도)

특히 시인의 노트중 호텔캘리포니아의 한 장()은 참으로 빼어났다.

늙음과 세월과 안타까움과 젊음과 쾌락을 그린 나름 절창이었다.

<죽음보다 황홀하고 인생보다 고통스러운 꿈이었다그곳은 호텔 캘리포니아.. 관능과 젊음.. 늙은이가 갇혀서 죽어야 할 호텔 캘리포니아..>

 

한낮 교외(郊外한적한 시인의 저택 데크의 의자에 앉아 잠 들어 있는 소녀.

그 은교를 늙은 시인이 조우(遭遇)함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쇠별꽃처럼 그곳에 그대로 놓여져 있었던 어린 여자아이..숨소리푸르스름란 정맥송골송골 맺혀있는 땀방울봉실 솟은 가슴그리고 창()의 헤나 문신....>

 

그리하여.

노인의 소녀를 향한 사랑과 육정(肉情)그리고 젊은 제자(작가)와의 삼각관계와 열패감과 그로 인한 고통.

거기에 그 제자의 열등감과 복수심이 어우러진다.

시인과 작가가 남긴 기록등에 의해서 독자에게 소개되는 형식으로 드라마는 전개되어 나간다.

 

끝무렵 장년작가는 노시인에 의하여 살해 (내막인즉슨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였던 스승의 냉혹함에 절망하여 자살한 것이다이 지독한 사제간 애증의 당위는 상당히 표피적이고 상투적인 모습이다)되고 종장에 노시인은 스스로 목숨을 앞당겨 죽는다.

현실성과 공상교활과 백치미음란과 순결등 몽롱한 캐릭터의 소녀만 뒤에 남는다.

위대한 시인의 죽음.

사람들은 시인 이적요를 기리기 위하여 야단이다.

 

이적요의 일생은 일관되게 불멸(명성)을 꿈꾸어 왔던가.

이적요는 기록(사후 1년후 개봉키로 된)으로서 이 진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그 언어는 애매한 사유(思惟)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소녀를 향한 사랑범죄위선의 삶...

  

이적요의 유언.

 

<... 죽은 다음에도 살아남기 위하여...가짜 시()들을 사람들이 진짜로 믿도록 하기 위해 나는 살아 왔다.. 그리고 나의 전략대로 죽으려 하였다... 죽음으로서 불멸의 과실을 딸 것이다.. 서정시와 리얼리즘의 미학적 통합으로 시를 돌처럼 단단히 했다고 평가하겠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산문 한번 쓴 적 없다거나 소녀를 사랑한 사소한 스캔들까지도 나의 불멸을 도울것이야... 밀란 쿤데라도...>

 

<...그러나 이제 나는 엿먹어라라고 할테다... 지금 생각하면 은교 너를 만나기 전 까지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몰랐다.. 나의 시가 가짜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너를 만나고 비로소 알았다...나 이적요는 본능을 가진 사람이었을 뿐 신성을 본 적도 만난 적도 없었다...1년후 이 글을 공개한 것은 그 충격을 노렸기 때문이다...뒤 엎어라... 그 때 내 문학관도 그따위 내 이름의 문학상도시비(詩碑)도 기념관도 몽조리 부수라...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마지막 소망이다.>

 

<은교한은교불멸의 내 젊은 신부이고 내 영원한 처녀이며 생애의 마지막에 홀연히 나타나 애처롭게 발밑을 밝혀 주었던 나의 등롱같은 누이여.>

이 대사는 다자이 오사무의 세리프를 차용한 것인데 다자이 오사무의 등롱에서 나는 은교의 이미지를 떠올릴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적요는 은교를 사랑함으로서 삶의 추상성에서 벗어날수 있었다는 이야기인지.

삶의 실체성을 깨달음으로써 불멸을 포기하였단 그 얘기인지

육체의 구체성이라던가 감정의 현실성을 자각함으로서 관념의 몽롱함그 덧없음을 극복하였다는 그 말인지.

작가는 다소 감성과잉의 언어를 구사하여 논리를 비약시킨다.

대체로 나는 이적요은교서지우의 캐릭터가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도 잘 만져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은 그닥 매력적이지 않았다.

 

소설의 종장.

이것 또한 작가의 의식과잉이었을까.

어떤 상투성이 느껴진다.

소녀를 탐한 늙은이제자의 살인자라는 이적요의 기록.

이것이 공개된다면 이적요의 '불멸'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적요가 원하였듯이.

 

그러나 은교는 그 기록을 불에 태워 없애 버린다.

이적요는 불멸이 되었고 '늙은 사랑이야기는 증발되어 버렸다.

 

이러한 반전(反轉)으로 소설은 끝을 맺었다.

 

불멸

밀란 쿤데라는 실내풀장에서 어떤 노부인의 몸짓을 보았다.

아름답고 득특한 제스추어.

때로 삶 속에 섬광처럼 나타나 스쳐 지나가는 어떤 이미지.

그로부터 비약하여 쓰인통찰력과 에스프리 가득한 놀라운 상상력의 이야기, ‘불멸이라는 소설.

불멸이라는 외피 속에 들어있는 소멸’.

희극 속에 숨어 있는 비극.

존재가 내포하고 있는 비존재.

달고도 슬픈 맛.

이데올로기와 이마골로기...

은교에서도 밀란 쿤데라의 불멸이 구체적 어휘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불멸의 에스프리를 얻는다는 것은 내 느끼건대 연목구어(緣木求魚).

 

소녀를 사랑하는 늙다리에 대한 다른 소설.

롤리타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롤리타를 은교에서 나는 만나지 못하였다.

은교는 아무리하여도 허버트의 님펫은 될수 없었다.

미학과 관능과 시()에 있어서.

 

<“롤리타내 삶의 빛이요내 생명의 불꽃나의 죄나의 영혼....건전한 아이들 속의 그 귀엽고 치명적인 악마그녀는 아무도 몰라보고 그녀 자신조차 환상적인 힘을 가졌는지 모르는 채 서 있는...제발 나를 좀 혼자 있게 해다오내 이끼 낀 정원에내 사춘기의 공원에..제발 그들이 내 옆에서 영원히 놀게 해다오..., 절대 더 자라지 말고.... 아아내 뜨거운 솜털같은 연인아신비함이여고통스러움이여...">

 

그렇다면 혹여 토마스 만의 타치오를 은교에서 만났는가.

늙어 빠진 작가 아센바흐가 만난 베니스의 찬연한 미소년 타치오.

발기(勃起)가 동반되지 않는 형이상학적 아센바흐의 헐떡임.

그러나 이적요의 현실에서 그 헐떡임은 들리지 않았다.

 

두 친구께.

꽃떨기처럼 아름다운 문장이었으나 은교가 무척이나 빼어난 소설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뒤떨어진 소설도 아니었습니다.

이만큼 치밀한 구성으로 캐릭터의 심리를 묘파하여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는 건 작가의 역량이었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하슬쩍 얼버무리는 늙은이의 교활이로세.

 

2.

 

늙음

관념이건 감상이건 리얼리즘이건.

은교.

늙음에도 깃들어있는 진지한 관능그로 인한 존재의 묵직함. (작가는 나보다 한살이 많다)

예순 넘긴 나의 '늙은 상태'는 어떠한가.

마음 헤집어보건데흐드러진 여성성을 접하면 나의 춘심은 여전히 설레인다.

은교에게서는 옥시톡신의 냄새를 맡지 못하였지만. (처녀에게서는 여자냄새가 증발되어 무취의 청랑하고 맑은 느낌내 성적취향은 좀 흐드러진 난숙함 쪽인 모냥이다.)

 

그리하여.

............

나는 아직 늙지 않았다!

 

내 늙음은 아직까지는 감상이나 예감의 영역에 머물러 있노라.

그리하여 나는 말한다.

늙음의 리얼리티는 아직 내 것은 아니노라.

감성은 지금도 창공을 종달새처럼 날고 있노라.

푸르른 생각은 저 하늘 구름따라 하늘을 떠 다니노라.

아직은 남의 시선으로부터 마냥 자유로운건 아니노라.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 없는 노추한 늙은이...)

아직은 몸뚱아리 내부기관들과 전투(戰鬪)하는거로 느껴지지는 않노라.

아직까지는 말이다.

 

에브리 맨(필립 로스의 소설)의 대목.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노년은 대학살이다!>

우하하그런 절규 따위는 먼 훗날에나 내 것이 될 터이다.

  

그러나.

좀 더 지껄이자.

사람나이 예순을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귀가 순해 진다는 말이다.

고깝지 않은 귀유순한 귀뾰죽하지 않은 귀열려있는 귄들어주는 귀.

 

후덕하고 관대하여 포용력있는 인격에 이른다는 이순(耳順).

낫살 덕에耳順의 인품으로 대접받는 경우도 가끔은 있다.

 

그런데 耳順의 늙은이들.

공자님의 말씀을 도로(徒勞)로 만들기 일쑤이다.

내가 대표적인 엉터리 耳順짜리이다.

마누라나 새끼들처럼 피붙이에게는 이순(耳順)이 아니라 이역(耳逆)이다.

남에게는 관대한 귀가 홀연 피붙이를 향하여는 좁아터지고 뾰죽한 귀가 되니 말이다.

지극히 사소한 말에 자주 서운하다.

예사로운 말도 고깝게 들려 잘도 삐진다.

자주 안부 기척 없으면 속에서는 새발새발 붕어 우는 소리를 낸다.

사소한 지적에도 금새 앵 삐져 자존심이 샐쭉해 진다.

즤들끼리 하하호호하면 외로움이 목구멍 밖으로 쏟아진다.

피붙이를 향한 귀는 에고의 수렁에서 도무지 헤어나올줄 모른다.

 

나는 세상의 존경을 모았던 유명인들의 耳順그 분의 가정에서는 얼마나 耳逆이었던가를 몇이나 알고 있다.

완전 딴판의 사람임에 놀란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배척 당하는 그 이유를 알듯도 하다.

나 또한 나이 먹으니 그러하다.

 

아하아무리 뻥 처봐야 나는 늙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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