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나의 영화 편력기 -其17-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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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 편력기> -其17-

2012년 3월 22일

 

 

내가 본 최초의 뮤지컬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아슴하게 떠오르는 영상 하나가 있네.

사랑하는 여자를 목졸라 죽이면서 처절하게 노래를 부르는 검둥이 사내.

‘해리 베라폰테’가 주연한 뮤지컬영화 ‘카르멘 존스’.

<나중 이야기지만 '해리 베라폰테'의 녹슨듯한 허스키 음색의 노래들을 나는 여간 좋아한게 아니라네. 낙천 흐르는 칼립소뿐 아니라 아일란드나 이스라엘 민요를 부르는 베라폰테...나는 다섯장의 베라폰테 LP 원판을 가지고 있지.>

이 영화는 국민학교 6학년 무렵, 돈암동 동도극장에서 보았어.

<어린 시절, 어머니나 젖엄마의 손을 잡고 참 많은 영화를 보았었네. 개방적인 어머니. 도식적인 교육의 방법론을 좀 우습게 여기셨던듯... 어머니가 읽어 주셨던 일본 연애소설등등...얘기하자면 길다네. 어쨌거나 어른 손에 이끌린 꼬마의 극장출입은 거칠것이 없었어.>

 

‘카르멘 죤스’는 메리메의 소설 ‘칼멘’을 현대물로 각색한 것. <비제의 오페라 ‘칼멘’과는 전혀 다른 음악이었고.>

‘영화’는 아직 사춘기에도 이르지 않은 꼬마를 성적으로 상당히 조숙하게 만들었을거야.

팜므파탈의 마력에 빠져든 치명적인 사랑, 그 파토스의 소용돌이로 인하여 극장 어둠속의 꼬맹이의 숨결은 좀 뜨거웠을랑가.

아직 거웃도 돋지않은 어린 놈, 그래도 사내인지라 격렬한 파토스의 불꽃이 딴에는 무척이나 자극적이었을걸세. (‘선화공주’를 본 날밤 첫몽정의 얘기는 언젠가 했을거라. ㅎ)

 

거듭 얘기하네만 나는 중학교 때부터 관람하였던 영화들을 공책에다 적어 놓았다네.

지금도 가지고 있는 너덜너덜한 그 노트.

수천편 영화의 제목과 감독과 주연배우의 이름들, 그리고 어떤 영화에는 짧막한 소감이 달려 있지. (이미 몇 번이나 얘기한 것일세만)

그런데 기록의 필요를 느끼지 않아서였을까, 몇자 끄적이면 될텐데 ‘언제’와 ‘어디서’의 기록은 뵈이지 않네그랴.

'언제’는 ‘중학때,고교때’ 식으로 기억의 서랍에 대충 나뉘어 있을터이지만, ‘어디서’는 대부분 머릿속에 명확하게 남아 있다네.

어떤 영화를 뇌리에 떠올리면 대뜸 그 영화를 보았던 극장 (그때 영화관은 죄 극장으로 불렸었지)이 연이어 떠오르니 기억중추 해마의 무슨 작용인지 신기할 정도일세. (후각이라는 감각기관이 기억중추와 그토록 밀접한 연관이 있다던데 극장마다 무슨 독특한 냄새가 있었던 것도 아니건만.)

 

넉넉할리 없는 학삐리인지라 일류개봉관은 매우 드물고, 주로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곳은 재개봉관이거나 삼류의 재재개봉관 (거의 2본동시상영관).

그것도 포스터券(이걸 설명하자면 기니까 생략)이나 극장 문깐에 버티고 선 기도(문지기)에게 반의반값 정도 질러주고 드나들었어. (얼굴 익은 기도에게는 공짜로도 통과하였지)

삼류극장, 돌고돌아 낡은 필름, 얼룩진 스크린에는 노상 비가 내렸지.

그것마저도 중간에 끊어지기 일쑤여서 어둠 속에서 휘파람과 야지놓는 소리 요란하였고.

검은장막 늘어진 출입문밖 바로 곁 복도 끄트머리에 변소(화장실이 아니라 변소)가 있어서 객석에는 언제나 은은한 지린내가 떠돌고 있었지.

아무러면 어떤가.

아편처럼 영화에 중독된 녀석에게는 그곳이 바로 파라다이스, 꿈의 궁전이었는 걸.

아, 격세지감. 생각사록 아득한 옛날일세.

 

요즘이야 처처에 공짜로 널려있는 영상들. (전에 서민정님에게 얘기한적 있는데, 사진이라는걸 한번 생각해 보게. 비싼 카메라에 장착된 몇번에 걸쳐 소진되어야 하는 24커트의 귀한 필름, DP 점 맡겨 며칠후 두근거리며 찾아든 한장한장의 인화된 사진들. 셔터 한번 누르는게 정말 예사롭지 않았지..그러나 요즘의 사진찍기, 사진은 이제 經濟財가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自由財가 되어 버린 느낌일세그려.)

티브이도 흔치 않던 시절의 영화, 소위 컨텐츠라는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어.

‘움직이는 그림(動畫)’자체가 한시절에는 그토록 귀하고 비싼 것이었다네.

그리고 일간신문 광고란의 반 이상은 영화광고가 차지하고 있었지. (영화광고라기 보다 극장광고라고 해야 옳을 듯.)

 

전에도 지껄였지만, 수없이 드나들었던 꿈의 궁전, 나의 극장들.

서울.

정능의 우리집과 가까웠던 미아리고개 마루의 미도극장과 돈암동의 동도극장은 주로 국민학교시절에 드나 들었던 재개봉관, 그리고 역시 재개봉관인 우미관, 평화극장, 세기극장, 문화극장, 미도극장.. 그리고 단체관람이나 큰맘을 먹어야 갈수 있었던 개봉관들 국제극장, 아카데미극장, 피카디리극장, 단성사, 중앙극장, 명보극장, 대한극장...

부산.

당시 부산의 중심가는 남포동, 광복동. (시내에 간다하면 바로 남포동 광복동을 가는 것이었지)

개봉관은 죄다 남포동과 광복동, 그리고 바로 이웃인 중앙동에 포진하고 있었지.

남포동의 부산극장 제일극장 대영극장 동명극장 조금 떨어진 충무동 쪽에 왕자극장이 있었고 광복동의 문화극장 동아극장, 중앙동 쪽으로 국제극장과 현대극장.

재개봉관으로는 광복동의 자유극장, 미화당백화점에 미화관, 남포동입구의 남포극장, 옛시청앞의 시민관, 중앙동의 중부극장, 초량의 중앙극장, 대신동 쪽으로 서부극장 영남극장, 범일동 쪽으로 삼성극장과 삼일극장, 서면의 동보극장.

그리고 내가 가장 자주 드나들었던 곳은 ‘영도’에 포진한 극장들이었지.

‘보생의원’ 우리집 바로 이웃에 있었던 주로 2본 동시상영을 하였던 ‘영도시네마’는 그야말로 화장실 처럼 드나들던 곳이었네. 걸어서 10분이면 갈수 있었던 항구극장, 대양극장, 명보극장...

그 극장들, 지금은 거의 다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네.

아, 다시금 그리웁네.

극장, 나의 도피성(逃避城),

나의 ‘녹색의 장원’

 

그리고 뮤지컬.

극장이 ‘녹색의 장원’이었다면 뮤지컬은 나의 무엇이었을까.

그래, 뮤지컬은 ‘녹색의 장원’에서 '오드리 헵번'의 손가락에 앉아 비비대던 어여쁜 ‘벌새’였네.

아마존의 깊은 숲속, ‘녹색의 장원’어딘가에서 피어나는 한송이 꽃 '하타'였다네. (오드리 헵번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떠오르네. “오늘 안 보인다고 슬퍼 하지 말아요. '하타'는 내일이면 반드시 어디선가 피어있을 테니까요”)

 

아, 회억컨대 그때 ‘남태평양’이 없었다면 나의 청춘은 얼마나 우중충하고 칙칙하였을까.

70밀리 드넓은 화면에 펼쳐지는 찬란한 낙원, 남태평양.

‘존 커’와 아름다운 ‘원주민 처녀’(이름은 모르겠지만 여리여리하게 이쁜 동양여성), 그리고 ‘로사노 브랏지’와 ‘밋지 게이너’의 슬프고 감미로운 사랑이야기는 꿈결같은 로망이었네.

그들이 불렀던 노래와 춤. (영화를 보면서 노래의 ‘더빙’을 알아챈 사람은 드물거야. 헐리웃의 뮤지컬은 그만큼 섬세하고 정교하였지)

‘리차드 로저스’와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의 주옥같은 뮤지컬 넘버들.

그 중 한곡, ‘어느 황홀한 저녁’.

그 때 나의 저녁은 참으로 보잘것 없는 것이었지만 (막걸리와 빈대떡 따위의)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의 막걸리 주탁은 어느 호사스러운 식탁에 꿀릴 것 없었어.

 

이 영화를 부산문화극장의 70밀리 화면’은 무언가 모자란듯하여 서울 갔을적 대한극장에서도 연거푸 두번을 보았다네. (한번은 층계참에 앉아서)

미군부대 군속 역(役)의 뚱땡이 폴리네시아인 아줌마가 알토로 부르는 노래 ‘발리하이’.

그 노래가 가슴을 적시면서, 수평선 저 너머로 시시각각 색감을 달리하면서 자태를 드러내는 ‘발리하이’섬.

그 장면은 숨이 멎을듯한 환상적 감동이었지.(로케장소는 인도네시아의 발리섬이었다지)

그 후, 내게 ‘발리하이’는 상상속 낙원의 한 전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네.

 

내 마음 속에는 두 곳의 파라다이스의 이미지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것은 ‘발리하이’와 ‘녹색의 장원’이라네.

‘녹색의 장원’은 ‘멜 화라’(당시 오드리헵번의 남편이었을거야)가 감독하고 ‘오드리 헵번’과 ‘앤서니 퍼킨스’가 출연한 아마존 정글을 배경으로 한 영화일세.

열대 정글의 신비한 비경(秘境)을 배경그림으로 하여 만든, 이를테면 로맨틱 어드밴처 판타지 영화랄까.

영화계 식자(識者)에게는 별로 주목받는 영화가 아니었을거야. (영화적인 평가야 아무러면 어떤가.)

 

여보게들.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어 보았는지 모르겠네. (영화도 있다는데 나는 영화는 못 보았어.)

그 소설에 등장하는 낙원이 바로 ‘샹그릴라’일세.

'샹그릴라'는 고급의 호텔이나 레스토랑등에서 자주 차용하는 (특히 중국에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바로 그 이름일세.

티벳 어딘가의 설산(雪山)에 꽁꽁 숨어 있어서 그곳을 떠난 사람이 다시는 찾을수 없다는 신비로운 낙원.

그런데 그곳은 명징한 이성과 세련된 고급지성이 지배하는 곳이라네.

심오한 철학과 사상과 고상한 예술의 고장이며 생노병사가 없는 곳.

말하자면 불사(不死)의 몸으로 드높은 정신세계의 삶을 영위하는, 그 곳이 바로 '샹그릴라'일세.

그렇지만 내게는 그 ‘샹그릴라’가 도무지 낙원같지가 않아.

불사(不死)의 삶이야 뉘라 마다 할까만 '첨단의 문명'과 '고결한 정신'이 지배하는 낙원이라니.

순전히 영화 탓일세만, 나의 낙원은 그런 곳이 아닐세.

문명을 벗어난 곳, 울창한 숲과 맑은 물,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곳.

원시열대의 순수함과 풍족함이 가득한 곳, 천혜의 자연, 축복의 땅, 의식주의 걱정 따위는 조금도 할 필요가 없는 곳.

그리고 이쁘고도 이쁜, 나만을 사랑하는 여인이 있어야 하지.

영생(永生)은 싫을까만 영원불변의 사랑.

그곳 낙원에서의 '사랑함’에 이지(理智) 따위가 무슨 소용있을꺼나,

하하, 그러고 보니 여보게들.

내게는 ‘뮤지컬’이 바로 그러한 곳이었을세그려.

 

‘남태평양’의 뮤지컬 넘버 ‘해피 토크 (happy talk)’를 기억하는가.

미군장교 ‘존 커’(나중에 戰死하지)가 ‘원주민 처녀’와 사랑에 빠져 (변방의 미녀는 무조건적으루다 백인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다는 ‘제국주의적 오리엔탈리즘’의 설정 따위는 떠올리지 말기로 하세나) ‘발리하이’의 맑은 수중(水中)을 둘이서 유영(遊泳)하면서 부르는 노래.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깜빡거리는 동작의 춤과 함께)

이 노래를 듣노라면 한 시절의 어떤 그림이 떠오른다네.

Happy talky talky happy talk....

딸아이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이니까 다섯 살쯤이고 아들녀석은 두어살 무렵.

동삼동 전셋집 2층 (빌라 비스무리하게 지어진 2층짜리 4가구의 집)의 마루의 정경일세.

턴테이블에 ‘남태평양’의 원판 (뮤지컬영화의 LP원판들은 내게는 참 소중한 보물들...)을 걸어 놓고 어린 딸 아들과 젊은 아비짜리, 우리 셋이서는 자주 어울려 놀았다네.

'해피 토크'의 춤을 추고 '해피 토크'의 노래를 부르면서. (두 손의 엄지와 검지를 깜박이는 영화속 장면을 차용한 엉터리 무용일세만)

 

해피 토키 토키 해피 토크...

아이들 기뻐서 까르르 까르르, 젊은 아비짜리 즐거워서 껄껄.

밝음과 따뜻함과... 가득한 사랑과 가득한 행복의 웃음들.

영도의 봄하늘에 아련하게 번져 나갔던 그 웃음소리들.

여적도 아비 귓전에는 아이들 영롱한 웃음소리 변함없는데, 어느새 어른이 되어 맛대가리 없이 커져 버린 아이들.

아아, 그 웃음소리야 말로 여일(如一)한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이련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sunrise sunset’의 무상함인걸.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