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안경 (1,4,3,3)

카지모도 2019. 9. 25. 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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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안경>

2012 7 21일 포스팅

 

영화 안경(Megane, めがね)

개봉년도 : 2007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출연 코바야시 사토미이치카와 미카코

 

아들아

그저께 네가 동경에서 전송하여 준 일본영화 안경’, 어젯밤에 감상하였다.

참 좋은 영화였다.

배경도 서사도 대사도 그지없이 아늑하고 심플하고 한가한.

시나브로 마음이 나른하게 편해지는 영화.

말로만 들었던 슬로우 라이프의 깊은 맛을 간접적으로너머 경험한 듯한 느낌이었다.

 

일상의 바이오그라프를 자연의 섭리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

인위적 인공적으로 가공하지 않는 삶

등장인물 그 누구도 시간을 묻지 않더라.

동이 트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마냥 한가롭고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날이 저물면 잠자리에 드는 생활.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려하지 않고무얼 요구하지도 의심하지도 비교하지도 않더라.

그저 현재 있는 모습 그대로 충분하게 만족하는 사람들.

눈알 핑핑 돌아가는 현대사회의 도회인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꿀수없는 삶의 자세.

그런 삶을 영위한다는건 대단한 신념이고 용기일거야.

관념이 아니라 존재로써 경험하여 체득(體得)하고 심득(心得)한 본능적 지향(志向)일테지.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외딴 섬.

느린 삶의 행복감을 주위에 끼쳐 주는한 계절만 찾아와 머무는 사쿠라’ 할머니.

민박집 주인인 유우지와 마을 고등학교 생물교사인 젊은여자 하루꼬

그들은 느린 삶의 깊은 맛에 길 들여진 사람들.

 

도시로부터 섬의 민박집 '하마다'를 찾아온 여교수 '타에코'.

그녀가 힘겹게 끌고 다니는 무거운 트렁크(캐리어)는 무슨 고뇌의 업()덩어리 같더구나.

그녀가 차츰 변해가는 과정이 바로 이 영화의 유일한 드라마일테지.

여름이 오기전 사쿠라 타에코도 섬을 떠나고.

다음해 봄 그 바다 백사장에서 다섯사람이 다시 만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났다.

 

인물의 신상이라거나 저간의 사연인물끼리의 관계 같은 그런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

어느 봄날 그곳에서 나른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다섯 사람 정경이 영화의 전부...

그냥 말없이 쪽빛 바다를 향하여멍때리듯 바라보고 앉아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그지없이 무위(無爲)롭게.

그 포즈들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오물오물 입맛을 다시며 먹거리를 즐기는 그들.

팥빙수와 바베큐와 바다가재와 우메보시 같은 음식들을.

탐식(貪食)에서만 감각적 욕망이 조금 엿보이더군.

말이란 방해가 된다는듯그들의 언어는 헤프지 않아.

음식을 먹을 때나 좀 지껄일 뿐인데그것도 전후 맥락없이 느닷없기 일쑤.

그럴때면 첼로와 트럼펫의 음악이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는데 그 때의 영상과 대사는 자못 사변적이더군. (알아듣기 어려울 바는 없어도)

이런 투.

<빙수의 팥을 끓이는 비법은 서두르지 않는 것’>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요?” “한번 죽으면 두 번은 안죽어요”>

<“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 어쩌다 인간이라 불리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것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이제 어깨를 누르는 짐을 벗어버릴 시간나에게 용기를 다오너그러워질 수 있는 용기를나는 자유가 무엇인지 안다나는 자유를 안다.>

 

'안경'은 얘야마음밭을 적시면서 차츰 나른한 행복감에 젖어드는 그런 영화였다.

바다가 눈 맛을 한없이 평화롭게 만드는 것처럼.

사쿠라상의 팥빙수를 먹으면서 모두 말없이 향하여 앉은 그 쪽빛 바다.

바다의 빛깔얘야그런 바다가 일본에는 있었구나.

올여름 그 곳 백사장에 무념무상의 자세로 앉아서 '사쿠라'의 빙수를 먹었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더라.

 

검색하여 보았더니 영화를 만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1972년생 여자더군. (이 냥반의 前作 카모메 식당 요시노 이발관도 꼭 보려한다.)

마흔도 아니 된 여자가 이처럼 깊은 삶에 대한 성찰적 영상을 만들어내다니.

 

그러나 얘야.

정작 아비가 놀랐던건 다름 아니다.

젊은놈에게는 지리하기 짝이 없을거같은 이 영화.

이런 영화에 아들녀석이 그토록이나 흠취하였다니.

이 영화를 보내면서 너는 아버지나 그런 삶을 좋아해요.”라고 꼬리말을 달았지.

영화를 보고나서 그 말을 떠올린 아비다소 낯선 충격을 느꼈단다.

아들녀석이 꿈꾸는 삶의 양태가 그런 것이었나.

한국적 풍토를 싫어하여 오랜동안 외국에 머무는홀로 산에 오르기를 좋아하고 피아노음악을 사랑하는결혼은 생각도 않고.

그런 네 면모의 배후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있었었는가.

예전 아비가 답답하게 여겼던 너의 어떤 것들.

너와의 갈등.

아비가 간과한 네 근원적 기질너의 진면목이 그런 무구(無垢)함에 있었던게냐.

 

그래아들아

한가하고 나른하게 꾸벅거리면서 한세상 살아서 아니 될 무슨 절대적인 이유가 우리 삶에 있는지 아비는 모른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 '봄 바다는 하루종일 꾸벅거리네처럼.

아비가 살아왔고 아비가 기대왔던 가치의 내막인즉슨.

쫓기듯 바쁘게 반복되는 일상.

자본 시스템에 찌든 오욕칠정의 감정.

시간에 목매여관계에 얽혀서그에 목매달아 허덕이는 삶.

그래서 내가 무에 한재산 이룬적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내 관계 화려하고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적 있어보았던가

 

그런데 내 한살이에 무슨 소명(召命)이라도 있었길래.

네게 잔소리하였던 양태의 삶이 그런 질감인걸 아비도 전혀 모르는 건 아닐테지.

나 또한 저자거리 다른 아비들과 한치 다름없는 속물...

 

국민교육헌장그 옛날 군대는 이걸 암송하지 못하면 빳다를 휘둘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과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운운.

개별적 삶에 무슨 이 따위 말도 안되는 허접한 소명(召命)이 있을수 있단 말이냐.

그 시대가 웃기는 짜장면이었으니 그렇다 치고.

 

자본사회의 덕목

근면성실정확완벽시간은 금이다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정확과 완벽을 기하라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런 덕목들은 우리 삶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효한 것일까.

다른 종류의 삶을 꿈꾸거나 살아서는 아니 될 무슨 절대적 법칙이나 이유가 있단말인가.

네가 흠취하여 아비에게 권한 영화 안경.

그 영화는 조용하게 속삭이다.

우리 삶에 저런것들만 장땡이 아니라고

무위(無爲)로 관조하는 시간이 목숨을 낭비하는게 아니라고.

내일을 단도리하기 위한 오늘이 아니라고.

노동의 신성함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경쟁과 바지런함.

그런게 존재론적 숙명은 아니라고.

그렇다면

뭇 아비들의 잔소리는 안경의 코발트빛 바다를 박탈당한 자들의 주절거림.

강박에 겨운 잔소리였더란 말이런가.

 

얘야.

너란 녀석은 사교성이 있거나 속마음 시원스레 토로하는 성격은 아니다. 부모에게조차.

그렇지만 아비는 네 단편적인 글 엿보아 어느 만큼은 느낄수 있었단다.

작년 후쿠시마 지진을 겪은 네 감정모체의 어떤 것들...

 

삶의 회의 인생무상...

아비가 염려하는 바는 바로 그것이다.

안경을 지향하는 삶에혹여나 현실도피적 생각이 깃들어 있을까봐.

네 근원적 기질과 달리 말이다

 

현실 속에서 저런 양태의 삶이 어찌 가능하겠느냐.

자본사회의 현실원리를 완벽하게 벗어난 삶은 작금 세상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안경'이 전적으로 그런걸 오도(誤導)하는 것은 아니다.

'느끼건대 안경'은 리얼리즘 영화가 아니다.

철학적 사변을 위한어떤 의미에서 일종의 판타지 영화일종의 프로파간다 영화라고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안경'은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과연 진정한 행복함일까를 생각케 하여 주는 참으로 좋은 영화였지만그 영화에 우리의 리얼리즘은 조금도 깃들어있지 아니하였다.

 

아들아.

영화 한편 가지고 아비가 공연히 진지하쟈하하하

다른 얘기.

영화의 제목이 왜 안경이었을까?

나중등장인물 다섯사람 모두 안경을 끼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바람에 날라가 버린 타에코의 안경이 뒤에 유우지의 낚시에 걸려 올라 오지 않니?

거기 무슨 알레고리가 있었을까.

 

그 바다에 오는 사람들은 관광을 위해서도 공부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사색하기 위해서라는데.

자막의 사색(思索)이라는 번역이 맞는거냐?

영화속 발음이 타소가레루라고 하지 않던?

찾아보니 たそがれる는 노을이 지는 걸 표현하는 말이라던데아무래도 사색은 영화의 의미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구나.

아비 생각에는 젖어든다’ '잠겨든다쯤의 뜻이 적절할 듯 한데 글쎄다.

시쳇말 멍때리다는 어떨까.

 

안경’.

오늘을 살라는 카르페 디엠’.

버리고 비우고 살라는 무소유의 삶

모쪼록 느리게 살자는 슬로우 라이프

진정한 자유의 삶에 대하여.

이런 가치들을 '안경'이라는 영상의 메시지로 너는 아비에게 보여 주었구나.

 

아비.

이유없이 불안해 지거나뭔가 집착에 겨울때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보려 한다.

한편의 좋은 영화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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