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일본 힘내라>
2011년 3월 12일
어제 오후.
일본에 닥친 대재앙.
규모 8.9의 지진. 그리고 쓰나미.
1900년대초 수십만명이 죽은 관동대지진이 진도 7.9였다는데.
히로시마 원폭의 5만배 위력이라는데.
진앙지가 도호쿠 지역의 해저라니, 동경과는 그다지 먼 곳도 아닌데.
몸이 단다.
직장에 있을 아들놈 전화는 아무리 하여도 불통.
뻔히 없을줄 알면서 어쩌다 신호음이 가는 아들놈 숙소의 인터넷 전화만 돌려대며 용을 쓴다.
아들놈은 어미 아비의 마음 속 깜깜한 그림 속에 숨어있는데, 예제서 걸려오는 아들놈 안부를 묻는 전화들이 부질없다.
어미도 누나도 발을 구른다.
몇시간이나 흘렀을까.
제 어미 휴대전화에 영문 문자가 떴다.
하나님의 메시지처럼.
“jijin nasso. Im ok. don't worry.”
땅거미 지고나니 상태는 지극히 안 좋지만 천상의 목소리처럼 전화가 걸려왔다.
철도 전철 공항 모두 끊기고 통신도 두절이다.
사무실을 벗어나면 극심한 혼란일터이니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잡아 놓고 있는 모양이었다.
끊길듯 말듯 어렴풋 알아들을수 있는 아들놈 이야기.
동경 중심가 예제서 오르는 화염, 사이렌 소리.
록본기, 몹시 흔들리는 회사의 빌딩 안에서 무척 무서웠다고.
아들놈 목소리는 그러나 씩씩하였다.
그리고 과연 일본사람들이었다.
찬찬하게, 극심한 공포 속에서도 그 어떤 공황(恐慌)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
몇천명 몇만명이 될런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인명피해와 막대한 경제적손실.
일본은 곧 일어설 것이다.
아들놈 저토록 늠름하듯.
<이즈음>
2011년 3월 28일
이즈음.
어수선한 마음밭에다가 독한 감기몸살까지 겹쳐 바닥을 기는 컨디션의 이즈음.
아들 녀석 또한 요상한 기분으로 보내는 이즈음인가보다.
일본에 밀어닥친 대재앙, 지진과 쓰나미.
동영상으로 본다.
필사적으로 도망가다가 산더미처럼 덮쳐오는 쓰나미에 속절없이 삼켜지는 자동차들은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가는 개미떼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가구들 엎어지고 물건들 흐트러진 아들놈 방의 모습은 새발의 피다.
지진과 쓰나미.
TV 화면에 의한 간접적 시각경험으로도 그리 무시무시한데.
아아, 게다가 또 하나의 재앙.
방사능이라니.
과학 속에 가두어 사육하고 있던 무서운 것들이 자연의 엄청난 위력으로 해방되어 우리를 뛰쳐나왔다.
통제불능의 보이지 않는 괴물이 되어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동경까지 방사능 2차 오염 어쩌구... 방사능 공포로 전전긍긍하는 동경 시민들.
동경의 멜론님, “오감을 곤두세우고 여차직하면...” 云云하는 답글에서 극도의 공포와 불안 여실하게 묻어난다.
감정표현이 인색한 아들놈 글의 행간을 엿보아 녀석의 느낌을 어림한다.
이번에 겪은 가공할 공포와 거간의 경험이 녀석에게는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퍼질러 앉아 울부짖기라도 하였으면, 하늘에 대고 당국에 대고 분노의 욕설이라도 퍼부었으면.
그런데 일본인들은 너무나 냉정하고 정연(整然)하여.
아들놈은 회사의 조처로 열흘전 오사카로 소개(疏開)되어 일단 안심이다.
그리고 아들놈 말에 의하면 극과 극의 일본.
남녘 오사카 사람들은 꽃놀이를 즐기는등 태평성대의 한가한 모습들.
일본인의 생사관이랄까 하는 것들이 너무도 천연덕스러워....
아들 녀석은 그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 허무하기도 한, 설명불가한 운명론적...무언가 야릇한 느낌에 휩쌓여 있는 모양이다.
삶의 모습은 얼마나 허약한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그래, ‘나는 괜찮겠거니’하는 운명론적 특혜의식은 자기기만적 도취이다.
자연은 얼마나 엄정한가.
운 따위를 따지지 않는다.
좌우지간 아들아. 그렇다고 인생이 마냥 헛헛한건 아니란다.
산(生)사람들은 산 것들의 양식대로 살게 마련.
그런걸 어떡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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