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마르케스]]
<포르베스...> <사랑너머...> <마리아...> <꿈을...>
<포르베스 선생님의 행복한 여름>
-마르케스 作-
***동우***
2015.01.30 04:26
군화를 신고 체크무늬 옷깃이 이중으로 달린 옷을 입고 펠트모자 아래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하고 강박적으로 질서와 권위를 강요하는 독일인 가정교사 포르베스 선생님.
그녀의 체제하에서 두 소년의 삶은 고통입니다.
그녀에게서는 원숭이 오줌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는 콜롬비아 아마존의 햇빛이거나 시칠리아 지중해 바다의 냄새가 아니지요.
그건 문명의 냄새. 모더니즘의 냄새. 역사의 냄새. 형식의 냄새. 정신분석의 냄새, 추상의 냄새. 실존주의의 냄새..
바로 유럽의 냄새입니다.
그러나 지중해의 짖푸른 여름 밤은 포르베스 부인의 유럽적 위선을 벗겨 버립니다.
밤마다 술에 취하여 실러를 읊조리는 그녀의 밤은 현진건의 'B사감'에 다름 아닙니다.
스물일곱 군데나 칼에 찔려 살해 당한 포르베스 부인.
마르케스의 상상력은 그 여지를 은근슬쩍 독자에게 넘겨버립니다.
<그리고 포르베스 선생님은 비명도 지르지 않고 울지도 않은 채, 독일 병사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실러를 읊으면서 그런 칼부림을 동일한 열정으로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그녀의 행복한 여름의 냉혹한 대가라는 사실을 눈치 채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인은 오레스테일테지요.
포르베스 부인은 젊고 싱그러운 오레스테에게 홀딱 빠졌을겁니다.
불꽃처럼 짧은 행복의 댓가.
중년넘은 여인의 눈먼 열정에 청년은 혐오의 칼을 휘두른것으로 상상해 봅니다만.
ㅎ 과연 그럴까요.
<사랑 너머의 끝없는 죽음>
-마르케스 作-
***동우***
2015.09.30 04:39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사랑 너머의 끝없는 죽음' (영어제목: Death Constant Beyond Love)
마르케스의 이 소설도 꽤 유명하다는데 가리사니를 잡을수 없도록 기묘하기만 합니다.
상징과 은유를 헤아려 읽으려니 소설재미는 건조해지고 머리는 복잡해집니다.
사랑너머의 끝없는 죽음이라니, 유츄하여 나는 그냥 분위기로 읽었습니다.
의사로부터 정확하게 딱 6개월 11일의 기한생명으로 진단받은 상원의원..
밤이면 검은 항구, 낮에는 막막한 사막의 쓸모없는 구석에 위치한 침울한 마을..
몰락자와 망명자의 고장..
그 마을에 오직 하나뿐인 한송이 장미 ....
인공의 새들과 모조나무와 판자에 그려져 세운 가짜 벽돌집들..
팡파르.. 폭죽.. 선거캠페인의 쇼우...
벽의 그림으로 달라붙어버리는 종이나비..
첫번째 부인을 토막내 죽여버린, 천하일색의 딸을 둔 남자..
정조대와 열쇠..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져다 주는 치명적인 안정감.
상원의원은 의연한 죽음을 위하여 죽음을 생각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삐까번쩍 성공적 삶에 죽음의 의식은 수치스럽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러나 죽음의 침식작용은 그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대기는 불길같은 더위와 습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여자와 조우합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죽음보다 더 강렬한듯 합니다.
그러나 정조대의 열쇠는 필요치 않습니다.
상원의원은 그 산짐승의 겨드랑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을 뿐입니다.
<그녀는 장미를 응시한 채 그의 어깨를 베고 누웠다. 상원의원이 그녀의 허리를 안았다.
그는 그 산짐승의 겨드랑이에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고, 죽음의 공포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상원의원은 6개월 11일 후 죽었습니다.
가정은 파괴되고, 삶의 영광은 몰락하고, 죽음보다 더 강력한 그 여자도 없이..
공포 속에서.. 한이 맺힌채..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늘을 향하여 통렬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주님, 나는 죽어가는 삶인가요, 살아있는 죽음인가요.
<마리아 두스 프라제레스>
-마르케스 作-
***동우***
2015.01.30 04:42
공화주의자이며 고전적이며 정의로운 창녀. 마리아 두스 프라제레스.
그녀도 필경 마르케스 추억 속의 '슬픈 창녀' 중 한명일 테지요.
일흔 여섯이지만 방문객 앞에서는 재빨리 귀에다 빨간 장미를 꽂습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에 죽을거라는 계시의 꿈은 엉터리 개꿈이었습니다.
그 꿈 때문에 묘자리를 마련하고 개까지 울게 만들었지만,
그런 꿈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노년의 피로함 때문도 아니고, 죽음이 늦게 도착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녀의 결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생이 어느 추운 11월의 오후에 그렇게 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맙소사! 그건 죽음이 아니었어!” 마침내 그녀는 자물쇠를 찾았다. 그러면서 어둠 속에서 또박또박 걸어오고 있는 소리와 어둠 속에서 자기만큼 놀란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던 누군가의 커져가는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자 그토록 오랜 세월을 기다려온 보람이 있었고, 비록 그 순간만을 살지라도 어둠 속에서 그토록 고통을 받은 보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리아 두스 프라제레스.
참으로 매력적인 여인.
만인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창녀입니다.
***eunbee***
2015.01.30 18:58
동우님, 고맙습니다.
이렇게 고맙다는 인사부터 드려야겠어요. 아침에 침대에 누운채 읽어내려간 저 소설,
정말 정말 좋았거든요.
지금 와서 다시 한번 읽었어요.
물론 조용하고 담담하게 쓰여진 슬프디 슬픈 이야기 <화요일의 시에스타>도 마음 한켠 묵직하게 읽혔고,
내가 알고 있는 마르케스답게 쓴 이야기<날개 달린 노인>도 딱 내 입맛이었지만
오늘 동우님이 들려준 이야기는 '스트릿 걸'에 대한 내 생각을 재정립(?ㅎ), 재인식,재해석케 해준 감동적인 소설이었답니다.
나는 영화 <귀여운 여인>(줄리아 로버츠 출연)을 보며, 극중 여인을 대하는 그 호텔의 지배인(? 중후하게 생긴 인상 좋은 신사,)의 태도가 참으로 좋아서, 그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지요.
거리의 여인을 대할 때의 그의 태도, 사람을 존중하는,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자기 직업에 대한 프로페셔널함...
(마침내 호텔지배인은 그여인을 한 여자로서 바라보며 순수한 정신과 아름다운 모습에 찬탄하게 되지요. 그 지배인 때문에 그영화를 두어번 봤다니까요.ㅎㅎ)
<마리아 두스 프라제레스>
마리아,
저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이 스트릿 걸이라면, 나는 그녀들에 대한 내 기존 생각을 몽땅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ㅎ
나는 그녀들을 고운 시선으로 봐주질 않았거든요. 인류사상 최초의 직업이라는 그 직업, 그것도 어엿한 직업인데 말예요. 그러나, 아, 저 마리아는 너무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중언부언, 내 마음만큼, 내 느낌처럼, 필력이 받쳐주질 않으니 예서 끝내고..(동우님은 다 알아 들었을테니..ㅎ)
"올라 갈까요?"
"마음대로 해요."
하하, 또 다른 "맙소사!!!"가 그녀를 기다리기를.ㅎㅎ
***동우***
2015.01.31 05:44
은비님은 마르케스를 읽을줄 아는 사람..
오늘부터 '콜레라 시대의 사랑' 올립니다.
함께 읽어요.
<꿈을 빌려드립니다>
-마르케스 作-
***동우***
2016.05.07 03:56
'마르케스'의 '꿈을 빌려드립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래 대목은 네루다 보르헤스 마르케스를 얘기할때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에피소드입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꿈을 꾼다는 여자와 함께 꿈꾸고 있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자 마르케스가 <그건 보르헤스의 꿈>이라고 말합니다.
네루다는 <보르헤스가 그런걸 벌써 썼던가>하고 실망합니다.
<보르헤스가 아직은 안 썼더라도 언젠간 쓰겠지요>라고 마르케스가 말합니다.
보르헤스.. 네루다.. 마르케스...
라틴아메리카 문학..
20세기 후반의 '붐'(Boom) 그리고 '포스트붐'(Post Boom).
꿈.
나도 꾸고 당신도 꾸고 그도 꾸고 그녀도 꿉니다.
거지도 꾸고 황제도 꿉니다.
마르케스도 보르헤스도 시(詩)의 통찰력만을 믿는 네루다도 꿉니다.
감옥에 갇혀서도 꾸고 7성급 호텔 침대에서도 꿉니다.
기쁨 속에서도 꾸고 고통 속에서도 꿉니다.
꿈.
계시인가요, 예언인가요, 환각인가요, 환상인가요, 뇌과학인가요, 생체학적 현상인가요, 생리작용인가요, 인지경험인가요, 심리과학인가요.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쓴지 한세기도 훨씬 넘었습니다.
프로이트는 꿈의 목적이 리비도에서 비롯된 소망의 충족이라 하였는데, 그러나 유물론 유심론의 현대적 도구를 동원하여 꿈에 어프로치하여 꿈이란 무엇인지 극명하게 밝혀진바 있나요? <영화 '인셉션'에는 남의 꿈속에 침입하거나 꿈을 설계하는등 꿈을 정복한 인간의 모습이 나오기도 합디다만>
현실이 꿈인지 꿈이 현실인지..
장자의 꿈, 무위(無爲)로운 영역에 그대로 남겨둡시다그려.
마르케스같은 작가가 우리를 홀려서 벌어먹고 살도록.ㅎㅎ
호접지몽(胡蝶之夢), 아직까지는 우리에게 유효합니다.ㅎ
-독서 리뷰-
[[마르케스]]
<날개 달린 노인> <푸른 개의 눈>
<날개 달린 노인>
-마르케스 作-
***동우***
2015.01.23 04:49
하늘도 바다도 하나같이 잿빛입니다.
반짝거리던 모래사장도 이제는 썩은 조가비와 진흙탕 뒤범벅입니다.
게 썩는 냄새 가득한 세상은 마냥 우중충합니다.
그 때 <나>는 하필 날개 달린 노인이었습니다.
날개만으로는 독수리와 비행기도 구별할수 없다는 사람들이니까, 날개만으로는 사람인지 천사인지를 헤깔려 하는것도 당연할테지요.
그런데 날개가 달려 있으니 어쩌리오, 시장이나 오성장군은 아랑곳 없으나 <나>는 닭장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이 지평선까지 나래비를 서서 <나>를 구경하러 몰려 옵니다.
어려서부터 심장 박동수를 세어 왔는데 이제는 숫자가 모자라 더 이상 셀 수 없다는 여자, 성좌(星座)에서 들려오는 소음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자메이카 사람도 들여다 보고, 신부가 와서는 내게 배꼽이 있는지 나의 방언이 예수님이 구사하던 아람어인지 살펴보고 조사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야 천사따위 몽롱한 존재, 날개 깃털 여기저기에 해초(海草)가 붙어있는 처참한 몰골의 내 늙은 날개보다는 부모말씀을 듣지 않아 양(羊)만한 몸집의 무시무시한 독거미 형상으로 변한 슬픈 표정의 처녀가 얘기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에 한층 가슴 아파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상처에서 꽃이 핀 문둥이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카루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만, 날개가 있으니 어쩌리오.
날개 달린 노인이 죽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들은 모릅니다.
의지가 아니라 도리로서라도 나는 훨훨 날아서 사라져 주어야 합니다.
엘리센다여, 펠라요여.
잘 있거라, 나는야 간다.
늙은 독수리처럼 위태위태하게 몸을 가누면서 마을을 벗어나는 천사를 보았을 때, 엘리센다는 반은 자신을 생각하고 반은 천사를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제 천사에 대한 것은 걱정거리가 아니라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상상의 점(点)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상의 점으로 소멸하여,
<나>는 정말 천사였던가 봅니다. ㅎ
낯선 것들과 익숙한 것들의 절묘한 충돌, 이미저리의 경계는 어디인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 그는 정말 경이로운 작가입니다.
이 짤막한 단편에 대하여 유수한 분들의 여러 논문과 해설 난만합니다만, 느낌의 장단이야 엿장수 마음대로 아니리까.
***eunbee***
2015.01.27 00:37
동우님,
나는 이런 소설이 좋아요.
1980년대 초(중반?), 미에르자와 짝짜꿍이 되어 지내던 교사 시절
우리보다 훨씬 어른이신 윤리주임이 우리 둘에게 마르케스의 <백년간의 고독>이란 책을 선물해 주었어요.
나는 내 딸들과 그 책을 읽고는 어찌나 감명스러웠는지.
지금도 은비엄마는 가끔 부엔디아 집안을 이야기하고, 그 작품의 몽환스런 부분들을 입에 올리지요.
<날개 달린 노인> 외에 그의 단편 또 찾아 주실래요? ㅎㅎ
매번 이렇게 칭얼대면 무언가가 나오더라구요. 동우님한테서는.ㅋ(이 염치하고는 ㅉㅉ 염치가 아니라 얌체여요.)
토요일
예당 한가람미술관에서 화집을 안고 왔어요.
동우님이 보신 후, 비니에게 주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이런 화집보다 더 충실한 내용의 것들 많겠지만(부모님과 조부모님께서 이미 많은 선물 하셨겠지만)
서양미술사의 줄기를 파악하는데 조금은 도움도 되지 않을까합니다.
30년 전, 우피치, 루브르, 오르세 등의 화집을 여행길에 안고와서 우리애들에게 안겨주니
살아가며 더러더러 그 책 속에서 만난 그림들 이야기를 하던걸요. 그래서...비니 생각을 했어요.
오늘 오후 문화센터가는 길에 우체국에 들렀는데, 잘 찾아 가려는지요.
무언가를 우송하고 나면, 내가 주소를 바르게 적었던가? 하는 강박이 있어요.
파리에서 전화번호를 뒤바꾸어 썼다는 걸 알고 난 후에 생긴 강박.ㅋㅋㅋ
(똑순이 보다 맹순이가 나를 편케 살게 해~~^^)
***동우***
2015.01.28 04:52
은비님 그러하셨듯, 백년동안의 고독은 내 관념 속 소설 문법의 파괴였습니다.
세상에나, 소설을 이렇게 만들수도 있는거구나.
좀 전 마르케스의 단편 하나 올렸습니다.
그의 초기작이라는데 매우 훌륭한 소설.
어제 택배되어 온 필립스컬렉션의 도록.
언제나 화집의 묵직한 무게감은 그 무게 만큼의 충만감이랍니다.
감사함에 콧등 시큰.
내가 세세 감상한 후, 비니에게 주겠습니다. (파리 몬 아무르와 브레송의 사진집도, 은비님 얘기 더불어)
은비님 보내주신 화집들 감상하기에는 너무 어릴까 싶지마는..
그 아이, 그림을 좋아하고 소질도 엿보이는데 요즘은 기타에 빠져 있어요.ㅎ
차츰 얘기하겠습니다.
***송명숙***
2015.01.28 22:55
재미있는 소설 잘 읽고 갑니다
나에게 날개가 달리면 어떨까요 주인공처럼 닭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면 저는 안되는데 내가 좋아하는 산에 가야 하니까요 ㅎ
***동우***
2015.01.30 04:46
하하, 송명숙님.
날개가 있는데 무슨 걱정?
닭장 따위가 문제리오, 훨훨 날아 산에 가면 되지요.
<푸른 개의 눈>
-마르케스 作-
***동우***
2016.08.10 04:33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27~2014)의 유감없는 마술적 리얼리즘.
푸른 개의 눈.
<"춥지 않아요?"
"가끔."
"지금은 추위를 느껴야 돼요."
그때 나는 왜 내가 혼자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던가를 생각해 냈다.
나의 고독에 대한 확신을 불어넣어 준 것은 바로 그 추위였다.
나는 또 말했다.
"지금 추위를 느껴. 그런데 이상해. 밤은 고요하거든. 어쩌면 침대시트가 내 몸에서 벗겨져 나간 지도 몰라.">
<"언젠가 당신 꿈을 꾼 것 같아요. 바로 이 방의 꿈을."
"아! 이제야 기억이 나는군. 꿈에서 우리가 만났다는 것이 확실해요.">
<"너를 만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될 거예요."
"지금은 상관없어. 우리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베개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충분할 거야."
"아마도, 당신이 램프 뒤쪽으로 몸을 돌리면 우리는 깜짝 놀라서 깨어날 거예요. 이 세상의 어느 부분인지 누가 알겠어요."
"중요하지 않아."
"다시 베개 있는 곳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다시 만날 거예요. 그렇지만 당신은 깨어나기만 하면 잊어버릴 거예요.">
<"그 문을 열지 말아요. 복도에는 다른 꿈으로 꽉 차 있어요."
난 문을 반쯤 열었다. 문을 조금 움직이자 상쾌한 바람이 축축한 초원의 상큼한 풀냄새를 실어왔다.
초원에 집 하나 갖기를 늘 바랐던 여자지요. 한번도 도시를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옛날의 어느 꿈에선가 그 여자를 보았던 것이 기억났다.>
현실의 시공 속에서 조우하는 꿈의 현실.
일일히 그 알레고리의 정체를 따진다는건 부질없을듯 싶습니다.
괴상하지만, 시적(詩的) 울림이 있는 소설입니다.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가 내 꿈을 꾸는 것인지....
장자(莊子)도 호접지몽(胡蝶之夢)을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꿈나무'니 'dreams come true'니 하면서 희망이나 소망 같은걸 꿈에 비유하던데 맞는건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몇분간의 선잠에서도 꿈을 꾸는 사람이지만, 내 임상에 의하면 소망하는 바가 꿈 속에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던데.. 내 꿈은 대부분 개꿈이지요. ㅎ
꿈은 소망같기도 무의식의 카니발같기도 수면중 미세한 외부 자극에 의한 정신작용같기도...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쓴 것이 한세기가 지났습니다만 작금에 이르러 꿈의 정체는 명확하게 밠혀졌나요?
먼 미래에는 영화 '인셉션'처럼 꿈을 설계하고 남의 꿈에 침입하는등의 현실이 도래할런지 모르겠지만.
<"내일은 너를 알아볼 거야. 벽에 <푸른 개의 눈>이라고 쓰는 여자를 거리에서 보면 난 곧 너인 줄 알 거야."
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슬픈 미소-이미 불가능하다는 듯이 체념한 그런 서글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지만 낮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할 걸요. 당신이야말로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지난 밤의 꿈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남자인 걸요."
"내일은 너를 알아볼 거야. 벽에 <푸른 개의 눈>이라고 쓰는 여자를 거리에서 보면 난 곧 너인 줄 알 거야."
하고 내가 말하자 그녀는 슬픈 미소-이미 불가능하다는 듯이 체념한 그런 서글픈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렇지만 낮에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 할 걸요. 당신이야말로 한번 잠에서 깨어나면 지난 밤의 꿈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남자인 걸요."
그녀는 두 손을 다시 램프 위에 올려 놓았다.
얼굴은 쓸쓸한 안개에 어두워지고 있었다.>
내 꿈에도 '쓸쓸함' '채워지지 않음'... 그 비스무리한 느낌의 색채는 있습디다.
현실에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것들...꿈속 아니면 방법이 없겠지요만. ㅎ
꿈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님은 나를 찾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노중에서 만나를 지고
-황진이-
***eunbee***
2016.08.10 08:14
어제 아침, 몽롱한 꿈속을 헤매이는 듯한 이상스런 감상으로 읽어내렸더랍니다.
동우님의 '시적 울림'이란 말씀에 '옳거니!!'무릎칩니다.ㅎㅎ
백년간의 고독을 어찌나 재밌게 읽었던지, 그 소설에서의 마르케스가 짱박혀있답니다.ㅋ
근데 저 영어제목의 단어는 뒤바뀐 것이 아닌지요. '눈'과 '개'가... 에스파냐어(?)는 바른데... 이상타 하면서 읽었지롱요.
올려주신 비니미니!!
고맙습니다.
새끈한 무엇인가가 그리운 요즘 날씨, 기분...
두 공주님의 모습을 보니, 많이 개운합니다.
아기들은 부산사투리를 쓰지 않나 보아요.
우리 애들도 경상도에서 태어나 큰애가 초등 2학년 가을에 떠나올 때까지
경상도 사투리를 전혀 몰랐답니다.ㅎ
정빈 아씨의 낙관(ㅎ)이 찍힌 케릭터 감돌이의 단추와 스티치 11개를 하나..둘...세었어요.
꼼꼼한 은비의 초등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정빈 아씨는 '슬픈 꿈을 꾸고 있나 봐~'하면서 가만히 볼을 쓰담쓰담 했어요.
뿌연 아침 하늘로 목 쉰(?) 매미들의 노래가 번져오르는 무더위예고의 창밖풍경을
에휴~~~~ 하면서 올려다 봅니다. 오늘은 서울로 영화보러 가요. '나의 산티아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걷고 싶은데.^^
동우님,
시원하게!! 오늘하루도!!!
***동우***
2016.08.11 00:55
은비님의 섬세함이여.
영어 제목은 분명 '푸른 눈'을 가진 '개'이고 에스파냐어(내가 알리있나요? 방금 구글 번역 돌려봤지요)는 '푸른 개'의 눈인것 같군요. <내가 업어온 원문이 그래요>
우리말의 애매함이야 이현령비현령으로 해석 가능할테지만, '푸른 개'로도 '푸른 눈'으로도...
<푸른, 개의 눈> 이렇게 쉽표를 찍지 않았으니 '푸른 개'로 해석함이 마땅한건가...
<이쁜 그녀의 개>라고 썼을때 <이쁜 그녀>인지 <이쁜 개>인지 나는 헷갈립니다. ㅎㅎ
은비님의 말씀 듣고나서 과연 이 소설의 시적 뉘앙스에 어떤 쪽이 어울릴런지 생각해 봤어요.
'푸른 개'의 눈을 떠올려보고, 어떤 개의 '푸른 눈'을 떠올려봅니다.
'푸른 개'의 시적 상징성이 더 그럴듯...ㅎㅎ
은비님.
비니미니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문둥이들인데 사투리를 쓰지요, 당연히.
그런데 요즘 아이들, 티비다 무어다 매체를 통하여 서울말은 우리때보다 쉽게 구사하는 것 같아요.
은비님, 옛날 생각나시나요?
갱상도 문둥이에게 '쌀' 발음을 시켜보고 배꼽을 잡고 웃었던.. 그저 '살' '살' 했지요. ㅎㅎ
'으' 발음은 노냥 '어'...
구강구조가 다를리 없는데 언어적 습성이란 그렇게 질긴 것인가보다 했었지요.
정빈이가 만든 캐릭터까지 저토록 세세히 보아주시는... 은비님.
오늘도 무더위 대단해요.
영화 '유스'는 다운받아 놓고 볼 염을 품지 않고 있어요.
아무리 더워도 스포츠 좋아하시는 은비님, 요즘 올림픽 때문에 눈맛은 시원하시지 않으실까. ㅎ
-독서 리뷰-
[[마르케스]]
<화요일의 시에스타> <숨어사는 법> <어떤 날> <나는 단지 전화를..>
<화요일의 시에스타>
-마르케스 作-
***동우***
2015.01.28 04:36
'백년동안의 고독'이 너무나 강렬하여 나는 마르케스를 그 곳에다 고착시켜 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을겁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쓴 그의 단편들, 매우 튼실하고 훌륭합니다.
큐비즘 그 절정 이전에 청색시대등 사실주의의 피카소를 치지도외 할수 없듯이. (친구가 보내준 필립스 컬렉션의 도록, 그 화집의 무게만큼 묵직한 감동을 오늘 새벽 누렸습니다)
도둑질을 하다가 총에 맞아 죽은 아들의 무덤을 찾는 어머니와 어린 동생.
푹푹찌는 한낮의 무더위,적적한 삼등차간, 죽은듯 잠이 든 황량한 마을.
시에스타.
나는 진작에 마르케스 소설의 기호들 속에서 상징과 함축적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를 포기하였습니다만. 절망적이고 비참한 현실을 몽환적으로 마비시키는듯한 분위기...
저 어머니는 고독하게 강인합니다.
'백년동안의 고독'의 인물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아버지 호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도 등장하고, '시에스타'는 라틴 아메리카의 그 고독일까요.
<숨어사는 법>
-마르케스 作-
***동우***
2017.04.11 04:05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1927~2014)'의 '숨어사는 법'
<좋고, 끈기가 있으며, 빈틈이 없어서, 정치적 책략 때문이든, 밀회를 위해서든, 포커 게임이나 매스컴의 인터뷰를 하는 곳에서든, 자신의 단점과 장점 모두를 가장 심각한 상황 하의 일순간에 응축시켜 발휘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어려웠던 옥중의 몇개월도, 조숙하여 노련하게 이끌었던 생활도, 눈에 보이는 형태로는 그의 얼굴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않고 있다. 바로 보이는그대로 나이는 38세이다. 험프리 보가트와 같이 여자들로부터 숭배받고 있는 이유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 바로 파트리시오 케리라는 남자인 것이다.>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한 수많은 영화들.
험프리 보가트는 '카사블랑카'에서 가장 폼이 좋았지만 멋들어진 갱스타로 粉한 역도 상당히 많았지요.
그런데 저 '파트리시오 케리'처럼 멋진 의적(義賊) 이미지의 캐릭터가 있었던지?
'아르센 루팡'이나 '쾌걸 조로'나 '스카라무슈'같은 영화에 나왔던 기억은 없는데.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에서도 침착담대하고 주도면밀하고 신출귀몰할 뿐더러 호리(毫釐)도 위축되거나 비굴하지 않은 사나이.
게다가 스마트하고 젠틀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떤 여자가 반하지 않겠어요?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리얼리즘의 암울함을 저와 같은 멋진 수퍼맨 판타지로 조롱하려 했던걸까요?
마르케스는 라틴아메리카 여러나라의 군사파쇼정권에 저항, 배척 당하여 멕시코로 망명하기도 하였었지요.
<어떤 날>
-마르케스 作-
***동우***
2017.08.09 22:35
쿠데타가 성공하면 주류 군인들은 벼락출세를 합니다.
졸지에 장관이 되고 도지사가 되고 시장이 되고, 세상 살 맛나게 되는 거지요.
무소불위의 권력, 혁명공약을 코에 걸면 못할 것이 없지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의 '어떤 날 (Un dia de estos)'
<“이것으로 스무 명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오, 중위.”>
읍장의 치통.
무면허 치과의사의 은근한 야지.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계산서를 보내시오.”
“당신에게, 아니면 읍사무소로?”
읍장은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문을 닫고 철망 너머로 말했다.
“마찬가지요.”>
<나는 단지 전화를 걸려고 왔을 뿐이에요>
-마르케스 作-
***동우***
2019.03.12 03:1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Gabriel Garcia Marquez, 1927~2014)'의 '나는 단지 전화를 걸려고 왔을 뿐이에요'
과연 마르케스.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단지 전화 걸려고 왔을 뿐인데...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줄거리가 매끄럽지 못한 번역... 내일 지껄입지요. ㅎ
***동우***
2019.03.13 07:18
스물 일곱살의 여배우, 그녀의 낭만적인 사랑관은 롤러 코스트를 탄듯 변덕이 심합니다.
미성년일 때 고등학교 동기동창과 첫번째 결홍을 하고 2년만에 그를 떠나 마술사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결혼반지까지 내버린채 그를 떠나버리고 마술사는 미칠듯 그녀를 찾아 돌아와 줄 것을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 사랑은 짧은 사랑이에요"라고 결론을 내림으로써 그를 단념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그녀는 돈많은 홀아비와 다시 결혼식을 올립니다.
그런데 결혼식 날 당일 그 어떤 엄청난 후회가 밀려와 웨딩드레스 차림 그대로 마술사에게 돌아와 말합니다.
"사랑은 계속되는 한 영원한 것입니다"
그 후 그녀는 마술사의 보조 역할에 만족하면서 오로지 마술사에게 충실한 사랑을 베풀면서, 두 사람은 행복한 사랑을 영위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척집을 방문하고 남편의 마술공연시간에 맞추어 돌아가던중 그녀의 차가 고장나고 말았습니다.
공연시간은 닥아오는데 남편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는 그녀, 다행히 지나가던 버스의 운전기사의 동정으로 그 버스에 오르게 됩니다.
"내가 필요한 것은 전화뿐이에요."
그런데 그 버스는 정신병원의 버스였던 것입니다.?
졸지에 그녀는 정신병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버렸습니다.
지옥 같은 정신병원에서의 생활... 폭력과 동성애를 요구하는 여간수의 유혹과 거부, 그리고 여러 번의 소동과 감금...
한편 마술사는 여자가 사라진 그 날 오후부터 미친 듯이 여자를 찾아 헤매입니다.
마술사는 여자의 그 변덕스런 낭만이 다시 부활했음을 두려워 합니다.
여자가 자신을 떠나버렸다는 무서운 불안과 불타는 질투.... 여자의 정부로 의심되는 사람에게까지 전화를 해댑니다.
시간이 흘러 여자가 자신을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여자를 잊어버리기로 결심합니다.
한편 정신병원의 그녀는 천신만고 끝에 남편과의 통화에 성공합니다.
낮 익은 목소리.여자는 울음을 억지로 삼키고 마침내 "여보, 나예요"라고 말합니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리고 나서 들려오는 남편의 한 마디...
"개 같은 년!"
남편으로서는 그야말로 두번째의 개같은 경우가 아닐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나중 또 한번의 통화로 그간의 사정을 대충 알게 된 남편이 면회를 옵니다.
남편에게 전신병원의 원장은 진지하게 설명합니다.
여자의 상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갈수록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해 정신착란에 빠진다는 것...그리고 전화에 대한 이상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상하군요... 항상 과격한 성격이었어도 무척 자기 제어를 잘 했는데..."
"오랫동안 그런 행동이 잠복되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는 거죠. 무엇보다도 여기에 수용된 것은 행운입니다. 우리는 거칠게 다루어야 할 경우에 있어서는 전문가이니까요.">
마술사는 아내의 상태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남편과 함께 정신병원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기대한 여자의 절망감은...
"설마 당신도 내가 미쳤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은 당신이 여기에 조금 더 있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다는 말이야. 당신이 조금 더 나아질 때까지..."
"하지만 단지 전화를 걸려고 이곳에 온 것 뿐이라고 말했잖아요!!!"
'마르케스'의 '나는 단지 전화를 걸려고 왔을 뿐이에요'
우연의 아이러니...
이 또한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스며있는 서사인가...
카프카에스크(Kafkaesque, '카프카적'이란 형용사)?
우리 실존의 아이러니.
초현실적이고 부조리한... 카프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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