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꿈 속에서 만난 시인>
***동우***
2011.05.02 04:50
좀 전 새벽 꿈.
꿈 속에서 시인을 만났다.
최승자였는지, 전민선이었는지.
꿈 속의 詩는 관능이었던가 절망이었던가...
헐떡이며 꺠어났다.
존재를 극렬한 영혼의 통증으로 수렴하였던.
스스로도 낯설 몸뚱이마저도 날것의 감수성으로 꿈틀거렸음직한 두 시인.
최승자와 전미선.
최승자.
존재하지도 않는 시간의 뼈를 잘못 삼켜 컹컹거리는... 목숨은 처음부터 오물이었다는... 폐광처럼 깊은 꿈을 자고 싶었던... 절망 아니면 삶... 긍정과 부정의 궁극의 지점... 냉소와 염세... 절망과 악덕의 곡조로서 노래하였지만 번들거리는 징그러움으로 목숨만은 아름다웠던 시인.
<나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며/ 누구의 친구도 못된다. / 잡초나 늪 속에서 나쁜 꿈을 꾸는 어둠의 자손, 암시에 걸린 육신./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예요./ (중략) /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 내 슬픔의 독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 / 뱃속의 아이가 어머니의 사랑을 구하듯 / 하늘 향해 몰래몰래 울면서 / 나는 태양에의 사악한 꿈을 꾸고 있다.> - ‘자화상’ 최승자-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마른 빵에 핀 곰팡이 /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 너당신그대, 행복 / 너, 당신, 그대, 사랑 / 내가 살아 있다는 것, /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 한쪽 다리에서 찾아온다. /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廢水(폐수)가 /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개 같은 가을이’ 전문, 최승자-
저러 하였던 최승자, 작년인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하여 인터뷰한 신문 사진을 보니 많이 늙었더라.
새로 쓴 그녀의 시, 이제 옛날 독기 죄다 빠져 버리고.
나처럼 늙어 음전한 할마시 되어버렸고나.
전민선.
<저 년 좀 보소 / 흐드러진 단 속곳 / 저 허연 엉덩이 좀 보소 / 헐떡이는 사내 두어 놈쯤 / 식은 죽 먹기로 해치울 것 같은 / 막무가내 아랫도리 넉살 좀 보소 / 갖은 음전을 내어 / 제 깜냥 수즙은 척 / 구중의 음탕, 해 아래 다소곳하다 /아흔 아홉 / 비릿한 정념의 골창 / 한 줌 바람 한들한들 스치울적 / 입꼬리 말아쥐며 온 몸으로 헤실바실 / 으째쓰까나 저 잡 년, 도로 아미타불을> -‘에라, 도화’ 전문, 전민선-
<너 태초에 / 별리의 근원이었구나. / 그걸 아지 못하고 붉은 화냥기 도진 영혼이여 / 그곳은 눈물의 소금 밭. / 종자가 싹을 낼 수 없는 천형의 불모지라 / 신명 올라 점점 더 구성진 애먼 노래야 / 네 부정한 혀를 뽑아 인습의 염천에 사정없이 던지리니 / 벌의 계단에서 바람난 골수를 말려 별리의 마지막을 담담으로 기록하라 / 영문도 모르는 심정의 사랑초는 저리 다붓다붓 헤픈 요사(妖邪)를 치는데.> -‘丹歌’ 전문, 전민선-
이제는 세월의 뒤안길에서 손주를 안은 그녀, 오히려 이리도 소박하다.
그녀도 나처럼 늙어버린 것이다.
<그 여자, 햇살 바른 창을 열어 집 주소를 적는다. 손닿으면 만져 질 것 같은 하늘을 내려놓고 적는다. 한 자 한 자 한 획 한 획. 어느새 뼈와 피가 된 여정(旅程)을 촉으로 세워 경. 기. 도. 평. 택. 시. (후략) / (중략) / 못 견뎌 하면서도 이러구러 살아 견뎠던 어제의 방, 방들의 현란한 주소(住所) 들이여 춥거나 너무 더웠던 골목. 변죽의 바람들이여, 어제를 들어 담담히 내치는 어여쁜 치기야! 집 하나의 상념은 참혹과 비감의 긴 세월을 단박에 건너며 이리 기쁘구나. / (중략) / 그토록 소망한 넉넉한 창들의 집. 저무는 심정 (心情). 때늦은 기화요초 만발한 그 여자네 집.>-‘그 여자네 집’ 전민선-
으흠, 벌써 십년이 훌쩍 넘었구나.
그때 우리의 파토스는 어떤 색감이었을까.
<어제가 아니다 / 비로소 오늘이 되고 / 내일이 될 유장한 사연 / 물처럼 스미다가 / 잉걸불로 힘차게 타 오른 / 그윽한 사모가 내통한 / 묵언의 시간에 대하여 / 쓰고자함이 아니다 정녕 그게 아니다 / 열망의 정신을 가로 지르는 놀라운 저 힘 / 눈물로 녹여 먹던 그리운 불모 / 이제와 사랑아, 어쩌란 말이냐 / 다짐한 별리를 낸들 어쩌란 말이냐 / 망상을 나는 쓴다. / 멀어져, 기어이 닿기 위하여 / 지금은 견뎌 낼 재간이 없기에 쓴다. / 첫 기도처럼 / 그림자도 슬몃 거둔 채로 / 마지막 더운 피와 약속의 눈물로 쓴다. / 앓던 이 하나 솎아 내듯 / 간과로 차마 버릴 수 없는 뒤늦은 小夜曲 / 어제가 정녕 꿈이라 해도 오늘은 아낌없이 너를 받아쓴다. > -‘小夜曲’ 전문, 전민선-
정능의 어린 시절, 나는 잔인하였다.
덜여문 관능의 흉포함으로.
비온 뒤, 젖은 흙을 배로 기면서 꿈틀거리는 지렁이.
절망적 에로스의 징그러움은 매조히즘의 포름. 숨이 가쁘다.
그대로 벌건 속살일 지렁이의 몸에다 소금 알갱이를 뿌린다.
거세게 뒤틀면서 파닥이는 지렁이.
벌거벗은 목숨, 그 극고(極苦)의 몸부림에 희열하는 어린 사디스트.
낡이 밝았다.
꿈에서 벗어나니, 그 새 나는 나이를 먹어 버렸고나.
사디스틱한 희열 흐릿하여 그것은 아득하게 슬프다.
꿈이란 본시 리비도의 난삽(難澁)한 무엇임을.
그러나 꺠어난 생명의 실체란 이리도 명확하고 단호하다.
오늘 두 돌 맞는 우리 둘째손주 정민이.
섭리께 고개를 숙인다.
++++
***작은물결***
2011.05.02 20:40
민욱아빠님 블로그에서 보고 들렀습니다. 20대 때 최승자 시인의 강렬함에 빠져든 적이 있었지요. 만나보고 싶었던 시인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아무 얘기도 못 하고 그냥 얼굴만 바라보다 왔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동우***
2011.05.03 08:03
반갑습니다.
진작, 작은물결님은 가끔 민욱아빠님 댁을 통하여 엿보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네 샬로츠빌에 살다가 얼마전 귀국하신 것도, 민욱아빠님에게 선물한 핫소스의 매운 맛도..
특히 담백하고 세련된 수필쓰시는 작은물결님의 친정어머님. 누님하고 부르고 싶어지기도 하였답니다. (그러면 작은물결님은 내게 조카쯤? 하)
최승자시인의 강렬한 언어, 한시절 뉘에게나 핫소스와 같은 중독성있는 맛에 얼얼하게 취하고는 하였지요.
그런데 작년, 새 시집을 펴낸 인터뷰기사를 보니까 최승자에게서 매운 맛은 죄 증류되어 버렸더군요.
널리 읽히는 시인은 아니지만 전민선의 언어도 중독성있는 꽤 붉은 맛, 개인적으로 시인과의 기억이 있어 내게 더 붉은 맛으로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최승자와 전민선, 두 사람은 비슷한 또레일테지만 나보다는 다소 연하일 것.
그건 그렇고 ‘요리 못하는 뇨자의 꽃과 요리이야기’, 앞의 꾸밈말은 좀 모호한 듯, 허지만 역으로 작은물결님의 넘치는 자신감과 자랑스러움은 내가 알아서 느끼기로 합니다. ㅎ
책을 좋아하시는 작은물결님과 글쓰시는 친정어머님.
청컨대. 모녀 함께 책부족 동네 입주하심은 어떠하실지요.
추장님을 대신하여 정중히 초대합니다.
***┗작은물결***
2011.05.03 09:19
저희 어머님께 말씀드렸더니 하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당분간은 여러 사정으로 함께 하기가 어려울 듯 합니다.
책부족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동우***
2011.05.03 17:13
원로문인이시고 이미 여러권의 책을 쓰신. 작은물결님의 어머님이신 유지순님
함께 하여 주신다면 영광이지요.
‘책부족’. 연조(年條)는 올해 3년째 접어 듭니다.
가입은 무슨 조건이라기 보다, 하나의 약속입니다.
책을 읽고 글을 써 올리면 됩니다.
사전에 함께 선정한 한 달 한 권씩의 책 읽기. (지금은 주로 민음사간 세계문학전집이고 올해의 책은 이미 선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독후의 느낌(글)을 나누는 것이지요.
이것이 전부입니다.
유지순 선배님.
인생의 선배, 그보다 소담한 삶과 소박하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글을 영위하시는 참 미쁘신 모습이 책부족에게, 저에게 끼치는바 아름다운 영향 적지 않을 것임을 기대합니다. (인터넷 검색하여 선배님의 면모를 이모저모 뵈었답니다. 하하)
책부족 추장님의 안내 있을겝니다.
도리상영(倒履相迎), 버선발로 반깁니다.
***후니마미***
2011.05.02 21:35
궁금합니다
새벽 꿈에 만난 최승자인지 전민선인지의 시인과 무엇을 언제 어떻게 왜 하였습니까?
그게 도저히 궁금하여 ^^
댓글 이하 생략 !
***┗동우***
2011.05.03 08:10
어이구, 이 글읽고 급히 답글 답니다.
주책... 마미님 얘기듣고서 다시 읽어보니 얼굴이 화끈거리네.
사춘기 소년의 몽정을 들킨 것처럼. 하하하
그러나 마미님, 순전히 성적인 그런것 아닙니다.
꿈 속에 시인이 등장하기는 하였습니다.
문학적 감성의 교류에 파토스적인 측면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으나, 위에 있는 그녀의 일부 시어처럼 흐드러진 관능이 개입된 그런건 아니랍니다. 하하하
꿈.
후니마미님 익히 아시다시피 꿈이야 무언들 그리지 못하리까.
물론 검열과 압축과 치환을 거친 데포르마숑된 그림일망정.
어제의 꿈은, 최승자의 시어처럼 카오스적인 도취의 심연... 그래서 꿈에서 깨자마자 최승자가 떠올랐을 겁니다만.
지극히 감각적인 이미저리가 지배하는 꿈...뭐랄까... 혼돈과 도취와 관능과 이상심리와..왜 그런거 있잖아요?
섹슈얼한 이미저리와 결합된..그보다 더 추상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관망이면서 침몰하는...몽롱한 그런 느낌...
광고에서 ‘남자한테 참 좋은데.. 참 좋은데 이걸 뭐라 설명할수도 없고...어쩌구’ 하던데.. 하하
꿈에서 깨어나자.
‘아 오늘이 내 손주 생일날이로구나.’하는 생각이 퍼뜩 듭디다.
파토스의 세계에서 로고스의 세계로 급전직하.
몽롱한 별나라에서 노닐다가 땅위로 떨어진 느낌이랄까.
그래서, 단호하고 명확한 생명의 실체운운 하였던 것이고, 우리 손주 행복을 위하여 고개를 숙였던 거랍니다.
흐음, 나는 사람들이 글을 읽고서리 이런 내 느낌이 좀 전달되지 않을까 생각하였는데, 아니었구나.
내 표현력과 묘사력의 미흡함에 좀 절망합니다만, 주책스런 꿈을 꾸고 주책부린거 아니라는 정도만 헤아려 주시라, 친애하는 후니마미님이여. 하
이상 장황한 변명 끝!
***┗후니마미***
2011.05.03 09:08
내, 동우님을 이토록 좋아함은
동우님이 참 좋은 할아버지이기도 하여서.... 이옴.
손주 귀여워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특이한 것이지만은.
동우님 그 애정을 보면,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내 할아버지가 나에게 그러하기를 바라옵게되고
그리하였을 것 같은 오해가 듭니다.
손주의 생일이 퍼뜩 떠오르는 할아버지는
참으로 사랑스런 남자입니다 ^^( 제가 손주입장에서만 보더라도)
***린린할미***
2011.09.14 22:56
나린이와 하린이. 두 놈의 할미가 된 후 스스로 만들어 붙인 제 이름표입니다 그리고 다시 전민선 저 이름자를 도처에 흘린 죄조차 수습할 세월이 지났습니다,
나의 영화 편력기를 보며..그 아름다운 사유를 경외하며 울고 웃었던 것을 짝사랑 맹키로~들키지 않고 세월은 무장무장 흘렀습니다..
제 기억 속 늘, 무엇엔 서성거리시던 당신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으매도 불구하고 날마다 다 잊은 양 살았습니다. 제가 세상사 인연을 다 잊은 듯 사는 동안 내 영혼의 첫 연인^^콰지모도 당신은 다시 보아도 빛나는 문체들과 질좋은 마호가니 냄새가 물큰한 성소를 번듯하게 지어 올리셨습니다
달이 떴다고 제게 전화를 주시다니요. 라는 시인의 싯귀가 당신 사유의 장에 오버랩됩니다..무엇보다 저도 다 잊은 잡가들을 문단의 중추적인 시인 곁에 나란히 세우시다니요..^^제목만 보고 들었다가 화들짝 놀라는 밤입니다.
실은 저도 오늘 하루종일~~시월의 마지막 날쯤..이라는 부제로..꿈을 꾸었습니다 아이러니합지요~그러나 제 꿈은 두 눈 멀쩡히 뜨고 꿈 꿈입니다요~더더구나 오직 한 사람만 등장인물로 섭외를 했구요..^^
손 한 번 안 잡고도 연분홍 사족을 달아 저자에 내어두신 저의조차 흔쾌히 주억주억 하며 다녀갑니다 꿈일망정...내 영혼의 멘토와의 해후..^^시월의 마지막 밤을 예약하면서..^^
굳이 자물쇠를 잠그려고 한 것이 아닌데 콱-잠겨 당최 열리질 않습니다..벼라별 짓을 다 혀도~~
***┗동우***
2011.09.15 04:30
이게 누구랴.
전민선, 아니 린린할미님.
세월 <무장무장>흘러, 까맣게 낯선 이름 콰지모도.
린린할미님 이렇게 불러 주시니 홀연 콰지모도는 소롯이 내 이름으로 되살아 납니다그려. 외딴집나무님도 함께.ㅎ
나린이 하린이, 이쁜 이름의 두 외손녀(맞지요? 아드님 용수는 아직 미혼?) 거느린 린린할미님 되어.
나도 두 외손녀 정빈이 정민이 두었지요.
'린'은 기린 '麟'자 인가요? 젊은 날 전혜린 때문이었는지 괜히 기린 '麟'자가 좋아 나도 내 딸, 정빈에미 이름을 수린(秀麟)이라고 지었답니다. 하하
린린할미님.
한번 시인은 평생 시인이라는데, 그 붉은 언어들 안에서 들끓어 시 안쓰고 어쩐대요? 그래.
내게는 아직도 전민선의 시는 최승자에 조금도 못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 최승자의 시에게서는 그 처연한 붉음 죄 증류되어 없어져 버렸더군요.
KTX 평택 지날적마다 휴대폰 만지작거렸답니다.
대신 오래전 변죽만 올리신 부산방문.
언제라도 환영합니다.
쐬줏잔이라도 나누며 옛 이야기 합시다.
이렇게 오셨으니 이제 자주 오셔야 하우. 린린할미님.
차츰 이야기 나눕시다.
콰지모도와 동우, 외딴집나무나 도깨비풀이나 린린할미의 얘기들.
정말 반가워요. 린린할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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