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여자의 일생 (1,4,3,3)

카지모도 2019. 10. 1.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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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여자의 일생>

-모파상 -

 

***동우***  

2014.05.12

 

'기 드 모파상' (Guy de Maupassant, 1850~1893)의 대표적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 (Une Vie:1883)을 연재합니다.

10회 정도로 나누어 질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발표 당시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은 모파상의 걸작일 뿐만 아니라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후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품일 것이다>라고 하였고철학자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라는 저서에서 독일의 문학자들을 악평한 후 프랑스의 문학가를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모파상을 그 중 뛰어난 천재로 손꼽기도 하였다는군요.

 

다시 읽어보니모파상의 필치가 절묘합니다.

처녀의 희망과 동경설레임이 모파상의 고향 노르망디의 자연과 풍속에 녹아서 저토록 영롱합니다그려.

 

<잔느는 행복으로 미칠 것 같았다만물의 눈부신 아름다움 앞에서 넘쳐 흐르는 즐거움과 무한한 감동이 그녀의 마음을 적시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그것은 그녀의 태양이었다그녀의 여명이었다그녀의 생의 시작이었다그녀의 희망의 눈뜸이었다태양을 포옹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는 빛나는 우주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그녀는 이야기하고 싶었다이 하루의 탄생과 같이 숭고한 그 무엇인가를 외치고 싶었다.>

<그분은 정말로 수많은 비밀의 음성으로 약속하고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신 하느님이 자기의 길에 이렇게 던져주신 바로 그 남편일까그분은 자기를 위해 창조된 존재며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일까자기들은 서로 합친 애정으로 서로를 포옹하고 떨어질 수 없이 얽혀 들면서 사랑을 낳게 될 그런 숙명적으로 선택된 두 사람일까?

그녀는 아직도 자기 마음의 혼란스러운 충동과 미칠 듯한 황홀감자신이 열정이라고 믿고 있는 심오한 격동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그러나 그녀에게는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같이 여겨졌다왜냐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 온통 기운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가끔 느꼈기 때문이다그녀는 줄곧 그에 대한 생각을 했다그가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그의 시선과 부딪치면 얼굴이 붉어졌다창백해지고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떨렸다.그녀는 그날 밤에는 아주 조금밖에 자지 못했다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랑하고 싶다는 유혹적인 욕망이 더욱더 그녀를 사로잡는 것이었다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거나또는 데이지 꽃이나 구름 또는 동전을 공중에 던져 물어보기도 했다.>

 

처녀여.

너를 그토록 연분홍빛 사랑으로 설레이게 하는 정체가 무엇이뇨?

남자를 향하여저토록 아프도록 슬프고 아련하게 몽롱한 뭉개구름처럼 일어나는 감정은 어디로부터 비롯되는겐지.

저 아득하고 신비로운 우주에서 쏘아진 큐피드의 화살때문인가.

섭리가 육체에다 심어놓은 옥시톡신이라는 호르몬의 작용때문인가.

 

그러나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사랑이란 무조건적 행복의 씨앗인가.

여자의 일생.

좌우당간 남자 잘 만나야하지...

여자팔자 되웅박팔자라 하지 않던가요....

 

1960년대 이 영화를 보았는데 아무리 검색하여도 나타나지 않네요.

잔느 모로가 출연하였던가, ‘부산극장인것 까지도 기억에 선명한데.

 

<이미자의 청승맞은 노래 '여자의 일생'>

참을수가 없도록 이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때문에

말한마디 못하고 헤아릴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그러나.

여성제위여.

그대의 천부적 아름다움과 이브의 지혜로써 모쪼록 찬란한 일생 누리시기를.

그라시아스 알라 비다 (Gracias a la Vida)’를 노래 하기를.

'인생이여고마워요'라면서.

 

***eunbee***  

2014.05.12

 

열일곱이제 막 수도원 부속 학교의 분위기에서 벗어난 순결한 처녀잔느.

그녀의 사랑에 대한 꿈과 상상과 열망은 사뭇 고전적이네요.

요즘 젊은 애들그런 순수한 세상을 상상이나 할까요.

너무도 되바라진 세상더러는 싫증이납니다내 이 나이에도.

 

흰새의 그림자가 설핏 스치는..

새들은 그림자로 날아다니는...

그런 표현 참 좋답니다.

 

모파상 아저씨는 참으로 순수무구한 영혼이었던가 보아요.

처녀의 사랑에 대한 상상이나 꿈도 저토록 아름답고 순결하게 꾸게 만드는걸 보면..ㅎㅎ

 

그러나신혼 초야부터 잔느의 그 유리알같은 사랑에 대한 몽환은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네요.

안타까워요내가 왜 이리도 안타까운지.

 

아침 소설읽기속도 진도 맞추어서 따라 잡아야죠요즘 좀 뒤쳐져 있었거든요.ㅋㅋㅋ

고맙습니다동우님.

더구나 이 소설의 이번 회차에는 내게 눈익고 귀익은 지방이며 풍광이며를 그린 것이라

더욱 마음에 짙게 스며들게 읽혀졌습니다.

 

[수평선 쪽으로 낮게 드리운 하늘은 태양과 섞여 있었다육지 쪽으로 높게 깍아지른 절벽은 그 발치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햇빛이 가득한 잔디밭 언덕은 군데군데 초승달처럼 패어있었다거기에서 뒤쪽으로 누르스름한 돛들이 페캉의 한 방파제를 빠져 나오고 있었다그것은 에뜨르타의 작은 문이었다.]

며칠 후 이곳을 가게 될 듯해요지금의 계획대로라면.

 

오늘도 아침에는 '아침해가 떴습니다.~'로 시작되었으나지금은 구름 잔뜩 이따가는 소나기 혹은 여우비가 내릴지도 몰라요.

이곳 날씨 매일 그러하답니다요즘.

 

따스한 오후 되세요동우님.

 

***동우***  

2014.05.13

 

은비님댁 그림으로 접하는 파리의 빨레 가르니에.

피나 바우쉬의 오페라 발레가 공연되기 전에 벌써.

무대에 드리워진 진홍빛 주단 장막의 묵직한 예술성에 압도됩니다.

극장에 들어서는 것 자체가 감동과 럭셔리한 행복감...

 

애시당초 무엇 하나 맞지 않는 커플잔느와 줄리앙.

모파상 아저씨가 잔느를 저토록 자연 속의 순결한 요정같은 감성적인 처녀로 그린 것은 줄리앙이란 속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종의 컨트라스트였을터이나묘사가 참 아름답지요?

 

그렇지만 뒤로 갈수록 抒情은 사라지고 건조하고 메마른 서사만 가득합니다.

가엾고 비참한.

 

좀 전 썼는데설명불가능한 사랑이라는 것과 설명 가능한 증오라는 것.

로맨티시즘과 리얼리즘..

 

따님과 프랑스친구들과 함께 가는 노르망디 여행.

모파상이 묘사하는 이 소설의 분위기를 좀 느끼실테지요.

코르시카는 이번 체류중 계획에 없으신지오늘 연재분에 나오는데.

이미 가보셨을테지만.

 

변덕심한 파리 날씨,

감기조심 하세요.    

 

***eunbee***

2014.05.13

 

오늘 올려주신 오늘분의 글 방금 읽기를 마쳤어요.

신부님의 판결?에 수긍하는해야만하는 남작의 입장도 남작부인의 태도도 기막혀서 누워 읽다가 벌떡 일어나 앉았어요.

그 시대의 남자들의 문제보다 그 시대에 그들의 통념이 분개할만한 일이라서.

가여운 잔느.

이제 어쩐대요.

이 소설 분명 읽은 소설인데 구체적인 것이 전혀~까마귀이니 아니 읽은거나 같지요.

 

코르시카.

올해의 여행은 코르시카로 가자했더니 은비아빠가 출장 다녀왔는데 거칠고 볼것이 없다더라고안달루시아 지방이나 한번 더 가자고 잠정 결정했었어요.

그러나 아직 아무데도 가지 않고 있네요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일부를 한바퀴 도는 여행

기대가 넘치기는 해요.

감기 조심해서 여행 즐겁게 해야겠지요?

고마워요동우님~!

 

폰타용서하세요^^

동우님의 멋진 하루!

 

***동우***  

2014.05.13

 

우리 어머니들과 아주머니들과 누이들과 딸들.

여자의 일생을 다시 읽으려니 콧등이 아리고 가슴이 쓰리다

 

<설명이 가능한 증오와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

글로리아 네일러의 소설 브루스터 플레이스의 여자들에 나오는 문장인데 절창(絶唱)으로 마음에 담긴 말이다.

설명이 불가능한 사랑 설명이 가능한 증오로 온통 짜 들어간 그물에 걸려서 무엇 때문에하고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의문 속에 지속해 가는 부부라는 관계.

최초에물질이거나 용모이거나 섹스이거나 패션감각이거나 성품이거나 말씨거나 매너거나 좌우지간 무언가 서로들 끌림이 있길래들 좋아하고 결심하여 결합하였겠지.

그 몽롱한 끌림을 이를테면 사랑이라고 하자설명은 불가능 할테지만.

<시간이 지났다그리고 그녀(시엘-소설속 등장인물)는 생각했다사랑에 대하여는 이제는 아무 느낌이 없다고.

그리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당신을 증오하기 시작할 거라고 내 분명히 약속하겠어당신을 증오할거야그리고 당신에 대한 증오를 더 빨리 시작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거야.”>

 

사랑은 설명이 불가능하지만 증오는 그러하지 않다.

로맨티시즘은 몽롱한 도취이지만 리얼리즘은 냉혹한 현실이다.

잔느에게 끼쳐지는 줄리앙의 두 모습도 처음에는 사랑이었고 나중에는 증오와 혐오였다.

비열함과 천박함과 이기심과 물질주의로만 뭉쳐진 줄리앙의 저 야비한 속물은 이제 추상이 아니다.

우뇌의 파토스는 설명할수 없을지라도 좌뇌의 로고스는 확연하다.

 

남작은 남성성의 속성으로서 억지로 이해하는 척해야 하고 잔느는 잉태한 아이로 인하여 남편짜리로서의 존재를 포기하지만 상황을 받아들인다.

선택한 것에 대한 시대적 환경적 제도적 실존의 슬픈 책임일터이지만저 구제불능의 줄리앙이라는 인간 (뒷편에서는 온갖 속물 진상을 다 떨다 살해 당한다)이 밉고잔느가 가여워 마음이 아프다.

여자의 일생그 비극성을 묘파하기 위한 모파상의 소설적 과장일 것이다.

설명할수 없으니 그 사랑이란 놈은 가뭇 사라졌겠으나더붙어 생활하는 가시버시 24시간 시종일관 정서적생활적 교감이 전혀 없지는 않을 터인데 둘의 관계를 너무 절망적으로 그려 놓았다.

 

거나한 酒席에서 서로 토로한적 있었다.

오랜 연애기간 거쳐서 잉꼬 금슬을 자랑하는 부부라도 별수 없더라.

어느 순간배우자의 얼굴이 너무나도 생경한 낯선 얼굴로 비추어져서 소름이 돋는다는 경험.

누구보다도 익숙하고 편안하였던 얼굴이 어느 순간 홀연 낯설고 천하 못난이 얼굴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상대의 감정이나 고통에 대하여 눈꼽만치의 이해도 거부하는 까마득한 빙벽.

정서적 교류의 절망적인 단절감순간적인 기분학상의 문제일 것이다.

생각건대 이른바 부부싸음이란 그 기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 기분에 마냥 매몰되었다가는 완전하게 이성을 잃을수도 있을런지 모르겠다.

생활이고 장래고 아이들이고 나발이고 모두 카오스로 몰아가기 십상이라던가.

 

빙벽이 되는 배우자의 얼굴그것은 상대에게서만 문제를 찾는 눈길이 포착한 얼굴이다.

자신의 마음은 설명 가능한 증오로 꼭꼭 걸어 잠구어 둔채로상대의 얼굴에게서는 설명 불가능한 증오만을 받아들이는 것.

외눈박이의 눈길.

복잡다단한 요소로 점철된 현대의 가정생활서로 전혀 다르게 성장한 인격이 어울려 오죽이나 삐걱거림 많으랴.

경제와 취향과 성격과 버릇과 자식양육에 이르기까지.

 

눈물겨운 참음과 피나는 노력과 머리에 쥐나는 지혜로움으로 조화를 궁구할수 밖에는 없다.

빙벽의 얼굴이 연민의 얼굴에 이르도록.

 

빙벽의 얼굴로 부터 벗어남이 일견 시원 깨끗할듯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이 삶이고 혈육에 대한 의무가 있고어쩌면 오히려 그것이 삶의 기쁨일수도 있겠다.

자식에 대한 저 맹목의 사랑으로 함께 불행으로 일생을 사는 잔느줄리안의 빙벽의 얼굴을 극복하지 못한 탓도 적지 않다.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주는 결정적 요인은 정서적 교류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다.

 

순간의 기분에 속지 말라.

자기강화(自己强化)에 매몰되지 말라.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도입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

수천년 결혼제도를 유지해 온 인류의 지혜가정이 행복한 이유는 보편적이고 편만한 것이다.

상대에게서만 혈안이 되어 문제를 찾지 말고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자기강화(自己强化)를 부드럽게 하는 것.

그러나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 이유가 다르다.

오만가지 기분에 속은 오만가지 종류의 자기강화(自己强化)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루한 60대 늙은이로다.

그러나 한줌 노마지지(老馬之智)없으랴.

 

애초부터 진짜배기 사랑으로 시작하여 죽을때까지 화목하게 살다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것.

안이고 겉이고 두루두루 딱 들어맞는 궁합의 짝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인생의 행운인가.

단언컨대 이것은 인생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포크 포인트이다.

 

물질이나 용모와 같은 외형적인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오히려 중요한 것은 내면적인 것을 맞추어 보는 것이 아닐까.

몽롱한 사랑에 기댈게 아니라우리 비니미니 결혼할 때 즈음에는 과학적 방법론이 개발되어 모든 커플은 결합되기 전 반드시 그 프로세스를 거칠거라고 나는 믿는다.

혈액체질유전자기질검사... 감성 테스트취향테스트심리테스트버릇테스트성격테스트..좌뇌 우뇌의 뇌파분석..

설명할수 없는 사랑그것 때문에 절망하여 스스로 파멸하는 잔느와 같은 비극이 없어지리라는 기대.

후제에는 그런 과학적인 방법으로 완벽한 짝들 만나 천년만년 행복들 하거라아기들아.

 

여자의 일생,

지혜롭지 못한 사람에게 메일 보내주신 익명의 분이 계셔서 횡설수설하였습니다.

 

'모파상' '여자의 일생'

10회가 아니라 6번 정도면 되겠네요.

 

***동우***

2014.05.14

 

여자의 일생이 슬프다면.

'여자'(女子)라는 것과 '여성기'(女性器)라는 것.

슬픔이 깃든 것은 어느 쪽일까.

 

<남의 집에서 잉크를 엎질러 양탄자를 더럽혔다면 미안할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을터인데 여성은 월경으로 시트를 더럽히면 왜 부끄러워 하는가여성의 기관들을 만들어낸 게 여성의 책임인가책임감은 부끄러움과는 전혀 무관하다수치(羞恥)는 우리가 범하는 어떤 실수에 바탕을 두고 있는게 아니라우리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현재의 우리가 되어 있다는 데서 느끼는 모욕감더구나 그 모욕이 도처(到處)에 보여진다는 데 대한 견딜 수 없는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밀란 쿤데라->

 

마음속을 가로지르는 환희갓 피어난 새로운 행복을 향한 도약억제할수 없는 환희..어머니가 된다는 것.

 

에로스그 수동성(受動性)의 쾌락이 모성(母性)을 잉태함인가.

환희하는 모성(母性)에는 슬픔 한조각 안고 있지는 않은가.

 

자궁(子宮).

그게 어쩌면 슬픔이다.

 

모성과는 색감이 다른 부성(父性)이라는 것은 그리하여 페니스에 근거함일까.

왜 페니스는 그토록 단순하고 직유적일까.                                                                       

[줄리앙은 빽빽 울어대고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이 폭군의 출현으로 자기의 지배력이 축소되고 그의 습관이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집안에서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는 이 조그마한 인간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질투를 느끼며 "저녀석 때문에 정말 견딜수가 없군!"하고 참을성 없이 화를 내면서 쉴 새 없이 이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아버지가 된다는걸 성가시게 여기는 남자도 없지 않겠지만 줄리앙이라는 사나이는 심하다.

명색 자작이라는 줄리앙 저 새끼의의 저 치사함과 비열함과 야비함은 함께 거()하는 남작도 남작부인도 여실하게 목격하는 바이지만그러나 그들은 결코 그것을 화제로 삼지 않는다.

웃을 뿐이다.

 

잔느는 줄리앙과 백작부인의 불륜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한 책임이고 여성성으로서의 자존이다.

이미 남편이란 존재는 질투와 증오 그리고 에로스의 대상조차도 되지 않는다.

다만 아내로서 참고 수렴해야 할 자신의 업()일 뿐이다.

어머니의 은밀한 비밀을 아버지가 알까봐 그 비밀을 불사르는 잔느.

모름지기 잔느네가 진짜배기 귀족들이다.

 

'싫다싫다정말 싫다!' 하여도 살아지는게 목숨이고 그게 목숨의 슬픔이다.

귀족이라고 다르랴.

 

***동우***  

2014.05.15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줄리앙의 가슴에 쓰러졌다그녀는 그것을 역겹고 고통스러운 필요로써 감내했으며다시 임신했다고 느껴지면 그때부터 영원히 그 관계를 그만둘 결심이었다그녀의 목덜미에 거만한 키스를 했다오열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잔느의 저 굴욕에 나는 혀를 찬다.

'배설(排泄)을 위한 섹스' '생식(生殖)을 위한 섹스'.

둘은 동전의 양면회임(懷妊)을 내포하여 양성(兩性)이 함께 기쁨을 누리라고 섭리가 베풀어주는 쾌락이다.

한 쪽의 섹스가 오만해야 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

그런데 형편없는 저 인간줄리앙의 거만함이라니.

차라리 잔느는 씨좋은 외간남자와 바람을 필 것이지쯧쯧.

 

으흠옆길로.

무슨 근거로 페니스가 자궁보다 오만해야 하는가.

남자가 여자보다 힘이 센 것이 근거인가.

그래서 지배하려 하는가.

21세기 요즘에 이르러서도 세상에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도 없지 않다더라.

그 못나빠진 원시적 몽매함.

그 어떤 계몽으로도 깨우칠수 없는.

 

노르망디에 봄이 왔다.

봄이란무릇 자웅(雌雄)은 조화로이 사랑하고 서로로써 행복하라는 축복이다.

 

모종의 사안 때문에 블로그 나들이서껀 두루 게으릅니다.

그렇지만 예약등록하더라도 리딩북은 쉬지 않겠습니다.

 

***동우***  

2014.05.16

 

아버지와 남편과 자식.

 

여자팔자.

아버지가 운명론적 팔자이고 남편이 선택론적 팔자라면 자식새끼는 무슨 연()으로서의 팔자일까.

시대여자의 삼종지도(三從之道)

그에 따른 팔자는 동서가 진배없는 모냥이다.

 

잔느의 비극성은 그녀가 지닌 섬세한 감성과 연약한 성격에 기인하는 바 크지만귀족이라는 덕목의 자의식적 굴레도 컸다고 생각된다.

모든 귀족들이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그녀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온실 속 화초의 덕목이다.

상황에 대처할 적극적 의지도무언가 결단할 용기도 없다.

'좋은게 좋은거지'하는 온실(신앙이라거나)의 안일함 속으로 늘 도망가 숨는다.

 

남편이 죽고나자이 답답한 여인은 남편을 용서하고 그로 인한 자신의 고통을 용서한다.

그리하여 자식에게 맹목적이고 동물적인 사랑을 투사한다.

그리하여 외아들 폴을 반푼이로 만들어 놓았다.

잔느는 오로지 팔자에 순응하고 운명에 순치(順治)되는 여인이지만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옛 하녀 로잘리(참 의리있는 여성)를 반의 반만큼이라도 닮았더라면 잔느의 비극은 진작 종식되었을 것이다.

만일 줄리앙이 평민이었고 로잘린의 남편이었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상정해 본다. (자신은 명색 귀족이므로 잔느에게는 외양이야 매너갖춘 신사 꼬라지였을테지만그가 만일 농투산이 상놈이었다면)

로잘린은 대차고 영리한 여성인지라지지리 못나빠진 줄리앙은 자신의 어리석음의 반작용으로 폭력을 휘두르면서 로잘린과 가정을 지배하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잘린은 분연하게 그와 결별하고 폭력가정으로 부터 자식을 지켜내어 ''과 같은 자식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파상의 부정적 종교관이 엿보이는 광신도 '톨비악 신부"

Sicut leo rugiens circuit quaerens quem devoret (먹이를 찾아서 포효하는 사자처럼)

나는 또한 그에게서 못나빠진 페니스 우월주라는 감정모체의 원형질을 본다.

나의 비약그의 공격성의 대상은 불신자가 아니라 저보다 약하고 못하다고 관념하는 여성성일수도 있다.

그가 사제가 아니라 범부였다면 틀림없이 자신의 여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정신질환자가 되었을 것이다.

 

21세기의 잔느여.

그대스스로 해방하라.

 

***동우***  

2014.05.17

 

[25년 전부터 그녀의 위대한 이웃소금기 있는 바람과 분노포효하는 목소리강력한 숨결을 가진 바다매일 아침 레 푀플의 창에서 바라보던 바다그녀가 밤낮으로 들이마시던 바다그녀 가까이에서 느꼈던 바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을 사랑하듯 사랑하기 시작했던 바다.]

 

노르망디의 절벽과 바다.

몽생 미셀생 말로브루따뉴...

어저께노르망디 지방을 여행중인 친구가 보내준 그림같은 풍경화.

거기 잔느의 슬픔은 배어있지 않았는데.

 

설명할수 없는 사랑과 설명할수 있는 증오.

생물학적 여성성의 슬픔.

아무런 근거없는 남성우월주의성차별과...이별과 죽음과.

 

이제는 자기들의 시대가 아닌 시대 속으로 추방되어진 것같이 보이는 그런 먼지투성이의 물건들을 버리지 못하는 잔느.

잔느는 유아적집착(infantile matrix)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린애같은 여인입니다.

 

잔느의 일생.

슬픔과 불행과 정면 대결하여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는 용기 한줌 품어보지 아니하였지요.

잔느의 비극의 본질은 그곳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모파상은 1892 1 2일 밤 갑자기 목을 끊어 자살을 기도했으나 미수에 그치고 파시의 정신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듬해 7 6일에 정상적인 정신으로 돌아서지 못한 채 4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몽파르나스의 공동 묘지에 매장되었다고 합니다.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조회수 많아 기뻤어요.

함께 읽어주셔서 고마웠습니다리딩북 독자님들.

 

로잘리의 말.

"인생이란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니지요."

 

그런가여인이여.

나보다 많이 살아보지 못한 로잘리세상 다 살아본듯 지껄이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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