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아베일족 (阿部一族)> -其1- (1,4,3,3)

카지모도 2019. 10. 1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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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아베일족> -1-

-2015 5 17일 포스팅-

 

책부족 4월의 책, '모리 오가이'의 소설집 '아베일족(阿部一族)‘.

 

모리 오가이(森 鷗外, 1862-1922)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더불어 일본문학의 여명을 밝힌일본서는 문호(文豪)로 칭송받는 작가이다. (의학박사로 고위직 관료인 육군군의감을 역임하였다.)

'모리 오가이'를 대하는 책부족 추장님의 소회를 옮겨온다.

<한국 근대문학 효시로 일컬어지는 이인직의 혈의누와 일련의 신소설들은 고대소설의 운문체에서 벗어났고국한문 혼용체를 썼으며 고대소설과는 다르게 자주의식과 개화사상을 담고 있었다그러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신소설은 근대문학과 고대소설 사이에 과도기 소설이라는 꼬리표도 붙는다권선징악의 천편일률적인 주제는 고대소설 이야기 내용과 바를바 없었고 구시대적 가치관의 극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리 오가이의 책을 읽으면서 이 작가의 천재성에 놀라면서 동시대의 한국문학은 어떠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그의 첫 소설 무희가 1890년에 발표 되었을 때 우리나라의 문학은 고작 위에서 말한바 신소설의 단계 접어들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외국어에 능통한 그가 파우스트를 번역하고 외국의 문학과 예술을 일본에 소개했다는 것 또한 부러운 일이었다... 메이지 유신으로 보다 더 일찍 서양의 문물과 문화를 받아 들이고 소화해내며 자기 것으로 만들고 있던 일본에게 있어서 모리 오가이와 같은 천재가 나왔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동시에 또한 행운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모리 오가이 개인은 자신의 갖고 나온 천부적 재능을 그만큼 만끽한것 같지는 않다주위의 기대에 따라 의사와 관리가 되었고 집안에서는 효자였지만 죽음에 이르러 묘비명에는 어떤 관직명도 적지 못하게 한 일은 그의 내면이 자유를 갈망하는 한 인간이었음을 시사한다작가로서의 모리 오가이는 그래서 더욱 존경스럽다.>

 

모리 오가이의 이 소설집에는 '아베 일족'외에도 '무희' '기러기' '다카세부네'등 총 4편의 중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남녀의 미묘하고 섬세한 애정심리와 일본적 풍취(風趣)를 정치(精緻)하게 교직한 애잔한 사랑이야기인 중편소설 '기러기'.

드라마틱한 전개나 애정극다운 뜨거운 자극없이도 은은한 풍미가 넘치는 소설이었는데그 세련된 필치는 현대적 감각으로도 전혀 손색이 없게 느껴졌다.

추장님 말마따나 그는 천부적 재능의 문학가였다.

 

아베일족은 내게 쇼킹하였다.

두루 친애하는 일본에 대하여나름 진지하게 궁구(窮究)하지 않으면 안될 듯한 절실함...

내 독후감은 '아베일족'에 집중하려 한다.

생각이 정리되는 만큼씩 나누어 좀 길게 지껄일 참이다

 

'아베일족' 17세기초 일본 구마모토 지방의 한 무사 집안이 멸망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역사소설이다.

일본식 자결방법 셋부꾸(切腹)

이 소설에 나오는 셋부꾸(切腹)는 그 동기와 실행에 있어서 그간 접해왔던 것들과는 사뭇 다른 충격을 주었다.

소설이나 영화로 접하였던 할복은 픽션의 상상력이 자아낸 일종의 미학적 감동같은 것이 없지 않았는데 '아베일족'은 그게 아니었다.

주군(主君)이라는 명목의 한 사람이 죽으면 그를 따라 앞다투어 죽어야 하는...

그 순사(殉死)라는 것에 대하여 내 정서는 소름이 돋았다.

작가가 시종 냉철한 서술태도를 견지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

그 사실성으로 인하여 더욱 끔찍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1912메이지 천황이 죽자 러일전쟁의 영웅 노기대장 부부는 천황의 죽음을 뒤쫓아 자결하였다.

그 죽음이 이른바 순사(殉死)였다

노기대장의 순사는 '아베일족'에 나오는 순사와는 다른여러 의미에서 명분과 당위가 없지 아니하다

새로운 시대를 맞으면서 낡은 역사적 책무를 안고 한 시대와 함께 스러지고자 하는 결연한 마음...

노기대장의 순사가 동인이 되어 '모리 오가이' '아베일족'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나쓰메 소세키'는 소설 '마음'에서 주인공인 선생의 자살의 중요한 모티프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아베일족' '마음두 소설은 색감과 결을 달리하는 소설이었지만,  느끼건대 두 소설가에게 '노기대장의 셋부꾸'가 부정적 동인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다.

'미시마 유키오'처럼 적극적인 열망은 없었더라도 두 작가의 의식 속에는 노기대장의 셋부쿠를 하나의 의기적(義氣的)인 행위로 인식하는 바가 없지 않은듯 하였다.

 

일본의 전통사회에서 지배계급인 사무라이.

그들이 관념하고 심득(心得)하고 체득(體得)하여 편만하게 관습화된 죽음의 형식인 할복

명예라거나 체면이라거나 분수라거나 염치라거나..

그런 무형적인 이유로 지극히 주관적인 인식 하에 스스로 행위하는하라키리(腹切또는 셋부쿠(切腹)라 불리우는 죽음의 형식

그건 목구멍이나 관자놀이에다 대고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순간적으로 맞는 죽음이 아니다.

자신의 배에 칼을 쑤셔박아 살을 가르고 내장을 쏟아내면서 극렬한 고통 속에서 엄청난 극기(克己)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도달하는 죽음이다.

미증유의 고통 속에서 그들이 기대는 것은 오로지 한가닥 명예로움과 한조각 자부심 뿐이다.

 

반듯한 하나의 틀에다 주저없이 자신의 실존을 예속(隸屬)시켜 죽음을 감행하는 그들.

내가 아지 못하고 도달하지 못하는인간성 속에 숨어있는 어떤 엄혹하게 단정한 부분.

필경 문학적 상상으로 겪는 탐미적 오르가즘같은.. 로맨티시즘이거나 센티멘탈리즘에서 비롯된 감동이었을 것이지만 전에 나는 그것이 신비하고 아름다워 보였던 것이다.

'모리 오가이' '사카이 사건', '미시마 유키오' '우국', 영화 '최후의 추신쿠라'등을 블로그에 포스팅하였거니와여러 일본 역사드라마나 소설과 영화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익숙하였던 그 죽음의 형식미

 

전에 나는 무엇에 사무쳐서 이렇게 지껄였을까.

<저 형식의 아름다움 앞에서 내 로고스는 진부해진다두리번 두리번색목문명(色目文明)에 자아는 어지럽다방기하여 어지러운 삶과 형식하여 단정한 삶무엇이 아름다운가무엇이 충일한가새삼 느끼건대나의 내면에는 형식이 없다나의 비극이다.>

 

'아베일족'은 사실성과 역사성이 조화를 이루어 역사소설의 모범이라는 찬사를 받는 소설이다.

해설을 보니 작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사료(史料)를 조사해보고 그 안에 엿보이는 '자연스러움'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그것을 외람되이 변경하는 것이 싫었다....또한 현재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적는 것을 보고 과거의 일도 그대로 적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사적 사실의 자연스러움... 과연 그러하였다.

작가가 담담한 어조로 써내려간 역사적 사건에서 소설적 작위나 과장의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디테일에 있어서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픽션화한 부분이 있었을 터인데한편의 다큐멘터리처럼 관찰자의 입장으로 묘사한 서사에서는 그런 가공화된 뉘앙스는 느낄수 없었던 것이다.

작가의 판단이나 호오(好惡)의 감정을 조금도 노정시키지 않고마치 어떤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기사(記事)처럼.

그러한 작가의 엄정한 집필태도가 오히려 무서운 리얼리즘으로 이 이야기를 내게 충격으로 던져주었다.

그러므로 이 소설에 대한 내 어쭙잖은 잡설은 작가와는 상관없는 오로지 내 생각임을 분명히 한다.

 

소설의 무대는 규슈 중앙에 자리잡은 구마모토(熊本)였다. (아주 오래전 가보았던 구마모토성은 아름다웠다그리고 소설의 한 대목에 전설적인 검객인 '미야모토 무사시'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깜짝 놀랐다검색하여 보니 미야모토 무사시가 마지막 몸을 의탁한 곳이 구마모토의 '호소카와가문이었고 그곳에서 '오륜서'를 썼다고 한다.)

구마모토의 다이묘(大名) '호소카와 다다오키', '아베일족'의 이야기는 그의 죽음을 전후하여 비롯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고 처음으로 알았다.

섬기던 주군이 사망하면 은혜를 입은 가신(家臣)은 순사(殉死)하는 것이 그 시대 일본 계급사회의 불문율이었다는 걸. (패전이나 실책에 대한 책임억울함에 대한 호소절실한 간구나 충절 따위로 인한 하라키리가 일반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때로 주군을 사모하는 의리와 의기로서 자결하는 경우는 들어본듯 한데은혜를 입었다고 생각되어지는 (스스로 그렇게 느끼거나 주위에서 그렇다고 인정되는가신(家臣)들의 도식적(圖式的)인 죽음

 

으흠순사(殉死)라니!

우리나라 고대국가 가야의 순장(殉葬풍습은 5세기 쯤이라지만이것은 임진왜란이 종결되고 난 후인 17세기 근세 일본의 이야기다

스스로 결행하여 자결하는 순사(殉死)와 강제로 무덤에 파묻혀 죽임을 당하는 순장 (김훈의 소설 '현의 노래', 가야의 순장모습)이 같지 않다고 말하려는가.

능동태인 순사(殉死)와 수동태인 순장(殉葬)..

스스로 행하는 것과 강제적으로 당하는형식은 다를지라도 그 감정모체는 동일한 것으로 말한다면 그들에게는 모욕이런가.

 

어쨌거나.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죽음을 따라 여럿의 가신(家臣)들이 셋부쿠로 자결하였다.

그런데 그 순사도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라 생전(生前)의 주군으로 부터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다이묘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허락을 얻어 따라 죽은 사람이 18명에 이른다. (아베 야이치에몬 까지 합하면 19)

 

'당신이 죽으면 나도 따라 죽고자 하니 제발 허락하여주십시오.'

자신의 죽음을 간곡하게 애원하는 저 괴상망칙한 간청(懇請)이 쉽게 납득이 가는가

그리고 그 간청에 대하여 큰 은혜를 베풀듯 너는 나를 따라 죽어도 좋다라는 허락.

그 심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사(사무라이)는 명분과 체면으로 살고 죽는 족속이다

원한을 입었으면 복수를 하여야 하고, ''(,おん,은혜)을 입었으면 보은하여야 한다.

"당신으로 부터 입은 은혜를 갚고자 하니 이 은혜갚음을 부디 뿌리치지 말아주십시오." 

순사(殉死)의 간청은 말하자면 베플어준 ''에 대하여 은혜갚음을 하고자하는 지극한 청원인 것이다.

그런데 그 은혜라는 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것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혀를 차지 않을수 없었다.

그것은 결초보은(結草報恩)으로 갚을 만큼 깊고 두텁게 입은 은혜가 아니라도 좋았던 것이다.

가문 대대로 두텁게 은혜를 입은이른바 후타이옹(ふだいおん,譜代恩)일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까 무슨 고굉지신(股肱之臣쯤 되어야만 순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느끼건대 보은(報恩)이란 명목일 뿐이다.

생각건대 그들은 무언가의 떠밂에 의하여 그저 죽기 위하여 죽는다

 

주군의 곁에서 음식 시중을 드는 17살 짜리 '나이토 초주로 모토스구'

그는 술을 마시고 사소한 실수를 하였다.

주군은 '그건 초주로가 한 짓이 아냐술이 한 짓이지하고 대범하게 웃으면서 용서하였다.

초주로는 그 '()'을 잊지 못하여 주군께 애처럽도록 순사를 간청한다.

그리하여 겨우 허락을 얻어 주군이 죽자 의연하게 배를 가르고 죽는다.

초주로가 셋부꾸를 결행하는 날그의 노모와 아내의 의연하고 범상한 태도는 내게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뿐더러 은연중 자식과 남편의 죽음을 뽐내고 있는듯한 어미와 마누라라는 사람의 그 자랑스러움이라니.

 

'개지기'(개를 돌보는 자)도 주군이 사랑하였던 개와 함께 배를 갈라 죽는다.

<"당신도 사나이예요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만한 모습을 보여줘요"> 

이것이 죽기 위하여 집을 나서는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다.

녹봉이 고작 여섯석지기인 최말단무사인 개지기.

은혜를 입었으면 얼마나 입었다고자못 왕후장상의 비장한 폼을 잡고 자신의 배에다 칼을 쑤셔 박는다.

허긴 말못하는 미물()까지도 결행하는 순사인데 사람으로서 어찌 마다하랴.

다이묘 다다오키가 죽자 그와 함께 사냥을 하던 사냥매가 하늘로부터 쏜살같이 날아와 박히듯 슈운원 우물에 몸을 빠뜨려 죽었던 것이다. (영화에서는 불속으로 날아들어가 죽는다)

김일성이 죽었을 때 까치떼가 모여 슬프게 우짖었다나그 사실을 북한주민들은 추호의 의심없이 믿었다고 하니이념적 인식관이 만들어 내는 무서운 착시(錯視)가 아닐수 없다.

 

무사는 명분없이 죽을수 없다.

순사도 마찬가지다.

죽은 주군의 ''을 입었으면 따라서 죽어야 하는데 그 죽음에는 반드시 주군의 생전에 허락을 받아두어야 하는 것이다.

''을 입었는데도 죽지않으면 배은망덕한 놈(おんぬすびと)이 되는 것이고 주군의 허락없이 죽으면 그건 개죽음이다.

간청하는 가신에게 순사를 허락하는 주군의 마음은 괴롭기 짝이 없다.

 

<다다토시는 자신이 중용했던 그들이 자신을 위해서는 목숨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따라서 순사를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만약 순사를 허락하지 않아서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가문의 사람들은 죽어야 할 때 죽지 않은 자라고은혜를 모르는 비겁한 자라고 그들을 몰아 붙일 것이다만일 그 정도에서 사태가 마무리된다면 그들은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든 참아내면서 미쓰히사에게 목숨을 바칠 기회를 기다릴지도 모른다그러나 은혜도 모르는 비겁한 놈을 선대 주군이 중용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들은 참울수 없을 것이다얼마나 분하고 억울할 것인가이렇게 생각하니 다다토시는 '허락한다'는 말을 할수 밖에는 없었다그래서 병으로 아픈 고통보다 더 아프고 괴로운 마음으로 '허락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권력이 선례를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양식화되어 하나의 제도가 되고이윽고 개별마다에 이른 저 가공할 의식구조를 납득하기에 나는 버겁다.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