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아베일족 (阿部一族)> -其2- (1,4,3,3)

카지모도 2019. 10. 11.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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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일족> -2-

-2015518일 포스팅-

 

'아베' 일족의 당주(堂主) '아베 야이치에몬

그는 1500석 녹봉을 받는 '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중신중 한사람이다.

그는 사람들에게는 주군이 죽으면 응당 순사를 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이었고 그 자신 또한 당연히 순사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아무리 간청하여도 주군 '호소카와 다다오키''아베 야이치에몬'에게만은 순사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녹봉이 고작 여섯석 짜리 개지기에게도 허락하는 순사를.

 

<"저 야이치에몬은 생전 주군에게 한번도 부탁을 드린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제 생애 유일한 부탁입니다">

야이치에몬은 부복하여 몇번이고 주군께 간청하였으나 그때마다 다다토시는 그의 간청을 뿌리쳤다.

<"그대의 뜻은 충분히 알겠노라. 하지만 그대는 살아남아 미쓰히사(자신의 아들)를 돌보아라">

그런데 다다오키의 불허락에는 무슨 뚜렷한 명분이나 이유가 있었던게 아니라 순전히 심리적인 문제였다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처리하여 한치 빈틈이 없는 '아베 야이치에몬', 그런 그에게 다다오키는 신임은 두텁게 두었지만 정서상으로는 그다지 정이 가지 않는 타입이었다.

이를테면 주는 것 없이 미운, 그런 대상이었던가 보았다

평소에도 주군은 야이치에몬에게는 괜히 어깃장을 잘 놓았고, 그가 간청하는 순사에 있어서도 왠지 모르게 허락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었다.

그리하여 주군 다다오키는 야이치에몬에게만은 순사를 허락치 않고 죽어 버렸다

죽고 싶건만 죽을수 없는 야이치에몬, 그는 진퇴양난에 빠져 버렸다.

자신은 결단코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나이가 아니노라, 다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할복하지 못할 뿐이노라고 필사적인 묵시(默示)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항변하지만 자신에게 꽂혀지는 주위의 시선은 영 달가운게 아니었다.

 

고뇌를 거듭하던 야이치에몬은 급기야 허락이 없는채로 순사를 결행하기로 결심한다

날을 잡아 저택으로 다섯 아들을 불러모아 자신의 뜻을 밝힌다.

자식들 또한 ', 아버지가 드디어 죽어주시는구나' 하고 그때까지 마음에 쌓여있던 불안감이 사라진다.

이제 곧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자식들이 웃으면서 환담을 나눈다.

 

아버지 아베 야이치에몬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스스로 자신의 배를 가르고 그래도 힘이 남아 자신의 목을 좌에서 우로 갈라 죽었다.

가이샤쿠(介錯, 옆에 서서 할복하는 자의 목을 베어 고통을 빨리 끝내주는 보조자)도 없이 결행한 훌륭한 하라키리였다.

그렇게 아베 야이치에몬은 죽었다.

 

새로운 주군('호소카와 다다오키'의 아들 '미쓰사다')은 허락받지 못하고 결행한 그의 순사를 탐탁치않게 여겼으나, 자비를 베풀어 아베 야이치에몬을 순사자의 반열에는 올려주었다.

그러나 젊은 영주는 노련하지 못하였다.

다른 순사자들과는 달리 야이치에몬의 순사에 대하여는 다소 납득할수 없는 판정을 하였던 것이다.

가독(家督)을 장자에게 물려주는 관행을 깨고 장자 상속분을 다른 아들들에게로 나누어 분배하는 조치를 취하였던 것이다. <사무라이에게 호주상속에 반하는 이런 조치는 굉장한 모욕이 되는가 보다.> 

그와 같은 조치에 대하여 야이치에몬의 장남 곤베에는 깊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주군의 조치에 대하여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선대주군(先代主君)의 일주기 행사를 하는 날, 곤베에는 위패에 분향을 하고 물러날 즈음에 허리에 찬 조그마한 칼을 꺼내어 자신의 상투를 잘라 위패 앞에 바치는 행동을 한다.

사무라이가 자신의 상투를 자른다는 것은 무사로서의 신분을 버리겠다는 의사표시이다.

<"나의 아버지 야이치에몬은 평생 주군을 부족함 없이 모셨기 때문에, 주군의 허락을 받지 못하고 할복했음에도 순사자 반열에 들었고, 유족인 나도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주군의위패에 분향할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어 아버지와 같이 주군을 모시지 못하는 것 같다. 주군꼐서도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아버지의 녹봉을 형제들과 나누어 상속받게 하셨다. 나는 돌아가신 주군과 새로운 주군, 돌아가신 아버지, 그리고 가족과 동료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선대 주군의 위패에 분향하는 순간 감정이 북바쳐 차라리 무사의 신분을 버리자고 결심했다. 이곳에서 한 행동에 대한 문책은 달게 받겠다.">

 

분노한 새 주군 미쓰히사는 곤베에를 형장으로 끌고 나가 목을 베어 죽여 버렸다.

선대의 위패에 감히 불경한 짓을 한 것과 주군을 두려워하지 않고 저지른 소행에 대한 조치였다

 

당주(堂主)를 상속한 큰아들이 그렇게 처형 당하자 아베일족은 모여서 숙의(熟議)를 거듭한다.

사무라이에게 '셋부쿠'가 아니라 목을 베어 죽임을 당하는 '처형'이라니.

'아베' 가문으로서는 말할수없는 모욕이었으며 견딜수 없는 수치였던 것이다.  

<곤베에의 소행이 죽음을 당할만큼 무례하였음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무사답게 할복하도록 했다면 좋았을걸. 그렇다면 우리에게 무슨 이의가 있겠는가. 그런데 도적의 무리처럼 백주에 형장에서 목을 베어 처형하였다. 형장에서 목이 잘린 사람이 있는 우리 일족이 무슨 면목으로 동료들과 어울려 이제부터 주군께 봉사하겠는가. 우리는 일족이 모두 토벌 될 것을 받아들이고 모두 함께 죽는 수 밖에 없다.>

 

아베일족은 부인과 자녀들을 모두 데리고 당주의 저택에 들어가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러자 영주 '미쓰히사'는 토벌대를 조직하여 아베일족의 토벌을 명한다.

아베 일족의 어린아이들을 비롯한 여자들은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찔러주거나) 자결하고 남자들은 토벌대와 맞서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고 만다. (아베일족의 결사적인 항전으로 토벌대의 많은 무사들도 죽었다.)

그리하여 아베일족은 남녀노유(男女老乳) 할 것 없이 씨도 남기지 않고 멸족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아베일족 토벌대의 대장 '가즈마'를 보자.

출전하기 전 날, 자신이 아베일족 토벌대의 대장직의 명을 받은 사유에 대하여 주위로부터 흘러나오는 풍문을 들었다.

<"뭐야, 이번 임무는 게키가 주선하여서 내려진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네. 게키님이 주군께 말씀드렸다네. 가즈마는 선대 때 파격적으로 대우를 한 사람이니 이번에 은혜를 갚게 하라고 주청했다네. 뜻밖의 행운 아닌가?">

이 몇마디 귀동냥으로 '가즈마'는 소스라치게 깨닫는다

이를테면 이런.

", 나 역시 순사를 하여야 할 입장이었구나. 주위에서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걸 나는 모르고 있었네. 너는 선대의 ''을 크게 입은 자인데 순사를 하지 않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이 번에 죽을 자리를 주는 것이니 싸우다 죽어라...주군께서 내게 토벌대장을 명한 것은 이런 뜻이라는걸 이제야 깨닫다니. 이런 바보자식 같으니라구!" 

실은, 젊은 주군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는데도 가즈마의 자격지심이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가즈마는 수치심과 모욕감으로 몸을 떨면서 아베일족의 토벌작전 수행중에 죽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가즈마는 토벌전투중 스스로 아베 일족의 창을 받아 자결과 다름없는 전사를 하고 말았다.

 

아베 저택의이웃에 살고 있었던 '마타시치로'는 또 어떤가.

그는 '아베 야에치에몬'의 차남 '야고베에'와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토벌 전날 밤, 주군의 명령에 의하여 아베 저택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그러나 마타시치로는 몰래 자신의 아내를 보내어 내일이면 최후를 맞아야하는 친구네 가족들을 위로케 한다.

야고오베 와 아베일족의 여인들은 친구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며 극락왕생의 기원을 부탁하면서 크게 위로를 받는다

'마타시치로'의 그러한 행동은 지엄한 주군의 문책을 각오하고 행하는 친구로서의 의리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 토벌대의 일원도 아닌 '마타시치로'는 가장 먼저 아베저택으로 뛰어들어 '야고베에'와 싸워 친구의 가슴에 창을 꽂는다.

 

''''이고 '''', 마타시치로의 저 이중적인 의식구조를 어떻게 납득하여야 할까.

아연할 따름이다.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