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남양군도의 조선인>
-조성윤 作-
남양군도의 조선인.
조성윤 교수가 쓴 '남양군도'에 관한 세 번째의 책이다.
전작(前作)은 ‘남양군도(南洋群島)’와 ’남양 섬에서 살다‘
前者는 남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에 관한 역사와 지정학적 의의, 일본제국의 지배와 좌절등을 다룬 연구서, 後者는 남양 섬에서 살았던 조선인 ‘전경운’이라는 인물의 수기(受記)를 정리한 책.
두 책에서 저자는 남양군도의 조선인에 대한 연구의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다음을 기약하였는데 이번에 출간한 책이 ‘남양군도의 조선인’이다. <저자의 연구는 이 책으로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사이판과 티니언등 남양군도에 속했던 미크로네시아 섬들을 방문하여 조선인의 흔적을 찾아다녔던 저자.
공식문헌자료, 옛날 신문, 여기저기 숨어있던 일기라던가 회고록등을 발굴하고, 조선인의 흔적을 조금이라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기억을 끄집어 내어 만든 책, ‘남양군도의 조선인’.
조성윤 교수의 노작(勞作)이다.
책 표지에 실린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본다.
어떤 마음으로들 그렇게 무연한 표정으로 늘어서 있는가, 나와 같은 말 쓰던 한 세대전 조선 사람들이여.
세명의 사내가 양쪽 가에 섰고 가운데 늘어선 검은색 작업복 차림의 열사람의 여자, 중간에 여자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남양흥발 주식회사의 티니언 농장에서 일하였던, 3가족으로 구성된 농민가족의 사진이라고 한다.>
눈밑으로 음영짙은 옛날 흑백사진인지라 잘 알수는 없으나 그들의 포즈에서 부푼 희망의 느낌을 받았다면 나의 착시였을까.
근 한세기 전부터 한반도를 떠나 머나먼 남쪽의 섬 남양군도에서 살았던 조선인들.
70여년도 넘게 지난 지금 그들 1세대는 남아있지 않아, 2세대도 만나기 힘들고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거의 3세대라고 한다.
지금은 미국시민으로 살아가는 한인계 차모르인들,
김(金)씨 성은 King이되고, 최(崔)는 Shai가되고 신(申,辛)은 Cing, 진(陳)씨 성은 Jinsang <성씨 陳에다 일본어 氏(さん)를 붙여서>이 되었다.
그들에게서 조선인의 색깔은 완전히 바래져 버리고 말았다. <차모르는 모계사회이므로 할아버지 아버지에 관한 정체성은 더구나...>
그리고 선대(先代)의 모국 한국으로부터도 까맣게 잊혀진 사람들이었다.
조성윤 교수의 책을 접하기 전까지 내게도.
남태평양 마리아나 제도의 섬들.
대항해 시대 스페인을 시작으로, 독일에 이어 일본이 지배한 사이판 팔라우 티니안....
남양군도로 불리워지며 일본이 남양군도를 지배한 시기는 1914년부터 1945년까지의 약 30년간이었다. <前作 '남양군도'를 권한다>
1910년대부터 시나브로 남양군도에서 조선인들의 유입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남양군도의 조선인은 생각보다 빠른 시기부터였구나.
책에 나와있는 인구통계를 본다.
1919년, 원주민 4만 8천, 일본인 2천 500, 조선인 250여명.
1938년, 원주민 5만 1천, 일본인 7만 2천, 조선인 700여명.
1939년~1942년, 남양군도의 경제 안정기. 이 무렵부터 조선인의 본격적인 유입이 시작되었다.
1942년, 원주민 5만 2천, 일본인 9만 3천, 조선인 6천 4백에 이르렀다. <초기에는 ‘니시무라 척식(拓殖)’과 ‘남양 척식공업’이 조선노동자를 모집하여 이주시켰으나 후에 남양군도의 경제개발을 떠맡았던 ‘동양척식 주식회사’(우리 귀에도 익은)가 조선총독부에 도움을 요청하여 조선인들을 모집하여 이주시켰다.>
농업노동자로, 도로 선착장 다리등 기반시설 공사 노무자로, 보크사이트 광산에 노동자로, 해군 군속으로, 해군비행장 공사로 끊임없이 남양군도로 흘러들어온 조선인들.
새로운 희망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있고 높은 임금을 준다는 꾐에 속아서 갔던 사람들도 있고 군속모집에 응모하여 이주한 사람들도 있었다.
남양군도의 조선인들이 죄다 강제로 끌려가 노역하였던 사람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초기에는 2년의 이주계약이었는데 나중에는 영주(永住)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전쟁의 광풍,
1943년부터 1945년 사이는 전시체제, 일본청년의 징집으로 인하여 노동력이 부족하였던 남양군도.
일본 군부의 강제와 강압으로 남양군도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함께 조선인 남성들을 모두 군속으로 강제 전환시켜 전쟁에 동원되었다. <최대 8만여 명 이상이 전시체제에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산하는데 그중 많은 위안부 군부 병사들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그 前, 남양군도의 조선인의 층위(層位)는 매우 다양한 것이었다.
남양군도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의 땅이기도 하였을터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였다.
조선인이 건설한 다리 이름이 ‘아이고 브릿지(아이고 다리)’라고 하니 오죽 힘들었으면 ‘아이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겠는가.
해국 군속 모집에 응모하여 군속으로 동원되었던 이인신(1922년생), 이공석(1923년생)의 사연.
전쟁상황이 점점 심각해지자 한반도의 젊은이들은 강제 징병 징용이 곧 닥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럴 바에야 해군 군속모집 공고를 보고 거기 응모하기로 하여 신체검사와 구술시험를 거처 합격, 보수는 미미하였으나 기한을 1년으로 하고 남양으로 왔던 것이다. <일본해군은 군사시설과 비행장을 건설하면서 남양군도를 불침항공모함이라고 하였다.>
찌는듯한 남국의 더위 아래서의 중노동. 구타와 연대기합은 다반사, 그 노동은 고된 것이었다.
약속된 기한 1년을 넘겼어도 그들은 돌아오지 못하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국의 섬에서 죽었다.
그러나 어떤 조선인들에게 남양군도는 기회의 땅이었다.
상점을 경영한 사람도 있었고, 야자열매나 코브라(야자나무 열매의 속살을 가루 형태로 만든 것)를 채취하는 수집 중개상도 있었고 심지어 병원을 개설하여 의료진을 고용하여 운영한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어떤 조선인은
고국을 방문하여 노동자모집의 홍보활동을 하기도 하였고, 수십명의 조선 여자를 기생으로 데려가 요정이나 요릿집을 운영한 사람도 있었다. <요정의 이름이 칠복루, 대동강...>
남양군도에서 예술작업(타히티의 고갱처럼)을 하였다는 일본인 히지카타 하사카츠의 기록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코프라 중매인 황영삼은 술을 좋아하였고 성품이 매우 폭력적이었다.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작은 섬의 지배자로 군림하다가 결국은 원주민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진주만 습격을 시작으로 개전초기 승승장구하던 일본군, 그러나 1년도 아니되어 전세는 뒤집어졌다.
남양군도는 일본대본영의 최전방 방어선이 되었고, 1944년 6월 해군이 궤멸된 일본은 사이판 포기를 결정하였다.
그런 사실을 모른채 고립된 수만명의 일본인과 조선인들.
극한의 기아와 공포에 내몰린 남양군도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미군은 근해 함정의 확성기로 탈출과 투항을 권유하였다.
황민화 교육으로 마취된 일본인(군인은 물론 민간인도)에게 그 권유가 먹힐리 없다.
반자이 클리프, 막판에 몰리자 많은 사람들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미군의 확성기 방송은 조선말로도 전달되었다. 아리랑 노들강변 양산도등 조선민요와 함께.
그러나 바다 저편에서는 살길로 넘어 오라고 손짓하는데 섬 안 쪽에는 악에 바친 일본군이 있다.
조선인과 원주민등 많은 사람이 탈출하다가 사살되었다.
식량이 고갈된 섬에 갇힌 사람들. 야자열매가 부족하다고 일본군이 한 조선인을 추궁하여 구타, 분노한 조선인들과 다툼때문에 진압부대가 와서 조선인 50여명 피살 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식인(食人)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조선인을 죽여 그 인육(人肉)을 먹는다는 뜬 소문.
분노한 조선인이 원주민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조선인 쪽이 이겨서 일본인 20여명중 18명 살해, 도망간 두사람의 일본인이 끌고 온 진압부대에 의하여 조선인 60명과 원주민 30명 전원이 처형되었다. <40여명은 미군함정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하였다.>
훗날, 이 식인사건은 극도의 반일(反日), 혐일(嫌日)감정을 부추기게 되었다.
배가 고프자 노예를 죽여 그 고기를 뜯어먹는 주인... 얼마나 쇼킹한 그림인가.
이 사건은 2005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회'의 자료를 취재한 매스컴의 선정적인 기사에 의하여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전쟁에 동원된 조선인들이 중노동으로 시달리다가 기아 상황에 처하자 일본인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잡아먹혔다는 식으로.
북한의 노동신문은 '일본은 인두겁을 쓴 극악한 살인마, 식인종 무리'라고 질타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일제의 천인공노의 만행으로 부각된 것이다.
기아에 처하자, 같은 일본인에게는 그럴수 없으니 '조선인'을 죽여서 그 고기를 먹는다?
나는 그런 현장이 있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조선인'에게 방점을 찍을 명제가 아니라, '국한에 처한 인간성'이라는 보편적인 문제로서 다루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극한에 처한 인간성을 논하는데 있어서도 그것을 상투적인 윤리의식에 기대어 감상적으로 다룰 문제 또한 아니다.
안데스 산정에 불시착한 아르헨티나 비행기.
<죽어가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말한다. '나 죽거든 내 몸을 먹어라' 그들은 인육을 먹은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뚱이를 제공한 사람들의 가족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태평양전쟁 말기 기아지옥에 처한 일본군의 식인(食人)은 사실인듯 하다.
'앤도 슈사쿠'의 소설 '깊은 강'에도 식인(食人)의 기억으로 괴로워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태평양 전쟁 말기의 미얀마의 정글에서 영국군과 인도군에 쫓기는 극한의 일본군들. 굶주림과 가혹한 열대의 환경 속의 패잔병은 말 그대로 지옥의 상황속에 방기되었다. 여기저기서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하는 병사들. 기구치를 돌보았던 그의 전우 ‘스카다’는 전우의 인육(人肉)을 먹고서 생존하였다. 귀환하여 알콜에 의존하는 스카다의 죄의식을 곁에서 지켜보는 기구치. -깊은 강->
이 책에 등장하는, 귀환한 일본군의 고백.
<'내가 죽으면 내 살 먹고 살아줘'라고 말하며 죽어 간 군인들... 그 죽은 전우의 고기를 엉덩이 살을 베어내서 고기를 집어넣고 밥을 지어서 먹는거야... 그런데 인간의 고기야... 구웠더니 그 냄새가 너무 심해.... 결국 전쟁이라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취급하게 해... 전우때문에 전우끼리 살아남기 위하여 ..귀신이 되지, 전쟁때문에 귀신이 되는거야. 그 수밖에 없었으니까... >
남양군도 환초에 분산배치된 일본군중 50% 이상이 굶어죽었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을 죽여 고기를 먹는 행위를 인류학에서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이라고 하여 한 사회 또는 부족 안에서 사회적 제도적으로 인정된 풍습 또는 관습. 그러나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일시적 재난이 닥쳤을때 발생하는 기아에 의한 긴급 피난적인 식인은 앤스로포파지(anthropophagy)로 분류하여 다른 의미를 가지고있다고 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월든)는 인류의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언젠가는 동물의 고기를 먹는 육식문화도 사라질 것으로 예견하기도 하였지만>
남양군도의 고립된 공간에서 지배세력의 횡포에 당하는 피지배족.
그 갑질의 횡포가 오죽하였겠는가. <남양군도로 전입된 일본육군이 토착세력인 일본해군에 당하는 동족끼리의 그 갑질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곳, 극한에 몰린 상황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조선인들은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어갔는지.
태평양전쟁의 뒤안길에 묻혀있는 녹슨 것들을 캐내 흙을 털고 진실을 들여다보는 학자의 눈길.
'남양군도의 조선인'
일본과의 무역마찰.
당시 청와대 조아무개 수석은 국민을 향하여 죽창가를 부르자며, '애국이냐 이적(利敵)이냐'를 외쳐댔다.
확증편향에 의한 일도양단, 고위관리라는 사람의 그런 사고방식이 나는 실로 못마땅하였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위안부 성노예화 없었다'고 강변하는 뉴라이트의 지식인이라는 이아무개 교수가 못마땅한 것과 마찬가지로.
확증편향의 눈으로는 진실을 볼수가 없다.
팩트의 눈, 공정의 눈, 객관의 눈으로 역사의 현장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묻혀지고 흩어진 사실들을 찾아 그것들을 천착하고 연구하여 진실을 드러내려는 학자의 자세.
그러한 미덕이 우리에게 진실과 공정과 객관의 눈을 갖게 하여주는 것이다.
그 미덕이 우리의 파토스를 달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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