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성석제 作-
***동우***
2016.01.07 04:36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해학적 가락으로 구성지고 맛갈지게 언어를 조탁(彫琢)하는 솜씨, 가히 성석제의 대표작이라 해도 가당할듯 싶습니다.
어머니가 열다섯에 돈을 받고 팔려와 6. 25 때 아버지가 죽어 유복자로 태어난 팔삭둥이 만근이.
<"만그인지 반그인지 그 바보 자석 하나 따문에 소 여물도 못하러 가고 이기 뭐라. 스무 바리나 되는 소가 한꺼분에 밥 굶는 기 중요한가, 바보 자석 하나가 어데 가서 술 처먹고 집에 안 오는 기 중요한가, 써그랄.">
일꾼이며 효자이며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인데, 짐짓 있으나마나한 존재로 저리도 사람 취급 못받는 황만근.
어느 조직이나 공동체, 교실이나 심지어 가족형제 간에도 어수룩한 대상 골라 왕따시키는 경우 심심찮습니다만.
인간의 근본 성정에는 나남없이 저리도 못돼먹은 구석이 있는가봅니다.
여간내기로는 살기 힘든, 반지빠르지 않았다간 코 베어가는 세상살이.
성실하고 신실하고 착한 황만근같은 사람은 천상 루저(loser)의 삶을 살아야 하는건가요...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슬프게(?) 재미있습니다.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6.01.08 04:45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황만근의 죽음은 하나의 성심(聖心)이었습니다.>
귀농한 타동네받이 민씨만이 황만근의 진면목을 알아보고 영전에 저리 장중한 추도사를 헌(獻)하는군요.
가차운 토박이들에게는 무시와 멸시와 조롱을 당하는 황만근.
그러나 황만근은 상처를 입는 사람이 아닙니다.
악의가 침범할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과 풍성한 감성.
아무리 멸시와 무시와 모욕을 당해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정신.
비열하고 천박한 것들이 그에게 오면 악(惡)이거나 더러운 것이 아닌 것이 됩니다.
그는 거인의 인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도 살아오면서 아주 아주 드물게 그런 선하고 성실한 인격을 접하였습니다.
군대에서, 직장에서.
몹시 그런 사람이 좋았지만, 그를 편들었다간 나까지도 바보 못난이 어리숙 취급을 견딜만한 그만한 품이 내게 있을리 없었습니다.
나는 사소한 것들에 발끈하고, 분하여 앙갚음하고자 절치부심하는 속물입니다.
얼굴 붉어지면서 발끈하게 당하는 것들은 내게 피흘리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말라붙은 피딱지가 지금도 만져집니다.
아아, 그때 상처받지 않을걸
무소의 뿔처럼 거침없을걸.
나는 좀 다른 사람이 되었을텐데.
***mayblue***
2016.01.08 16:58
저는 주로 상처받는 쪽이라 생각했는데
어느날 돌아보니 상처주는 사람이 저인걸 알겠더군요.
그런 절 봄이 어찌나 절망스럽던지요.
왠만한 거인의 인격이 아니면
상처가 되지 않고
상처를 주지 않는
위로와 힘과 평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큰 나무그늘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인생의 큰 과제..
그 고지를 향해 조용히 함께 걸어갑니다 동우님^.^*
***동우***
2016.01.09 04:53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상처를 받는 척하지만 실은 위선입니다.
황만근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조롱하는 축에서 나도 예외가 아니지요.
나만 피흘린게 아니라, 나로 인해 피흘린 사람도 여럿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큰 나무 그늘같은 사람.
아득할지라도 그 고지를 향해 함께 걸어갑시다, 메이블루님.ㅎ
최소한 가족 친지에게만이라도. 위로와 힘과 평안과 용기를 줄수 있는.
-독서 리뷰-
<홀린 영혼>
-성석제 作-
***동우***
2016.02.10 04:07
성석제의 '홀린 영혼'
‘이주선’의 엄청나게 과장되고 허황한 거짓말.
그러나 아무에게도 해를 입히지 않는 거짓말입니다.
사기를 치는게 아니지요.
사기란 형법상 타인에게 거짓말을 하여 무언가 이익을 취하여야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이주선은 자기자신에게 홀려서 자기중독에 빠진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이주선은 결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가 아닙니다.
리플리 증후군이란게 있다지요.
현실적으로 무능력한 사람의 성취욕구가 병적으로 강렬할때 나타나는 상습적인 거짓말쟁이를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기자신도 그 거짓말에 함몰되어 그 거짓말이 진실인것 처럼 믿고 행동하게 된다는군요.
리플리 증후군...
생각건데 누구에게나 다소는 가지고 있는 증세가 아닐까..
내게도 조금은 만져집니다만. ㅎ
***eunbee***
2016.02.11 00:27
김형석 교수님은 말씀하셨다지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65세부터 75세까지라고.
(안병욱, '행복의 메타포' 아랫글에 언급하신 동우님 글을 읽고 생각난 김형석 님)
이주선의 홀림과는 다른
홀림에 빠져 보고 싶습니다. 김형석 교수님의 말씀에 입각한 홀림.ㅎㅎㅎ
사방팔방, 칠레팔레, 스스로 바쁘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싱그럽고 생기발랄하게 그리고 품격있게... 홀린 영혼으로 생활하기.ㅋㅋ
좋은 생각 아닌가요?
리플리 증후군에 더러 감염돼 보면서. ㅎㅎㅎ
***동우***
2016.02.11 04:30
은비님도 그 인터뷰 기사 읽으셨군요.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65세부터 75세까지라는.
나도 김형석 교수님의 그 말씀에 고무되는 바 컸다우.
사방팔방, 칠레팔레, 스스로 바쁘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싱그럽고 생기발랄하게 그리고 품격있게... 홀린 영혼으로 생활하기. 좋은 생각 아닌가요? 리플리 증후군에 더러 감염돼 보면서.
브라보! 은비님.
우리는 지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구가하고 있는 겁니다.
***도하***
2016.02.11 01:44
안녕하세요, 선생님.
설 잘 쇠셨는지요.
꼬박꼬박 한 편씩 글이 올라오는 ‘경이’를
연휴 기간에도 경험하면서 경탄과 감사의 마음으로 읽고 있습니다.
성석제의 글에는 생각나는 바가 있어 댓글을 달려 했으나,
객이 먼저 어지럽힌다는 것은 아니할 바인 것 같아 자제했었습니다, 만...
나중 보니 먼저 이끄시는 말씀이 늦게 달려있기에
편하게 몇 줄 더 얹어봅니다.
1.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찾기 및 구분짓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 결국 실생활에서 거짓말과 참말은 배중률이 성립하는 2가 논리의 두 항이 아니라는 점은 충격일 수 있습니다. (기억하기에 2010년 이전인 것은 확실하니 오 년은 넘었을 겁니다. 그 때 읽었던 목록들 중 <거짓말의 진화>라는 사회심리학 책이 있었는데, 이런 점과 관련해서 퍽 공감했던 인상이 남아있습니다.)
2. 이 점은, 좀 뜸금포 같지만, 역사 문제로 확대해서 펼칠 수 있습니다. 과거 역사는 현재에 대한 독립변수이고, 미래는 현재의 발언들에 의존하는 종속변수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거짓말 언술은 곧 과거화 되면서 새로운 현재에 대한 변질된 독립변수를 생산하는 셈이고, 그래서 나중의 역사날조는 독립변수의 소급조작인 셈이지요.
3. 말과 글 기록의 판이 이쯤 되면, 현재의 모든 언술들은 논증적 판단의 영역에서 문학적 수용의 차원으로 전선을 넓혀 옮겨갑니다. 이 문제를 종종 다루는 문학을 단편소설로 국한지어 보면 두 계열로 대별되는 것 같습니다; 경계 모호함의 실제 예를 들어 당혹스런 미궁에 빠트리기와 어처구니없는 양극단의 모습을 애써 부각시킴으로써 양가논리가 여전히 유효함에 안도하기.
4. 성석제의 ‘홀린 영혼’은 후자임이 확연해 보입니다. 동일한 메뉴를 같은 식재료로 만들더라도 숙수에 따라 맛도 영양가도 다르듯이, 성 숙수의 글맛과 여진은 고유 주파수 대역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아이덴티티로 여전합니다. 다만 성 작가의 (다른 단편을 모두 망라한 비교는 아니지만) 다른 단편에 비해 인물 및 상황의 특이성 희화의 부풀림을 애써 눌러 조율하는 대신 그것들의 유형화를 마무리 윤곽선 삼아 덧칠을 해준 점이 (제 개인적으로) 눈에 띕니다.
5. 이런 변화의 감지가 그릇된 것이 아니라면, 그 작가는, 고전을 남기는 문호의 반열에 한 걸음 다가섰든가 보편적 클리셰의 안일에 슬며시 기대는 중진작가로 접어들었든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귀추가 주목되는 기로에 들어선 징후임은 맞는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작가의 신보가 궁금한 관심도는 떨어지지 않습니다.
* 평소 파득파득한 명랑함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경박하지 않음에서 독보적인 성 작가의 팬 중 한 사람이었기에,
무게감 전무한 '무중력언어’로 된 감상이지만 몇 자 적어봤습니다.
***동우***
2016.02.11 04:49
연휴 동안 도고서재(書齋)도 건안하셨을터.. ㅎ
오교수님도 설 잘 쇠셨겠지요.
곰곰 생각해보면 거짓과 참의 경계짓기, 말씀처럼 엄청나게 어려운 일일듯 싶습니다.
문학의 픽션으로부터 감동하는 그 심리 자체도 따지고 보면..
하물며 역사의 추상성에서이리까.
수학자다우신 통찰적 정의로 말씀하시는 독립변수와 종속변수의 수학적 로직..
그러나 나는 어떠한 역사이야기에서의 연대기적 서사에서도 어떤 인과를 읽어내지는 못하겠더군요.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종말론적 역사관이나, 역사적 변증이라는 것도 나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시대를 사는 삶의 자리, 살아내는 게 역사이고, 내일의 역사는 미지의 것... 쯤으로 내 인식은 머물고 있습니다만.
욕먹을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친일파라는게 과연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할아버지의 창씨개명을 나는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ㅎ
성석제를 좋아하시는군요.
어처구니없는 양극단의 모습을 애써 부각시킴으로써 양가논리가 여전히 유효함에 안도하기.
안도하기...란 교수님의 말씀 나 역시 이해할듯 합니다.
아이들에게 우화를 들려주는게 어쩌면 어른의 안도하기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문득 듭니다.
어쭙잖은 블로그, 교수님 들여다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쩍 긴장됩니다.
미꾸라지 노는 물에 메기 한마리 풀어놓으면 미꾸라지의 육질이 더 단단해 진다던가요? ㅎ
***도하***
2016.02.18 20:17
이어지는 답글 작성하던 중 비집고 들어온 다른 일들, 되돌아 오지 못할 경우도 허다한데...
그새 번쩍 지나간 며칠, 그래도 이을 수 있게 되어서 퍽 다행입니다.
------
선생님.
어떠한 역사이야기에서의 연대기적 서사에서도 어떤 인과를 읽어내지는 못하신다는 말씀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엄밀한 인과성’(causality)은 ‘어떠한 역사이야기에서의 연대기적 서사'에서도 찾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그 어떤 물리적 현상에서도 존재의 단언이 불가능함은 마찬가지로서,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사를 비롯한 다양한 현실 역사들이 줄기차게 증언해 왔습니다. 실은 ’엄밀한 인과성‘이란 ’그럼직한 개연성'(plausibility)에 상정된 극단적 피팅 모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정작 꼬리 글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바는 인과성의 부재를 확신하게 된 이후 생긴, 제가 주문(呪文)처럼 되뇌게 되는 멘트입니다. 살면서 암묵적 기본인과율마저 빗나감으로써 혼란에 빠질 경우, 그 원인자가 사람이라면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군요”이고, 원인자가 일 또는 사태라면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소서”입니다. 무기력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최선 같아 보입니다. 가려져 있는 계몽의 오만과 야만을 인정하면서 상호간 상처를 최소화하는 공존의 방식, 그것은, 외면할지언정 존재 자체는 인정해 주는 것이라는 결론의 소산입니다. 이주선 역시 그렇게 태어난 사람, 현실 이전에 소설 캐릭터로서 독감백신 맞듯 만나봄으로써 대인정서의 데이터베이스 외연을 넓혀두기 좋을, 그런 사람. 따라서, 그런 류 캐릭터들을 즐겨 그리는 성 작가를 저는 안철수와는 또 다른 백신 유포자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우***
2016.02.19 05:09
도하 오채환 교수님.
엄밀한 인과성이란 그럼직한 개연성에 상정된 극단적 피팅 모델, 지극히 인문적인 이런 말씀을 하실줄 아는 수학자..
그것이 바로 오교수님의 내공이올시다.ㅎ
현실 이전에 소설 캐릭터로서 독감백신 맞듯 만나봄으로써 대인정서의 데이터베이스 외연을 넓혀두기 좋을... 과연 성석제 소설의 기능이 한부분이 게 있음직하여 풀썩 웃었습니다.
어제 백종선 작가가 전화를 주셨더군요.(전화로 목소리 나눈게 얼마만인지요. 내 또래인데도 초랑초랑한 아름다운 목소리, 여전하시더군요.)
도하님 만나기로 하였으니 (도하님이 만나고 싶어한다고) 올라오심이 여하? 라고 하시면서 만있는것 사주신다고 유혹하였지만 짐짓 사양하였습니다. ㅎ
***도하***
2016.02.19 17:51
앞서 언급한 '이어지는 답글 작성하던 중 비집고 들어온 다른 일들' 중 하나가
존경하는 선배(학교선배는 아님) 한 분의 출간을 앞 둔 저술에 대한 추천사 작성이었습니다.
그 분 함자는 곽영직 이고, 책 제목은 <시인과 과학자가 함께 읽는 양자 역학> 입니다,
제가 써드린 글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추천사, 혹은 재킷 글.
양자역학 교재 및 교양소개서들이 범람하다시피 한다. 그렇지만 건조한 고급 과학이론들만 열거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든 숱한 과학자들의 활동이 더불어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과학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또한 걸출한 과학자들의 뛰어난 능력과 업적을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평가를 할 만한 동의 가능한 근거와 함께 독자의 공감을 조목조목 이끌어낼 수 있는 과학교양서도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 책 저자는 이중으로 드문 과학책을 염두에 두고서 집필했다.
여기에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의 수준과 관련해서 더해진 집필의도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전공자에게까지 직접적인 쓸모가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공자 입장에서 보기에 주변부 담론으로 치부해도 그만인 내용에 머문다면 책은 정작 수록된 담론의 수준조차 한가한 잡담으로 비치며, 실제 그 수준에 그치기 십상이다. 저자는 이런 고급 집필의도를 전공과목 수준의 양자역학 학습에 필수적인 수학의 정리와 유도 및 해설까지 수록하되 적재적소에 절제해서 제시함으로써 도모했다.
독보적인 집필의도를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 저자의 지적능력 때문이겠지만, 삶의 가장 많은 시간을 강의와 집필로 일관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체화된 저자의 교육철학 및 지식철학이 큰 몫을 했다. 난해해서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지식의 특징을 흔히 맥락의 단절 혹은 부재에서 찾는데, 저자는 그것을 ‘너무 유서 깊어 맥락의 뿌리가 희미함’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았다. 주지의 양자역학의 경우 저자는 그 뿌리를 유서 깊은 원자론 맥락에서 정확하게 짚어냈고, 이 책을 통해 성공적으로 펼쳐 보였다.
따라서 이 책은 저자의 깊은 철학적 통찰이 바탕에 깔린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현학적 표현을 구사하지 않고 있음은 이 책이 지닌 각별한 덕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독자라면, 감성 가득한 시인에서 전문 과학자까지, 실타래 풀리듯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감탄 말고도 저자에 대한 경의표시가 자연스러울 것으로 예상된다.
------
백종선 작가님과 방금 헤어졌습니다.
선생님과도 함께 하면 좋았을 것이란 얘기는 세 번쯤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언젠가는 그럴 때가 오겠지요, 치토스!
***동우***
2016.02.20 04:47
곽영직 교수님 검색해 보았습니다.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오시고 미국에서 공부하신 물리학자.
내게는 어마무시한 양자역학.
앞의 '시인과 함께 읽는..'이라는 대목에 용기를 내봅니다만, 과학분야 전혀 깜깜무지랭이인 나같은 사람도 접근할수 있는 책인지요?
구입하여 한번 들춰 보려 합니다만.
아직 출판되지는 않은 모양이지요?
***도하***
2016.02.20 08:07
곽영직 교수님은 군더더기 현학성이 전혀 없는 천재랄까?
주간에 연구실로 전화 걸면 받거나 받지 않거나인 것은 상식적 이가논리지만, 그것이 집필 중이거나 강의 중이거나와 동치인 이가논리이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비상식적 실천일진데... 평생을 그렇게 사신 분입니다. 특히 방학중에는 드문드문 교환하는 안부 횟수만큼 소리없이 쑥쑥 불어나는 저작 권 수...
"같이 울진가서 전방대게 먹고, 오는 길에 양양에서 자연송이도 좀 먹고, 어떠세요?"
얼마전 위암수술을 다행히 성공적으로 마친 뒤라 제안을 했건만...
"쓸데없는 일 맡아 작업을 하느라..."
알고 보면 거절 못하시는 성격에 또 맡은 책 원고작업 중이기 일쑤였지요.
그런 식의 반복이 계속 되었는데...
정년을 앞둔 시점의 이번 작업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쓸데없는 일'이라는 표현 대신 '뭔가 좀 신경써서 마무리할 일'이라 표현 하시더니...
읽어보라고 불쑥 원고를 보내오셨습니다.
열어보니, 양자역학 책인데, 세상에!
단언컨대 지금까지 이런 과학책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과학분야를 (상대적으로 가장) 쉽게 이해시키면서도 가슴 뭉클하기까지 하다니. 더구나 대개 그런 책의 과학내용은 수준이 변죽만 울리고 마는데 전공자에게까지도 매우 유익한 참고서의 수준이라니!!!
"추천사는 제가 쓰지요."
"그렇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부탁을 하려 했는데, 먼저 말씀하시니 영광이고 고맙습니다."
이 책 출간을 맡은 출판사는 신속하게 책을 내기로 정평이 난 곳이니 오래 기다리진 않아도 될 것입니다. 잘 하면 3월 중에 실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준 높은 본격 이론물리학 책이 본문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편안한 어투로 하고 있습니다. 이건 또다른 장르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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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6.25 전쟁이 끝나갈 무렵 강원도 시골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들어가 쓰러지지 않도록 기둥을 버팀목으로 받쳐놓은 초가집 교실에서 공부했다. 흙바닥 위에 놓여 있던 긴 탁자에 등받이 없는 긴 의자를 놓고 다섯 명씩 앉아 공부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무슨 공부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1학년 말이 되었을 때 선생님이 “ooo 코는 팔뚝만 하다”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칠판에 나와 써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틀리지 않게 쓴 아이들은 몇 안 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해 나는 54번의 결석을 하고도 우등상을 받았다. 나는 아직도 누렇게 바랜 그 때 받은 우등상장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 때 나는 우리가 사는 시골을 벗어난 바깥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다. 우리가 아무 것도 모른다는 것도 몰랐으며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 쯤 되어 읽고 쓰는 것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을 때는 이제 더 공부할 것이 없는데 중학교에 왜 가야 하는지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되니 나도 중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검은 색 중학교 교복과 ‘中’자라고 쓰인 모표가 달려 있는 모자가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의 일들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것도 벌써 50년이 넘었다.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내게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다.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 외에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런 것들을 공부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는 내가 배운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또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많은 것을 가르쳤으며, 많은 책을 번역했고, 또 많은 책을 통해 내가 알고 있는 과학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었다. 이제 가르치는 일도 끝내야 할 때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어느 날 지금까지 살아온 지난날들을 돌아보다가 문득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세상에 나와 내가 배우고, 가르치고, 책으로 써낸 것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우주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마 고등학교에 다닐 때쯤부터 우주가 신비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도 그리고 유학을 가 있는 동안에도 우주와 관련된 자료들은 무엇이던 모아 두었다. 내 전공은 천문학이 아니었고 천체 물리학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전공과는 관계없는 것이었다. 하긴 물리학에서 우주와 관련된 내용을 많이 다루므로 전공과 관련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배우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준 과학 내용 중 우주와 관련된 내용이 가장 흥미 있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그래서 과학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강의할 기회가 있으면 우주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쯤부터 내가 알게 되었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준 지식 중 가장 중요한 지식은 원자에 대한 지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원자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화학도 생물학도 천문학도 공학도 의학도 약학도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 과학은 원자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원자에 대한 지식이 최고의 지식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원자에 대한 지식이 현대문명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인류가 원자를 이해하게 된 것은 기적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볼 수도 없고,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원자의 세계를 밝혀낸 것은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세계는 아주 작은 세상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은 세상이며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도 없고, 알고 있는 물리법칙으로 설명할 수도 없으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원자의 세계를 우리가 이처럼 자세하게 알게 된 것은 기적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과학과 기적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원자보다 작은 세상을 이해하게 된 것을 과학자들의 뛰어난 통찰력과 창의적인 사고력 덕분으로 돌리고 있다.
우리는 과학자들의 뛰어난 통찰력과 창의적인 사고력 덕분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원자라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양성자는 (+) 전하를 띠고 있고 중성자는 전하를 띠고 있지 않아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은 (+) 전하를 띠고 있다.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는 (-) 전하를 띠고 있다. 전자가 원자핵에서 멀리 달아나지 않고 원자핵 주위를 도는 것은 원자핵과 전자 사이에 작용하는 전기적 인력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적인 인력만으로는 원자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양자역학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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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같은 대학에 봉직하는 곽교수님.
선생님보다 몇해 연하인데 올라오시면 백작가도 함께 인문예술의 얘기 꽃피움도 기대함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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