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눈부신 전모 5 (1,4,3,3,1)

카지모도 2019. 12. 30.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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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눈부신 전모 5>

詩集 ,앤솔로지 '그 말이 물들어왔네에서

-전민선 -

 

 

<눈부신 전모 5>

-백년의 일-

 

당신은 어쩌다 내게로 와서 

백 년 동안 할 일을 다 해주셨습니다 

 

백두대간 폭설에 갇혀서도 

앞 산 하나를 맞잡아 옮기고 

기쁨과 슬픔으로 울던 하심[下心]의 세월

 

나도 데려가 주세요 

웅숭 깊고 무량한 당신 인생 속으로.

 

 

<누이의 口傳을 듣다>

 

청춘에는 

열두 폭 비단치마를 두르고

호시절 보란 듯 뻔쩍뻔쩍 했을 터이나

어찌 살다 칠순에

비단 치마는 헤어졌고 

저무는 세월 지병까지 얻어 

부쩍 수그린 여생의 누이를 두런대다 

슬픈 눈빛을 들키던 착하디 착한 사람은 

수그린 누이의 이마를 대신 아팠을 것이며

틀림없이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 졌을 것이다

착하디 착한 사람아

질끈 눈 감을 수 없는 

혈육지난한 생에 대하여 

더러 울어 버리는 날도 살아야 견 딜 수 있으니 

간간 펑펑 울어라 일생 아무도 몰래 훌쩍이지 말고.

 

 

<율동리 통신

 

누구라도 

먼저 보는 이가 

산 임자 

꽃 임자 라니 

 

꽃 폭죽 아래 

털퍼덕 주저 앉아 

*산이로구나 헤

구성진 육자배기도 꾸어다 놓고 

 

앞 산 뒷 산 저 꽃 이 꽃 

제풀에 팡팡 꽃 폭죽 터졌으나

꽃도 혼자보니 별 재미가 없다며

저 꽃 이 꽃 이울기 전 얼핏 다녀 가라네

꿈이라도 좋으니 그리 한 번 다녀 가라네

 

그리 가마 하고도 

서너 번 약조가 어긋나고 

그리움도 염치없어 앵돌아 졌을 터

꽃이야 아니 보아도 괜찮다 마는 

해를 눙친 해후 잊지나 말자고 늦은 답장을 쓴다 

 

*율동리경북 밀양시 삼랑진 율동리 

*산이로구나 헤육자배기 첫 머리 

 

 

<죄의 날마다>

 

와병 이래 

사람 노릇 어렵습디다 

하하 실없이 웃어도 죄만 같고

후루륵 국수 가닥을 넘기다가 멈칫 하고 

초장에 찍은 광어 한 점도 목에 턱 걸립니다

꽃 분 하나 창 가에 놓다가도 슬쩍 미안합니다

세상사 기척을

더러 못 들은 체 돌아 앉고 

더러 숨어 쿨럭이며 살았습니다 

낙과가 떨어 지면 툭하는 소리를 들으며 

거짓말 같은 와병의 기적을 간절로 기도하고

구두만 반짝 닦아 놓고 죄의 날마다를 살았습니다

 

 

<늦은 상서>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이별은 이별이 아니라며.

 

핏줄의 연대 

툭 툭 끊어 내신

눈물의 속내 짐작 못하고

방긋방긋 손님을 호객하며 

헤실바실 늦저녁을 살았다지요

당신을 영영 잃는 작별의 시간을 모른체 

이미 굳게 닫힌 당신 귀에 

늦게 와 죄송하다고 잘못 했다고 

사랑한다고 제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절규하던 고백 들으셨는지요

금쪽같은 새끼들 

잘 먹이고 많이 가르치지 못해 

미안하다 미안하다 시던 끝내 실향의 당신 

당신께서 목숨 주신 것만으로도 이토록 고맙고 

감사의 아버지그리운 아버지 저는요 죽도록 행복했습니다

 

 

<5병동 잡설>

 

어찌하다 맹장을 떼었으나 사나 흘 지나 머리 감고 샤우어도 가능 하다는 것이 열흘 째 운신은 커녕 오한이 나고 벌벌 아프기만 하고 새끼들 이빨 빠지는 것도 바로 보지 못하고 이빨 빠지는 놈보다 먼저 자지러지는 유난스런 어미라 일생 들리지 않는 조롱을 받던 처지 어엿한 환갑도 되었으니 이참에 의젓하게 참아 보자 참아 보자 하였으나 더는 참을 도리가 없어 식솔들 눈치를 보며 병원 진료실에 누워 배는 오지게 아프되 정말 나으려고 아픈 것이면 어쩌나 은근 걱정도 되어 이를 물어 가며 결과를 쫑긋하니 반창고를 떼어 내자마자 분출하던 인고의 산물 화농 주머니가 터져 나오고 이걸 어떻게 참았냐고 한 마디 건네는 의사선생님 말씀 떨어 지기도 전에 혼절아닌 혼절을 하고 말았고 

 

생살을 째었으니 안 아플리 있느냐 마는 요새 맹장은 병도 아니며 배를 가르고 간을 떼어 낸 중증 환자도 있으니 고만한 일로 더는 유난스레 굴지 말고 지긋하게 참아 보라고 이구동성 한 마디씩 보태는 바람에 아프단 소리 한 마디를 제대로 못하고 이 지경이 되기까지 이런저런 눈치를 보며 아득아득 견딘 날들이 서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하여 죽었다가 부활한 기색으로 입원 처방을 포상처럼 받고 기세등등 5 병동으로 올라간 것이렸다 엄살로 치부하며 한 마디씩 보태던 식솔들 보란 듯 참았던 신음의 포자들이 매복한 곳을 슬금 기어 나와 해괴한 자긍심까지 유발하며 에고 나 죽네 소리를 거푸 뇌이며 고통을 잘 참아낸 자로서 가당찮은 유세를 부리기 시작 하였으나 

 

다시 열린 구멍 거즈를 조석으로 바꿔 넣는데 몸을 들락거리는 치료의 공포도 정녕 못견딜 일인지라 누려 보는 유세고 나발이고 새 살 차올라 집에 만 가고 싶어 차라리 배를 좀더 째고 한방에 닦아 달라고 징징 거렸더니 지독할 화농 냄새 조석으로 코 박던 주치의 고열만 나면 쩌억 갈라 놓고 원대로 하마 주치의 버럭을 들으며 찔금 겁도 났으나 하나님 보우하사 더는 배를 가르지 않고 회복하여 그토록 그리운 집으로 돌아와 가령 배를 깔고 눕는 다거나 허리를 구부려 발톱을 깎는 다거나 땀과 먼지를 씻어 내는 사소한 몸짓 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무엇보다 새 살 차오르니 고작 바늘 귀 만한 구멍으로 소소한 감사를 가르치신 화농의 성찰 무렴하기도 하고

 

 

<일문 일답>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참는다"

 

"그래도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또 참는다"

 

참는다 참는다 하였으나

참을 수가 없는 대책없는 그리움 

어쩔래?

 

 

<예순>

 

바람 잘날 없던 

불혹도 그럭저럭 살아지고 

진부한 근성도 원만하고 지긋해진 

희끗한 밤을 뒤척여

애꿎은 夜說을 찾아 읽다 

아직 마른 침이 꼴깍 넘어 가고 

목덜미를 오지게 물던 격렬을 기억하며

모골이 쭈볏하는

두근두근 아랫도리 내심 흐뭇하고 

열 여덟 풋내 나는 애송이 보다

더 뜨거운 춘정을 모색하는 

예순발칙하고 맹랑한

 

 

<산수유 꽃 가로되>

 

이 울줄 알면서도 

속절 없이 터져 보자고 

부신 산경 조차 외돌아 앉아 

가로되

오냐이 순간 

믿을 것이라고는 

동지섣달 시린 밤 품은 

기나긴 연심 밖에 더 있겠느냐

달포 즈음 별리의 치도곤 두렵지 않으나 

다붓다붓 저 노란 빛들 무시로 그리울 적에

야트막 구릉을 쨍쨍 울려 가며 

가로되

.

 

++++

 

 

***동우***

2017.02.14 04:27

 

전민선 시인께서 몇편의 근작시를 보내왔습니다.

거듭 세번의 퇴고(推敲)를 거처 세번의 메일로 보내 준 시편들.

몇 번의 퇴고(推敲), 시집에 인쇄된 것은 시인의 원의(原意)와는 사뭇 달랐던가 봅니다.

 

시덥지 않은 자의 어줍잖은 감평(感評)을 늘어 놓습니다

 

<눈부신 전모 5>

 

백두대간 폭설에 갇혀서도

앞 산 하나를 맞잡아 옮기고

기쁨과 슬픔으로 울던 하심(下心)의 세월

웅숭깊고 무량한 것에도 기쁨과 슬픈 하심의 세월 품고 있으리다.

앞 산하나 맞잡아 옮길만한 역발산기개세에도...

 

그건 필경은 돌아가 묻힐 자연인가요.

 

 

<누이의 口傳을 듣다>

 

간간 펑펑 울어라 일생 아무도 몰래 훌쩍이지 말고.

 

영희가 생각난다.

<우는 것이 목숨줄이라 했것다그러면 나도 울어야겠다이제야말로 정말 울어야겠다쪼글치고 우는 울음말고 온옴 버둥대는 울음 울어야겠다세상천지 집어삼키고도 남을 울음 울어야겠다나는 다리를 죽 편다드디어 첫 울음소리가 힘차게 터져 나온다. -'영희는 언제 우는가공선옥 ->

 

 

<율동리 통신

 

앞 산 뒷 산 저 꽃 이 꽃

제풀에 팡팡 꽃 폭죽 터졌으나

꽃도 혼자보니 별 재미가 없다며

저 꽃 이 꽃 이울기 전 얼핏 다녀 가라네

꿈이라도 좋으니 그리 한 번 다녀 가라네

 

삼랑진 율동리의 이쁜 여인 강희님.

내게도 다녀가라시던데 꽃 얘기는 없으셨던데요.

 

어리님도 강희님도 그립습니다.

 

 

<죄의 날마다>

 

구두만 반짝 닦아 놓고 죄의 날마다를 살았습니다

그 분이 비록 부모님일지라도 긴 병에 효자 뉘 있으리오.

죄라고 여기는 그 마음밭 하나가 곧바로 지극한 사랑이외다.

감사의 아버지그리운 아버지 저는요 죽도록 행복했습니다.

 

나 간 후에 내 아이들 저렇게 말해준다면 내 주검이 감응하여 감복할 터.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이별은 이별이 아니라오시니시인의 부녀 사이 생사의 경계는 없으리.

 

 

<5병동 잡설>

 

우리 삶지극히 소소한 것으로 기꺼워하고 또는 슬퍼하고...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그것으로 사람은 살아지는게지요.

맹장 떼어내는 것포경수술 따위에 비하면 대수술.

엄살이 아니오이다.

소소한 감사를 가르치신 화농의 성찰이 무렴하기도 하신 시인이여.

 

 

<예순>

 

두근두근 아랫도리 내심 흐뭇하고

열 여덟 풋내 나는 애송이 보다

더 뜨거운 춘정을 모색하는

예순발칙하고 맹랑한

 

옐로우 일루전내 것도 만만치 않으리이다.

예순 짜리가 그러할진데일흔 짜리의 발칙하고 맹랑함은 또 어쩌리오.

 

 

<산수유 꽃 가로되>

 

다붓다붓 저 노란 빛들 무시로 그리울 적에

야트막 구릉을 쨍쨍 울려 가며

가로되

..

 

맞소이다.

그립지 않은건 모두 무효.

 

그나저나 시인이여.

이토록 적막강산자주 들러주시우.

 

 

***어리***

2017.02.16 21:33

 

어줍잖은 것을...

이렇게 주봉에 걸어 주실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는^^고맙단 말 아니 하는 거라기에 생략~~^

그러나 저는 당신이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얼마큼이라고 물어 주십시요~숨도 안쉬고 하늘만큼땅만큼 하리니~

병인 곁에서의 삶이란 그야말로 허공을 사는 일..당신이 물려주시는 어묵꼬치를 물고

철없는 누이가 되어 활보하고 싶던 부산 땅..언제나 가게 될러니 올 겨울은 또 글렀습니다

 

오라비풍광이 아름다운 곳에서 호객을 하며 사는 맹랑한 누이를 다 잊지 마십시요.. 살아서는^^

허덕이며 기록한 것들이나니 그저 잘했다고 쓰다듬어 주십시요 세상 사람들 다 비웃어도^^당신만은.

다음에도 다시 어설픈 잡설이 세상에 나오며는 그 누구보다 당신에게 먼저 제일 먼저 바치오리다

기다려 주시겠지요?

 

ps. 오라버니의 보석 비니미니 한참 들여다보았습니다참 이쁩니다저도 리니 할미노릇 저리게 기쁜 여인네랍니다. ~~^^

 

***동우***

2017.02.17 04:50

 

허공을 사는 심란함 속에서 허덕이며 기록한 것들.

그래서 더욱 귀한 것입니다.

칸나의 붉음은 이제 소박한 노숙함으로 그 깊이를 더합니다.

몇 번이나 지껄입니다엿장수는 엿을 팔고 농사꾼은 농사를 짓고 장사꾼은 장사를 하고 시인은 시를 써야지요.

어리님의 시아무렴기다리고 말구요.

할비노릇 할미노릇... 그나마 살만한 우리 세상입니다그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