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체홉]]
<티푸스> <베로치카> <우수>
<티푸스>
-체홉 作-
***동우***
2015.07.05. 05:06
몹시 앓아 보았습니까?
젊어 겪는 病은 일종의 망아적(忘我的) 경험일겝니다.
젊은 육체는 병을 매우 부당하고 낯선 것으로 인식하지요.
그 무도한 침입자로 인한 타아적(他我的) 경험에 대하여 젊은 의식은 성을 냅니다.
늙어야 육체에 깃든 그 병의 당위로움을 깨달아 쬐끔쯤 병에 대하여 관대해지지요.
내가 아프면 세상이 아픕니다.
내가 신음하면 주위의 온갖 사물들이 함께 신음합니다.
아프기 전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입니다.
육신의 낭패스러운 즤 꼬라지가 서럽습니다.
마구 화가 솟구칩니다.
멀쩡하였던 주위의 것들이 괜히 역겹습니다.
위대한 작가라는 그늘에 가려졌지만 체홉은 본시 의사입니다.
티푸스.
클리모프 중위의 환각과 헛소리.
그것은 발진티푸스의 전형적인 증세라고 합니다.
그렇게 심하게 앓다가 병마로 부터 벗어나 아픔이 사라졌을때, 그것은 부활의 기쁨입니다.
<아마도 최초의 인간이 창조되어 처음으로 세상을 보았을 때 느꼈음직한 끝없는 행복감과 생명의 환희가 그의 온 존재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충만하게 채웠다.>
병에서 벗어난 내 몸처럼 세상도 더불어 부활합니다.
그토록 어둡던 사물들도 긍정의 기쁨으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의사가 나타났을 때 중위는 의학이야말로 얼마나 훌륭한 일이며 의사는 또한 얼마나 친절하고 멋진 분인가 그리고 사람들 모두가 얼마나 착하고 흥미로운 존재들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토록 사랑하던 누이가 자신으로부터 전염된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애통함도 병마로부터 놓여난 그의 동물적 기쁨을 꺾지 못합니다.
<그 아이가 어디 있어요? 숙모!" 이미 클리모프를 생각할 정황을 잃은 노파는 오로지 자신의 슬픔에 빠져서 말했다. "너에게 티푸스가 전염됐다. 그래서..... 그래서 죽었단다. 장례를 치른 지 삼일 째야" 이 무시무시한 뜻밖의 소식은 클리모프의 의식 속으로 온전하게 전달되었지만 그것이 아무리 무섭고 강력한 것일 지라도 회복기의 중위를 가득 채우고 있는 동물적인 기쁨을 이기지는 못했다. 그는 울며 웃었고, 이내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고 투정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누이를 잃은 고통이 비로소 그를 엄습합니다.
<일주일이나 지나서 겨우 잠옷 차림으로 파벨의 부축을 받으며 창가에 다가간 그는 음울한 봄날의 하늘을 바라보며 근처에서 낡은 전차 레일이 킁킁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심장이 고통으로 찌그러지는 듯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창틀에 이마를 기댔다. "난 왜 이리 불행한가!" 그는 중얼거렸다. "하느님, 나는 왜 이리도 불행합니까!" 그리하여 그의 기쁨은 일상의 권태와 돌이킬 수 없는 상실감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남의 아픔은 내 것이 아닙니다.
본시 그것이 산 것들의 생명현상입니다.
<생명현상은 그 개별적 생명체 내부의 현상이다. 생명은 뒤섞이지 않는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수 없고, 이 건너갈 수 없음은 생명현상이다. -김훈->
아무리 드높은 정신으로 육체를 고무해 보아도 사람은 개별적 육체에 종속된 존재입니다.
병든 자를 함께 아파하는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고 중생이 아프면 함께 아픈 이는 부처입니다.
사람은.
육체에 갇혀있으면서도 자각과 이성과 상상력이라는 천형을 가지고 있으므로 여늬 동물보다도 훨씬 더 슬픈 존재입니다.
***홍애***
2015.07.07 03:30
삭제된 댓글입니다.
***┗동우***
2015.07.07 04:55
아네요! 홍애님.
나 앓고있는거 아니에요.
체홉의 '티푸스' 독후감상이랍시고 지껄인거랍니다.
홍애님의 행복한 나날.
오키나와로 부터 돌아와 안착하신 하치오지시의 근황은 내 손안에 있다오. ㅎ
책과 음식들과 친구들에 들러쌓여 낙낙(樂樂)하신 홍애님을.
블로그도 그러려니와, 모바일 특히 페이스 북에서..
호호야님과는 오히려 그 쪽에서의 교류가 활발하시고.
참, 그곳에서 접하는 파리대학의 하나양의 기특함은 호호야님의 따님 자랑 조금도 과하지 않아요..
장학생, 교환학생, 장학금...
나는 눈팅 모드에 푹 잠겨있는 게으름이오나, 댓글 없더라도 두루두루 내 부처님 손바닥입지요. ㅎ
여기는 이제부터 장마라는데 그곳은 벌써 장마 시작인가보지요?
일본 땅, 늘 홍애님의 장밋빛 나날이시기를.
조교수님 더불어.
***설레임***
2015.07.07 07:18
내 고향처럼 푸근하게 왔다갑니다
글맛이 맛있는 식사처럼 달콤합니다
그 만큼 그리운 것이겠지요
매출은 높은데 몸이 힘이 듭니다
제법 많은 비가 저를 위로하듯 내리고 있습니다
때론 비도 보약이 되는듯해요 그나마 쉴 수 있어서요
대충 읽는 글이라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면해요
여름이 지나면 저도 봄날을 맞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버스안에서 몇자 적어봅니다
동우님 늘 건강하세요
***┗동우***
2015.07.08 05:18
새로운 사업 바쁘신 근황은 잘 알고 있어요.
매출이 높다는 말씀 없더라도 몸이 힘들다는건 그만큼 사업이 성공한 것이라는 방증이겠지요.
독서 좋아하시는 분이 책읽으실 여가 내기도 힘드실텐데, 이 곳에서 접하는 글맛이 고향처럼 푸근하시다니 마음이 참 좋습니다.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건강 챙겨가면서.
건안하심을 기원합니다, 설레임님.
<베로치카>
-체홉 作-
***동우***
2015.07.06. 05:35
체홉의 베로치카
지성과 감성을 고루 갖춘 훌륭한 청년 '이반 알렉세예비치 아그뇨프'.
아름다운 시골의 매력적인 처녀 베로치카 가브릴로브를 향한 호의도 적지 않을뿐더러 여자에 대한 이해의 눈길도 이토록이나 깊건만.
허 참, 이런 멍청한 총각을 보았나.
<'너무나 창피하고 괴로워서 죽고 싶은 심정일 거야! 맙소사. 세상은 온통 생명과 시와 의미로 가득해서 바위조차도 감동시킬 정도인데, 나는..... 나는 이렇게 멍청하고 칠칠지 못하니!'>
이 쑥맥아, 진짜배기 사랑이란 본시 맹목(盲目)이거니와 영영 이별하는 순간에 무얼 재고 따지고 할 겨를이 있을꺼나.
이성(異性)의 사랑고백이 그리도 생경(生硬)하고 느닷없이 접한 여자의 열정이 그리도 당황스럽던가. 이 사람아.
<이반 알렉세이치는 홀로 남겨졌다. 그토록 그의 마음에 들었던 한 소녀가 방금 전에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으며, 그가 그 고백을 그다지도 서툴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생전 처음 인간의 선의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경험으로 깨우치게 되었다. 상식 있는 진실한 인간도 자신의 선의에 반하여 가까운 사람에게 까닭없이 가혹한 고통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베라가 보이지 않게 되자, 그는 소중하고 친밀한 무언가를 잃었으며 그것은 앞으로도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의 한 부분이 베라와 함께 미끄러져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토록 헛되이 괴로워했던 시간들도 이제는 다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었다.>
영혼의 무기력.
옥시톡신의 발호를 억제하는 좌뇌의 화학작용.
파토스를 배신하는 로고스의 횡포.
교육과 제도와 습관에 순치된 조로증(早老症).
<자신의 괴이한 냉담함의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것이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명백했다. 그는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것은 영리한 인간들이 종종 과시하는 그런 이성적인 냉담함도, 자아도취적인 바보의 냉담함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영혼의 무기력, 아름다움을 깊이 자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일 뿐이며 또한 빵 한 조각을 얻기 위한 지저분한 싸움과 독신의 하숙방 생활, 그리고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얻어진 조로증에 다름 아닌 것이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싶다는 욕망이 불같이 일었다. 그리고 다시 발길을 돌린 것을 이반 알렉세이비치는 기억한다.>
이 사람아, 자네의 그 괴이한 냉담함을 깨달았으면 지체없이 베로치카를 쫓아갔어야지 왜 발길을 돌렸는가.
알렉세이치와 베로니카.
저들은 너무나 서툰 연인들이었습니다.
체홉은 연애경험이나 좀 더 시간을 주던지하여 밀당수법을 익히게 하여 저 한쌍의 선남선녀에게 사랑의 완성을 선물했어야지요.ㅎ
자연의 신비한 풍광과 선한 사람들과 어울어진 한 젊은이의 건강한 심리를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하였으면서 말입니다.
먼 훗날.
아름다운 고장의 아름다운 처녀 베로니카를 회억하는 알렉세이치의 쓸쓸한 심사가 아릿하게 슬픕니다.
사랑의 추억.
언제나 어떤 안타까움이 미묘한 그리움으로 내재되어 있는가 봅니다.
이 낫살의 나로서도 알수없는 어떤... ㅎ
<우수(憂愁)>
-안톤 체홉 作-
***동우***
2013.01.27 06:33
"Everything will be OK, let it go"
티팟님에게서 들은 영어문장입니다.
마부 요나에게 저 한마디 해 줄 뉜가가 그리 없을까?
으흠, 나 또한 부지기수로 그 '뉜가'였을 것.
천의무봉의 단편 작가, 체홉....
인간은 본시 외로운 동물.
체홉의 이 소설 ‘우수’는 꼭 읽어야 합니다.
***teapot***
2013.01.29 03:25
호호호호~
***송현***
2013.01.27 08:11
저도 이 작가 아주 좋아합니다 ~
따뜻한 시선의 정이 많은 작가 같아요
귀여운 여인이라는 단편도 재미있어요
***동우***
2013.01.28 05:17
내게도 체홉은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이며, 최고의 희곡작가입니다.
말씀하신 '귀여운 여인'은 단편소설의 백미(이곳에도 포스팅).
그의 희곡 '벚꽃동산'은 내가 읽은 최고봉의 희곡, 바냐 아저씨,갈매기. 세자매등도..
모파상과 오 헨리도 빼어난 단편작가라고 평가되지만, 그중 체홉이 최고입니다. 내게는. ㅎ
***eunbee***
2013.01.27 13:57
오래전 기억도 가물거리는 어느 세월에 읽고는, 나이 한참 들어 그 글을 찾았었는데,
동우님 덕분에 오늘 그리도 다시 읽고 싶던 이 글 읽습니다.
내가 16년동안 타고 다니던 차를 폐차처분해야 됐을 때, 나는 이 단편과 조침문을 생각했지요.
나를 16년동안 돌보며 함께 다니던 차 속에서 이 마부처럼 내차랑 대화를 참 많이도 했거든요.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거나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동우님, 고맙습니다. 이 블방이 누군가에겐(특히 나에겐) 요나의 말입니다.
반짝이는 눈을 가진 말. 귀 기울여주고 입김 불어주는......^^
***동우***
2013.01.28 05:33
은비님 부탁말씀 듣고 책을 꺼내 다시 읽었어요.
그런데 텍스트 파일이 없으니 이를 어쩌나?
그래서 책을 펴놓고 자판 두드려 베껴 쓸 마음까지 먹었다우. (은비님의 부탁, 아니 명령인데. 어쩌겄수)
마침 텍스트파일 업어올수 있어서 그 수고까지 이르지는 않앗지만.
체홉의 이 소설 이후, 이와 같은 상황을 그린 소설들 제법 있었지 싶어요.
속에 가득한 그 슬픈 마음 덜어 낼 길 없어 미물을 상대로 중얼거리는..
퍼뜩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 작가의 단편에서도.
현실 속에서도 얼마나 많이 접하는지요.
술만 조금 취하면 남이야 알아듣던 말던 중얼중얼 끝도 없이 주절거리는 이덕* 라는 나보다 열 살 위의 선배가 있었어요.(지금의 내 나이보다는 젊었었지만)
무슨 말인지 종잡을수 없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죄 과거의 어느 빛나는 한 시점의 상황과 사람들과 그런 것들....
상대를 의식한 대화가 아니라, 그야말로 끝도 없는 독백...
나는 그냥 물끄러미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하지요.
왠지 가엾어서...
물론 귀찮기 짝이 없어 빨리 주석을 작파해버리고 싶지만.
차칸에서도 자주 그런 사람 보게 됩니다.
멍하게 차창 밖을 내다보면서 뭔가 중얼중얼 거리는 사람.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
얼마 전 노인의 히키코모리 경향에 대하여 말 한 것 같은데.
외로움이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그토록 파묻혀 중얼거리게 하나 봅니다.
노인에게는 이제 도달해야 할 미래가 없으므로.
오래 전 용두산 공원의 한 노인.
벤치에 꼰짝않고 앉아서 보도블럭의 어느 한 지점을 눈도 깜빡이지 않은채 몇시간 동안 고착된 시선을 유지하는 것을 보았어요.
나야 슬슬 걸어 다니면서 다시 와 보고 다시 와 보고 하면서 목격한 것이지만.
아아, 은비님.
나도 이제 그 노인이 되었나요?
그러나 웃어요, 우리.
ㅎㅎㅎㅎㅎ
***eunbee***
2013.01.28 09:49
자판 두드릴 각오!까지 하셨다니... 내 명령의 억양을 좀더 강하게 할 걸.ㅋㅋ
고맙습니다.
그리고 시름겨움도 함께 웃을 수 있는 벗이니... 더욱 고맙습니다.
***teapot***
2013.01.29 03:25
외로워도 외롭다 말할 수 없는 그 외로움~
이 글의 주인공의 위로 받고자하는 마음,
우리들 모두에게 있는 것 같아요~그쵸?
***동우***
2013.01.29 05:32
외로움, 단절, 소통. 관계...
이상하게 요즘 내 포스팅의 주제가 자연스레 그런 쪽으로 흐르는듯 합니다.
왜 이런 표현도 있잖아요 티팟님?
외로움이 입으로 코로 막 쏟아질것 같다는..
문득 생각건대 아마 술이 그래서 생겨난건 아닐런지? ㅎ
술이 외로움을 받아주는 그 대상으로서..
유행가 가락.
술 한잔에 고독을 말아 마시고... 하하, 맞나?
***teapot***
2013.01.29 06:52
"술 한잔에 고독을 말아 마시고"~~~ 그런걸 할 줄 모르니~원.....ㅎㅎㅎ
***동우***
2016.12.24 02:13
<'말이라도 가서 볼까.' 요나는 생각한다. '언제라도
아들이 죽은 지 한 주일이 되어 오지만, 그는 아직껏 누구에게나 아들의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말하려면, 요령 있게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돼서 병에 걸렸는가, 어떻게 고통 당했는가, 죽기 전에 뭐라고 말했는가, 죽을 때는 어떠했는가, 이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장례의 광경이며, 죽은 아들의 옷을 찾으러 병원에 갔을 때의 일까지 말해야 한다. 시골에는 딸 아니씨야가 남아 있었다…… 그 딸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 지금 그가 해야 할 말은 얼마나 많은가? 이 말을 듣는 사람은 감동한 나머지, 한숨을 몰아쉬며 가슴아프게 생각할 것임에 틀림없다. 상대편이 여자라면 더욱 그렇다. 여자라면, 가령 아무리 바보라 해도 단 두 마디에 벌써 울음을 터뜨리고 말리라....>
-독서 리뷰-
[[체홉]]
<정조> <간이2층이있는집> <사랑에대하여> <약혼녀> <백조의노래>
<정조>
-체홉 作-
***동우***
2013.06.18 05:48
자신을 지극히 연모하는 한 사나이의 끊임없는 구애.
정조와 윤리관이라는 규범적 테두리 안에 갇힌 요조숙녀의 외피(外皮)는 짐짓 그것을 외면할수 밖에 없는지.
내심으로는 사내의 맹목적인 대쉬의 대상이 되는 자신의 매력에 대한 나르시즘의 달콤함 즐길지언정.
그러나 불가항력이로세.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인간(여성)의 원초적 파토스를 어이 거역할수 있으리.
<적이 얼마나 억세고 완강한가를 그녀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런 적과 맞서서 싸우려면 불굴의 정신과 힘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의 혈통과 교육과 생활은 그녀에게 싸워서 이길 만한 힘을 주지 못했다. '미친 년! 더러운 년! 너는 본래 그런 여자였구나!' 그녀는 자기 자신이 나약함을 저주했다. 그녀의 정숙한 미덕은 무기력으로 말미암아 여지없이 모욕을 당하고 뒤흔들렸다.>
'루반체프'의 아내, '소피아 페트로브나'의 저 나약한 정신이나 그녀의 파토스를 향하여 돌을 던질수 있는 여성제위 있으면 나서보시라.
(전에도 말한바 있지만) 남녀가 결혼이란 제도에 의하여 일생을 오로지 한 사람에게 엮어져야 하는, 그 지상(至上) 덕목이라는게 가끔 나는 무척이나 어색한 것으로 느껴진다네.
인간성에 대한 폭압이거나, 인문적 위선이거나....
인류 역사적 경험에 의하여, 남녀를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어놓아 사회적 안정을 꾀하고자하는 안정지향(安定志向)적 타협의 편의주의가 아닌지.
무슨 영화(제목이 생각날듯 말듯)에선가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세리프를 던질때 나는 좀 웃었지.
여보게 유지태군, 사랑이란 변하는 것일세.하고
사랑의 감정이란 인간성에 깃든 파토스에 근거하는 바의 자유로움, 가변적인 걸세.
일편단심 민들레는 사랑이 아닐세.
그건 필경 도그마이거나 이념이거나 연민이거나 체념이거나 도피(자유로부터의 도피)일세.
하하, 여보게들.
인간성의 속성에 비추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는 말이지, 내가 무슨 자유방임의 방종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은 결코! 아닐세. <나와 같이 윤리적 제도에 직수굿한 겁쟁이(?) 소시민도 드물걸세.. ㅎ>
'체홉'의 '정조'를 읽고서 또 엉뚱한 사설 늘어 놓았네. 하하하
***정연***
2013.06.18 22:20
동우님.
말씀하시는 그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고금의 뭇 여성상들.
카르멘 보바리 노라 테스 캐시 스칼렛 윤심덕 안나 사다.....
아, 동우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지 않아요? ㅎㅎㅎㅎ
***동우***
2013.06.19 04:45
하하, 정연님.
파토스, 그 카오스의 감정밭에 빠져버리는게 어디 비단 여성뿐이리까.
이성에 함몰되는 호르몬의 작용(옥시톡신이라 하던가요?)...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그 심리.
남자도 남자를 모르기는 매일반. ㅎㅎㅎ
***eunbee***
2013.06.19 03:33
이런저런 이야기할 것 없이 저 여자의 영혼속엔 우선 '사랑'이란 아름답고 거룩한 단어가 어울리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나 깃들어있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애나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라도 있다면,
자기의 이기적인 만족(뻣뻣하기 그지없는 자만)에 너울대며, 자기를 그토록 사랑하는 남자의 초췌와 고뇌 앞에서 노래가 나올 수 있을까.
정조는 커녕 일말의 예의도 간직하지 않은 여자가...뭔..ㅎㅎㅎ
그 알량한 정신 속에 가두어 둔 그 어줍잖은 정조에 앞서,
영혼 속에 흐르는 진정한 '사랑'이라는 것이나 깨우쳐 보려무나.
자신의 마음 흐름을 의심해 보는 척하지만, 그것 또한 거만스런 자만일 뿐.
저 여인이 앞으로 앞으로 자꾸만 그무엇을 향해 다가가더라도, 남자여, 이제는 그 손을 뿌리치거라.
아뿔사, 그 남자의 사랑은 그러함에도 진정 두팔벌려 맞아드리게 될 정열인 것이라면... 모르겠다.
제대로 읽지 못한 내가 이렇게 흥분하는 것도 집어치우자.
오로지 저 단편에서의 안톤 체홉은 무얼 말하려는지는 한참이나 삐져버린 내겐 그리 중요치도 않고, 그걸 꼭 짚어내어 알 생각도 없으니 찬찬히 다시 읽고 싶지도 않다며...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오의를 한참이나 빗겨갔음을 독자인 나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괜시리 부려보는 땡깡인지도 모른다. 허허헛
***동우***
2013.06.19 05:07
아, 은비님 화나셨구나.
소피아의 오로지한 저 자기중심적 감정놀음에.
자신을 오로지 내던지는 남자의 헌신의 사랑을 대하는 무례함...
이성이 제어할수 없는 정염이나 정욕의 파토스일지언정 사랑이라는 이름의 순수함에 대한 모독...
땡깡 아니라오, 은비님.
그 怒함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수 있다오. ㅎ
그냥 여성 심리의 미묘함을 그린 체홉의 솜씨로서 읽어주시기...
남성 심리라고 썩 다를바도 없겠지만.
은비님, 이 소설에서 여성심리를 묘파한 이런 대목 재미있지 않아요?
<그리하여 남편이 돌아온 것이 별로 반갑지 않고, 식사를 하는 남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의 마음속에 남편에 대한 증오심이 갑자기 싹트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배고픔과 피로가 겹친 남편은 미처 수프를 기다릴 사이도 없이 소시지부터 먹기 시작했다. 그는 게걸스럽게 관자놀이를 실룩거리고 쩝쩝 입맛을 다시며 소시지를 먹고 있었다. '저런! 어쩌면 저렇게도 망칙스럽게 씹어먹고 있을까. 나는 저분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지만....' 하고 그녀는 생각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자신을 향한 브론스키의 열정을 접하고 난후 안나는 모든게 달리 보이기 시작하지요.
그동안 멀쩡하게 보아왔던 남편의 귀를 보고는 <그런데 저 이의 귀는 왜 저렇게 생겼을까? 머리를 너무 짧게 깎아서 그렇게 보이는 걸까?> 하고.
<좀 전에 서러워라 늙는다는 것은> 이라는 남미작가의 단편을 포스팅하였는데.
늙음의 그 분별이라는 것이 좀 쓸쓸하였어요.
***저녁산책***
2013.07.08 10:27
ㅎ 체홉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재미있습니다.
웬지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마냥 단순한 여인의 인격이 조금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려깊은 여인같아 보이진 않아요.
"그녀는 이러한 자기의 정숙함과 결단성에 스스로 감동되어 세 번이나 거울 앞에 가서 자기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이런 부분도 조금 미소짓게 합니다,ㅎ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만든 신조어 '희망고문'이란 말처럼 자신에게 대쉬하는 남자에게
절대 '노'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감정을 가지고 노닥거리고 즐기는 일면이 보이는 듯한..
이런경우 사랑의 지순함과 순수함이 참 아깝지요.ㅠㅠ
그간 제가 블로그를 소홀히 하면서 게으름을 피우는 동안 동우님 글목록이 아주 풍성해 졌네요!
잠깐의 휴식에 조금 재 충천한 기분이 들어 오늘은 이곳 저곳 들여다 보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우***
2013.07.09 04:42
저녁산책님.
소피아의 가벼움, 이기심, 자아도취, 단순함, 허영심...
은비님께서는 그녀가 얄미우시고, 저녁산책님은 슬몃 미소를 지으시는군요.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여심이란 저런 면이 없지 않겠지요.
아니 실례. 남성의 심리도 마찬가지...ㅎ
체홉의 '귀여운 여인'
올렌카는 소피아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고 순진하였지요.
그 또한 여심..
정말 저녁산책님의 포스팅이 전보다는 뜨아하신듯.
음악에 대한 게으름은 아니실터인데...
좋은 하루, 저녁산책님.
<간이이층이 있는 집>
-체홉 作-
***동우***
2014.01.11 05:01
스스로 느끼건대, 나는 기질적(ㅎ)으로 체홉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테네시 윌리엄스도 더불어)
주장하고 부정하고 고발하려는 주의(ism)라거나 사상 나부랭이.
체홉은 생각 따위(혹은 정서)를 강요하려 하지 않느다.
그가 주는 감동은 내 허영이 폼잡지 않아도(?) 좋을 정직한 감동이다.
따뜻하게 감성에 스며들 뿐이다.
[나에게 가장 신성한 것은 인간의 육체, 건강, 지혜, 재능, 영감, 사랑, 절대적 자유, 어떠한 형태로 나타내어지든 간에 모든 폭력과 거짓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이 내가 대예술가라면 지키고 싶은 강령입니다.]
따뜻한 마음과 인간성의 성실함..천래적인 예술가적 테크닉..
그의 무대는그대로 인생의 詩...
벚꽃동산과 갈매기와 바냐아저씨 그리고 세자매...
내가 전설처럼 흠모하였던 스타니 슬랍스키와 모스크바 예술극장..
희곡뿐이랴. 수백편의 빼어난 단편소설들.
세모녀가 살고 있는 '간이이층이 있는 집'
애잔하게 그리운 사랑의 추억... 뉘에겐들 없으랴.
내 꼬마 천사, 미슈스.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eunbee***
2014.01.12 01:09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꽃 핀 호밀밭 위로는 석양의 그림자가 길게 뻗히고 있었다. 정성들여 심은 키 큰 왜전나무 노목이 흡사 두 개의 벽과도 같이 줄을 지어 서서 어둑어둑한 가로수길을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었다. 나는 어렵잖게 울타리를 타고넘어 땅에 4, 5센티가 깔려 있는 왜전나무 침엽에 발을 미끌어뜨리면서, 그 가로수길을 걷기 시작했다. 주위는 어둑어둑하고 조용했다. 다만 높은 나뭇가지 저쪽에서 눈부신 황금빛 햇살이 비쳐 거미집을 무지개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침엽수가 숨막힐 정도로 강한 내음을 풍기고 있었다>
'지난해의 낙엽이 발 밑에서 슬픈 소리를 냈고... 슬피우는 꾀꼬리는 늙은 새,' ㅎㅎ 뭔가 슬퍼지려나? 했어욤~ㅋ
리이다와 실갱이를 벌이는 이야기는 별로 재미없고....ㅋㅋㅋ
정많고 가냘픈 제냐와의 가슴떨리는 순간, 그리고 이미 예상되었던바, 드디어 뻬쩨르부르그로 떠나는..
그때를 서술한 아름다운 몇몇 구절들...
우리 젊은날 역시 간이이층이 있는 집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그 따스한 불빛과 눈빛 고운 여인의 그림자를
안고 있지 않을까요. 나는 소설을 읽어도 이렇게 내가 읽고 싶은 곳만 기억 속에 담아요.ㅎ 리~터~엉 같게시리.^&^
***동우***
2014.01.12 05:36
문장의 지문과 대사에서 은비님의 감성에 접수되는 그 분위기가 좀 만져 진다우, 내겐.
이런 소설(애러비라던가...)을 좋아하시는 은비님의 그 감수성을 나는 사랑합니다. ㅎㅎ
핫핫, 엉터리같게시리.
은비님의 우뇌도 그렇거니와, 좌뇌쪽 머리도 영특하시고.
<약혼녀>
-체홉 作-
***동우***
2014.02.15 04:01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러시아 문학가 다섯사람의 이름이 자랑스레 불리어졌습니다.
푸쉬킨, 톨스토이, 토스토예프스키, 체홉 그리고 나보코프.
앞의 네사람이야 당연히 그러려니 생각되었지만, '롤리타'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이름은 좀 뜻밖이었습니다.
미국으로 망명하여 영어로 작품활동을 한 문학가가 고골리, 투르게네프, 고리키, 솔제니친, 파스테르나크등 기라성 같은 러시아 작가들을 제치고. (나보코프도 빼어난 작가임은 틀림없지만)
그중 체홉은 지극히 순정(純正)한 문학가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게서 무슨 주의나 사상을 찾으려 했다가는, 그의 주옥같은 단편들과 희곡 읽는 재미가 반감될겁니다. (조만간 그의 불후의 명작들인 '희곡' 몇편 포스팅하겠습니다.)
<나에게 가장 신성한 것은 인간의 육체, 건강, 지혜, 재능, 영감, 사랑, 절대적 자유, 어떠한 형태로 나타내어지든 간에 모든 폭력과 거짓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이 내가 대 예술가라면 지키고 싶은 강령입니다.>
체홉은 섬세하게 인간과 세상살이의 정경(情景)을 묘사하여 인생 이야기를 우리에게 조곤조곤 들려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래 이문열의 해설이 나는 좀 못마땅합니다.
나쟈가 벗어나고자 하는 삶의 양태가 충분히 묘사되어 있건만, 사회적 의식이니 주관적 자아가 어쩌니 저쩌니..ㅎ
++++
이문열의 작품해설
< 애처롭고 아름다운 눈뜸의 이야기>
무심과 둔감은 우리의 시선을 삶의 껍질에만 묶어놓는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때로 날카로운 일섬 혹은 희미한 기미로 우리의 무심과 둔감을 파고든다. 그 일섬 혹은 기미를 우리의 의식이 포착하게 되는 것이 눈뜸이고 그 눈뜸의 연결이 성장의 과정이라 말할 수 도 있다.
'약혼녀'는 변화없고 무위한 일상에 길들여져 의미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시골 아가씨가 어떤 계기로 눈을 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단편이다.
여주인공 나쟈는 재산에 기대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삶, 세속화된 종교, 고착된 세계관, 무위와 침체를 안락과 혼동하고 기성의 가치관을 맹신하는 것만이 교양인 줄 아는 집안에서 자랐다. 그리고 무심과 둔감으로 그 세계에 안주하며 역시 비슷한 부류의 남편감을 골라 약혼하고 현재와 동일한 미래를 반복하려다가 갑작스런 눈뜸으로 과감히 낡은 알껍질을 깨고 새로운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
나쟈가 박차고 나온 세계는 낡고 부패한 것이지만 또한 안정되고 확실한 세계이다. 반면 그녀가 새로 향하고 있는 세계는 기실 미지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점에서 나쟈의 눈뜸은 애처롭다. 인형의 집을 떠나는 노라처럼.
하지만 미지와 불확실성이 반드시 비극적인 예감과 동의어는 아니다. 세계든 인생이든 언제나 가장 아름답고 귀한 것은 바로 그 미지의 불활실성의 장막 너머에 있다. 따라서 용감히 그 장막을 헤치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 의식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움의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흔히 '약혼녀'를 체홉의 여러 명편들 둥에서도 뛰어난 작품으로 친다. 나 역시 젊을 때는 까닭모르게 가슴저려하며 읽었지만-이제와서 보니 불만이 아주 없지도 않다. 먼저 불만스러운 것은 그 눈뜸의 성질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앞에서 나름대로 해석해 두기는 하였지만 눈뜬 것이 그녀의 사회적 의식인지 주관적 자아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 때문에 그녀가 벗어나려 한 세계와 지향하는 세계 역시 애매하다. 그녀가 벗어나려 한 것이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삶과 인간에 대한 부당한 대우 같은 사회적 부조리인가, 아니면 반복적이고 부패하고 침체된 일상과 거기에 갇힌 자아인가. 그녀가 지향하는 것 또한 개선되어야 할 정의의 사회인가, 아니면 자유롭고 창조적인 자아인가.
눈뜸의 동기부여도 설명이 충분치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사샤의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반복돼 충동력이 약하다. 별로 마음내키지 않은 약혼이 동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적절하게 강조되어 있지 않다. 혹은 그 둘에 내면의 지각까지 보태져 눈뜸의 계기를 이루었다고 읽어준다 해도 그 셋을 종합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불만들은 독법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인간의 심리변화가 언제나 논리정연한 것이 아닌 만큼 체홉이 채택한 서술과 묘사의 방식이 보다 진실에 근접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작가 체홉은 , 단편의 재능이 없어 오래 고심해온 내게는 중요한 스승, 더 이상의 불만은 불경이 될 것이다.
작가 체홉에 대해서는 간략하고 주관적이나마 앞서 얘기한 것이 있기에 여기서는 덧붙여 얘기하지 않는다.
-이문열-
++++
<사랑에 대하여>
-체홉 作-
***동우***
2014.03.15 05:04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들.
남자는 궁색한 시골귀족이고 여자는 남의 아내입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상대를 사랑할뿐더러 서로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사랑을 상대에게 고백하지도 못하고 나누지도 못하는 벙어리 냉가슴들입니다.
[우리들은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일도 있었는데,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일은 없었죠. 즉, 우리들은 자기에 대해서 자신의 비밀을 폭로하는 계기가 될 것 같은 것을 무엇보다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겁니다.]
킨케이드와 프란체스카처럼 찰라의 불꽃같이 부딪는 그런 사랑은 물론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랑손님과 어머니처럼 홀로 마음속으로만 수줍게 설레이는 그런 짝사랑도 아니었습니다.
안으로만 연소되고 있는 사랑의 격정이 괴로워 죽겠으면서도, 신경쇠약으로 사랑앓이을 겪으면서도 끝내 그들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지요.
남자는 어떤 영웅적 상황이나 로또대박같은걸 꿈꾸지만 일상의 진부함 속에 그런 기적이 가당키나 한가요. 어디?
[그 칸막이 방에서 문득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쳤을 때, 우리는 그만 자제심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그녀를 껴안고,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습니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눈물로 젖은 그녀의 얼굴과 어깨와 손에 키스를 하며--아아, 우리는 얼마나 불행했습니까!--나는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때 찢어지는 것 같은 가슴의 아픔과 더불어, 나는 우리의 사랑을 방해하고 있는 그 모두가 참으로 무의미하고 하찮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상 그 사랑에 관해서 생각하는 경우에, 평범한 뜻으로서의 행복이라든가 불행이라든가 죄라든가 미덕이라든가 그런 것보다는 보다 높은, 더욱 중요한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그것이 싫다면, 차라리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 내가 깨달은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나는 마지막 키스를 하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었습니다.]
이별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겨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그제서야 후회와 비통의 눈물을 흘리는 연인들입니다.
[이제까지 사랑에 관해서 언급한 다시없는 진리는 단 하나밖에 없어요. '그것은 위대하고 신비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이 소설의 주제인가요.
그리하여 처지나 상황이나 통념이나 윤리로 속박하는 뭇 제약을 털어버리고 사랑은 기필코 성취해야 하는 거라는 체홉의 고언일까요.
[내가 지금 이 혹성에 살고 있는 이유가 뭔 줄 아시오. 프란체스카? 여행하기 위해서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아니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서 이 혹성에서 살고 있는 거요. 이제 그걸 알았소. 나는 머나먼 시간 동안, 어딘가 높고 위대한 곳에서부터 이곳으로 떨어져 왔소. 내가 이 생을 산 것보다도 훨신 더 오랜기간 동안. 그리하여 그 많은 세월을 거쳐 마침내 당신을 만나게 된 거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저와같이 사랑은 우주적인 신비라는데, 그런가요?
고개를 끄덕이는 당신.
지구별에서 하나의 위대한 기쁨을 누리고 가는 사람. ㅎㅎㅎ
<백조의 노래>
-체홉 作-
***동우***
2014.03.16 05:23
연극은 끝났다. 조명은 꺼지고 무대도 객석도 텅텅 비었다.
술이 깨어 무대 위에 홀로인 늙은 배우.
숙취는 남루하고 자괴감은 비루하고 자기연민은 애잔하다.
비통하고 광포하게 리어왕의 그 어두운 대사를 읊어라.
<"바람아 불어라 나의 뺨을 찢어라, 사납게 일어나라! 불어라! 폭포야, 용솟음아, 뾰족한 탑을 적시고, 탑위에 있는 바람개비 수탉이 물에 잠기도록 솟아나오너라- 생각같이 빠르게 할 일을 하는 유황의 불이여! 참나무를 쪼개는 벼락의 선구자인 번개여 내 흰머리를 태워라! 그리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우뢰에- 두껍고 둥그런 이 지구를 때려 납작하게 만들라! ">
아니다. 늙은 광대여.
슈베르트(백조의 노래)를 불러 눈물을 훔쳐라.
명랑한 저 달빛 아래 들리는 소리 무슨 비밀 소근 거리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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