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체홉 <벚꽃동산. 갈매기> (1,4,3,3,1)

카지모도 2019. 12. 21. 15:43
728x90

 

-독서 리뷰-

 

[[체홉]]

<벚꽃동산> <갈매기

 

 

<벚꽃동산>

-체홉 -

 

***동우***  

2014.03.17 05:07

 

최상의 희곡문학체홉의 '벚꽃동산'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나는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최고의 희곡문학으로 평가합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는 분이시라면 본문을 읽기 전 모두(冒頭)에 올린 해설을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얻은 최현진님이라는 분의 글입니다)

체홉이 무대에서 표현하고자하는 분위기를 일단 느끼시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나서 대사와 캐릭터를 음미하면서 읽어나가시면 시대와 인생과 인간을 은유하고 묘파(描破)하는 체홉의 인간적인 체취와 세련된 솜씨가 한층 마음에 닿으리이다.

얼마전 신문에서 보니까 서울에서는 무대공연 이외에 '낭독극(朗讀劇)'이 제법 유행한다네요.

 

희곡이라는 장르의 문학이라는 그 문자매체를 시청각으로 형상화하여 무대위에서 펼치는 공연.

연극 관람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무대예술은 많은 제작비가 들고 그에 따라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여야 합니다.

더불어 연출자의 해석에 의하여 한정된 무대가 희곡만이 갖고있는 문학성곧 독자의 상상과 사색의 영역을 협소하게 하는 바는 없겠는지요.

이를테면 작곡가의 절대음악에다 후세사람이 표제를 붙여 연주자의 곡해석의 자유로움에 속박을 가하는...(하하적절치 않은 비유지만.. 어쩄거나 나는 시방 무대를 전제하지 않고 상상과 사유로써 읽는 희곡읽기의 재미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소설보다는 희곡 속에서 뚜렷하게 주변에서 내가 겪었던 인물들의 모습을 봅니다.

 

체홉의 '벚꽃동산'

몰락(沒落)이라는 테마.

거기에는 비통과 애상과 함께 놀이 질 무렵의 저물녘 풍경모색(暮色)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생각건대 다자이 오사무도 '사양'의 모티프를 체홉의 '벚꽃동산'에서 얻었을 듯 싶습니다.

 

진짜배기 걸작입니다함께 읽어요.

 

***eunbee***  

2014.03.17 13:03

 

최현진님이 쓰신 해설을 읽느라아침 시력 한계에 머물렀지요.ㅎㅎ

소설보다 희곡을 더 즐기신다는 동우님 말씀을 전에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체홉의 최고의 희곡문학이라니잘 읽을 게요매매 꼼꼼이 정독으로.^*^

안톤 체홉이 농노의 후예라고요폐결핵환자였고본 희곡은 그의 마지막 희곡이라구요?

 

한국에 있는 동안 동우님 리딩북 읽으며 책읽기에 다시 불 붙었어요.

그래서 기존 소장했던 책 중 몇 권 고르고읽고 싶은 책 몇 권 사고...

파리로 우송하려고 박스 꾸리고 있어요어제 오늘.

책 박스 부치고 간다니은비엄마가 매우 좋아하네요.

 

고맙습니다동우님.

 

그런데 동우님스마트폰에서는 없던,<!--[if !supportEmptyParas]--> <!--[endif]--> 이런 것이 무언지

여기로 오면 더러더러 누워들 있어요저 애들은 뭔 말을 하고 싶은걸까요

 

***동우***  

2014.03.18 05:46

 

저런어떡해요시력한계.

홍애님도 그러시던데 여성분들의 눈이 전자파에 더 약하신겐가?

머릿속으로만 매매꼼꼼이 읽으시고 안목은 힘주지 마시고 널럴하게..

 

이번 은비님의 파리는 얼마동안이시기에 바리바리 책보따리꺼정 챙기시고.

쏘 공원 벤치 봄햇살에 잠겨 책읽으시는 은비님의 모습상상만으로도 루노아르의 그림입니다그려

 

스마트 폰으로 알고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댓글 안단다는 원칙 아시지요가끔 어기지만..)'몽상가들보셨어요?

예전에 보았는데어려운 영화이고 민망한 영화던데.

남녀의 성기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낸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요즘이사 예사롭지만그게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경지가 좋은건지는 아직은 유보..ㅎㅎ

비포 미드나잇’ 정도 수준의 섹슈얼한 대화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if !supportEmptyParas]--> <!--[endif]-->

위 암호나도 모르지요.

엔터 눌러 '줄 비움할 적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벌레들인데자주 나타나요.

HTLM인가 컴푸터 언어인 모냥인데, daum에서는 가끔 성가신 장애가 자주 일어나더군요.

 

근데 위의 본문 내 화면에는 그 벌레들 나래비 서지 않네요.

디스플레이는 각각 컴퓨터의 설정에 따르는 것인지..

내 알게 뭐유?

무시하고 걍(하하내 이런말도 씁니다은비님 땀시..) 읽어요.

 

***eunbee***  

2014.03.18 06:13

 

<!--[if !supportEmptyParas]-->

얘들이 무려 131마리나 누워있어요긴지렁이 짧은지렁이더러더러 섞여서ㅋㅋ

내가 지금 세어 봤어욤~

새벽에 일어나서 차암 쓸쓸하구나,하는 기분이 드니동우님 방에 무단침입해 누워있는 지렁이들이라도 세어야죠.

 

몽상가들봤어요그 부분은 안개처리를 해두었으니그냥 시력은 상하지 않아도 됐어요.

영화을 보고 찜해 두었더니내가 몽상한(것과는 번지수가 좀 비껴가는 영화였어요.

나는 영화나 그 무엇을 사전 인폼 없이 만나기를 좋아하니이것 역시 무언지도 모르고 본거예요.

 

파리 반년쯤 있어야 하니책을 좀 읽으려구요그 집 책은 거의 봤거든요.

읽었다고는 해도 돌아서면 맬짱 도루묵이니 다시 읽어도 되지만.

 

오늘 포스트의 동우님 댓글차암좋으네요.

항상 그러하지만.

 

***동우***  

2014.03.19 06:43

 

그 쓸쓸함 알만하오이다.

131마리의 지렁이를 세고있는 은비님의 새벽을

 

한동안 괜찮더니내게 드디어 감기가 내습했어요.

병원 가 주사맞고 독한 약 먹었더니늦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은비님.

 

***동우***  

2014.03.18 05:26

 

벚꽃동산은 무엇입니까?.

순수와 아름다움이 깃든 환상(illusion)인가요.

현실적 효용성 가득한 눈 앞의 노다지입니까.

뉜가에게는 지주와 농노라는 계급의 관념적 상징이기도 하고어떤이에게는 시대에 뒤떨어진 낡아뻐진 뼈다귀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설레이는 출발점이기도 하구요.

 

여러 등장인물의 캐릭터의 색갈은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체홉은 누구에게도 치우쳐 있지 않습니다.

사소한 일상사(日常事)를 재현시켜 보여줄 뿐입니다.

환상만을 쫓는 허황함을 비난하지 않으며물신주의를 매도하지도 않고혁명적 의식을 드러내지도 않습니다.

체홉의 어조(語調)에는 구호라던가 스릴이라던가 서스펜스와 같은 격한 극적요소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뚜렷이 보이고 짙게 느껴집니다.

인간성..사람..인성.. 성격.. 인생.. .. 진실..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

역사.. 시대..환경.. 삶을 아우러..

저변으로 흐르는 어떤 기류(氣流)..같은 것들이.

 

몰락의 그림이지만 마냥 어두운 톤이 아닙니다.

과장스럽지 않고 허위롭지 않고 속악(俗惡)하지 않습니다.

돌아옴과 떠남의 의미....

모색(暮色)의 엘레강스한 톤입니다.

 

늙은 하인 피르스를 노예근성에 쩔은 늙은이라고 혀를 차시렵니까?

그렇지만 그 또한 인생의 모습이고 내게는 그 역시 고상한 몰락의 색감입니다.

 

'사양'을 쓴 다자이 오사무는 '체홉'을 사랑하였습니다.

'사양'에서 '가즈코 ‘우에하라에게 편지를 씁니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시즘이란 말이 떠올랐습니다나에게 리얼리즘은 없습니다나는 소설가 따위를 동경하지는 않습니다갈매기의 니나처럼나는 당신의 아기가 소원인 겁니다.>

으흠리얼리스트와 로맨티스트..

 

나오지는 유서를 남깁니다.

<나는 죽는 편이 낫습니다나에게는 소위 생활능력이 없습니다돈으로 남과 다툴 힘이 없는 거에요누님나에게는 희망의 바탕이 없습니다안녕히 계세요사요나라결국 나의 죽음은 자연사입니다사요나라누나나는 귀족입니다.>

 

오사무에게는 체홉과 같이 인생을 차분하게 관조하는그런 평형감각이 확실히 부족해 보입니다.

체홉과 대척점에 있는듯한 오사무지만 그의 내면에서 나는 어떤 체홉을 봅니다.

발현되는 기질은 개별을 둘러 싼 풍토의 문제가 크리라 짐작해 볼 뿐입니다.

 

벚꽃동산은 1904 1 17일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연극학도에게는 익숙한 이름들일 모스크바 예술극장스타니슬라브스키네미로비치 단첸코..)

그날은 마침 체홉의 44번째 생일.

3막이 끝났을 때 야위고 쇠잔한 체홉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무대 앞에 서서 많은 축사와 선물을 받았고 그는 쉴새없이 기침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장례식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는군요.

몇달후인 7 4일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체홉은 죽었습니다.

독일어로 '나는 죽는다'가 마지막 말이었다고 하는군요.

 

'벚꽃동산'과 함께 체호프의 4대 희곡이라는 갈매기바냐 아저씨세 자매도 차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텍스트 파일 자유롭게 긁어 올수 있도록 개방하여 놓으신 여러 사이트들께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책읽는 기쁨 나누어 주시는 고마운 님들..

 

***저녁산책***  

2014.04.04 09:51

 

어제 서울엔 봄비가 내려 만개한 벚꽃들이 가련하게도 땅에 쓰러져버렸어요.

꽃잎이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가슴이 미어지는데,

벚꽃나무 기둥을 잘라내는 모습을 보는 심정을 어떨까요.

 

지는 해..지는 꽃..저무는 인생..

그런데 이 희곡에서는 왜 이리 아름답게 느껴지는지요.

너무 놀라워요.

 

동우님 말씀처럼 이런 희곡은 연극으로 못보더라도 (소리내어)낭독하는것을 듣고 싶어집니다.

 

저는 여러가지 개인적인 일로인해 요즘 블로그를 잠깐 쉬고 있답니다.

정상으로 돌아가기까지 아마 두세달 걸릴것 같아요;;;

그래도 동우님방에서 자주는 못 오더라도 가끔 들리고 싶어요^^

 

***동우***  

2014.04.06 05:40

 

저녁산책님.

부산도 요즘 흐드러진 벚꿏.

흩뿌리는 비와 미약한 바람에도 눈송이처럼 벚꽃은 무리져 내리더군요.

손톱보다도 작은 분홍빛 앙증한 꽃의 파편들.

은비님은 목련의 낙화를 육덕진 청승이라 히셨는데벚꽃잎의 낙화는 가련한 어여쁨이랄까요

 

체홉의 희곡에는 강렬한 드라마는 없습니다.

체홉에게서 현대작가 피터 세퍼와 같은 맛을 기대할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나는 체홉에게서 삶의 환경에서 구현되고 좌절되는 인간의 의지와 파열음을 듣습니다.

잔잔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만남과 아별꿈과 좌절삶과 죽음의 어떤 진실한 모습을시처럼 아름답게 읽게 되더군요.

 

저녁산책님댁 정원의 음악.

인터미션 역시 있어야하지요.

가끔이라도 들러 주세요.

 

  

<갈매기>

-체홉 -

 

***동우***  

2014.03.20 05:54

 

체홉의 '갈매기'

'니나'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정형화된 문학적 캐릭터로 굳어진 이미지일겁니다.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충돌.

꿈의 것과 현실의 것과의 괴리.

결국 절망하여 자살하는 뜨레예쁘레프에 비하여 니나가 깨달은 삶의 근거는 강인합니다.

 

'갈매기'

어느 옛날의 내가 있고 어머니가 있고기억 속 낯익은 인물들이 떠오릅니다.

말한바 있지만 나는 희곡의 인물들에게서 나 자신과 내 주변인물과 내가 겪었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기억 속에서 익숙한 갈등과 체념과 절망과 공허의 분위기가 아련하게 부활합니다.

 

요즘 감기몸살 열심히 앓고 있는 중입니다.

나는 한번 걸리면 호되게 앓는 편이고 1년에 두어차례씩 꼭 겪지요.

그런데 근래 1년 이상은 괜찮았었어요.

요령인즉슨 조금이라도 감기 기운이 느껴지거들랑 평소 복용하던 비타민C의 복용량을 확 늘이는겁니다.

식간 중간중간에 평소 복용량의 3배 이상으로. (비타민박사 이왕재 교수님의 권유..)

확실히 효과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걸 소홀히 했던가 보아요.

혹시감기예방의 팁이 될런지.

감기들 조심하세요~

 

아래는 인터넷에서 줏어 온 간단한 해설입니다. (누구 글인지는 모르겠고)

 

++++

체홉의 4막 희곡은 그의 중기에 씌어진 4막 희곡 <이바노프>(1887), <숲의 주인>(1889)의 두 편을 거쳐 <갈매기>(1895)에 이르러 갑자기 놀랄 만한 진경을 보이는데이 극작상의 갑작스런 개화 이면에는 이미 보아 왔듯이 작가의 인생관과 예술적인 변모가 있었다는 것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

4대극 중 첫 작품 <갈매기>에서는 작가의 중기를 채색하는 출구 없는 절망과 우룽이여배우를 지망했다가 좌절되는 니나와 작가 지망의 청년 트레플레프를 통하여 이야기가 전개된다.

니나는 체홉의 누이동생 친구로 한때 그를 사랑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처자 있는 작가 포타펜코에게 몸을 맡겼다가 버림받은 리자 미지노프를 모델로 그려진 것인데 그녀의 비련은 작가의 중기 대표작 <지루한 이야기속의 카챠의 비련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미 언급했듯이 카챠가 절망에 빠져 '이제 이런 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고 외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를 노교수로부터 아무던 지시도 받지 못한 데 반해 <갈매기>의 니나는 절망하고 좌절하면서도 앞으로 자기가 어떻게 하면 되는가를 이미 알고 있다.

즉 종막에서 그녀가 말하듯이그녀는 자기 일에 있어 소중한 것이 지난 날에 꿈꾸던 화려한 명성이나 영광이 아니고 인내력임을 알고 있는 것이다.

니나의 이 새로운 신념은 <갈매기속에서 짧은 대사 몇 마디로 이갸기될 뿐이지만 체홉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희곡의 분위기 속에서 빛나고 있다.

그리하여 이 니나의 개안은 젊은 나이에 20만 년 후의 우주를 생각함으로써 풍만한 색채를 갖는 긴 인생이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청년 트레플레프의 절망과 날카롭게 대립되고 있다.

트레플레프는 종막에 이르러 니나가 인내의 필요성을 깨달았을 때도 긴 인생의 과정을 견디고 참아야 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 자살을 하는 것이다.

++++

 

***동우***  

2014.03.21 04:30

 

뜨레예쁠례프의 자살은 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카타르시스가 작용하지 않는 결말이다.

 

극적갈등이 쌓이고 쌓여서 포화에 이르면 한방 카타르시스로 해소되는 드라마의 맛.

체홉, '갈매기'는 그와 같이 잔득 긴장을 유발하여 해소시키려 하지 않는다.

인물의 성격과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할 뿐이다.

 

뜨레예쁠례프는 자의식에 겨운 유심론자(唯心論者몽상가였던가.

니나의 허영 순수함 동경 야망 이상따위는 현실주의에 기반하고아르까아디나는 구두쇠고 장식적인 이기주의자소설가 뜨리고오린은 속물이다.

쁘띠 부르주아 소오린빈틈없는 생활인 샴라아예프도오린을 사모하는 뽈리냐가정적 소시민 메드베진꼬뜨레예쁠레프를 사랑하는 마아샤...

 

그들내 주위가 그러하듯 공허하고 애틋하다.

나남없이 대개 그렇게들 살며 늙어가는 것이겠지...

 

"[니나아니예요 아니예요마중 나오지 마세요혼자 가겠어요마차는 가까운데 있어요어머니께서 그이를 데려오셨군요좋아요마찬가지지요뜨리고오린을 만나셔도 저에 대해서는 말씀을 드리지 말아 주세요저는 그이를 사랑하고 있어요예전보다 더 사랑할 정도예요짤막한 소녀의 재료저는 사랑해요무척 사랑해요정신없이 사랑하고 있어요예전에 좋았지요꼬오스쨔기억하세요얼마나 밝고 따뜻하고 환희에 찬 깨끗한 생활이었을까요또 그런 감정이었겠어요마치 부드럽고 우아한 꽃과 같은 감정이었어요기억하세요?- (암송한다) ‘사람도 사자도 독수리도 황새도 뿔 달린 사슴도 거위도 물속에 사는 말 없는 물고기도 바닷별도 눈으론 볼 수도 없었던 것까지라도 한 마디로 말하면 모든 생물생명을 지닌 그 모든 것들을 슬픈 순환을 마치고 사라져버리고 말았노라벌써 수십만 년 이래 지구 위에는 생명을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그리고 저 가련한 달은 할 일이 없어 그 등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이미 풀밭 속에서 학이 눈을 뜨면서 울어대는 일도 없어지고 보리수 숲에 우는 오월의 벌레 날개 소리도 들리지 않노라’ (와락 뜨레예쁠례프를 껴안고 유리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뜨레예쁠례프의 별은 여기가 아닌 모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