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체홉]]
<골짜기> <여자의 행복>
<골짜기>
-체홉 作-
***동우***
2014.03.12 03:12
‘오래된 정원’에서 한윤희 아버지가 언급하였던 책. (괴테와 체홉과 엥겔스)
그 중 체홉의 '골짜기'를 상중하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내 절친 블로거님께서는 '징징거리지 않아서 좋다'라는 표현을 가끔 구사하십니다.
체홉이 그렇습니다.
나같으면 '골짜기'같은 소재를 징징거리면서 장편으로 우려먹었을겁니다.
체홉은 그러나 징징거리지 않습니다.
주렁주렁 꾸밈을 달지 않습니다.
인간과 인생과 운명을 담담하게 묘사하여 감동을 줄 뿐입니다.
체홉은 사상이나 주의주장을 빙자하여 인생살이의 현상을 징징거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당분간 체홉을 집중하여 읽으렵니다.
작년초 생텍스를 읽었던것 처럼.
함께 읽어요, 체홉.
***동우***
2014.03.13 04:50
부정직하고 이기적인 상인 그리고리 영감, 그의 재취 아내 착한 바르바라, 부정(不正)한 경찰관으로 의지박약 장남 아니심, 귀머거리 차남 스테판, 천사같은 마음씨의 아니심의 아내 리파, 기갈세고 탐욕스런 스테판의 아내 악시냐.. 그리고 마을 사람들.
러시아 어느 골짜기에 자리잡은 우클레예보 마을의 정경과 그곳에 터잡아 사는 여러 인물들.
그 묘사는 소박한듯 하지만 치밀하고 드라마는 담담한듯 하지만 복선을 깔아 이야기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합니다.
체홉의 극작술은 시공(時空)을 막론하고 최고일 겁니다. (내게는)
그리고 인간을 들여다보는 따스한 눈길과 작가의 성실한 인품이 배여있는 작품 속에는 문학의 향기 가득합니다.
읽는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한켠으로 아련한 슬픔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인간 세계에 아무리 큰 죄악이 범람하고 있어도, 밤은 역시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세상 역시 이 밤과 같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진리가 여전히 존재하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이 지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들은 달빛이 밤과 융합되듯이, 스스로 정의와 진리에 융합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두 모녀는 다시 편안한 심정이 되어서 서로 몸을 기댄채 깊은 잠 속에 빠져들었다.]
착한 리파와 악독한 악시냐.
왜 세상은 탐욕스런 사람들이 잘먹고 잘살고 가난과 고생스러움은 착하고 욕심없는 사람들 몫일까요.
목발노인 예리자로프는 말합니다.
[그렇지 얘들아. 일하는 사람이나 고통을 참는 사람 쪽이 언제나 위에 있는 거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하늘의 상이 크답니다.
차카게들 삽시다.
***동우***
2014.03.14 04:54
한 집안의 약점을 틀어쥐어, 어린애를 죽이고 재산을 가로채고도 저리 뻔뻔스레 승승장구하는 악시냐.
저 악녀를 징벌하라고 리파의 억울함을 어쩔거냐고 체홉은 징징거리지 않는다.
세상을 초월한 어떤 늙디늙은 은둔자가 세상을 굽어보고 인생을 관조하는 눈길인가.
[태양은 잠자리에 들어가서 붉은 보라빛 비단 잠옷을 입고 있었다. 하늘에서 비껴 흐르고 있는 붉은빛 혹은 보랏빛의 가느다란 구름은 태양이 자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아주 먼 데서 알락해오라기가 마치 외양간에 갇힌 암소처럼 애련하고 공허한 소리로 울고 있엇다. 이 신비로운 새의 울음소리는 해마다 봄이면 들려왔으나, 그것이 어떤 새이며 어디 살고 잇는지는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언덕 위의 병원에서도 연못가의 숲에서도 마을 편에서도 주위의 들판에서도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뻐꾸기는 누구의 나이를 세다가 자꾸만 틀려서 처음부터 다시 셈을 시작하고 있었다. 연못 속에서는 개구리들이 성난 목소리로 죽어라고 서로 소리지르며 울어대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네놈도 그렇지! 네 놈도 그렇지!'라고 지껄이는 것 같았다. 지독히 시끄러운 밤이었다. 이들 온갖 생물들은 이 봄밤에 사람들을, 성난 소리로 울어대는 개구리들까지도, 삶이란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이니 그 1분 1초라도 아껴서 소중히 여기고 즐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은빛 반달이 빛나고 수많은 별들이 총총이 떠 있었다. 리파는 얼마나 오래 연못가에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식의 죽은 몸을 싸안고 돌아오는 비통한 리파이지만, 그 영혼은 청결하다.
그녀의 슬픈 마음에 스며드는 자연은 따스한, 아주 따스한 긍정인 것이다.
["이 애는 하루종일 고통을 겪었어요." 리파가 말했다. "조그만 눈으로 저를 쳐다보면서 아무 말도 안했어요. 말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아아, 예수님, 마리아님! 저는 슬퍼서 내내 방바닥에 쓰러져 있기만 했어요. 아무리 해도 이 애 머리 맡에 서 있을 수가 없었어요. 네, 할아버지, 이렇게 조그만 애가 죽기 전에 왜 그런 고통을 겪어야만 하나요? 어른들이라면 남녀 불문하고 죄를 용서 받기 위해서 고통을 겪는다지만, 이런 죄없는 애는 무엇 때문에 그런 고통을 겪나요? 네, 왜 그럴까요?" "그걸 누가 아나!" 노인은 대답했다. "그걸 누가 아나!" 노인은 대답했다. 그 뒤로 두 사람은 아무 말없이 30분쯤 타고 갔다. "세상만사 그 이유를 다 알 수야 없지... 왜라든가 어째서라든가 하는 그 이유를 말이야." 노인이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새댁의 슬픔 같은 건 대단치 않아요. 사람의 일생은 기니까... 앞으로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거야.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구. 우리를 낳아준 러시아는 무척 큰 나라니까!"]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의 빵도 검고 그들의 세월도 검다.
그렇다고 그들은 자신의 인생이 검다고 징징거리지 않는다.
리파는 슬픔을 징징거리지 않는다.
***동우***
2014.03.14 04:54
아래는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곱게 차린 악마들만 웃는 세계>
'골짜기'가 보여주는 세상의 겉모습은 단조롭고 황폐하다.
십년 전에 일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 두고두고 되풀이될 만큼 변화없는 마을에 염색공장과 피혁공장이 악취를 풍기고 가축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살이도 대부분은 무지와 가난으로만 드러난다.
그런데 한 군데 식료품상 그리고리 노인의 가게만은 마을의 그런 겉모습과는 달리 변화와 번성의 이면을 보여준다.
장사는 많은 이문을 남겨줘 그의 재산은 늘어가고 가족상황도 마을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변화를 겪는다.
우선 귀머거리 둘째 아들이 아름답고 영리한 아내를 얻어 가게의 활력을 키우고 이어 노인 자신도 착하고 젊은 아내를 맞아들여 집안을 더욱 충족되고 평온하게 가꾼다.
맏아들 아니심은 일찍 도시로 나가 경찰로 있었는데 그것도 노인에게는 은근한 자랑이었다.
휴가로 집에 돌아온 아니심을 결혼시켜 떠들썩한 잔치를 벌일 때가 그리고리 집안의 절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리는 둘째 며느리나 자신의 후처를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맏아들에게도 재산의 힘에 의지해 가난하나 예쁘고 순진한 리파를 얻어줄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고리 노인과 그 가족들에게 그같은 변화와 번성을 가능하게 한 부는 기실 자질구레한 죄업의 과일이었다.
장사에서의 이런저런 속임수와 그에 따른 폭리에 고리대금이 그 죄업의 내용이었다.
그리고 그 죄업은 이제 그들 집안의 표면적인 번성과는 또 다른 이면을 준비하고 있었다.
먼저 그리고리 일가에게 타격을 준 것은 아니심의 범죄였다.
맏아들이 주화를 위조해 사용한 죄가로 시베리아 유형을 떠나자 그렇게 탐욕스럽고 인색하던 노인의 기력은 절반이나 꺽여버린다.
거기다가 위조한 주화를 아들로부터 얻어 자신의 주화와 섞어버린 사실은 그의 또 다른 약점이 되어 집안의 주도권은 영악한 둘째 며느리 악시냐에게로 넘어가 버린다.
악시냐는 젊은 날의 그리고리보다 몇 배나 탐욕스럽고 간교할 뿐 아니라 표독스럽기까지 하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끼얹어 재산상속의 경쟁자가 될 아니심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 그 명백한 살인행위를 그리고리의 약점과 가족들의 무지를 이용해 덮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리파를 쫓아내고 그리고리 일가의 전재산을 차지한 뒤 시아버지를 돌보지 않는다.
결국 번성하던 그리고리 일가의 구성원들은 일꾼이나 다름없이 악시냐에게 붙어사는 귀머거리 스테판을 제외하면 모두가 헐벗고 황폐한 겉모습의 세상으로 되밀려난 셈이다.
마을의 예외적인 이면이었던 그리고리 일가의 번성은 이제 영악하고 표독스런 악시냐의 독차지가 되었다.
웃고 있는 것은 예쁜 얼굴에 곱게 차려입은 작은 악마뿐이다.
이 작품에서의 악이 크건 작건 죄의식을 모르는 것처럼 선은 바보스러운 순진 혹은 무지를 특징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악이 언제나 선을 이기는 비극의 무대로 그려진다.
하지만 작가는 그 승리에 진정성까지 부여하지는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리파 모녀가 보여주는 순진무구한 인간애는 일순에 악시냐가 누리는 번성을 무색하게 한다.
'골짜기'가 발표되었을 때 러시아 문단의 반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어떤 잡지 편집자와 평론가는 울며 읽었고, 톨스토이와 고리끼를 비롯한 당대의 문호들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역시 작가가 삶의 어두운 진상을 냉정히 그려내어서라기보다는 끊임없이 패배하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선이 준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 체홉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한 바 있어 되풀이 말하지 않는다.
-이문열-
++++
***별과달***
2014.03.13 01:39
동우님 접니다.
집 주소 좀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책을 출간하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저의 글을 사랑해 주시는 동우님께 제가 책을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물론 제가 직접 사인하여 보내드릴려면 출판사에서 책을 인도네시아로 보내면 그 책을 받아 제가 다시 동우님이 계신 한국으로 보내야 하기에 시간이 조금 걸리시겠지만
그래도 알려주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동우님께는 꼭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그럼,
***동우***
2014.03.13 05:08
별달님.
두번째 책의 출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인도네시아, 그 섬에서 멈추다'
안그래도 SNS에서 출판 소식 접하고 주문하려고 하였습니다.
저자의 싸인이 있는 책을 증정받는다는건 대단한 영광이라는걸 모르는 바 아닙니다만, 별달님.
멀고 먼 인도네시아까지 둘러둘러 보내주실것 까지는 없을듯 싶습니다.
빨리 읽고 싶은 글뚝같은 마음, 시간의 소요도 그러려니와 굳이 비용 들여가면서까지.
구입하면 간단할 터이지만, 별달님의 마음담긴 책은 기쁨일터이니 한국땅에서 한국땅으로 직송하여 주시면 어떠하리까.
저자의 메시지 한줄 적힌 카드 책갈피 끼어있으면 굉장한 기쁨일 것입니다, (친필 아니더라도, 그렇게 주문하면 가능하리다)
주소: 부산광역시 영도구 절영로.....
독후감은 읽은 연후에 쓰기로 하고,
거듭 축하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여하튼 대단하신 분, 별달님은.
***별과달***
2014.03.18 13:53
동우님
딸이 한국 출장간다기에 그 편으로 싸인해서 보내려고 했더니 회사사정상 뒤로 미뤄졌다네요.
그래서 언제 갈지 모르기에 제가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주소를 영문자로 적어서 연락처도 함께 적어서 보내주세요.^^
동우님께는 제가 특별히 그렇게 해드리고 싶네요.
책이 한국에서 왔다가 다시 한국으로 가는 번거로움도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그런 건 아니지요.
나중에 주위분들에게 홍보 많이 해 주시면 저는 그저 감사합니다.
제 연락처 남기니 카톡으로도 연락이 좋습니다.
+62818599012
***동우***
2014.03.19 06:45
뭣허러 그리 번거롭게.
그러실 필요없어요.
별달님의 마음담아 받은 것으로 여기고, 주문하여 보겠습니다.
<여자의 행복>
-체홉 作-
***동우***
2015.06.21 04:49
체홉의 여자의 행복.
<아무튼 세상은 고르지 못해요. 운명의 여신은 언제나 여자편만 들거든요. 여자는 군대에도 안 가고 무도회엔 무료입장할 수 있고, 체형(體刑)도 면제되고……대체 무슨 공로 때문인거요? 여자가 손수건을 떨어뜨리면 남자들은 곧 주워 주고, 여자가 방에 들어오면 남자들은 곧 일어나 자리를 내어주고, 여자가 밖에 나가면 전송해 주고……. 가령 관직을 두고 생각해 보게! 오등관만 되려고 하여도, 나나 자네나, 한 평생 진땀을 흘려야 하지 않나. 그런데 여자로 말하면 30분 동안이면 오등관과 결혼할 수가 있거든. 그럼 그만인 거야. 가령 내가 공작이나 백작이 되려면, 전세계를 정복하거나, 시프카 (코카사스의 한 산봉우리―露土戰爭의 激戰地―)를 빼앗거나, 장관이 되어야 하는데, 실례지만 저 와일레니카나 카체니카와 같은 여자들은 아직 입술에 젖내도 가시기 전에, 백작 앞에서 치맛바람을 한번 멋지게 날리거나, 눈짓 하나만으로도 금새 각하의 부인이 되거든.……자네는 현(縣)의 서기관이지만, 이 관직은 자네가 피와 땀으로 손에 넣은 걸세. 그러나 자네 마누라 마리야 포미시나를 보게. 무슨 공로로 서기관 부인이 되었나? 농부의 딸이 대뜸 관공리의 부인으로 승격을 한 걸세.>
'프로브킨'이라는 사나이의 저 투덜거림은 물론 체홉의 생각은 아닐겁니다만, 우리 세태에서도 시사하는바 없지 않습니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하지 않습니까?
여자 팔자소관은 남자 만나기 나름, 장군 남편을 가진 아내 역시 장군이고 쫄병 마누라는 어쩔수 없이 쫄병입니다.
여성의 상품화.
<여자는 앉아 있고, 남자는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듯이 여자를 고르는 겁니다. 여자는 기다리면서도 '나예요! 날 고르세요.'... ' 결혼은 사랑에 바탕을 둔다고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육감적인 부분을 제외한 사랑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으로 말했더니 여러분은 사랑의 존재를 결혼이 존재한다고 함으로써 증명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결혼은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톨스토이 '크로이체르 소나타'->
처녀의 스펙쌓기는 어쩌면 시집 잘 가기 위한 측면일는지.
하하, 여성 제위께 돌 맞을라.
집안에서는 일개 가정부에게 꼼짝없이 당하는, 밖에서는 삐까번쩍한 장군을 보십시오.
<"하긴 자네가 용케 그런 일을 했네 그려! 그만한 용기는 쉽지 않지. 나는 깜짝 놀랐네. 그러나 이 일만은 비밀로 해 주게.……자네 심정은 나도 알고 있네. 그러나 자네를 더는 우리 가정에 머물러 있게 할 수는 없네……." 각하가 보기에는 그년을 내가 한바탕 골려 준 것이 무척 놀라운 일이었네. 여자를 보는 눈이 완전히 마비된 거야! 삼등관으로, 흰 독수리(훈장의 이름)까지 갖고 있을 뿐더러, 자기 위에 상관이 없는 그가 여자 앞에서는 벙어리나 마찬가지일세.……이쯤 되면 여성의 특권은 어마어마하지 않나……그러나……모자를 벗게! 장군의 영구가 나가네……. 대체 훈장이 몇 개나 되나, 이루 헤아릴 수 없군 그래. 그렇지만 여자들에게 훈장 같은 것이 무슨 값어치가 있겠나?」
남녀 관계의 내막이란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ㅎ
-독서 리뷰-
[[체홉]]
<우체국에서> <앨범> <반카>
<우체국에서>
-체홉 作-
***동우***
2015.06.21. 05:14
도미 몽드, 비올레타, 사빈느, 안나 카레니나...
19세기 유럽 상류사회의 성적 방종, 베르사이유적 환상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다.
한 시대, 남자들은 말할것도 없겠거니와 유부녀도 정부(情夫) 하나 두기는 예사로웠던 모양입니다.
'오쟁이진 남편'은 몰리에르의 희곡이나 경가극에서 풍자적으로 흔히 다루어지더군요.
서구 역시 간통죄라는 죄목이 혁파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라고 알고 있는데, 간통과 감옥이란 주제는 별로 보지 못하였으니 우리와는 분위기가 달랐던가 봅니다만. (옛날 최무룡과 김지미가 떠오릅니다.ㅎ)
스무살 짜리 이쁜 아내를 둔 예순살 노인.
아내가 죽자 아내가 생전에 얼마나 남편에게 충실하고 정숙했는지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경찰서장과 바람피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걸 뻔히 알고 있건만..
노인의 자랑을 거짓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그 소문은 노인이 퍼뜨린 계교였던 겁니다.
경찰서장의 정부라고 소문을 내면 누가 감히 내 아내를 건드리랴 하는..
남자들은 억울해 합니다.
진작 우체국장 노인의 이쁘고 젊은 아내를 유혹하여 바람을 필걸 그랬어.. 하고서.
사제가 벼릅니다.
<"이 영감쟁이 또 장가가 보아라, 다시는 속지 않고 기필코 즤 마누라를 유혹하여 바람 필터이니...">
명색 사제라는 사람까지, 저 응큼한 속내... 오쟁이 진 남편이 되지 않으려는 늙은 남편의 안간힘.. 경찰서장이라는 시골 관료의 권력...
체홉은 가벼운 이 이야기를 '보드빌'(가벼운 웃음꺼리의 막간극)로 쓰지 않고 단편소설로 썼군요.
주말의 엔터테인먼트, 나는 이 소극(笑劇)의 다른 버전으로 반전(反轉)을 한번 꾸며 봅니다.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어떨까요.
종장에 경찰서장이 우체국에 나타나서 "우리는 진실로 서로 사랑하였어" 어쩌구하면서 훌쩍훌쩍 우는겁니다.
그 때 노인의 표정이 궁금합니다. ㅎ
<앨범>
-체홉 作-
***동우***
2015.06.21. 05:13
체홉의 앨범.
부하들로부터 앨범을 선물받은 지므이호프 장관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립니다.
<"여러분!" 하고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는 여러분들이 보잘 것 없는 이 기념일을 이처럼 진심으로 축하해 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나는 너무나 감개무량하여……무어라고 말해야 할지……나는 이 순간을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다음날 그토록 귀한 선물인 앨범은 장관의 자식들에 의하여 마구 황칠하고 마구 오려내어져서 만신창이가 되어 버립니다.
<콜랴는 9등관 크라체노프의 사진을 도려내어 성냥갑에 붙여서 아버지 서재로 갖고 갔다. "아버지, 기념비에요! 멋있죠!" 지므이호프는 몸을 흔들며 껄껄 웃어대었다. 그리고는 아들의 재롱이 하도 귀여워 그 뺨에 힘껏 입을 맞춰 주었다. "이 개구쟁이야! 엄마한테 보여드려라. 엄마한테…">
하루 전의 지므이호프와 다음 날의 지므이호프.
둘 다 진실입니다.
사람이란 그렇습니다.
x 누러 갈때와 x 누고 나서의 생각은 이토록 다른겁니다.ㅎ
낙엽을 밟으면서 슬픔에 깊이 잠겨있던 센티멘탈도 하늘을 나는 새의 무엇(?ㅎ)을 보면 이내 킥킥 웃음을 터뜨립니다.
옛날에 나는 비장하거나 슬픈 영화를 보고나면 그 무거운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여 연이어 가벼운 코미디 영화를 보곤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기분을 중화시키는거지요.
감성 굳은 낫살이 되니까 옛날이 그립습니다만, 당시에는 기복 심한 그 기분이라는 것이 싫어서 어서 늙고 싶기도 하였답니다. ㅎ
옛날 기록을 보니까 내가 이런 말도 썼더군요.
"만물의 척도는 기분이다." (어디서 주어 들어서 썼던지도..)
아래 글은 가끔 책부족 홍애님 우울할 적 내가 자주 들려드렸던 글입니다. (참, 어제 오키나와로 향발하였는데 인사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요즘 나는 오로지 눈팅 모드랍니다.ㅎ)
기분에 속지 말자고.
<그런 날이 있습니다.
내 삶은 무엇 하나 제대로 되어가는 것이 없고, 내게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능력도 하나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람과 의미가 되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면모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 날.
늪에 가라앉듯이 생각이 자꾸 나를 저 밑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날. 누가 말만 걸어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날이 있어요.
그럴 때 기억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저조한 날 떠오른 생각에 속지 말라.'
마음이 바닥에 가라앉는 사람에게 이 글은 정말 큰 위로가 됩니다.
제 경험이기도 하니까요.
마음이 저조한 날.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아 혼자서 도저히 수습을 할수 없는 날이면 온갖 비극적이고 서러운 생각들이 우리들 마음을 휘저어놓습니다.
그런 마음에 속지 말라는 한 줄의 글은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 앞에 나타난 한 줄기 빛처럼 선명한 위로가 되지요.
그러니 당신의 책상 앞에도, 마음의 담벼락에도 선명하게 써 두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저조한 날 더오른 생각에 속지 말라’
가끔 알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도대체 왜 이랬어요?"하고 물어보면 대개는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고작해야 "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가 왜 그랬는지.."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들의 엉뚱하고 이상한 선택, 그것은 아마도 마음이 저조해서 한없이 우울해졌던 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우리가 살아온 날들 속에서도 그런 일들은 얼마나 많았던가요.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가지 않고 혼자 훌쩍 기차를 탔던 날도 있었고, 착하다는 말이 강요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못되게 굴자고 작정하던 날도 있었고, 그토록 좋아하던 사람을 한 순간 연의 줄을 끊듯 탁 놓아버리던 날도 있었습니다.
오래 이어온 관계를 어느 순간 포기하겠다고 결심하는 우발적인 선택,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 거라고 결심 하면서 전화번호를 지워 버리는 순간, 그런 순간의 그런 선택들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저조한 날 더오르는 생각에 속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우울하거나 쓸쓸한 날 우리는 선택을 미뤄야 합니다.
우울한 마음에, 혹은 쓸쓸해서 선택한 일들은 내 진심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선택은 더 큰 후회와 우울함을 불러오곤 합니다.
기도문을 외우듯 가끔 외워두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저조한 날 떠오르는 생각에 속지 말자'
'외롭고 쓸쓸한 날에는 선택을 미루자'
ㅡ(방송작가) 김미라의 '천 개의 절망을 이기는 한개의 희망' 중에서ㅡ>
또 하나 덧붙입니다.
<긴 생애의 변전 속에서 나는 이를 데 없이 감미로운 향락과 강렬한 환희의 시기의 추억이 뜻밖에도 가장 나를 매혹하고 강하게 마음을 끄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의 마음이 애석해하는 행복이란 금새 사라질 순간이 아니라, 하나의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이고 거기에 격렬한 것은 아무 것도 없더라도, 하나의 소박하고 변하지 않는 상태이며, 그 지속이 매력을 증대하고 이윽고 거기에서 지복의 행복을 찾아낼 무엇인가이다. 이 세상 만사는 끊임없는 유동 속에 있다. 그러나 영혼이 강한 지반을 찾아내 거기에 안주하고 거기에 자기의 전 존재를 집중하여 과거를 불러낼 필요도 없고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는 상태, 시간이 영혼에게 아무 의의도 없는 것 같은 상태, 언제까지나 현재가 이어지고, 그러면서 그 지속을 느끼게 하지않는, 계기의 자취도 없이, 결핍과 향유의, 쾌락과 고통의, 원망과 공포의 어떤 느낌도 없이 오로지 우리가 현존한다는 감정만이 있고 이 감정만으로 혼의 전체를 채울 수 있는 그런 상태가 있다면, 이런 상태가 계속되는 한, 거기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런 상태야말로 내가 생 피에르 섬에서 고독한 몽상에 잠기며 걸어가다 경험한 상태이다. - 장 자크 루소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체홉의 '앨범'
엉뚱한 기분 타령이었습니다.ㅎ
<반카>
-체홉 作-
***동우***
2015.06.23. 04:58
체홉의 반카.
이 단편을 읽으면서 내 눈꼬리에 눈물이 매달렸습니다.
모스크바라는 도시의 그늘.
석달전 촌에서 올라와 제화기술을 배우고 있는 아홉살 짜리 소년 반카.
괄시와 폭력과 궁핍.
무섭고 냉랭한 사람들로 복닥거리는 작업실.
성탄전야 유일한 그 시간, 홀로 있게 될 기회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편지를 쓰려고, 할아버지와 시골의 추억에 잠기려고.
<성탄 전날 밤, 반카는 잠자리에 들지 않고 제화공 식구와 다른 견습공들이 미사를 드리러 갈 때까지 기다렸다. 모두들 떠나고 조용해지자 꺼내온 잉크와 펜, 그리고 구겨진 종이 한 장을 앞에 놓은 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 호젓하게 행복한 공간을 행여 빼앗길까봐 겁먹은 눈길로 창문 쪽을 흘낏거린다.
세상천지 하나 뿐인 핏줄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생전 처음 편지라는걸 삐뚤빼뚤 쓰는 것일게다.
그리고 고향을 그린다.
<‘제발 오셔서 저를 데려가주세요. 제발요···. 부모도 없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모두들 저를 때리기만 해요. 전 늘 몹시 배가 고파요. 슬픈 것은 말 할 것도 없고요. 입만 열면 울음이 나오는 걸요. 얼마 전에는 주인 어른한테 각목으로 머리를 맞는 바람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을 정도예요. 제 생활은 개만도 못해요. 알료나 애꾸눈 에고르카와 마부 아저씨께 안부 전해주세요. 그리고 제 아코디언은 아무한테도 주시면 안돼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저를 데리러 어서 오세요.’>
그날 밤 반카는 비로소 깊이 잠들수 있었다.
<꿈속에 커다란 벽난로가 보인다. 난로 옆에는 할아버지가 앉아 요리사 아줌마들에게 편지를 읽어준다. 난로 주위로 약삭빠른 수캐 미꾸라지가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닌다.>
어린 영혼이 노래하는 서정시.
불행하지만 맑은.
으흠, 반카는 내 손주 비니보다 한두살 많고 반카의 할아버지는 나보다 한두살 적구나.
체호의 반카.
애긍(哀矜)하여 마음이 아릿하다.
그리고 과연 체홉..하고 중얼거린다.
아, 우리나라에는 체홉이 있는가.
딴 얘기를 지껄인다.
세간의 지지배배, 메르스 와중에 한켠에서는 신경숙의 표절 건으로 시끄럽다..
'전설'이라는 소설에서 신경숙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의 한 단락을 고대로 표절하였다는 것이다.
<결혼하고 몇 달인가가 지나자 레이코의 아름다움에는 세련됨이 더해졌고, 비개인 하늘에 뜬 달과 같이 그 아름다움은 영롱하였다. 두 사람 모두 참으로 건강하고 젊은 육체의 소유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정교(情交)는 격렬하였다. 밤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훈련에서 돌아온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을 틈새도 아까운 나머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부를 그 자리에 밀어 눕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 또한 이에 잘 응하였다. 첫날밤을 지내고 한 달이 지났을까 말까 한 때에 레이코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중위도 기뻐하였다. 레이코의 몸은 희고 엄숙하였다. 솟아오른 그녀의 유방은 너무나도 강력한 거부의 정결함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일단 수용한 후에는 잠자리가 가지는 따뜻함을 머금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도 무섭고 엄숙할 이만치 진지하였다. 점점 격렬해져 가는 광태(狂態)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진지하였다. 낮동안 중위는 훈련 사이사이의 휴식시간에도 아내를 생각하였고, 레이코 또한 하루종일 남편의 잔상(殘像)을 좇았다. -우국->
<두 달 후, 여자는 방바닥에 소국이 담긴 항아리를 내던진다. 항아리를 내던지기 전의 여자는 결혼 전보다 한층 아름다움이 세련되어 보였다. 달밤의 백합같이 환하기도 했다. 소매 끝으로 나와 있는 손가락에조차 비 내린 뒤의 백합밭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밴 듯싶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전설->
그런데 이건 벌써 1년전쯤에 뉜가 어필하여 불거졌던 사안이었다.
나는 이미 두 소설을 포스팅하였었고 '전설'의 댓글에서 이 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지껄이기도 하였었다.
++++
신경숙의 이 소설에 대하여 모 평자가 표절을 운위(云謂)하였습니다.
그런데 표절하였다는 그 원본이 무언지 아십니까?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랍니다. (앞에 포스팅한것 있어요)
우국(憂國). 동료들과의 친위쿠데타 모의에서 빠진(신혼이었으므로) 청년장교 '신지'는 대의를 위하여 자결하는데, 아름다운 젊은 부인 '레이코'도 남편의 죽음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내용이지요.
부부는 마지막 격렬한 정념을 불태우고 남자가 배를 가르고 남편의 주검을 대충 수습한 다음 여자는 추호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목에 단도를 박아넣습니다.
신경숙이 그와 같은 '우국'의 한 단락을 고대로 차용하였다는 겁니다.
'전설'도 역시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남자가 떠나는 날 밤 젊은 부부의 격렬하고 아름다운 정사, 국군에 입대한 남편의 실종, 평생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사랑과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아내를 그리고 있는 내용.
비판자들은 ‘전설’이 역사의식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사적 서정적 내용이라서 툴툴거린 것일까요.
무슨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념을 섞어 고리키의 '어머니'상이라도 좀 풀어놓았더라면 고개를 끄덕였을까요.
내 단세포적(?) 눈에는 마초적 체면주의 때문에 저토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감행하는 우국의 저 남성성의 과시적 허황성, 역사주의의 집단성이 개별에게 작용하는 허구적이고 과시적이고 비극적인 맹목의 폭력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 미친 집단의 바람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여성성, 저 동양적 헌신과 절제와 정조의 마음과 태도가 나는 아름다웠습니다.
지사(志士)연하는 나리들께서는 내게 욕할테지만, 그리하여 나는 '우국'의 레이코가 아름답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군국주의적 미학. 그는 레이코까지도 군국주의적 집단가치에 전 존재를 투사하는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묘사한것일테지만 나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전설’의 여자도 ‘우국’의 레이코도, 남성적 역사주의의 집단적 허구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개별성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여성성으로 내 감성에는 접수된다는 말입니다.
표절이 있다면 그 상황 묘사에 있어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개별적 감수성의 상통(相通)함입니다.
내용과 문장을 그대로 베껴쓰는건 분명 표절이겠지요.
허지만 감성이 베껴지는건 표절이 아닙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소구(訴求)하는 것도 바로 그 '감성의 표절'이 아닌가요?
++++
나는 '감성의 표절'운운 하였는데 지적된 그 단락을 다시 읽어보니 두 소설의 문장이 비슷하기는 하다.
표절인가.
그렇다 치자, 그렇더라도 어떤가.
이 정도 분량의 문장, 자신의 작품에 그리 절실하였다면 가져다 쓰면 아니 되는가.
두 소설은 주제와 서사에 있어서 <전혀> 결을 달리하는 소설이다.
같은게 있다면 그건 부부의 농밀한 정애(情愛)를 아름답게 은유하여 강조한 부분 뿐이다.
하나(우국)는 엄정하지만 어브노멀하게 관념화된 죽음까지 기꺼이 함께 하는 당위로서의 육체적 합일, 레이코가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것은 죽음 직전 현란한 정사로 죽음을 장식하는 미학적 암시였다면 전설'의 '여자'는 '남자'와의 정신적 사랑의 토대 위에서 육체적 합일을 이룸으로 한층 도약한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쾌락과 어울어진 끔찍하게 아름다운 속궁합, 부부라는 관계로서 영과 육의 완벽한 합일성.
두 소설의 저 단락은 부부간 정애의 화려한 발화모습이 동일한 문학적 은유로서 실감있게 묘사된 것임은 분명하다.
신경숙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맹렬하게 필사함으로 문학수업의 공을 쌓은 작가이다.
신경숙은 '우국'은 읽어본적 없었다고 어설픈 변명을 하여 논란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었는데, 자신의 소설 그 대목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묘사가 너무나 적실하게 어울려서 가져왔다던가, 예전 필사한 손의 기억이 우국을 차용해 왔을지도 모른다거나하였으면 좋았으련만.
작가의 작품이 죄다 순수한 백옥같은 창작이고 그것을 내세워야 하는가.
신경숙은 이 시대 우리의 빼어난 작가이다.
'전설'을 보라.
그 한 단락은 그 소설을 이루고 있는 그녀의 문학에서 어떤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 대목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문장을 차용함으로하여 소설의 완성도가 높아졌다고 하여 안될 이유가 있는가.
하나의 적실한 문장을 끄집어내기 위하여 끙끙대면서 밤을 밝히는 작가들.
눈이 번쩍 뜨이는 한구절.. 논문에서처럼 인용부호를 부기하던지, 후기에서 밝히던지하여 다른 사람의 작품의 일부를 가져다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한 단락 가져다 그것을 변용하여 써먹은 것을 가지고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이라니.
아, 문학판에 있어서도, 이 나라는 너무나 폭력적으로 들끓는다.
우리 문학을 자훼하여 스스로 천박스럽게 만든다.
1년전 불거졌던 사안인데 그동안 조용하다가 이제 와서 이토록 한 작가를 몰아 부쳐 무얼 하자는 것인가.
넌즈시 지적하고 넌즈시 인정하여 변명할 기회를 줄수도 있었을터인데.
혹여 센세이셔널한 이슈로 만들고자 하는 문학 권력적으로 해석해야 할 어떤 의도라도 있는겐지.
문학계 풍토의 정화를 위하여 운운하던데 나는 좀 우습다.
물렁한가, 내가?
가짜학위 표절논문 해적출판 방송프로그램포맷...
그에 비하여 감성의 적실한 공감으로 차용한 한 단락 문장을 가지고...
문학의 순결주의에 대하여 내 생각이 불순한건가.
따지고 보면 우리 삶에 반복과 모방과 변주와 변용과 아류 아닌게 어디 있나.
내가 물렁해서 그런가.
***꼬비에뚜***
2015.06.26 22:14
동우님.
물렁한 것이 아니라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십니다.
동우님의 생각 인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동우***
2015.06.27 04:15
꼬비에뚜님 정도의 깊이(?)께서 공감하여주시니 한결 마음이 좋습니다.
얼마든지 인용하십시오.
반카를 비롯한 근자에 올린 체홉, 죄 꼬비에뚜님댁 방대한 도서관에서 업어온 것들입니다.
그곳 서가에 기라성처럼 도열한 처음 접하는 작가들의 소설과 평론과 작품들의 현란함.
언제 다 읽어보려나 한숨이 나올 정도입니다.
그 덕에 자꾸 종이 책은 눈에서 멀어지고.
그에 대하여는 꼬비에뚜님께 귀책사유 있으리이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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