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2 (1,4,3,3)

카지모도 2019. 12. 25.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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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

 

***동우***

2013. 11. 18

 

박완서(1931~2011)처럼.

우리가 보고 듣고 겪는 세상사에 대하여 쉽고 재미있는 서사로 그 의미를 천착하는 작가도 흔치 않을겁니다.

언제나 그녀의 소설은 읽는이에게 선명한 Actuality로 접수됩니다.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전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후편)

이 두권의 장편은 박완서의 여실(如實)한 자전적 기록입니다.

소설로 읽혀도 좋고박완서의 수많은 소설의 모티프가 되었을 것이고 동시에 작가적 힘의 근원으로 읽혀도 무방할 것입니다.

 

6.25

역사적 격랑의 현장을 관통하였던 한 인간의 역정그리고 운명의 부침.

박완서에게만 고유한 전쟁도 아니었을테고그녀라고 하여 무에 남다른 특출한 운명과 싸웠겠습니까?

이 땅을 살았던 우리 장삼이사가 살았던 근세 한반도 백성들 보편이 겪었던 이야기들입니다.

 

그렇지만 박완서의 저 기억은 얼마나 놀랍습니까그리고 작가적 사유는 얼마나 섬세합니까?

박완서의 사설들이 곧바로 나의 이야기로 읽히니 그것이 바로 작가 박완서 역량일 것입니다.

 

박완서 정서에 각인된 저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기억들...

서술기억은 금새 사라져도 정서기억은 장기 보존된다지요?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도 어린 날 정서에 각인된 어떤 그림은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 있답니다.)

 

요즘 종이책으로는 중국작가 '위화'의 소설들 읽고 있는데 이런 말을 하였더군요.

<사람은 살아가는 것을 위해서 살아가지살아가는 것 이외의 그 어떠한 것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살아가는 것을 위해 살아온 이야기들.

우리에게는 누구나 한편의 소설쯤 거뜬한 것들 간직하고 있습니다.

 

2013년도 슬슬 저물어.

노을 시나브로 짙어가는군요.

 

인생살이 지긋한 내 벗들이여.

걸어왔던 우리의 세월저 아득하여 슬픈 것들 한번 뒤 돌아 봅시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우리의 역정과 어울려 공유되는 감성적지 않으리다.

 

몇번으로 나누어 질런지. (2  10회 정도?)

일단 시작합니다.

함께 읽어요.

 

1회분.

어린 날 박완서의 고향 박적골의 기억참 아름답습니다.

내게 없는 저 행복한 유년.

내게도 아련한.. 정능 어머니의 꽃밭이 있었구나....

 

***계수나무***

2013. 11. 18

 

자칫 일생 놓칠 소설

따뜻하게 만났습니다.         

읽는동안 저의 유년도 오버랩.. 

미망휘청거리는 오후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외.. 

읽었던 그 분의 소설 

오늘자전소설 

동우님 덕에 한주쯤 행복예감.. 

다행두권 다 저는 읽지 못했으니 ㅎㅎ 

참 좋으신 분 

건강 유의하셔요 

 

***동우***

2013. 11. 19

 

리딩북으로 인하여 한주쯤 행복예감이라시니그 말씀에 나야말로 행복해지려 합니다.

 

내게 비하면 젊디젊은 분이시지만계수나무님의 연배로서도 박완서의 저 느낌들 공감하는바 적지 않을듯.

해방후 태어난 나로서도 박완서는 한참 연배이지만 작가의 저와 같은 정서는 나와 동일하다고 하여도 무방하지요.   

 

전에도 얘기한바 있지만, 20세기 저물어갈 무렵까지 시간의 흐름은 매우 더뎠다는 생각입니다.

나와 내 아이들에 비하면 내 어머니와 나 사이 정서의 동질성은 비할바없이 매우 짙습니다.

무어의 법칙이라고 하나요컴퓨터의 발전 속도...시간에 제곱한다던가세대간에는 그 이지요.

 

예전에는 그런 농담있었지요아래 위 10년은 맞먹어도 된다는..

하하그런데 요즘 20대는 10대를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지요?

 

***저녁산책***

2013. 11. 22

 

동우님 서가에 빵빵하게 채워져 있는 주옥같은 소설 시리즈.

아이패드 잔뜩 충전해서 다 읽으려고 합니다.

오늘은 아들이 처음 휴가 나온다고 해서 따뜻한 밥 해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벌써 연말 무드..좀 짠합니다.

시간이 이리 빨리 지나가나하구요.

 

***동우***

2013. 11. 23

 

거 보아요저녁산책님.

아드님 입대 한 것이 엊그제같은데.

군복입어 더욱 늠름한 아드님 맞을 설레임과 기쁨... 

 

벌써 한해 저무는 감회

젊으신 저녁산책님 그러하신데낫살 먹은 나야 오죽하리오.

 

그렇지만 세월이라는게 이와 같습니다.

기쁨과 슬픔이 점철된..   

 

아드님과 함께 하는 주말.

우리 저녁산책님얼마나 든든하고 행복하실까..

 

***계수나무***

2013. 12. 05

 

동우님 

밝힙니다  

제가 어찌 젊디젊을까요 

나이 첫 숫자는 동우님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맞먹어도되는 

우리 친구 맞죠ㅎㅎ

정서 아주 많이 닮은.. 

그냥 짐작하심의 정신연령은 잘 맞추셨음요 ㅎㅎㅎ 

 

***동우***

2013. 12. 06

 

와우나는 전에위에 말씀하시는 숫자에서 스물쯤 뺀 것이 계수나무님의 연배로 짐작하였었고 과년한 따님 슬하에 있다는걸 알고서는 한 연배쯤 더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첫숫자가 나와 같으시다니와락 친밀감 더합니다.

그러믄요아래 위 십년쯤 얼마던지 맞먹어도 좋은 판에..

친구계수나무님

 

***동우***

2013. 11. 19

 

나는 저 '싱아'의 맛을 모릅니다.

아스팔트 킨트 내게는 박완서의 아름다운 유년저 박적골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제도권 교육을 관통하여 예쁘고 향기로운 선생같은건 있지도 않았습니다

편모슬하의 가족주의 뿐외부로부터 받아 심상(心象)에 간직할 소중한 그림따위 없어 오히려 다행한 성장기였을런지. (남보다 예민한(?) 내 감수성 상처받지 않아...)

 

성장한다는 건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넓혀지는 걸까요아니면 좁혀지는 걸까요.

신체가 발육하듯 무언가 주입되어 하나씩 더하기를 하여 풍요로워 지는 걸까요가능으로 잠재된 인간성으로부터 무언가 하나씩 뺄셈을 하여 여위어 가는 것일까요.

 

하하쓰잘데기없는 생각.. 

 

***afbzhhvjy***

2013. 11. 19

 

이웃블로그 통해서 방문했어요

제가 지금 있는 곳은 산입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보게 되었습니다.

맑은 공기 마시면서

고맙습니다.

동우선생님

 

***홍애(虹厓)***

2013. 11. 23

 

이곳에 나온 남양군도에 대한 표현 복사해 갑니다

남편에게 알려 주려고요어린 박완서의 시간에 조선인에게 들리는 남양군도는 고무가 많이 나는 섬이었다는..

 

***동우***

2013. 11. 25

 

태평양전쟁에 관한 어떤 특별한 주제조교수님의 연구과제임은 진작 알고 있습니다만..

단편적인 하나의 문장도 소홀하게 지나침 없는 아내의 내조.

조박사님의 든든한 조수... 

 

***홍애(虹厓)***

2013. 11. 25

 

그저 읽었고책 덮고나니 기억이 아득하던 차에

동우님 리딩북으로 조금씩이지만 읽어보니

그때는 보지 못하던 것 보입니다.

이거 복사해 놓고알려 주었더니 아주 좋아하네요

딱딱한 사회학자의 글에도 가끔은 독자를 위한 배려로 문학에서 빌려온 문장이 양념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 되겠죠?  

 

***eunbee***

2013. 12. 02

 

비워둔 자리는 내자리 ㅋㅋ 여기에다 주저리 수다 부려놓을게요.

꿈을 꾸다가 깼어요내 교실을 찾지못해 그 많은 계단을 오르고 헤매고 장애물을 뜯어내며 힘들게 빠져나가고

방금 깨어난 그러한 꿈을 자주꿉니다깨어나면 꿈이었구나 하는 시원함과 안도감.

같은 꿈에 시달리는 잠재의식을 탐구 분석 해볼 일이에요.

 

에잉 그건 그렇고분위기 바꿔 육이오 얘기해드릴게요여름피난을 갔지요.

우리에게 방을 빌려준 주인 아낙은 노래를 잘불렀어요ᆞ신작로 복판에는 닥구시가 놀구요..

뭐 이런 노래였지요 ᆞ그 화장기 짙은 여인곁에서 내가 따라부르던 노래였다우.

감나무아래서 감을 줍던 기억도있으니 여름피난은 가을에 집으로 왔을까요?

내 집 꽃밭의 그 찬란한 빛깔은 뭐래요... ᆞ감도 주웠고 찬란한 꽃도 보고 마당가득 내려붓던 햇빛도 있으니 ᆢ

안개 가득한 새벽 풀숲에서 떨어진 땡감을 줍던 기억이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안개가 있는 풍경이랍니다

 

수다 늘어놓으니 답답한 꿈에서 깨어나 서러워지던 기분이 좀 옅어졌네요ᆞ

이제 침상에서 빠져나가 커피를 내리겠어요ᆞ뭘 종알거렸는지 ᆢ

살펴 읽으세요ᆞㅎㅎ

동우님의 멋진 한 주!!

 

***동우***

2013. 12. 03

 

은비님.

뻔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마시우.

꿈이라면 나를 당할 자 많지 않을거유.

내게는 단 5분의 잠이라도 꿈이 없는 경우는 드물어요.

 

예전엔 잠에서 깨어 일어나면 가장 먼저 꿈을 기록하였지요.

그 노트가 10권이 넘는답니다.

내 무의식을 들여다보아무언가 분석을 시도하고자 그리하였는데우핫핫대부분 개꿈이었지요.

많은 꿈들이 주로 수면중 외부의 자극 (춥다 덥다하는 감각의 느낌잠 속을 틈입한 소리같은..)이 일상의 기억과 섞여서 연출하는 드라마입디다.

 

여름피난.

이웃 아낙의 노래, (6.25 전쟁 초기 피난가셨다가 그해 가을 돌아오셨을고향집의 찬란한 꽃밭안개햇빛..

은비님의 두뇌가 기억하는 서사기억이 아니라 은비님의 감성이 기억하는 정서기억일겁니다.

 

살펴 읽었습니다.

은비님의 멋진 하루!

 

***강지현***

2013. 12. 06

 

안녕하세요

 

***<동우>***

2013. 12. 07

 

안녕하세요.

 

***<김종윤>***

2013. 12. 13

 

좋은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동우>***

2013. 11. 23

 

1945년 해방후 1950년 전쟁발발까지

아버지는 열(10) 형제가 넘는 부잣집의 맏아들

그리고 친가 외가의 수많은 직계가족을 통털어 유일한 좌익(左翼)이었다

아버지는 6.25 전쟁 발발 전그러니까 소설 속 저 무렵 월북(越北)하였다

그것은 바로 설흔 갓넘은 아내와 세남매(여섯달 세살 두살짜리)와의 영결(永訣)이 되어 버렸다

나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버렸는지 바람결에라도 한줌 소식 들은 적 없다

 

연좌제에 묶여있으면서도 학교나 군대에서 남들에게는 한사코 우겨야 했던 납북(拉北越北이 아니라), 남한 땅을 살아가는 우리 식구 각자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동우>***

2013. 11. 23

 

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문학평론가 '이남호'의 작품해설을 몇번으로 나누어 옮깁니다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1)- 

-이남호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3부작으로 구상된 자전소설 중 2부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1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년 가을에 출간되어 그 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그 후속편으로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출간하게 되었다

 

1부는 6.25전쟁 동안 작가가 스무살의 처녀로 겪었던 체험을 회상하고 있다

짐작건대3부에는 결혼후부터 작가 가되기까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되면박완서의 3부작 자전소설은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보여 주는 작품이 될 것이며또한 가장 진실되게 쓰여진 20세기 한국의 생활 풍속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이 될 것이다

 

1부와 제2부는 각각 독립된 구성과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3부작 중의 한권으로 의식하지 않고그냥 제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만 읽어도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러나 사정이 허락한다면1 ‘그 많던 싱아는 누가다 먹었을까를 먼저 읽어 두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제2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과거와 사건들의 뿌리가 제1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나 사건이 거쳐온 과거의 시간들을 잘 아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우리에게 역사가 중요하고회상의 기록들이 중요하고박완서의 3부작 자전소설이 중요한 것도 다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이 글도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박완서가 태어난 고향에서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박완서가 대학에 입학하고 6.25를 체험하게 되는 스무 살 때까지의 이야기다

즉 스무 살까지의 박완서의 삶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은 연도로 보면 1931년에서부터 1950년까지로서식민지 지배와태평양 전쟁그리고 해방과 전쟁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수난과 격동과 파란의 세월이었다

 

박완서는 개성에서 10km쯤 떨어진 박적골이라는 시골 마을의 양반집에서 태어나 대가족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여덟 살이 되었을 때어머니를 따라 서울에 와서 가난한 셋방살이를 하며 학교를 다녔다

그러니까 농촌의 삶과 도회지의 삶을 두루 경험하였으며전통적인 삶과 근대적인 삶을 두루 경험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어렵게 살긴 했지만당시에 사회 상황에 비추어 그 때까지는 그리 험한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장환경은 박완서로 하여금 당시의 삶을 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으로 이야기해 줄 수 있도록 했다고 짐작된다

 

박완서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탈고한 후 그 서문에서 "뼛속의 진까지 다 빼주다시피 힘들게 쓴 데 대해서는 아쉬운 것 투성이지만 40년대에서 50년대로 들어서기까지의 사회상풍속인심 등은 이미 자료로서 정형화된 것보다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 증언을 하고자 내 나름으로는 최선을 다했다는 걸덧붙이고 싶다." 라고 적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바람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판단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속에는 당시의 삶과 사회가역사적 자료로서 이미 정형화 된것들보다 훨씬 풍성하고 소중하고 자상하고 진실된 인간적 증언이 담겨 있다

특히일반적으로 이런 어려운 시대의 개인적 기록들은 자신의 고통을 과시하고 또 투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하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다

어려운 시대와 어려운 삶을 이야기 하되당당하고 머뭇거림 없이 이야기하며 또한 아름답게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어려웠던 삶의 공간을 아름다운 이야기의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계속-

++++

 

***홍애(虹厓)***

2013. 11. 23

 

동우님의 댓글로

박완서의 글을 대하는 동우님의 마음을 살핍니다 ^^

전에 읽은 책이지만 동우님 포스팅에서 몇 줄 읽으면서 다시 새롭습니다

이렇게 쓰는구나

이렇게 쓸 수 있구나

이런 것을 써도 되는구나

 

박완서의 글은 삶을 정직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작가와 주인공이 서로 울림을 만들어

그게 독자에게 진솔한 공명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동우***

2013. 11. 25

 

일주일 가량 후쿠오카등 남부일본을 여행하고 다시 동경으로 돌아오신 홍애님.

생기 가득한 홍애님의 모습 보기에 좋~습니다.

 

박완서는 천상 이야기꾼일터이지만자신의 얘기를 쓰기는 쉽지 않았을겁니다.

그리하여 저 서사 속에는 (작가가 의식하였든 의식하지 아니하였던어떤 식으로던 변명과 위장(僞裝)이 없지 않을겁니다.

나는 그것을 행간에서 읽을수 있지요

그것은 그러나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홍애님과 ‘에니 아르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었지요?

자신의 모든 부끄러움을 속속들이 까발린 것 같아도에니 아르노까지도 나는 변명과 위장의 흔적을 느낍니다(?)     

 

문학적 진실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홍애님 번역연재하시는 '옥중19'

서승님이 스케치하여 들려주시는 감옥이라는 곳의 이야기 하나만으로도 흥미진진합니다.

시대적 지식인이며 양심인으로서의 서승님의 사유는 차츰 느끼더라도...

 

***홍애(虹厓)***

2013. 11. 25

 

어쨌든 소설이니까요

위장과 변명이 있더라도 그래야 이야기가 될 테니까

어쨌든 소설을 쓴다고 스스로를 위장 시켰겠지요.

기억 또한 이후 어른 된 다음에 재생되며 다르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저는 소설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합니다 ㅎㅎㅎ

 

***동우***

2013. 11. 26

 

홍애님 유년 소녀 시절을 회억하면서 쓰신 옛 글들을 기억합니다.

홍애님의 글에서 감탄하였던 내 느낌도 뚜렷이 떠올릴수 있습니다.

홍애님의 글꾸밈 솜씨는 차치하고라도 글의 내용과 밖으로 끄집어 내고자 하는 마음의 진솔함에..

그때 나는 '아하이 분은 언젠가는 소설을 쓰시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었지요.

필경 글로써 먹고 사실 팔자로구나 하구요

 

홍애님께 그런 말씀 여러번 들려드렸을겝니다만그 느낌 아직 유효하답니다.

 

***홍애(虹厓)***

2013. 11. 26

 

글로써 먹고 살 팔자에 시쳇말로 빵 터집니다.

그러면 좋겠지만 ㅎㅎㅎ...

그러면 좋겠어요 정말 저에게 그렇게 바랍니다.

 

먹고 살 팔자는 아닌 것 같지만 글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뭐라도 읽어야 하고 뭐라도 글로 꺼내 놓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게 작품이 아니고 화장실에 가서 변비 해소하는 수준이니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지만

그래도 블로그라도 있는 게 저에겐 정신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ㅎㅎㅎ

 

***동우***

2013. 11. 27

 

어떻게 하면 홍애님 자신감을 지속시킬수 있을까.

충분히 자기확신을 가져도 좋을 재능을 지니신 분이.

친구로서 나는 늘 그것이 안타깝다우.

 

***동우***

2013. 11. 23

 

박완서의 숙명여고.

3년 동안 바로 이웃 학교인 중동중학을 다녔기 때문에 숙명여고는 내게 익은 곳이다. (담쟁이 넝쿨로 덮인 숙명여고의 校舍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뿐더러 숙명은 어머니의 모교이기도 한 곳이다.(박완서보다 10년 남짓 선배였을 어머니...)

정능의 소년시절돈암동을 비롯한 성북구 일원도 내게 익숙한 곳..(저녁산책님의 포스팅 '걸어서 성북동 둘러보기'는 내 향수를 자극하였다)

그리고 동도극장.

음습하지만 마냥 행복하였던 공간동도극장은 바로 나의 극장이었는걸...

 

그리고.

내 아버지는 기본출(基本出)로서의 골수 좌익은 될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성장 환경상 아버지를 그 쪽으로 떠밀만한 것은 있을수가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한 그것 탓이다.

흐음지식인의 허영 내지는 이상주의... 아버지 용서하소서

 

전쟁의 음울한 전조 떠돌던 저 무렵.

변절이라는 자기모독을 극복하시고 돌아서셨더라면.

박완서의 오빠처럼 보도연맹 쪽으로 도피하셨더라면.

어머니는 무얼 하셨던가바지가랑이에 매달려 호소와 애원이라도 하셨어야지.

커무니스트 남편에 대한 애정과 존경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눈길에도 한줌 이상주의라도 담겨 있었더란 말가.

 

++++

[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2)]

-이남호 (문학평론가)-

 

필자는 우리 소설문학 속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유년의 공간을 만나 본 적이 없다

고향이라는 말로 상상될 수 있는 최선의 공간이 거기에 있다.

물론 작가 박완서가 아름다운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가 보낸 유년 시절이란 그야말로 가공되지 않은 원료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이 아름다은 보다 중요한 이유는작가의 남다를 심리적 가치와 감수성에 포착된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회상 속에서 박적골의 삶과 자연과 또 그 속의 관계는 너무나 아름답게 재생된다

여기에는 박완서의 정감있고 생동감 넘치는 문체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적골 이야기의 소중함은그것이 우리의 잃어버린 풍습을 섬세하게 기록했다거나 또는 아름다운 공간이라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가치와 아름다움의 원형이 무엇인가라는 점을 알려준다.

실제로는 박적골의 삶의 공간 속에도 많은 비인간적 요소들이나 모순과 고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완서의 회상 속에서 박적골의 삶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아름다움의 뿌리를 보여 준다

박완서는 소설속에서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그 많던 싱아'로 상징화한다.

박완서의 삶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함으로써 그 가치와 아름다움을 훼손 당하기 시작한다

세상을 체험하고 배운다는 것은한편으로는 이상적 고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상실해간다는 것을 뜻한다.

박완서가 여덟 살이 되어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여 세상의 추함과 가파름과 고약함들에 하나씩 부딪히면서 성장해 간다는 것은 곧 박적골의 아름답고 안온한 삶의 충족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성장이란 유년적 공간의 일방적 상실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유년적 공간과 배반되는 세상의 물결 속으로 들어간다

그 세상의 물결 속에서 그냥 휩쓸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물결에 어쩔 수 없이 휩쓸리면서도 나름대로의 자기 공간을 주체적으로 형성해 나간다.

이 때 주체적 형성의 뒷힘이 되는 것이 또한 유년적 공간의 가치와 아름다움이다.

세상의 물결 속에서 고향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추상적으로 변형시키고 내면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단순하고 구체적인 풀에서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가치로 변하는 것이다

박완서가 세상의 모순과 추함과 타락속에서 분노하고 거부하고 슬퍼하는 것은 곧 내면화된 '싱아'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박완서가 소설을 쓰는 이유도 '그 많던 싱아'로 상징되는 가치와 아름다움이 삶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행위일 것이다.

박완서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보여 주는 것은고향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최소한이라도 지키기 위한 노력들이 어떤 고통을 수반하며 또 그 고통 속에서 어떤 삶의 의미가 생성되는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성장소설로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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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3. 11. 25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1951 1.4 후퇴때 비로소 부산 할아버지께로 피난하였다

어머니와 우리 세남매는 6.25 직후서울에서 인공(人共치하를 겪었던 것이다

그 때 예닐곱살 쯤의 형은 외갓집있는 내수동 골목가에서 아이들 모아놓고 인민군 여장교(?)가 가르쳐 준 '장백산 줄기줄기..' 그 노래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몇 장면의 그림만이 아슴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28 서울 수복 무렵이었겠지

이불 뒤집어 쓴 신설동 집(?)의 방공호... 포연 자욱한 동대문통 어느 거리.. 그리고 내 손을 그러쥔 외할머니의 땀에 밴 손의 느낌같은... 

 

어머니

남편 하나 빼고는 수많은 친척 친지들의 근거를 이루고 있는 남녘땅

그 곳을 선택함에 있어 입술 깨무는 어떤 분연함 있으셨을까

아닐 것이다

이념따위는 어머니의 언어는 아니었을 것이다

어머니의 기본색깔이 결코 빨간색이 될수 없는 분이셨다

의사였지만 지극히 감각적이고 장식적인 분이셨는 걸어머니 용서하소서

 

좌익 남편의 월북

그 연좌(緣坐)로 인하여 예제 기관으로 끌려가 뒤집어 쓴 모욕과 고통은 장난이 아니었을 터

그러나 자본주의 탄탄한 시댁이 있으니 맏며느리에게는 든든한 빽줄이 되었을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 

박완서의 저 두 이야기 속에는 내 가족사의리얼리티(reality)를 넘어선 핏빛 짙은 액추어리티(actuality)가 있다

 

작가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이렇게 미완으로 끝내고 연이어 후속편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발표하였지요

내일부터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예닐곱번(?)으로 나누어 포스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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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거기에 있었던 아픔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3)] 

-이남호 (문학평론가)- 

 

2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51 1.4 후퇴 때부터 시작하여 1953년 결혼을 할 때 까지의 이야기다1부와 제2부는 그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

 

아주 간단히 이야기하자면1부는 박완서가 어릴 때부터 대학 들어갈 때까지즉 스무 살이 될 때까지이므로 미성년으로서의 성장과정을 그린 것이고2부는 스무 살부터 결혼 때까지의 성년의 삶을 그린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좀더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선 박완서의 가족 상황을 생각해 보자

박완서의 삶에서 아버지는 존재하지않는다그녀의 가족관계 안에서 남자의 존재는 할아버지와 오빠이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선비나 양반으로서의 권위가 상당히 약화된이름만 남은 양반에 가깝다

그리고 오빠는 아직 성장하지 않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유추가 가능하다

할아버지는 과거 조선시대의 질서를 상징한다현재의 질서를 상징하는 아버지는 식민지 상황이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빠로 상징되는 미래의 질서는 아직 희망과 가능성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러한 가족 상황은 일제시대의 우리 민족적 상황으로 비유될 수 있다

미성년의 박완서는 미미하게 남아있응 과거의질서속에서 보호받다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새로운 가능성인 오빠의 질서 속에서 보호받으면서 성장한다 (이 때 오빠의 보호는 상당부분 오빠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엄마의 보호로 대신된다). 

이처럼 부권으로 상징되는 삶의 질서가 지극히 약한 시대 속에서 박완서는성장한다

비록 그 현실적 힘이 매우 약하기는 하지만 유년 시절에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대신해 주었고사춘기 이후에는 오빠가 아버지를 대신해 주어 그 그늘 아래서 피보호자로 지낼 수 있었다

중학교 이후 오빠의 모든 언행은 박완서의가치 기준이 되었다

 

그러나 1.4 후퇴를 전후로 사정은 달라진다오빠가 인민군에 끌려갔다가 도망쳐 온 후오빠는 자아를 상실하고 거의 폐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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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애(虹厓)***

2013. 11. 25

 

동우님.

동우님 이야기는 댓글로 하지 마시고따로 카테고리 지으셔서 적어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댓글로 쓰면서 쓸 말 하고 싶은 말 적어 두고 싶으나 미처 생각나지 않았던 것들

기록하게 될 것 같습니다

권합니다

댓글로 남겨두기 아깝습니다

 

***동우***

2013. 11. 26

 

하하홍애님.

내 가족사 어름의 이야기는 이미 썼잖아요?

'갈매빛 그늘'이라는 제목으로 10번 남짓.

어줍잖을 망정

 

***홍애(虹厓)***

2013. 11. 26

 

그건 읽었습니다

그 열 번 남짓에 댓글로 쓰신 거 다시 모아 두시라는 것이죠.

댓글은 어쩐지 뒷방신세로 밀려난 글 같잖아요 ^^

안방 놔두고 !

 

***동우***

2013. 11. 27

 

홍애님.

만일 다음(daum)이 문닫게 되면 블로그의 컨텐츠는 각 블로거들에게 옮겨 갈수 있게 하겠지요?

그 때 댓글들은 후루룩 날아가 버릴까?

댓글도 얼마나 귀중한 자료인데..

 

홍애님이 댓글이 뒷방이라 하시니 은근히 걱정되기도 하네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