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내가 만난 하나님>
-김승옥-
***동우***
2013.07.23 05:22
'내가 훔친 여름(終)'의 티팟님 답글에서 언급한 '김승옥'의 간증문 '내가 만난 하나님'을 올립니다.
어느 날.
한 작가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혼이 사로잡혀 명성이 자자하였던 자신의 문학을 버렸습니다.
문단으로서는 한 빼어난 재능의 상실로 아쉬운 한숨을 쉬었고, 그를 맞은 순복음교회는 환성을 질렀겠지요.
그 후 김승옥은 작품 대신 자주 종교토론 같은데에서 그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오래 전, 나는 어느 여성잡지에 게재된 위의 간증문을 읽었습니다. (전의 것과는 조금 다른듯)
실제로 겪었다는 기적의 체험들과 더불어 김승옥의 간증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아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로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김승옥이 썼으므로 당시 부박한 내 신앙은 한결 고무되었을겝니다.
그러나 이제 늙어, 나의 심령은 메말라진걸까요.
<주님, 용서하소서.>
다시 읽고 느끼건대.
예수 그리스도를 얻은 대신, 그의 빛났던 에스프리와 반짝였던 감수성은 빛을 잃고 말았다는 느낌입니다.
사유(思惟)의 모습은 단선적(單線的)으로 흐르는듯 하고, 그의 언어는 건조하고 투박해져 버린듯 합니다.
서구 기독교에 관하여 또는 인도(印度)에 관한 그의 생각들은 피상적이고 일견 독선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적(奇蹟).
그건 유독 기독교만의 독점적인 현상은 아니지 않는가.
조상(祖上)이나 몽매에도 그리던 대상과의 어떤... 흔히 샤먼(shaman)으로부터 접하는 여러가지 형태의 신비한 이야기들... 성 프란치스코의 오상(五傷)... 카잔차키스의 피부병... 루르드 성모의 샘물... 파스칼의 환상이나 아우구스티누스의 환청... 이슬람이나 불교나 힌두교의 에피소드나 설화들....
어떤 갈망과 도취에서 비롯된 심리적 엑스터시가 만든 환각적 체험이라거나, 극심한 정신적 질곡 속에서 일종의 정신적 방어기제가 작용하여 육체적 오감(五感)에 구현되는 현상이라거나...
기독교적 상투성과 아전인수..
무엇보다 한 개인이 체험한 기적의 신앙고백이, 귀납적 추론에 의하여 도달한 종교적 진실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아, 이런 군지렁거림은 내 심령에서 속살거리는 어떤 악한 영의 속삭임인가요.
김승옥은 하나님께서 태초에 이미 예정하여 선택한 사람.
나의 군지렁거림은 선택받은 자의 그 뜨거운 불꽃이 꺼져 버린 까닭일겝니다.
아, 나의 냉담(冷淡)에 한번만 더 불이 붙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예정된 자, 선택된 자의 의식으로 여생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스럽고 고뇌스러운 모든 것들, 몽땅 그 분에게 맡겨놓고 내려놓고서리...
이것저것 종교서적들을 들추어, '예정의 교의(敎義)'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근간, 그에 관한 생각들을 어쭙잖은 내 신앙단상 '몽매의 팡세'에서 지껄이려 하는데...>
크리스찬 블친님들께서는.
김승옥의 간증문, '내가 만난 하나님'으로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현***
2013.07.23 10:41
무진기행을 쓴 작가 맞나요?
솔직히 실망...
동우님 보셨는지요? 그 순수한 위대한 침묵이라는 영화가 생각납니다
종교는 영혼이 빛바랜 광목같이 자신을 삶고 돌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드리고 그래야지요.
***동우***
2013.07.24 05:48
송현님.
하나님이 성별하여 예정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예정신앙'.
자유신학은 떨떠름하게 여기지만 보수신학에서는 '예정의 교의'가 속죄나 구속사역에 버금가는 중요한 교의라고 합디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아퀴나스도, 특히 캘빈은 예정의 교의가 없이는 기독교의 오의를 모르는 거라고 하지요.
공의로운 하나님이신데, 어찌하여 당신께서 점지한 사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저 하나님의 독선적 일방적 선택.
사람의 선의나 윤리의식이나 자격이나 조건이나 환경 같은 건 아무런 선택의 기준이 될수 없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기도는 무슨 소용이며 선교는 무슨 소용이 있는겐지....
예제 책을 들여다 보니, 그에 대한 신학적 논박과 토론이 낭자합디다.
그러나 성서를 읽어보면 (구약도 역시) 예정의 교의는 분명해 보입니다.
이에 대하여는 좀 더 읽고 생각하여 못난 내 '몽매의 팡세'에서 지껄이려 합니다.
다만 송현님.
선택된 자의 입은 침묵을 지킬수가 없다고 하네요.
예정신앙은 현재 자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고 잇다는 실존적 자아의식에서 나온 현실 인식, 그로부터 발현된 간증이므로...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이지만, 저 간증문을 쓴 사람도 김승옥...
봐주기로 합시다. 송현님.ㅎ
***고향***
2013.07.24 06:59
하나님의 선택에는 그 선택을 당한 자가 자유의지로 신을 믿기로 결정하거나 거부하거나 하는 선택도 함께 하므로, 선택 당하지 못한 자는 하나님이 그를 버리기 이전에 그 스스로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을 거부하는 행위가 있다고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의지가 함께 함으로 이루어진다고요.
납득하기 어려웠고 오래 걸렸지만 지금은 예정이 나름 이해가 되어요.
김승옥의 문체에 매료되었던 이십대, 가끔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었지요.
영혼이 육체에서 이탈한 경험등 참 귀한 경험을 많이 하였군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이한 체험을 허락하셔서 진실한 자녀를 만드시나봅니다.
***동우***
2013.07.25 06:35
고향님.
성서, 특히 로마서를 읽어보면 예정의 교의를 부정할수는 도저히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그의 행위나 마음이나 도덕이나 심지어 신심(信心)에도 있지 않다는 것.
그러하니 예정신앙은 현대 신학자들 뿐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하나의 커다란 부담이라고 하더군요.
선교가 기도가 설교가, 인간의 자유의지가 무슨 소용이며 필요가 있느냐.
이 질문에 캘뱅도 '무의미한 질문이다. 하나님의 예정의지는 너무나도 오묘해서 인간으로서는 이해불가 영역이노라'하였다지요?
로마서 9장의 말씀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이 없겠느냐 >이겠지요.
그러하니, 고향님.
선택받았다는 의식, 그것은 하나의 실존적 자기인식으로 받아들여야겠지요.
진흙을 가지고 나를 배설물 담는 요강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도공에게 왜 나를 요강으로 만들었느냐고 길길이 뛰면서 항변할수는 없겠으나, 아 나는 요강이 싫답니다. ㅎ
***고향***
2013.07.30 08:07
청년시절 어떤 이는 영벌이 어떤 이는 천국이 예정되었다는 교리를 인정하기 힘들었었어요.
그러나 왠일인지 그 물을 떠나 살수가 없어(이민 생활의 특성 때문인지^^), 나름 고심이 되었는데
창주주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피조물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창조주를 거부하고 멸시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내버려두심으로 이해를 하고서야 잘 믿고 성실해야지 다짐했었습니다.
동우님의 귀하게 쓸 그릇과 천하게 쓸 그릇의 예정론에 아직도 반발하는 스스로의 반역의 느낌에 마음이 쓸쓸해지는군요.
***동우***
2013.07.31 06:00
으흠, 고향님.
말씀하신바, <창주주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만드신 피조물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창조주를 거부하고 멸시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내버려두심으로 이해를 하고서야 잘 믿고 성실해야지 다짐했었습니다.>
나이롱 크리스찬에게는 좀 어려운 말씀인데,
이를테면 하나님의 예정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내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로 당신을 거부하고 멸시하도록 허여(許與)하심으로써 예정사역을 완성하신다는... 결국 하나님의 자유의지가 멸망케 하는게 아니라, 자신의 자유의지로 멸망의 길을 선택한다는... 그런 말씀?
하하. 고향님.
괜찮으시다면 좀 상세한 설명을....
***저녁산책***
2013.07.24 10:12
어제 스마트폰으로 읽어보았는데..
저도 위에 송현님 말씀처럼..
이분이 내가 알고 있던 그분인가???? 싶었답니다.ㅠㅠㅠ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믿는 모습 참 부럽고 아름답지만...
자신을 다 이렇게 내려놓고..하나님의 자녀? 로만 ..
저도 조금 실망했습니다.
저 같이 아직 못믿는 사람들은
개인이 겪는 툭수한 영적 체험보다는
그 사람이 자신이나 주변에 뿜어내는 고결한 인격이나, 아름다운 영혼의 향기에 더욱 감동받고나서야
그 뒤에 둘러쳐져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분의 믿음과 사랑에 감동하게 되는 것 같더라구요..
제가 이렇게 보는 시각자체가 비 기독교적인 사고이긴 하지만..어쩔수 없는 노릇 ㅠㅠ
***동우***
2013.07.25 06:45
저녁산책님.
넌(non) 크리스찬이 보는 크리스찬.
과연 그러할겁니다.
일방적이고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모습.
위에서 나도 말하였듯, 신앙인이 되고난 후 김승옥에게서 사라져 버린 유니크한 인간성에 깃든 에스프리.
그러나 저녁산책님.
기독교의 컨텐츠가 바로 그거랍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의 포용력은 매우 협소하다고 할 수 있지요.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와 같은 성별의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부정할수는 없을겁니다.
넌크리스찬 우리 저녁산책님의 시각이 어쩔수 없듯이 크리스찬 그들도 그 시각을 어쩔수 없을겝니다. ㅎ
그나저나, 저녁산책님.
북녘의 빚줄기가 이 곳에서는 똑 먼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랍니다.
부산 하늘은 정말 비 내려주기가 싫은 표정, 어제도 하늘은 잔득 찌푸렸는데 성글고 가는 빗방울 잠시 듣는둥 마는둥...ㅎ
***teapot***
2013.07.25 08:27
간증하는 사람들은 정말 할 말이 많다지요?
날마다가 간증거리라고 작가도 말을 했듯이~
저도 크리스챤이지만 믿기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그건 제 생각일 뿐이니까요!
안 믿던 저도 어느날 저절로 믿고 있더군요.
예수 잘 믿으면서 작가는 할 수 없는 건가요?
***동우***
2013.07.26 06:00
티팟님.
분명한 건, 신앙이란 논리가 아니지요.
로고스도 아니고 파토스도 아니고, 어떤 종류의 예술적 감동도 아니겠지요.
이성으로 믿는 차거움, 광신으로 흐르는 뜨거움..
머리로 믿어지는 것도 아닐테고 가슴으로 믿어지는 것도 아닐테고..
요한계시록엔가 그런 말씀이 나오지요?
어떤 신학자는 인간에게는 별도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데 그게 바로 신앙하는 영역이라고 하더군요.
옳으신 말씀.
어느날 저절로 믿어지는 그것..
예수 잘 믿으면서 작가 하는게 쉬운 일은 아닐거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굳건하게 기독교 신앙에 근거하면서 찬연하게 에스프리를 흩뿌린 작가도 얼마나 많게요.
한번 나열해 볼까요? ㅎ
어휴, 그걸 열거하여 설명하자니까 생각이 너무 난삽해 집니다그려. ㅎ
***고향***
2013.07.31 07:04
나이롱 신자라면 일등일 사람이 저라고 생각해요. 영원한 지옥에 보내기로 누군가들를 정해놓으셨다기보다
사랑의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물들을 다 구원하시기로 소원하시나 그 자녀들 중에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구원을 거부할 자들이 이미 누구인지 아신다는 표현을 바울은 그렇게 한것이라고 생각해요.
누구인지 아시나 그가 멸망의 길로 치닫도록 버려두시는 것을 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구원을 받았음을 깨닫고 난 후에야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무조건 지옥에 보낼 자와 천당에 보낼 자를 정하여 창조하신다는 이론은 너무 문자적 해석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문자란 것은 아무래도 생각을 표현하는데 아쉬움을 남기는군요.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도 있을터인데 자신의 문체에 한계를 느낍니다.
스스로의 표현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이렇게 이해하고 납득하였다는 소리이니 딴지를 걸지는 말아주세요.
이건 정말 어려운 문제라 예수님을 만나면 직접 물어보라고 누군가가 그렇게 대답하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동우님의 순수한 신앙을 응원하면서...
***동우***
2013.08.01 06:50
고향님.
짐짓 순수한 신앙이라고 말씀하셔 주시지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명실상부로 몽매한 신앙인의 우문에도 진지하게 답하여 주심이 고맙고.
모자란 신앙.
고향님의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먼 그대 (1,4,3,3,1) (0) | 2020.01.17 |
---|---|
소크라테스의 변명 (1,4,3,3,1) (0) | 2020.01.17 |
달과 육펜스 (1,4,3,3) (0) | 2020.01.13 |
사라지기 위하여 -김정- (1,4,3,3,1) (0) | 2020.01.11 |
대지 -펄벅- (1,4,3,3,1) (0) | 2020.0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