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백종선]]
<잠 못 드는 잠> <줄마노 반지가 내게로 왔다>
<잠 못 드는 잠>
-백종선 作-
***동우***
2016.04.15 05:02
임종(臨終).
누구나 반드시 맞닥뜨려야 하는 시간.
<뭔가 새로운 것, 아주 두렵고 여태까지 그의 일생에서 만난 적이 없었던 중대한 사태가 그의 몸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오직 그 혼자만 알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톨스토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이반 일리이치가 가장 견딜수 없이 무섭고 괴로웠던 것이 무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가족이나 주위사람들의 허위의식으로 가득 찬 눈길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피상이고 추상이었을 뿐 아무도 이반 일리이치(臨終人)의 내면의 그 기막힌 리얼리즘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겁니다.
임종인이 죽음에 이르기 까지의 의식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시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편하게 떠나보내기 위하여 꼭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호스피스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 순간을 맞았을 때, 자신의 심리를 예견하여 정서 컨트롤에 일말 도움이 될듯도 싶습니다만.
퀴 블러 로스(E. K bler Ross, 1926~2004) 박사, 그녀가 정립(定立)한 임종에 이르는 다섯단계가 있습니다.
1. 실존의 뿌리를 강타 당하는 커다란 충격으로 자신의 죽음을 결코 인정할수 없는 강한 否定(Denial)의 단계.
2. '하필 지금 내가 죽어야한다니' 가족이나 의료진에게, 神 에게까지 터뜨리는 분노 (Anger)의 단계.
3. '살려 준다면.. 하리라' 하는 내면적 타협 (Bargaining)의 단계
4. 극도의 상실감으로 빠지게 되는 우울 (Depression)의 단계.
5. 마지막 도달하는 죽음의 수용 (Acceptance)의 단계
이 다섯단계는 정론(定論)이며 또한 사실입니다.
여러 지인(知人)의 병상,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서 목격한 임상(臨床)이 그것을 증명합니다.
1998년 5월 영도병원 8층의 병실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임종을 예감하였던 처음 대단히 분노하셨다가 기억속 어느 시점을 중언부언하였다가 스스로에 대하여 몹시 탄(歎)하고 훼(毁)하였다가 허공 한지점에 시선이 고착된채 오랜 침묵 속에 빠졌다가 이윽고 두 손 모두어 잡고 '믿습니다'를 계속 중얼거리다 가셨습니다.
백종선의 '잠 들수 없는 잠'
죽음에 이르는 한 노파의 의식의 흐름을 섬세하게 묘파한,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의 마지막 병상을 지키던 무렵을 기억하는데, 작가 역시 여러 목격임상과 그윽한 관찰과 깊은 궁구가 있었을테지요.
파킨슨씨 병에다 고관절까지 다처 병상에 누운 여든 넘은 여인.
죽음에 이르기까지 노파의 심리상태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잠 들수 없는 잠'... 임종의 과정을 '죽을 수 없는 죽음'에 은유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이 한 쪽 폐를 잘라내고 천식으로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나는 곰곰이 생각했었다. 다른 복은 없더라도 곱게 죽을 수 있는 복만 있었으면 하고. 그런 말을 입버릇처럼 하면 자식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엄마는 성격이 깔끔해서 죽을 때도 깔끔하게 가실 거라고. 아무 걱정 말라고.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미래를 예견하는 일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말이다.>
임종의 순간 뉘라 감히 곱게 죽을수 있는 복을 자신할수 있겠습니까.
아, 임종은 개별적 실존이 겪는 리얼리즘의 극점입니다.
임종현실(臨終現實)의 감정모체(emotional matrix)는 누구나 마찬가지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철학자도 예술가도 혁명아도, 그 누구도 저 다섯단계에서 예외가 아닐겁니다.
처절한 고독 속에서 개별적 정서에 잠겨 그렇게 죽음을 맞을겁니다.
철학적 예술적 지사적(志士的)으로 그 경계를 넘어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확신합니다.
사람은 결코 인문(人文)으로 죽을수는 없습니다.
예수께서 심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기 전 하늘을 우러러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신학적 해석이 어떻든 간에 나는 저처럼 인간으로 돌아가신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정희가 담당 의사와 상담하고 난 후에 약 처방전이 바뀌면서 환각작용은 사라졌지만 나는 여전히 블랙홀 속에 갇힌 듯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새 고통스러워하자 같은 병실 환자들이 잠을 못 잔다고 병실을 바꿔달라고 소동이 일어났다. 아!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일이 한층 더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고통도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고 이렇게라도 내가 살아있는 게 좋다던 정희는 며칠 밤잠을 못 이루고 병실에서 쫓겨날 처지라는 말을 듣고 한밤중에 병실에 나타났다. 엄마! 오늘밤은 신경안정제 먹지 말아요. 내가 엄마 침대에서 같이 잘 테니까 아무 걱정 말고 눈을 감아 봐요. 따뜻하고 감미로운 햇살아래 콩고물 같은 모래밭을 엄마와 내가 손잡고 걸어가고 있어요. 어머나! 물가에서 고기를 잡아채던 갈매기 한 마리가 바다위로 날아오르네요. 그런데 참 신기해요. 갈매기가 높이 나를수록 날개가 무지개 색으로 변해요. 저기 봐요 엄마. 어느새 무지개 사다리가 떴네. 우리 무지개 사다리타고 올라가 봐요. 엄마는 이 땅에 발붙이고 고단하게 사느라 구름사다리 타 본 적도 없잖아요. 무슨 일이지? 분명 정희가 내 곁에 같이 잔다고 했는데. 어디서 최면술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팽팽하게 긴장했던 신경 줄이 나른하게 풀어지면서 나는 아늑한 잠의 골짜기로 떨어져 내린다. 산다는 건 어떻게 죽어야 하는가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걸 내게 알려 준 엄마! 엄마를 만나서 행복해요. 그리고 엄마를 사랑해요. 어렴풋이 정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후각과 청각과 시각.. 모든 감각 속에 엉켜드는 저 기억의 욕동들.
백합 향기.. 아들과 아들의 여자와 바람둥이 시누이. 그리고 의붓딸 정희.
상처받아 아픈, 미워하고 상처 준 사람들.. 아, 그러니까 기억들은 죄 한(恨)으로 안고 가는 것인지요.
<스스로 품위 있는 죽음을 희망하면서도 단지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나를 그냥 보내지 못하는 정희의 마음은 그냥 본능인 걸까? 땅을 온전히 딛고 있지도 못하고 새털처럼 가벼운 몸을 하고서도 하늘로 날아가지도 못하는 나를 대책 없이 바라보는 가족들이야 말로 천형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는 지금 아마도 정희가 가끔 들려주던, 코마 장벽이라는 곳에 와 있는지 모른다. 삶과 죽음의 경계라는 그곳, 안개 자욱한 깊고 깊은 골짜기로 누군가 나를 떠미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윽고 끝도 없는 어두운 골짜기로 밀려 내려간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안간힘으로 떠올려본다. 정희의 해맑은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구름 조각이 되어 흩어진다.>
의붓 딸 정희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참 매혹적인 캐릭터로 느껴집니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핏줄의 연고는 행복한 임종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고 임종인에게는 무엇보다 호스피스의 역할이 지대할거 같습니다.
노파는 정희의 해맑은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삶 속의 모든 기억(恨)들을 구름 조각으로 흩어버리고 자연의 품 속으로 돌아갑니다.
삶의 논리만이 기승인, well-being 만이 장땡인 작금의 세상.
한사코 죽음은 추상의 영역으로 감추이고 주검을 소독하려 합니다.
아, 아름답게 죽기.
well-dying.
호스피스의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한다니 그건 참으로 잘하는 짓입니다. ㅎ
***동우***
2016.04.15 12:06
++++
<임종 예습>
-구상-
흰 홑이불에 덮여
앰블런스에 실려간다.
밤하늘이 거꾸로 발 밑에 드리우며
죽음의 아슬한 수렁을 짓는다.
이 채로 굳어 뻗어진 내 송장과
사그라져 앙상한 내 해골이 떠오른다.
돌이켜보아야 착오 투성이 한평생
영원한 동산에다 꽃 피울 사랑커녕
땀과 눈물의 새싹도 못 지녔다.
이제 허둥댔자 부질없는 노릇이지…
"아버지 저의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시늉만 했지 옳게 섬기지는 못한
그분의 최후 말씀을 부지중 외우면서
나는 모든 상념에서 벗어난다.
또 숨이 차온다.
++++
***동우***
2016.04.16 04:38
++++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용혜원-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화려하게 꽃피는 봄날이 아니라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가을이 되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사고나 실수로 나를 찾아오지 않고
허락하신 삶을 다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하늘은 푸르고 맑아
내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한 날이 되게 하소서
늙어감조차 아름다워 추하지 않고
삶을 뒤돌아보아도 후회함이 없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랑을 나누며 살아
쓸데없는 애착이나 미련이 없게 하소서
병으로 인하여 몸이 너무 쇠하지 않게 하여 주시고
가족이나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는
기력이 있고 건강한 때가 되게 하소서
나의 삶에 맡겨주신 달란트를 남기게 하시고
허락하신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며
가족과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살게 하소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는 날은
주님의 구원하심과 죄의 용서하심과 사랑을
몸과 영혼으로 확신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가족들에게 웃음 지으며
믿음으로 잘 살아가라는 말과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을 남기게 하소서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 고요히 기도 드리며
나의 영혼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
***내안의 정원***
2016.04.15 14:20
참 리얼한 글입니다.
오래전 프랑스의 여류작가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않는다>라는 얇은 책을 누가 권해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치매 걸린 엄마와 딸이 뒤바뀌게 되던..
<잠 못드는 밤>은 속내의처럼 밀착된 느낌입니다. 죽음 직전 코마의 장벽으로 들어가는 노파의 의식과 무의식을 잘 그렸군요.
***동우***
2016.04.16 04:45
내안의 정원님.
‘아니 에르노’의 고백적 소설을 읽고 전율한 적이 있습니다.
깊게 숨겨진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낼수 있다는 용기에.
필경 소설이란 작가의 내면의 어떤 모습이리다.
코마의 장벽으로 들어가는 노파의 의식...
이 소설.
백종선 작가에게 들은바 자신의 어머니 마지막 병상의 임상이 바탕이 되었다고 합니다.
심리학을 공부한 지식을 가미하여.
내안의 정원님의 댓글,
작가가 기뻐하리이다.
***설레임***
2016.04.19 06:28
구름조각
그렇게 쉽게 삶을 추억을 내 모든기억을 놓아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난 이리 중병인데도 현실을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래곤합니다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천성
다 털고 홀가분해야 하는데 그렇지 옷함을 이 아침 또 부질없는 욕심을 탓해봅니다
내려놓는 연습중이랍니다
밤이 너무 길어 새벽에 일어나 할 수 있는것이라곤 이 작은 핸폰속의 글자를 읽는것
덜 병들은 환자의 넋두리 ㅎ
이것 또한 여러사람이 사용해야하는 번거로움
독방은 또 무섭고 외롭고 ㅎ
동우님은 건강하세요
***동우***
2016.04.20 04:58
설레임님은 반드시 건강을 찾으십니다.
힘을 잃지 마십시오.
무서워하지도 외로워하지도 마십시오.
새벽, 경건에 잠겨 옷깃 여미고 간구합니다.
힘을 잃지 마십시오.
성실하고 긍정이신 분이시니, 반드시 회복하십니다.
<줄마노 반지가 내게로 왔다>
-백종선 作-
***동우***
2016.05.08 03:56
어버이 날.
시의적절한 소설, '백종선'의 '줄마노 반지가 내게로 왔다'를 올립니다.
큰마누라가 있는 줄도 모르고 시집 와서 네 아들 낳고 키우면서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을 살아 온 서당집 며느리.
늙고 병들어, 시궁창 냄새 풍기는 비대한 몸으로 어느 날 큰아들네 안방으로 비집고 들어 왔습니다.
정신까지도 오락가락합니다.
큰 며느리, 이제까지 누려왔던 생활은 철저하게 파괴되어 버렸고 몸과 마음은 절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노파는 그런 며느리에게 어떨 적에는 아들 유세를 업고 자못 당당한 척도 하지만 그 감정모체는 오로지 무력한 자의 비굴함입니다.
<“에미야! 힘들더라도 나를 요양원에 보내지 마라. 난 큰며느리하고 살다가 죽고 싶어. 요강을 화장실에다 두고 그곳에서 누고 요강도 내가 비우마! 그러니 요양원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아라.">
한사코 요양원에는 가지 않으려는, 노파가 며느리에게 의탁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병든 육신뿐이 아닐겁니다.
생애의 근거였던 정신적인 공간, 그 관계의 테두리 안에서 죽고 싶은 겁니다.
노파의 처절한 실존적 자각이고 도피였을겝니다.
생각건대, 우리 가정의 생활영역에는 병듦과 늙음과 죽음을 용납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늙음과 병듦은 창백한 의료환경 속에서 이루어지고 죽음은 주검처리 시스템에 의하여 쌈빡하게 처리됩니다.
언제부터인가 동네 장의사는 없어져 버렸습니다.
생각과 마음과 사랑의 문제는 몽롱한 추상의 영역으로 감추어버린채, 오로지 유물론적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상.
나는 가끔 생각합니다.
우리는 시방 기로(耆老, 고려장)의 세기를 사는게 아닐까 하는.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걸 어디 안보이는 곳으로 감추이고 내다 버리려고만 하는지요.
늙는다는 건 죄스러운겁니까?
죽음이 부끄러움입니까?
그렇다면 젊음도 수치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걸 죄송스러워 해야하지요.
진실로, 늙음은 청춘과 함께 있고 죽음은 삶 속에 있습니다.
줄마노 반지의 은유....
18년전 죽은 내 어머니의 줄마노 반지, 시방 내가 끼고 있습니다.
이름없는 무덤 곁을 지납니다.
내 무덤입니다.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흘러가 버렸을까? 저녁노을이 참 아름답듯이 노을 진 나이에 아름답게 살고 싶었는데 말이야. 다 지나간다고 했다. 그래! 힘들고 짜증스러운 이 시간들도 결국은 먼지가 되어 사라져 버릴 거다. 언젠가는 그녀가 풍기던 똥냄새조차 그리워지는 순간이 오려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보살펴 드려야지.’ 그녀는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산길을 뛰어서 내려오는데 이상스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나는 저 며느리가 참으로 이쁩니다.
어여쁜 사람의 어여쁜 孝의 모습을 봅니다.
***아네스***
2016.05.09 00:44
작품을 쓴 지 1년 3개월 만에 다시 읽어봅니다
작품 줄마노반지 보다 동우님 댓글이 더 깊어요.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변함없는 나의 벗이여.
우리 깊은 우정에 감사드려요^^
***동우***
2016.05.09 04:20
아네스님.
연휴 잘 보내셨겠지요.
어제는 손주들로부터 어떤 기쁨의 세례를 받으셨을까?
'줄마노 반지가 내게로 왔다'
어제 하루 동안의 페이지 뷰가 60이 넘었네요.
사이버 상일 망정, 여러 분 읽어주시니 작가의 친구로서 나 역시 기쁩니다.
다른 작품들 텍스트 파일 보내주신다면 가끔 올리고 싶은데... 여하? ㅎ
늘 아네스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아네스***
2016.05.09 11:52
7일 공주 한옥마을에서 김홍정 소설가 '금강' 역사소설 출판한마당 축제가 있었어요.
초대받아 갔다가 우금치 극단 공연도 보고 일박하면서 갑사여행도 하고 밤늦게 돌아왔더니 손녀가 편도선염이 심해 지금 막 병원에 다녀왔답니다.
든든한 벗 동우님.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합니다.^^
***동우***
2016.05.10 04:33
김홍정님의 역작, '금강'
요즘 장안의 화제더군요.
아네스님 집필하시는 장편도 기대합니다.
손녀 아프면 할머니 마음도 아픈데..
조손 두루 좋은 하루 되시기를.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경리 1.2.3.4 (1,4,3,3,1) (0) | 2020.02.19 |
---|---|
스탠리 엘린 -전,후- (1,4,3,3) (0) | 2020.02.19 |
원유회. 가을소나타. 나의오이디푸스콤플렉스. 타베티 (1,4,3,3,1) (0) | 2020.02.14 |
김동리 前,後 (1,4,3,3) (0) | 2020.02.13 |
넙치 1.2.3.4 (1,4,3,3) (0) | 2020.0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