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박경리]]
<불신시대> <환상의 새> 씨에게>
<불신시대>
-박경리 作-
***동우***
2013.01.17 05:19
아주 옛날 읽었던 것인데 이제 올리면서 다시 읽은 소설 不信時代.
1957년에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된 박경리의 초기 단편소설입니다.
종전후 4년 남짓한 시점의 궁핍한 현실상황.
교회도 절깐도 병원도 가까운 이웃도 나남없이 노골적인 야비함으로 살아가는.
허위와 위선과 기만적이고 부조리한 세태(世態).
그 세태에 상처받는 한 여인의 심리적 절망감은 그 시대적 상황을 불신시대로 명명하였다.
<사람을, 사람을 좀 미워해야겠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신을 왜 생각은 해. 아니 아까는 없다고 하고선…… 아니야 모르겠어. 사람을, 사람을 좀 미워해야겠다. 반항을 해야겠다. 모든 약탈적인 살인자(殺人者)를 저주해야겠다.>
<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무참히 죽어 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 참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 내리고 있었다. 그렇지. 내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지. 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참나무를 휘어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박경리 훗날의 소설, ‘시장과 전장’이 떠올라 책을 꺼내 펼친다.
6.25 전쟁 잠시 교착상태의 서울, 주인공 지영은 한 겨울 그 고요 속에서 흐느낀다.
<빙하. 어느 빙하인가. 유리알같이 얼어붙은 길과 채마밭. 달빛이 미끄러진다. ‘마음이여, 마음이여. 너 참 질기기도 하여라.’ 얼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 말을 누가 했을까? 음, 음. 누가 했을까’ 그는 그 생각에 골몰하여 추운 것도 잊고 그냥 쭈그리고 있다. ‘그 말을 누가 했을까. 누가 했을까. 누가 했을까.’ 지영은 얼굴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다시 사방을 살핀다. 신비스럽게 아름다운 은세계. 눈에 쌓이고 얼음이 되어 버린 대지 위에 달빛만 소나기처럼 내리 쏟아진다. 무릎으로 땅을 짚고 가슴을 피며 냇물처럼 흘러가는 무한히 무한히 긴 침묵을- ‘아아, 아무도 오지 말라! 이땅에. 아무도 오지 말라! 이 땅에! 내 혼자 내 자식들하고 얼음을 깨어 한강의 붕어나 잡아 먹고 살란다. 북쪽의 백곰처럼 자식들 데리고 살란다! 아무도 오지 말라! 아무도! 영원히 영원히 이 밤이 가지 말구.. -시장과 전장- >
아, 저 아름다운 목숨들을 무엇이 이리도 핍박하는가.
‘불신시대’
먼 훗날 박경리가 쓴 대하(大河)와 같이 도저(到底)한 스케일의 ‘토지’를 떠올리면, 저 소박한 피해의식은 차라리 애련토다.
그렇지만 묻노니.
저로부터 반백년 지난 작금의 세태는 ‘불신시대’가 아니란 말가.
생활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우리의 도덕적 가치는 그만큼 진화하였을까.
허어, 아니로다.
허위와 위선과 기만과 부조리는 이제 차원을 달리하여 더욱 세련되어 졌다.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마르크스의 명제.
부르주아적 삶이 만들어 낸 ‘부르주아적 의식’.
그것은 궁핍이 만들어 낸 ‘가난한 자들의 의식’보다 더욱 추악하지는 않을까.
더욱 야비하고 더욱 치명적인 것은 아닐까.
***teapot***
2013.01.19 02:32
동우님의 말씀대로 요즈음은 차원을 달리한 야비하고 세련됀 불신시대인 것 같아요.
사람들 마음이 점점 더 강팍해져 가는거죠?
우리나라도 경제지수는 올라가는데 행복지수는 자꾸 떨어진다고 들었읍니다.
우리 애들들이 우리보다 더 어려운 시대에 살게되는 것이 아닌지 두려워요.
***동우***
2013.01.19 06:12
그렇지요. 티팟님.
사람들의 존재가치가 경제가치에 점점 침식되어 가는 느낌은 참 두려운 것이겠지요.
그러나 티팟님.
우리, 밝은 쪽을 믿기로 합시다.
우리 아이들의 세상은 좀 더 낳은 행복한 시대일거라고.
<환상의 새>
-박경리 作-
***동우***
2015.10.12 04:53
<밖에 나갔다 오면 횃대 위에서 이리저리 뛰며 기뻐 어쩔 줄 모르던 새, 언어의 가소로움을 나는 그때 느꼈다. 전신으로 표현하는 기쁨, 그것은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언어의 가소로움...
비니미니 자라는걸 보면서 느낍니다.
아기들, 언어를 알아갈수록 몸이 내지르는 소리를 잃어버린다는 걸.
말조각 글조각의 기교로움은 언제나 생명으로부터 아득한 법입니다.
생명은 아픔이요, 생명은 사랑.
박경리 문학의 기조가 과연 그러합니다.
요즘 조성윤 교수의 '남양군도'를 읽고 있습니다.
남태평양..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햄머스타인의 환상적인 뮤지컬 넘버... 로사노 브라지가 부르는(더빙) '어느 황홀한 저녁...남국 파라다이스의 달콤한 행복...
그러나 문학적 유도리(수사)없는 학자의 엄정한 글쓰기 속에서 그 섬들 개별이 집단으로부터 당하는 슬픈 역사를 들여다 봅니다.
짐승의 고기를 즐기는 나, 게걸스레 뜯으면서 그 생명을 생각한적 없습니다.
그러나 새벽녘 가끔은 쉬바이처 불멸의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나는 살기를 원하는 생명의 한복판에 있는 살고자 하는 생명이다."
도살자를 올려다 보는 소의 그토록 선량하게 슬픈 눈..
한 생명의 내막(內幕)..
아름다운 남국 섬의 내막..
하나의 생명을 연민한다는 것.
생각건대 모든 개별적 사유의 기초는 여기에서 출발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동우***
2015.10.13 03:47
앗, 이를 어째요!
다음카카오의 얼굴없는 판관(判官)으로부터 일주일의 금고형(禁錮刑)을 선고받았습니다.
오늘부터 10월 19일까지 블로그질 할 생각일랑 아예 품지말고 꼼짝말라는.
댓글란마저 내 아이디로는 글쓰기가 안되는군요.
이것, 익명의 아이디로 올리는겁니다.
전에 말씀드린바처럼, 이미 올렸던 리딩북은 댓글과 답글만 따로 건져서 포스팅하고 본문은 삭제해야 함을 심각하게 생각해야겠습니다.
새로 올리는 작품들은 한달 정도 살려놓아 독자님들 충분히 읽으신 연후에.
19일까지.. 리딩북 독자님들께 미안함을 전합니다.
그동안 댓글란에라도 익명으로 접근하여 짧은 글이라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판결문입니다.
자못 삼엄합니다그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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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bee***
2015.10.13 07:40
어린 목숨 먹여 살리느라 애쓰다가
불시에 낚아채인 어미새를 바라보는
힘없는 아기새가 된 기분이에요. ㅠ-ㅠ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이 아침도
당연한 기대로 대문 들어선 나.
미안코, 고맙고, 안타깝고...
힘내라, 동우!
어미새가 먹이 물고, 아니 빈 입으로라도 날아오길 기다리며,
빤히 하늘 올려다 보고 있을게요. '비단구두사가지고오신다더니...' 흑흑~ ㅎ
***동우***
2015.10.15 04:18
하하, 은비님.
블로그 족쇄명령 금(禁)줄, 지엄하군요.
도둑처럼 내 집 담을 이렇게 몰래 넘어 들어와야 하다니.
은비님의 '안타깝고'는 알만한데. 은비님의 '미안코'는 전혀 해당 사항 무!
19일 지나면 금줄 거두어준다니, 비단구두 꺼정은 아니더라도 고무신 쯤은 들고 돌아오리다.
댓글란에는 익명으로 접근하여 글을 올릴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박경리를 올립니다.
***미아리***
2015.10.13 10:05
오호, 애재라.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거늘.
독창적이고 유려한 동우님의 느낌의 글과 함께 읽는 리딩북..
동우님께서 이런 일로 행여 의기소침하지 마시기를 기원합니다.
***동우***
2015.10.15 04:21
미아리님.
어줍잖은 리딩북을 일일부독서...하여 주시니 거듭 고맙습니다.
미아리님 같은 분 계셔.
의기소침 하지 않사오니,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으리다. ㅎ
***동우***
2015.10.15 04:22
++++
씨에게>
-박경리-
...
그런데 Q씨.
참으로 쓸쓸하고 막막한 부름이군요. 나는 도무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내 그림자인지도 모르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벽인지도 모르겠고 저 머나먼 곳, 밤하늘에 있는 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나를 알 턱이 있나요.
영원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소망하는 노래를 우리가 부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노래는 그치지 않는 인간의 울음이라는 것도.
설사 우리 인간들이 함께 으슥한 뒷골목, 낡은 간판이 겨울바람에 덜컥거리는 음식점에 앉아서 저녁을 나누어 먹고 톱밥 불이 모락모락 타는 손님 없는 다방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한잔의 커피를 즐기다가 가등(街燈)이 뿌옇게 번져나는 밤 늦은 거리에서 헤어지는 다정함이 있다 하더라도 내 쓸쓸한 의미를 알 리 없거늘, 하물며 Q씨 당신은 내 그림자요? 허공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Q씨.
이 부름에 무슨 메아리를 바라겠습니까. 게다가 나는 진실로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명한 언어를 지니지도 못하였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그 누구든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심지어 지나가는 행상까지도 머무르게 하여 이야기하시기를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기뻤던 일보다 슬펐던 이야기를 더 좋아하는성 싶었습니다. 하기는 기뻤던 일보다 슬픈 일이 더 많았던 생애였으니까 그랬을 테죠. 사람을 만날 수 없었던 날이면 나의 어머니는 강아지니 고양이를 상대로 푸념도 하시고 짜증도 내시고 때론 야단도 치시고 하죠. 얼마나 외로운 풍경입니까.
하지만 나는 어머니의 그 외로운 풍경을 아주 싫어한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를 노엽게 하는 것은 어머니의 눈물, 어머니의 푸념이었으니까요. 왜냐구요? 모르겠어요.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아마도 내 가까운 사람의 설움을 보는 것이 두렵기 때문일 거예요. 하기는 내 딸이 아팠을 때 나는 줄곳 화만 낸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도 소설을 쓰지 않았더라면 어머니처럼 이야기하기를 좋아했을 겁니다. 지니가는 행상의 옷소매를 잡았을 거고, 강아지나 고양이를 들볶았을 거고, 새벽이면 새벽마다 염주를 매만지며, "나무관세음보살! 나무관세음보살!" 염불을 외웠을 것입니다.
실인즉 지금 나는 Q씨를 향해 온갖 군소리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항시 나는 할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너무 할 말이 많아 나는 내 몸무게를 잃을 지경이었고 내 눈은 별이 기득찬 우주와 그 우주 밖 무궁한 곳을 얼마나 헤매었는지.
당신은 그처럼 많은 소설을 썼으면서도 아직 군소리가 남아 있느냐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나는 오늘 이 순간이 오기까지 할말을 한마디도 못했다는 괴로움을 안고 있습니다.
또 뭐라는 겁니까? 그럼 속 시원히 할말 다 해버리라고요?
Q씨.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 아름다운 이 지상, 어느 누가 할말을 다 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인간이 탄생했던 그 시기에서 역사를 살고 간 그 억만의 사람 중에서 그런 분이 계셨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인성 싶습니다. 무슨 그런 독단이 있느냐고 말씀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할말 없죠만.
하지만 Q씨,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나는 건방지기도 하고 주착없기도 하고 황당무계하기도 하고, 그저 내 심상에 비친 말을 하는 거예요. 혹시 할 말씀을 다 하고 가신 분이 계셨더라면 그분은 틀림없이 신이거나 영원한 생명일 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석가와 기독이 일찌기 계셔서 그분들이 오늘에도 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과연 이분들은 할말을 다 하고 가셨는지.
진정으로 나는 그런 확신을 열망하고 있습니다. 확신할 수만 있다면 나는 뜨거운 희열로써 그분 발밑에 귀의하여 내 모자라는, 아니 잃은 언어를 위해 구원을 애걸하겠습니다.
Q씨.
지금 어느 송신소인지는 모르지만 외로운 어떤 소녀가 사연을 띄웠군요. 자기를 위해 청해 줄 사람도 없고 자기 역시 청해 드릴 분도 없으니 나를 위하여 내 혼자 조용히 듣겠노라고 음악 한 곡을 청하였습니다.
<태양은 외로워>-
나도 본 일이 있는 영화 주제곡이군요. 그 메마른 비애의 음악에서, 외로운 소녀의 사연에서 공통된 언어는 있었다고, Q씨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런성 싶어요. 하지만 좀 기디리세요. 아마도 이것은 착각인 것 같단 말입니다.
베토벤은 왜 그리 죽었을까요.
인생은 한갓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죽었다지 않습니까.
Q씨.
이리하여 나는 사람을 만나는 고통을 또 맛보고 내 집에 돌아와서 문을 닫아걸려고 결심했습니다. 나는 본시 그런 군소리하는 입을 닫아둘 만큼 절도 있는 여자가 못된 탓이었습니다. 고삐를 잡고 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할 때 나는 자신이 무서워지는 때가 많습니다.
아득한 강물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닫는다는 것은, 언어는 그 강물 이편에서 허위적거리며 한치도 헤어나갈 수 없는 허수아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언어에 사로잡혀 빠져날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강을 건널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것이기 때문이겠죠. 언어가 지닌 숙명적인 마성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야수처럼 태고적에 나무숲을 타고 다니던 인간이 인간을 발견하였을 때 지른 고함, 그것은 무서움이었든지 반가움이든지 오늘날 수천 수만의 언어보다 과연 더 못했을까. 그들은 그때도 마음을 가졌던 것이었을까. 길을 거닐다가도 문득 생각해 보면 아리송한 산을 바라보곤 하는데-
나는 사람을 만나는 고통 때문에 내 집 문을 닫아걸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가 서글픈 미소를 지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참으로 느낌에서 억겁을 겪은 듯한 시련이건만, 인간이란 도시 서글픈 미물이군요. 나는 다시 거리를 헤매어 다녔으니 말입니다. 거리에는 가을철, 낙엽이 구르고 있었습니다. 널찍한 플라타너스 잎이 을씨년스럽게 너풀거리고 있었습니다.
가을의 마음을 느끼기에는 어쩐지 그 잎이 너무 커서 하마 입을 연상케 되더란 말입니다. 어릿광대의 원색도 잠시 눈 앞에 스쳐갔고, 그러나 이내 친근미를 갖게 하더구만요. 희극이 비극보다 어려웠던 탓이었는지도 모르죠. 희극이 비극보다 희소했던 탓이었는지도……
……
이제 얼마 되지 않으면 일모가 올 것입니다. 그러면 습습한 바람이 불어오고 일제히 켜지는 상가의 불빛은 사십 고개를 넘은 여인들에게 청춘을 덤으로 줄 것입니다. 우리 이웃 산장에서도 밴드 소리가 숨을 죽이며 울려나올 거고, 사십 고개의 여인들이 주름살을 잊고 도둑처럼 기어드는 산장의 댄스홀……
아무도 만나지 말고 개울 길을 건너서 나는 내 그림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끝-
++++
***동우***
2015.10.15 04:40
박경리 가신지도 어언 8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Q씨.
참으로 쓸쓸하고 막막한 부름이군요. 나는 도무지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내 그림자인지도 모르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벽인지도 모르겠고 저 머나먼 곳, 밤하늘에 있는 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나를 알 턱이 있나요.
영원한 암흑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소망하는 노래를 우리가 부르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 노래는 그치지 않는 인간의 울음이라는 것도.
설사 우리 인간들이 함께 으슥한 뒷골목, 낡은 간판이 겨울바람에 덜컥거리는 음식점에 앉아서 저녁을 나누어 먹고 톱밥 불이 모락모락 타는 손님 없는 다방에서 슬픈 음악을 들으며 한잔의 커피를 즐기다가 가등(街燈)이 뿌옇게 번져나는 밤 늦은 거리에서 헤어지는 다정함이 있다 하더라도 내 쓸쓸한 의미를 알 리 없거늘, 하물며 Q씨 당신은 내 그림자요? 허공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잖습니까.>
'Q씨에게'
박경리의 산문집, 근 40년 전의 글입니다.
Q씨라는 익명의 대상을 향하여 조곤조곤 얘기하는 박경리의 혼잣소리, 일테면 푸념이나 하소연일테지요.
박경리는 사람을 만나는 고통에 대하여 얘기하였습니다.
그렇지요, <스스로 타인이 되는 순간>도 없지 않은 실존인데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고통 왜 없겠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다 아름다운 이 지상, 어느 누가 할말을 다 했습니까. 만약 그런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입니다.>
또한 그렇습니다.
한세상 살다가면서 어느 누가 할말을 다하고 살다 가는 사람 있을라구요.
다 내려놓지 못하고 가는 인생이 좀 쓸쓸할 뿐이지요.
박경리.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렇게 편안한 것을...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박완서의 말년.
"나이가 드니 마음 놓고 고무줄 바지를 입을 수 있는 것처럼 나 편한 대로 헐렁하게 살 수 있어서 좋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할 수 있어 좋다. 다시 젊어지고 싶지 않다.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안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좋은데 젊음과 바꾸겠는가....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 난 살아오면서 볼 꼴, 못 볼꼴 충분히 봤다. 한 번 본 거 두 번 보고 싶지 않다. 한 겹 두 겹 어떤 책임을 벗고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을 음미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소설도 써지면 쓰겠지만 안 써져도 그만이다."
-독서 리뷰-
[[박경리]]
<멀리 나는 도요새> <죽음이란>
<멀리 나는 도요새>
-박경리 作-
***동우***
2015.10.16 04:13
오늘도 내 집에 익명으로 들어와, 댓글란에다 박경리의 글 한편 올립니다.
++++
<멀리 나는 도요새>
-박경리-
20대 이후 가파로웠던 생활 탓이었는지 노래를 배울 겨를이 없었고 기억에 남아 있는 노래 같은 것도 거의 없다.
6.25 당시 고향을 피난 갔을 무렵 전진(戰塞)을 미처 털어내기도 전에 들은 음악이 아득하게 멀고 무감동했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근자에 와서 우리는 싫든 좋든 텔레비전에서, 라디오에서, 다방 같은 곳에서, 혹은 차 속에서,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매일같이 흔하게 듣는 것이 가요다. 더군다나 무슨 순위에 올랐다 하면 오나 가나 귀가 따갑도록 되풀이하여 들려오는 곡목. 그러나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을 들어도 들을 그때뿐이지 가사 한 줄, 멜로디 한 토막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아마 기억 감퇴의 현상이 아닌가 싶다.
그랬는데 요즘 이상하게 머리 속에서 맴도는 노래가 있는 것이다.
"을지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아아아 우리의 서울"이 그것이며 또 하나는, "가장 높이 나는 새, 가장 멀리 나는 새, 도요새 도요새".
가사가 정확한 지 모르겠다. 그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구절뿐이다.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목청이 울릴때마다 나는 어린 날 그림이 아름다운 동화책을 펴 보던 순간의 황홀함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이요, 말할 수 없는 비애와 분노에 휘말린다.
을지로에 사과나무를 심어보자고?
서울, 과연 우리의 서울은 있는가. 사탕발림도 유분수, 신경을 긁는 데도 한량이 있는 법이다. 온갖 질병을 앓으면서 단말마와도 같이 흉측스럽게 변모되어 가는 서울, 땅 속에도 하늘에도 두터운 오염이 막을 이루고 머지않아 유령도시의 목쉰 신음소리라도 들려올 것 같은 것을 상상하게 하는 서울, 그 도시에는 지금 통 속에 든 미꾸라지처럼 1천만을 육박하는 인구가 몸부림치고 있는데 그게 찬미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서울이겠는가.
을지로 죽어버린 땅에 사과나무를 심어보자고?
차라리 처참한 느낌마저 든다.
십여 년 전 산등성이에 진딧물같이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멀리 바라보면서 집 한 채를 중심하여 서너 채 정도씩 솎아내어 나무를 심었으면 하고 나는 공상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십여 년 동안 솎아내지 못한 이유(빈곤)를 짓이기듯 서울에는 너무나 엄청난 양의 시멘트를 쏟아부은 것이다.
산등성이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두 팔 가지면 살 수있는 그곳에 향수를 느낄 지경으로,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없으나 짐작하기에 서울을 때려 부수고 다시 건설을 하자면 해체의 비용만으로도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다.
게다가 해체물(解體物)을 어디다 처분할 것인가.
바다 속도 우리가 사는 현장이요, 산꼭대기도 우리가 사는 현장이고 보면 지구 밖으로나 내다 버릴 판국이다.
버릴 수도 살 수도 없게 된 서울, 엉거주춤 뭉개고 앉아서 대전이다, 어디다 하며 수도 이전 얘기가 알쏭달쏭 나돌기도 하는 모양인데 언제까지 유지될까.
시간 문제만 남아 있는 게 아닐까.
하나의 도시가 그것도 수도가 수백년을 두고 생성해 온 것이라면 이십여 년 동안을 순간으로 볼 수 있고, 바로 십여 년이란 순간에 서울은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가난이라는 강박관념이 저지른 범행이다.
우리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서울을, 국토를, 그 소중함에 비하면 푼돈에 불과한 것을 벌기 위하여 나락이 도사린 발전을 위하여, 따지고 보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오늘 먹기 위하여 미래를, 내일을 저당잡힌 꼴일까.
일본의 쯔찌다 다까시 교수가 쓴 <공업사회의 붕괴> 속에 산림지대를 개간하고 유휴지를 경작한다면 일본 인구가 2억이라도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유기농업을 주장하면서도, 그 말은 우리에게 의미심장한 것이다.
"가장 높이 나는 새, 가장 멀리 나는 새."
서울 가는 차 안에서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나는 마음 속으로 흐느꼈다.
그것은 생명의 애처로운 비상이었기 때문이다.
<토지>에서도 몇 차례인가 나는 도요새에 대해 쓴 일이 있었다.
그러나 도요새의 얘기를 쓰자면 상당한 지면이 필요하겠기에 생략하기로 하고 하여간 가장 높이 나는 새, 가장 멀리 나는 새, 그 노래를 듣는 젊은이들은 과연 높은 곳이 무엇인지, 먼 곳의 뜻을 어떻게 헤아리는지 나는 몹시 궁금하다.
새는 날갯죽지 하나로 망망대해, 수만리 장천(長天)을 목마름과 배고픔과 또 무서운 폭풍을 견디며 자신의 삶을 구현하는데, 그 높고 먼 곳을 행여 야망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높은 곳은 출세요, 먼 곳을 정복이라 생각하는 것이나 아닐는지.
오늘처럼 많은 부모나 사회 전반에서 젊은이들을 야망으로 내모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야망 자체도 내용 면에 있어서 상당히 전과는 달라 자연을 벗삼아 심신을 단련하고 진리를 추구하며 천하경륜의 뜻을 키우느니보다 방 속에 죄인 가두듯 시험 과목을 달달 외워 일류대학을 지향하게 하는 풍조, 아니면 이류를, 그것도 안되면 삼류를, 인생의 결정을 오로지 시험이 한다는 응고된 관념으로 세상은 병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물결은 너무나 거세어 땅에 발을 붙이려는 사람들까지 휩쓸어 간다. 해서 삼류대학에 간 아들을 위해 부모는 빛을 얻고 파출부로 뛰고 소를 팔고 밭뙈기를 판다.
날갯죽지 하나로 자신의 삶 전체를 구현하는 새, 대학의 문안과 문밖의 차이가 있을 수 없으련만 생명의 원천인 흙 한 줌보다 지폐 한 장이 소중하다는 생활 철학에 찌든 현실에서는 문안과 문밖이 있을 뿐 하늘도 없고 땅도 없다.
따라서 문안에서는 쓸모 없는 지식을 채워 머리통만 커졌지 삽자루 하나 안 잡는 왜소한 인간을, 한 분야만 파고들어서 한 부분밖에는 볼 수 없는 무식한 전문가를 양산하고 문밖에서는 자신의 삶을 장난감 망가뜨리듯 어렵잖게 내동댕이치는 추세가 현저한데 이들 양자가 어찌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를 알까보냐.
일부에서는 요즘 청소년들이 편지 한 장 변변히 못 쓰는 것은 전화 탓이요, 객관적 입시제도 탓이라 왈가왈부하는데 물론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글이란 생각의 흔적이다.
삶에 대한 애환과 생명에 대한 깊은 통찰력없이 생각의 샘에 물이 괼 수는 없는 것이다.
출세라는, 돈을 번다는 상자에 넣어진 사고방식, 그 상자는 일본의 전자제품같이 날로 작아져 간다.
그 상자에서 뛰쳐나온 자만이 우주를 느끼고 높이, 멀리 나는 도요새의 그 뜨거운 생명을 알게 될 것이다.
생명은 우주를 포옹하고 간다.
인간도 초목도 벌레까지, 그리고 우리는 도달하는 것이 아니며 영원히 가는 것이다.
옛날 노인이 말하기를 이야기는 거짓말이라도 노래는 다 참말이다, 오늘 글을 잘 쓴다는 전문가들보다 옛 노인이 먼저 더 정직하게 예술의 본질을 체득했던 것이었을까.
아아, 그러나 지금은 노래도 거짓이로구나. 독백하며 일어서 보니 밖에서는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겨울을 견뎌 낸 나의 나무들이 환희에 차서 간지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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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5.10.16 04:35
마이클 잭슨 내한공연.
무대에는 우람한 탱크가 등장하고, 거대한 포신 앞을 막아선 꽃을 든 한 소녀의 장면이 연출됩디다.
팍스 아메리카나.. 거대자본 맘몬의 문화로 변방을 압도하는 무대.
으흠, 평화라...
전형적인 클리세.
티비로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풋하고 웃음이 났습니다..
을지로에 사과나무를 심자고?
젊은이여 야망을 가지라고?
도요새처럼 가장 높이 날자고?
이 또한 눈가리고 아웅입니다.
자연은 자본과 물질로서 화려하게 변모할지니, 세상은 아름다움으로 풍족할지어다?
상투성에 매몰된... 구호로 점철된 노래들.
맘몬(物神)과 헤돈(쾌락신)의 뼈다귀...
박경리의 시 한편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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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새>
-박경리-
가엾은 넋이여
어디를 헤매다 이제 오나
수만 리 장천
한 마리 도요새 되어
날아가다 돌아왔나
때 묻은 장판방
벽에는 작업복
줄레줄레 걸려 있고
한밤은 창가에 걸려 있다
개구리가 운다
봄이 지나가고
초여름인 것을
깜박 잊고 있었구나
한 마리 도요새 되어
수만 리 장천 날아가다
돌아온 나의 넋이여
자리 잡고 앉아요
남은 세월 함께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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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5.10.17 04:17
오늘도 내집 담을 도둑처럼 넘어 들어와 박경리의 글 한편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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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박경리-
최근에 나는 식중독을 두 달간 앓았습니다. 처음에는 식중독인 줄 모르고 한 달이나 지내다 보니 기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오래 앓아온 고혈압과 당뇨병으로 눈도 나빠지고 병이 여러 가지 겹치다 보니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되도록이면 병원에 가지 않고 견디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병이 더 심하게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살 만큼 산 사람으로서 자꾸 아프다고 말하자니 한편 민망한 일이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면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일을 못 하는 것입니다. 몸이 쇠약해지면 들지도 못하고 굽히지도 못하니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일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일이 보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프다는 것, 죽는다는 것은 생명의 본질적인 작용인 일을 못 하는 것이기에 절망적입니다. 죽음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로 추측합니다. 하나는 죽음과 더불어 생명이 완전히 물질화된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혼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느 쪽으로 생각하든 죽음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두려운 것이 됩니다.
나는 죽음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해도 아무리 발버둥친다 한들 죽음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살아온 연륜에서 터득한 내 나름대로의 진리입니다.
세월이 흘러서 나이도 많아지고 건강도 예전만 못하니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을 느낄 법도 한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문학에 일생을 바쳐온 사람인데도 시간이 흐를수록 문학을 자꾸 낮춰 보는 시각을 갖게 됩니다. 나는 평소에 어떤 이데올로기도 생존을 능가할 수 없다고 말해왔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살아가는 행위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 요즘에는 그러한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살아 있는 것, 생명이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이 요즘처럼 그렇게 소중할 때가 없습니다. 비단 인간의 생명뿐 아니라 꽃이라든가 짐승이라든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은 다 아름답습니다.
생명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능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것이 곧 생명 아니겠습니까. 세상은 물질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피동적입니다. 피동적인 것은 물질의 속성이요, 능동적인 것은 생명의 속성입니다.
나는 요즘 피동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무리 작은 박테리아라도 생명을 가지고 태어나서 꼭 그만큼의 수명을 누리다가 죽습니다. 반면에 피동적인 물질은 죽지도 살지도 않습니다. 이 죽지도 살지도 않는 마성적인 힘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인간이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이 마성적인 힘이야말로 얼마나 무섭습니까? 대량 살상 무기라든지 지구 온난화처럼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직접적인 힘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나는 이 피동적인 물질 자체가 가진 영원함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또는 잘 다스리기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의지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무 자체, 이 무로서의 물질 자체는 역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우리는 민족성이 희석되어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 일본의 지배를 받을 때도 일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습니다. 나의 고향인 통영에 한 진사 집안이 있었는데, 그 집 딸들 중에 둘째 딸이 시집을 갔다 못 살고 돌아와서 일본 남자와 동거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게 통영에서 유일한 경우였는데, 양반 집안에서 남부끄럽다고 가족들이 그녀를 아주 매몰차게 구박하고 홀대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런데 요즘 세태는 어떻습니까? 도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농촌 같은 데서도 국제 결혼을 흔하게 보게 됩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태국 여자가 한국 남자와 혼인해서 살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지구촌 시대라 해서 하루 만에 지구 반대편까지도 가는 세상이니, 한국 사람들의 의식도 많이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족성 대신에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대립이 크게 부각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나간 민족주의 시대에는 나와 민족의 생존을 위해서, 내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그것은 높은 도덕률과 가치관을 요구하는 면이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위해서, 아버지를 위해서 싸운다는 혈연적인 관념이 개입되어 있었습니다.
반면에 현대의 사람들은 이해관계 중심으로 살아가면서 그 같은 도덕률이나 가치관 대신에 건조하고 즉물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삶이 좋다면야 할 말이 없겠는데, 물질이 개입되어 있으니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미래가 어둡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계가 활짝 열려 있어도 주판알을 튕기며 제 잇속만을 따지게 되니 더 비정한 면이 있습니다.
정신적 가치 대신에 물질이 힘을 발휘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어렵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한다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자존심을 지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존심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귀하게 받드는 것을 말합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모두 물질에 들린 삶을 살아가는 체계입니다.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물질적 메커니즘에 사로잡힌 세계입니다. 나 역시 신문도 읽고 가끔 텔레비전 방송도 봅니다만 내가 한적하니까 하는 일이지 물질에 편향된 뉴스가 나의 삶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상업적인 사고를 버려야 합니다. 간혹 상업적인 사고를 가진 문학인들을 볼 수 있는데, 진정한 문학은 결코 상업이 될 수 없습니다.
문학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컵같은 것이 아닙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정신의 산물을 가지고 어떻게 상업적인 계산을 한단 말입니까?
나는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는 말도 우습게 생각합니다.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쓴다면 종놈 신세 아닙니까? 독자들 입맛에 맞게 반찬 만들고 상차림을 해야 하니 영락없는 종놈 신세지 뭡니까.
문학은 오로지 정신의 산물인데, 그렇게 하면 올바른 문학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나는 출판사에서 저자 사인회를 하는 것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방송국에서 가끔씩 출연 섭외가 들어오기도 하는데,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이야기해야 하는 이중성 같은 게 느껴져서 거의 거절하고 맙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이중성을 볼 때처럼 기분 나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대신에 나는 내 영혼이 자유로운 시간을 더 얻는 기쁨을 누립니다. 조금이라도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명예나 돈 같은 것은 별것 아닙니다. 자기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최고입니다. 나의 삶은 내가 살아가는 그 순간까지만 내 것이지 그 후에는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요즘 나는 시를 쓰고 있습니다. 예순 편 정도를 추려서 시집을 내려고 생각합니다. 생애 마지막 작업이라 생각하고, 가족사 같은, 내가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일들을 담아내려고 합니다.
한평생 소설을 써온 내게 시는 나의 직접적이고 날것 그대로의 순수한 목소리를 지닌 것입니다.
소설도 물론 그 알맹이는 진실한 것이지만, 목수가 집을 짓듯이 인위적으로 설계를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같은 돌멩이라 해도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모든 존재는 질적으로 동등합니다.
다만 요즘의 내가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양식에 더 이끌리고, 물질적이고 인위적인 것의 위험한 힘을 더욱 경계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많이 먹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끝-
++++
***동우***
2015.10.17 04:26
피동적인 것, 죽지도 살지도 않는 것, 목숨이 아닌 것, 생명의 가치로서 대항할수 없는 것...
쇠, 돌, 물질...
물질주의, 배금주의, 신자유주의...
오로지 그 마성적인 힘을 숭상하는 우리 살이방식...
전에도 어디선가 얘기한 바 있는데, 나는 어떤 엉뚱한 역사의 변증을 몽상합니다.
미래의 모듬살이 양태는 국가도 아니고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니고, 인류가 도달하게될 살이 양식은 결국 부족(部族)일 거라는..
생명의 자존(自尊), 생명끼리의 정(情), 사랑..
인류는 필경 그런 가치를 찾게 되리라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그러하되 그러나 나는 여일합니다.
‘돈이 많았으면’하는 절대적 욕망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니라면 내 마누라 내 새끼 내 손주들에게.
이 낫살 들도록 야비하도록 뜨거운 맘모니즘은 수그러들줄 모릅니다.
이 속물 벗어 팽개치고 그저 생명을 춤추고 노래하다 죽었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국제결혼에 대한 박경리의 민족주의 비슷한 편협한 자존심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바 없지 않지만 박경리라서 괜찮습니다. ㅎ
박경리의 시 몇편.
++++
<죽음>
-박경리-
해야만 했던 일 끝나면
춤을 배워볼까
하얀 버선발 세우고
학이 날개 펴듯
두 팔 허공에 띄우며
나도
예쁘게 춤을 출 수 있을까
주변 가지런히 챙겨놓고
노래라도 배워봤으면
접은 부채
두 손으로 받쳐 들고
나도 신명내며
노래할 수 있을까
학과 같이 춤을 추고
소쩍새같이,
아니 아니 그냥
신명내어 노래 부르다
죽었으면 참 좋겠다
<춤>
-박경리-
화랑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처용처럼 춤을 추고 싶었다
백결(百結)의 누더기 걸치고
춤을 추고 싶었다
유리창 산산이 부수고
아아 창공을 날고 싶다
그러나
미치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가을>
-박경리-
노오란 은행나무
군데군데
붉은 지붕 푸른 지붕
군데군데
고속도로 가득히
석양은 깔려 있고
들판 볏가리 위에
새들
하루 마지막을 쪼고 있다
초라한 내 생애의 가을
차창 밖에는
눈부신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
-독서 리뷰-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김훈-
***동우***
2015.10.18 04:32
10월 19일까지 블로그 금족령, 오늘도 익명으로 들어와 댓글란에 박경리에 관한 글 한편 올립니다.
김훈의 글입니다.
유신정국의 겨울공화국, 1975년 2월 15일 찬바람 몰아치는 영등포 교도소 앞.
젊은 기자 '김훈'은 우연히 목격합니다.
교도소 정문 맞은 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있는 모습을.
그 여인네는 헝집행정지로 풀려나는 김지하를 기다리는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였습니다.
그 무렵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노가다 직장, 청학동 셋방의 아내와 돌박이 딸아이..
시대정신 아랑곳없는 소시민의 쫌팽이 겨울도 그러나 추웠을겁니다.
++++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김훈-
1975년 2월 15일은 낮 최고기온이 영하 7도였다. 며칠째 퍼붓던 눈이 멈추고, 날은 흐렸다. 흐린 날이 저물자 기온은 영하 12도 아래로 떨어졌다. 얼어붙은 거리에 북서풍이 불었고, 그날 밤 서울 영등포구 고척동 영등포교도소 앞 거리에는 라면 껍질과 연탄재가 북서풍 속에서 회오리치면서 솟구치고 있었다. 1974년 5월 27일에 군사재판에서 긴급조치 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형법상의 내란죄로 사형 선고를 받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던 김지하는 1975년 2월 15일 밤 9시 40분께 형집행정지로 영등포 교도소에서 출감했다.
나는 그날 아침 10시께부터 서울 영등포교도소 정문 앞에서 김지하의 출감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유신이 선포되던 1972년부터 신문기자의 업을 시작했던 나의 밥벌이였다. 춥고 어두운 겨울이었다. 희망이란 없었다. 사람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포기한 사람과 아직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마도 포기한 사람 쪽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스물일곱의 청춘이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라는 것이 부재한다는 것을 현실로써 인정하고 있었다.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 존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을 향해 필사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었다.
기자들은 스스로의 소망이나 지향성을 외칠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스스로 폐기처분해버린 소망과 지향성이 타인에 의하여 불붙여지기만을 기다리면서, 그 기약 없는 겨울을 통과해나가고 있었다.
그날 영등포교도소 앞에는 대낮부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교도소 쪽은 김지하의 석방 시간을 예고하지 않았다. 또 예고했다 하더라도 정치범의 석방 시간에 관한 약속을 법무당국은 번번이 지키지 않았고, 기자들을 따돌리기 위하여 새벽이나 심야에 교도소 뒷문으로 내보내는 경우가 허다하였으므로, 기자들은 하루종일 교도소 문을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은 교도소 앞 거리에서 나무토막이나 종이상자를 주워와 모닥불을 때거나 혹은 인근 음식점에서 내다버린 구공탄 재에 아직도 남아 있는 불기 주변에 모여 언 발을 녹여 가면서 교도소 정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언제 교도소 문이 열리고 김지하가 나타날지 알 수 없었으므로, 기자들은 저녁을 먹으러 갈 수도 없었다.
교도소 정문은 텅 빈 벌판이었고, 그 벌판 가장자리에 매우 더러운 몰골의 중국 음식점이 있었다. 우리는 수습기자 한 명을 그 음식점으로 보내 저녁밥을 배달시켰다. 나는 뜨거운 국물이 먹고 싶어서 짬뽕을 시켜 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자장면보다는 짬뽕을 주문했다. 그런데 배달되어 온 짬뽕국물은 차게 식어 있었다. 우리는 내버린 연탄재 주변에 모여 그 차가운 짬뽕을 후루룩거리며 들이마셨다. 지방판 마감은 대체로 오후 6시였다. 김지하가 5시 30분 이전에 출감하지 않는다면, 조간기자들은 지방판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조간기자들은 교도소 안으로 전화를 걸어서 “야, 풀어 주려면 제발 지방판에 맞춰서 풀어 주라. 지방 독자는 사람이 아니냐.” 라고 욕설을 퍼부어댔다. 교도소측 답변은 출소자들에 대한 소장의 정신 훈화가 남아 있고 또 교도소 담장 밖 분위기가 너무 과열되어 출감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하루종일 추위에 떨고 나서 지방판을 포기해 버린 저녁에, 우리들은 연탄재와 쓰레기더미 속에서 살얼음이 잡혀 오는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김지하의 출감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 나는 보았다. 아마도 오후 5시 30분쯤이 아니었을까. 내가 짬뽕 그릇을 입에 대고 국물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쳐드는 순간, 교도소 정문 맞은 편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웬 허름한 여인네가 포대기로 아기를 업은 채, 추위 속에서 웅크리고, 저물어 가는 교도소 정문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여인네 옆에는 영업용 포니투 택시가 한 대 정차해 있었는데, 그 택시는 아마도 그 여인네가 출감자를 마중하기 위하여 대절해 온 택시였던 모양이다. 택시 안에 히터가 작동을 하지 않았던지, 그 여인네는 등에 업은 아기를 택시 안에 재우지 않고, 자꾸만 허리춤을 들어올려 미끄러져 내리려는 아이를 등의 한복판 쪽으로 끌어올리고 있었다.
“저 여인네가 혹시 박경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미치자, 나는 짬뽕 그릇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기자의 무리를 떠나서 그 여인네 쪽으로 접근했다. 날이 이미 저물어졌으므로 멀리서는 인상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가까이 가 보니, 그 여인네는 과연 박경리 선생님이었으며, 그 아이는 그 아버지가 수배망을 피하여 도망다니던 1974년 4월 9일날 태어난 강(岡)이었음이 틀림없었다. 김지하는 1973년 4월 7일 김영주와 혼인하였고 강은 그로부터 정확히 일년 후인 1974년 4월 9일 태어났으므로, 강은 그 부모의 신혼초에 점지된 것이 확실하고 강이 태어난 지 일주일 후에 인혁당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이 발표되고 바로 그날 흑산도에 피신해 있던 그의 아버지 김지하는 검거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박경리 선생님의 등에 업힌 저 아이는 생후 10개월 미만일 터이었다.
어쩌자고 생후 10개월 미만의 어린 것을 영하 12도의 강추위 속에 업고 바람 부는 교도소 앞 광장으로 나온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집안에 아이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나는 박경리 선생님 쪽으로 바짝 접근해서 그분이 전혀 나를 알아보지 못할 위치에 쭈그리고 앉아서 그분을 마음놓고 관찰할 수가 있었다. “여기 박경리가 있다.”라고, 나는 내 동료기자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나 혼자서 그분을 관찰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분은 담요로 만든 방한화에 버선을 신고 있었다.
발이 몹시 시려왔던지 이따금씩 방한화를 벗고 손으로 언 발을 주물렀다. 등에 업은 아이는 머리끝까지 온통 포대기로 감싸고 그 포대기 위를 다시 두꺼운 숄로 덮어서 아이의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아이가 칭얼거릴 때마다 그 여인네는 몸을 흔들어서 아이를 얼렀다.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그 여인네는 고개를 뒤로 돌려서 무어라고 말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말은 나에게까지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여인네가 그때 아이에게 한 말을 들을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래 계속-
++++
***동우***
2015.10.18 04:40
++++
-위에서 받음-
‘울지 마라 느 아비 곧 나온다.’ 아마 이런 말이었을까. 그 여인네가 아기를 업은 포대기는 매우 낡아 있었다. 포대기는 누빈 포대기였는데 허리 부분을 넓게 접어서 아이의 등에 힘이 걸리게 바싹 조였으며 아이의 엉덩이 밑으로 포대기 끈을 여러 겹 둘렀다. 그래도 그 여인네의 야윈 몸으로부터 아이가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이어서 여인네는 자꾸만 몸을 추슬러 아이를 끌어올렸다. 아무도 그 여인네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 여인네는, 교도소 정문 앞에서 들끓는 그 어떤 사람과도 무관해 보였다. 그때 그 여자는 길섶에 돋아난 풀 한 포기보다도 더 무명(無名)해 보였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일 아무런 이유가 없는, 어떤 자연현상처럼 보였다. 그 여자는 다만 사위의 옥바라지를 나온 한 장모였으며, 감옥에 간 사위의 핏덩이 아들을 키우는 팔자 사나운, 무력한 할머니의 모습만으로, 오직 그런 풀포기의 모습만으로 그 교도소 앞 언덕에서 북서풍에 시달리며 등에서 칭얼대는 아기를 어르고 있었다.
그런 그 여인네의 모습을 훔쳐 보면서, 나는 아무것도 생각지 않기로 했다. 시대도, 긴급조치도, 국가보안법도, 무슨 무슨 혐의도, 성명서들도, 군법회의도, 김지하도,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다만, 그 여인네의 등에 매달린 아이가 발이 시려우면 안 될 텐데, …… 그런 걱정만을 했다. 지방판 마감이고 유신 독재고 뭐고 간에 어서 빨리 저 여인네의 용무가 끝나서 그 아이가 그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 이 추운 언덕의 바람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만을 했다. 그러자 나는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없었던 따뜻한 것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울음에 가까운 따뜻한 것들이 돋아나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이 무엇이었던가. 나는 지금 그 20년 전의 따스함의 정체를 겨우 입을 벌려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나에게 감염된 그 여인네의 모성이었으며, 허름하고 남루한, 그 풀포기와도 같은 무력과 무명의 모습이야말로 그 여인네의 힘의 모든 원천이었음을. 가로등 하나 없는 형무소 앞 광장은 캄캄하게 어두워졌고, 기온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밤 9시께 옥문이 열렸다. 나는 언덕 위의 박경리를 버리고 김지하를 맞기 위해 교도소 정문 앞으로 내려가서 기자의 무리 속에 섞였다. 이제 김지하가 나타나면 기자의 동료들 사이에서는 서로 김지하에게 가까이 접근하려는 난투극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나는 구두끈을 졸라매었다. 그날 영등포교도소에서 출감한 정치범은 모두 열두 명이었는데 대부분이 긴급조치 위반으로 걸려든 학생이었고, 김지하와 박형규, 백기완이 이날 석방의 초점이었다. 적어도 기자들에게는 그랬다. 밤 9시부터 학생들이 풀려나기 시작했다. 학생 한 명이 나올 때마다, 만세소리가 터지고 「우리 승리하리라」를 불렀다. 교도소 정문 안쪽에서, 구내 가로등 불빛 속에 머리를 빡빡 깎은 김지하가 나타나 정문 쪽으로 걸어오자, 교도소 정문 밖 사진기자들은 전원이 전투배치되었다. 그들은 교도소 철문 위로 기어올라가거나 교도소 수위실 지붕 위로 몰려올라갔다. 취재기자들은 제 2선에 포진하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팔꿈치로 인접 기자를 찍어서 물리치고 또 딴지를 걸며 쑤시고 들어가는 전법으로 김지하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한 일군의 기자들 속에 낄 수 있었다. 고은, 천승세, 조태일, 김광협 들이 목이 터져라고 만세를 불렀고, 학생들이 김지하를 무등 태워서 캄캄한 교도소 앞 광장을 미친 듯이 달리며 고함을 질렀다. 김지하는 그때 무등 위에서 기자들에게
“나는 종신형을 받았습니다. 이제 풀려나니 세월이 미쳤는지 아니면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내가 관련된 민청학련 사건은 순수한 민주 구국투쟁이며 정정당당한 합법 운동이다. 이제 참으로 끔찍스런 사실이 낱낱이 공개될 것이다. 나는 부패한 정권, 무능한 권력과 끝끝내 싸우고 또 싸울 것이다.” 라고 말했다.
나는 김지하에게 바싹 붙어서 취재를 하면서도, 교도소 광장 건너 언덕의 어둠 속에 서 있는 그 아이 업은 여인네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김지하가 무등을 타고 아우성을 치며 광장을 휩쓰는 동안에도 그 여인네는 어둠 속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 여인네는 다만 바라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김지하는 출감한 옥문 앞에서 장모를 만나지 않았다. 김지하는 장모의 안부를 물을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김지하는 무등을 타고 기세를 올린 후 그의 지지자·찬양자들의 무리들이 미리 준비해 놓은 승용차에 올라타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그날 밤 명동성당에서 하룻밤을 새웠다. 김지하가 떠나버린 어둠 속에 그 여인네는 혼자 오래오래 서 있었다. 아무도 여인네를 알아보지 못했다. 김지하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기자단의 대부분은 김지하의 승용차를 따라 명동성당으로 향했고, 환영나온 학생들, 기독교인의 무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교도소 앞 광장은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고, 아직도 출감하지 않은 백기완을 기다리는 사람들 몇 명이 남아 있었다.
나는 김지하가 출감하던 순간을 기사로 엮어 전화로 본사에 송고하고 다시 백기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백기완은 밤 11시께 석방되었다. 그때까지 남아 있던 기자단은 백기완의 석방이 늦어지는 이유를 교도소 당국에 가혹하게 추궁했다. 이미 발이 시려워서 마비 지경에 이르렀고 추위와 배고픔에 지쳐 기자들은 악에 받쳤다. 기자들은 교도소 당국에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교도소 당국의 설명은, 백기완은 긴급조치 위반 부분은 형집행정지가 되었으나, 그로부터 6년 전에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또한 있는 것이어서, 그 벌금 10만 원을 납부하지 않으면 석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이 교도소 담 밖에 알려지자 즉각 모금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때는 대부분의 군중들, 기자와 학생들이 빠져나간 다음이었다. 사람이 없으니 모금이 될 리가 없었다. 기자들은 모금에 참가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오해받을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나는 내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만 원짜리 몇 장을 다만 만져 볼 뿐, 그 돈을 내놓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또 박경리 선생님을 보았다. 그분은 10만 원에 얽힌 백기완의 사정을 어떻게 알았던 모양이다. 박경리 선생님은 어느새 언덕에서 내려와 교도소 정문 앞 광장에 있었다. 그분은 아이를 감싼 포대기의 앞섶을 뒤적거리더니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냈다. 그러더니 가까이 있던 웬 대학생을 불렀다. “학생, 이 돈을 좀 보태 보시오.”라고, 다만 그렇게 그분은 말했다. 그리고는 그분은 대절해온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 안에서 그분은 등에 업었던 아이를 풀어서 무릎 위에서 재우고 있었다. 시간은 밤 12시에 임박하고 있었다. 만 원짜리 몇 장을 내놓고 그분은 다만 잠든 어린애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도 그분을 뒤쫓아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신문사로 돌아가 마지막 기사를 작성했다. 나는 박경리에 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나는 다만 백기완의 출감 모습만을 추가로 썼다. 나는 박경리에 관하여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어쩐지 그것이 말해서는 안 될 일인 것만 같았다. 새벽 2시께 집으로 돌아와 잠자다 일어난 아내에게 그날의 박경리에 관해서 말해 주었다. 아내는 울었다. 울면서 “아기가 추웠겠네요.”라고 말했다. 춥고 또 추운 겨울이었다.
-끝-
++++
***동우***
2015.10.18 04:49
엄혹한 시대에 대한 격렬한 저항의 몸짓.
참여와 연대.
집단의 함성.
그러나 박경리의 참여는 단독자의 고독함입니다.
++++
<문필가>
-박경리-
붓끝에 악을 녹이는 독이 있어야
그게 참여다
붓끝에
청풍 부르는 소리 있어야
그게 참여다
사랑이 있어야
눈물이 있어야
생명
다독거리는 손길 있어야
그래야 참여다
++++
***射光***
2015.10.18 18:29
어쩜 이런 일이....ㅠ.ㅠ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댓글란을 통해 글을 올려 주시는 동우님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건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동우***
2015.10.19 09:41
사광님 격려의 말씀.
고맙기 짝이 없습니다.
사광님 같은 분이 곁에 있어.
분발하렵니다. ㅎ
사광님께서도 밝은 한주의 시작을!
-독서 리뷰-
[[박경리]]
<다시 Q씨에게> <풍경B> <풍경A>
<다시 Q씨에게>
-박경리 作-
***동우***
2015.10.19 09:36
블로그 족쇄령, 드디어 해금되었습니다.
박경리, 노년에 쓴 '다시 Q씨에게'를 올립니다.
다음은 박경리 인터뷰 기사입니다.
++++
산문 ‘다시 Q씨에게’ 발표 (조선일보 : 2000-02-26) / 노을진 들녘
<박경리 인터뷰>
“권력-명예는 초라한 것… 왜 서글프게 집착하는지”
한국문단에 박경리(박경리·74)는 흡사 추기경같은 존재다. 1955년 등단작품 ‘계산’ 이래 반세기에 이르는 그녀의 문학 인생과, 한국의 대표작이라 할 대하소설 ‘토지’는 수천만 독자와 문단 후학들에게 하나의 디딤돌이자 지향점이 되고 있다. 그것은 영욕이 담긴 위안이요, 때론 소리없는 호령이기도 할 터다. 재작년 한국 현대소설 50년사를 회고하는 평론가 설문조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선정된 ‘토지’의 작가 박경리. 그는 69년부터 94년까지 25년 동안 5부작 전16권의 대역사를 지어냈다.
23일 오전 자택으로 조선일보를 초청한 박경리는 아직도 소녀같은 목소리로 반가이 문을 따준다. 실로 2년여 만에 쓰는 산문으로 현대문학 3월호에 에세이 ‘다시 Q씨에게’(원고지 75장 분량)를 싣게 된 계기도 있고, 또 지난달엔 진솔한 삶의 고백을 닮은 시집 ‘우리들의 시간’을 낸 소이도 있었다. 이번 봄 계간지에 등단한 외손주 김원보(김원보·26)씨가 커피를 갖다 놓는다.
―30년 전에 루쉰의 ‘아Q정전’을 패러디해서 ‘Q씨에게’란 에세이집을 내신 적이 있었고, 이번에 다시 감동적인 에세이를 쓰셨더군요. 철새 도래지인 매지리 호수(원주시 소재)를 수상 골프장으로 개발하려던 것을 막아낸 실화던데, 선생님께 ‘새’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까.
“정릉 살 때 비에 젖어 몸이 걸레처럼 해진 꾀꼬리 한마리를 구해준 적이 있어요. 서로 애정이 절절했지요. 어딜 갔다 오면 날개를 쳐들고 열광적이예요. ‘나리’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나리야―’하고 부르면 ‘삐옥―’하고 대답했지요. 그 녀석 주려고 밤에 등불 들고 메뚜기 잡으러 다닌 적도 있어요. 원주에서도 내가 풀을 매고 있으면 내 옆으로 먹이를 물어와 놀고가던 매가 한마리 있었지요. 새는 참 섬세한 동물이예요. ”
이번 글에서 작가는 철새가 대변해주는 자연 환경의 ‘신비롭고 눈부신 생명’ 그리고 ‘생명의 가장 본질적인 슬픔’을 읽어 보이고 있다. 반면에 ‘인간들이 욕망의 껍데기를 줄래줄래 뒤집어 쓰고 수도 없이 독차지 하며 낭비하는 것이 죄스럽다’며 가슴 한 쪽을 헐어낸다.
―선생님은 오래전부터 생명에 대한 생각이 많으셨지요?
“20세기는 물질문명이 최고조로 발달한 세기였죠.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분석됐고, 인간까지도 자동차처럼 정비될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정신이나 생명의 본질은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무시한 것이 인간의 오만이었죠. 제가 보기엔 풍요나 빈곤이나 다같이 좋지 않습니다. 풍요는 남아 돈다는 것이고, 그것은 썩는다는 뜻이죠. 썩으면, 크게는 우주를 작게는 지구의 질서를 흔들어요. 가난은 생명의 존재를 어렵게 하기는 하지만 질서를 흔들지는 않죠. 이성만을 맹신하는 합리주의자들이 병적으로 광적으로 물질주의를 강요하고 있지요. 애초에 자본주의의 기준도 그런 것은 아니었을 거예요. ”
―아침 저녁으로 사람들이 온통 공천이니 제4당이니 선거 얘기 뿐이니, 먼저 그 얘기부텀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이번 선거에 나선 인물들을 어떻게 보세요?
“시골 사람 셋만 앉아도 그 얘기요, 모두 권력지향적이에요. 지식인과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한데, 지식인에게도 권력지향이 있고….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은 스스로 영원히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선지 기득권에 대한 그들의 집념이 너무 서글퍼요. 다 놓아 버리면, 그것이 다시 찾아오는 것을, 그 되찾아 오는 것을 맞이하면 될 터인데, 그걸 몰라요. 다 놓아버리고, 다시 찾아오는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사는 게 그렇습니다. 그런 분들 보면 슬퍼져요. 왜 놓지를 못할까. 권력이나 명예가 너무 초라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왜 모를까. ”
―선생님은 다 놓으셨습니까?
“소설 ‘토지’의 독자가 많다는 것이 내가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걸림돌입니다. 존대받으면 좋고 괄시 받으면 싫지만, 존대받으려면 지불해야 할 것도 있으니 부담입니다. 산중에 혼자 사는 어떤 할머니가 갖은 김치를 다 담가놓고 젊은 학생들에게 노나주는 것을 TV에서 본 적이 있어요. 그 할머니가 진정한 자유를 갖고 있는 게지요. ”
―30~40대 젊은 작가들, 또는 50~60대 장년들까지 문단의 후배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어느 시대나 모든 문인들은 두가지라고 봐요. 하나는 현실을 추종하는 세력, 다른 하나는 시류를 역행하고 비판하는 세력! 우리 세대에도 있었고, 지금 세대에도 있지요. 문제는 인간과 제도가 극도로 오염됐다는 것이고, 그 오염을 아무 망설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비 현상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요즘 과거에 볼 수 없이 자연에 대한 치열한 시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 것은 실망 안하고 희망을 갖게 해줍니다. ”
박경리는 “인간의 역사란 궁극적으로 부딪치면 방향을 트는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50년 연하의 외손주가 쓴 낯설기만 한 ‘마왕의 기원’이라는 소설을 봐도 그렇고, 요즘 나오는 “외치고 싶은” 시들을 봐도 그렇다.
“사사오입을 닮은 서구의 합리주의가 모자란 것 잘라버리고 확실한 것만 상자에 담다보니” 이 우주를 너무도 작게 축소시켜 버렸다. 따지고 보면 합리주의는 반문화적인 것이다. 노작가는 한국적 샤머니즘에서 자연물의 어떤 능동성과 영성을 “교감하고 비는 것”, 바로 그 “소망하는 행위”가 긍정적인 민족성이라고 보고 싶다.
작가는 요즘 “풀을 조금 뽑아도 뱃가죽이 결리고, 책을 조금 날라도 이가 쑤시는 육신”이 너무 한탄스럽다. 이제는 더 이상 소설을 쓸 힘은 없을 것 같다. 시를 짓거나, 다시 Q씨에게 쓰는 편지를 이어갈 생각이다.
박경리는 산속에 혼자사는 할머니 처럼, 자신 역시 혼자 살지만 김장을 많이 담근다. 날이 풀리면 또 풀을 뽑고 새를 불러 앉힐 것이다. 그렇게 육신의 힘은 빠져도, 정신적 에네르기가 고일 장소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
<풍경 B>
-박경리 作-
***동우***
2015.12.19 00:42
주말, 짤막한 소설 두편 올립니다.
오늘은 '풍경 B', 내일은 '풍경 A'
두 소설은 박경리가 스케치한 담백한 풍경화입니다.
그런데 저 담담(淡淡)한 톤의 소묘(素描)에서는 많은 사연이 읽힙니다.
풍경 B.
경상도 어름의 사하촌(寺下村), 동화사나 해인사쯤 되려나.
조금 철이른 관광지, 1층은 기념품 가게 2층은 다방 그리고 작부를 거느린 술집과 여관들...
제 철 만나면 사뭇 흥청댈, 예전 우리나라 유명 사찰이 소재하는 관광지의 눈익은 풍경입니다. (요즘이라고 그렇게 다를까..)
그곳 촌구석 다방에 까지 흘러 들어온 가오(얼굴)마담 김마담과 작부 미스 리.
딴따라 겉멋들은 아들과 사는, 이제 한물간 화류계 여인도 있습니다.
요정에서 풋정 든 남자 사이에서 낳은 아기를 본처에게 빼앗기고..
여인은 그 곳에 마누라와 놀러온 남자와 우연히 해후하여 다방에 마주 앉았습니다.
그러나 곧 남자는 황망히 가버리고 여자는 눈물도 없는 눈으로 김마담을 가만히 처다봅니다.
++++
<여자의 눈은 움직이지 않았다.
"니는 와 이리 됐노?"
하고 여자는 물었다.
"니는 와 이리 됐노?"
여자는 다시 물었다.
눈물 한 방울이 축 흘러내린다.>
++++
작가 '김훈'이 그럽디다.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라고.
풍경은 상처를 경유해서만 해석되고 인지된다고.
그때 새로워진 풍경은 상처의 현존(現存)을 가열차게 확인시킨다고.
소설가는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삼인칭을 주어로 삼는 문장을 만들수가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만.
읽는 이야 아무러면 어떻습니까?
창 밖의 풍경화, 가볍게 둘러보고 가벼운 한숨이나 쉬면 될테지요. ㅎ
<풍경 A>
-박경리 作-
***동우***
2015.12.21 04:02
<풍경은 밖에 있고 상처는 내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이다...아마도 나는 풍경과 상처 사이에 언어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미망을 벗어던져야 할 터이다. 그리고 그 미망 속에서 나는 한 줄 한 줄의 문장을 쓸 터이다.>
김훈의 말입니다.
그리하여 세계의 풍경을 상처로 부터 격절(隔絶)시킬수 없는 사람들이 이를테면 작가인 모양이지요.
풍경 A.
영숙의 눈으로 보아 영숙의 심상에 비추이는 풍경의 표정들.
++++
<가게 마루에 걸터앉은 그들은 뭐라고 가겟집 여자를 보고 이야기한다. 가겟집 여자가 진열장 문을 열고 빨간빛, 남색, 노랑색, 연두색 네 가지 비단을 꺼내어 두르르 편다.
서로 뭐라고 한참 지껄인다. 청년은 포개 놓은 다리 위에 주먹 쥔 두 손을 얹어놓고 비단을 넌지시 바라보고 아낙은 펼친 천을 만져보고 또 만져본다.
가겟집 여자는 긴 자를 들고 웃으며 또 뭐라고 이야기하는 모양.
청년은 슬그머니 얼굴을 돌리고 외면을 하며 웃는다. 아마 청년을 보고 농을 걸었던 모양이다. 청년은 장가 들 신랑임에 틀림없다.
가겟집 여자는 노랑 비단을 자로 잰다. 아낙이 붙들어 주고 가위는 노랑 비단을 두 동강이로 낸다. 착착 접어놓고, 다시 다홍빛 비단을 끊는다. 남색과 연두 비단도, 그리고 속치마 안감, 동정까지 ―
가겟집 여자는 아주 기분이 좋다. 아낙도 기분이 좋고 청년도 기분이 좋다.
아낙은 주머니를 끌러서 돈을 꺼내어 침을 묻혀가며 센다. 센 돈을 또 세고 세 번을 센다. 그리고는 가겟집 여자에게 돈을 준다.
가겟집 여자는 종이에 옷감을 싸고 노란 끈으로 묶어 내놓으며 또 웃는다. 아낙과 청년도 따라 웃는다.
청년은 웃다가 거리를 바라본다. 거리를 바라보면서 또 웃는다. 영숙도 슬그머니 웃는다.
꿈을 깨듯 전화벨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우편국의 청년이 수화기를 든다.
"아 네, 네. 진주라고? 음 상수가, 웬일고?" 청년의 얼굴이 흐려진다.
"응 그래, 뭐? 오늘 난 못 가. 삼칠이한테 돈하고 편지 부쳤다. 요다음 토요일에 갈께."
"뭐 봉애가, 뭐?"
사무원의 얼굴은 창백하게 변했다.
"죽었다고……."
청년은 수화기를 든 채 영숙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낙과 아들은 혼수감을 들고 나란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유리창에서 그들은 사라지고 울긋울긋 그림같이 가게의 모든 빛깔들이 번져나는 듯-
여자는 털개를 들고 상품 위의 먼지를 떤다.>
++++
우체국 안과 유리창을 통하여 보는 우체국 밖,
애인의 죽음소식.
그리고 울긋불긋 신부의 혼숫감.
인생의 양면성, 지극한 기쁨들과 지극한 슬픔들...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 와도 바람이 지나가면 그 소리를 남기지 않는다하고,
기러기가 차가운 연못을 지나가고 나면 그 그림자를 남기지 않는다하는데.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서 비워진다고 하는데.
흐음, 비워질수 없는 마음이여.
밖의 풍경이 안의 상처의 풍경이 되는.
소유의 삶을 사는.
슬픈 인간.
존재의 삶..
아득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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