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 <안내를 부탁합니다> <렘>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
-스티븐 빈센트 베네 作-
***동우***
2013.12.04 05:36
'스티븐 빈센트 베네'(Stephen Vincent Benet)'는 처음 접하는 작가.
평생 죽음으로부터 도망다니다 이윽고 죽음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조니 파이'
'주님, 나는 살아있는 죽음이옵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한다.
죽음을 맞닥뜨리지 않을수 있는 자 뉘 있으랴.
그 압축적(壓縮的) 액추어리티,
스위스의 정신병리학자 '퀀블러 로스'(1956~ )박사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그녀는 수많은 임상을 통하여 임종인(臨終人)의 심리적 궤적을 예리하게 관찰하였다.
돌연사가 아니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죽음에 이르기 까지 거쳐야 하는 그 다섯 단계의 심리적 과정'을 제시. 그 이론은 지금은 실증되고 인증된 정론이 되었다.
돌연사가 아니라면 누구나 이 과정을 거쳐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전에 '죽음의 공포와 임종의 과정'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한적이 있다]
첫 번째는 부정(否定)과 고립(孤立)의 단계. [뭐라구? 내가 죽는다구? 아니야! 뭔가 잘못됐어! 오진일거야! 자신의 최후가 임박했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실존의 뿌리를 강타 당하는 엄청난 쇼크, 이 과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두번째 과정은 비통(悲痛)과 분노(忿怒)의 단계. [자신의 불안(不安)과 곤혹(困惑)을 분노로써 표시한다. 임종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몹시 괴로울 것이다]
세 번째는 타협(妥協)의 단계이다. [뉜가 절대자에게 기도한다. 도덕적인 정화를 호소하는..]
네 번째는 의기소침한 우울(憂鬱)의 과정이다. [남겨 지는 것들에 대한 반동적(反動的)우울과 가야 할 곳을 향한 예비적(豫備的)우울이 교차하여 임종인을 지배한다. 질병으로 인한 육체의 망가짐, 막중한 경제적 부담, 꿈의 포기, 가족사, 신변사등에서 오는 우울과 다가오는 이 세상을 영원히 하직하는 준비로 미리 겪어야 하는 예비적 비탄으로서의 우울..이 단계부터는 말이 거의 필요 없어, 격려나 위안은 그다지 소용이 없다. 오로지 홀로 감당하여야 하는 임종인의 그 우울 속으로 타자(他者)는 들어 갈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장엄하고 위대한 과정.
대개 지치고 쇠잔(衰殘)하여 자주 졸며 선잠을 자고 깨어있는 시간도 짧은 상태이지만 이제 임종인은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우울해 하지 않는다. 이 때의 수면(睡眠)은 현실기피의 잠도 아니고 고통이나 불편이나 초조감을 해소시키는 수면도 아니다. 머나 먼 여정을 떠나기 전에 취하는 마지막 휴식이다. 관심세계는 좁아져서 세상의 소식 따위는 관심이 없고 혼자 있고 하고 싶어 한다. 이때에는 무언의 대화가 필요하여 잠자코 곁에 앉아 있는 것으로 족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뜻만 전해진다면 된다.
아아, 어쩌면 임종인은 지금 기쁨에 벅찬 기대를 갖고 다가오는 최후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임종인은 이 과정에서 완숙(完熟)된 평화(平和)의 감정상태가 어떠한 것인지를 여실하게 보여 준다.
죽음의 순간이란 결코 끔찍하게 두려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산자(生者)에게 보여주고 가르쳐 주고 떠나려 하는 것이다
뉘라 임종인의 의식 속으로 들어갈수 있으랴.
그러나 나는 믿는다.
이윽고 다섯번째의 단계에 이르러. 나의 죽음은 평화롭다는 것을.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
이 소설에 대한 이문열의 해설.
++++
[삶에 대한 눈뜸과 죽음과의 친화]
-이문열-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익살스로우면서도 예리한 관찰과 죽음에의 친화과정을 중심으로 조니 파이라는 고아가 자라나고 성숙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점묘법으로 그려놓은듯한 단편이다.
인간은 무덤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도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전제와 함께 제시되는 여러 어리석음의 양태가 독특한 작가의 인생관을 보여준다.
가짜 약장수(불치 혹은 난치의 분야가 남아있는 한 아직도 의료업은 가짜 약장수 같은 측면이 있다.), 발명가, 예술가, 군인, 정치가- 조니 파이가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고 떠난 여러 분야는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들이다.
조니 파이는 특이한 관점에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보고 그걸 반복하기 싫어 달아나지만 끝내 바보귀신으로부터 달아나지는 못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시골 우체국장으로 자족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는 끊임없이 바보귀신이 자신을 찾아오는 발자국 소리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낫 가는 노인으로 형상화된 바보귀신 혹은 죽음의 사신과 정면으로 맞서는 과정으로 전환되면서 조니 파이는 죽음과의 친화로 접어든다.
죽음에 대한 젊은 날의 격렬한 대립 내지 극복의지는 차츰 타협적인 태도로 바뀌고, 이어 분노섞인 무력감에서 체념으로 진행되다가, 마침내는 순응에 이르기까지의 심리적 과정은 임상의학이 오랜 세월에 결쳐 정리한 죽음의 여러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이란 우리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겼던 존재들과의 관계 때문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며, 비정한 시간이 그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 뒤에는 결국 삶도 무의미해진다는 늙은 조니 파이의 터득도 우리를 숙연하게 만드는 데가 있다.
빈세트 베네는 19세기말에 활동했던 미국의 작가로 민담과 전설에서 취재한 단편들로 국민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장편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해서인지 강단 평론가들에게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악마와 대니엘 웹스터'란 단편 외에 우리나라에는 별로 소개된 작품이 없고 그의 업적에 대해서도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내가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을 읽은 곳은 서부전선의 임진강변으로 기억한다.
신산스럽던 군대생활도 막바지로 접어들어 제대까지의 몇 달을 영문판 문고본이나 읽고 지내던 때였다.
그날 빨래를 핑계로 부대원 몇과 임진강가로 나간 나는 몇 개 안되는 옷가지를 대강 빨아 널고 강둑에서 초봄의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현대 미국 단편소설집'이란 표제가 붙은 영문 문고판을 펴들었다가 그 맨 앞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내 시원찮은 독해능력이 상상력으로 보충된 탓인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처음 그 작품을 다 읽고난 뒤의 내 느낌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는 충격적인 그 무엇이었다.
단편으로 성장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것은 나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재미와 품위를 아울러 지니면서 삶의 오의를 풀어낼 수 있다는 게 내게는 경이스러울 지경이었다.
그 뒤 제대한 나는 전문가의 정확한 번역을 찾아보았다.
어쩌면 내가 외국어의 추상성과 애매성 때문에 작품을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 까닭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심인지 이 작품의 번역을 통 구할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야 누군가에 의해 '바보 도깨비'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어떤 잡지에 실린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잡지는 끝내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번 특강에서 나는 '성장과 눈뜸'이란 주제의 단편 목록 제일 앞에 이 작품을 놓으면서 아울러 연구실을 나란히 쓰고 있는 영문과 강자모 교수에게 특별히 번역을 부탁했다.
이제 번역된 것을 읽어 보니 '조니 파이와 바보귀신'에 대한 내 옛 감동이 반드시 지나쳤던 것 같지는 않다.
그 사이 작품평가의 기준은 좀 달라졌지만 성장설의 한 전범으로는 결코 모자람이 없는 명품이란 내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서 바보귀신은 fool-killer의 의역이다.
fool-killer는 미국 민담에서 바보를 잡아간다는 상상적 존재로 강자모 교수는 원문에 충실하게 '바보 살인자'라고 번역해 주었으나 아무래도 느낌이 맞지 않아 양해를 구하고 바보귀신이란 조어를 썼다.
자칫 바보가 죽어서 된 귀신으로 선입견을 줄 우려도 있으나 개미를 잡아먹는 벌레를 개미귀신이라 하는 명명법도 있는 만큼 큰 혼란은 주지 않으리라 본다.
++++
***카프랜드***
2014.03.01 18:18
좋은 포스팅~ 다른 모든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동우님.
몸 건강하시고 언제나 건필하세요^^
<안내를 부탁합니다>
-폴 빌라드 作-
***동우***
2014.10.10 08:34
늦잠.
하루 거르려다가, 매일의 포스팅 스스로 게을러질까봐.
주어 온 촉촉한 이야기.
잠시 블로그 열어 올립니다.
***eunbee***
2014.10.10 09:50
아~!!!!!
내 감동을 부탁합니다.^^
***동우***
2014.10.11 05:01
잔물결처럼 찰랑이면서 젖어오는.. 소박하고 잔잔한 이야기.
거기에 감동할 줄 아는 은비님이 나는 따뜻합니다.
내 따뜻함을 부탁합니다.^^
<렘>
-윌리엄 J 베네트 作-
***동우***
2014.12.08 04:53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로부터도 축복받지 못한 생명. 렘 워렌.
변변한 옷이 없어 교회에도 나가지 않았으니 천국의 영광이나 보상 따위는 아예 바랄줄을 모릅니다.
배운게 없고 사유함이 옅으니 전생의 업보라던가 카르마 따위 불교적 세계관으로 스스로 위무할 줄은 애시당초 생각할수도 없습니다.
그 어떤 바람도 없이 오로지 베풀기만 하고 떠나는 삶.
꿈꾸고 재고 따지고 억울해하기에는 그가 지닌 사랑은 너무나 착해빠졌습니다.
그 생애는 그저 통렬한 리얼리즘 뿐이었습니다만, 렘은 성인과 같은 천품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무리 헤집고 들여다보아도 눈꼽만큼도 내게 있을리 없습니다만, 세상 둘러보면 저런 사람 혹 있을까요.
제 새끼에게 베푸는 어미의 그 착해빠진 사랑에서나 때로 발견할수 있을라나...
겨울은 시나브로 깊어가고, 요즘 부산도 꽤 춥습니다.
책부족 추장님서껀의 겨울은 엿보이는데, ('등대로' 독후감은 내일쯤 써 올립지요.) 요즘 은비님서껀의 겨울은 좀 추위를 타시는듯.. ㅎㅎ
월요일입니다.
밝은 시작을.
<크리스마스에 걸려온 전화>
-알베르토 베빌라꽈 作-
***동우***
2014.12.26 05:08
아내는 죽었고 자식들과는 소원하게 쓸쓸한 노년을 보내던 노인 페데리코.
홀로 차려먹는 크리스마스 만찬, 얼마나 스산하였겠습니까?
그날 밤, 전화가 걸려옵니다.
열다섯살때부터 페데리코를 사모하여 평생 그의 주위를 서성거렸던 여인.
여인은 죽음에 임박한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맞아 생의 최초이면서 마지막인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전화는 잿빛머리가 금발머리였던 시절, 어쩌면 아득한 옛날로부터 걸려온 목소리였을까요?
발신자 추적을 통하여 페데리코는 옛날을 찾아갔습니다만 그 전날 여인은 이미 죽어버렸어요.
낡은 선반 위에는 자신의 젊었을적 사진이 액자에 담겨있을 뿐입니다.
페데리코는 잠시 그것을 응시하면서 "아무것도 아냐, 아무 일도 아니야, 난 아무도 아니거든" 하고 말합니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곧 새해, 노인은 아파트 문 옆에 달려있는 달력을 찟습니다.
과거는 죽었습니다. 눈이 오고 있습니다.
이문열의 해설을 보니 '사람이 세월에게 당하는 몹쓸 짓중의 하나가 늙음이다'라고 하였더군요.
흐음, 몹쓸 짓....
페데리코의 저 세밑은 좀 행복하였을까요?
***mayblue***
2014.12.29 07:58
비록 늦었을지라도 페데리코는 행복이 뭔지 조금씩 알아갈 거 같아요.
한 여인의 숭고한 희생을 통해서 말이에요.
눈물나게 우울하고 눈물나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죽을 때까지 사모하는 남자에게 한번도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 않고
길고 긴 세월...
자신의 존재조차 모르는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을 감추고 산
여인의 이야기는 흡사 불가해한 사랑의 전설처럼 들립니다.
어젯밤 이 글을 읽고 가슴이 먹먹하여 댓글도 제대로 써 지지가 않더군요.
이 글을 읽으며 한편으론 홀로 차려먹는
노년의 쓸쓸한 크리스마스 만찬이 되지 않도록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우님, 늘 좋은 글 올리시느라 너무 수고가 많으세요.
이 곳에 오면 책향기, 그림 향기, 추억의 향기 그리고
쓸쓸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옵니다.
마치 손 때 묻은 추억의 책들이 가득히 쌓여있는 기분좋은 서재에 들어서는 느낌과 함께
살아오면서 미쳐 찾아내지 못했던 진주를 발견하는 것같은 글들이 있어 너무 좋아요.^^
한 해의 끝에 만나 한 해의 마지막 작별 인사를 드리게 되네요.
건강하게 남은 일들 잘 마무리 하시고 희망찬 새해 열어가시길 기원드립니다. 동우님^^*
happy new year~~
***동우***
2014.12.30 05:55
눈이 페데리코를 둘러싸며 지상으로 떨어져 소리없이 떨어지는 바람 속에 응고되고 있었다....
메이블루님.
페데리코가 행복이 뭔지 조금씩 알아갈 것이지만, 이 소설의 쓸쓸함은 페데리코에게 이제 시간이 없다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메이블루님.
보잘것 없는 것들을 향하여 향기를 있다 하시고 기꺼워하여 주시니 입이 헤벌쭉 벌어집니다.ㅎㅎ
그야말로 세맡의 아침.
해피뉴이어. 메이블루님.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찌잔치, 숲 속의 휴전]] (1,4,3,3,1) (0) | 2020.03.02 |
---|---|
나도향 (1,4,3,3,1) (0) | 2020.02.28 |
이병주 1.2.3 (1,4,3,3,1) (0) | 2020.02.24 |
그리스 희곡 1.2.3.4 (1,4, 3,3,1) (0) | 2020.02.24 |
박경리 1.2.3.4 (1,4,3,3,1) (0) | 2020.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