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 作-
***동우***
2014.07.21 05:01
소포클레스 (Sophocles, 기원전 497~기원전 406)
고대그리스 3대 비극작가(유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와 더불어).
비극예술의 완성자라는 소포클레스.
그는 생전에 백수십편의 작품을 썼으나, 전해지는 것은 '오이디푸스 왕'을 비롯한 7편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인물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만큼 인구(人口)에 널리 회자(膾炙)되는 이름도 드물겁니다.
오이디푸스.
소포클레스 뿐 아니라 세네카, 피에르 코르네유, 존 드라이든, 볼테르, 앙드레 지드, 장 콕토, 스트라빈스키(오라토리오)도 '오이디푸스'라는 비극적 캐릭터를 다루었지요.
특히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주요 뼈대를 이루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무엇보다 오이디푸스는 ‘프로이트’라는 위인의 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이지요.
'오이디푸스'의 진실.
뉘에게나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비밀 한조각 감추이고 있지는 않을런지.(오이디푸스처럼 운명적이고 치명적인 것 아니더라도, 스스로 수치스러운 그 무엇...)
그것이 우리 무의식을 이루는 어떤 주요한 모티프일런지.
어쩌면 그건 무의식이 아닐런지도 모르지요.
생각 위로 떠올리기에는 몹시 고통스러우므로 일종의 방어기제로서 짐짓 의식하지 못하는 척 심층심리 속에 감추고 있는..
내 어쭙잖은 얘기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상중하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다음은 이 비극적 이야기의 事前的 배경입니다. (본문의 대사에 나와있습니다만)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라이오스는 예언자에게서 자신의 아들에게 죽임을 당하리라는 예언을 듣고, 갓난아이를 죽이려 합니다.
명령을 받은 하인은 아이를 들판에 버림으로 아이의 운명은 신에게 맡겨집니다.
한 목동이 아기를 거두어 오이디푸스라고 이름 짓고, 또 다른 목동에게 오이디푸스를 넘겨줍니다.
그 목동은 오이오디푸스를 코린트로 데리고 가고, 자식이 없던 코린트의 왕 폴리버스는 오이디푸스를 친자식처럼 양육하게 됩니다.
청년이 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폴리버스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소문을 듣게 되어 그가 자신의 생부인지 아폴로 신전의 예언자에게 묻습니다.
예언자는 질문에 직접 답하는 대신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자신의 어머니와 맺어질 운명이라고 말합니다.
낙담한 오이디푸스는 그 운명을 피하려고 코린트를 떠납니다.
테베로 가는 길에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生父)를 만납니다.
통행의 싸움을 벌이다가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왕을 살해합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는 많은 예언가를 괴롭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게 됩니다.
“아침에 다리가 네개, 오후에는 두 개, 저녁에는 세개인 생물은 무엇인가?” 라는 스핑크스의 질문에 오이디푸스는 사람이라는 정답(아이일적에는 네 발로 기고, 장성하여서는 두 발로 걸으며, 늙어서는 지팡이를 짚고 걷기 때문)을 맞춥니다.
자신의 수수께끼를 맞춘 인간의 등장에 절망한 스핑크스는 스스로 절벽으로 몸을 던집니다.
테베를 스핑크스의 저주에서 푼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전왕의 왕비 이오카스테(生母)를 차지합니다.
소포클레스의 희곡은 이로부터 몇년이 흐른 후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동우***
2014.07.22 00:19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
이 신탁(神託)은 얼마나 끔찍한 것이었을까.
신의 목소리로 고지(告知)된 결정론적 운명관에서 그들은 벗어날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의지는 이 끔찍한 신탁에 인간적인 최선으로써 저항할수 밖에 없다.
그리스의 신들은 때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용납하는 것이다.
거듭 얘기하자면.
아기의 생부 라이오스왕과 생모 이오카스테왕비는 갓난 오이디푸스를 없애기 위하여 내다버린다.
신탁이 이루어질 싹을 아예 없애버림으로 부모의 자아는 신탁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났다.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생부와 생모로 믿고 있었던 코린토스의 왕인 '플뤼보스'와 왕비 '메로페'로 부터 도망간다.
신탁 성취의 가능성을 제거함으로 그의 자아는 안도하였다.
그러나 신탁은 자아에 억압되고 있는 그들 운명의 진실이었다.
그들의 자유의지의 발현이란 한낱 부처님 손바닥...
인간의 선택이란 팔자 앞에서 무한히 무력한가.
***동우***
2014.07.23 04:22
오이디푸스 신화의 후일담.
아래는 구본형님의 칼럼에서 가져온 글(일부)입니다.
++++
<오이디푸스, 가장 비참하고 가장 장엄한 자>
-上略-
"내게 닥친 수많은 재앙, 내가 저지른 수없는 죄업을 너는 이제 더 이상 보지 못하리라. 한때 테바이의 땅에서 으뜸 가던 사내 그러나 지금은 더러운 사내, 신들이 버린 이 비참한 사내, 저 삼거리의 길이여. 세 갈래의 숲과 오솔길이여. 너희는 내 손에서 나와 피를 나눈 내 아버지의 피를 마셨구나. 그리고 그 이후에 이곳에 와서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육친끼리 피를 섞는 죄를 범하였으니, 그 더러운 일을 입에 올리기조차 더럽구나. 나를 쫒아내라. 죽이든지 바다 속으로 던지든지. 부탁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 죄는 나밖에는 누구와도 상관없는 일이다"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서 추방되었다. 한때 모든 것을 가진 왕이었으나 지금은 세상의 가장 큰 고통을 가진 눈먼 사람으로 방황하게 되었다. 그는 문뜩 파멸을 딛고 부르짖는다.
"나의 잘못이 너무 크기에 인간들 중에서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오직 나를 빼고는"
그는 누구도 할 수 없는 파멸과 불행의 끝까지 자신을 밀고 갔다.
-中略-
오이디프스, 운명과 화해하고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다.
오이디푸스는 고향땅 테베에서 쫒겨났다.
그가 쫒겨날 때 그의 두 아들은 이 비참한 장님 아비가 걸인과 같은 고행의 길을 걷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으나 잡지 않았다. 그들은 아버지가 쫒겨남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몰두했다. 바로 테베의 왕위였다.
아버지를 쫒아 내는 것을 묵인함으로써 그들은 불행한 아버지가 남긴 왕위라는 유산의 분배를 놓고 격돌한다.
두 아들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원한은 쌓여 풀어지지 않는다.
오직 그의 큰 딸 안티고네만이 오이디푸스를 따라 나서서 그의 손과 눈이 되어 주었다.
굶주림과 체념 속에서 여기저기를 방황하던 두 부녀, 몇 년이나 세상을 떠돌며 헤매였을까 ?
늙은 장님과 맨발의 젊은 아가씨는 드디어 콜로노스에 도달했다.
콜로노스, 아테네의 근교에 있는 이 신성한 숲은 오이디푸스가 죽어야할 자리이며, 죽음으로써 비로소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운명이 시작하는 곳이다.
콜로노스의 신성한 숲 속에서 죽기 직전에 오이디푸스는 신들로부터 화해를 제안 받게 된다. 또 다른 신탁이 내려진 것이다.
이 신탁을 전한 사람은 오이디푸스의 둘째 딸인 이스메네였다.
쓰라린 고통으로 다져진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거두어 주는 나라는 그 시민들에게 승리를 안겨 주고 대지의 번영을 약속받게 될 것이라는 신탁이었다.
이제 그의 더럽혀진 육체는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는 신성한 성물(聖物)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오이디푸스는 아무 잘못도 없이, 그저 존재 자체가 잘못이었던 운명 때문에 겪게 되는 삶의 고통을 통하여 끝내 신들에게서 구원을 받았고 스스로의 구원자가 되었다.
신이 오이디푸스에게 준 죽은 다음의 축복, 즉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거두어 준 나라에 대한 번영의 약속' 은 당시 테세우스가 다스리던 아테네에게 돌아갔다.
테세우스는 오이디푸스의 영웅적 삶과 비극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물리치는 대신 호의를 가지고 받아들여 주었다.
자신의 왕국 내에서, 바로 콜로노스의 숲 속에서 임종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가 버린 비참한 사람을 따뜻하게 받아들여 보호해준 테세우스의 선행이 또한 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끈이 되었다.
오이디푸스가 죽은 후, 테세우스 역시 아테네에서 쫒겨 났으나, 죽은 후 그를 잊지 못하는 아테네인들에 의해 테세이온에 안치되었고 아테네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아테네는 그리스 최고의 국가가 되어 번영하였고, 멸망한 다음에도 인류 역사상 가장 특별하고 의미있는 도시국가로 남게 되었다.
오이디푸스 역시 테세우스와 함께 그리스를 수호한 영웅이 되어 기려졌다.
오이디푸스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한 인간, 영문도 모르고 우주가 그에게 전하는 부름을 받고, 가장 불운한 삶의 길을 견뎌갔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이 불행에 협력하여,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추방당함으로써 그 불행을 정점 까지 끌어 올렸다.
불행의 절대적 의미를 완성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게 되자, 그를 그렇게 몰아세웠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춰섰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그 장벽 넘어로 들어선다.
그가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느끼게 되자 비로소 그는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는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를 수호하는 성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한 인간이 긴 고난을 지나온 후 자신의 지독한 운명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
++++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 함께 읽어주어 고맙습니다.
이어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올리겠습니다.
<안티고네>
-소포클레스 作-
***동우***
2014.07.24 04:58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의 첫째 딸입니다.
역시 비극의 주인공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인물이지요.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오이디푸스.
안티고네는 여동생 이스메네와 함께 아버지의 길안내자가 되어, 오이디푸스가 아테네 근처 숲에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죽고 테베로 다시 돌아온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는 왕위를 놓고 싸우는 두 오빠 에테오클레스와 폴리네이케스를 화해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에테오클레스는 테베에서, 폴리네이케스는 테베를 공격하여 싸움을 벌이다 둘 다 죽습니다.
결국 그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되었지요.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는 성대하기 장례를 치러 주었지만, 테베를 공격한 폴리네이케스는 반역자임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들에 내다버려 짐승의 밥이 되게 했고 이를 거역하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고 포고합니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오빠 폴리네이케스를 사랑하였고 크레온의 명령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안티고네는 오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매장하여 주려 하는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그로부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남성적 이성에 반항하는 감성적 여성상, 페니스의 독재적 로고스에 저항하는 에로스, 자연법(인륜, 神法)과 실정법의 대립...
'안티고네'에 대하여 분분(紛紛)한 이론과 해석들 난만하다지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두번(前後)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eunbee***
2014.07.24 07:42
동우님,
동우님의 안내로 오이디푸스 왕도 안티고네도 재미있게 읽어내리고 있답니다.
로마의 변두리 숲 근처 카리귤라황제의 목욕탕 자리였던, 석주과 석벽과 돌무더기가 있는
고색창연한 무대를 상상하며 읽어내려가니 더 맛이 나요.
요즘 동우님의 리딩북을 잘 따라가기 위해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토마스 벌핀치가 쓰고 이윤기님이 번역한 아주 오래전에 출판된 책을 읽어요.
쉽게 써진 그리스 로마 신화라서 재미있어요. 데미테르와 그의 딸 페르세포네 이야길 읽고 있는 중.ㅋ
아름다움과 슬픔은 한줄기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또 하게 되네요.
창문을 닫으려고 밖을 보니 캄캄한 어둠이 싫어서인가 보름달이 보고싶던걸요.
보름밤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보름밤에 하얀 빨래를 내다 널면 빨래가 더욱 하얗게 된답니다.
그러니 이 꽃무늬 옷은 보름밤 달빛 아래는 내다 널지 말아요."
큰딸과 분홍색 꽃무늬 원피스를 사러 갔을 때 옷집 마담이 들려준 이야기예요.
그 이야기가 참으로 아름답게 새겨져서 나는 되뇌이며 자꾸만 신비로운 그무엇에 젖어 들어요.
내게 신화는 그런것이 신화같으니....ㅋㅋㅋ
***동우***
2014.07.25 05:17
보름달, 하얀 빨래를 내다 널면 빨래가 더욱 하얗게 된다.
은비님, 아름답지만 한켠 무슨 귀기가 느껴집니다그려.
보름밤에는 커엉 커엉 늑대가 우짖고, 하얀 잠옷을 입은 왕녀는 성을 빠져나와 몽유병으로 숲을 헤메인다지요..ㅎㅎ
은비님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야외극장을 감회깊게 거닐어 본 분인지라 소포클레스 시절 고전극의 어떤 무드가 느껴지실듯.
예전 소년문고나 단편의 책들(이윤기님 책등)과 변신이야기(이윤기님 번역)등을 읽어 스스로 그리스 신화에는 익숙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리스 로마신화는 바로 그 책(벌핀치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하였어요.
그리스 고전을 시작한 김에 리딩 북에 '변신이야기'와 '플루타크 영웅전'도 올리고도 싶지만, 하도 두꺼운 분량이라..
내일부터는 유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올릴께요.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은비님도 재미있으실거예요.
함께 읽어요.
***동우***
2014.07.25 05:02
[이스메네 : "우선 우리는 남자들과 싸워서는 안되는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둘째로 우리는 우리보다 강한 자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이 일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쓰라린 명령에도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지옥의 망령들에게 용서를 빌면서, 강한 힘이 나를 억누르고 있기 때문에 지배자의 말에 복종하겠어요. 분수를 지키지 않은 것은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러나 언니 안티고네는 가치관이 분명한 강인하고 아름답고 현명한, 이를테면 현대적 강력한 우먼파워 이미지의 여성이다.
안티고네에 비하여 오히려 크레온이 일관적이지 않고 나약하고 어리석은 이미지이지 않은가.
그리하여 안티고네는 역사의 오랜동안 남성, 권력, 가부장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헤겔 데리다 라캉 버틀러등 많은 지성들이 안티고네에 매혹되어 글을 쓰고 책을 펴냈다. (멘델스존의 극음악 '안티고네'는 유명한 관현악곡이기도 하다.)
헤겔은 안티고네를 '가장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했다던가.<헤겔은 '공동체의 아이러니'로써 안티고네를 죄인으로 규정하였다. 살부와 근친상간의 죄를 저지른 오이디푸스의 죄는 무의식 영역에서 저지른 것이므로 범죄자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저질렀으므로 안티고네는 범죄자. 자연법(神法)이라는 모호한 규범보다 국가법(실정법)을 어긴..)
좀 전 인터넷에서 읽은 것인데, 이런 견해도 있을수 있구나.
<이를테면 한국에서 국가는 아들을 군대에 보낼 것을 요청함으로써 국가는 가족의 행복을 파괴한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아들을 떠나보내야 한다. 이것은 분명히 가정의 파괴다. 하지만 아들이 군복무에 충실하면 어머니가 아들을 사랑하듯 국가도 그를 사랑한다. 이 사랑이 모든 가치와 인식의 근원이다. 즉 여성의 사랑에서 "지양"을 통해서 국가로 흡수될 수 있는 것은 흡수되고 흡수될 수 없는 것은 버려진다.>
라캉이나 버틀러등은 헤겔과는 다른 관점에서 안티고네를 분석한 듯 하지만 내 수준으로 깊이 알수는 없다.
[지혜야말로 최고의 행복. 신들에 대한 존경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오만한 자의 호언장담은 언제든 큰 타격을 받고, 벌받은 자는 늙어서야 현명해진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는 저 지성들처럼 내게 그닥 매혹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희랍 고전극 형식이라 그런지)
성격과 운명, 인간의 어떤 비극성만이 짙게 어필한다.
어쨌거나 그토록 유명짜한 작품이라니 폼으로라도 읽어둘만은 하리라. ㅎ
-독서 리뷰-
[[유리피데스]]
<메데이아> <트로이의 여인들>
<메데이아>
-유리피데스 作-
***동우***
2014.07.26 04:15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와 함께 3대 비극작가로 꼽히는 '유리피데스'(Euripides, 기원전480~406)의 '메데이아'를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남성제위여.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여인을 조심하십시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립니다.
'팜므파탈'의 상징 '메데이아'
이 작품 역시 '메데이아'와 '이아손'에 관한 그리스 신화의 배경을 알고 읽으면 재미있을겁니다.
++++
<'풀잎님'으로 부터 퍼온 글>
메데이아는 그리스 신화와 비극을 통틀어 가장 잔인한 악녀로 손꼽힌다.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 메데이아가 그리스 최고의 악녀로 돌변하게 된 데에는 기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
이아손은 텟살리아의 도시 이올코스의 왕이었던 '아이손'의 아들이다. 이아손의 본래 이름은 이오메데스이다.
그러나 '이오메데우스'는 그의 이부형제(異父兄弟)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빼았겼다.
'아이손'은 아들 이아손(이오메데스)이 성인이 되면 왕위를 돌려 줄 것을 펠리아스에게 요구하자 비겁한 페리아스는 그 자리를 빼았기지 않기 위해서 이올코스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아버지 이아손은 아들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켄타우로스 족의 현인인 케이론에게 이오메데스를 맡기게 되었다.
그러자 케이론은 이오메데스를 이아손으로 바꾸었고 그 후 그는 아버지와 이름이 같은 이아손으로 불리우게 되었다.
이올코스의 왕이 된 펠리아스는 델포이의 신탁에서, 한쪽 발에만 샌들을 신은 '아이손' 가문의 남자를 조심하라는 주의를 받았다.
성인이 된 이아손은 아버지의 왕국을 되찾기 위해 이올코스로 돌아오던 중 노파로 변신한 헤라를 만나게 됐다.
노파의 부탁으로 물이 불어난 아나우로스 강을 건너던 중 빠른 물살에 이아손의 한쪽 샌들이 떠내려 가버렸다.
이아손은 한쪽 샌들만 신은 채 펠리아스 앞에 나타나 자기가 '아이손'의 아들로 정당한 왕위계승자라고 주장을 했다.
한쪽 샌들만 신고 나타난 이아손을 보자 펠레아스는 신탁을 떠올리며 경계를 했다.
자신의 조카를 처형할 수도 없었던 그는 이아손에게 동방의 황무지 콜키스로 가서 '황금양피' 을 가져오면 왕권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아손이 그것을 손에 넣기 전에 죽기를 바랐던 것 이였다.
용감하고 모험심 강한 이아손은 숙부의 제안을 쾌히 받아들였고 오십 명을 태울 수 있는 큰 배를 만들게 했다.
신성한 떡갈나무로 만든 배가 완성되자 그 배를 만든 목수 아르고스의 이름을 따서 '아르고(Argo)' 호 라고 이름을 붙였다.
이아손은 젊은이들을 모집했고, 그 중에는 후에 그리스의 영웅으로 이름을 떨친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오르페우스, 네스토르 같은 이들도 있었다.
-아래 계속-
***동우***
2014.07.26 04:16
-위에서 받음-
옛날 텟살리아에는 아타마스라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사내아이 하나와 계집애 하나가 있었다.
얼마 후 아내가 싫어진 아타마스왕은 이혼을 하고 딴 여자를 얻었다.
왕비는 자신의 아들딸이 계모에게 구박받을 것을 걱정해 먼 곳으로 보내기로 했다.
헤르메스는 그녀를 동정해서 '황금의 양피'를 가진 수양 한 마리를 주었다.
양은 아이들을 등에 업고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동쪽을 향해 갔다.
어느 해협을 건너는 도중에 계집애는 바다에 떨어져 죽어버렸다.
양은 사내 아이인 프릭소스를 업고 계속 날아가 콜키스라는 왕국에 도착했다.
그 곳의 왕 아이에테스는 그들을 환대했고 프릭소스는 양을 제우스에게 바쳤고 '황금양피'는 아이에테스에게 주었다.
왕은 그것을 신에게 바친 숲속에 넣고 잠을 자지 않는 용에게 지키게 하였다
메데이아는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이다.
그녀는 강한 의지와 열정을 지녔고 총명한 데다 마법을 부리는 진기한 능력까지 지녔다.
남자라고는 모르던 순결한 그녀가 아버지의 소유물인 황금 양털을 훔치러 온 이아손에게 첫눈에 반한다.
사랑의 화살이 꽂힌 순간부터 메데이아는 세상에서 오직 이아손만을 원하게 된다.
이아손은 그리스인들이 가장 탐내는 보물인 황금양털을 손에 넣기 위해 사랑의 열병에 빠진 메데이아를 이용한다.
지구 끝까지 이아손을 따라갈 결심을 한 메데이아는 추적자를 피해 도망가던 중 애인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상상조차 하기 힘든 끔찍한 일을 저지른다.
동생 압쉬르토스의 사지를 토막내어 처참하게 죽이고, 충격으로 넋이 나간 가족들이 장례식을 치르는 틈을 타 무사히 콜키스를 탈출한 것이다.
메데이아는 사랑에 눈이 멀어 형제를 살육하고 조국을 배신한 것이다.
헌신적인 메데이아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아손은 그녀와 함께 코린트로 건너가 두 아들을 낳으며 10년 동안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평화롭고 화목한 가정에 엄청난 비극이 찾아왔다. 테바이의 왕 크레온으로부터 사위가 되어 달라는 제안을 받은 이아손이 순식간에 마음이 돌변하여 메데이아를 헌신짝처럼 버릴 결심을 한 것이다.
이아손은 젊고 아름다운 왕녀 글라우케와 재혼하기 위해 메데이아에게 이혼을 강요한다.
권력욕과 새로운 여인에 대한 욕정에 사로잡힌 이아손에게 조강지처는 행운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하늘처럼 믿었던 남편의 변심은 맹수의 발톱처럼 메데이아의 여린 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질투와 분노로 눈이 뒤집힌 메데이아는 복수의 칼을 갈았다.
남편의 이혼 요구를 들어주는 시늉을 하며 신부의 예복에 마법을 뿌려 글라우케에게 선물했고, 글라우케가 눈부신게 아름다운 예복을 입는 순간 온 몸에 독이 스며들면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다가 처참하게 죽게 했다.
그러나 연적을 죽인 것으로 메데이아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
더욱 날카로운 증오의 칼날을 변심한 남자에게 들이댔다.
남편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주는 것만이 철저하게 복수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남편이 가장 아끼는 자식들을 헤쳐 그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했다.
그에 이아손은 고통스러워 하다가 죽음을 맞았다.
메데이아는 아테네로 가서 아이게우스왕의 아내가 되어 새로운 삶을 살다가 장님 테세우스가 아테네에 나타나자 그를 독살하려 하였지만 음모가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그 후에 고향 콜키스로 돌아간 메데아는 징벌과 구원을 동시에 관장하는 마법의 여신이 되어 이곳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고 한다.
++++
***동우***
2014.07.28 04:12
남편에게서 버림받은 여인이 내뿜는 복수심과 한의 불꽃.
그 복수의 불길은 자식들에게로 전이되기도 합니다.
'메데이아 컴플렉스'
배신 당한 여인이 둘 사이의 자식들을 남자로부터 분리시키려거나 아버지를 미워하도록 세뇌하거나 심지어 남자에게 고통을 주기 위하여 자식을 살해하기까지 한다는 비뚤어진 복수심리.
저 그림을 보십시오.
증오가 이글거리는 살기어린 눈동자, 저주의 주술을 중얼거리는 듯한 벌린 입술.
두 아이를 안은채 왼 손으로 칼을 움켜쥐고 동굴 밖 어딘가를 노려보는 메데이아의 포즈.
[첫째여인 : 들어 봐요. 애들의 비명이 들려요.
큰아들 : 오, 어머니가 우리를 죽이려 해요.
작은아들 : 형! 형! 우리는 죽어요!
둘째여인 : 오, 저 잔혹한 여인이여.
셋째여인 : 우리가 뛰어들어가서 그 애들을 구해 낼까?
큰아들 : 오, 하늘이여, 우리를 구해 주세요.
작은아들 : 우린 꼼짝없이 죽어요. 어머니의 칼에 맞아 죽고 말아요.]
문 저쪽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비명소리, 곧 이어 문밑으로 흘러나오는 핏줄기.]
유리피데스의 '메데이아'
분노하는 여인의 폭발하는 저 파괴적 폭력성..
우리 사회를 배경으로 각색하여 무대에 올리면 현대극으로서도 조금의 손색이 없을듯 싶습니다.
++++
<전설의 메데이아>
-황용우-
마법같은 사랑 따라 먼길을 떠난
동쪽 나라 전설속의 메데이아 공주
부모 형제 모두 잊고 석양을 향해
아르고의 뱃머리 멀어져간다
어느 별이 내 앞길을 지켜줄 별인지
배신당한 사랑 앞에 눈물 흘리는
복수심에 무릎 꿇은 메데이아 공주
모든 것을 파멸시킬 마법의 가루
모험같은 사랑아 떠나가거라
어둔 하늘 빛을 잃은 가엾은 별 하나
++++
-내일부터 '유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 올리겠습니다.-
***eunbee***
2014.07.29 18:55
벌핀치의 책에서 메데이아를 그린 챕터는 '제17장 금양모피金羊毛皮/메데이아'에서 이야기되는데요.
끔찍하기는 저 유리피데스의 작품이 더 심하게 표현되었어요. 메데이아가 마법에 쓰일 약초를 모으고 솥단지에 넣어 제조하는 과정을 표현한 것은 무척 재미있기까지 하답니다.ㅎㅎㅎ
아무튼 동우님 덕분에 리딩북에서 읽게된 신화를 벌핀치의 책에서 다시 읽으면서 비교하기도, 되익히기도 하니
즐거운 독서가 되고 있어요.
***동우***
2014.07.30 04:30
고운 빛은 어디에서 왔을까, 아름다운 꽃이여.
절정을 구가하는 꽃의 자태들.
현란한 한여름의 꽃밭,
은비아씨 돌아와 은비님의 마음도 꽃밭일걸..ㅎ
***eunbee***
2014.07.30 16:36
독서의 보답으로 브레송을 보내드렸더랍니다.
그곳은 무더위라던데,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동우님.
오늘 이곳 날씨는 화창한 푸르름으로 시작하고 있네요.
<트로이의 여인들>
-유리피데스 作-
***동우***
2014.07.29 01:26
'트로이의 여인들'
고금을 관통하여 언제나 전쟁의 현장의 액추어리티가 있는 작품입니다.
전쟁과 여성의 운명에 대하여.
고대인 유리피데스는 현대인 휴머니스트 페미니스트의 생각들과 하등 다를바 없습니다.
전쟁이라는 저 인공적 재앙과 저 인문적 파괴의 양상과 더불어 말입니다.
트로이는 노아의 방주처럼 호머의 신화였습니다.
그런데 그 신화를 역사적으로 엄존하였던 하나의 사실로 밝혀낸 한 인간의 꿈이 있었지요.
그가 바로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
그 또한 전설입니다.
극광(極廣)의 마크로와 극미(極微)의 마이크로로서 우주(宇宙)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칼 세이건처럼 하인리히 슐리만은 내게 경이로운 사람이지요.
어쩌면 언젠가 언젠가, 한없이 모자란 내 정신이거나 생각이거나 정서이거나에 어렴풋이 박혀있는 것들.
나 간 이후 밝히 설명되어 지리라.ㅎ
신들이 유희하는 사과 하나로 인하여 벌어진 트로이 전쟁.
'트로이의 여인들' 읽는 재미를 위하여 이 작품의 등장인물을 간단하게 설명합니다. (익히 아실 터이지만)
트로이 왕 프리암과 왕비 헤카베.
그들 자식중에는 가장 유명한 파리스와 헥토르가 있었지요.
우여곡절...
미남 파리스가 유혹하여 함께 도망처온 헬레나 때문에 트로이전쟁이 벌어졌어요.
헥토르는 트로이군의 가장 위대한 전사였는데 아킬레스와의 일대일 전투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영화 '트로이'를 기억하시나요?
프리암(피터 오툴)이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위해 아킬레스(브래드 피트)에게 찾아가 애걸하는 장면이 있지요.
여기서는 핵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아들을 오디세우스의 명령으로 트로이 성벽에서 던져져 죽게 만들고 그리스군의 노예로 끌려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카산드라는 프리암의 딸입니다.
카산드라는 아폴로 신의 사랑을 받아 예언의 능력을 부여 받았으나 아가멤논의 구애를 거절했답니다..
나중에 그녀는 아가멤논의 애첩이 되어 그의 조국인 미케네로 갔지만, 거기서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됩니다.
아가멤논은 헬리나의 남편인 메넬라우스의 형으로 그리스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지요.
그러나 그 역시 전쟁이 끝난 후 귀향하여 아내인 클리템네스트라에게 살해됩니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 뒤이어 올리겠습니다.
***동우***
2014.07.30 04:21
전쟁에 참패한 트로이.
불타는 도시, 사방에 널린 사체들, 산 자들의 비통한 울음소리.
여자들은 이긴 자들의 전리품, 노예로 끌려가야합니다.
왕비 헤카베는 오디세우스의 노예가 되고, 공주 카산드라는 적국의 총사령관 아가멤논의 첩이 됩니다.
헤카베의 며느리(영웅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는 적장 아킬레우스 아들의 노예가 되고 어린 왕자 아스티아낙스는 성벽에 패대기쳐져 죽임을 당합니다.
전쟁에서는 여자와 아이가 가장 불쌍하다고 하지요.
神들의 유희, 파리스의 사과때문에 일어난 전쟁.
전쟁은 역사의 보편(普遍)이고 필연(必然)인가요.
혹, 인간사를 떠난 神들의 게임은 아닐런지요.
勝者의 운명 역시.
[포세이돈] 승리자로 고향에 돌아와야 할 남편이 깊은 바닷물 속에서 영원히 잠들게 될 운명이 될줄 그들이 어떻게 짐작할 수 있었겠소? 이제 이나라는 망했고 침략자들 또한 그들의 마지막 운명의 순간을 향해 한걸음씩 발길을 옮기고 있소. 오직 죽은자들 만이 영원한 안식을 취할 수 있을 뿐. (장중한 음악과 함께 암전)
***홍애(虹厓)***
2014.07.30 06:20
장중한 음악이 함께 하는 듯한 글입니다.
동우님 역시, 새벽 독서에 음악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을 듯 합니다
동우님, 새벽 독서 비슷하게 저도 요새는 새벽에 잘 일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편이 몸에도 마음에도 두루두루 건강을 주는데, 건강해져서 결과적인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8월 초입의 손님 맞이를 위해, 저는 조금 바쁜 느낌이지만
마음 한 켠, 못 읽었던 책들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좋은 징조입니다.
사라져 버리게 하고 싶지 않은 강박이랄까요?
더운 여름, 무지 고생이 되실 동우님의 건강을 빕니다.
***동우***
2014.07.31 04:06
그리스 비극.
장중한 관현악이 어울릴듯한 대목도 없지 않지만, 미묘한 선율로 갈등과 하모니의 실내악이 어울릴듯한 대목도 적지 않을듯.
요즘 제주는 줄곧 흐린 날씨에 잦은 비라지요?
7월말, 여름의 피크일텐데 부산은 예년처럼 염천의 나날은 아닙니다.
유난히 더위 타는 나로서는 살만한 날씨.
페이스북으로 홍애님과 조교수님의 체질이 상반된다는 얘기는 읽었어요.(SNS에는 왜 그렇게 댓글 달기가 어려운지..)
새벽에 잘 일어날수 있는게 그 체질관리 때문인지요? ㅎ
홍애님.
독서도 좋지만, 번역도 얼마나 더 가치가 있습니까?
어쩄거나 서승 선생님의 '옥중기' 완역, 축하합니다. (스마트 폰으로 읽었습니다)
일단 프린터로 출력하여 원작자에게 증정하시는게 여하?
이따 다시 찬찬히 훑어 보겠습니다.
참 며칠전, KBS '7080 콘서트'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어요.
배철수가 사회보는 가요 프로.
홍애님도 '이현'이라는 가수 기억하실거라.
내 또레의 귀공자, 원초 꽃미남가수.
굉장히 많은 히트곡을 남겼지요.
그 팬클럽 대장이 멜론님인데. 멜론님이 그 냥반 등떠밀어 40년만에 무대에 세운겁니다.
스스로 은퇴한 노가수의 청춘을 찾아준거지요.
이현씨도 무대에서 멜론님을 들먹이면서 그 사실을 토로합디다.
객석 멜론님의 모습도 한참이나 카메라가 잡고 있더군요.
모름지기 팬클럽이란 그 정도는 되어야..
죽은 가수를 살려내는 애정과 열정..
KBS 지난프로에서 한번 보시우, 홍애님도.
<아가멤논>
-아이스킬로스 作-
***동우***
2014.07.31 03:47
그리스 비극을 읽다 보면 과연 삶의 주체가 누구인가 생각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인간의 구체적 삶에 神은 무시로 개입하여 운명의 물꼬를 엿장수 마음대로 돌려버립니다.
부처님 손바닥.
神의 무대에서 그 연출에 의하여 한살이를 연기하다가 이윽고 무대에서 내려와 사라져 버리는 객체가 사람이라는겐지.
인간의 자유의지와 지혜로써 두는 장기판에 제 꼴리는대로 가끔 훈수를 두어 판을 어지럽히는게 神이라는겐지.
인생도상에서 맞닥뜨리는 불가피적인 불가사의한 것들.
팔자인지, 의지의 작용인지.
인간사 비극은 개성과 성품과 기질과 자유의지에서만 발현되는 것은 분명 아닙니다.
따지고보면 한 인간의 순수한 자유의지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것입니까. (어제의 보궐선거를 보더라도..)
운(팔자)이 따라야 하지요.
생각건대 운이 우리의 운명과 영혼을 억압하는바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리스 비극.
운명에 저항하여 인간의 자유로운 영혼이 내지르는 거친 숨소리.
그것이 말하자면 극적 크라이시스를 이루는 재미가 아니겠는지요.
딴소리.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열서너편으로 새로 만들어진 장편 동영상을 보고 있는데 1/3 쯤 보았습니다.(친구의 언급이 있어 보기 시작했는데 책과 다른 액추얼한 감동이 있습니다)
우주생성 1년 365일 짜리 달력, 호모사피엔스는 고작 12월 31일 23시 59분 59초에 출현한 것이라는군요.
아직 과학은 저 무한한 우주의 진실, 존재의 진실의 문턱에서 서성일 뿐입니다.
그러나, 시나브로 神의 모습은 몽롱하여 지고 과학의 실루엣은 그 모습이 짙어지고 있음은 사실일겁니다.
과학이 모든걸 설명할수 있는 날이 올런지는 의문입니다만.
버제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가 생각납니다.
지독한 악당 엘렉스.
존재는 '하날님(하나님)의 태엽이 달린 오렌지'가 아니랍니다.
들은 풍월 '라플레스의 악마'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와.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위치와 운동량과 개체의 그것에 의하여, 또는 우리가 지닌 유전자에 의하여 운명이라는 것을 설명할수 있는 날이 과연 인류에게는 올까요?
엉뚱한 객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동우***
2014.08.01 01:18
++++
<신화를 발굴한 상인, 하인리히 슐리만> -유시주(유시민 동생)'거꾸로 읽는 그리스 신화'중에서-
인류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위대한 발명이나 발견 또는 학문의 역사를 두루 살펴보면 우리는 뜻밖의 진실과 만나게된다.
비전문가, 다시 말해 아마추어들이 빼놓을 수 없는 큰 역할을 담당해 왔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전기를 발견한 갈바니와 에너지 보전의 법칙을 발견한 메이어는 의사였고 무선 부호를 창안한 모르스는 화가였다.
직업적인 전문가들은 잘 다니려 들지 않는 잡초 우거진 오솔길을 걸어 신천지를 발견하는 이런 열정적인 아마추어들을 마르틴루터는 일찍이 이 세상의 아무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표현했다.
그들로 하여금 전인미답의 오솔길을 헤매게 만드는 것은 돈도 밥도 아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신이 알고 싶어하고 밝혀내고자 하는 것들에 대한 순수한 열정 이다.
하인리히 슐리만은 이러한 위대한 아마추어 가운데서도 마땅히 첫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그는 북부 독일 메클렌부르크 주위 자그마한 마을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슐리만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신화와 전설, 동화같은 것들을 곧잘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 가운데서 특히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트로이전쟁과 그것을 승리로 이끈 아킬레우스, 아가멤논, 오디세우스 같은 뭇 영웅들의 모험담이었다.
일곱 살 나던 해인 1829년 크리스마스 때 그는 아버지한테서 <그림으로 본 세계사>라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그책에는 아이네이아스가 아들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등에 업는 채, 불타고 있는 트로이 성을 빠져나오는 그림이 들어있었다.
어린 슐리만은 책속에 그려진 트로이의 거대한 성벽과 성문에 눈길을 빼앗긴 채 물었다.
이게 바로 트로이의 모습이에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것들은 지금은 모두 어디 있어요?
글쎄, 아무도 모른단다.
내가 어른이 되면 트로이와 왕의 보물들을 꼭 찾아내고 말거예요.
일곱 살 난 아들의 맹세에 가난한 아버지는 그냥 빙긋이 웃기만 했다.
하지만 슐리만은 호머의 서사시들을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에게는 그것이 전설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였다.
위대한 아마추어답게 그는 오로지 순수한 열정에 의지해 자신의 믿음을 향해 돌진했다.
슐리만은 열네 살 때 식품점 점원으로 취직해 5년 반 동안이나 청어와 우유, 소금 같은 것을 팔았다.
그런데 미국을 여행하게 된 서른 살 때는 미국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대상인이 되어 있었다.
가난한 목사의 아들이 30대 초반에 백만장자가 되기까지의 고난과 시련이 어떠했는지, 또한 그것들을 이긴 그의 신념과 투지와 재능이 얼마만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차한 설명과 찬사를 덧붙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단지 그가 모국어인 독일어를 합해 12개 나라의 언어를 유창하게 쓰고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도 족하리라.
슐리만은 1863년 드디어 그토록 오랫동안 그를 매혹시켜 왔던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사업에서 은퇴하였고 몇 년간의 답사를 거친 뒤 1871년 마침내 트로이의 폐허 위에 첫 삽을 꽂았다.
그 곳은 소아시아 북서부에 있는 뉴일리엄이라는 마을이었다.
백 명의 인부를 동원해 3년여를 파들어간 끝에 슐리만은 원시 시대의 두 도시를 포함해 모두 9개의 도시를 발굴해 냈다.
폐허 밑에서 한 도시가 묻혀 있었다.
슐리만은 그중 밑에서부터 세 번째 층에서 불탄 흔적이 있는 견고한 성벽과 거대한 성문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는 그곳이 트로이의 유적이라고 확신했으며 실제로 거기서 왕관을 비롯한 엄청난 양의 금붙이들을 발견했다.
바로 그 유명한 프리아모스의 보물이었다. (슐리만이 죽기 얼마전에 이 보물은 트로이 시대보다 천 년이나 앞선 시대의 것임이 밝혀졌으며 트로이 유적은 제 7층임이 확인되었다.)
이로써 하인리히 슐리만은 고고학사의 맨 첫장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
***동우***
2014.08.02 04:51
'클리타이메스트라'는 긴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한 남편을 죽입니다.
추호도 망설임이나 죄책감같은건 없습니다.
딸의 복수라는 명분을 코끝에 걸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물로 바쳐진 '이피게네이아'는 그녀를 불쌍히 여긴 아르테미스 여신이 한 마리의 사슴을 그녀 대신 제물로 바치고 그녀를 여신의 신관으로 삼았지요)
배후에는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가 있습니다.
아이기스토스에게도 아가멤논을 죽여야 할 복수의 명분이 없는게 아닙니다.
본문, 그의 대사에서도 언급됩니다만 그의 家係에는 아가멤논과 해묵은 원한이 있었지요.
그러나 느끼건대 그 명분이란 허울인듯 싶습니다.
두 남녀가 아가멤논을 살해한 진짜배기 동기는 정욕과 권력욕인것 같아요.
그래서 '클리타이메스트라'는 악녀입니다.
그녀에 비하면 잃어버린 사랑때문에 자식까지 죽이는 팜므파탈 '메데이아'의 광기는 어쩌면 순정한 면이 있달까요?ㅎ
이후 7년간 '클리타이메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는 미케네를 장악하여 권력을 누리면서 잘먹고 잘 살게 되지요. (후에, 아가멤논의 아들의 복수로 죽을떄까지)
아버지가 딸을 죽음으로 내몰고, 그 아버지를 어머니가 죽이고, 또다른 딸은 그 어머니를 저주하고, 아들은 어머니를 죽이는, 저 가족간 상잔?(相殘).
극단적 윤리의 파괴.
고대 그리스적 관점에서도 필경 역천(逆天)의 행위일건데 신들이 사는 올림퍼스의 도덕관은 어차피 이현령 비현령 아니겠습니까마는.
그에서 비롯된 죄의식은 오로지 인간의 몫입니다.
그런데 그 감정모체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행위를 유도한 자유의지에 대한 회오의 한숨일까요, 불가항력적인 운명(팔자)에 대한 원망의 한숨일까요.
운명이 그러한들 개별의 실존이 어디 그 팔자를 인식할수나 있습니까?
알지 못하니 언필칭 팔자라는 것이지요. (돛자리 깐 사람인들...)
분명히 예고되어 있는 '죽음'을 팔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삶이란 자유의지로 사는 것... 회오와 아쉬움이 점철된..
으흠, 그렇게 사는 겁니다.ㅎㅎ
***eunbee***
2014.08.04 01:50
태풍도 지나가고, 비도 흩뿌린다니 한국의 여름은 역시 다이나믹해요.
올리신 글 없으니 허전하고 궁금해요.
여름 여행이라도 가신걸까요?
창문넘어 멋진 해원을 두고 어딜 가셨을까나. ㅎ
또 하나의 태풍이 북상중이라는 뉴스,
안전하고 건강하세요.
***동우***
2014.08.04 05:10
요즘 태풍은 한반도 서해안을 사랑하는가 봅니다.
부산에는 바람 다소 불고 빗발 조금 뿌리고는 심상하게 지나가려는가 봅니다.
창밖 해원 놔두고 제주 가려하다가 비행기가 뜨지 않아...
할비 오라고 아기들 성화인데 그 핑계로 해삼의 게으름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ㅎ
또 하나의 태풍.
올 여름은 그렇게 스러지려나....
파리 대기에는 벌써 가을 징조가 깃들었다는데..
-독서 리뷰-
<페드라>
-라신느 作-
***동우***
2014.08.04 05:03
'줄스 닷신'의 영화 '죽어도 좋아'를 기억하시나요?
'메리나 메르쿠리'와 '앤서니 퍼킨스'와 '랄프 바로네'가 출연하였던 (이제는 모두 故人들)
그 영화의 원제가 '페드라'였고 영화의 주제는 '유리피데스'와 '세네카'와 '라신느'에서 얻어온 것이지요.
흑백영상의 강렬한 마지막 장면이 떠오릅니다.
스포츠카를 거칠게 몰면서 랄라라라 바하의 토카타와 푸가를 노래하다가 '페드라! 페드라!를 부르짖으면서 차와 함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 치는 장면.
장 바티스트 라신느(Jean Baptiste Racine, 1639~1699)의 '페드라'를 두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의고체(擬古體)의 딱딱한 번역이 좀 읽기 껄끄러운바 없지 않지만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런대로 함께 읽어요.
'페드라'의 오리지널은 '유리피데스'의 '히포리투스(이폴리트)입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업어 온 글입니다.
++++
프랑스 신고전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 작가 유리피데스의 ‘히폴리투스’를 각색한 것이다. 뭐가 달라졌는지 유리피데스의 오리지날부터 보자.
사랑과 여자를 우습게 아는 젊은놈 히폴리투스(이폴리트)를 ‘손 좀 보기’ 위해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죄 없는 페드라를 미끼로 삼는다.
그래서 페드라의 가슴은 양아들 히폴리투스에 대해 욕망으로 가득해진다.
이 괴로움을 보다 못해서 시녀가 히폴리투스에게 페드라의 사랑을 전했다.
그러나 히폴리투스는 추잡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페드라는 실연의 아픔에다가 수치심과 분노로 복수를 결심하고 가짜 유서를 쓴 뒤에 자살한다.
아들이 페드라를 겁탈했다는 유서를 본 테세우스(테제)는 히폴리투스를 불러서 따지지만 결백하다는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저주받고 쫓겨난 히폴리투스는 바다괴물에게 공격당하여 중상을 입는다.
다른 여신 아르테미스(다이아나)가 나타나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밝힌 뒤에 아들은 아버지 품에서 죽는다.
이렇게 유리피데스의 작품은 자만심 넘치는 젊은 놈의 비극이다.
그리고 페드라는 아무 죄도 없이 그저 여신 때문에 무서운 사랑인지 욕정인지를 이기지 못하여 갈등하다가 자살한 셈이다.
그러나 라신은 이 작품의 조연이던 여자를 주연으로 바꾸었다.
페드라(페드르)의 가슴은 양아들 히폴리투스에 대해 욕망을 느끼지만 페드라의 머리는 유부녀로써 옳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슴과 머리의 갈등이 만들어내는 이 괴로움을 끝내려고 페드라가 자살하려는 것으로 작품은 시작한다.
그러나 남편 테세우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시녀는 페드라에게 이제 유부녀가 아니니까 히폴리투스에 대한 사랑이 부정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페드라는 히폴리투스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알리시아라는 처녀를 사랑하는 히폴리투스는 페드라에게 냉담하여 메스껍다는 반응이다.
페드라는 다시 자신에 대한 수치심과 실연의 아픔에 빠진다.
시녀의 위로로 간신히 다시 희망이 생겨나지만 곧 남편 테세우스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에 모든 게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남편과 히폴리투스가 같이 들어오자 페드라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져 당황한다.
테세우스가 페드라를 의심하니까 시녀는 히폴리투스가 먼저 접근했다고 거짓말한다.
화가 난 테세우스는 아들을 저주하고 내쫓는다.
페드라가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에 남편은 히폴리투스가 아리시아를 사랑한다고 알려준다.
그러자 페드라는 질투심에서 아무 말도 않는다.
그 결과로 히폴리투스는 바다괴물에게 죽고 시녀는 자살한다.
페드라는 독을 먹고 죽기 직전에 남편에게 모든 것을 고백한다.
이렇게 작품은 한 여자의 무서운 욕정이 주위 사람 모두를 망치는 것으로 변했다.
외면행동은 단순하지만 인물들의 관계는 아주 복잡하다.
또 작품은 전체가 강한 콘트라스트로 꾸며져 있어서 히폴리투스가 아리시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젊은이들의 순수한 장면 바로 뒤에 괴롭고 농염한 페드르의 처절한 사랑고백이 나타나 대조를 이루는 식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테세우스와 페드르가 만나는 마지막 장면도 아주 강렬하다.
신고전주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 바꾼 부분도 많다.
유리피데스의 작품에는 히폴리투스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히폴리투스가 평생을 독신으로 순수하게 살겠다고 잘난 체 하니까 아프로디테 여신이 페드라를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라신은 신을 모조리 없애기 위해 아리시아를 넣었다. (아리시아는 로마 작가-세네카-가 만들어 낸 인물이다.)
그래서 아리시아를 사랑하는 히폴리투스는 원작의 순수함과 자만심이 사라지고 현실적인 인물이 되었다.
주인공이 여러 사람(코러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것도 현실감이 없기 때문에 세네카의 수법을 따라 코러스 대신에 시녀나 친구 등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말을 듣도록 했다.
혼자 하는 독백도 특수한 상황이거나 기도뿐이다.
또 페드르는 왕족이고 고상한 신분이니까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당시는 사람 위에 사람 있던 시대다!)
그래서 페드르가 거짓 유서를 쓰는 대신 천한 신분의 시녀가 거짓말하는 것으로 바꿨다.
히폴리투스가 바다괴물에게 죽는 것은 현실감이 없지만 신화에 나오는 것이라 어쩔 수 없이 무대 밖에서 처리했다.
결국 라신의 작품은 페드라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선과 악의 대결로 변했다.
라신은 긴 서문에서 이 작품이 절대로 불륜을 다룬 야한 작품이 아니라 도덕을 강조한 작품이라고 무지하게 강조했다.
++++
***동우***
2014.08.05 04:28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남녀상열(男女相悅)의 침실에서의 에로틱한 이미지인 반면, 사냥과 처녀성의 여신 아르테미스(다이아나)는 싱그런 숲속을 뛰노는 씩씩하고 끼끗한 소년의 이미지입니다.
이폴리트(히포리투스)의 기질은 아르테미스적인지라, 그것이 아프로디테의 비위를 거스렸지요.
페드라로 하여금 이폴리트를 향한 미칠듯한 정념을 품게 만든 것은 바로 아프로디테의 복수였습니다.
계모의 그 정념으로 인하여 히포리투스를 파멸시키려는 것이지요.
유리피데스의 '히포리투스'에서의 '페드라'는 아프로디테 여신의 복수의 도구로서 일종의 조연의 역할이었지요.
그 후 긴 세월동안 '페드라'의 기조(基調)가 유리피데스로부터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페드라'는 여러 모습으로 변주되었습니다.
읽어보지 못하였는데 세네카의 '파이드라' 에서의 '페드라'는 주체적(?)인 정념의 여인으로서 이를테면 주연급이었다지요.
줄스 닷신의 '죽어도 좋아'에서의 '페드라'의 정념은 더욱 뜨거웠어요.
페드라에 갈등하는 앤서니 퍼킨스는 절규합니다.
"절 놓아주세요. 전 겨우 스물넷이에요."
라신느의 페드라.
큐피드의 화살이 꽂혀버린, 의붓자식을 향한 미칠듯한 사랑의 감정.
그 운명적인 정념을 꺼뜨리고자 온갖 몸부림(그를 짐짓 핍박하고 멀리 쫓아내고)도 부질없습니다.
결코 이루어질수 없는 불륜의 짝사랑.
라신느의 페드라는 누구보다도 도덕적입니다.
자신의 마음 속 비밀을 그 누구에게도 결코 입밖으로 꺼낼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면에서 타오르는 그 정념을 페드라는 견딜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감정을 느끼실수 있겠어요?
아, 어쩔수 없어 그녀는 스스로 죽고자 결심합니다.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은 도덕률의 구원은 아니었을지라도, 현실적인 구원의 방도는 없지도 않았을듯.
유모의 부추김을 빌어 이폴리트에게 사랑을 고백하지만, 저 순결한 소년(?)에게는 어림도 없습니다.
이미 입밖으로 꺼내놓은 마음 속 비밀, 그녀는 가슴을 치고 흐회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 정념을 홀로 간직한채 차라리 죽었어야 했을걸.. 그의 칼을 가슴으로 받아 죽었더라면 얼마나 행복하였을까...
죽은줄 알았던 남편이 생환합니다.
갈등하면서도 거꾸로 이폴리트를 모함하자는 유모에게 동의하는 페드라.
이폴리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는 소식에 화악 타오르는 질투심.
이윽고 이폴리트는 죽습니다.
그리고 페드라도 독을 마시고 자살합니다.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가치관으로서 스스로 파멸하는 것입니다.
손목 한번 잡아보지 못한 불륜의 사랑으로 인하여.
라신느의 '페드라'는 음악인 동시에 문학이라고 한다는군요.
대사(佛語겠지요)가 시적 율동이 있는 아름다운 운문이라고 하는데...
이폴리트의 캐릭터는 좀 밋밋합니다.
그에 비하여 페드라의 저 운명적 사랑과 절망과 갈등과 회한의 연기, 여배우라면 누구나 욕심을 낼듯 합니다.
불꽃 속으로 몸을 던지는 불나방...
나로서는 '페드라'의 저 절제가 좀 못마땅하기도 합니다만.
라신느의 페드라, 이 작품은 로고스가 파토스보다 강한듯하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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