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선우휘 (1,4,3,3,1)

카지모도 2020. 3. 1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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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선우휘]]

<묵시> <불꽃>

 

 

<묵시(黙示)>

-선우 휘 作-

 

***동우***  

2013.03.27 05:03

 

1971년에 발표한 선우휘(鮮于 輝, 1922~1986)의 '묵시(黙示)'

나는 선우휘의 소설을 좋아한다.

상황문학, 행동문학등으로 일컬어지는 선이 굵은 작가이지만 보수언론인으로 폄훼되기도 한다.

논객으로서의 그의 글도 좋다. (선우휘는 수많은 논설을 썼다)

 

춘원(이광수)과 서낭이라는 시인(서낭은 가공의 인물일 것..)

어떻게 역사를 살아야 하는가.

행동가적 처신과 내면적 인간으로서의 존재방식..

 

서낭과 그의 아들 서파라는 의사.

소극적이고 탐미적인 삶의 자세...

 

또다른 비약..

한 시절의 전위(前衛)는 필경 보수꾼이 된다.

그것은 낙오가 아니다.

 

처칠인가 아니면 칼 포퍼가 말했다던가.

<20살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살에 여전히 사회주의자인 사람은 머리가 없는 것이다>라고.

 

***teapot***  

2013.03.27 08:08

 

감명깊게 아주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후반부에가니 서낭이 가공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읍니다만

전반부를 보면 영락없이 실존인물입니다~ㅎㅎㅎㅎ

 

동우님, 저 혼자서는 책방에 가도 도저히 고를 수 없는

이런 소설들을 소개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동우***  

2013.03.29 05:46

 

<감명깊게 아주 재미있게 읽었읍니다.>

탱큐, 티팟님!

 

P.S.

문장에서 티팟님 우리나라 떠난 세월을 느낍니다.

'있읍니다' '했읍니다'가 '있습니다' '했습니다'로 맞춤법 바뀐지 꽤 되었답니다.

그 무렵 글쓸 적마다 얼마나 헤깔렸는줄 아세요?

속으로 새발새발하였답니다.

 

외국인들, 한글의 위대성은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우리나라 맞춤법에는 두 손 두 발 들고 말지요.ㅎ

 

***teapot***  

2013.03.29 07:20

 

그럼 "ㅇ"으로 안쓰고 모두 "ㅅ"으로 씁니까?

사실은 글 쓰면서 틀릴까봐 항상 마음이 불편합니다.

잘 배워지지도 않고 습관이 고쳐지지도 않고~

아예 처음부터 잘 몰랐는지도 모르고요~ㅎㅎㅎㅎ

맞춤법 틀리면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 꽤 있던데요.

이렇게 고쳐주시면 기억에는 남았으면 좋겠읍니다.

 

***동우***  

2013.03.30 05:08

 

그래요, 티팟님.

'읍니다'가 죄 '습니다'로 바뀌었어요.

아마 전문적인 문필가라도 완벽하게 우리나라 맞춤법 띄어쓰기 구사하는 사람 드물거예요.

내 눈에 몇번이나 교정을 거쳤을 책에서도 흔히 오류가 발견되곤 한답니다.

더구나 오랜 기간 미국에 사시는 티팟님의 경우, 한글 구사 매우 훌륭한 편입니다.

조금도 꿀리실 것 없어요. 정말.

 

 

<불꽃>

-선우 휘 作-

 

***동우***

2014.05.27. 

 

선후 휘(鮮于 輝:1922-1986)의 '불꽃'.

上中下 세번으로 나누어 올린다.

 

수동적이고 회피적인 개인주의와 체념적이고 순응적인 역사관.

그러나 종장에 새로운 생명의식으로 획득하는 자기개혁의 '불꽃'.

그의 '의식의 흐름'의 독백으로 그 당위(當爲)를 납득하지만, 좀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바도 없지 않다.

 

'불꽃'을 품기 전의 주인공 '고현'이라는 사나이에게서 나를 본다.

 

1986년 즈음, 서울대학의 한 여대생이 한강에 투신하여 자살하였는데, 그녀의 유서를 나는 베껴 놓았었다. 

순결하고 투명한 소녀의 양심.

운동권이 아니었던 그녀는 시대의 부당함에 저항하여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이 이토록이나 죽을만큼 부끄러웠고 괴로웠던가 보았다.

 

<아파하면서 살아갈 용기 없는 자, 부끄럽게 죽을 것.

살아감의 아픔을 함께 할 자신이 없는 자, 두끄러운 삶일뿐 아니라 죄지음이다.

절망과 무기력.

이 땅의 없는 자, 억눌린 자, 부당하게 빼앗김의 방관, 더 보태어 함께 빼앗은 죄.

더 이상 죄를 감당할수 없다.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부끄럽다.

사랑하지 못한 빚갚음일 따름이다.

앞으로도 사랑할수 없기에.

욕해 주기를.

모든 관계의 방기의 죄를, 제발 나를 욕해주기를. 욕하고 있기를...>

 

그 무렵 투신과 분신등, 자살이 이어졌다.

‘김지하’는 인민사원의 집단자살에 빗대어 죽음의 굿을 그만두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1987년 6.29선언이 있었고, 개헌이 있었다.

그리하여 혁명은 성공하지 못하였다.

 

고현의 저 자기개혁의 불꽃의 불꽃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무렵의 나.

광주도 억압도 부정의함과 부당한도 역사도 시대도 내게는 아랑곳 없었다.

그야말로 나는 한마리 먹고사니즘의 무지렁뱅이였다.

한조각 시대인식은 없을수 없었을터인데 한줌 부끄러움이나마 간직하고 있었을라나.

 

‘신재보수요 언재진보 (身在保守 言在進步)’라는 말이 있다.

몸이 누리는 생활양식은 보수에 있지만, 입으로는 오로지 진보를 뇌까린다는 누군가의 조어(造語)다.

이른바 강남좌파, 캐비어 좌파의 '생존코드'가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작금, 나이를 먹으니 무언가 쬐끔은 보이기는 한 모냥일까마는 묻고싶다.

작금의 대한민국에 대하여.

이른바 좌파, 감정모체의 인식이 정녕 그러한가.

현 정권은 정말 역사의 반역패당이라고 생각하는가.

작금의 한국, 그동안 적폐된 모순을 이 정권이 오로지 심화시키고 있다고 믿는겐가.

이 시대가 마냥 모순으로만 점철된, 혁명이 도래해야 할 세기라고 굳게 믿는것인가.

 

이성을 감성으로 물들이려는 프락치들.

민중의 이름으로 한 몫 보려는 정치모리배들.

헛바람만 가득 넣은 진보 이데올로기의 풍선을 날리는 사람들.

그들은 싫다.

 

이 나라 바르고 올곧게 가도록, 개조와 개혁의 계기로 힘을 합치면 아니될까.

 

***동우***

2014.05.29.

 

'불꽃'은 조선일보 前의 사상계에서 주관한 1957년 '동인문학상' 2회 수상작.

 

선우휘는,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체념과 순응주의를 비판하고 인간의 의지적 행동과 참여주의를 강조함으로써 1950년대 '전후 문단'에 있어서 가장 발랄하고 선이 굵은 작가'로 주목 받았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일보 주필을 지내는등 보수꾼 언론인으로 논필을 휘둘르기도 하였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불꽃'.

뼈다귀가 거칠어 내게는 문학적으로 좀 어설퍼 보인다. 

전에 포스팅한 '묵시'가 내게는 훨씬 좋았었다.

 

허벅지를 찌르면서 욕망을 극기하는 어머니.

그녀의 하나님.

형무관 같은 신. 이유 없는 원죄..

 

할아버지.

풍수적 운명관.

아득한 때의 혼돈, 고온의 기체, 흐르는 용암, 풍화작용, 지술, 무덤 속의 뼈다귀...

 

'정감록과 다름없는 운명의 예언서 맑스의 과학.

무수한 눈동자에 분노의 불길 불어넣은 으리으리한 신흥 청부업자들.

인민의 해방이란 방정식에 절대적인 의미를 붙이고 이를 갈고 있는 청탁자 없는 청부업자들.

그들이 즐겨 퍼붓는 기성업자에 대한 욕설, 그러나 그들 역시 똑같이 이어받은 악착같은 이윤추구...

 

갈피를 못 찾고 허우적거리는 개인주의, 푸치, 푸르의 퇴영들.

찬란한 꽃밭. 매미의 울음과 뭇 새의 지저귐...인간의 삶.

그 개별적 삶의 양식은 자본가, 지주, 친일파, 반동분자, 기회주의자로서의 삶으로 재단될수 밖에는 없는가.

 

생생한 여자의 알몸을 안기가 두려워 자독 행위로 스스로의 육체를 기만한 너절한 자식, 져야 할 책임이 두려워 되지 못한 자기 변명으로 자위한 비겁..

껍질 속에서 아픔을 거부한 무엄과 비열..

 

<껍질 속에 몸을 오므리고 두더지처럼 태양의 빛을 꺼린 삶.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있었다. 마치 돌맹이처럼, 결국 너는 살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살아 본 일이 없다면 죽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마지막 선택적 의지를 발현한 할아버지를 연우가 쏘고 고현은 연우를 쏜다.

연결된 생명의식, 그리고 불꽃.

생명의 느꺼움이 일으킨 혁명.

 

<그것은 다음 차원에의 비약을 약속하는 불꽃. 무수한 불꽃. 찬란한 그 섬광. 불타는 생에의 의욕. 전신을 흐르는 생명의 여울. 통절히 느껴지는 해방감. 먼저 나 자신이 선택할 것이다. 다음은, 그것은 더욱 누구도 모른다. 분명한 한가지는 외면하거나 도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어떻든 정면으로 대하자. 이미 꽃밭의 시대는 끝난 것이다. 살아서 먼저 청부업자들을 거부하자...청부업자는 사라지고 '조용한' 인간들의 세계가 와야 한다.조용한 인간들의 세계. 영겁의 정적은 깨뜨려지고 거기 새로운 생명이 날개를 치며 퍼득이기 시작했다.>

 

쿵 쿵 포소리가 울린다.

선택을 재촉하는 소리.

 

쁘띠 부르주아적 삶의 양식, 사회과학적 성찰 한줌...

이념을 표방하는 삶의 양식, 인간과 인생에 대한 철학적 성찰 한조각..

 

그렇지만 후기 자본주의 세상. (이 시대, 후기자본주의가 맞기는 맞는겐지.) 

이제 불꽃 따위 없는 세상이다. 

더구나 나와 같은 늙다리 속물,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다가 황혼의 고개 넘어 스러져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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