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시인들의 첫사랑]] -1.2- (4)

카지모도 2020. 3. 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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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시인들의 첫사랑]] 1

-김용택. 장석주-

 

 

<그 여자네 집, 그리고 그 여자>

-김용택-

 

***동우***

2016.01.03 10:43

 

손주 두 녀석, 한 사흘 할미할비 비비대고 치대다가 엇저녁 즤어미 어미닭 병아리새끼 몰고가듯 데리고 돌아갔습니다.

갑자기 고즈넉함에 잠긴 밤 나는 술을 마시고 내처 일요일 아침까지 긴 잠을 잤습니다.

내일 쯤 다시 먼 나라로 떠나보낼 따님, 어느 벗님네도 좀 스산하시리라. ㅎ

 

섬진강 시인 '김용택 (1948~ )의 첫사랑 이야기, 뒤늦게 올립니다.

내 또래 시인의 가슴 속에 저리 애잔하고 사랑스럽게 남아있는 그 강과 그 산과 그 강변과 그 풀꽃들과 그 감나무와 밭의 넓적한 토란잎..

그것들 없는 나는 시시때때로 섪습니다. 어떨 적에는 노엽기까지 하였답니다.

'그 여자네 집' 의 저 설레임.

아스팔트 킨트에게도 아쉽고 아련하게 느껴지기만 하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고향없는 자의 슬픔 따위 센티멘탈리즘은 내 代 쯩메서 마감이겠지요.

비니미니 代에서는 말할것 없거니와, 내 자식들에게도 그런 감상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고향이라는 의미, 그 이미저리들이 요즘 아이들의 정서 속에는 어떤 색감으로 담겨 있는지 궁금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새'에 관하여>

-장석주-

 

***동우***

2016.01.30 04:28

 

시인들의 첫사랑 이야기.

얼마전 올린 '김용택' 시인에 이어 이번 주말은 '장석주'시인(1955~ )편을 올립니다.

 

장석주는 시는 물론 소설과 문학평론을 망라한 전방위적으로 인문학의 글을 쓰는 사람이지요.

늘 감탄하는바 대단한 정력이고 대단한 필력입니다.

 

이 詩는 그가 몇살때 쓴 것인지.

<...다시 첫사랑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 벼랑 끝에 서서 파도가 가장 높이 솟아오를 때 / 바다에 온몸을 던지리라>

 

낫살들어 과거사 돌이켜보면 죄다 안타깝지요.

청춘, 스스로 참혹하여 스스로 퉁퉁 화만 내었던 그 때, 첫사랑의 겨를 또한 그러하였을텝니다.

 

++++

<참 한심했었지, 그 땐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하는 일마다 실패투성이였지

몸은 비쩍 말랐고

누구 한 사람 나를 거들떠보지 않았지

내 생은 불만으로 부풀어오르고

조급함으로 헐떡이며 견뎌야만 했던 하루하루는

힘겨웠지, 그 때

구멍가게 점원자리 하나 맡지 못했으니

 

불안은 수시로 나를 찌르고

미래는 어둡기만 했지

그랬으니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내가

바닷속을 달리는 등푸른 고등어처럼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랬으니, 산책의 기쁨도 알지 못했고

밤하늘의 별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따뜻한 말을 건넬 줄도 몰랐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무지로 흘려보내고

그 뒤의 인생에 대해서는 퉁퉁 부어 화만 냈지>

 

-장석주, '내 스무 살 때' 全文-

++++

 

버나드 쇼가 말했던가요.

청춘은 청춘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으흠, 그런 말은 다 늙어서야 자기연민에 겨운 한숨으로 뱉어내는 회오의 투덜거림일겝니다.

 

<첫사랑이란 피할 수 없는 고통의 운명이다. 그것은 생의 통과의례, 한 번은 건너가지 않으면 안되는 그 무엇이다. 내 의지와 선택의 바깥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쉽게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 그것이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나'라는 티끌처럼 작은 실존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 역사, 더 크게는 자연, 우주를 지배하는 어떤 법칙성과 힘, 알 수 없는 그 어떤 필연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 첫사랑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 있는가! 나는 어느덧 첫사랑을 관조해야만 하는 나이에 이른 것이다. 내겐 더 이상 세상의 규범들을 바꾸고자 하는 잉여의 힘들을 다 탕진한, 저 뻘밭처럼 황량하게 비어 있는 내면만 있을 뿐이다. 그 황량한 뻘밭에는 어떤 '새'도 날지 않는다.>

 

그런데 장석주 시인.

며칠전 신문을 보니까 스물 다섯 연하의 색시를 맞아, '네 이름을 발음하는 내 입술에 몇 개의 별이 얼음처럼 부서진다'느니 '우리는 새벽의 나무 둘처럼 행복하다'느니 하면서 닭살돋는 멘트를 날리더군요. 

다 늙어 얻은 새각시, 언행(言行) 공히 마냥 닭살이면 어떠리이까. ㅎ

 

장석주(1955년생)는 나보다 불과 일여덟살 아래의 연배랍니다.

나야말로.

더 이상 세상의 규범들을 바꾸고자 하는 잉여의 힘들을 다 탕진한, 저 뻘밭처럼 황량하게 비어 있는 내면만 있을 뿐입니다.

그 황량한 뻘밭에는 어떤 '새도 날지 않습니다.

 

밖으로 사랑 한조각 꿈꾸지 않으려는.

오, 내 안의 남루(襤褸)여.

 

***도하***

2016.01.31 06:12

 

안녕하세요, 동우 선생님.

濤夏입니다.

 

문안 인사드릴 자리가 어디인지 찾지 못해

그냥 가장 따끈한 게시글 밑 꼬리로 붙입니다.

 

왠지 올 봄만큼은

꽃피는 동백섬에서 따고 싶다는 생각,

 

가는 길에는 삼가현(면)을 거치면서

이옥(李鈺)이 충군(充軍) 길에 들러서

침 뱉고 돌 던졌다는 함벽루(涵碧樓)에 올라

이백 년도 훨씬 넘은 미제사건의 현장검증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불현 듯 들던 끝에...

 

이렇게 인사 남깁니다.

 

***동우***

2016.01.31 09:46

 

오채환 교수님.

인사 눕혀주시니 매우 반갑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검색으로, 출판하신 수많은 책들의 프로필을 통하여 도하님의 그토록 너른 공부력(?)에 늘 감탄하고 있습니다.

물리 공학 수학 종교 철학 교육 심리학까지... 文과 理를 아우르는 가히 르네상스적 인간, 이 시대 우리나라에 오교수님의 박학강기 따를자 있으리까. (아부의 변설이 아니라 실로 그러합니다.ㅎ)

 

합천 함벽루는 나도 올라 보았습니다만, 이옥의 미스테리는 초문이올시다.

이옥이 충군살이의 치욕으로 정조임금의 문체반정에게다 대고 그러했던가요?

 

도하님의 교육적 계몽정신, 방대한 지식창고에서 필터링하여 쉽게 풀어 들려주는 ‘***이 들려주는 ***이야기’.

그에 대한 은유가 있을런지..ㅎㅎ

 

도하님.

대학은 여전하시리라 믿습니다만, 도하님의 요즘 소설은 어떠하실까..

백종선 작가와는 소식 주고받는데, 도하님께서도 어디 블로그라도 가지고 있다면 때로 쓰신 글들 뵙기를 희망합니다.

 

정말 반가웠습니다.

 

***도하***

2016.01.31 18:37

 

그간 경황은 이렇습니다.

 

1. 최근 몇 년 사이 가업 하나를 일구었고, 아들에게 전권을 넘김으로써, 시니어의 최고 미덕은 ‘깔끔하게 찌그러지는 것’이라는 신조의 언행일치를 나름 실천했습니다. (여기에는, 작년까지 최근 몇 년간 독서나 글쓰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2. 이후 불가피한 공적 약속(수업) 이행을 뺀 나머지 모든 액티비티를 거두며, 급기야 자기망명을 선언하고 스스로 독거노인 되어, 시간 넉넉한 임종을 즐기면서 궁극적 희망인 먼지가 되리라! 했건만...

 

3. 살아있으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살아생전에 모두 이루겠다는 발상만큼이나 무모하고 발칙하며, 무엇보다 교만무쌍한 기도(企圖)임을 깨달았습니다. (남들은 다 아는 상식일 테지만 개인적으로 저에게는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4. 꿈지럭거리며 최소만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아무 것’은 독서라는 결론, 그에 부응하되 방사능물질 반감기 치르듯이 바람결에 책장 넘기리라! 했건만...

 

5. 온 세상이 무자서(無字書)요 인간은 물론 삼라만상 낱낱이 단행본 혹은 전집인줄은 들어 알았건만, 그들의 토설(吐說)같은 활자더미 또한 이다지도 많을 줄이야... (하기야 암호학에서 ‘큰 경우수’의 한 종류 얘기할 때, 모든 문자들의 모든 조합으로 된 모든 책을 갖춘 ‘우주도서관’ 장서일지라도 용량 큰 외장하드 몇 개에 다 담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6. 길은 두 가지. 하나는 조금 더 다부지게 임하는 것이요, 둘은 맛나게 구워먹을 특수 부위만 도려내는 것. 먼저, 전자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유치하지만 스스로에게라도 레졸루션을 드러내고 장치하자, 해서, 화방으로 달려가 목조각 칼을 샀습니다. 그걸로 굴러다니는 나무쪼가리에 아래와 같이 현판을 팠지요. 찾는 발길 없는 오두막이지만 문간 벽에 부착해 놓으니 기분 상 효과는 분명해 보입니다. (오두막 있는 곳이 도고인지라...)

 

(도고서재 현판사진)

 

7. 후자, 실은 후자에 관해서 얘기 하는 것이 골자였는데 서설이 너무 길게 돼버렸습니다. 제가 맛나게 구워먹기 위하여 제한적으로 도려낼 대목은 18세기입니다. 발단은 매우 싱겁습니다.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쓸 때 지구 건너편에서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쓰고 있었거든요. 각각 계몽의 격앙된 초입과 완성적 끝자락에서. 반응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열광과 냉담. 오일러나 모차르트 같은 주변 공동주연급 인물들도 얼마든지 캐스팅 할 수 있고, 재밌는 구석이 많다싶어 맛나게 씹어볼 요량이었습니다.

 

8. 그런데 말입니다(김상중 톤입니다. ^..^ ), 무심코 넘기기에는 사뭇 이질적인 오돌뼈 정도의 돌출부위가 씹히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이옥의 기문(記文) 중 함벽루에서 침 뱉고 돌 던지는 대목(정확히는 침과 돌을 자유낙하 시켜보는 대목)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 대목은, 탈레스와 비트겐슈타인과 이상(李箱)까지 거론해야 할 정도로 비상합니다. 달리 말하면 계몽주의를 건너뛰어 모더니즘이 선취된 증세가 엿보입니다.

 

“나는 천성이 게으른데다 이 길은 또한 귀양길이어서 길의 왼편으로 일 이 리(里) 되는 곳에 멋진 누각이 있어도 감히 들러 가지 못 하였다. 다만 감히 가지 못 할 뿐만 아니라 가고 싶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삼가(三嘉)로부터 서쪽으로 가다 보면 합천에는 미처 사 리 쯤 못 간 곳에 이르니 산이 다하고 모래사장이 펼쳐졌으며, 모래사장이 다하자 물이 이어졌다. 물에는 다리가 있었는데 매우 길었으며, 다리가 다하자 누각이 우뚝 솟아있는데, 석문(石門)이 말의 머리에 마주치고 붉은 난간이 곧바로 사람의 눈썹과 이마에 닿아 있었다. 마치 내가 뜻하지 않은 가운데 뛰쳐나와 길을 막고 객을 머물게 하는 듯했다. ···중략··· 누각은 백 척쯤 되는 바위 위에 올라앉아 천 길 연못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허공에 의지해 홀로 서서 시원스럽게 내려다보면서 기둥에 기대어 침을 뱉으니 구슬이 물결 속으로 떨어지고, 돌을 날려 던지니 활을 쏘지 않았는데도 시위 소리가 난다. 그제사 편액을 보니 ‘함벽루(涵碧樓)’라 쓰여 있었다. ···하략···” === 이옥전집1, 소명출판, 245~6쪽.===1795년의 일을 쓴 글입니다.

 

9. 앞으로 18세기의 글을 쓴다 할 때 몇 번의 괄호 치기를 하게 할 인물이지만, 그것은 무척 유쾌한 번거로움일듯하여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보고 싶은 인물입니다.

 

10. 올 해 봄따러 동백섬 갈제 함벽루 들러 침과 돌을 떨어뜨려볼 확률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 불쑥불쑥 나타난 무뢰한을 따뜻히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동우선생님과 이 무뢰한 또한 언젠가 불쑥 만나지리다. ^^.

 

***동우***

2016.02.01 04:44

 

오교수님.

강의와 저술 그 와중에 가업을 일으켜 시니어의 미덕을 구가하시고, 유유자적 도고서재 현판 걸어놓고 의고적(擬古的) 풍취에 몸을 묻어 무위로움까지..(철학하는 독거노인께 무위라는게 있을까마는. 그런데 도하님의 연배, 노인이라기 너무 성급하신거 아닌지요. ㅎㅎ)

안팎(마음과 물질)으로 빈한한 나로서는 도하님이 가지신 그러한 내외적 지복(至福ㅎㅎ)이 아득하게 부러울 따름입니다.

 

그리고 이제 안으로 눈을 돌려 우리나라의 18세기의 인문까지. (조선조 수학에 관한 책 쓰신건 알고 있지만)

 

나는 패관문학의 이옥 박지원에 관한 것은 문체반정에 대응하는 두사람의 처세 정도를 들은 풍월 있습니다만 이옥의 함벽루 얘기는 생전 처음 듣는 내용입니다. (도하님 글을 읽고 갈릴레이의 피사사탑에서의 자유낙하 실험따위나 연상하는 주제랍니다.ㅎㅎ)

칸트니 탈레스니 오일러니 모차르트ㄴ; 비트겐슈타인이니. 도하님이 서구의 위인들 캐스팅하여 더불어 천착코자 하는, 그 어름 조차 나로서는 아득할 뿐입니다. (청컨대 도하님, 나에 대한 과대평가 마옵시기를.. 독서력 또한 도하님 생각하시는 것만큼 미치지 못한답니다, 턱도 없을 것.)

 

세상이 무자서요 사람마다 낱낱이 단행본임을 들여다보시는 분이니, 도하님의 그 방면 재능 내 알거니와 단언컨대 도하님의 장르는 필경 문학(소설)쪽으로도 뻗으시리다. (어제 얘기 나누었는데, 백종선 작가도 장편소설 두편이나 구상하고 있더군요.)

 

최재천 교수가 주창하기 훨씬 전에 학문의 통섭(通涉)을 이루신 분, 도하님을 경애(驚愛-놀랄 경자입니다.ㅎ)하는 한사람의 지인으로서 도하님의 궤적과 성취를 지켜보렵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적미급(知的未及)한 내게 기쁜 자극이 되리이다.

 

***설레임***

2016.02.19 04:59

 

오채환 교수님은 저의 부박한 귀에도 익은 이름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한 황량한 동우님의 끝부분 저는 인정 못합니다

동우님께서 쓴 글을 보면서 저야말로 자주 황량한 저 뻘밭을 날고 있답니다

늘 존경의 마음을 올립니다.

 

***동우***

2016.02.19 05:11

 

하하, 좋게 보아주시니 그저 감사..

그나저나 홍애님도 돌아오시고.. 설레임님도 슬슬 기지개 켜시지요?

책 얘기도 나누면서.

 

 

 

 

-독서 리뷰-

 

[[시인들의 첫사랑]] 2

-정호승. 이윤택. 정끝별. 노혜경-

 

 

<나의 첫키스>

-정호승-

 

***동우***

2016.01.31 09:38

 

느즈막하게 일어난 일요일 아침.

시인들의 첫사랑 이야기, 정호승(1950~ )시인의 '나의 첫키스'를 올립니다.

 

사촌끼리의 결혼, 우리는 근친혼으로 금기이지만 예전 외국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사촌누이나 사촌오라비를 향한 설레이는 감정.

성장하면서 가장 먼저 어울리게 되는 최초의 또래 이성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겁니다. (형제를 빼고서는)

나도 그러하였지요. ㅎ

 

정호승 시인의 사촌 재란이 누나와의 추억.

입술에 닿는 차가운 유리창의 촉각은 입술의 뜨거움으로 덥혀지고도 남았을겁니다.

 

그리고 처음 듣는...

호! 마르크스가 이런 시를 썼다네요.

칼 마르크스가 말입니다.

 

++++ 

<별이 둘

하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가까워지려다

스쳐 지나가 버립니다.

언젠가는 하나가 되자고

빛의 날개를 펴지만

맺어지려고 하는 순간에

둘은 서로를 거부합니다

예니여,

그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언제나 있습니다

가라,

세상의 것들을 꿰뚫고

나의 생각과 슬픔이여

가라,

그대 가슴속으로>

++++

 

으흠, 사랑은 그 무엇도 유치하지 않습니다.

베토벤이 이미자를 흥얼거리더라도.

 

사랑은 연민이고 어쩌면 슬픔입니다.

사랑할 원수가 없어서 슬프다는 정호승 시인.

사랑하는 이들은 모두 눈물의 왕, 어느 곳에든지 설음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이지요.ㅎ

 

붉은 꽃잎들의 눈물.. 첫키스.

 

++++

<첫키스에 대하여>

-정호승-

 

내가 난생 처음으로 바라본 바다였다

희디흰 목덜미를 드러내고 끊임없이 달려오던 삼각파도였다

보지 않으려다 보지 않으려다 기어이 보고 만 수평선이었다

파도를 차고 오르는 갈매기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수평선 너머로 넘어지던 순간의 순간이었다

수평선으로 난 오솔길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난 해당화

그 붉은 꽃잎들의 눈물이었다

++++

 

***설레임***

2016.02.19 04:34

 

아련하게 그리운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글입니다

맺어지지않아 더 그리운 풋사랑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서 가끔씩 설레이게 하는 감칠맛나는 조미료 역활을 합니다 ㅎ

 

***동우***

2016.02.19 04:57

 

하하, 설레임님의 달콤한 첫사랑.

첫사랑은 누구에게나 풋사랑이겠지요.

 

나는 근데 아무리 더듬어 보아도 뚜렷한 첫사랑의 기억은 아리숭합니다.

지금의 내 아내가 첫사랑이 아니었음은 확실합니다만.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내 짝사랑은 있었겠지요만.ㅎ)..

 

내 첫사랑이라.

국민학교때 그 여선생님이었던지, 사촌누이였던지, 윤소아과 2층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던 이웃아이 태희였던지...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어려서부터 그닥 순정적인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오.

다분히 혼돈스러운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었던 듯. ㅎㅎ

 

 

<그녀와 나 사이에 한 편의 시가 태어났는데>

-이윤택-

 

***동우***

2016.02.14 04:35

 

일요일, '시인들의 첫사랑 이야기'에서 '이윤택편'을 카피하여 올립니다.

이윤택(1952~ )

그는 한때 '문화 게릴라'라고 불리면서 장안에 회자(膾炙)되었던, 지금도 연극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전방위적 연극인입니다.

줄기차게 연희단 패거리, 가마골 소극장, 밀양 연극촌등을 이끌면서 무대실험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를 보면 참 대단한 정력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대를 향한 열정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지요.

 

부산사람인 이윤택.

시인으로 등단하여 1980년대 들어서 부산에서 연극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연극의 고향은 언제나 부산이지요)

나도 한때 소극장운동을 한답시고 부산의 굿쟁이들(연극인 卑稱)의 말석에서 껍죽댄 적이 있었는데, 일찌거니 부산의 굿판에서 손을 씻은(ㅎㅎ 중독성 강한 굿판인지라) 나는 한번도 후배였을 이윤택을 만날 기회가 없었지요.

그의 무대를 두어번 보았고 그가 쓴 희곡 서너편 읽었을 뿐입니다. (티브이로 중계되는 무대는 그보다 더 많이 보았을겁니다. 그의 영화도 보았고...)

 

향수랄까.. 이 글에 나오는 그 무렵 부산의 분위기, 광복동을 배회하는 예술애호연하는 가난한 젊음의 분위기 같은 것들이 기억을 들쑤십니다.

본문에도 나오는 광복동 끝자락 충무동 영역에 있었던 음악다방 오아시스는 나의 단골 다방이기도 하였지요.

 

그리고 이윤택처럼 나 역시 다방이나 막걸리집의 여자 앞에서 되도못한 관념의 썰(?)이나 풀어대고 지적 위선의 구라(?)나 늘어 놓았지요.

필경 연애에 비겁한 자의식의 발현이었습니다.

호주머니도 가벼운 주제에 용기마저 빈곤한 명색 사내자식의 도피처가 고작 그런 곳이었을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짓눌려 살아가는 남편을 섬기며 토끼같은 자식새끼듣 키우면서 시정 마누라쟁이로 아둥바둥 살아가는 여자.

여자의 기억 속 남아있던 남자의 썰과 구라가 어느날에는 홀연 시(詩)가 되는가 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그 옛날 되도못한 나의 썰과 구라들도 어쩌면 시였을런지..

그것이 지상에서는 결코 내 삶을 증거하지 못한다하더라도 말입니다. ㅎ

 

큰 날개 펼쳐 창공을 날아 대양을 건너는 신천옹...

보잘것없는 꼬라지로 갑판에 뒹구는.. 날개가 주체스러운... 시인의 존재가 그런 것인가요.

 

++++

<알바트로스>

-보들레르-

 

자주 뱃사람들은 장난삼아

거대한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

바다 위를 스처 지나가는 배를 시름없는

항해의 동행자인 양 뒤쫓는 해조(海鳥)를.

 

갑판 위에 내려놓자, 이 창공의 왕자들

어색하고 창피스러운 몸짓으로

커다란 흰 날개를 노처럼

가련하게도 질질 끄는구나.

 

이 날개 달린 항해자의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

한때 그토록 멋지던 그가 얼마나 가소롭고 추악한가!

어떤 이는 담뱃대로 부리를 들볶고,

어떤 이는 절뚝절뚝, 날던 불구자 흉내낸다!

 

시인도 폭풍 속을 드나들고 사수를 비웃는

이 구름 위의 왕자 같아라.

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

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하네.

++++

 

***mayblue***    

2016.02.14 21:38

 

젊은 날엔 이상하게

어딘가 어둡고 묘한 그늘이 있는 사람이 다 시로 읽혔고 또 끌렸다고 할까요? ㅎㅎ

알바로 음악다방 dj하던 제 첫사랑 연인이 딱 그랬거든요.

 

댓글에 나타난 동우님의 젊은 날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걸요?

 

충분히 그랬을 듯 합니다.

동우님이 시로 읽혔을~~

 

이젠 그 누구에게도 시로 읽히거나

그 누군가가 시로 읽히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는게 쓸쓸하기도 하고

너무 현실적인 메마른 인간이 된게 아닌가 싶어 씁쓸한 기분도 들구요~

 

그러나 여하튼 전 나이들어

인생을 관조할 수 있는 때를 늘 기다려왔던 것 같기도 합니다.

감정놀음에 롤러코스트를 타는 감정에 나약한 자신이 너무 힘들어서요.

 

이번 명절 귀여운 비니미니와 함께 행복한 한때를 즐기셨군요.

퍼주어도 자꾸만 넘쳐나는 샘물같은 사랑을 받는 아이들의 행복이 그려집니다.

자식에 대한 사랑과 손자손녀에 대한 사랑은 또 남다르겠구나 생각합니다.

어서 그런 기쁨 즐거움 누리고 싶은데 아직은 요원하답니다.

 

아, 광복동 충무동 국제시장

아직도 낯선 부산의 구석구석

부산 사람되는 일도 세월이 흘러야 할 듯 합니다.

아직은 아는 곳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풋내기 촌닭입니다.ㅎㅎ

 

***동우***    

2016.02.15 00:20

 

메이블루님.

한시절 그랬었지요, 어딘가 묘하게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남자가 매력있어 보이는.ㅎ

 

비니미니, 그 아이들 덕분에 늙마가 좀 밝아지는 느낌은 확연합니다.

메이블루님에게도 먼 미래가 아니지요.

아드님에게서 손주 볼 즈음이, 아니 따님이 먼저일까?ㅎ

 

풋내기 촌닭.. 하하 차츰 부산 문둥이 되어가시는 메이블루님을 상상합니다.

 

 

<나는 그때 사랑 밖에 있었다, 텅 빈 채>

-정끝별-

 

***동우***  

2016.03.05 04:27

 

주말, '시인의 첫사랑 이야기' 정끝별(1964~  ) 시인 편을 올립니다.

 

<그를 잃었을 때 나는 사랑을 되찾은 것 같은 안도감과 해방감을 느꼈다.>

 

젊어 사랑은 언제나 결핍이거나 과잉입니다.

딱 들어맞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란 세상천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상은 언제나 환상과 이미지와 도취와 흔들림과 반복과 선택의 앞잡이일 뿐입니다.

젊어, 아무도 완성된 사랑을 볼수도 겪을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완성된 사랑 늙어서는 보이는가요.

글쎄요, 내 친구 옥영재는 늙은 시인이 되어 이렇게 읊쪼리더군요.

세월로 겪는 인연의 애환이 꽃의 눈물이 되어 꽃의 눈물이 무르익어 봄을 만든다고.

<그대들 알고 있는가..세상사 인연이 없다면.. 봄이 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늙어 봄은 사랑... 연민이기도 할터입니다. ㅎ

 

나의 봄..

으흠, 더 늙어보렵니다.

 

정끝별 시인도 지천명을 넘은 연배, 그녀 꽃의 눈물도 제법 무르익었으리다.

이 시를 한 친구가 좋아하지요.

 

++++

<밀물>

-정끝별-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 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

 

 

<저주받은 시인과의 한철>

-노혜경-

 

***동우***  

2016.03.06 04:46

 

휴일, 노혜경(1958~ )의 첫사랑편 올립니다.

 

노혜경.

故 노무현 대통령의 열혈기사(熱血騎士)로 더 알려졌을겁니다.

홍보비서관으로 청와대에서도 일하였고 노사모 대표로도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국회의원에도 출마했었을걸요, 떨어졌지만)

 

부산 대형서점에서 개최한 이문열 토론회에서 보았는데 젊었을적에는 상당한 미모였을 것 같았습니다.

부산 사투리 짙은 목소리도 참 고왔었고.

 

그녀는 언제부터 첫사랑 저 무렵의 순진한 범생이를 떠나 투사의 면모가 깃들게 되었을까요.

 

쏟아내는 언어에서 나는 생경함과 불편함을 느끼곤 하였습니다만, 각설하고 한마디만.

이념은 사유를 편협하게 한다는.

 

사랑.

아무리 정신이 어쩌구 생각이 어쩌구 취향이 어쩌구 플라토닉이 어쩌구 교양이 어쩌구 해쌓도, 일단 사랑은 성적인 끌림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옥시토신(Oxytocin)의 충동질이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지요. ㅎ

 

일요일새벽, 어두운 유리창에 빗방울이 소름처럼 맺혀 흐르고 있습니다.

좋은 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