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홍당무 (1,4,3,3,1)

카지모도 2020. 3. 1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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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홍당무>

-쥘 르마르 作-

 

***동우***

2018.05.03. 00:15

 

'쥘 르나르 (jules renard: 1864~1910)'의 '홍당무(Poil de carotte)'

 

텍스트 파일 눈에 띈 이 유명한 성장소설, 어린이 날 즈음하여 시의적절하다는 생각으로 올립니다만.

신데렐라류의 동화가 아니로군요. (나는 처음 읽습니다)

 

1894년에 발표된 소설, 작가 자신의 소년시절 에피소드를 소재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유머스럽지만, 어린 홍당무는 행복한 어린이는 아니로군요.

 

19세기 말 프랑스의 시골마을의 어느 가정.

떠받듦 받는 어린이라는 개념은 언감생심...

첫회부터, 어떤 대목에서는 잔혹동화 같기도 한 어른 소설입니다그려.

 

분량을 보아하니 대략 다섯번 쯤으로 나누게 될듯 합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18.05.04 08:44

 

나는 '홍당무'를 동화로 알고서 어린이 날 즈음하여 올렸던건데 전혀 아니었군요.

유머러스한 구성의 소설이지만, 컨텐츠는 사뭇 '안티 키드(Anti Kid)' 합니다.

쥘 르나르는 감상을 배제한 차가운 눈으로 어린 시절을 회억(回憶)합니다.

그 트라우마를 끄집어 내어 자아분석을 꾀한 것 같군요..

 

친자식을 대하는 저 어머니의 냉혹함.

그에 대하여 무감각한 아버지.

동생을 따돌림하고 학대하는 형과 누나....

매우 비정상적인 가정입니다.

 

홍당무는 사춘기 나이답지 않게 교활하고 징그러운 아이이지만 애정결핍으로 신음하는 저 아이가 가엾습니다.

 

그런데 번역이 여엉 매끄럽지 않아 아쉽군요.

두번을 읽어야 맥락이 이해되는군요.

문맥(文脈)을 다소 고쳐가면서 올립니다.

 

***동우***

2018.05.05 00:08

 

쥘 르나르의 '홍당무'

참 유니크한 소설. 점점 홍당무라는 아이의 캐릭터에 빠져듭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감정모체에 간직하고 있는 내면아이, 나의 그것도 아프게 만져집니다.

 

리뷰는 모두 올리고 나서...

 

***동우***

2018.05.06 04:47

 

우리 홍당무는 제 친어머니에게서 뺨따귀를 얻어맞는군요.

어제 어린이 날이라는데.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하늘에 드리운 무지개에 설레이는 가슴.

쉰 예순에도 그러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고 영국 계관시인은 읇조리는데..

 

저 어린 나이의 홍당무는...

 

***동우***

2018.05.07 23:04

 

홍당무는 르삑 부인이 다리 밑에서 주어다가 키운 의붓 아들이 아닙니다.

자신의 배로 낳은 친자식인데 왜 저토록 미워할까요?

소설로서는 그 까닭을 알수가 없네요.

이 작품은 작가 쥘 르나르의 어머니에 대한 복수극이라는 말도 있더군요. (검색하여보니)

 

어쨌거나 친어머니가 자식을 대하는 저 양상은 현대같으면 가히 아동학대로 입건되어야 할 수준입니다.

 

한밤중 무서움을 무릅쓰고 닭장문을 닫고온 홍당무에게 칭찬은커녕,

<"홍당무야, 이제 밤마다 네가 닭장 문을 닫으러 가거라.">

 

아빠가 사냥해 온 자고새를 죽이는 것도 홍당무 담당, 그 끔찍한 작업을 수행한 홍당무에게 가족들이 하는 말.

<"진작에 뺏을걸." 르삑 부인은 말했다. 

"너무도 지저분하게 죽였어." 형 훼릭스가 말했다. "확실히 딴 때보다 잔인했어.">

 

자면서 코를 좀 고는 아들을 비명이 날만큼 손톱을 세워서 꼬집는 어머니.

<홍당무는 비명을 듣자 르삑 씨가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물었다. "왜 그러니?" "무서운 꿈을 꾸어 놀랐나 봐요!" 르삑 부인이 대답했다.>

 

한밤중 똥을 지린 아들에게 수프에다 그 똥을 섞어 먹이는 어머니. 그것을 눈치 챘으면서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홍당무.

<"에이! 너는 똥을 먹었어. 그것도 제 것을, 간밤에 싼 것을." "그럴 줄 알고 있었어." 홍당무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그들이 기대했던 얼굴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건 예사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예사롭게 대하게 되면, 우스운 것도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눈이 어두운 늙은 하녀를 쫓아내고 싶은 어머니를 도와 냄비를 감추어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여 스스로 나가게 하는 홍당무.

그러나 그런 功에 대한 칭찬은 아예 바라지도 않는 홍당무.

<르삑 부인에게 이런 말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엄마, 내가 그랬어요!" 큰 공이라도 세운 듯 자랑스럽게 일러바치고는 칭찬하며 웃는 얼굴을 기대해 본들 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자칫하면 엉뚱한 꼴을 당할 염려가 있다. 르삑 부인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를 야단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형의 실수로 곡괭이에 맞아 이마에 피가 철철 흐르는 홍당무, 그걸 보고 기절한 형. 식구들은 홍당무의 피 같은건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기절한 형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홍당무는 올지 않았다. 왜냐면 그래 봤자 별수 없다고 모두가 말했기 때문이다. 밤낮 이렇다니까." 르삑 부인이 홍당무에게 말했다. "왜 조심하지 않았니, 이 바보야!">

 

홍당무는 어리광을 부린다는게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함정에 빠뜨려 제 자식을 나쁜 놈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어머니.

<르삑 부인: (오른손을 든다. 홍당무는 얻어 맞기 직전) 네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은 미처 몰랐구나. 거짓말에 또 거짓말을 덧붙이다니. 언제나 그런 식으로 해봐라.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될 테니. 그리고 마지막에는 제 어미를 잡아 먹을 게다. 뺨을 후려갈기는 첫 번째 따귀가 무섭게 홍당무의 얼굴에 떨어졌다.>

<르삑 부인이 말한다. 또 이렇게도 말한다. "나는 어떻게 하면 좋지. 이 아이는 뺨을 아무리 때려도 눈물 한 방울 흘린 적이 없으니 말이야.">

 

아버지는 홍당무를 사랑하지만 그 감정은 형해화되어 있습니다.

홍당무의 예민하고 미묘한 감성은 詩로서 아버지에게 전달되지만, 아버지라는 위인은 詩라는걸 느낄수 없습니다.

<"아빠. 지난번의 편지에 대해서 먼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알아차리지 못하신 것 같은데, 그것은 '시' 입니다.">

 

하늘을 나는 두마리 새를 향하여 발포하여 한마리를 사냥한 홍당무에게 칭찬은 커녕 "왜 두 마리 다 잡지 않았느냐?"고 핀찬이나 주는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역시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이 되었으니 그냥 함께 사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겨져요. 하지만 내가 아빠를 몹시 좋아하고 있는 건 알고 계시지요? 그런데 나는 아빠가 우리 아빠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사랑해 주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는 거예요. 사실 아빠에겐 아버지의 자격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하지만 나는 아빠의 애정을 굉장히 큰 호의로 보고 있어요. 나에게 베풀어야 할 의무가 없는 호의도 아빠가 기분좋게 선심을 베풀어 준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우연이라는 것이 두 사람을 나의 형과 누나로 했을 뿐이지. 그것을 내가 형이나 누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까닭은 없잖아? 또 우리들 세 사람이 한 집안 식구가 됐다해서, 잘못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야. 두 사람 다 그렇게 될 수밖에는 없었던 거지. 그렇게 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형제가 된 데 대해서 고마워 할 필요도 없어. 형, 다만 형에게는 나를 여러 모로 보호해 주는데 대해서, 그리고 누나, 누나에 대해서는 하찮은 일에까지 마음을 써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야.">

 

애정결핍으로 신음하며 몸부림치는 열서넛짜리 소년 홍당무.

<"왜?" 홍당무는 소리 질렀다. 힘껏, 또 주먹으로 유리창을 한 장 더 깨면서, "그 녀석한테는 뽀뽀를 하면서 왜 나한테는 뽀뽀를 안했지?" 그리고는 베인 손에서 흐르는 피를 얼굴에 문지르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말이야, 이렇게 하면 붉은 뺨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가출을 꿈꾸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생각하는 홍당무.

홍당무는 교활하고 징그럽지만 그 내면아이는 고독하고 슬프기 짝이 없는 아이입니다.

제제에게는 또르뚜가 아저씨(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있었고 토토에게는 알프레도 할아버지(시네마 천국)가 있었는데...

 

인간실격(다자이 오사무)의 '오노 요조'의 어린 모습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소설의 종장(終場)을 보아하니 홍당무는 '오노 요조'의 생애처럼 비극적인 것은 아닐듯 하여 마음이 놓입니다만.

 

패밀리즘... 가정...

언제나 '홈 스위트 홈' (비숍의 '즐거운 나의 집')인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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