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천승세 (1,4,3,3,1)

카지모도 2020. 3. 2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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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천승세]] 

<혜자의 눈꽃> <포대령>

 

 

<혜자의 눈꽃>

-천승세 作-

 

***동우***

2015.01.10 04:25

 

낫살 든 감성의 말랑함일꺼나.

예전에 '혜자의 눈꽃'을 읽었을 적에는 좀 심드렁하였더랬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으니 창밖으로 눈덮힌 겨울들판을 무연하게 바라보는 듯, 몽롱한 슬픔으로 아름답습니다.

 

월 이천원 사글세 셋방 판자집의 가난 저편 언덕 숲속에는 화려한 고급 호텔이 늘펀하게 앉아있습니다.

우이동 골짜기 겨울산의 설경.

궁핍의 감각으로도, 시린 아름다움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 크고 맑되 생기가 없는 눈. 그리고 퍼런 힘줄이 드러나도록 깡마른 손목, 치마 끝에 드러난 맨발의 여인.

걸으면서 무시로 오줌을 지리는 혜자의 어머니는 폐병과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어린 혜자가 바지주머니에다 두 손을 찌른채 깡충깡충 눈밭을 뛰며 가노라면 그애의 짧은 무릎께에까지 뿌연 눈가루가 일고 털모자 끝에서 달랑내는 털실방울이 시계추처럼 좌우로 나풀거립니다.

 

혜자는 엄마의 뒤를 바짝바짝 뒤따르면서 엄마가 눈밭에 지린 노란색 꽃술(오줌 자욱)둘레에 시계의 초침처럼 맴돌이하면서 자신의 작은 발자욱으로 꽃잎을 만드는 겁니다.

며느리의 추함과 부끄러움을 감추어 주기 위하여 혜자의 할머니가 시킨 것이지요.

 

사내를 그리워 하는 미친 여자의 본능도 애절하지만, 혜자는 엄마의 처절한 고통의 흔적을 그렇게 앙증맞도록 귀여운 눈꽃으로 장식하는 겁니다.

 

혜자의 눈꽃.

고통과 갈망과 사랑과 연민, 그리고 인간과 삶과 목숨에 대한 존엄함같은게 또한 서려 있는듯도 합니다.

 

천승세(千勝世, 1939~ )는 소설가 故 박화성의 아들이기도 하지요.

 

***계수나무***

2015.01.10 08:07

 

동우님

가슴이 시리다는 느낌

살며 경험은 하였으되 ..

모녀의

노란 꽃 수술 핀 눈꽃

애연하고 슬퍼

눈시울이 ..

솔가지 위 눈꽃 볼때

아프게 기억 될

서러운 글 읽고 갑니다

 

***동우***

2015.01.11 01:45

 

이 소설, 애연하고 슬프게 읽으신 계수나무님.

과연 '혜자의 눈꽃'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계수나무님 공중정원.

백설만건곤 할적에 한번 혜자의 꽃잎 발자욱 찍어보시지요. ㅎ

 

***mayblue***

2015.01.10 21:38

 

혜자..

그 이름처럼 어여쁜 겨울 눈꽃 이야기일까 했는데

애틋한 연민이 깊이 묻어나는

시리도록 슬픈 혜자의 눈꽃이었군요.

한편...

누군가의 추함과 수치를 덮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꽃인 듯 합니다.*

 

동우님 그 새 주말이 다가오고 깊어가는 밤입니다.

 

동백꽃이 아롱아롱 피어있던 부산의 골목어귀

젊음의 활기가 넘쳐나던 광안리 밤의 해변이 생각납니다.

 

따뜻하고 해피한 주말 되시길요

 

***동우***

2015.01.11 01:50

 

혜자의 눈꽃.

이 소설의 아름다움은 혜자와 더물어 혜자 할머니에게도 있는듯 합니다.

인간사 고통과 더러움과 부끄러움을 포용하는 너른 마음..

우이동 골짜기 가득 덮힌 눈밭은 그런 은유가 아닐런지.

 

메이블루님.

광안리는 젊은이들 공간이지만, 나이든 사람들 끼어들 공간도 없지 않답니다.

 

메이블루님도 해피 웨크엔드

 

***송명숙***

2015.01.14 00:48

 

지난주말 한라산 고지대에서만 볼 수 있는 적송지대에서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소나무 눈꽃을 감탄사를 연발하며

핸폰에 주워담기 바빴는데 오늘 이 가슴아린 글을 보면서 사뭇 비교가 됩니다 그냥 잘못한 어린아이마냥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어린시절을 어렵게 보낸 나로서는 어린 혜자의 모습이 안스럽고 그냥 와락 따뜻하게 안아 주고 싶습니다

엄마의 실수를 아름답게 꽃을 만드는 혜자는 그 과정에서 무슨생각을 했을까요?

몰라요 그 소리에 내포되어 있는 감추고 싶은비밀 결국 엄마가 죽은 다음에야 문을 열어 보이는 이 아픈상처는 두고두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것같은데요

가슴이 먹먹 마음이 아리아리 저리는 밤입니다

담에 나도 눈 덮인 산에서 가여운 혜자를 위로하듯 눈꽃을 예쁘게 만들어 볼랍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동우***

2015.01.14 01:28

 

눈꽃.

이 소설을 읽고 혜자를 꼬옥 안아주고 싶은 사람은 모두 천성이 아름다운 사람들...

하나님이 꼬옥 안아주고 싶은.

송명숙님도.

 

 

<포대령>

-천승세 作-

 

황석영 선정 한국명단편 101

천승세(千勝世, 1939~ )의 '포대령'

 

황석영은 '포대령'을 동족상잔의 전쟁 6.25의 상흔(傷痕)의 한 모습으로, 또는 전쟁의 광기(狂氣)가 치유되지 않은채 분단된 한반도를 은유하는 것으로 이 소설을 선정했을런지요.

나라면 천승세의 소설중 '혜자의 눈꽃'을 꼽았을것 같은데.

 

만삭의 아내가 있는 곳(다부동)에 포탄을 퍼부울수 밖에 없었던 그것이 포대령의 트라우마였을런지.

전쟁의 광기(狂氣)에 길들여진 한 인간의 영혼이 좌절할수 밖에 없는 현실.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을 과대망상으로 헤쳐나가는 저 포대령의 감정모체는 일종의 자기기만, 하나의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요?

 

포대령은 필경 기억 속에 고착된 전장(戰場)의 어느 한 지점으로 회귀하여 자신을 내던지고 맙니다.

 

포대령과 하사.

동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연상되기도 합니다만, 이 소설은 인간의 어떤 기질적 비극이라기보다 상황적 비극으로 읽힙니다.

 

단순하고 거친 사나이 포대령.

 

<“가이새끼들! 보라우! 내가 시시하게 죽어 넘어디나 말야! 쫓기구서라므니 밀리구서라므니 해개지구 시시하게 뻗나 보라우! 젊어 요절도 없구 늙어 자연사도 없어! 이 김달봉이에겐 오직 전사만 있을 뿐이야! 하사! 내 말 알가서?” 천만 년 살 것 같던 포대령이 죽었다. 아니, 피가래가 끓던 포대령의 마지막 가쁜 목소리는 끝내 전사(戰死)라고 우겨댔다.

 

김달봉 (金達峰)이라는 이름은 숫제 팽개쳐버리고 그를 안다는 사람들이면 모두 포대령(砲大領)이라 불렀다. 포탄으로 살다가 포탄으로 다져졌고, 끝내 포탄 속의 전사가 아니면 그의 죽음이 없다는 이 해괴한 역설이, 오히려 합당한 귀결이 될 정도로, 과연 그는 생김새부터가 갈데없는 포탄이다. 송충이가 하품하듯, 숱도 많은 눈썹은 눈꼬리를 지나기 바쁘게 관자놀이를 향하여 치켜세웠고, 눈깔사탕처럼 뻥 뚫려버린 크나큰 눈에 늘쌍 일렁이는 섬광, 유독 두꺼운 입술을 숫제 덮어버리고 돋은 무성한 수염 밑으로 아예 귀찮아 생기다 말아버린 목덜미—예의 이런 것들을 조화시키는 전체의 몸뚱이는 일 미터 오십팔이라는 한계 속에서 메주 주물듯 다져져버렸다. 젓가락 같은 뼈대 젖혀놓고 살덩이가 제아무리 비계인들, 체중 칠십 킬로라는 둔중한 장갑(裝甲)이 재건체조를 한답시고 펄쩍펄쩍 뛸 때는, 포구(砲口)를 떠나는 포탄처럼이나 그처럼 날쌜 수가 없다.>

 

그리고, 여리고 슬픈 혜자.

 

<나는 혜자의 어깻죽지를 와락 싸 안았다. 그리고 눈발 속으로 먼 혜자네 집을 허망하게 바라다 볼 뿐이었다. 혜자가 얼굴을 들어 나를 빤히 올려다 봤다. 한동안 그러고 있던 혜자가 나의 팔아름을 빠져나며 시무룩해진 얼굴로 또록또록 말을 이었다. "나 인제 심심하겠다아…… 엄마 대신 인제 아저씨가 오줌 싸 줘요. 내가 꽃 만들어 줄께요…… 우리 엄마는요. 쪼금만 걸어두요. 힘이 없어서 오줌을 막 싼대요…… 그래서 할머니가요. 날 보고요 엄마가 아저씨 집에 갈 때는 꼭 따라다니면서요. 엄마가 오줌 누고 나면 표 안나게요. 눈꽃을 만들랬어요…… 인제 아저씨가 오줌 싸줘요. 네에?" "……" "진짜예요. 내가 눈꽃 만들어 줄 꺼예요…… 거짓말인 줄 아나봐. 피―" 혜자는 몇 번 내 얼굴을 흘끔거리더니 이내 바지 주머니에다 두 손을 찔렀다. 그리고나서 놀이터에 놀러가는 아이처럼 혼연스럽게 깡총대며 집을 향해 갔다. 내 눈 안으로 드는 것들은, 내 사글셋방 쪽에서부터 개울까지 나란히 패인 내 긴 발자국들과 잣새들의 푸득거림에 흩날리는 눈가루, 그리고 그 잣새들을 날려보내고 난 영근 솔잎들의 하들하들 떨어대는 연한 미동들뿐이었다.>

 

혜자도 그렇고, 포대령에게도 동일한 연민이 입니다.

둘 다 인간적 가긍(可矜)함에 마음이 아릿합니다.

 

간절한 몸짓으로 하사를 향한 동감의 간구와 저 애절한 하소의 포대령의 포즈를 보십시오.

포대령은 광포한 광인이 아니라 버림받은 강아지입니다.

불쌍한 눈으로 주인을 올려다 보는.

 

'현실적응 불능'이라는 자기인식을 한사코 외면하고 도피하려 합니다.

포성이 귀를 울리고 자욱한 포연으로 화약냄새 진동하는 그곳으로.

그 전장(戰場)은 포대령이 도망가 숨는 방어기제인 것입니다.

 

하사의 탈영으로 말미암아 단절의 절망감에 대한 자기인식은 막다른 골목에 이릅니다.

하사에게마저 버림받으면(현실인식의 강요) 갈 곳이 없는 포대령, 이제 절망과 정면 대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기만이면 어떻습니까?

고착된 기억 속 현장, 포연 자욱한 전장에서 그는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입니다.

 

<나는 포대령의 손을 잡고 뜨겁게 절규했다. “연대장님! 분명, 분명 전사하셨습니다! 안심하십쇼!”>

 

혜자를 애틋하게 연민하는 '나'와 포대령을 눈물겹게 연민하는 '나'.

두 사람 모두 참 순하고 따뜻한 사람들입니다.

포대령은 동키호테가 아니었고 하사는 산초 판사가 아니었습니다.

동키호테의 슬픔과 포대령의 슬픔은 같지 아니합니다.

 

체홉의 '우수'

요나의 슬픔입니다,

 

<"그렇다, 얘야. 꾸지마 요느이치는 이 세상에 없다…… 먼 곳으로 떠나갔어. 아무 산 보람도 없이 죽고 말았다…… 자, 네게 새끼 말이 있고, 넌 그 새끼 말의 엄마라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그 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 버렸단 말이다…… 그런데도 넌 슬프지 않니?" 말은 먹이를 씹으며, 귀를 기울이기도 하고, 주인의 손에 입김을 불기도 한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기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나보다 7~8 년 연배가 앞선 직장 선배가 있었습니다.

나랑 술마실적 술에 취하면 끊임없이 혼자서 무언가 중얼중얼합니다.

상대방이 듣던지 말던지 아랑곳 없지요.

눈을 빛내면서 때로 흡족한 웃음을 입가에 흘리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자랑하고 싶은, 고착된 어느 지점의 기억 속의 얘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는 뒤처진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열등감을 갖고 있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명문학교 친한 동창들에 대한 자랑이 요란스러운 사람이었는데, 그의 단짝 친구들은 모두 대단하게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한물간 인사들이지만 5,6공때는 삐까번쩍하였던, 그를 물적 인적으로 뒤를 보아주었던 유명인들, 실제로 나도 여럿 목격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중언부언하는 내용들은 죄 그들과 어울렸던 추억담들입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뻔한 얘기들.

나는 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탁 맞은 편에서 나는 신문을 보던가 책을 보던가 하면서 가끔 고개를 주억거려주면 그만입니다.

나는 나대로 읽거리 읽으면서 술을 마시고, 그는 그대로 끊임없이 중언부언하는 주탁의 광경.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을겁니다.

남이 보면 참 우스웠을겁니다만, 얘기를 들어주는 나였기 때문에 그는 나와 술마시기를 그렇게 좋아하였을겁니다.

나는 그 때, 그가 참 슬펐습니다.

소식 끊고 산지 몇 년째,

포대령을 읽으니 이덕찬씨 그가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