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모파상 3 (1,4,3,3,1)

카지모도 2020. 3. 23.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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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모파상]]

<승마> <여행중에> <미친 여자>

 

 

<승마>

-모파상 作-

 

***동우***  

2014.08.20 05:05

 

여자의 허영.

남자의 허세.

여자의 허영, 모파상의 '목걸이'

르와젤 부인의 아름다운 목에 드리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빌린 것이었다.

그날 밤의 파티, 그녀는 행복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목걸이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값 3만4천프랑을 갚느라 궁핍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10년 동안 그녀는 말할수 없이 불행하였다.

그러나 그 목걸이는 고작 5백프랑짜리 가짜였던 것이다.

남자의 허세, 모파상의 '승마'

<"속보 훈련이 된 거친 말이야. 처음에는 나도 약간 흔들려서 떨어질 뻔했지.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 것을 당신도 보았겠지. 이놈이 주인을 알아본 거야. 이젠 꼼짝하지 못할걸.">

샹젤리제, 개선문, 콩코르드광장, 저 멀리 황금빛 수증기 속에 서있는 오벨리스크..

남자의 슬픈 허세는 달린다.

어떤 거리의 애환.

이제 막 운전교습을 마친 초보운전자.

노련한 드라이버마냥 옆자리 여자친구에게 능숙한 운전솜씨 뽐내면서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열린 차창으로 부딪쳐오는 감미로운 대기, 새차의 냄새에 섞인 여자의 향수냄새, 카오디오로 쿵작이는 댄스뮤직..

그런데 아뿔사, 정지신호중 횡단보도 저속으로 진입하다가 어떤 청년을 슬쩍 스치며 부딪쳤다.

마침 그 청년은 교통사고 엄살보상의 경험이 있는 게으름뱅이 놈팽이였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 청년은 뒷목을 잡으며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진다.

사람들이 둘러싼다.

보험도 없는 차...

이를 어쩌나.

똑 그 격이로구나.

 

***eunbee***  

2014.08.20 06:15

 

허세는 부렸지만 순진스런 헥토르,

모처럼의 호사스런 나들이를 앞두고 들뜬 천진한 아이들.

어쩌다 하필이면 못된 시몽부인을 다치게 해서..

동우님이 곁들인 초보운전자의 허세도 예기치 못한 덫에 걸리고..

갑자기 이사도라 덩컨의 죽음이 떠오르는 건 어인 연유? 연상인지요.

내일 파리 남서쪽 앙굴렘으로 내려가(테제베로 3시간) 그곳부터 차를 렌트해서 정처없이 다니다 올거예요.

3박4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오랜만에 온 가족이 가게되니

즐거운 여행이 기대된답니다.

다녀 올게요.^^

 

***동우***  

2014.08.21 07:13

 

차가 쌩쌩 달리는 길에는 언제나 운(運)이라는 놈이 도사리고 있는데, 서툰 드라이버에게는 더욱.

운전솜씨도 그러려니와 운전관록 (대인적 처세같은..) 이라는 것도 무시하지 못할듯..

특히 우리나라, 야만적 교통문화...

은비님.

앙굴렘의 렌트카, 누가 운전하든 안전운전, 조심운전...

어제, 라스코의 동굴벽화는 보셨나요?

 

***eunbee***  

2014.08.23 06:32

 

산골짝에서 대도시로 나왔더니 인터넷이..ㅎ

오늘도 피레네 자락을 헤매다가 저녁 무렵에 Perigueux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마을이 있는

도시로 왔어요.

라스코 동굴의 벽화는 감동스러웠답니다.

이제 내일 밤에는 파리에 도착해서 우리가 떠나올 때 삐쳐있던 까비를 안아줄 수 있을거예요.ㅎ

 

***동우***  

2014.08.24 05:08

 

앙굴렘 기차역의 커피는 맛있었어요?

은비님, 지금쯤 까비와 해후하셨을라나...

 

 

<여행중에>

-모파상 作-

 

***동우***  

2014.08.21 07:04

 

느닷없이 맞닥뜨린 상황.

곤경에 빠진 낯선 남자, 여자는 그가 악한(惡漢)이 아님을 한 눈에 간파합니다.

뒤따르는 호의, 여자는 자신의 하인으로 꾸며 남자의 목숨을 구해줍니다.

이름도 사연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생명의 은인.

남자는 구원받은 개(?)처럼 맹목적인 헌신으로, 죽도록 고마워하고 넘치는 존경심으로 여자를 찬양합니다.

그림자처럼 여자의 주위를 떠돕니다.

생명을 바쳐서라도 여자에게 보은할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한마디 말도 나눌수는 없습니다.

여자는 그 침묵의 사랑을 안고 죽습니다.

<그런 존경심과 그런 끈기로, 그런 이상한 약속으로, 무슨 짓이라도 하려는 그 헌신으로 그렇게 사랑받고 있는 그녀가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미치도록 찬양받는 여인의 고집으로 해서, 그녀는 그를 받아들이고 그의 이름을 알고 그와 이야기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놀랍고 고통스러운 것, 전혀 서로 알지 못하는 그 두 사람의 말없는 사랑....

<한 여인이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두 사람은 선생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머리가 돈 사람들이 아녜요. 그들은."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많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unbee***  

2014.08.27 16:06

 

일찌기 들어보지 못한, 상상해 보지도 못한 사랑이야기를 모파상은 내게 들려주었네요.

아니, 동우님이 내게 들려준 것이네요.

천지에 널려있어도 이렇게 가져다 주지 않으면 나는 못 듣게 되는 이야기니까요.ㅎ

저 부인과 남자의 사랑이 내 마음에 스밉니다. 그리고 부인의 현명하달까 멋스럽달까 지혜롭달까한 사랑에 감격합니다.

사랑에도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 것. 나도 눈물흘리던 '한 여인'의 심정입니다.

이 아침이 흐립니다. 그러나 색바래가는 체리나무가지엔 연두빛 새가 날아와

나무가지를 흔들고 있습니다. 봄에 부리로 조아대던 체리꽃대신 한참이나 누런빛으로 변한 잎들을 쪼고 있습니다.

어제밤에 읽은 어제의 포스팅에 올려진 5월의 노르망디 에뜨르타 사진을 보고 생각난 글이 있어 동우님께 보여드리고자합니다.

그때 함께 여행을 했던 일행중 한 분이 글을 쓰셔서 내게 준 것이지요.

불문학을 하신 분이세요. 내가 읽고 은비엄마에게 읽어보라한 A4용지 4페이지 분량의 글입니다.

 

***동우***  

2014.08.29 04:41

 

"색바래가는 체리나무가지엔 연두빛 새가 날아와 나무가지를 흔들고 있습니다. 봄에 부리로 조아대던 체리꽃대신 한참이나 누런빛으로 변한 잎들을 쪼고 있습니다."

이제 체리꽃 대신 연둣빛 새는 누런 잎을 쪼아대는군요.

은비님의 뼤어난 묘사로 서쪽 나라의 이른 가을 그림이 눈 앞에 떠오릅니다.

더불어, 귀국하실때가 다가와서 그런지 저무는 여름 은비님의 마음빛갈도 아스라히 전해져 옵니다.ㅎ

미스 하리에트.

노르망디의 풍경을 접한 사람이라면 그녀의 어떤 감수성을 보다 짙게 느껴질듯 싶습니다.

 

***eunbee***  

2014.08.27 16:27

 

[샤토브리앙을 찾아서]

-박 창 화-

검수레한 돌덩이 도시 생말로를 떠난다. 그랑베의 샤토브리앙 무덤을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한다.

해물모듬요리와 가자미구이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결과다. 마음이 급해 도시전체를 철옹성으로 에워싼 성벽에 잰 걸음으로 오른다. 사진 몇 장 찍고는 먼발치서 그랑베를 바라본다. 어린 시벌 샤토브리앙이 누나 뤼실과 함께 뛰놀던 해변이 넓게 펼쳐지고, 갯벌을 걷거나 일광욕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영국 해적선이 그리도 많이 좌초한 암초들이 여기저기 시커멓게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방이 건축한 난공불락의 섬 위의 성체도 눈에 들어오고, 파도가 밀려오면 바닷말이 걸릴 성벽을 따라 심어둔 목책도 그림자를 늘어뜨리고 있다. 샤토브리앙이 청소년 시절을 보낸 콩부르란 지명의 표지판이 눈에 띈다. 사 년간 중학교를 다닌 몽생미쉘 어귀의 돌(Dol)드 브르타뉴란 지명도 지나쳤다.돌은 가는날이 장날이라 시골시장을 구경했다. 거무수레한 화강암으로 지은 거대한 돌의 성당도 기억이 생생하다. 생말로 가까이 중세도시로 시장터 가게들이 아기자기하니 고풍스러운 디낭도 볼만하다.

처음 생말로에 왔을 때는 밤이었다. 성벽까지 물이 들어차 있었다. 형태가 잘 드러나지 않아도 견고하단 걸 단박에 알아보고도 남았다. 해적들이 지레 겁에 질려 성벽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을 성벽을 거닐며 온통 검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견고한 방파제인 성벽을 타고 금세 파도가 넘어올 기세였다. 이튿날 물이 빠진 시간에 갯벌이 된 바다를 걸어 그랑베로 갔다.지나가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 들려오는 대서양을 향해 십자가 꽂힌 무덤은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다 아는 생말로 출신의 위대한 작가 샤토브리앙이 그 주인공, 그가 어느정도 대단한 사람이냐고. 그 보다 유명세로 치면 한참 위인 빅토르 위고가 어린 시절 "샤토브리앙 아니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 고 떠받들던 이가 바로 그다. 유학 초기에 동문 몇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다. 그때 우리들의 문학과 학문을 향한 신선한 열정은 어디로 갔을까?!

-계속-

 

 

<미친 여자>

-모파상 作-

 

***동우***  

2014.08.22 04:36

 

불과 한달 새에 아버지와 남편과 아이를 잃는 불행. (독자는 그 원인을 몰라..)

슬픔의 벼락.. 그 충격으로 격렬한 발작을 일으키다가 정신착란의 여인은 스스로 멀쩡한 육신을 침대에 묶어 두기로 고집합니다.

그 절망적인 영혼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서 그러는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슬픈 상태에 고착된 모종의 이상심리..

어쨌거나 15년 동안 그렇게 침대에 갇힌채 움직이지 않는 미친 여자.

점령군 프러시아 장교는 멀쩡한 몸으로 누워 꼼짝않는 여인에게 자존심이 상합니다.

'어디 당신이 끝까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가 보자' 는 생각으로 여인이 누워있는 매트를 그대로 들고 숲에다 내다 버립니다.

여인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장교는 물론 숲속에 버림받은 여인이 매트에서 일어나 숲 밖 어딘가로 갔겠거니 하고 생각하였겠지요.

소설속 화자(話者)도 프러시아군이 미친 여자를 어딘가로 데려간 것으로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여인은 매트에 누운채 꼼짝않고 숲 속에서 죽은 것입니다.

무섭고 춥고 황량한 그 숲속으로부터 얼마든지 걸어 나갈수 있었을텐데.

모파상은 이 소설에서 전쟁의 잔인성을 말하고 싶었을까마는, 나는 여인의 저 이상심리가 자꾸 마음에 밟힙니다.

슬픈 해골..

여인의 영혼은 슬픔의 바다에 잠긴채 침대에 고착된 그 순간 이미 죽어있었을거라는.

 

***eunbee***  

2014.08.27 16:50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모른다. 더구나 그 사람의 슬픔을 누가 알 수 있으랴.

15년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 과연 미쳐서 일까? 하기사 슬픔에 미친것도 미친것이긴 하지.

가족의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슬픔이었으면.... 얼마나 단단한 끈으로 묶여진 가족애였으면 자기를 사랑하고자하는 마음 한오라기 없었던걸까.

집착이란 그 정도가 크던 작던 무서운 것이구나.

프러시아 장교의 알량한 자존심 또한 미친짓이다.ㅎㅎㅎ

 

***동우***  

2014.08.29 04:54

 

미친여자.

슬픔의 바다에 잠겨서 헤어나오지 못할 뿐이지, 은비님 말씀처럼 저 여자는 별로 미쳐 보이지 않아요.

모파상은 전쟁에 오불관언 자신의 죽음을 맞는 저 여자를 통하여 미친 전쟁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요만.

은비님도 기억하실텐데, 종전후무렵 어린시절 길거리에서 미친 여자를 만나는건 흔하였지요.

미친 남자는 본적이 없는것 같은데.

전에도 얘기했지만 전쟁은 사랑하는 것들을 잃은 여자만 미치게 하였던가 봅니다.

남자란 단순한 동물은 그저 전쟁통에 죽던지 잊어버리던지 하면 그만이었지만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날수 없어 미칠수 밖에 없는 여자....

여자는 슬픈 짐승입니다그려. ㅎ

 

***eunbee***  

2014.08.27 17:12

 

[샤토브리앙을 찾아서] 2

-박 창 화-

온통 거무티티한 화강암으로 지어진 성체도시 생말로를 보고 받은 인상은 너무도 강렬해서 아직도 감흥이 새롭다.

물론 지금의 구시가지는 이차대전 뒤 많이 복원한 모습이다. 아무리 대단한 광경이라도 되풀이해서 보면 감동은 줄어들기 마련. 그래서 여행 떠나기 전 안 가본 곳을 상상으로 그려보는 풍경이 훨씬 풍요롭고 아름답다!

그야말로 네르발의 "신기한 지리책"이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쳐진 해적의 본거지 생말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실망한 곳은 하이델베르그다. 머리속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비춰주던 마술거울은 현장에서 하나둘씩 금이 가버렸다. 생각보다 나았던 곳은 스트라스부르다. 그렇지만 나한테 생말로를 떠올리게 하는 건 바로 그랑베의 주인 샤토브리앙의 작품이다. 그 멀리 있는 그랑베를 두 번 가보았는데도, "늑대계곡" 바로 가까이 살면서 육 년이 지나도록

나폴레옹 시절 한때 기거했던 그집 방문을 아직도 미루고 있다.

몰락한 귀족출신의 후예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 말수 적고 무뚝뚝한 그의 아버지가 전쟁시는 해적으로 평화시는 노예무역이나 대구잡이 어부로 한 재산 모아 백작 작위와 함께 콩부르성을 사들인다. 미신적인 어머니는 약골이나 쾌활하고 교양 풍부한 인물이다. 청소년기를 고향에서 보낸 샤토브리앙은 열일곱에 군인으로 파리로 올라온다. 그 뒤 당대 사교계를 주름잡던 최고의 미녀 레카미에 부인을 만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몇 십 년 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를테면 단테의 뮤즈 베아트리체다. 루브르의 신고전주의 전시실에서 '나폴레옹 황제대관식' 마즌편에 걸려 있는 다비드의 미완성 걸작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샤토브리앙의 영원한 여자친구다.

생말로의 샤토브리앙 광장 한켠에 샤토브리앙 이름이 붙은 호텔이 있다. 물론 생가건물은 아니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뒤 커피를 마신 곳이 이 호텔 카페다. 참석한 어느 누구도 샤토브리앙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라 굳이 내가 이쪽으로 유도한 까닭을 모를 터다. 작가로 보단 샤토브리앙 안심스테이크로 더 친숙한 이름이었을테니까.

맨 처음 왔을 때 이 건물을 방문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해적박물관처럼 꾸며놓았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다.

생말로를 떠나 디낭을 구경하고 생말로 다음 거처로 태평한 청소년기를 보낸 콩부르를 방문했다. 너무 늦게 도착해서 콩부르성 내부는 방문하지 못했다. 그 다음 가족 여행 때도 디낭을 거쳐 콩부르를 지나쳤지만 역시 성 안으로 들어 가지 못했다. 개방이 안 되는 한겨울에 가서 그랬지 싶다.

-계속-

 

***동우***  

2014.08.29 05:09

 

샤토브리앙.

불문학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면 일반에게는 익지 않은 이름이지만, 일찌기 그의 이름은 귀에 익습니다.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서문문고에서 발행한 보들레르의 '나심(裸心)'을 통하여.

‘나심’은 보들레르의 아포리즘을 모은 책입니다.

낡은 책을 펼쳐 샤토브리앙이 등장하는 페이지를 찾아봅니다만, 잘 찾아지지 않네요.

'스틸'이라는 항목.

"영원한 음조(音調), 영원하고도 코스모폴리트한 스틸. 샤토브리앙, 알폰스 랏브, 에드가 뽀오"

보들레르, 위고가 첫손가락 꼽는다는 샤토브리앙.

'이문열의 세계단편 산책'에서 업어와 전에 포스팅한 그의 소설 한편있습니다 ('르네') .

샤토브리앙 소설은 자주 접할수 없는데 그나마 귀한 소설이었군요.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불문학을 하신 위 선생님의 글 계속 들려주세요, 은비님.

 

***eunbee***  

2014.08.30 17:01

 

[샤토브리앙을 찾아서]

-박 창 화-

[르네]에 나오는 번민하는 고독한 청소년기의 무대가 된 콩부르 연못의 부들이나 날아가는 철새를 보며 먼곳을

떠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청년시절의 불안과 고독, 멜랑콜리의 모호한 감정 상태-세기병-를 잘 묘사한 [르네]는 바로 낭만주의 전주곡이다. 특히 속내 얘기를 나누며 동무처럼 자란 네 살 위 누나 뤼실과는 관계가 근친상간이라 할 만큼 묘하다. 정작 아메리카 여행에서 돌아와 1792년에 결혼한 셀레스트는 줄곧 건전한 친구 또는 현명한 조언자로만 남는다. 샤토브리앙은 결혼 직후 집을 떠나 십 년이 지나서야 셀레스트 앞에 다시 나타난다. 십 년 지중해를 헤맨 율리우스처럼 샤토브리앙이 밖을 떠돌동안 셀레스트는 뤼실과 함께 고향의 성을 지킨다. 그 사이 샤토브리앙은 여러 명의 여인들과 연애를 한다. 그의 두 누나 쥘리와 뤼실이 함쳐져 [르네]에서 아멜리라는 인물로 등장한다. 처음 군인으로 사회에 발을 내딛었을 때 샤토브리앙은 휴가를 내어 누나들의 치맛폭에 싸여 빈둥거리며 지낸다. 그 한량도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는 비껴가지 못한다.

프랑스 대혁명기를 사는 청년한데서 뭐라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불안과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정열은 과연 어디서 오는 걸까. 귀족이 자신이 발붙일 터전이 사라지면서 느끼는 위기의식일까, 아니면 영혼을 달래주던 카톨릭 종교의 효력이 떨어져서 일까. 샤토브리앙은 사랑의 감정도 먹고 살 게 있어야 생기는지라 사랑은 할일 없는 유한계층이나하는 거라고 본다. 중세의 영주와 기사에 뿌리를 둔 귀족계층은 왕권이 강화되면서 점점 자신의 자리가 쪼그라든다. 극단적으로 절대왕정이 들어서자 귀족들은 부르주아에 밀리기 시작하여 허수아비 같은 존재가 돼버린다. 좋은 자리가 부르주아한테 다 돌아갔으니.... 중세가 막을 내리며 귀족들은 이미 떠돌이 기사가 되어 있었다.가리늦게 기사가 돼 보겠다고 나선 돈키호테라는 방랑기사를 잘 알고 있다. 샤토브리앙도 [파리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정](1811)에서 "19세기에 중세의 성지순례자로 뒤늦게 동방여행을 떠난다."고 밝힌다.

귀족들의 영지는 쪼그라들거나 빼앗겼고, 중세의 화려한 십자군 원정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가진 재산이 없는 귀족은 가문의 빛바랜 문장 하나로만 버틸 수는 없는 일, 더욱이 자신들의 신분이라도 보장하던 왕이 사라졌을 때 귀족들의 감정은 과연 어땠을까. 아무런 방패막이가 없어지고 경제력도 없이 방랑하는 기사로 전락한 심정은 싸워보기 전에 패배를 인정하는 검투사 꼴이다. 사회진출의 기회가 원천봉쇄되고 탈출구가 없는 막막한 젊은이는 가상의 도피처라도 찾아야한다. 그게 여인이든 자연이든 여행이든 암울한 현실에서 헤어날 비상구가 필요하다.

멜랑콜리와 모호한 열정에 빠져 번민하는 상태, 이런 걸 두고 세기병이라고 한다. 비단 프랑스 대혁명 뒤에만 나타나는 특수현상은 아닐테다.

 

***eunbee***    

2014.08.30 17:25

 

샤토브리앙의 작품에서 시각적 체험이 과거를 되살리는 무의식적 기억은 촉각이나 미각을 매개로 과거를 떠올리는 푸루스트식 무의식적 기억과 흡사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커피에 적셔 마들렌을 먹자 지난 시절이 마술처럼 떠오른다. 일차대전이 한창일 때 오랜만에 옛사교계를 다시 찾은 댄디 마르셀은 그집 마당의 울퉁불퉁한 포석 때문에 약간 기우뚱하자 마술램프 켜지듯 과거가 되살아온다. 샤토브리앙의 무의식적 기억은 특히 시공간을 초월하여 연상망을 만든다. 콩부르에서 떼지어 날아가는 철새는 먼 아메리카를 떠오르게 한다. 아메리카의 원시림은 콩부르를 떠올리게 한다. [브라질 여행기]에서 장 드 레리(JEAN DE LERY)는 마니옼가는 냄새를 통해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어 프랑스에서 그 먼 붉은나무란 뚯의 브라질로 곧바로 옮겨간다. 카니발의 밤 해먹에 누워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는데 인디언 친구가 불에 그을린 사람의 팔 하나를 들고와 먹어보라고 들이민다. 네르발은 생제르맹의 카페에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하는 젊은이를 보고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전장터에서 아내를 잃고 혼자 살아돌아온 자신의 아비가 아내를 그리며 기타를 치며 [사랑의 기쁨]을 읊조리던 모습을 떠올린다. 돌도 지나지 않은 아들을 버리고 간 네르발의 엄마는 나폴레옹 군대의 군의관인 남편과 합류했지만 폴란드 땅에서 젊은 나이에 열병으로 죽는다. 이렇게 감각을 통한 기억은 시공간의 벽을 허물며 과거를 현재로 마술처럼 되살린다.

샤토브리앙은 카톨릭 지상주의자에 정통왕당파이다. 루소의 추종자인 그는 신을 믿지 않고 귀족의 특권을 주장하는 중세 봉건적 사고를 가지나 독재 절대왕정에는 반대한다. 오히려 미국의 새민주주의 사회에 공감한다.샤토브리앙는 프랑스 대혁명 때 일 년 동안 북아메리카 여행, 여행에서 돌아와 결혼 그리고 콩데공이 이끄는 왕당파 군대에 들어가 부상을 당해 군인생활을 마감한다. 프랑스 대혁명 때 그의 어머니와 두 누나가 체포당한다. 1794년에는 그의 유일한 형이 부인과 처가족 몇 명과 함께 단두대에 처형당한다.

샤토브리앙은 1793년부터 칠 년 동안 영국에 망명한다. 프랑스어 개인교습과 번역으로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며 어렵게 보낸다. 곤궁한 망명시절에도 그는 문한적 열망에 불타 끊임없이 글을 쓴다. 이것이 나중에 [기독교의 정수]가 되는 원고다. 이 책의 일부로 포함된 [아탈라]와 [르네]가 먼저 따로 출판하면서 그는 그야말로 혜성같이 문단에 데뷔한다. 오늘날로 치자면 떠오르는 대중스타가 된다. 나폴레옹 집권 초기엔 그한테 발탁되어 외교사절로 등용된다. 그 뒤 마지막 콩데가문의 적자 앙겡 공작을 살해한 나폴레옹에 맞서면서 마담 드 스탈과 함께 반나폴레옹파가 된다. 나폴레옹의 미움을 사 둘 다 파리에서 거주 못하고 파리에서 시오리 이상 떨어진 곳으로 쫒겨난다. 왕정이 되돌아 오자 그는 정계로 진출하여 외교관으로 오래 활동한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줄기차게 부르짖는다. 1830년 칠월혁명으로 샤를10세가 물러나고 부르봉의 방계 루이필립 옹립을 결사반대하고는 정계를 떠난다. 어떻게 보면 샤토브리앙은 부르봉의 샤를10세 가족보다 훨씬 더한 골수 급진왕당파이다.

 

***eunbee***    

2014.08.30 17:44

 

말년에 샤토브리앙은 최고의 걸작 [무덤 저편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 집필에 몰두한다. 원래 죽은 지 오십 년 지나 출판할 셈이었지만 살았을 때 이미 일부가 발표된다. 판매부수를 늘이기 위한 그럴듯한 광고 전략일 지도 모른다. 굳이 그는 서문에서 경제 사정 때문에 일부를 미리 출판한다는 핑계를 앞세운다.

샤토브리앙의 이미지는 19세기 불문학교과서에 실린 살짝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바람결에 휘날리는 멜랑콜리한 초상이 낭만주의의 선구자 답게 번민하고 우수에 찬 모습으로 뇌리에 생생하게 박혀있다. 지로데의 1808년 초상으로 생말로의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분명 이상화된 이미지일 테다.

루브르의 신고전주의 전시실에는 역시 지로데가 그린 [아탈라의 매장](1808)이 걸려 있다. 암굴 같은 곳에서 인디언 칵타스가 슬픔에 찬 얼굴로 아탈라의 다리를 부여잡고 선교사 오브리 신부가 숙연하게 어깨를 부축하여 축 늘어진 아탈라의 시신을 구덩이로 내리려는 참이다. 무대장치만 좀 바꾸었을 뿐 종교화에서 "예수의 매장"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국적인 배경에 기독교적인 주제 그리고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배합되어 낭만주의를 예고한다.

지금 전세버스를 타고 루아르의 고성지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앙부아즈, 프랑스 르네상스가 꽃피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죽기 전 삼 년 남짓 살던 곳으로 간다.

-끝-

 

***동우***    

2014.08.31 06:13

 

어제 '르네'를 다시 읽었습니다.

독서라는게 그래요, 은비님.

아무런 전제되는 생각없이 읽는 것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읽는 맛의 차이.

이런 것도 일종의 지적 허영이 작용하는 것일런지.

친남매, 아멜리와 르네의 사랑.

육친의 정을 초월한, 어떤 관능까지도 초월한.. 관념적인 사랑의 경지.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 떠올랐어요.

사촌남매인 앙드레 지드와 마들렌 부부...(지난 시절, 서구나 일본에서도 사촌끼리의 결혼은 금기가 아니었지요)

그 샤토브리앙의 '르네'가 낭만주의의 정화라 일컬어지는 소설이었군요.

샤토브리앙.

루소의 추종자이면서 정통왕당파.

이문열은 그를 '앙시엥 레짐의 찬연한 노을'이라고 찬(讚)하더군요.

화려한 문장의 아름다움, 이문열은 그로부터 문장수업을 하였답니다.

샤토브리앙, 그에 대하여 깊이를 더하게 한 귀한 글.

감사합니다.

 

***eunbee***    

2014.08.30 17:54

 

읽노라면, 우왕좌왕이 빈번하지요?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많아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셨네요.

읽다보면, 빼먹고 타이핑 했나?하는 느낌이 들 적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빠짐없이 문장 고 대로 타이핑 했어욤.

함께한 여행 후에 이런 글을 써서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좋아요. 그렇죠? ㅎ

이 글을 써서 내게 건내준(피스에 꽂아서 어여쁘게 포장해서 건내주며 수줍어 하던 그의 미소가 떠오르네요)

이분은 새날 아빠, 바로 염명순 시인님의 낭군님이세요.

서울사대에서 불어교육과를 나와 이곳에서 박사학위까지 하셨다네요. 시인도 박사학위 소지자이고.ㅎㅎㅎ

함께 여행하던 내내 내 옆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도 들려주었고,

에뜨르타 사진 찍을 때에도 그 언덕을 함께 올라가 주었어요.

그래서 이 글을 이곳에 옮길 생각이 떠올랐을 거예요.

두 부부가 나를 참 좋아해줘요. 시인은 일본차 선물도 해주고, 집에 초대도 해주고...ㅎ

함께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동우님.

 

***동우***  

2014.08.31 06:22

 

염명순 시인님의 부군.

아, 그랬군요.

내 모자란 안목에도 염명순 시인의 '시'의 수준은 높습니다.

부부의 프랑스 정착에는 아무래도 불문학을 공부하신 부군께서 모종의 계기가 있었을거라 짐작합니다.

그분들과 은비님의 정 넘치는 교류.

그리고 은비님과 나의 정 넘치는 교류. ㅎ

그것이 은비님께서 일일이 타이핑하신 정성....

고맙습니다.

딸 부부 문제, 내게 무거움 한웅크큼 들어앉아 요즘 마음 어지럽고 우울하여...

하하, 사람 사는게 무어 그런건가 봅니다.

 

***eunbee***  

2014.08.31 20:41

 

어제 나도'르네' 매매읽고, 아랫글 이문열님의 글도 읽었어요.

동우님이 쓰신 독후감만 읽고, 읽지 않고 그냥 지나갔던 '르네'.

은비엄마와 자주 이야기 하지요. 염명순시인의 시는 참으로 좋다고.

벌써 20년 가까운 지난세월 젊었을 적에 썼을 그 시들이 어쩜 그리도 무르익은 감성이냐고.

따님의 우울한 일들, 사는 과정에서 숱하게 생겨나는 일시적인 문제거리들...

하하 동우님, 나라고 겪지 않았을까요?

대부분의 젊음들, 그런 과정이 있게 마련이지요. 무언지 모르겠지만 좋게 마무리 짓게 되리라 믿어요.

오늘 오전, 성당에서 종소리 울려올 적마다 기도하게 되었어요. 나도 딸들의 엄마이니까, 저절로.

그래도 늘 건강하셔야 해요. 동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