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모파상 8 (1,4,3,3,1)

카지모도 2020. 3. 29.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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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모파상]]

<어떤 미망인> <쓸모없는 아름다움>

 

 

<어떤 미망인>

-모파상 作-

 

***동우***

2015.06.17. 05:35

 

모파상의 '어떤 미망인'

"왜 12살 짜리 마음은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소년은 마음 속으로 부르짖었을 것이다.

12살 적, 나도 조숙하였다.

아마 나도 내 사랑에 허덕였을껄. ㅎ

 

'사랑에 목숨을 거는 상테즈 가문의 사람들'

가족력(家族歷)에서 소년도 예외가 아니다. 

12설 짜리가 사랑을 고백한 17살짜리 누나.

 

<‘그대가 나를 버렸어. 내가 한 말의 뜻을 잘 알면서. 그대가 나에게 명령한 것은 나의 죽음이야. 내 시신이 그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발견 되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지난해 내가 그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바로 그 자리에 와서 하늘을 쳐다 봐.‘>

 

누나가 다른 남자와 약혼하자 소년은 나무에 목을 매어 죽어버렸다.

 

<나는 감히 그의 시신을 다시 볼 수가 없었어요. 대신 그의 금발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달라고 했어요. 이것이...... 이것이..... 바로 그것이에요.>

 

소년의 금발(金髮)로 만든 반지를 끼고서 열두살 먹은 아이의 미망인으로 평생을 살아 온 여인.

 

과장된 로맨티시즘, 저 지순(至純)의 레토릭이 아름답다.

 

모파상의 감성세계는 얼마나 난만(爛漫)한 꽃밭인지.

한켠에 양귀비의 핏빛 광기(狂氣)가 숨어있는.

 

요즘이사 누가 사랑 때문에 죽는가.

전후(戰後) 나남없이 궁핍하던 그 때는 오히려 유물론의 시대가 아니었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들을 끊기도 하였으니까.

 

요즘 아이들 도대체가 마음이라는 것을 무서워 한다.

물질로 부터 벗어난 마음, 그 자유의 신비함이 무서운 것이다. 

작금의 '쿨' 함이란 순수(純粹)의 이완이 아니라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다.

그리하여 유물론의 등 뒤로 숨는 것이다.

 

왜소하고 타산적이고 비굴한 사랑.

요즘은 그나마 페니스 하나 늠름한 잡놈마저 없다지 않는가. ㅎ

 

++++

<다시 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가물치처럼 온 몸을 던져오는 

거대한 파도를........ 

 

몰래 숨어 해치우는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 뿐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 뿐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여권 운동가들이 저지른 일 중에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세상에서 

멋진 잡놈들을 추방해 버린 것은 아닐까. 

핑계대기 쉬운 말로 산업사회 탓인가. 

그들의 빛나는 이빨을 뽑아 내고 

그들의 거친 머리칼을 솎아 내고 

그들의 발에 제지의 쇠고리를 

채워버린 것은 누구일까.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여자들은 누구나 마음 속 깊이 

야성의 사나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걸. 

갈증처럼 바람둥이에 휘말려 

한평생을 던져버리고 싶은 걸. 

 

안토니우스 시저 그리고 

안록산에게 무너진 현종을 봐 

그뿐인가, 나폴레옹 너는 뭐며 심지어 

돈주앙. 변학도.그 끝없는 식욕을 

여자들이 얼마나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어? 

 

그런데 어찌된 일이야. 요새는 

비겁하게 치마 속으로 손을 들이미는 

때묻고 약아빠진 졸개들은 많은데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검은 눈썹을 태우는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멸종 위기네. 

++++

 

 

<쓸모없는 아름다움>

-모파상 作-

 

***동우***

2016.06.19 08:07

 

흙으로 인간을 빚어 만들고 창조주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창조주의 뜻. 

생육과 번성은 인간을 동물의 범주('그 중에서')에 예속시킨 명제인가.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여 인간은 창조주의 뜻과는 무관한 존재가 되어버렸는가.

생육과 번성.

인간은 창조주가 설정해 놓고 가두어 놓은 자연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육과 번성을 향한 투쟁적 실존이었던가.

그리하여 문명이란 창조주의 섭리와의 끊임없는 투쟁으로 성취하여 축적된 빛나는 결과물인가.

 

철학자는 부단하게 고뇌한다.

'자연의 부분'이면서 '자연이 아닌 인간'의 실존에 대하여.

 

<그러나 이 세계는 인간을 위해 생긴 것은 결코 아니니까 할 수 없는 일이네. 즉 생각을 할 줄 아는 인간이 먹고 입고 살며, 만족을 누릴 만한 세계가 결코 아니란 말일세. 그리고 우리가 이 지성으로 말미암아 참으로 세련되고 개화된다면, 끊임없는 싸움을 계속해야 하네. 이른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싸움 말일세.>

 

그러니까 창조주가 설정해 놓은 섹스는 생육과 번성을 위한 생식행위이다.

유전자의 교활한 책략인지, 창조주의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여 생식행위를 게을리 할까봐 거기에다 쾌락이라는 미끼를 심어 놓은 것이다. (생식행위와 배설행위의 동일성.ㅎ)  

그런데 영리한 인간은 생식행위로부터 배설행위(쾌락)를 독립적인 장르로 진화시켰다.

인간은 생식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코이터스(성교)에 익숙해졌다.

호모사피엔스는 어느덧 호모에로티쿠스(성애적인간)가 된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더 무성하다.

 

그리고 섹스를 아름다운 아내를 단속하기 위한 사회적행위로 이용해먹는 인간. 

모파상의 '쓸모없는 아름다움'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3장에서 나는 모파상 사유의 깊이를 느낀다) 마스카레백작의 수법과 백작부인의 지혜는 모차르트의 가극처럼 경쾌한 바 없지 않다.

 

아름다운 아내를 단속하는 수법, 그건 아이를 임신시킴으로 아내를 생식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10년 동안 일곱의 아이를 낳으랴 기르랴 한 눈 팔 틈이 없다.

그런 아내는 어느 날 생식기계로부터 해방되기로 결심한다.

 

<당신에게 할 말이 아직 남아 있어요. 저는 이제 두려운 것이 없으니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 저를 죽이고 싶으면 죽여도 좋아요. 당신의 자식 중에서 하나는 당신의 것이 아네요. 저는 지금 저의 이야기를 듣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것만이 제가 당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어요. 그 소름끼치는 한 남자의 압제와 당신이 저에게 강요한 그 징역살이와도 같은 임신과 해산에 대한 복수였단 말예요. 정부가 누구냐고요? 그건 영원히 알 수 없어요. 아마 당신은 세상 사람들을 다 의심해 보실 테지요. 그렇지만 절대로 찾아내지 못해요. 저는 아무런 사랑도 기쁨도 없이 그 사나이에게 몸을 맡겨 버린 거예요. 오직 당신을 배반하기 위해서 말예요. 그러자 그 남자도 저를 어머니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어느  아이냐구요?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예요.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으니, 그 가운데서 찾아내 보세요. 이런 이야기는 얼마 후에 하려고 했어요. 아주 나중에요. 남자를 배반하더라도, 그런 줄 모르고 있으면 복수가 되지 않으므로, 오늘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고백은 당신이 저한테 간청한 거나 다름이 없어요. 이제 제얘기는 끝났어요.>

 

그 후 아내는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사교계를 주름잡는다.

 

<「저 여자가 바로 아이를 일곱이나 낳았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걸!」

「그러나 그건 사실이야. 십일년 동안에 아이를 일곱이나 낳고서는, 나이 삼십에 단산을 하고 사교계로 나서자, 황금시절을 맞이하게 된 걸세. 그런데 그녀의 이 새로운 생활은 그렇게 쉬 끝날 것 같지 않네.」

「가엾은 여자로군!」

「이 사람, 뭐가 가엾어?」

「뭐가 가엾냐구? 생각해 보게. 저런 여자가 십일년 동안이나 뱃속에 아이를 차고 있었으니 그 얼마나 생지옥 같은 생활이었겠나? 저 젊음, 저 아름다움, 저 빛나는 희망, 저 시적인 인생에 대한 이상, 이 모든 것을 인류생식의 법칙에 희생시키다니 될 말인가. 아무튼 이 법칙은 건강한 여자로 하여금 곧잘 인간을 생산하는 기계로 만들어 버린단 말이야.」>

 

6년후 아내는 남편에게 '한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 거짓이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사실대로 말했어요. 오늘까지 저는 한번도 당신을 배반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만일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던들, 지난 6년 동안에 아이를 넷은 더 낳았을 거예요.>

 

그리하여 남편은 생식과는 상관없는, 저 독립적인 아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깨닫는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눈은 차디찬 하늘 같은 잿빛을 하고 있었다. 밤 어둠 속에 그림자 진 검은 머리에는 다이아몬드를 무수히 박은 장식이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러자 남편은 일종의 직감으로 이렇게 느꼈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자는, 단지 자기 종족을 이어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여자가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쳐 우리들 사이에 싸이고, 하늘이 정해 준 최초의 목적에서 벗어난 복잡한 욕망이 낳은 괴상하고 불가해한 산물이다. 그리고 눈앞에 어른거릴 뿐 붙잡을 수 없는, 미(美)라는 신비로운 것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거룩한 존재이다! 아닌게아니라 이런 여인은 오직 우리들의 꿈 속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꽃송이었다. 육체의 정욕과 마찬가지로 비물질적인 장식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시(詩)가 생기고 요염하고 아름다운 매력이 생겨 그 모든 것으로 장식된 산 꽃이다." 남편은 이제야 비로소 어렴풋이나마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 혼란 중에서도 지난날에 자기가 느낀 질투의 원인을 깨달으면서, 이 모든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생식과 배설이라면 암컷과 숫컷의 성기만으로 족할터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깃들어 있는 저 신비로운 '미'(美)라는 것은 무엇때문에 필요한 것일까.

오로지 인간이 이룬 문화적 진화의 산물인가.

 

<이 지상에서 깨끗한 것, 아름다운 것, 품위 있는 것, 정신적인 것 중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인간의 손과 두뇌로 이루어 놓은 것일세. 예컨데 생식 행위를 아름답게 노래하며, 여러 모로 해석하며, 시(詩)로 찬미하고, 예술로 이상화하며, 학문으로 해석하기도(학자들은 언제나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여러 면에 다채로운 학설을 꾸며 내는 것이다)하면서, 그 생식 행위에 어느 정도의 정취(情趣)와, 미와 매력과 신비를 불어넣은 것이 곧 인간이 아니겠나.>

 

그런데 호모사피엔스의 코이터스(성교)는 여전히 동물과 진배없이 암수 성기의 교접으로 이루어진다.

소설 속에서 '추잡한 생식'이라고 하였는데, 섹스가 과연 추잡한가. 

 

그렇다면, ET와의 교감처럼 손가락을 맞대거나 눈빛의 마주침으로 남녀의 교접이 이루어질수는 없을까.

거기에 생식과 쾌락을 심어놓을수는 없을까. ㅎ

 

아, 여성은 왜 쓸모없이 아름다운가.

생식에도 배설에도 아무런 짝에도 쓸모없는.

 

여성의 아름다움은 이제 남성의 어떤 애호미(愛好美)를 반영하지도 않는다.

그냥 저 혼자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다.

 

섹스 따위를 훌쩍 뛰어넘는 여성의 독립적인 아름다움.

내 아내에게도 내 딸에게도 내 두 손녀에게도 내재되어 있을.

마지막 순간까지 이 테마를 안고 가고 싶도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