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박완서]]
<꿈꾸는 인큐베이터> <꽃잎 속의 가시>
<꿈꾸는 인큐베이터>
-박완서 作-
***동우***
2014.08.10 04:29
박완서의 '꿈꾸는 인큐베이터'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산부인과 수술실은 내게 익습니다.
보생의원, 옛날 구닥다리 수술대.
양발을 들어올려 가죽밴드로 고정시킬수 있는 발받침대가 있는.
비명소리, 신음소리...
그러나 왜 여성은 환자(患者)가 되어야 하는지, 어린놈이 궁구할 바 있을리 없었지요.
아들 바라기.
우리 어머니들 할머니들의 염원과 극성.
그 배후에는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헛기침이 있었겠지요.
1993년 발표된 소설,
불과 20여년전인데, 이런 야만스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요즘은 오히려 딸을 선호하는 추세라는데.
격세지감.
이 소설.
연만한 또래들 기억 속 어떤 느낌 진부하지 않을듯 하여, 올릴까말까 망서리다가 올립니다.
***동우***
2014.08.11 04:57
아들없이 딸만 둘 가진 남자를 불쌍하게 여기는 여자.
한심하고 우습지만 여자의 아들에 대한 의식은 그만큼 세상을 향한 당당함이었을테지요.
여북하면 '아들은 나에게 있어서 후천적인 남성 성기였다'(下편에서)고 까지 말할까요.
스스로 비하하도록,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지금도 일부는 그러하리라) 남성중심주의의 무형적 사회체제에 순치되어 길들여진 여성성.
여성학이 주창하는 바, 페미니즘이 근거하는 바도 그것일 겁니다.
여자의 몸은 아들을 꿈꾸는 인큐베이터.
내 숙모께서는 오로지 아들이기를 기도하면서 내리 딸 여섯을 낳다가 일곱번째로 아들을 얻고나서야 생산을 그치셨습니다.
숙부는 의과대학 교수이며 산부인과 의사였는데 (그 시절에 태아의 성 감별은 불가했던가 보아요.) 그런 막연한 의식이 작은 아버지께도 없지 않았을듯. (두분 오래전 돌아가셨고 일곱 사촌들 모두 잘 살고 있지요)
우리 두 손녀 비니미니, 나는 열 손자 안부럽다오.
저 딸딸이 아빠의 생각 따위보다 더욱 ㅎ
***동우***
2014.08.12 04:33
얼마전 일본에서는 어떤 재판 이야기로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지요.
유부녀가 혼외남자와 간통하여 아이를 출산하였고, 남편은 자신의 아이로 여기고 아이를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다 얼마후 부부는 이혼하였고, 여자는 DNA 감정결과로 법률상 전남편과 아이와의 친자 관계는 무효라는 취지의 소송을 냈는데 남자는 1년 넘게 정으로 길러왔는데 혈연만으로 아버지의 지위를 빼앗길수 없다고 맞서 주장한다는 내용의 재판이었습니다.
기사의 내용.
<이 부부의 법정 다툼이 최고재판소까지 올라가면서 일본 내에선 'DNA 감정으로 부자(父子)간 혈연관계가 없는 것으로 증명되면 호적상 친자 관계를 취소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일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두 아버지를 두게 하는 건 가혹하며, 생물학적 친자를 부정하면 결국 진실에 반하는 친자 관계를 강제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반면 "DNA만 기준으로 한다면 혈연관계가 없는 입양 가족도 부정하는 셈"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고재판소는 사건 당사자인 홋카이도 부부, 이들과 비슷한 이유로 소송 중인 또 다른 부부에 대해 다음 달 17일 최종 판결을 내린다. 일본 민법에는 '아내가 결혼 중 임신한 아이는 남편 아이로 추정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1· 2심 법원은 DNA 감정 결과를 '신뢰할 수 있는 최신 과학 기술'로 받아들여 법 적용의 예외로 판결했다. 하지만 최고재판소가 기본적으로 친자 관계의 안정을 중시해온 만큼 원심 판결을 뒤집고 남편이 승소할 수도 있을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전망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곧잘 대두되는 낳은 정과 기른 정의 문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체로 보수적(保守的)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전자(前者), 진보적(進步的) 기질의 사람은 후자(後者)의 손을 들어줄듯 싶은데.
<에미는 제 자식이라는 걸 의심할 필요가 없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만큼 아비의 의식의 저 밑바닥엔 과연 내 자식일까 하는 의구심이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그걸 꿰뚫어 본 여자는 아이가 아빠 닮은 걸 강조하고 한편 부계의 성으로 네 자식이 틀림없다는 걸 문서화까지 해주고 대신 부양의 의무를 씌운 게 아닐까요.>
딸딸이 아빠의 저 시각은 독특하지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인류가 제도적으로 부계의 성을 따르게 한다는 것.
그건 어쩌면, 남성의 씨에 대하여 생물학적 불확실성(요즘이야 유전자검사로 알수 있지만)에 대한 사회 인문적 계약 문서에다 꽝! 찍어주는 확증 도장.
원초적 본능에 있어서 '이기적 유전자'(도킨슨)로써의 모성애와 부성애가 다를바 없습니다.
그러나 부성애라는 것은 어느 정도 후천적으로 형성된 인문적 측면도 간과할수 없지 싶습니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다른 색감, 이를테면 깊이와 넓이, 감성과 이성, 에로스와 로고스, 협량과 대범...같은 것들도 또한.
남편에게 여자아기의 기저귀를 갈게 한 딸을 야단치는 친정어머니.
"아니 이 철딱서니없는 것아. 남편한테 어떻게 계집애 아랫도리, 그 흉한 걸 보이냐, 보이길."
여자를 놓고 여자가 여자에게 하는 이 대사, 참혹합니다.
<"아들은 괜찮구요?" "여부가 있냐? 고추 달린 아랫도리야 남편 앞에 여봐란 듯이 풀어놔야지." 내가 나의 인큐베이터 됨을 참아 낼 수밖에 없었던 소인은 그러니까 기저귀 찰 대부터 비롯됐던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어떡하든지 달라져야 한다. 남편도 나도. 이건 사는 게 아니다. 그렇게 간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그 께름칙함을 떨쳐 버리지 않는 한 생전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을 것 같다.>
아, 옛날 얘기입니다.
우리는 저 미몽(迷夢)에서 깨어났습니다.
이제야 말입니다.
***eunbee***
2014.08.11 03:06
어리석고, 성급하고, 바보같은 내가 너무도 한심스럽다는 생각에 빠져있습니다. 요즘 새삼스럽게 다시.ㅠㅠ
오비이락, 그 무렵 왜 그런 이상스런 일이 내게 벌어져서..ㅠㅠㅠㅠㅠ
그러나 내 기쁨과 감사한 마음이 그 한심스럽고 바보스러운 내행동을 눈감게 하고 염치없이 포스팅을 했답니다.
늘 동우님께 미안해요.
에잉~
또 이렇게 세련되지 못하게, 너스레와 한탄 늘어놓지 말고!!
동우님의 책선물에 우리모두 행복한 책읽기를 하고 있으며, 책을 받은 순간 모두 좋아서 입이 벌어졌던 그 '순간'의 표정들을 잊을 수 없음을 동우님께 전합니다.
배달부가 초인종을 길~~게 누를 때 은비엄마는 스프링처럼 튀어나가 문을 열었어요.
그 모습이 나는 너무나도 기쁘더랍니다.
하루 이틀 묵은 포스팅 기어코 오늘 등록 눌렀습니다.
동우님이 넌즈시 웃으실까요? 한심이의 한심스러움이 웃겨서? ㅎㅎㅎ
늘 건강하세요.
이곳은 가을로 한발 들어선 것 같아요.
내일 은비아빠가 오고, 그러면 나는 큰애네로 피난^^갑니다.
***동우***
2014.08.11 05:10
원, 세상에.
미안할 것두 많수.
은비님이 내게 무얼 미안해 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구만.
보내드린 책에 대한 은비님의 포스팅.
눈부시게 화려합니다.
몹시 쑥스러워 댓글도 달지 못하겠어요.
좋아하시는 모습들, 선책(選冊)이 잘 된듯하여 내 안목이 대견(?)하여 그건 참으로 기쁩니다. 핫핫핫
정말 은비님, 어느새 가을....
이 곳도 아침 저녁 선뜻한 가을 기미 느껴진답니다.
부산의 올여름 심한 염천은 아니었는데, 끝물 더위 있으려나.
***eunbee***
2014.08.11 05:29
암튼 동우님,
책도, 동우님의 글들도, 모든 것이 고맙습니다.
<꽃잎 속의 가시>
-박완서 作-
***동우***
2014.08.13 00:45
박완서 '꽃잎 속의 가시'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미국이민, 30 여년 만의 귀향.
바리바리 고향사람들 나누어줄 보따리, 그리고 따로 자신을 위하여 따로 챙긴 가방 속에는 호사로움이 있습니다.
원삼, 당의, 천금, 지요, 멱목, 악수‥‥갖은 수의(壽衣)
그리고 자식 혼사의 경사(慶事)를 사위스럽게 만드는 흉물(凶物)이라고 질색하는 며느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주검에게 입힐 옷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고국에 돌아온 저 노인
수의 따위 나는 추호도 관심이 없습니다만, 오랜 딴나라 살이의 애환을 알리없는 내게도 감정이입 되는바 없지 않습니다.
지금은 상전벽해지만 종로구 내수동 외가의 고택.
그곳 안주인이었던 외숙모님이 생각납니다.
그 분은 그야말로 오소독스한 경아리(서울내기의 속어), 똑 부러지게 똑똑한 서울 깍정이셨지요.(이런 무례함을..)
오래전 외가 큰형네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영어 한마디 할줄 몰라도 LA에서도 그리 야무지고 씩씩하셨더랍니다.
비단 조각들의 아름다운 꽃잎.
난만한 낙화 한가운데 사뿐히 앉아 계시는, 이 땅의 氣로써 이국땅에서 일생을 보내신 어른....
고국.
그 꽃잎에 송이송이 점철된 그리움..슬픔...
잡설은 내일로.
***동우***
2014.08.14 04:59
우리나라 사람들 의식 속에는 삶에다 (더구나 혼사라는 경사에) 죽음을 개입시키는 것을 금기시하는 바 있습니다.
자신이나 친족의 경사를 앞 둔 사람들은 직접 초상집에도 가지 않으려 하지요
호사스런 안동포 수의를 고이 싸들고 와, 모국에서 임종을 맞고 싶어하는 노모의 절박한 관심사는 무참하게 좌절됩니다.
<"제가 어머니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거란 생각이 왜 이렇게 슬플까요. 이모님.”>
살아생전 어느 날 어머니가 딸에게 토로하였을 30여년 이국땅에서의 신산(辛酸)스런 삶의 역정.
어머니 여읜후 그 얘기를 들은 아들은 비로소 슬픈 것일까요.
우리는 갈수록 삶에서 죽음을 쫓아내려 합니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장의사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지금은 보통 병원에 딸린 전문장례식장에서 매카니틱하게 처리합니다. (죽은 이는 깊숙히 감추어지고 영정사진이 주검을 대신하지요)
자아의 리얼리즘에서도 죽음은 철저하게 타자의 것으로 추방됩니다.
죽음이야말로 삶이라는 리얼리즘의 극점일 터인데 말입니다.
죽음은 상징과 은유로 포장되고 추상으로서 얼버무려 버립니다.
삶 속에서 맞는 죽음은 오로지 두렵고 불쾌한 것이므로 한사코 기피하여야 할 것으로 여기도록 만듭니다.
생각건대 유독 우리나라가 더 한듯 합니다. (갈수록)
죽음을 고즈넉하게 상념하면서 산책을 하는 파리의 공원 '페르 라 세즈'.
일본만 하더라도 방안에다 죽은이의 위패를 모시고, 공동묘지는 동네 한가운데 있기도 하지요.
일본 영화 '굿바이 (おくりびと)'를 보셨나요?
아름답게 치장한 주검과의 아름다운 이별..
<"이모도 알다시피 LA가 얼마나 더운데유. 그래도 겨을 한철 좀 서늘할 때면 밍크입고 나오는 노인들 더러 있다우. 나도 밍크 있다 이거지. 애교스럽지 않아. 엄마의 수의도 그렇게 애교로 좀 봐주면 안되냐구?">
미국서 오래 산 언니의 딸, 경애는 밍크코트와 수의를 예사롭게 비교합니다.
프랑스 고급 양장점은 수의를 만드는 집, 그 쪽 동네 수의는 옷을 뚫고 걸어 나올 것 같은 생기는 생뚱스럽게도 간드러진 요염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니는 그 좋은 직장을 뛰쳐 나옵니다.
<그러나 송장에 대한 금기가 워낙 격렬하고 유구한 내 나라의 문화를 극복한다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아래는 '[ ]'는 박완서 수필집에서 빼낀 한 대목입니다. (제목 '수의')
[우리가 자식을 뱃속에 넣고 이 세상에 오기를 기다릴 때, 얼마나 설레는 마음, 찬란한 기쁨, 경건한 기도로 아이의 배내옷을 꿰맸던가. 이 세상에 온 후엔 또 얼마나 기쁘게 맞았으며, 좋은 것을 먹이고 편하고 예쁜 옷을 입히기 위해 얼마나 힘든줄 모르고 일했던가? 그렇게 기른 자식한테 이 세상 하직할 때 옷 한 벌 못 얻어입을 건 또 뭐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수의같은거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하니, 정작.
멀지않았을 내 죽음, 나의 의식 속에는 과연 어떤 색감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적멸(寂滅)에 대한 두려움일까, 환향(還鄕)의 설레임일까.
***eunbee***
2014.08.14 06:52
수의.
나는 벌써 20년 전에 수의를 선물 받아 둔 사람이라우.
큰딸이 유학 오기전이니 21년이 되었을랑가.
그해는 아마도 윤사월인지 윤오월인지 아니면 윤유월이었을지도... 아무튼 윤달이 끼인 해에
수의를 지어두면 오래 산다나 어쩐다나. 우리 언니랑 형부는 당신네들 수의를 손수 장만했지요.
외동아들 하나 품안에 있는 녀석, 어리고 철없고 하니(그보다 아들이 당신들 수의 장만해 두지 않으면 고생할까봐 미리미리 당신들이 아들 수고로움 덜어 주려고 한 일임이 분명하지요. 그분들은 그래요)
윤달 든 해에 고급 삼베(중국산을 속아서 그렇게 믿는지도 ㅋㅋ) 노르스름하고 발 고은 것(안동포겠죠?)으로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에게 특별부탁하였더랍니다. 그 참에 늘 겅중거리고 다니는 철없는 동생(나)이 눈에 맘에 밟혔던지 내것도 장만해 두었다가 그해 큰애와 내가 고향 언니네집에 갔더니 상자에서 꺼내 보여주더라구요.
큰딸은 '엄마~, 나는 맘이 참 이상스러웠어. 이모는 왜 이렇게 젊은 엄마 수의를 장만해 둔대'했지요.
나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이걸 내가 입게 될까,라던가 좀 께름직하다던가, 뭔 감상이 있어야 할텐데 정말 아무런 감상도 감정도 기분도 없었지요. 그보다 언니나 형부가 나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가슴 찡하도록 고마울 뿐이었지요. 형제 사랑은 바로 저런 것인가?하면서....ㅎ
그 후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언니네 안방 자개장 위에 언니 형부 수의랑 나란히 보관돼있던 내 수의는 내가 오두막에서 분당 내집으로 되돌아 오고난 후에 형부의 차에 실려 내게로 왔지요.
다용도실 책더미 위에 올려진 그 수의 상자를 가끔 바라봅니다.
내가 저 옷을 입으려나 몰라, 입게 되려나 몰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들에게 한두 해 전, 이모가 수의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 놓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난 책더미 위에서 또 책으로 눌러 놓았네. 했지요.
아들은 나를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더군요. 그애가 엄마 수의 상자를 처음 보게된 날이었지요.ㅎㅎㅎ
지난해, 수의에 대한 포스팅을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도 여러 번 했어요.
그러나 그 터부시되는 수의에 대한 이야기라서(나는 그것을 펼쳐서 사진으로 찍어서 할 생각이었거든요)
블로그 친구들 기분을 생각해서 그만 두었지요.
그러나 머잖은 언젠가는 포스팅을 한 번 해봐야지,라는 마음은 아직도 있었어요.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했으니, 이제 이것으로 그만, 포스팅했다고 생각해야 겠어요.ㅋㅋ
내가 입고 갈 마지막 옷.
나는 노르스름한 그 삼베옷 보다 화려하고 보드라운 실크가 더 좋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입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에요.
그러하다면? 올 때처럼 벗고 가겠단 말? ㅎㅎㅎㅎㅎㅎㅎ 그건 비밀.
수의에 관심이 없어도 수의를 장만해 두고 사는 사람도 있더랍니다.ㅎㅎㅎ
수의 선물을 받아두었어도 전혀 관심이없고 무감각,
그러나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면 갈수록 그 무관심은
어떤 감상으로 다가오게 될런지 모르지요. 나도 모르는 일.
저 노모와 내 언니와 다를바가 무어겠어요.ㅠㅠ
내언니도 이민을 갔다면 저러고도 남을 거예요.
'나'(죽은 이)가 걸쳐본 야회복처럼 아름다운 수의, 그리고 그 위에 올려지는 코사지.
맞아요. 수의는 더욱 더 아름답게 재단되고 입혀져야 해요.
아름다운 이세상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떠나며 남기는 마지막 인사는
가장 아름다운 자태로 해야하니까요.ㅎ
***eunbee***
2014.08.14 07:06
[멀지않았을 내 죽음, 나의 의식 속에는 과연 어떤 색감으로 자리잡고 있을까..
적멸(寂滅)에 대한 두려움일까, 환향(還鄕)의 설레임일까.]
그런데 동우님 나는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이 아름다운 세상/자연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답답할 것 같아요.
그 향기들, 그 소리들, 그 빛깔들...
이렇게 말하는 소릴 들은 작은딸 '죽으면 답답함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ㅎㅎㅎ
그말에 덧붙여,'엄마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죽기 싫다는 거야.' '??? 아닌데???? 그런가???' ㅎㅎ
죽음을 놓고도 맹~해요. ㅋ
***동우***
2014.08.14 23:45
수의에 대한 포스팅.
꼭 하세요, 은비님.
환영.
은비님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엿볼수 있는...
핫핫, 금강산 함께.(내가 그랬던가), 사하라 사막의 색덱쥐페리 (은비님이 그랬던가)
예사롭게, 그런 얘기 나누어요.
옳아요, 은비님.
야회복처럼 아름다운 수의.
일본영화 '굿바이'에서 그 섬세하고 정성스럽게 주검을 치장하는 손길.
몇년전 가야숙모께서 돌아가셨는데, 나는 처음 보았어요.
화장을 한 주검. (이제 그런 트렌드인가 보지요)
본시 자그마하게 이쁜 분이셨는데, 유리창 너머 뵙는 그 분은 생시와는 어딘가 다른 신비로운 어여쁨이셨어요.
15 여년전 돌아가신 어머니, 화장을 안하였더라도 주검은 추하지 않았어요.
형과 함께 알콜 솜으로 시신을 닦아 드렸는데, 어머니 입술이 너무 붉어 키스를 하고 싶었다오. (외국영화에서는 예사롭던데)
죽음과 친하기.
은비님은 아직 멀었어요.핫핫핫
이 아름다운 세상, 그 향기들 그 소리들 그 빛갈들... 을 볼수 없다는 상상.
은비님, 그 생각들을 극복하셔야 비로소 죽음과 친해지는 거랍니다.
글라시아스 알라 비다를 노래하시는 분은 아무래도.. 하하하하하하
'내 것 > 잡설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완서 7 (1,4,3,3,1) (0) | 2020.04.05 |
---|---|
박완서 5 (1,4,3,3,1) (0) | 2020.04.03 |
박완서 3 (1,4,3,3,1) (0) | 2020.04.03 |
박완서 2 (1,4,3,3,1) (0) | 2020.04.01 |
벅완서 <겨울 나들이. 옥상의 민들레꽃.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1,4,3,3) (0) | 2020.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