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박완서]]
<공놀이하는여자> 비자> <환각의나비> <할머니는우리편>
<공놀이하는 여자>
-박완서 作-
***동우***
2014.08.14 23:27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
그 영화에서 빳빳한 현찰 뭉치가 벽돌짝처럼 층층이 쌓여있는 돈창고를 보셨나요?
벽돌의 부스러기 같은 오만원권 한뭉치만 내게 있으면(몇천만원은 되겠지요),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돈독에 중독된 그 돈쟁이집 사위 백윤식(윤여정의 남편).
그는 결국 돈에 질려서(?) 스스로 손목의 동맥을 끊고 죽습니다. (실은 필리핀 가정부 애인 云云의 사연이 있지만)
그런 백윤식을 보고 이 소설속 '아란'은 혀를 찰 겁니다.
"잘난 척은.." 하면서.
나 또한 그토록 잘난 척하는 백윤식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맛, 그게 돈의 맛인데.
안녕과 행복과 쾌락, 자유와 독립과 평화, 관대함과 휴머니즘까지...
작금 세상에서 살이에 필요한 온갖 덕목은 돈으로 쟁취할수 있지요.
알라딘의 램프,
돈이야말로 인간답기에 필요조건이고 충분조건입니다.
예전 직장, 공사착수전에는 고사를 지냅니다.
고사상에는 언제나 돼지머리가 올려지게 마련인데, 공사주(工事主,船主)가 돼지 입에다 시퍼런 지폐를 잔득 물려주면 돼지는 비로소 빙그레 웃는답니다.
죽은 돼지대가리를 웃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돈의 힘'이랍니다.
아아, 그러나 존재의 아픔.
존재. 언저리에서도 돈은 위력을 발휘하는가 봅니다.
자신을 곤경케 하였던 것들을 용서할수 있는 힘.
또는, 지난날의 향수처럼 풀이나 거름냄새 같은 게 코끝을 스쳐갈 때가 있듯이, 잡힐 듯 말 듯 모호하고도 생뚱스러운 비애같은 그런..
저 단순하게 완고한 돼지머리.
돼지머리 입에다 시퍼런 돈 물려 두 손 비비며 넙죽 엎드리고 싶습니다.
입은 빙그레 웃고 있는데, 저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울긋불긋 지엽의 것들, 코 밑의 배추 이파리만 보일꺼나.
혹은 눈 질끈 감고 이도 싫고 저도 싫다고 도리도리할까.
뻔뻔하고 우매한 것.
폄하도 아니고 이상도 아닌, 인간성 그 속성에 대한 이해.
한반도 남녘에는 제법 비같은 비가 내립니다.
좀 쓸쓸합니다.
내일분 리딩북 미리 포스팅하는 겁니다.
비자>
-박완서 作-
***동우***
2014.08.16 04:33
미국.
3억 넘는 인구가 살기에도 광활한, 4개의 시차대(時差帶)가 있는 동서남북으로 드넓은 나라입니다. <알라스카州는 한반도 크기의 8배인데 인구는 고작 60만이라고 합니다.>
Oh, beautiful America.
이민(移民)으로 이루어진 나라이지만 문호(門戶)는 높고 파숫꾼은 콧대가 셉니다.
외국인으로서 미국 시민권자(Citizens) 되기는 그리 까다롭고, 영주권(Residents)이라도 얻으려고 원정출산도 마다하지 않는다지요.
그런데 방문객(Visitors)으로 미국 들어가는 것(J-1 비자라는 걸로)도 예사롭지 않군요.
여러 종류의 비자(A B C D E F G......)와 융통성없는 저 규정이라는 것들.
그런데 미국 민간학회의 저 성실한 대응은 눈 여겨 보아집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우리의 초청계획이 무산된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며 당신이 그 일로 미국정부로부터 당한 일에 분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경험은 한국에서 식민주의가 종식된 게 아니라 아직도 현실적으로 존속하고 있다는 우리의 이해를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비자 종류도 저와 비슷합니다.
동남아의 가난한 나라를 대하는 대한민국의 콧대도 어느새 되도 못하게 높아졌지요.
***삿갓***
2015.08.12 03:10
감사하게 퍼 갑니다.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박완서씨의 환각의 나비 전문 구할수 없나요?
***동우***
2015.08.12 04:23
읽고 싶은 작품 찾으시는데, 무슨 염치 운운 하십니까? ㅎ
박완서의 '환각의 나비', 전에 포스팅하였던 소설입니다.
근데 이를 어째요?
저작권문제 지적받아 블라인드 조치되어 얼마전 지워버렸어요.
정 필요하시면 메일로라도 보내드리지요.
친구신청은 수락하였습니다.
<환각의 나비>
-박완서 作-
***동우***
2014.08.17 04:32
박완서 '환각의 나비' 다시 읽습니다. <그의 소설중 백미(白眉)로 생각한다오, 나는.>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소설 모두(冒頭)에 나오는 아래 문장은 서사에 함축된 이 소설의 정서적 복선(伏線)입니다. (눈 여겨 읽어 보세요)
<그 집에는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 그 집을 지은 자재나 규모 또는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집 간수를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보통집의 표정 같은 것하고는 달랐다. 사람으로 치면 성깔이나 교양, 옷차림 따위에 의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인상말고 저 깊은 중심에 숨어 있는 불변의 것, 임의로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풍겨져나오는 예감 같은 거였다.>
느낌, 인간성의 원형질이 끌리는 느낌.
저 깊은 중심에 숨어 있는 불변의 것.
그건 어떤 것일까.
본성일가, 기억일까.
기억으로 왜곡된 본성일가, 본성으로 왜곡된 기억일까.
잡설로 지껄일 밖에..
치매환자들은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차츰 사라진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사라지는 기억의 내용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경험하였던 뭇 사건들이랍니다. (결혼 출산 초상과 같은 커다란 이벤트적 사건까지도)
이런걸 서술기억이라고 한다지요, 이 기억으로 사람들은 일상적 대화를 나누고 과거의 일들을 회억 합니다.
서술기억이 정서기억으로 각인되지 않는 한, 이 기억은 뇌의 가장 취약한 부분에 저장된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오래가는 기억은 절차기억, 이를테면 글씨쓰기 헤엄치기 자전거타기와 같이 몸으로 익힌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답니다.
몸이 기억하는 것. 수련과 훈련의 반복으로 자율신경계의 다스림..
가장 오래가는 기억이 바로 정서기억이랍니다.
즐거움 두려움 따스함 분노 포근함 불안감 편안함과 같이 감성에 각인된 기억, 이런 기억은 치매라는 뇌질환에 의하여 잘 침해받지 않는 '편도체'라는 곳에 저장된다고 하는군요.
인성(人性)을 이루는 어떤 원형질에 관한 문학적 함의(含意)가 있습니다만 이 소설은 바로 그 정서기억의 이야기이기도 할 겁니다.
이 소설의 결말은 행복합니다.
상대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기억.
그것을 정서적으로 이해하기에는 도무지 불가하고, 그에 대한 해석이 오로지 서술적 수준의 범위를 벗어날수 없는 사유의 한계. (그런 남자 드물게 있는듯, 또한 여자라고 없으랴)
요즘 부쩍 느끼는 바, 그 벽이 굳건한 사회나 가정은 비극입니다.
내일로.
***동우***
2014.08.18 04:33
노인의 방황.
망녕든 노파, 감성에 각인된 아련한 기억 따라 이리저리 떠돈다.
그녀를 손짓해 부르는 것은 무엇일까.
유년 고향의 대기에 어린 산하(山河)냄새일까.
어머니 젖가슴 파고든 어느 순간 따스함일까.
어느날 궁둥이 투덕여주던 아버지 따스한 손길일까.
아들내미의 포대기 속 꼼지락거리며 엄니 손가락 움켜쥐던 고사리 손일까.
어느 한낮 어미를 향하여 환호하면서 달려오던 딸내미의 뒤뚱거리는 걸음일까.
눈오는 어느 밤 꼬옥 품어주던 죽은 영감님 이불속 체취일까..
회귀(回歸)를 손짓하는 영혼의 원형질, 죽음 이전에 가고자 하는 자아의 희구.
그것은 구체적인 어떤 것들이 아닐런지 모른다.
데포르마숑되어 뭉뚱그려진 추상의 어떤 정서.
늙어 비로소, 정서기억이 혹은 절차기억이 추상화로서 몸을 이끈다.
마금네와 마금이, 어머니와 세남매.
마금이와 어머니의 궁합은 필경 후천적인 것이었을게다.
소통하고 안식을 얻을수 있는 관계는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상황에 짓눌린채 살아온 비주체적인 생존의 삶에서 비롯된 것일 터....
<여지껏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칠십을 훨씬 넘긴 노인이 저렇게 삶의 때가 안낀 천진덩어리일 수가 있다니.>
그토록 찾아헤매던 어머니는 엉뚱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살아 온 무게나 잔재를 완전히 털어버린 그 가벼움, 자유로운 모습으로.
생명의 존엄함으로.
어떤 추상, 불안한 내면...
안식아, 오너라 내게.
<할머니는 우리편>
-박완서 作-
***동우***
2014.12.14 04:40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라던가, 미국에도 강남(?) 8학군이 있다지요.
그래도 미국맘들의 교욱열은 자식의 적성을 우선 고려한다는 긍정적 뉘앙스가 있는듯 합니다만...
제 새끼에게 무대뽀로 강요하는 한국식 교육열, 인근에 한국인들이 몰려서 한국식 입시학원도 생겼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박완서의 동화.
비니미니에게 저런 할미 할비, 마음은 원이로되 코리아살이의 현실이 그러하지 않으니 나처럼 속물로서는 참.
좋은 휴일을.
***서길수***
2014.12.14 13:29
사람 살아가는 모습은 마음에서 나온다지요 아름다운 글 마음으로 읽아보며 옛 추억을 생각으여 봅니다
***동우***
2014.12.15 05:17
서길수님.
짓푸른 해원과 회룡산자락 마을 공동체의 삶.
그런 기막힌 학군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도회지로 도회지로 나와 박터지게 경쟁하면서 얻는 삶..
아름다운 풍광 속 폐교의 정경이 서글픕니다만, 소유에 기반한 삶의 양태가 변해가는 징조 없지 않습니다.
슬로우 라이프.. 관조하여 음미하는 삶.. 존재의 삶..
그런 의미에서 서길수님은 행복하신 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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