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김인숙]]
<거울에 관한 이야기> <델마와 루이스>
<거울에 관한 이야기>
-김인숙 作-
***동우***
2013.06.27 06:16
<사람은 이야기하기 위하여 산다. 삶은 한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하여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 문장은 내가 즐겨 인용하는 마르케스의 말이다.
한 빼어난 이야기꾼의 삶에 대한 수사적 은유일 터이지만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방점을 찍어본다.
두뇌가 기억하는 서사적 사실이 기억이라면 정서가 기억하는 몽롱한 감성 또한 기억이 아닐까.
기억에 의존하여 인간의 삶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삶의 의미가 과거에만 근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김인숙(1963~ )의 '거울에 관한 이야기'.
습관성 유산(流産)으로 죄의식에 젖어 있는 딸과, 그리고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의 어머니.
기억, 사랑, 연민, 삶과 죽음...
으흠, 그리고 내리사랑은 어디에 각인된 기억일까.
언제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은 늙은이가 아니라 젊은 자식쪽이라는구나....
<언제나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은 자식 쪽의 일이다. 일곱 살 어린나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내 손을 놓지 않으셨으리라. 어떠한 순간, 어떠한 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손을 놓은 것은 분명히 나였다. 어머니가 짝 바뀐 양말을 신고 오셨던 날, 나는 이제 비로소 내 쪽에서 잡아 드려야 할 어머니의 손을 절대로 쳐다보지 않았고, 그 손 안에서 내 손을 빼내어 버렸다. 어머니가 평생을 힘주어 왔던 당신의 손 안에서 살그머니 달아나 버리던 딸의 손.>
어머니와 딸.
모녀관계 뿐이랴, 무릇 관계라는 것.
그것은 오로지 기억의 영역에 기반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벌써 몇 달 동안 어머니는 내 집에 다니러 오실 수가 없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우는 것을 보셨거나, 혹은 내가 울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들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가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잊혀지는 것 그것이 지나간 시절의 희망이거나 현재를 짓누르는 절망과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지. 그러나 어머니는 아무것도 잊지 않고 계셨다.>
기억, 그리고 기억이 단절된 망각.
거울의 앞면이 기억이라면 거울의 뒷면은 망각을 은유함일까.
그러나 어머니의 그것은 단절이 아니다.
기억과 망각, 그 사이에는 유장한 강물이 흐르누나.
<그러나 그때, 나는 어머니가 거울의 앞면을 통해, 저쪽 거울의 뒷면까지 걸어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다. 거울의 앞면과 뒷면 사이 그 사이에는 더 이상 건널목이 아닌 강물이 출렁이며 흐르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읽었는데, 치매환자에게도 두뇌의 기억은 잊힐지라도 몸이 기억하는 것은 잘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자전거타기나 숟가락질...같은.)
마음이 기억하는 것(정서에 깊이 각인 된 어떤 것..언어 또한 그런 쪽이 아닐런지) 또한 쉽게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느끼건대 두뇌 만이 기억의 중추기관이 아니다.
과학이 범접하지 못하는 영혼의 영역, 인간의 어느 부분 그런 곳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문득 영화 한편 떠오른다. (동경의 홍애님 요즘 오기와라 히로시의 소설 읽고 있다는데..)
오기오라 히로시 원작, 와타나베 겐 주연의 <내일의 기억>
어제의 기억이 몽땅 사라져 버린 와타나베 겐.
그토록 사랑하였던 아내는 그의 기억 속에 완벽하게 타인이 되어 버렸다.
"미안합니다. 당신을 기억할수 없어서..."
<내일의 기억>
내일의 기억은 새로웁게 비추이는 거울 속의 내 얼굴.
그 얼굴은 과거의 얼굴이 아니다.
관계는 기억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기억이고 내일의 기억이다.
벗이여.
당신을 기억할수 없어서 미안합니다.
당신은 나의 내일의 소중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내일의 기억 축적하여 나는 오래 오래 살리라. 핫핫핫.
***고향***
2013.06.28 08:19
호탕하신 웃음이 믿음직스럽습니다.
먼 훗날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지만 왠지 기억은 지닐 수 있는
은혜가 있으리라 의심치않는답니다. 심한 치매는 사람에서 동물의 수준으로
강등시키는, 난폭한 횡포가 있음으로 누구나 공포를 느끼겠지요.
김인숙이라고 처음 듣는 이름인데 글이 좋군요.
***동우***
2013.06.29 05:22
블로그에서 뵌 고향님의 노모.
고령임에도 외국생활을 영위하시면서, 육체적으로도 매우 정정하시고 심신(心神) 또한 매우 또렷하신듯하여 뵙기에 좋았습니다.
두뇌의 기억은 물론 몸의 기억조차 잃어버린 상태, 어쩌면 본인으로서는 행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중증의 알츠하이머는 가족들에게는 실로 공포일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중증이더라도 정서에 깊이 각인된 기억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원초적 감정과 관련된 기억은 뇌질환에 쉬게 영향받지 않는 편도체(?)인가에 보관된다더군요.
김인숙의 소설, 저 모녀의 관계.
거울의 앞면과 뒷면, 기억과 망각 사이.
단절이 아니라 유장하게 흐르는 강물... 그것이 이를테면 저서기억이 아닐런지.. 흐음.
<델마와 루이스>
-김인숙 作-
***동우***
2017.03.30 00:38
세월 갈수록 뇌인다.
春來不似春 春来不似春.
봄이 무르익는 계절인데 나이들어 더욱 그런가.
3월.
엊그제 파리에 안착하신 은비님은 올 해도 어김없이 파리에 포옥 젖었다 오실터이고.
엊그제 시인 전민선은 춘천에서 무슨 가게를 차린 모냥이고,
엊그제 상곤이는 인천 성규의 사진전 보고 와 늙은 성규의 늙지 않은 감각에 감탄하였고.
그런데 나는 고작 春來不似春 春来不似春이나 뇌이고 있고나.
김인숙(1963~ )의 델마와 루이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3.31 00:33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델마와 루이스'
'수전 서랜든'과 '지나 데이비스'가 출연한. (그 영화에서는 브래드 피트가 찌질한 악당으로 단역 출연하였지요)
그랜드 캐년의 벼랑으로 차를 몰아 나르는 라스트 신.
남성중심사회에서의 여성의 삶.
델마와 루이스는 언제부터인가 여성주의 영화의 표징처럼 되었습니다.
김인숙의 델마와 루이스도 역시 '로드 무비'를 차용하였습니다만 두 자매 할머니의 종착지는 델마와 루이스처럼 추락하는 낭떠러지가 아닙니다.
바다.
여태 그녀들의 삶을 지탱하여 왔던 것들, 자식새끼들과 손주들과...그 속박의 연결고리를 벗어나는 해방감.
머지않은 죽음을 의식하고 비로소 자신의 실존과 마주하는, 바다의 충일감과 포만감.
그건 어쩌면 일종의 해탈일런지도 모릅니다.
<바닷바람이 더는 차갑지 않게 부드럽게 흘러왔다. 그녀의 미소도 그렇게 부드러웠다. 그런데 그 상피 붙은 여편네들이 등장한다는 영화…… 그 영화 속에서 그 여자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어떻게 되었더라도 늙은 그들과 같지는 않으리라. 이제 늙은 그들의 죽음은 삶과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삶 속에 스며들어 있는 한 몸이었다. 그러니 이제 집에 돌아 가야할 시간이었다. 삶이 그곳에 있어서가 아니라 죽음마저도 그곳에 있으니, 집에 돌아가 늙은 아들의 손을 붙잡듯이 그것의 손을 붙잡고, 너무 멀리 갔다 왔네, 미안하네, 인사해야할 것이다. 어디선가 괜찮다, 말하듯이 갈매기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완벽하게 채워지는 일생이 어디 있을라구요.
한점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라구요.
내 늙음도 필경은 애잔합니다만, 그러나 내게 버킷 리스트는 없습니다그려. ㅎ
-독서 리뷰-
<빈집>
-김인숙 作-
***-동우***
2015.08.09. 05:06
황석영 선정 한국명단편 101.
2013 년 황순원 문학상을 받은 김인숙(1963~ )의 '빈집'입니다. <기형도의 시와 신경숙의 소설에도 '빈집'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습니다.>
결혼으로 맺어지는 부부라는 관계.
촌수를 따질수 없을만큼, 1촌보다도 더 가차운 친족(親族)관계입니다.
가장 본원적인 인간관계이면서 사회적 속박성을 내포한 법률관계이기도 합니다.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관계입니다.
그러나 한편 부부관계처럼 불완전한 관계도 없을듯 싶습니다.
섹스에 의한 유전자의 수평적 전달은 있을수 없으므로 혈연관계는 분명 아닙니다. <리처드 도킨스에 의하면 이기적 유전자의 긴팔은 수평적 공간적 영향도 미친다지만>
유전자의 친밀도에 있어서는 전혀 소원한 관계입니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갖다붙이면 곧바로 남이 되어버리는 사이가 부부관계입니다.
그렇지만 동아줄로 엮여 있는듯, 자의적 혹은 타의적으로 손쉽게 갈라설수도 없는 관계가 부부관계입니다.
자식새끼로 연결되는 관계의 끈질김 때문인가요?
신선함과 쾌락이 대폭 디스카운트되었거나 섹스리스(sexless)이더라도 은밀하게 익숙한 양성(兩性)끼리의 어떤 성적 공감영역 때문인가요?
제도적 타성에 순복하려는 자포적인 사회적 의식때문인가요?
생각건대, 긴 세월 미운정 고운정 갈고 닦이어 축적된, 애증이 통합된 웅숭깊은 경지...
<연민>이라는 감정때문일듯 싶습니다만.
어떤 이는 부부라는 관계가 근거하는 곳이 사랑이라는 추상의 어떤 고귀한 영역이라고 합디다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사랑처럼 요사스러운 물건이 어디 있습니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유지태가 이영애에게 이렇게 말하던데 내게는 그 뜻의 난해함이 형이상학적으로 들리는 대사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 검은 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다음의 생에서도 우리는 함께...
죄 진부한 세리프들입니다.
사람들은 가시버시라는 관계 속에서 무엇을 납득하며 무엇을 나누면서 살아가고 있을런지.
부부라는 공허한 이름의 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무엇일런지.
끔찍하게 금슬 좋은 부부 제위께서는 알랑가모르겠습니다..ㅎ
<외진 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바라보는 밤의 거리는 자동차 불빛으로만 빛났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오는 불빛이었다. 생의 모든 고난들이, 사소한 말썽들이, 해소되지 못한 불만과 욕구들이 차근차근 집으로들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과 거실과 욕실과 옷장과 신발장과 찬장 속에, 재활용 박스와 쓰레기봉투 속에 차곡차곡 쌓여지거나 쟁여지기 위해.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스위트홈으로.>
혹, 남편이 혹은 아내가 전혀 낯선 피상의 존재로 느껴져 으스스한 전율을 느끼신적 없으셨는지.
혹,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고 있는 그나 그녀의 <비밀>을 슬쩍이라도 눈치 채고 오싹 소름이 돋은적 없으셨는지.
모든걸 알고 있다고 지레 단정하여 대충 그냥 얼버무리고 살아가는건 아니었는지.
간혹, 황급히 눈물을 감추는 정면을 포착하신적은 없으셨을까.
순간적으로, 핏발 선 눈 속에서 이글이글 분노를 읽으신 적은 없으셨을까.
부지불식간 신음처럼 새어나오는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은적은 없으셨을까.
어느날 차고에서 비밀상자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살해된 여인의 사진을 발견할 때까지 남편이 연쇄살인범인줄 까마득하게 모르고 27년 동안 살아온 아내. <스테판 킹의 소설인가본데..>
그토록 사랑하던 아내의 눈 속에서 그는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무언가를 보았습니다. 비소를 조금씩 먹임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하려는 아내의 의도.. <'의혹' -도로시 L. 세이머스->
쉰이 넘도록 독서가 취미인 여자는 남편의 보잘것 없음을 경멸합니다.
대머리에 근육질인 남편, 남자가 배도 좀 나오고 그래야지, 다 늙은 남자가 근육질이 뭐야, 대머리에다가.. 담배도 술도 노름도 할줄 모른 좀생이, 돈을 벌줄도 쓸줄도 모르는 범탱이, 남자가 무슨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는거 아냐?, 취미도 없고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남자...
<바로 그때 그녀는, 27년 동안이나 깨닫지 못했던 비밀 하나를 깨달았다. 남편의 작은 용달 하나쯤은 거뜬히 싣고도 남을 것 같은, 누구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대형화물차의 화물칸 안에 도둑처럼 앉아서, 그 화물칸에서 서서히 풍겨 나오는 참을 수 없게 퀴퀴한 악취를 맡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남편의 쓰레기 같던 점퍼를 다시 떠올렸고, 그 옷을 입고 짐을 나르는 대머리의 늙은 남자를 떠올렸고, 그 남자의 근육질로 가려진 늙은 몸이 사실은 아주 작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어쩐 일인지 순간, 가슴이 먹먹해져서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는데, 그때 그녀가 깨달은 사실은 자신이 남편을 경멸할 뿐만이 아니라 사랑하기도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이 별것이겠는가. 누군가를 하루도 빠짐없이 기다린다면, 그 기다림이 안타깝고 애절하지 않다고 해도, 27년의 그날들은 사랑이었다. 그 남자가 집에 없는 밤이 대형 화물칸의 텅 빈 어둠처럼 저물고 있었다. 쓸쓸하고 고독했다. 그것은 오십이 넘도록 독서가 취미인 여자가 아니라면 결코 발견하지 못할, 깨닫지 못할, 비밀 같은 사랑인 것이 틀림없었다.>
남편에 대한 경멸 뒤에 숨겨진 사랑.
그러니까 그것이 여자의 비밀인가 봅니다.
27년 동안의 나날 축적된 일상의 더께가 만든 그 사랑이라는 것.
체념적 자족의 깨달음인가요.
사랑으로 환치할수 밖에 없는 존재의 상투성 같은걸까요.
비루함의 이면(裏面)에 도사리고 있는 사랑, 그것이 바로 여자가 깨달은 비밀이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종장의 반전.
음습한 범죄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만.
남자의 환상일까요?
<하늘에 맹세코 그는 그 여자아이들을 데리고 불순한 상상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실은 하늘에 맹세할 필요도 없다. 그가 있는 곳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그만의 세계였으므로. 그는 분주히 집을 옮겨 집을 짓고, 집을 빼내 다시 집을 넓혔다. 자꾸 웃어서 걸리적거리는 여자아이들은 차갑게 내쫓아버렸다. 교통사고로 죽은 개가 그 집에 자리를 잡고 그 집의 모든 빈집들을 지켰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가 키우는 것은 세계였고 공간이었다. 아주 간혹 신경에 거슬리는 문짝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자신의 세계를 키우기 위해 내쫓은 모든 것들이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문을 긁어대는 것이다. 그는 열쇠 하나씩을 문 밖으로 던져 그들의 허기를 달래주거나 놀잇감을 제공해주었다. 어느 날인가는 아내가 열쇠를 던지는 그의 손등을 물고 놓지 않았다. 처음에는 손을 저어 쫓아버리려고 했지만, 손등에 박힌 이빨이 빠지지 않았다. 그는 아내의 머리통을 때리고 허리를 걷어차야만 했다. 비로소 피투성이가 된 아내가 구슬피 울며 떠나가는 것을 볼 때 그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기는 했다. 너무 심하게 팼군. 그러나 괜찮았다. 그는 곧 다시 돌아갈 것이고, 돌아가서는 묵묵히 아내의 모든 상처를 치료해줄 것이므로.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 짜내서라도 그렇게 할 것이므로. 사랑한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다. 지나간 27년 그는 아내를 사랑했고, 영천 집이 생긴 지난 7년 동안에는 특히 더 그랬다. 비밀이 사랑을 키웠다. 그가 세상의 한구석에서 세상 전체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나 아내는 모르는 것이다. 그는 세상 한가운데에 있었고, 또 무덤 한가운데에 있었다. 죽은 자의 목소리가 가끔 들렸다. 그것은 평생을 혼자 살다가 가난하게 늙어 죽은 고모부의 목소리였다. 뭐, 이만하면 잘 죽은 거 아니냐. 그 와중에도 열쇠들은 분주히 서로의 몸을 부대껴가며 교미를 하고 번식을 하고 있었다. 세계가 세계를 무한 확장했다. 그가 영천 집에 머물 때마다 보름달이 환했다.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한 남자의 밤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남자의 비밀.
남자는 무수하게 공간을 확장해 나갑니다.
자신의 세계를 무한하게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방해되는 것들은 모두 내 쫓아버립니다.
여자아이들이 소리없이 몸을 씻습니다.
손등을 무는 아내를 구타합니다.
번식하는 세계, 세상에서 가장 풍성한 고독을 가진 남자.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는 언제나 아내를 사랑하였고, 번식하는 공간의 비밀로 말미암아 그는 더욱 아내를 사랑합니다.
무에 속속들이 상대방 존재에 미주알 고주알 간여할것 있으랴.
건너갈수 없는 섬들끼리, 관계에서 무에 더 바랄것 있는가.
27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부대끼면서 안돈하여 자식 잘 키우고 살았으니, 이만하면 잘 살지 않았는가.
인간은 영원히 불완전한 존재일 뿐더러, 관계의 완벽함이란 불가능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좋은 것일뿐, 인생에 별거라곤 있을리 없습니다.
제가끔 자신의 실존을 짊어지고서, 그 실존을 견디면서 살아낼 뿐입니다.
이 소설의 알레고리, 내 느낌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단절된 존재, 끔찍하게 고독한 실존.
우리는 모두 섬입니다.
우리네 존재론적 한살이가 그러할지니 별도리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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