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왕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1,4,3,3,1)

카지모도 2020. 4. 8. 07:44
728x90

 

-독서 리뷰-

 

<왕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R. 키플링 作-

 

***동우***  

2016.03.11 04:34

 

'R.키플링' (Rudyard Kipling, 1865~1936)의 '왕이 되고 싶었던 이야기'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작가 'R. 키플링'.

1917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요.

키플링은 우리 소년시절 '정글북'으로 친숙한 소설가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도 느껴지지만) 어딘가 불편하고 불쾌한 작가이기도 하지요.

제국주의적 시각, 그의 오리엔탈리즘이 말입니다.

키플링은 미개한 동양인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의무가 백인에게 있다고 주창한 (The White Man's Burden)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의 팽창주의에 사상적 당위성을 부여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유럽 열강이 제국주의로 '벨 에포크'를 구가하던 시절 빅토리아 조(朝)의 영국인으로서 그의 생각은 일말 정당성이 있었을까요만... 

 

차츰 지껄이지요.

 

아래는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왕다운 죽음으로 왕이 된 건달>

-이문열-

 

다니엘은 피치라는 인물을 거느리고 인도를 떠도는 소 악당 혹은 건달이다.

그들은 어떤 연유인가로 번영하고 부강한 본국 영국에서 소외되어 식민지를 떠돌며 위로는 토후들과 식민관료들을, 아래로는 힘 없고 무지한 원주민들을 등치고 산다. 그러나 영국인이라는 점 외에는 아무런 힘도 배경도 없는 만큼 때로는 구걸이나 좀도둑질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이 되려 한 그들의 거창한 야심도 실은 사기나 도둑질을 위한 착상의 발전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식민주의 구도하의 세계가 그런 그들의 터무니없는 꿈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카피리스탄이라는, 아직은 열강의 식민지로 분할 안된 미개지에서 그들이 가져간 신식 장총 스무 정과 야릇한 우연의 일치는 다니엘을 왕위에 앉게 해준다.

여기까지라면 이 작품은 한창 뻗어가는 대영제국의 기상을 반영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모험소설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다니엘의 욕심에서 비롯된 파국이 이 작품을 단순한 모험소설에서 건져내 인간성의 깊이 모를 심연 한 모퉁이를 들여다볼 수 있는 명품으로 끌어올린다.

이 빈털터리 부랑자, 건달, 사기꾼을 한순간에 왕의 자리에 올려 놓는 인격의 눈부신 고양이다.

"이 망할 놈들아! 신사답게 죽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겠다!"

반란을 일으킨 원주민들에게 사로잡혀서 계곡의 줄다리 위로 끌려간 상태에서 그렇게 태연히 말하는 다니엘은 이미 지난 날의 건달 사기꾼이 아니다.

그리고 스스로 흔들흔들하는 다리 한가운데까지 걸어가, "자, 이 빌어먹을 놈들아, 이제 다리를 끊어!"하고 외칠 때 그는 진정한 왕이 된다.

빌어먹을 놈, 즉 거지는 그들이 건달로 떠돌 때조차도 마음놓고 경멸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그런데 다니엘은 자기를 죽일 수 있는 자들에게 가차없는 경멸로 그렇게 명령하고 아득한 죽음으로 떨어져내린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왕답게 죽는 순간에 비로소 왕이 된다.

'왕다움'은 사내들의 추구하는 이념미의 하나이다. 그 위엄 용기 신의 관대함은 모두가 사내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거기다가 최후의 비장함까지 갖추어 살았으면 하찮은 건달로 식민지를 떠돌았을 한 사내를 모자람 없는 왕으로 만들고 있다.

이 작품을 전범으로 권하기에 망설여지는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액자와 내용 모두가 일인칭에 직접화법으로 처리된 이중구성이 주는 부담 때문일 것이다.

특히 거의가 직접화법으로 처리되는 액자안의 내용은 속도감은 있어도 그만큼 거칠고 소략해 동화 같은 느낌까지 준다.

피치의 얘기는 간접화법 혹은 삼인칭으로 처리했으면 더 정연하고 인상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지은이 키플링은 인도 태생의 영국작가로 주로 19세기 후반에 활동했다.

영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인도로 돌아가 지방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단편집 <산중야화>로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정글 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밖의 작품으로는 보아전쟁에서 취재한 장편 <킨>과 <사라진 빛> <일곱 바다>등 다수한 소설 외에 <판자집의 속요> <병영의 노래>등의 시집이 있다.

만년에는 시짓기에 전념했다.

++++

 

***동우***  

2016.03.13 06:54

 

한 건달이 위엄으로 맞는 왕다운 죽음에 한줌 비장미가 없지 아니하다.

그러나 쓰레기같은 유럽의 부랑자가 중앙아시아 변방 어딘가의 왕이 될수도 있다는, 저 제국주의적 발상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문명적 자부심에 따르는 오만은 어쩔수 없다.

율도국을 대하는 홍길동도 그러했고, 여진을 대하는 조선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19 세기 식민지 경영에 혈안이 된 유럽에게 문명적 시혜(施惠)의식 한줌 있을리 없었다.

그건 오로지 탐욕에 기반한 것이었다. (특히 전세계 면적의 1/5 전세계 인구의 1/4을 지배한 영국..)

제국주의가, 잉여자본 운운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한 것이든 변증법적 역사발전에서 어쩔수없이 거쳐야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이라는 레닌의 논리이든 간에 말이다.

 

제국주의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의 지도 위에다 자를 대고 좍좍 직선을 그어 땅따먹기를 하던 유럽 열강들)

보호령이니 식민지니 신탁통치니 연방이니, 허울좋은 가면 속에 감추어진 유럽의 탐욕.

 

어느 쪽이 반문명이고 어느 쪽이 야만(野蠻)이란 말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이보 마을 그 아름다운 공동체의 삶에 어디 야만(野蠻)이 있었던가.

'간디'라는 인간성을 보라, 거기 어디에 야만이 있었던가.

 

키플링 뿐이랴,

윈스턴 처칠, 그도 인도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는 간디를 향하여 벌거벗은 거렁뱅이라고 조롱하면서 미워하였다.

 

그런데 얼마전 런던 템스강변 의회 광장에 마하트마 간디의 동상이 세워졌다고 한다. (한켠에는 처칠의 동상이 있다, 느끼건대 이 광경은 영국이라는 나라의 훌륭함이다.)

 

역사에 무슨 인과가 있으며 필연이 있겠는가.

생각건대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 역사이고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가 아닐까 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

모쪼록 사람에게 도움되고 관계에 유익하라, 문명이여.

 

좋은 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