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오페라 택시, 나무를 심은 사람,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 이발사]] (1,4,3,3,1)

카지모도 2020. 4. 9.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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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오페라택시> <나무를심은사람> <무키우스스카이볼라세대> <이발사>

 

 

<오페라 택시>

-레몽 장 作-

 

***동우***  

2016.03.20 05:47

 

나로서는 처음 읽는 '레몽 장' (Raymond Jean, 1925~2012).

콩쿠르상을 받은 프랑스의 유명한 소설가라는데 인터넷이 없었다면 나같은 사람은 그 이름조차 몰랐을겁니다.

 

휴일에, '오페라 택시'는 유쾌한 소설입니다.

택시의 좌우 문으로 동시에 올라타(파리 택시에서는 가능한가 보지요?) 이루어지는 저런 사랑.

기차 좌석에서의 나란한 동석보다 극적인 인연입니다.

 

파리택시의 불친절한 기사와 택시강도와 뒷좌석의 음란한 작태. 이태리택시의 바가지요금... 우리나라택시 풍속도와 별 다를바 없습니다그려.

 

그러니까 '돈 조반니' 티켓은 몽땅 털어가기 위한 미끼였던가 보지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침대 하나는 남겨 두었으니.

그러믄요,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침대 하나면 언제나 충분한 것이지요.

 

홍세화는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또레랑스를 가르쳐주기도 하였는데, 각 나라의 택시에 관한 에피소드만을 수집하여도 소설 몇권은 나올겝니다. ㅎ

 

택시에 관한 움베르토 에코의 유쾌한 독설 하나 덧붙입니다. (전에 한번 올렸을겁니다)

 

++++

<택시 운전사를 이용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우리가 택시에 오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제기되는 문제가 하나 있다. 택시 운전사를 적절하게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문제이다. 택시 운전사란 온종일 다른 운전자들과 싸움을 벌이면서 차들이 붐비는 속을 요리조리 헤쳐 나가는 일(보통 사람 같으면 심근 경색이나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에 딱 알맞은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지고 사람의 형상을 한 피조물은 무조건 혐오하게 마련이다. 그런 점을 두고 세상 물정 모르는 상류층의 급진주의자들은 택시 운전사들이 모두 파시스트라고 말한다. 이는 그릇된 생각이다. 택시 운전사들은 이데올로기 문제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노동 조합의 가두 행진을 싫어하는 건 정치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시위대가 교통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극우파가 시위를 한다 해도 택시 운전사들의 비난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좌파든 우파든 오로지 강력한 정부가 들어서기만을 바란다. 자가 운전자들은 모두 총살시키고 아침 6시부터 자정까지 적절한 통행 금지를 실시할 정부를 말이다. 그들은 여성을 싫어한다. 그러나 여자라고 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밖으로 나돌아다니는 여자를 혐오할 뿐이다.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다.

이탈리아의 택시 운전사는 세 부류로 나뉜다. 첫째는 주행중에 줄곧 위와 같은 의견을 서슴없이 토로하는 사람이고, 둘째는 몹시 긴장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음으로써 자기의 인간 혐오증을 드러내는 사람이며, 나머지 한 부류는 다른 승객들을 태우고 가다가 겪은 일을 시시콜콜히 이야기하는 단순한 수다를 통해 자기의 긴장을 푸는 사람이다. 이 마지막 부류의 택시 운전사가 늘어놓은 이야기는 인생의 단면들을 드러내는 것이기는 해도 새겨들을 만한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만일 선술집에서 그런 얘기를 늘어놓는다면, 주인은 집에 가서 잠이나 자는 게 좋겠다면서 그를 밖으로 쫓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택시 운전사 자신은 자기 얘기를 매우 놀랍고 신기한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그런 택시 운전사를 상대할 때는 이야기 중간중간에 이런 식의 말들로 장단을 맞춰 주는 것이 좋다. " 원 세상에! 말도 안돼요. 설마 그런 사람들이 있을라고요. 정말 별일이 다 있군요.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이에요?" 그렇게 장단을 맞춰 주는 것은 택시 운전사를 그 우스꽝스러운 자폐증에서 빠져 나오게 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그런 말을 하고 나면 승객의 기분은 한결 좋아진다.

뉴욕에서 이탈리아 사람이 택시를 타는 경우, 택시 운전자격증에서 데 쿠트르나토나 에제포지토, 페르쿠오코 같은 이탈리아 계 성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자신의 국적을 밝혔다간 아주 난처한 일을 당할 염려가 있다. 승객이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운전사는 이탈리아 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잡탕 말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승객이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얼굴이 벌게지도록 화를 낸다. 그럴 때에는 즉시 자기가 아는 이탈리아 어는 자기 고향의 사투리일 뿐이라고 영어로 말해야 한다. 그러면 운전사는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영어가 국어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성난 마음을 누그러뜨릴 것이다.

뉴욕 택시 운전사들의 성을 보면, 대체로 유대 계 아니면 비유대 계 둘 중의 하나이다. 유대 계 성을 가진 자들은 반동적인 시온주의자들이고, 비유대 계 성을 가진 자들은 반유대주의적인 반동주의자들이다. 둘 중의 어느 쪽이든 그들은 단지 주장을 펼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숫제 군부 쿠데타를 요구한다. 또 그들 중에는 더러 성이 중동계 같기도 하고 러시아 계 같기도 해서 유대 인인지 아닌지를 가려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운전사들을 만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말썽이 생기는 것을 피하고 싶으면, "목적지를 바꾸고 싶군요. 7번가와 14번가 모퉁이로 가지 말고 찰톤 가로 가시죠" 라고 말하면 된다. 그러면 운전사는 벌컥 화를 내면서 브레이크를 밟고는 차에서 당장 내리라고 할 것이다. 뉴욕의 택시 운전사들은 번호가 붙은 거리는 알아도 이름이 붙은 거리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편, 파리의 택시 운전사들은 길을 도통 모른다. 생 쉴피스 광장으로 가 달라고 하면 오데옹까지 가서 차를 세우고는 더 이상은 길을 모르겠다며 승객을 내리게 한다. 그러기 전에 벌써 승객은 " 어, 아저씨, 이거 왠지....." 하면서 이따금씩 까다롭게 굴었던 대가로 운전사의 긴 푸념을 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에게 지도를 보라고 권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는 아무 대꾸도 안 하거나 참고 문헌에 관한 정보를 원했다면 소르본 대학의 고문서 전문가에게 문의하지 그랬느냐고 엉뚱한 소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극히 친절한 태도를 보이면서 순환 도로를 세 바퀴쯤 돈 뒤에, 북역이든 동역이든 기차가 많기는 마찬가진데 굳이 북역으로 갈 게 아니라 동역에 내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묻는다.

내가 아는 한 뉴욕에서는 전화로 택시를 부르는 게 불가능하다. 어떤 클럽에서 호출하는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와 달리 파리에서는 택시를 전화로 부를 수 있다. 다만 난처한 일은 택시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편 스톡홀름에서는 오로지 전화로만 택시를 부를 수 있다. 그곳 운전사들은 거리에서 배회하는 자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전화 번호를 알아내려면 돌아다니는 택시를 불러 세워야 하는데, 좀 전에 말했듯이 운전사들이 믿어 주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독일의 택시 운전사들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 그들은 아무 말 없이 그저 가속 페달만 밟아댄다. 그렇게 목적지에 다다르면 승객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택시에서 내린다. 그때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탈리아에 쉬러 오는 독일 운전사들이 추월 차선에서도 한사코 시속 60킬로미터로만 달리는 이유를.

포르쉐를 모는 프랑크푸르트의 택시 운전사와 찌그러진 폭스바겐을 탄 리우 데 자네이루의 택시 운전사가 경주를 벌인다면 누가 이길까? 당연히 리우의 운전사가 이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리우의 운전사는 신호등에 빨간 불이 들어와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리우의 택시 운전사가 적색 신호를 무시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차를 세우면, 그 옆으로 택시처럼 차체가 찌그러진 또 다른 폭스바겐 한 대가 다가들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내 녀석들이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서 택시 승객의 손목 시계를 낚아챈다.

세계 어느 곳을 가든 택시 운전사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잔돈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그가 바로 택시 운전사이다.

++++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 作-

 

***동우***  

2016.03.24 05:42

 

가장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받는 '나무를 심은 사람'은 TV 에서 한번쯤들 보셨을겁니다. <식목일 단골 메뉴였지요, 안보셨다면 유튜브로 한번 보시기를 -

https://www.youtube.com/watch?v=gx5He0CsnAE-

 

그 원작,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 (Jean Giono, 1895~1970) 의 '나무를 심은 사람'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의 텍스트파일 마침 눈에 띄어 올립니다.

 

황폐한 알프스 산간의 프로방스 지방의 황량한 땅에 나무를 심는 노인 '엘제아르 부피에' (Elzeard Bouffier)의 이야기.

진정 숭고하고 위대한 인간입니다. <일인칭 화자가 마치 실존인물의 다큐멘터리처럼 쓰고 있지만 '엘에아르 부피에'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합니다.>

1953년 출간된 이 소설의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나무심기 열풍이 불었고, 유엔에서도 나무심기 운동을 펼쳤다고 하지요.

 

1980년대초, 처음 일본에 출장 가서 놀랍고 부러웠던게 차창 밖으로 보이던 규슈지방의 울울창창한 삼림이었습니다.

그 무렵만 해도 우리나라는 곳곳에 민둥산 천지였지요. <학생적에 군대적에 식목일이면 단체로 산에 올라 나무심기를 하였던 기억..그 때 식목일이 공휴일이었던가..>

작금 우리나라 푸르른 산을 볼때면 그 또한 격세지감입니다.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이라고 합니다.

50년 앞을 내다보고 나무를 심고 100년 앞을 내다보고 사람을 키우라는.

 

눈 앞의 4년짜리 5년짜리 권력에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저 정치판 꼬라지들.

며칠후부터 당장의 민욕(民慾)에 알랑방구 포퓰리즘은 얼마나 기승을 부리려는지.

 

탈북자들, 서해 바다로 탈북할적에는 밝은 불빛을 목표로 하면 되고 중국 쪽으로 탈북할 적에는 푸르른 산을 목표로 하면 된다고 합니다.

북한의 벌거벗은 산. 5년짜리 정권도 아니고 대대로 이어지는 평생권력인데 왜 산에다 나무를 심지 않는지..

삼대까지 연이어 해처먹으면서,

김아무개라는 젊은녀석 대가리를 한대 콱 쥐어박고 싶습니다. ㅎ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

-조반니노 과레스키 作-

 

***동우***  

2016.03.26 04:13

 

주말, '조반니노 과레스키 (Giovannino Guareschi, 1908~1968)'의 유쾌한 소설 한편 올립니다.

'과레스키'는 돈 카밀로 신부와 읍장인 공산주의자 뻬뽀네가 등장하여 포복절도 좌충우돌하는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이 소설은 '까칠한 가족(Corrierino delle famiglie)' 중 한편이라는데, 꼬비에뚜님 댁에서 업어왔습니다.

'까칠한 가족'은 아이들의 무시와 아내의 바가지로 좀 불쌍해 뵈는 아버지 조반니노와 다소 유치하고 몽상적인 어머니 마르게리타, 그리고 똑 부러지는 딸 파시오나리아와 아들 알베르티노, 네식구의 소소한 일상을 발랄한 유머로 풀어놓은 소설이랍니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

'무키우스 스카이볼라'는 고대 로마의 영웅이라는데, 작가는 고통을 인내하는 인간의 표상으로 내세웠을테지요.

 

치과 가기 무서워서 끔찍한 치통을 꾹꾹 눌러 참으면서 가족들에게 한사코 감추려는 어머니.

그리고 자못 현학적인 폼으로 나누는 저 부부의 대사들.. 하하하

그나저나 아이들에게 이빨 아픈게 뽀록 나버렸으니 어쩝니까?    

어른 체면에, 어찌 무서워서 치과에 못간다고 고백할수 있겠어요?

좌우간 집을 나서야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무서워라 치과는!’.

치과는 아니가고 약방에서 약이나 삽니다.

그리고 부부는 영화 한편 때리고 돌아옵니다.

극장에서 먹은 군밤때문에 아버지는 복통이 나고, 어머니는 치통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부부는 끙끙 앓습니다.

 

<마르게리타가 위층 방에 올라가 있는 동안 파시오나리아와 알베르티노가 내게 물었다.

"다 됐지. 아주 길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어. 잇몸을 잘라 내고 뼈를 갈아야 했어."

"엄마는 어땠어요?"

"아주 놀라웠지. 신음 소리도 내지 않았어. 마취를 거부했거든."

내 말에 파시오나리아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취가 뭐예요?"

"수술을 할 때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해 주는 거야."

아이들은 정말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러면 잘라 낼 때 아빠는 보고 있었어요?" 파시오나리아가 물었다.

"물론이지."

"놀라지 않았어요?"

사실 나는 영화관에 가기 전에 군밤 두 봉지를 사서 영화 보는 내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먹었다. 그래서 지금 내 뱃속에는 광포한 표범 한 마리가 들어 있는 듯했지만 용기를 내어 웃어보였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는 그날 저녁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남자는 엄청난 복통 때문이었고, 여자는 끔찍한 치통 때문이었다. 그 대신 용감한 단식과 함께 마취 세대의 완벽한 정신적 패배를 관조할 수 있는 위안을 얻었다.>

 

어쩝니까?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세대의 용감성을 과시하여 마취세대인 자식세대의 야코를 팍 죽여 놓은, 그 정신적 승리감으로 위안을 삼아야지요. ㅎㅎ

 

즐거운 주말을.

 

 

<이발사>

-플래너리 오코너 作-

 

***동우***  

2016.04.01 04:26

 

'이발사' (The Barber)

앞으로 열흘 남짓 남은 20대 총선, 지금 우리에게 시의적절한 소설입니다.

 

'매리 플래너리 오코너' (Flannery O'Connor, 1925~1964)는 미국 조지아주 출신의 여성 소설가라고 하는데, 나로서는 꼬비에뚜님 댁에서 처음 읽는 작가입니다.

 

이 소설, 흑인 대통령은 감히 꿈조차 꿀수 없었던 옛 시절의 미국 남부의 선거 이야기인가 봅니다만 작금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의 우둔한 정신을 바꾸려 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를 뭘로 보시는 겁니까?” 레이버가 소리치고 돌연 이발사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내가 여러분의 무지에 간섭하려는 것 같습니까?”>

 

딜턴(지역 이름인듯)은 자유주의자에게 가혹한 곳, 저 고착된 편견에 매몰된 무리들에게 둘러쌓인 자유주의자 레이버의 좌절과 분노.

 

'나는 흑인편도 백인편도 아니다, 내 정치적 선택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말할 뿐이다'라고 아무리 핏대를 세워봐야 그 벽을 넘을수 없습니다.

 

4월 13일 총선.

우리 역시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 공히 유권자의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호소하려는 경향 완연합니다.

 

사실마저 '우리가 남이가' 라는 패밀리즘의 정서에 왜곡되어 작용하곤 합니다.

권력에 대한 저급한 욕망이 위민위국(爲民爲國)의 정의로 둔갑합니다.

 

한 열흘 동안 얼마나 떠들어들 댈까요만 눈 부릅뜨고 귀밝혀 잘 골라 찍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