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윤대녕]] -1.2- (1,4,3,3,1)

카지모도 2020. 4. 1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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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신라의 푸른 길>

-윤대녕 作-

 

***동우***    

2013.05.11 10:03

 

<그래, 그러나 다시 멋쩍은 타인으로 돌아가 서로 건너편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더운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 그래, 나는 자주 부싯돌 같은 마음을 꿈꾼다. 겨우 환해졌다가는 이내 눈귀를 막고 단단한 어둠으로 스스로 돌아갈 줄 아는......이러한 생각 끝에 나는 조금은 다급한 마음이 되어 먼저 이런 말을 꺼냈다.

"오는 동안에 임해정이 어디란 걸 알았다면 내려서 철쭉꽃을 꺾어드렸을 텐데요."

미수(米壽)인 노인네의 목소리도 이렇게 보리 대궁처럼 껄끄럽진 않으리라.

"!......"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바다에 떠 있는 살구나무 채송화가 눈에 보일 거예요."

그러자 가뭄처럼 쩍쩍 갈라진 수로부인의 목소리가 저쪽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그래요, 바다는 해안선이 있어서 아름다운 걸 거예요. 땅도 아닌 물도 아닌."

이번엔 내가 말을 받았다.

"7번 국도엔 언제까지 버스가 지나다닐까요?"

"사람들 기억 속에서 헌화가가 완전히 잊혀질 때까지는 아마 운행을 계속하겠죠?"

그녀의 목소리가 겨우 가까이 와 있었다.

"나중에 그 막차를 놓치지 않고 탈까 싶네요. 용(龍)도 태워준다면요."

돌연한 그녀의 웃음 소리가 까치떼처럼 귓전으로 날아왔다.

"그럼 버스에서 내려 바닷물에 한번 들어갔다 나와야겠네요."

이렇게 말하며 그녀가 다시 웃었다. 나는 까악까악 귀가 가려웠다.

"그때까진 임해정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놓겠습니다.">

 

<길에 끝이 어디 있으랴. 혹은, 가다 말고 아무 데서나 천막 하나 치면 되지. 너를 어디 가서 만나랴. 거기 천막에 혼자 들어가 문을 닫고 앉아야겠지. 허리를 곧게 펴고 눈을 감으면 보이겠지, 마침내 푸른 사랑도 바다도. 목에서 염주들이 우수수 떨어질 때쯤이면.>

 

윤대녕(1962~ )은 미문(美文)의 작가로구나.

'신라의 푸른 길' (1994년 발표).

나도 젊어 한 때 홀로 경주에서 울진에 이르는 길에다 방랑하는 내 영혼을 눕힌 적이 있었다.

석굴암의 석불 앞에서, 평해의 동해 바닷가에서 나는 소리내어 흐느껴 울었던가.

여물지 못한, 내 유치한 감성이 젖은 몽환(夢幻)으로.

그 때 내 여로(旅路)에 혹여 수로부인 있었더라면, 여적 내 입술에 헌화가(獻花歌) 남아 있을랑가,

 

일상성으로부터의 도피.. 일탈.. 풀림의 미학..

여행, 그것은 사적(私的) 신화(神話)로의 침잠이다.

어느 벗님의 짙푸른 에게해의 바다, 크루즈선상의 댄스파티, 빨간 스타킹의 무도(舞蹈)...

 

나의 투구게, 혹은 해삼에게 신화 있을리 없지만... 꿈이야 못 꿀손가.ㅎ

 

***eunbee***  

2013.05.11 14:31

 

아,

이 글

방금 다 읽었어요.

 

길 위에 떠도는 나

천막 하나 어디에 칠꺼나

 

은비 오두막도 허물어져 가는데...ㅋㅋ

 

윤대녕.

이상 문학상, 뭔 문학상 수상작품 모음집에서

더러 만나던 분.

 

참 좋은 글,

이 새벽이 들뜹니다. 잠깁니다.

 

***동우***  

2013.05.13 05:14

 

나도 은비님.

윤대녕 다른 소설 읽어보았을 터지만, 이 소설 참 좋게 읽었어요.

이 소설 읽으면서 여행에 자주 잠기시는 은비님을 떠올렸더랬지요.

여행, 나는 사적 신화에의 침잠이라고 말했는데.

그 무어랄까.

천국보다 낯 선 그 말랑말랑한 정서.... ㅎ

 

***teapot***  

2013.05.17 00:41

 

미문의 작가라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단숨에 읽어 내려갔답니다.

 

긴여행을 떠나며 비행기안에서 버스안에서 마음 속에 은근히 꿈을 꿉니다.

멋진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젠틀맨은 어디 있는고?ㅎㅎㅎㅎ

 

오래전 버뱅크라는 작은 공항에서 만났던 책을 손에서 놓지않던 멋진 아저씨,

뉴욕가는 비행기 옆자석에 중국으로 출장간다던 아저씨....

다음에 그런 아저씨들 만나면 어떻게 꼭 잡으면 돼나요?

유치하지 않게 쿨하게 붙잡는 비결을 좀~ㅎㅎㅎㅎ

그렇게돼면 소설이 재미없을라나요?

 

***동우***  

2013.05.20 05:13

 

티팟님.

여행의 설레임중 빼놓지 못할 요소가 바로 그것일 것. ㅎ

하하, 그 비결 알았더라면 내게도 기막힌 로맨스 한조각 있었겠지요만..

워쩐대유? 가르쳐 드릴 팁 내게 없으니.. 하하하

 

***eunbee***  

2014.04.19 09:34

 

이글 다시 읽고 가져가요. 동우님.

자꾸만 읽고 싶은 글이라서.^^

 

***eunbee***  

2014.04.19 17:22

 

동우님,

오랜만에 소리내어 글을 읽었답니다. 작은딸을 위해 내가 아직은 남아있는 낭랑?ㅋㅋ한 목소리로

이 글을 분위기있게 읽어주었어요. 작은딸이 다 듣고 하는 말은 '윤대녕은 참 여성적인 감성으로 글을 썼네

그 글 속에서 여러가지 인포메이션도 얻어 듣고...'였어요.

방금 소리내어 읽은 이 낭독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십줄에 들어선 딸을 위해 목소리와 발음에 신경쓰며 엄마가 좋아하는 글을 읽는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었어요. 끝까지 들어주는 딸이 얼마나 이쁜지.

 

쥬스랑 부드러운 카스테라를 가져다 탁자에 놓으며 '수고 했어. 좋은 글 찾아내면 또 읽어주삼~'하네요.

그런데 스크랩해다 두고는 왜 우정 이곳에 와서 읽게 되는지요.ㅎ

이제 토요일 아침시장으로 나가서 몇몇가지 과일과 치즈 등을 살거예요.

 

동우님도 좋은 주말 보내세요~^^

 

***동우***  

2014.04.20 05:26

 

은비댁 모녀.

이쁜 딸이고 이쁜 은비님입니다.

 

그 느낌 느끼려고 나도 다시 읽었답니다.

동해 바다와 땅이 마주치는 그 여로.

그런 느낌, 은비님의 화양연화는 현재형..

 

낯선 여인(아, 무릇 여인의 어여쁨은 언제나 낯섭니다)의 어여쁨.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하물며 여로를 함께 하는 아름다운 여인, 수로부인임에야...

그야말로 수갑이고 마음이야 접착제이겠지요.ㅎ

 

'우정'이라는 말, 참으로 오랜만에 듣습니다.

파리, 전번 알려주세요.

은비님께 우정 청합니다. ㅎㅎ    

 

***eunbee***    

2013.05.11 13:30

 

이 새벽

침상에 누운채

'은비님의 화양연화는 현재형'이라는 말에서부터 눈시울 젖어왔지요.

 

아니걸랑요.

허허로움에 겨운 탈출이지요.

 

나는 꿈꿉니다.

이루어지지 않는다해도...

내 세상에 자라고 있는 내가 꿈 꾸던 화양연화를...

 

***동우***    

2013.05.13 05:11

 

하하, 나이 탓이올시다.

나도 그래요.

본시 눈물이 헤픈 편이지만, 나이 들수록 걸핏하면 눈시울이 젖어들곤 하지요.

아득하고 서러운 느낌의 <그 화양연화> 뿐이리까.

요즘 새벽 성서와 종교서적을 좀 읽는데,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비어져 나와요, 글쎄. ㅎ

 

sunrise sunset 을 부르는... 조금 처연한 기분 있을지라도,

아뭏든 화양연화는 우리 사는 동안 우리 것일지니, 그 감성 잃지 맙시다그려. ㅎ

허허로움 탈출 운운보다, 은비님의 '아니걸랑요'는 빨간 매니큐어적 매력 넘친다우. 핫핫핫.

 

***eunbee***    

2014.04.20 06:03

 

이 주말이 끝나면 오랑주에 가서 내 스마트폰으로 통화되도록 신청할까말까 합니다.

사실 아무하고들 통화가 절실하지 않으니 신청하지 않았거든요.

우리 애들은 집전화로 하면, 무료로 통화되니까, 고향집이나 친척들에겐 집전화로 하고

(형제들과 긴긴 수다 늘어놓지요) 아들 며느리랑은 톡으로도 만족하고(워낙 통화를 즐기지 않으니)

동우님과의 통화는 바랄 수도 없는 일일 것 같아, 여기서 개통 신청 하지 않았어요.

통화는 사위 전화로 쓰고 있는데, 내 전화도 개통해볼거나. ㅎㅎㅎ

 

 

 

-독서 리뷰-

 

[[윤대녕]]

<지나가는 자의 초상> <낙타 주머니>

 

 

<지나가는 자의 초상>

-윤대녕 作-

 

***동우***

2015.08.23 04:56

 

황석영 선정 한국명단편 101

윤대녕 (1962~ )의 '지나가는 자의 초상'

 

나의 서른다섯, 그때 나는 스물일여덟 무렵의 어떤 연애를 떠올렸을까. 

소설 속의 '동우'라는 이름, 1988,89년 즈음 자신을 스쳐지나갔던 두 여자를 회상한다. (은비님은 두 여자중 '은애'라는 이름에서 옛날을 떠올리셨나보다.)

 

<그 적막한 시기의 한가운데서 나는 누군가를 만났던 것>이다.

 

남자 만이 아니라 '김은애'와 '서하숙'의 그 시기도 매우 적막하였다.

그리고 그녀들도 그 적막함에 잠긴채 '누군가'를 만났던 것이다.

젊음의 '적막'은 외로움에 다름 아니다.

외로움으로 불안한 존재를 서로 투사하여 서로 기대기를 시도하는 것, 그것이 연애다.

저들의 만남은 필경 연애일수 밖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긋난다. 

어긋나기에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이름 부른다.

완벽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완전'이다.

삶에 완전이 없듯이 사랑에 완전이 어디있나. 

모두 변하는 것들, 모두 지나가는 것들, 모두 사라지는 것들.. 

 

동우는 비오는 하수관에서 저토록 처절한 서하숙을 데리고 모텔로 데려가 육체를 나누었어야 옳았고, 강릉에서 김은애와 밀회를 즐겼어야 옳았다. 

 

사람들은 그때 내 이름을 빗대 날더러 '이상한(헌) 놈이라고 하였는데 저들은 더 이상한 사람들일세그랴.

들끓었던 나의 파토스에 비하여 저들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식물적이지 않은가.

명확하게 방향을 지향하여 주는 더듬이 한쌍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사람 뉘 있을까.

대충 방향을 잡아 대강 절실하게 어영부영 나아가면 될 터이다.

만남과 헤어짐과 허망함.. 연애를 저토록 매가리없이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나.

마치 지레 늙어버린, 벤자민 버튼의 시계처럼 거꾸로 나이를 먹는 사람들 같다.

살아있다는 정체성 찾기가 무에 그리 절실할까.

존재에 대하여 어떤 확고한 에비던스가 있어야하기에, 그 증거를 못찾아 무에 저토록 허무와 권태로움에 숨막혀 할까.

서른도 안된 사람들이. 

나 역시 그 증거는 호리도 없었지만, 나의 허세는 적어도 저들보다는 훨씽 강하였었구나.

 

김은애는 아이를 유산하였고 어머니는 죽었다.

핏줄 마저 잠시 반짝였다가 지나가는 것들이다.

 

<이제부터 증거도 이유도 없는 삶을 어찌 살아낸단 말인가. 아, 다름아닌 어머니조차도 남들처럼 한갓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리하여 저 '동우'는 살이를 제법 터득하였을까.

 

<나는 세상 살아가는 방법과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빨리빨리 터득해갔다. 결혼에 대해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는 일이 많아져서 이른바 맞선이라는 걸 보기도 하고 턱없이 거리를 지나가는 여자들까지도 함부로 눈여겨보곤 했다. 그런 식으로 나에 대한 증거를 부지런히 늘려가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뒤늦게 인생이란 걸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술에 취해 들어와 어둑한 방 한가운데 멀뚱히 서서, 바위가 빠져나간 논바닥의 캄캄한 환영을 목도하며 까닭 모를 적막감, 고독감에 사로잡혀 몸을 떨곤 했지만 말이다.>

 

캄캄한 공허, 까닭모를 적막감, 고독감.

삶이란 술자리에 묻어오는 술꾼과 같은 것.

삶이란 영겁의 한순간을 토막내어 허여(許與)된 한순간 반짝이는 '흥분'이다.

 

<오랫동안 마음의 헛간에 처박아둬서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슬어 있던 열정이라는 것이 그렇듯 우연찮은 순간에 조용히 나를 흔들며 지나갔던 것이다. 아, 인생이란 이런 덧없는 흥분의 한때를 가리키는 것이었구나.>

 

지나가는 것들은 조금도 '나'를 덧붙이지도 마모시키지도 못한채 그냥 지나가는 것들이다.

스쳐 지나가고나면 잠시 슬펐을 뿐이다.

사람은 그 슬픔의 힘으로 견디면서 살아간다.

 

<서하숙 서하숙. 떠다니는 섬. 안과 겉, 어제와 오늘이 어긋나 있는 여자. 가슴에 젖빛 안개가 낀다.>

 

다 커서 누가 기억하랴.

어린 시절 흑백 티브이에서 보았던 동물의 왕국을.

 

<흑백 티비의 콧김을 쉭쉭 내뿜기도 하고 털이 북슬북슬한 머리를 내 잠든 얼굴에 부벼대기도 하고 혹은 방귀를 뀌기도 하면서 말이야. 아, 그 꿈은 얼마나 황홀했던지. 그들은 내가 잠든 동안에만 그렇게 찾아왔다가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리곤 했던 거야.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누가 얘기해주련?>

 

기억 속의 다락, 거기 낡은 서랍 속에 이미 쓰고 난 영화표 한장 남아있다.

영화표에는 줄리앙 듀비비에의 옛 필름처럼 아름답고 슬픈 영상이 담겨져 있다.

 

그 환영을 누가 내게 얘기해 주련?

기꺼이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마.

늙어 이제서야.

 

<나는 춥고 캄캄한 곳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앉아 있었다. 누가 나를 거기로 불러들였는지 알지 못한 채. 사위는 바다 밑바닥인 듯 온통 코발트빛 어둠에 감싸여 있었다. 내 손에는 불과 오 분 전에 읽다 만 잡지가 들려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던가. 열람실에서 책을 보다 말고 나는 급한 전갈을 받은 사람처럼 이곳 창고로 달려 내려왔던 것이다. 그곳엔 이제 곧 사라져야 할 것들. 아니 이미 사라진 것들이 차곡차곡 잠들어 있었다.

하나는 북극해에 살고 있는 돌고래를 찍은 사진이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연초록의 바닷물 속에서 하얀 돌고래떼가 흰 무처럼 떠서 유영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곧 이 지구의 주인이기나 한 양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미국 옐로스톤 지대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들소의 사진이다. 벌판에 분필 가루처럼 내리고 있는 들소의 사진이다. 벌판에 분필 가루처럼 내리고 있는 눈. 멀리 성냥개비를 꽂아놓은 것 같은 헐벗은 숲엔 가득히 눈이 내리고 있다. 그 먼 곳으로부터 웬 들소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다. 들소는 온통 눈에 뒤덮여 있다. 길을 잃은 듯, 들소는 내 방문 앞까지 와서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이윽고 그대로 멈춰 선다. 그러고는 영원해... 움직일 줄을 모른다. 누가 문을 열고 나와주기를 기다리는 듯, 누가 저를 스치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듯. 도서관을 그만두던 그날 나는 오후 내내 지하 창고에 앉아 있다가 여섯시가 돼서야 광부 같은 얼굴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텔레비전 속은 너무 캄캄해, 라고 중얼거리며.>

 

덧붙인 그림은 인터넷에서 주어왔다.

'제이 머슬러'라는 유리공예가의 작품은 맞는데 이게 '도시 풍경'인지는 미상이다. (소설속 묘사가 비슷하기는 한데)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유리 공예의 질감과 색감은 아름답고 도회적이다.

도발적이면서 차가운 슬픔이 흐른다. 

 

캐니 지의 색소폰.

적막한 거리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는데 짙은 놀이 젔다.

 

***홍애(虹厓)***  

2015.08.26 00:16

 

부산의 태풍 소식을 먼 곳에서 봅니다.

지도로는 지척인 그곳이지만

지도의 몇 배를 해야 정말 그곳까지 미칠까 알지 못하니

가까운 곳 부산, 동우님 사시는 부산, 영화제를 하는 부산으로만 지도를 읽습니다.

오늘 보내고, 내일을 이 집에서 보낸 후에 모레는 나리타공항 근처에서 묶고 글피 아침에는 제주가는 비행기에 오릅니다

어디를 가도, 동우님 만나는 일이야 이곳 화면 상에서 뿐이지만

서 있는 곳에서 부산을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므로 같은 화면은 아닙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곳엔 태풍이 불고

이곳은 아무 것도 모르는 표정의 소녀처럼 조용히 땅을 겨우 적시는 정도로 비가 내립니다.

이곳 소식은 그저 그뿐입니다.

 

이 포스팅 어느 문장에 비가 있으니 비 소식을 전하는가 봅니다.

 

어쩌다 방명록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세건 님과의 해후, 보기에도 반갑습니다.

동우님 표정이 보이는 듯해서겠지요.

 

***┗동우***  

2015.08.26 06:09

 

홍애님.

태풍.

시시하게 지나갔답니다.

 

드디어 귀국하시는군요.

또 몇 아름의 책보따리, 안봐도 비디오지요.ㅎ

 

호호야님도 서민정님도 도치님도 민욱아빠님도 손바닥화면 페이스북으로 근황은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저 눈팅의 세월이랍니다.

SNS도 그렇거니와 블로그에도 댓글하난 남기지 않고서리.

 

英材 하나양은 교환학생으로 파리에서 1년동안 공부하고, 그 어머니께서는 인형만들기에 여념없으시고, 외과의사께서는 새집들이하여 병원도 옮기시고, 미국의 서민정님은 2번째 잉태를 꿈꾸시고, 설레임님은 새가게 성업중이시고..

 

돌아오시면 자주 뵙지요, 화면상으로라도.

 

 

<낙타 주머니>

-윤대녕 作-

 

***동우***

2017.01.25 04:32

 

친구.

서른 네살 동갑내기.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습니다만, 때로 어떤 죽음은 때로 용납할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절이라거나 자살, 또한 요절이면서 자살 같은 죽음.

용납할수 없을뿐, 그러나 그 죽음을 욕할수 없습니다.

 

죽기전 남긴 친구의 편지.

 

<비단길. 그 추운 폐허의 고성 앞에서 함께 서 있을 때 우린 보았지. 멀리서 당나귀를 탄 노인이 다가오는 것을...이제와 고백하건대 그때 나는 알았네. 내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 노인은 내 숨을 거두러 왔던 거야. 낙타 주머니를 들고 말일세....노인이 검은 당나귀를 타고 왔을 때 비로소 나는 편안하게 체념할 수 있었네. 그후 오히려 긍휼한 나날들이 무려 4년이나 흘러갔지....이렇게 오래 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네. 마지막 4년 동안 친구는 자네 하나뿐이었네....기억하고 가리. 또한 자네가 아니었다면 전시회 따위는 열지도 않았을 걸세. 혹시 알고 있었나?....남은 시간이 별로 없음을 느끼네. 며칠 전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정성껏 목욕을 하고 옷부터 다려 입네. 요즘 꿈속에 당나귀를 탄 노인이 자주 나타나는 걸 보면 이제 다된 거야....>

 

가라, 이제는 더이상 힘들게 벽에 기대 서 있지 말고 제대로 편히 눕거라....

 

죽은 친구의 粉骨이 뿌려진 북한산 대남문.

산 친구는 대남문 마루에 홀로 앉아 아침이 올 때까지 이슬을 맞으며 밤을 지새웁니다.

 

<이봐, 잘 있는 건가? 별들이 무수히 깔려 있는 하늘 어딘가에 오늘도 잘 계신가? 거기도 때 되면 기러기떼 날고 눈 내리나? 우리 곧 또 만남세.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지금 얘기해. 그때 가져가리. 저번에 들러 물어보니 청진동 해장국 포장도 해준다더라. 우리 뜨거운 해장국 나눠먹으며 맑은 하늘가에 나란히 붙어앉아 그때 못한 낚시 한판 하세. 거기도 붕어 있지? 그럼, 오늘은 이만 끊으이. 아 참, 낙타 주머니는 여태 잘 가지고 있으니 염려말게. 거 왜 있잖아, 낙타 가방 말이야.>

 

서사보다 이미저리의 긴밀성

윤대녕(1962~  )의 미문은 쓸쓸하고 아픕니다.

일흔의 늙은 가슴에도.

 

누군가를 생각하며 울었던 기억 있는가요.

나 간 후, 생각하며 울어줄 가슴 있을까요.

 

아, 그러나 당신과 나.

살아 부싯돌같은 마음있어 우리의 그 간격 아름다웠노라고..

 

<그래, 그러나 다시 멋쩍은 타인으로 돌아가 서로 건너편에 서서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어른거리는 당신의 더운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멀찍한 거리에서 우리는 만난다. 가끔은 팽팽해지기도 하고 느슨해지기도 하는 그 거리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기 위하여. 우리는 모두가 타인이며 또한 이렇게 모두가 타인이 아니다. 그래, 나는 자주 부싯돌 같은 마음을 꿈꾼다. 겨우 환해졌다가는 이내 눈귀를 막고 단단한 어둠으로 스스로 돌아갈 줄 아는......'신라의 푸른 길' -윤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