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돌아오지 않는다> <절대적 언론자유>
<돌아오지 않는다>
-프레드릭 포사이드 作-
***동우***
2013.07.13 05:04
주말의 읽을거리, 추리소설.
'프레드릭 포사이드' (1938~ , Frederick Forsyth)의 '돌아오지 않는다'를 올립니다.
'자칼의 날'을 쓴, 일급 추리작가.
‘자칼의 날’은 그의 데뷔작으로 한 킬러의 드골 암살시도를 그린 소설인데 되게 재미있어요.
리처드 기어가 출연하는등 몇번 영화화 되었는데 나로서는 영화보다 소설이 훨씬 낫더군입쇼..
그의 작품 '어벤저' '제왕'등이 떠오르고, 포사이드는 '오페라의 유령' 속편을 쓰기도 하였다지요.
권태로운 거부(巨富) 사업가 '샌더슨'은 생애 처음으로 진짜배기 사랑에 빠져 버렸네요.
‘죽음이 갈라 놓을 때까지’ 자신의 남편에게 일편단심 민들레인 유부녀 '안젤라 소머즈'를 향한 불타는 연정.
++++
<유월 초 그는 안젤라 소머즈를 획득하기로 결정했다. 그 방법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계속 그의 뇌리를 맴돈 '기도서'의 한 구절이 있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때까지'.>
소설의 전반은 샌더슨이 소머즈를 향한 사랑의 감정과 그녀의 남편을 청부살인하기 위한 복잡하고 치밀한 구상과 하나하나씩 실행에 옮기는 과정, 그리고 후반은 코르시카인 킬러 '칼비'의 프로페셔널한 완전범죄의 디테일한 행각이 시시콜콜 그려집니다.
이 소설의 태반을 이루는 묘사는 오로지 '샌더슨의 사랑의 획득'에 그 목적이 있음은 두말할 나위 없겠지요.
그 목적을 위한 장황한 서사는 그러나 말짱 도루묵이 되고 말지만 말입니다.
<다음날 밤 두 사람은 미롤랭 거리에 있는 바에서 살인자와 의뢰인으로 만났다.
칼비가 전날 밤 발렌시아에서 파리로 돌아와 다음날 아침 영국인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샌더슨은 당장 파리로 달려왔다.
의뢰인은 초조한 모습으로 잔금 2천 5백 파운드를 건네주었다.
"아무 문제 없었겠지요?"
그가 다시 묻자 코르시카 인은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간단했소. 그 소령은 죽었어요. 두 방은 심장에, 그리고 한 방은 머리를 뚫었소."
"아무도 본 사람은 없었겠지요?"
영국인은 다시 물었다.
"어떤 목격자도?"
"없어요."
코르시카 인은 돈뭉치를 안주머니에다 툭툭 밀어 넣고 일어섰다.
"하긴 마지막에 방해받을 뻔한 일이 있기는 했지요. 비가 몹시 퍼붓는 바람에 몰랐지만 누군가가 들어와서 내가 시체 옆에 있는 것을 보고 말았지요."
영국인은 공포로 사로잡혀 그를 노려보았다.
"누가?"
"어떤 여자였소."
"키가 크고 갈색 머리의?"
"그래요. 아주 미인이었소."
살인자는 의뢰인의 얼굴에 떠오르는 경악에 찬 표정을 내려다 보고는 툭하고 그의 어깨를 쳤다.
"걱정할 것 없어요, 선생."
그는 안심시키듯 말했다.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거요. 그 여자도 역시 쏘아버렸으니까.">
++++
“그 여자도 역시 쏘아버렸으니까”
마지막 한 소절의 기가 막힌 반전.
<절대적 언론자유>
-프레드릭 포사이드 作-
***동우***
2017.06.17 04:24
주말입니다.
일급 추리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 (Frederick Forsyth, 1938~ )의 소설, '절대적 언론자유'.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사회성 짙은, 액추어리티한 소설입니다.
이른바 황색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우리나라에는 '기레기'라는 시쳇말도 있지요.
막강한 언론권력.
하인리히 뵐은 그의 소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막강한 절대 권력도 그들만큼 항상 권력을 마구 휘두르지 않는다."고.
과연 언론의 기사는 모두 'fact' 인가요.
언어란 불완전한 것입니다.
얼마든지 사실을 가공하여 현상을 왜곡할수 있습니다.
어떤 팩트에 대하여 언론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문장을 가공하여 스리슬쩍 섞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언론의 뜻대로 판단하기를 유도하는 것이지요.
나치의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다지요.
“나에게 한 문장만 달라. 그러면 누구든지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고.
언론의 부실한 자기검열, 그것을 정치권력에 맡긴다면 그 폐해는 더 할 것입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의 야합은 무서운 것입니다.
제고(提高)된 국민의식이 눈 부릅 뜰 밖에.
그리고 사법제도.
도리(道理)와 법리(法理)가 늘 일치하는 건 아니더군요.
부동산 하면서 나도 몇번 송사에 말린 적 있습니다만 '승소(承訴)하고 쪽박찬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게 아니랍니다.
브랜트의 코를 쥐어박고, 그것을 빌미로 하여 법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공포(公布)하고 브랜트를 엿먹이는 채드윅.
하하, 영리합니다 그리고 통쾌합니다.
좋은 주말을.
-독서 리뷰-
<사랑은 오류>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 <인간계산기>
<사랑은 오류>
-맥스 슐만 作-
***동우***
2013.10.18 07:08
미국작가 맥스 슐만(Max Shulman, 1919~1988) '사랑은 오류'
짜릿하도록 유쾌한 소설입니다.
논리학.
유비추론의 오류, 일반화의 오류, 인과적 오류....
먹물들은 곧잘 논리를 코에 걸고 상대를 공박하지요.
그건 논리적이지 않아, 논리학적 모순이야, 논리가 성립되지 안찮아...
그런 논리학으로 무장한 지적 똥폼에 대한 통렬한 야유.
'사랑'이라는 감성세계가 어디 논리적 추론으로서 설명될수 있는 장르입니까?
하하, 패러독스의 탁월한 논리학 강의입니다.
<'왜 술을 마시는거죠?' '부끄러워서.' '무엇이 부끄러운 데요?' '술 마시는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술꾼 대목에 나오는 저 순환논증의 오류
술마시는게 부끄럽고 그 부끄러움 때문에 슬을 마신다는 저 무한반복회로.
전제가 결론이 되고 결론이 전제가 되는 비논리의 전형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술꾼들에게 한번 물어보십시오. (나도 술꾼입니다만.ㅎ)
저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술꾼의 감성밭입니다.
좀 다른 얘기.
사실관계에 근거한 논리가 주도하는 토론.
나는 토론프로를 즐겨봅니다만, 상대방이 감정에 겨워 얼결에 발언한 언어문장의 오류를 지적하여 그 지엽적 승리에 낙낙해 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지엽에 함몰되고 나면 나무만 남고 숲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지요.
<현자(賢者)는 문맥을 비판하고 범자(凡者)는 문장을 비판하며 둔자(鈍者)는 단어를 비판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건 둔자(鈍者)들의 이전투구가 아닐수 없습니다.
웃기는 짬뽕의 토론, 얼굴 붉히다 흐지부지... ㅎ
그리고 논리적 추론으로 헤아릴수 없는 것이 어디 감성세계뿐이겠어요?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어디까지나 논리에 근거하지 않으면 혼돈이겠지요만, 우리의 현상계(現象界)가 오로지 논리적으로 파악되는 세상입니까?
국가 사회 조직 관계에 있어서 추론상으로 잘못된 현상은 수두룩합니다.
삼단논법의 파괴나 관련성의 오류는 도처에 분분합니다.
힘에 의하여 경제에 의하여 권력에 의하여 팔자에 의하여.
느끼건대 섭리(자연)조차도 추론상 오류투성이입니다.
맥스 슐만의 탁월한 에스프리. ‘사랑은 오류’
정말 유쾌합니다.
부조리 운운.. 포스트모더니즘 운운... 어쩌구하기에는 힘이 부처서 횡설수설합니다만. ㅎ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
-맥스 슐만 作-
***동우***
2015.07.18. 05:03
주말의 즐거움을 위하여.
'맥스 슐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여자'를 올립니다.
유머.. 에스프리..
미국작가 '맥스 슐만' (Max Shulman, 1919~1988)은 유쾌하기 짝이 없는 작가입니다.
전에 올렸던 '사랑은 오류'
그 소설에서의 '패러독스 논리학'은 얼마나 짜릿한 지적(知的)인 상쾌함이었습니까?.
맥스 술만은 내 어머니와 동갑인 1919년생.
그러나 내 선대(先代) 또래와는 너무도 달랐던 저 무렵(1940년대 초쯤 될까요) 미국의 청춘입니다.
예사롭게 나누는 키스, 데이트 소품으로 흔히 등장하는 자동차, 다이나믹하고 섹시한 자이브 춤으로 질펀한 댄스파티가 떠오릅니다. (코리아의 가난뱅이들에게는 영화로 너무나 익숙한 광경들이지요)
그러면서도 청교도가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의 면모도 잃지 않았습니다.
저때까지만 하여도 젊은이들 데이트 형식은 사뭇 반듯했을 겁니다. (진지한 애국심도 있었군요)
여자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하고, 여자집으로 데리러 와서 늦기전에 반드시 집까지 바래다 주어야 하고.
그런데 자기에게 대쉬하여 한창 데이트가 무르익는 상대가 자신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놈팽이라면 무슨 믿음이 가겠어요?
여자의 이름을 알아내기 위하여 노심초사하는 '도비 길리스'.
그런데 여자 이름 알기가 저토록 지난(至難)해서야 어디... ㅎ
<"농담하니? 내가 본명을 밝히지 않은 건 너도 잘 알잖아... 어머, 도비! 왜 그래! 왜 머리를 벽에 부딪치고 그러니!">
640달러의 거금을 희사하면서까지 저토록 분투하였건만.
겨우 알아낸 이름 '메리 브라운'.
그마저 아버지에게 들키지 않기위하여 사용한 가명이었군요.
쯧쯧.
바라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것도 역시 머피의 법칙이겠지요.
장마구름 속에서도 여름은 무르 익어갑니다.
좋은 주말을.
<인간계산기>
-맥스 슐만 作-
***동우***
2016.06.19 08:47
맥스 슐만의 ‘인간 계산기’
얼마나 유쾌한 소설인가.
캐릭터의 절묘한 대비감, 재치있는 구성, 새끈한 묘사....
두 세대도 더 전의 이야기인데도 현대적 감각에 조금도 꿀릴것 없는, 멋들어진 에스프리 넘치는 소설입니다.
얼마전 '로버트 드 니로'가 어느 예술대학 졸업식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고 하지요.
"졸업생 여러분은 해 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좆 됐습니다."
여기서 좆을 남성 성기를 비칭(卑稱)하여 빗대는 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ㅎ
도비 길리스(맥스 술만의 소설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이지요)가 시(詩)를 쓴다고 했을 때 우리의 글래머 포피가 "시를 쓰니? 먹고 살기 힘들겠구나"한, 세상 살기 빡세게 마련인 바로 그런 메타포로서의 좆입니다.
회계사도 변호사도 의사도 아닌 한낱 깽깽이 연주가나 그림쟁이나 조각쟁이, 그런 토끼의 주제꼴 밖에 되지 못한 포피의 형부들을 지칭하는, 세상살이에서 별볼일 없는 그런 좆이지요. ㅎ
도비는 포피와는 다른 종족의 인간형이었지만 팔등신 글래머 그 황홀한 매혹 덩어리를 외면할 수 있는 청춘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포피의 몸매였다. 단지 몸매 뿐이었다. 그녀의 매력은 오로지 신체적인 데에 있었다. 심적이나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우리는 몇 광년만큼이나 떨어져 있었다. 나는 예민했고 그녀는 둔했다. 나는 낭만주의자였고 그녀는 상업주의자였다. 내가 플루트라면 그녀는 트럼펫이었다. 내가 해묵은 상아라면 그녀는 스테인리스 스틸이었다. 그러나 미의 숭배자였던 나는 그녀에게 저항하지 못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황홀할 정도였기 때문에 그것을 다 숭배하려면 또 한 사람의 남자가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균형미, 허벅지의 선, 음악과도 같은 움직임, 폭 꺼졌다가 다시 솟아오르는 몸의 굴곡..... 이 모든 것들 앞에서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는 순간 바로 미쳐버린 것이다.>
그래도 우리의 도비 길리스는 기꺼이 토끼가 되었습니다.
팔등신 글래머는 놓쳤더라도 못생긴 시인으로서 자족합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를 골랐다. 그녀는 로라 맥카슬론이라는,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인이었다. 우린 함께 있으면서도 매우 행복했다. 눈요기의 대상은 되지 못해도, 그 영혼은 얼마나 뛰어난가! 얼마나 뛰어난가!>
그리고 이 담에 도비 나이들면, 또 하나의 스네이스 교수가 되어 있을겝니다.
<교수는 체구가 그렇게 당당하지는 못했다. 그는 자그마하고 구부정한 사람이었다. 우둘투둘한 머리통 위에는 단지 몇 가닥의 백발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눈은 마치 구슬 같았고 코는 지나치게 길었으며, 앏은 입술은 곡선을 그리며 축 처져 있었다. 낡은 푸른색 양복은 반질반질하니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마치 영구차의 표면 같았다.>
확실히 사람에게는 타고난 기질이라는게 있습니다만, 고등학교 때 문과 계열과 이과 계열의 단순구분은 참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과목에 대한 취향은 어떤 계기(선생,독서,친구,영화,신문,방송,인물,퐁조...)에 따라 매우 가변적인 것입니다.
예비과정 같은게 있었으면 하는 바람 없지 않습니다. <환경 조건등에 두루 무지(無知)한 나의..>
음악과 수학뿐 아니라 통유적으로 예술과 과학은 상통합니다.
나는 인간형을 좌뇌형과 우뇌형으로 나누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가지만, 인문적 혹은 이과적으로 나눌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손주들 전공 선택 즈음이면 세상의 가치관과 개성에 대한 가늠자는 많이 달라져 있을겁니다.
외향적 사고형, 내향적 사고형, 외향적 감정형, 내향적 감정형, 외향적 감각형, 내향적 감각형, 외향적 직관형, 내향적 직관형...
'칼 구스타프 융'이 인간의 유형을 <대체로> 나누어 본 것입니다.
한 인간의 퍼스낼리티는 시기(時期)와 환경의 작용에 따라 다르게 형성됩니다.
퍼스낼리티는 일생동안 분화하고 통합하고 초월하여 개성화되는 것입니다.
개성화는 페르소나 아니마 그림자등 집합무의식의 태고유형과 개인무의식의 컴플렉스가 작용하는 과정이라고 <합디다.>
그리고.
소설에 등장하는, be동사 to부정사 shall과 will의 용법과 용례같은 것들..
손때만 묻혔었지 한번도 제대로 독파하지지 못한 옛날 참고서 '삼위일체 영문법'이 떠올라 골이 지끈합니다.
이런 소설을 읽을때 마다 나는 원서로 읽고 싶은 욕망이 외국어공부 후회와 함께 엄습합니다만 이제 와 어쩌겠어요. 좋은 번역이나 바라야지요. ㅎ
느긋한 일요일 아침.
잡설이 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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