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생텍쥐페리 <어느인질...젊은 날의.. 어린 왕자의추억..다시만난 ..> (1,4,3,3,1)

카지모도 2020. 4. 24.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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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생텍쥐페리]]

<젊은 날의 편지>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날의 편지>

-생텍쥐페리 作-

 

***동우***

2013.04.08 05:21

 

어제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앙드레 드보'가 쓴 생텍쥐페리 평전(評傳), '신 앞에 선 작가'(우리말 제목: 사막에서 별까지)를 다 읽었다.

주로 인간관과 종교관을 중심으로 서술하였지만 '쌩떽스' (조금의 깊이나마 느끼게 되었으니 이제 그의 애칭 '쌩떽스'로 부르련다.>는 한결 내게 가까워졌다.

 

'젊은 날의 편지'는 직전 포스팅한 '어린 왕자의 추억'을 쓴 '르네 드 쏘씬느'(리네뜨)에게 쓴 생떽스의 서간문이다.

쌩떽스가 남프랑스와 서북부 아메리카, 남미 등지를 비행하면서 느낀 흥분과 감동의 세계를 여자친구에게 편지의 형식으로 이야기한 것인데 곳곳의 문투로 보아 부치지 않은 독백의 글도 있음직 하다.

 

평전을 보니 '리네뜨'는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만만하고 편한 마음으로 자신을 내보일수 있는 있는 몇 안되는 대상중 한사람인가 보았다. (문학적 동지의식과 더불어 사랑의 감정도 없지 않았던듯..)

 

대체로, 내용과 맥락잡기가 수월치 않은 편지이다. (독백투로 웅얼웅얼하는 대목도 있고... 비약도 심하고... 리네뜨는 완벽하게 알아 들었을까.)

그나마 평전을 읽어서 나로서는 쌩떽스의 생각의 가리사니를 어렴풋이나마 잡는다 하지만... 재미는 없을 것이다.

 

여행길에서도 문학에의 열정과 사유와 고독과 동심....

 

쌩떽스의 면모를 슬쩍 엿보는 것으로 만족해 주시기를.

이를테면 부조리의 연극의 대가 다다이스트 '필란델로'와 같은 전위적인 극작가에 대한 폄훼와 전통적 자연주의 극작가 '입센'에 대한 평가... 축적된 문화에 대한 신뢰..느닷없는 사조에 대한 혐오감.. 보수꾼의 면모... 그러면서도 진보적인 생각의 편린들...

 

***eunbee***

2013.04.08 22:50

 

알레칸테, 탕헤르, 카사브랑카, 부에노스아이레스...

내가 발자국 남기며 눈에 익힌 지명들과 '내 미소는 세마디의 에스파니아어를 대신합니다' 등의 상황, 마치 내가 동우님께 편지를 쓰고 있는 듯한 어처구니없는 착각마져 마져드는...

은유인지..오역인지..의역인지..너무나 아리송한 문장의 편지.ㅋㅋ

 

암튼 동우님 덕분에 귀한 글(내가 찾아 읽을 수 없었을) 잘 읽었어요.

늘 감사, 또 감사 *^&^*

 

***동우***

2013.04.09 06:20

 

알레칸테, 탕헤르, 카사브랑카, 부에노스아이레스...

저 편지의 문장들은 좀 아리송하시겠지만. (분명 번역의 문제도 없지 않을 것)

은비님은 쌩떽스 여정의 정취는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익숙하실듯. ㅎ

 

***teapot***

2013.04.17 00:55

 

쎙떽스는 주제를 정해 글을 쓰기를 좋아했나 봅니다, 쓸말이 너무 많아서 한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려 했었는지요?~ㅋ

길 떠나가 있는 내 애인이 이처럼 편지 써온다면 저 같아도 답장은 안할랍니다~ㅎㅎㅎㅎ

왜 "비행기를 타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목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고 했을까요?

묵은때 다 벗고 산뜻한 느낌이 드나 봅니다.

 

조금은 같이 여행 떠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우***

2013.04.17 06:11

 

리넷뜨라는 여인은 쎙떽스에게는 참 편했던 여자였던가 봐요.

이 편지들 중 부치지 않은 편지도 많앗다지요? 그러니까 이것도 일종의 독백이 아니었겠는지.. ㅎ

 

비행기를 타는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목욕하는 것과 마찬가지"

서양인의 목욕 느낌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정화(淨化)를 의미하는거 아닐까요?

쌩떽스에 있어 비행이란 정말 유별난 것이었으니까요.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생텍쥐페리 作-

 

***동우***

2013.04.09 06:03

 

목전에 닥친 암흑을 짐짓 인식치 않으려는 리스본.

그곳에서 쌩텍스는 편지를 쓴다.

나치에 짓밟혀 볼모가 된 조국 '파리'에게.

 

저 인간성을 향한 성찰.

얼마나 따스하고 아름다운가.

 

아, 그렇구나.

미소.

인류의 연대, 인간성의 책임과 사명.

그 한아름 미소에 있음을.

 

물질주의, 권위주의, 민족주의, 인간주의, 허무주의 ,사변주의, 쾌락주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한탕주의, 먹고주의.......그 이즘 이즘들.

거기에 한 줌 인간의 미소... 있는가.

 

나의 ‘리딩북’ 읽어 주시는 벗들이여.

그대들은 나의 성자라오.

 

***동우***

2013.04.09 06:14

 

아무리 완벽한 것이라도 번역이란 무언가 미진합니다.

 

물론 나는 프랑스어에 까막눈.

인터넷 검색, 마침 눈에 띄어 복사해 올립니다. 순 허영이지요. ㅎㅎ (혹여 파리의 뉜가는.. ㅎㅎ)

 

++++

<어느 인질에게 보내는 편지 ( Lettre a un otage ) 중에서>

-Antoine de Saint-Exupery(1900~1944)-

 

Cette qualite de la joie n’est-elle pas le fruit le plus precieux

de la civilisation qui est notre ?

Une tyrannie totalitaire pourrait nous satisfaire,

elle aussi, dans nos besoins materiels.

Mais nous ne sommes pas un betail a l’engrais.

La prosperite et le confort ne sauraient suffire a nous combler.

Pour nous qui fumes eleves dans le culte du respect de l’homme,

pesent lourd les simples rencontres qui se changent parfois en fetes merveilleuses…

 

이러한 성질의 기쁨이야말로 우리 문명이 낳아준 가장 귀중한 결실이 아닐까?

절대적인 전제군주제라도 물질적인 욕구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만족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목장의 가축이 아니다.

어떠한 번영과 안락도 우리를 만족시키는 데에 충분하지 못하다.

인간의 존엄성을 찬양하게끔 길리워진 우리에게는

극히 단순한 만남이 소중하고,

그것은 때때로 신기한 축제로 변한다.......

 

Respect de l’homme !

Respect de l’homme !…

La est la pierre de touche !

Quand le Naziste respecte exclusivement qui lui ressemble,

il ne respecte rien que soi-meme ;

 

인간의 존엄성!

그렇다, 인간의 존엄성!...

여기에 시금석이 있다.

나치주의자가 오로지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만 존중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il refuse les contradictions creatrices,

ruine tout espoir d’ascension,

et fonde pour mille ans,

en place d’un homme,

le robot d’une termitiere.

 

그는 창조적인 반대를 거부하고, 상승하는 모든 희망을 무너뜨리고,

인간대신 개미집에 사는 로봇을 천년동안 세워 놓는다.

 

L’ordre pour l’ordre chatre l’homme

de son pouvoir essentiel,

qui est de transformer et le monde et soi-meme.

La vie cree l’ordre,

mais l’ordre ne cree pas la vie.

 

단순히 질서만을 위한 질서는

세계와 자기 자신을 변혁시킬 수 있는 본질적인 힘을 인간으로부터 앗아간다.

인생이 질서를 창조하지,

질서가 인생을 창조하진 못한다.

 

Il nous semble, a nous, bien au contraire,

que notre ascension n’est pas achevee,

que la verite de demain se nourrit de l’erreur d’hier,

et que les contradictions a surmonter sont le terreau meme de notre croissance.

 

그와 반대로 우리에게는

우리의 상승이 완성되지 못했고,

내일의 진리는 어제의 오류를 양식으로 하고,

극복해야 할 반대들은 우리의 성장을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된다.

 

Nous reconnaissons comme notres ceux memes

qui different de nous.

Mais quelle etrange parente !

elle se fonde sur l’avenir, non sur le passe.

Sur le but, non sur l’origine.

Nous sommes l’un pour l’autre des pelerins qui,

le long de chemins divers,

peinons vers le meme rendez-vous.

 

우리는 그것들과 다른 사람들을 한겨레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은 얼마나 기묘한 동일성인가!

이 동일성은 과거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미래에 기반을 둔 것이다.

태생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니라 목적에 근거를 둔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길을 거쳐서

똑같은 모임의 장소로 가기위해서

고행을 계속하는 순례자이다.

 

Mais voici qu’aujourd’hui

le respect de l’homme, condition de notre ascension,

est en peril.

Les craquements du monde moderne

nous ont engages dans les tenebres.

Les problemes sont incoherents,

les solutions contradictoires.

La verite d’hier est morte,

celle de demain est encore a batir.

Aucune synthese valable n’est entrevue,

et chacun d’entre nous ne detient

qu’une parcelle de la verite.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상승조건인 인간의 존엄성이 위기에 빠져 있다.

현대세계의 붕괴가 우리를 위험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문제는 조리에 맞지 않고 해결책은 서로 모순되어 있다.

어제의 진리는 죽었고, 내일의 진리는 아직 건설 중인 단계다.

누구에게나 가치 있는 종합대책은 아직 조금도 내다보이지 않고,

우리들은 저마다 진리의 일부분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동우***

2013.04.09 06:15

 

Faute d’evidence qui les impose,

les religions politiques font appel a la violence.

Et voici qu’a nous diviser sur les methodes,

nous risquons de ne plus reconnaitre

que nous nous hatons vers le meme but.

 

국민을 위압할 만한 밝고 뚜렷한 증거가 없기에 정치적 교의는 폭력에 호소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방법을 달리함으로써

우리가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망각할 위험이 있다.

 

Le voyageur qui franchit sa montagne

dans la direction d’une etoile,

s’il se laisse trop absorber par ses problemes d’escalade,

risque d’oublier quelle etoile le guide.

S’il n’agit plus que pour agir,

il n’ira nulle part.

 

어떤 별의 인도를 받아 산을 넘어가고 있는 길가는 나그네가

만약에 올라가는 데에만 너무 정신이 빠져 있다면

그는 어떤 별을 따라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릴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가 행동을 위한 행동에만 몰두한다면

그는 아무데에도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La chaisiere de cathedrale,

a se preoccuper trop aprement de la location de ses chaises,

risque d’oublier qu’elle sert un dieu.

 

대성당의 의자를 관리하는 여인이

의자를 세내어주는 일에만 너무 탐욕스럽게 관심을 쏟고 있다면

자신이 신을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Ainsi, a m’enfermer dans quelque passion partisane,

je risque d’oublier qu’une politique n’a de sens

qu’a condition d’etre au service d’une evidence spirituelle.

Nous avons goute, aux heures de miracle,

une certaine qualite des relations humaines :

la est pour nous la verite.

 

이와 마찬가지로 내가 어느 당파적인 정열에만 빠져 버린다면

정치라는 것이 어떤 정신적 확증을 위해서 의의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위험이 있다.

우리는 그 기적이 일어나던 시간에 인간의 관계가 아주 특별하다는 것을 맛보았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그곳에 진리가 있었다.

 

Quelle que soit l’urgence de l’action,

il nous est interdit d’oublier,

faute de quoi cette action demeurera sterile,

la vocation qui doit la commander.

Nous voulons fonder le respect de l’homme.

Pourquoi nous hairions-nous a l’interieur

d’un meme camp ?

 

아무리 다급하게 행동할 때에라도

그 행동을 주관하는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사명이야말로 행동을 지배하여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 행동은 아무런 보람도 없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축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같은 진영 안에서 서로 증오하고 있는가?

 

Aucun d’entre nous ne detient le monopole

de la purete d’intention.

Je puis combattre, au nom de ma route,

telle route qu’un autre a choisie.

Je puis critiquer les demarches de sa raison.

Les demarches de la raison sont incertaines.

Mais je dois respecter cet homme, sur le plan de l’Esprit,

s’il peine vers la meme etoile.

 

우리들 중의 그 누구도 수수한 의미의 특권을 가진 사람은 없다.

나는 내 길을 내세워 다른 사람이 선택한 어떤 길을 공격할 수 있다.

나는 그 사란의 이성의 발걸음을 비판할 수도 있다.

이성의 발걸음이란 불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나와 같은 별을 향하여 어려운 걸음을 계속하고 있다면

나는 정신적인 면에서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Respect de l’Homme !

Respect de l’Homme !…

Si le respect de l’homme est fonde

dans le cœur des hommes,

les hommes finiront bien par fonder

en retour le systeme social, politique ou economique

qui consacrera ce respect.

Une civilisation se fonde d’abord dans la substance.

Elle est d’abord, dans l’homme,

desir aveugle d’une certaine chaleur.

L’homme ensuite, d’erreur en erreur,

trouve le chemin qui conduit au feu.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존엄성!......

만약 인간의 존엄성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라잡고 있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이 존엄성을 확립할 만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체제를 이룩하게 될 것이다.

문명이란 우선 본질 속에서 이룩되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어떤 정열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으로서 인간 속에 자리 잡는다.

그런 다음 인간은 오류를 반복하면서 등불로 인도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다.

++++

 

***eunbee***

2013.04.09 15:50

 

생떽스의 국가관 인간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이 아침 독서도 동우님께 감사.^^

 

여긴 오늘도 비.

 

***동우***

2013.04.10 06:32

 

은비님의 비오는 파리.

'미드나잇 인 파리'의 그림으로 그려봅니다. ㅎㅎ

 

부산, 엊그제 기다리던 비는 너무 시시하였지요.

겨울비인지 봄비인지..

은비님.

부산이라는 고장에는 봄이 없답니다.

스산한 바람만 불어재끼다가 문득 돌아보면 어느새 여름이 다가와 등을 두드리지요.ㅎㅎ

 

***teapot***

2013.04.17 00:29

 

조국에 남아 있는 당신들을 구출하는 일은 없지만 조국은 영원히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더군요~나도 내가 이런 줄을 전혀 몰랐었는데요.....

 

비는 이곳에도 좀 와야하는데~겨울에만 잠깐 내리는 이곳인데 올해는 그 잠깐이 찔금 이였고 겨울이 다 갔으니

비 구경은 아예 틀린 것 같습니다. 비가 많이와여 들꽃이 많이 피는데 올해는 파피꽃 보기는 다 틀린 것 같아 섭섭하군요~

 

동우님은 부산이 고향이시면 부산 사투리 쓰십니까?(고향이 경상도쪽인 분께 제가 꼭 물어보는 질문이지요.

사투리가 재미있어서요~ㅎㅎㅎㅎㅎㅎ). 사투리 쓰시면 글도 사투리로 쓰셔야 하는것 아닌가요?ㅎㅎㅎㅎㅎ

 

***동우***

2013.04.17 06:16

 

하하, 티팟님.

부산이 고향은 아니에요.

서울에서 출생하여 중하교까지는 서울 있었어요.

고등학교적부터 부산...

내 네이티브 랭기지는 서울깍쟁이의 언어지만 부산사투리도 수준급으로 구사하지요. ㅎㅎㅎ

 

사투리로 글쓰기?

머시라캐쌓노? 티팟 아지매는. 하하하

 

***teapot***

2013.04.17 10:10

 

동우님. ㅎㅎㅎㅎㅎㅎㅎㅎ

 

 

 

 

-독서 리뷰-

<어린 왕자의 추억> <다시만난 어린왕자>

 

 

<어린 왕자의 추억>

-르네 드 쏘씬느 作-

 

***동우***

2013.04.07 05:02

 

여태 내게 생텍쥐페리의 세계는 '어린 왕자'의 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요즘 내게, 생텍쥐페리는 한결 깊어졌다.

 

내게는 책이 '어린 왕자'만 있는줄 알았는데 무슨 영감일까, 문득 생각나 오늘 새벽 책장을 뒤지니 그에 관한 책이 있었다.

'앙드레 드보'의 '신 앞에 선 작가', 청하출판사 1983년 판, 생덱쥐페리의 평전이다.

읽지 않아 (책부족 추장님도 고백한바 있지만 책욕심이란 자못 허영이다) 도무지 기억에 없는데 나는 언제 이 책을 샀을까.

어쨌거나 이 책을 살 당시의 책욕심의 발원은 '어린 왕자'에서 비롯된 감성 탓이었을 것.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시방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보다 깊은.. 아니, 어린 왕자의 깊이를 가늠하여 감동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 책, 자판 두드려 블친님들과 함께 읽고 싶지만 250쪽에 이르는 분량, 어림없구나.

 

대신, 생텍쥐페리의 면모를 엿볼수 있는 그의 오랜 친구가 쓴 '어린 왕자에 대한 추억'을 올린다.

이 글을 쓴 ‘쏘씬느’라는 여성은 생텍쥐페리의 죽마고우인가 보다.

독자님들, 생텍쥐페리의 다른 면모를 느끼기 바란다.

 

 

<다시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作-

 

***동우***

2018.02.14 04:07

 

리딩북, 몇년전 이맘때 즈음 생댁스(생텍쥐페리)에 집중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어린왕자를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여러분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어린왕자를 만들어 주십시오"

생덱스는 그리고 허공으로 스러져버렸습니다.

 

어린 왕자가 돌보는 자존심 강한 장미, 매일 청소하고 싹을 뽑아주어야 하는 화산과 바오밥나무, 소중한 꽃을 먹을까봐 저녁이면 상자에 넣어주는 한마리 양....

 

생덱스 떠난 후 여럿의 '어린왕자'가 시도되었지만 생덱스의 것만큼 문학적 평가에 이른 작품 없다는데, '장 피에르 다비트'의 '다시만난 어린왕자'만이 생덱스의 감성과 사유를 오롯이 담아냈다고 하는군요.

 

내일 모레 설.

명절 무렵이면 삶이 더욱 아파서 설운 설이라고.

 

혹여 관계에 피흘리는 마음들 있으리.

그런 헤집어 아픈 마음들 있거들랑 어린 왕자가 다독여 주기를.

 

'장 피에르 다비트 (Jean Pierre David, 1950~ )'의 '다시만난 어린왕자'

설날 아침까지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지요.

 

***동우***

2018.02.16 04:25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치는 것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린 왕자' 모두(冒頭)에서 생덱스가 한 말입니다.

 

코끼리를 삼킨 보아 뱀의 그림.

어린아이 적에는 금세 알아챌수 있었던 그걸 모자로 알아먹을수 밖에 없는 어른들.

어린 왕자가 그건 모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거기 무슨 심오하고 오묘한 알레고리라도 숨겨져 있는양 눈 부릅뜨고 들여다봅니다.

 

지는해가 붉게 번지는 저녁 놀, 밤하늘에 박혀있는 보석같은 별들.

무연하게 풍광 바라보면서 그 순간 존재함이라는 것이 보며 느꺼워 하는 것들.

 

사막의 청결함과 고독.

 

걱정, 분노, 불화, 절망, 좌절... 세상사 홍진(紅塵) 벗어나 고독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이 삶에 대해 우리가 진 빚을 갚는거라고 어린왕자가 말하지 않습니까?

 

<아, 이토록 네가 나를 흔들고 있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건 네 영혼이 너무도 아름답고 착하고 조금은 슬프기 때문일까.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디엔가 샘물이 고여 있어서 그렇듯이.>

 

법정스님도 어린 왕자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더랬지요.

 

<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왕자"가 사는 별나라. 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그 별나라.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그 나라에는 귀찮은 입국사증 같은 것도 필요없을 것이므로 가보고 싶은 것이다. -미리 쓰는 유서->

 

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가 '생텍쥐페리'에게 우송한 편지와 상자 안에 담긴 한마리 양.

무척이나 기쁘게 받았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 걱정해선 안돼. 처음엔 조그만 먼지 알갱이 같은 걱정거리가 나중엔 산더미처럼 커지거든. 너무나 힘들다고 생각되는 문제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힘든 건 아냐. 문제가 마치 마술처럼 스르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또, 이젠 다 틀렸어, 하고 모든 기대를 포기했을 때 기적처럼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하거든.>

 

오늘, 설날입니다.

두루 복되소서.

 

++++

<새해 아침>

-오일도-.

 

한겨울 앓던 이 몸

새해라 山에 오르니

새해라 그러온지 햇살도 따습고나

마른 가지에 곧 꽃도 필 듯하네.

 

멀리 있는 동무가 그리워요

이 몸에 病이 낫고

이 山이 꽃 피거든

날마다 이 山에 올라

파―란 하늘이나 치어다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