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신경숙 2 (1,4,3,3,1)

카지모도 2020. 4. 27.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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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신경숙]]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감자먹는 사람들>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신경숙 作-

 

***동우***    

2014.04.19 05:06

    

사랑하는 관계와의 단절감...그리움과 외로움..

사랑이 그리워 지독하게 고독한 자.

그 감정과는 생경하고 두렵고 불안한 곳, 늘 일상 속으로 도피한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우리를 존재의 가벼움으로 살게 하는 것은 어쩌면 그리움과 외로움의 힘인지도 모른다.

 

<나는 나하고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것보다 그들이 죽는 게 두렵다. 멀어져서 못 만나는 것하고 죽어서 못 만나는 것은 다른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서 그도 나처럼 걸어다니고 감기에 걸리고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엘 간다고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가 달라진 건 없어. 내가 내게 속삭였다. 이젠 나와 함께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 함께인 것뿐이야,라고.>

 

그러나 마음 속 病이 있으니 그것은 환상을 불러온다.

일루전.

닭을 안은 소녀는 동생과 그 남자 그리고 필경 별리(別離)하여야 하는 사랑하는 것들의 정령이면서, 타는 목마름으로 현실 속의 일상을 숨쉬는 또다른 자아의 이미저리일 것이다.

 

오, 사랑하는 이여.

살아 있으면 돼요. 나와 함께가 아니더라도.

나를 잊지 말아요....잊지 말아요.

 

이 소설집에는 '감자 먹는 사람들' ' 벌판 위의 빈집' '모여 있는 불빛' '오래전 집을 떠날 때' '빈 집'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 '깊은 숨을 쉴때마다' 그리고 '전설'이 실려있습니다. (이 中 '빈 집'과 '벌판 위의 빈집'과 오늘 '마당에 관한 짧은 얘기는 올렸고, 나머지는 차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래는 이 소설집, '오래전 집을 떠날 때'에 개재(揭載)된 작가의 말입니다.

 

++++

<작가의 말>

 

새벽 세시. 창을 타고 제 귓전에 머무는 빗소리, 책상에 앉아 있다가 괜히 일어나서 현관을 불을 켜놓고 들어왔습니다. 언제부턴가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지킬 수 없었던 약속들이 떠오르곤 합니다.

부안의 내소사는 지금 저 빗속에서 어쩌고 있을지?

지난 여름 부친과 함께 처음으로 내소사 산문을 걷게 되었을 때, 비를 맞고 서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 둥치를 보고 부친이 그러셨습니다. 집을 지으면 좋겠구나. 평생을 집에 붙들려 살아오신 분의 현재의 꿈이 아직도 새 집을 짓는 일이라니. 저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우산 속에서 부친의 허리에 제 팔을 깊이 두르고 말았지요. 어제 그 내소사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느닷없는 걸음이었습니다. 아득한 서해의 물살을 따라 자욱해졌던 제 마음. 응시할 수 밖에 없는 관계의 막막함. 실존의 불안. 꼭 그것이어야만 하기에 엄습하는 이 좁은 통로의 고독. 겨우 이 정도였나 싶은 자책. 내소사에 들어 꽃살무늬를 넘어가 대웅전 마루에 무릎이 저릴 때까지 앉아 있다 돌아와 이 글을 고쳐쓰고 있습니다. 자꾸만 눈에 밟히는 아픈 당신. 살아가는 날들이 때로 찬란하게 아름다울 때도 당신에 대한 자책은 칡넝쿨처럼 제 넋을 휘감아오겠죠.

용서하지 마세요. 겨우 이 정도였어요. 그런 것을 그러게 깊은 약속을 했습니다.

제게 소설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헤치고 나가 언젠가는 제 존재의 빛을 보게 해주리라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나 저나 그 빛을 보게 되는 때가 너무 늦지 않기 바라지만. 아주 늦어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빛을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은 다를 테니까요. 또 약속하려 합니다. 현실과 상상력이 지닌 운명을 헤치고 나가서 먼저 저를 보고 꼭 당신에게 가겠다고.

저 비는 가을비겠지요. 세상에 또 한번 가을이.

이 새벽에도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배반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겠지요. 살아가는 일에 매번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마지막으로 가 닿는 마음은, 찰나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는 자각입니다. 아직 미혹이라 매번 이 평범한 자각에 이르기까지 가슴이 확 뒤집어지는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만 섬광처럼 지나가는 순간순간을 아로새기는 일에 선을 다하려 애쓰겠습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로 가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건 제가 힘에 부치는 약속을 질러 한 것이지, 당신 탓이 아닙니다. 그러니 귀한 당신. 인간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지 마세요.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그늘이니 자괴심을 갖지 말아요. 힘껏 살아야 강렬하고 견고한 사유를 하지요. 여기가 끝이 아니니 어서 힘을 내서 또 걸으세요. 멀리, 끝없는 저 길 위를.

제게 편지를 보내주신 분들, 부족한 대로 이 소설들이 답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 단편으로서는 여기까지가 풍금이 있던 자리, 이후로 제가 걸어온 길입니다. 여전히 숨어살고자 하겠지만 고맙게 여기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1996년 초가을에

신경숙 씀

++++

 

***동우***  

2014.04.19 05:42

  

서해 세월호의 침몰.

수백명이 그렇게 어이없이 죽어나가다니, 젊디젊은 생때같은 목숨들이.

아니, 폭격을 당한것도 어뢰를 맞아 순식간에 격침 당한것도 아닌데.

배가 뒤집혀 가라앉기까지 그 시간 동안 도대체 어떤 상황이었기에 혈기방강한 젊음들이 꼽다시 죽음을 맞을수 밖에 없단 말인지.

배를 조금 아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여객선의 safety equipment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건만 무용지물이었고.

사람이 거하는 선박의 수퍼 스트럭처는 이른바 '워터 타이트'(水密)공간이 아닌데 생존 가능성을 점치는 '에어 포킷'이라는게 필경 생겨나 며칠이나 버틸수있는겐지.(제발 그런 공간에 머리 디밀어 살아있기를..)

 

생각건대 도무지 이 나라에 전문가가 없습니다.

아니 전문가는 있을터인데,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프로페셔널이 아닙니다.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소신도 줏대도 명예심도 없습니다.

판단력도 분별력도 없는, 제일 먼저 퇴선한 선장짜리라니, 세상에 그런 뱃놈이 어디 있을까요.

그리고 구조본부의 우왕좌왕한 대응.

그저 웃사람의 눈치 보기 바쁩니다.

 

나는 슬픕니다.

서해 현장에서 벌이는 붉은 악마의 '대~한민국'이.

며칠째 대한민국에는 오직 세월호 침몰만이 있을 뿐입니다.

모든 국민이, 모든 매스컴이, 한건 노리는 사기꾼들이, 어중이 떠중이 아마추어들이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쳐 댑니다.

국민적 관심의 집중은 당연합니다만, 그런 것들에 나는 혀를 찹니다.

오로지 '대~한민국'의 붉은 함성만이 요동치는,

온갖 전문가라는 사람들 불러모아 감놔라 대추놔라...인양이 급선무가 아니라면서도 국내의 해상크레인을 죄다 불러 모으고, 무슨 퍼레이드를 하자는 것인지.

 

붉은 악마의 '오, 대한민국!'이라는 집단 함성.

수학여행을 없애라, 재난 속에서 빛나는 저 죽은 의인을 보라, 비겁한 선장과 선원을 가중처벌하라, 선박안전법을 처리하라, 보상을 어찌하라, 서해의 제주항로를 없애라, 구조본부를 문책하라, 어느 앵커의 발언실수를 질타하랴...

 

프로페셔널한 전문가의 굳게 다문 입술, 기술로 무장된 자부심, 결연하고 침착한 눈빛이 그립습니다.

유가족의 안타까움이야 애통함이야 어찌 필설로 다 표현하리까, 그러나 그에 빌붙어 그 애긍함에만 목청 높이고 그 동정적 감정에 이끌려 우왕좌왕하는 치들은 전문가가 아닙니다.

문제는 여론이 아니라 전문가적 안목과 결정과 과감하고 일사불란한 행동입니다.

 

정중여산(靜重如山)과 같은 전문가의 냉정한 판단과 결단...

 

 

<감자먹는 사람들>

-신경숙 作-

 

***동우***  

2014.04.21 05:01

  

아버지.

아버지는 아버지를 낳고 그 아버지는 또 아버지를 낳는다.

그리고 죽는다.

 

관계에 순복하고 죽음에 순종하는 삶.

처연하고 엄숙하고 아름답다.

 

고흐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어두운 색조, 노오란 불빛의 테두리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한 가족의 식탁. 거친 손마디, 튀어나온 광대뼈...누가 아버지일까, 노동하는 삶, 관계의 삶, 정결하고 엄숙한 아름다움 보이는지..

 

<겨울 내내 이 그림을 위해 머리와 손 그리는 연습을 해왔다. 강한 열의를 갖고 작업에 임했기에, 며칠 동안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그림이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린다는 게 뭐냐. '행동하고 창조하는 것' 아니냐... 나는 램프 불빛 아래에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바로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려고 했다. 그 손은, 손으로 하는 노동과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를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우리의 생활방식, 즉 문명화된 사람들의 생활방식과는 상당히 다른 생활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동생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

 

신경숙의 '감자먹는 사람들'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좋은 한주의 시작을.

 

***rosa***

2014.04.21 21:00

 

안녕하세요...?

허락도 없이 어제 오늘 이방에서 님의 지난 글들과 소설과 댓글까지

많이도 읽었습니다.

감동으로.

 

글 속에서 낮익은 지명과

동네 또는 버스번호까지 너무나 그립고...

아련한 추억속에 허우적대다가

이제야 정신이 좀 드네요.

 

감히. 남의 방에 허락도 없이 와서

몰래 보고가기 죄송해서

인삿말이라도 남겨두옵니다.

 

애독자가 될거같은데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동우***  

2014.04.22 05:05

 

로사님.

낯익은 지명이라시니, 버스번호까지도.

부산분? 더 범위를 좁혀서 혹 영도분?

그리운 추억으로 허우적대신다니, 지금은 떠나 사시는?

두루두루 궁금하고, 와락와락 반갑습니다.

 

감히라니, 무슨 말씀을?

어쭙잖은 블로그, 익명의 독자분들도 기쁨인데 이렇게 댓글까지 남겨주시니 큰 기쁨이랍니다.

 

'허락'이라니 어불성설의 말씀.

애독자.

되어주시면 내가 감사하지요.^^

 

***고향***  

2014.04.22 10:29

 

그림을 다시 만나니 반가워요. 저 그림을 보면 지금 살아있다는 것과

지금 생명이 있다는 것이 엄숙하고도 귀중하며, 마음을 치는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아마 그림 속의 주인공들이 알감자 한 접시를 놓고 식사를 하는 그 모양이

하루의 삶이 감사하여 저녁마다 제의를 치르는듯한 모습 주위로 감동이 흐르는듯해요.

 

공연히 오늘은 무엇을 하며 지냈는가 자신을 조금 무안하게 돌아보게 되는군요.

 

신경숙 소설은 처음입니다.    

 

동우님. 늘 안녕하시지요.^^^

 

***동우***  

2014.04.23 05:47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

다섯 식구가 둘러앉은 식탁.

아마 오른 편 두 남녀는 아버지 부부, 왼편의 두 남녀는 아들부부, 등을 보인 여자는 딸쯤 되지 않을까...

 

그래요, 고향님.

살아있다는 것의 엄숙함과 귀중함을 봅니다.

노동, 그리고 관계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얼마전 올리신 고향님 방의 고흐의 의자.

그 빈의자도 많은걸 얘기해 준다는 느낌...

 

고흐는 밀레를 존경하였다지요.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를 시발로 바야흐로 세계에 먹히는 작가가 되었답니다.

고향님께.

이 작가 주목하셔서, 내가 간과한 어떤 느낌을 기대해 볼까요? ㅎ

 

***동우***  

2014.04.22 04:46

  

비약이나 극적 에피소드없이 담담하게 이어가는 소설, '감자먹는 사람들'

신경숙은 나보다 15년여 어린 사람이지만, 죽음에 대한 그녀의 사념은 나따위보다 엄청 웅숭한 깊이의 우물입니다.

작가는 어디서 이 소설의 모티프를 얻었을까.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의 어떤 시각적 이마쥬로부터? (작가란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접수되는 직관적 감성이 가지를 쳐서 서사를 만드는 사람일터이지요..)

 

한편, 나는 작가가 얘기하는 노래와 편지의 은유를 생각합니다.

이 소설의 구조는 주인공이 윤희 언니에게 쓰는 편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필경 하나의 독백일 것입니다.

수신을 기대하지도 원하지도 않고 쓰는 내용이니까요.

예전에는 누군가에게 편지쓰기를 즐겨하였던 주인공이지만 이제 편지 따위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유행가 가수, 편지의 서사보다는 직관적으로 호소하는 음악적 감성을 더 사랑하게 된 것이지요.

 

어릴적 유순이.

 

<"기차역까지 바래다줄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니야, 그건 너무 슬픈 일이야">

 

이별 슬픈 정거장은 유행가의 노래가락입니다. <아, 유행가는 얼마나 청승맞게 진실한 우리 인생의 속살인지요..>

심수봉을 들을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좀 아는 자랍니다. ㅎ

 

정거장의 이별이 저리 슬픈데, 죽음으로 산자와 죽은자의 영결(永訣)은 슬픔보다 슬픈 어떤 슬픔일까요.

그러나 작가는 한 개별의 실존적 죽음을 탐닉하려하지 않습니다.

관계로서의 죽음만을 들려줄 뿐입니다.

죽음을 둘러싼.

죽어가는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들이 맺고있는 그 관계의 슬픔에 관한 얘기들을.

 

소설 속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징징거리거나 오열하거나 몸부림치지 않습니다.

관계의 소멸의 허무를, 관계로서 못다한 사랑의 갈망을, 관계 상실의 비애를 가만가만 쓰다듬을 뿐입니다.

주인공은 어인 까닭인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을 뿐입니다.

 

<내가 이미 누군가의 존재를 잊었듯이, 나의 존재를 기억할 나의 증인들도 사라지겠죠. 나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나는 끝도 없이 나의 증인들을 잃어갈 것입니다. 가을이 끝나가는 저 하늘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저 구름처럼,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존재의 無. 그러나 끝없는 순환.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사라지고 다른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태어나고…… 생의 갑옷은 철갑옷인가 봅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지는 건 또 어인 까닭인지.>

 

덩치 큰 아들은 뚝뚝 눈물을 흘립니다.

 

<아버지, 살아만 주세요. 이젠 잘할게요. 살아만 주세요, 살아만 주세요.>

 

이 또한 오열이 아니라 사랑하는 죽음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락이 아닐런지요.

 

<내가 이미 누군가의 존재를 잊었듯이, 나의 존재를 기억할 나의 증인들도 사라지겠죠. 나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나는 끝도 없이 나의 증인들을 잃어갈 것입니다. 가을이 끝나가는 저 하늘에 잠시 모였다가 흩어지는 저 구름처럼,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겠죠. 존재의 無. 그러나 끝없는 순환.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사라지고 다른 한편에서 나의 증인들은 태어나고…>

 

나의 증인들, 내 자식들.

저 어린 비니미니의 기억 속 할비는 어디까지일까.

아, 울컥 슬픕니다.

 

<"고구마…… 고구마는 캤는가? 안 캤이믄 기냥 놔두소. 내가 내리가서 캘 테니께는." 나는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려다 말고 아버지의 귀를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부친의 야윈 귀가 멀리 어머니에게 무슨 말씀인가를 하고 계신 것 같았어요. 나는 그 말씀을 들어보려고 주스병이 기울어지는지도 모르고 내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버지의 귀가 어머니께 말씀하시는군요. "나는 오늘같이 가을볕이 좋은 날, 밭에서 고구마를 캐다가 그렇게 갈라네. 늦봄 볕이 따사로운 날 감자를 캐다가 가만히.">

 

감자먹는 사람들, 삶은 알감자를 집어 먹는 거친 손마디.

노오란 램프 밑, 생의 갑옷, 관계의 든든함, 가족의 저 결속, 저 사랑.

 

힘줄 돋은 팔뚝의 노동.

진작 그 노동의 의미 깨쳤더라면 나의 그 때가 좀 더 행복하련만, 건강하련만.

회색빛 도회적 기억만 가득한 이 나약한 서글픔이라니,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쯧쯧, 혀를 찹니다. ㅎㅎ

 

***eunbee***  

2014.04.22 08:48

 

동우님

이곳 시각 밤 11시 특집뉴스 시청중 세월호에 관련된 선박회사의 유모씨,

'아해'라는 호로 베르사유 정원을 통째 빌려서 사진전을 열었대요. 지난해라지요. 한국 유명인사는 물론 프랑스 정재계 인사들까지 호화찬란했다네요. 수십억을 들여서 치룬 사진전에는 죠스팽까지 참석할 정도였다죠

몇년전 루브르에서도 전시회를 벌인 베일에 싸인 인물로, 프랑스 교민 사이에서는 의문의 인물, 별것 아닌 작품의 수수께끼 인물로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작은딸이 뉴스보며 한 이야기인데

동우님은 이미 알고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침대에 누워 수다를?? ㅎㅎ

에잉 잠이나 자자

 

비니미니, 할아버지를 어디까지 기억하고 있으려나 울컥 서러워지시는 동우님.

나보다 오래오래 사세요

eunbee가 사막으로 간걸까, 궁금한 생각으로 밤하늘 별에게 묻게 될 때까지요.

별의 웃음 소리가 내목소리로 들릴 때까지요.

내 눈물이 사막을 적시울 때까지요. ㅎㅎㅎ

 

정말로 코~자자.

좋은 하루요~ 동우님!

 

***동우***  

2014.04.23 05:38

 

청해진 해운의 유병언 회장이라는 사람.

어제 저녁 뉴스에 집중 보도되더군요.

작은 따님 말씀처럼 파리에서 띵까띵까 했던가 보아요.

프랑스 무슨 섬까지 사들였다나.

근데 은비님.

80년도 말경인가, 왜 오대양교 사건이라고 기억나시나요?

신도 서른명인가 집단 자살한.

그 사이비 교주의 가까운 친척이고, 그 후 신도의 성금 몇십억인가 횡령 사기죄로 4년 옥살이 까지 하였다지요.

그 후 오래 숨죽이고 있다가 다시 재산가로 등장, 세모니 뭐니 계열사도 많이 거느리고..

 

은비님.

정녕 요지경입니다.

한국사회.

근본부터 뜯어고치지 않으면.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와 인맥...

시스템으로는 개선이 불가할겁니다.

대통령이 총대를 매고 나서야지요.

이 비극을 기화로.

이 근본만 바로잡아도 박근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막과 별과 죽음과...

으흠, 차츰 얘기하지요.

 

rosa

2014.04.22 22:09

 

어제는 눈 알 빠지도록 스맛폰으로 읽다가

오늘은 컴앞에 앉았어요.

인터넷을 열면 온통 고국에서 들려오는 슬픈 소식에

몸과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오늘은 저녁도 하는둥 마는둥 대에충 떼웠어요.

아이를 잃은 부모도 있는데

이깟 한끼 안먹으면 어때.

 

저도 엄마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의식회복을 못하실때

저 오빠가 하는 대사랑 똑같이 했었지요.

엄마, 깨어나서 살아만 도, 이젠 잘할께.

하지만 엄마가 깨어나고 회복 뒤에도 여전히 아이를 맡기고

밥도 맡기고 신경질부리고 아이 안보고 뭐했냐고 타박하고...휴우. 이루 말할수없는 못된 딸.

이젠 받아줄 엄마도 안계시고

엄마엄마엄마 세 번 부르면 눈물나요.

 

님의 어머니께서 사시던 그 아파트에

저도 우리 엄마랑 살던 때가 있었네요.

1991년도, 대동대교맨션.

뒤로 남항이 보이던 그 집에서

층간소음으로 욕도 많이 먹었어요.

밑엣집 아줌마 맨날 올라와서 아이 잡으라고.ㅠㅠ

 

아무 이야기나 하고 갑니다.

다 들어주실거 같아서...

 

소설 올리시기 힘드실텐데

넙죽 읽기만 해서 죄송하네요.

다음번에 좀 재미난 얘기 해드릴께요.

 

***동우***  

2014.04.23 05:53

 

로사님.

대동대교 맨션.

1991년도라면 나와도 여러번 스쳤을겁니다.

어쩌면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내 형네는 아직까지 그 아파트 살고 있어요.

 

로사님께서 사시는 곳은 외국 어디일까?

고국에서 들려오는 소식.

안타깜고 슬프기도 하려니와, 얼마나 참담하세요?

도무지 근본이 없는 나라.

정말 정말 어이없게 수백명 생때같은 목숨을 잃어버리는 나라.

 

로사님.

차츰 영도 얘기 나누어요.

자주 뵈어요, 로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