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신경숙]] -5-
<전설> <작별인사>
<전설>
-신경숙 作-
***동우***
2014.05.06 05:06
신경숙의 이 소설에 대하여 모 평자가 표절을 운위(云謂)하였습니다.
그런데 표절하였다는 그 원본이 무언지 아십니까?
바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이랍니다. (리딩북에 벌써 포스팅한 작품)
우국(憂國)
동료들과의 친위쿠데타 모의에서 빠진(신혼이었으므로) 청년장교 '신지'는 대의를 위하여 자결하는데, 아름다운 젊은 부인 '레이코'도 남편의 죽음에 기꺼이 동참한다는 내용이지요.
부부는 마지막 격렬한 정념을 불태우고 남자가 배를 가르고 자결합니다. 남편의 주검을 대충 수습한 다음 여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기쁘게 자신의 목에 단도를 박아넣습니다.
신경숙이 그와 같은 '우국'의 한 소절을 비판없이 차용하였다는 겁니다.
소설의 테마는 전혀 다른 것이지만, '전설'도 역시 역사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남자가 떠나는 날 밤 젊은 부부의 격렬하고 아름다운 정사, 국군에 입대한 남편의 실종, 평생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면서 사랑과 그리움으로 살아가는 아내를 그리고 있는 내용입니다.
아래는 표절을 하였다는 두 작품의 그 대목입니다.
<결혼하고 몇 달인가가 지나자 레이코의 아름다움에는 세련됨이 더해졌고, 비개인 하늘에 뜬 달과 같이 그 아름다움은 영롱하였다. 두 사람 모두 참으로 건강하고 젊은 육체의 소유자들이었으므로, 그들의 정교(情交)는 격렬하였다. 밤에는 말할 것도 없었고 훈련에서 돌아온 흙먼지 투성이의 군복을 벗을 틈새도 아까운 나머지 집에 돌아오자마자 신부를 그 자리에 밀어 눕힌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 또한 이에 잘 응하였다. 첫날밤을 지내고 한 달이 지났을까 말까 한 때에 레이코는 기쁨을 알게 되었고, 그 사실을 안 중위도 기뻐하였다. 레이코의 몸은 희고 엄숙하였다. 솟아오른 그녀의 유방은 너무나도 강력한 거부의 정결함을 나타내 보이면서도 일단 수용한 후에는 잠자리가 가지는 따뜻함을 머금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도 무섭고 엄숙할 이만치 진지하였다. 점점 격렬해져 가는 광태(狂態)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들은 진지하였다. 낮동안 중위는 훈련 사이사이의 휴식시간에도 아내를 생각하였고, 레이코 또한 하루종일 남편의 잔상(殘像)을 좇았다. -우국->
<두 달 후, 여자는 방바닥에 소국이 담긴 항아리를 내던진다. 항아리를 내던지기 전의 여자는 결혼 전보다 한층 아름다움이 세련되어 보였다. 달밤의 백합같이 환하기도 했다. 소매 끝으로 나와 있는 손가락에조차 비 내린 뒤의 백합밭에서 풍겨나오는 향기가 밴 듯싶었다.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어 있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전설->
확실히 유사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
나로서는 간과(看過)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표절을 어필한 그 평자(소설가였던가?).
신경숙의 ‘전설’에는 역사의식을 내포하지 않은 사적(私的)이고 서정적 내용이 못마땅하여 툴툴거린 것일까요.
무슨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념을 섞어 고리키의 '어머니'像이라도 좀 세워놓았더라면 고개를 끄덕였을까요.
‘전설’은 ‘우국’과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전설’에서는 우국의 정서와 전혀 다른 것을 느꼈어야 합니다.
마초적 체면주의.
한줌 남성적 허영, 그 이유로 저토록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감행하는 저 허황한 결별.
역사주의의 집단성이 개별에게 작용하는 허구적이고 과시적인 어떤 측면, 그것 역시 비극적인 맹목의 폭력입니다.
‘전설’에서 내 단세포적 시각으로서는 그런것들이 두드러져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 미친 집단의 바람 속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여성성, 저 동양적 헌신과 절제와 정조의 마음과 태도가 나는 아름답습니다.
지사(志士)연하는 나리들께서는 내게 욕할테지만, 그리하여 나는 '우국'의 레이코도 아름답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군국주의적 미학.
그는 레이코까지도 군국주의적 집단가치에 전 존재를 투사하는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묘사한것일테지만 나는 다른 아름다움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의 여자도 우국의 레이코도, 남성적 역사주의의 집단적 허구에 동참하는 게 아니라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의 개별성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것으로 내 감성에는 접수된다는겁니다.
나로서는 그 점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개별적 감수성의 상통(相通)함을 느낍니다.
표절이라면 그 에토스의 동일함이 표절입니다.
내용과 문장을 베껴쓰는건 분명 표절이겠지요.
허지만 감성이 베껴지는건 표절이 아닙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소구하는 게 바로 그 '감성의 표절'이 아닌가요?
여기에도 '빈집'의 모티프가 있지요.
그러나 여기의 빈집은 부재(不在)함이 아닌것 같습니다.
세월과 인간, 인간과 인간, 죽은자와 산자.... 그것들과 합일하여 동거하는, 어떤 은총같은게 느껴집니다.
<음악가 '에릭 사티'가 사랑하였던 위트릴로의 어머니 '쉬잔 발라동'
어느 날 전라의 모습으로 서있는 쉬잔의 뒷모습에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였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는 쉬잔을 여자로서 안을수 없었다고 합니다.
다시는 쉬잔을 곁하지 않았지요.>
'그 후 여자로서 안을수 없었다'는 표현도 괜찮지만, '다시는 곁하지 않았다'는 얼마나 고아한 표현인지..
내 맥락없는 연상은 이토록 뜬금없습니다.
의식의 흐름이 그러한걸 어떡해요? ㅎ
***해나***
2015.05.16 20:11
감성의 표절...
저도 한때 신경숙의 감성을 표절하며 살았던 적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이렇게 표현을 잘하시나요?^^;;
그리고
글속에 묻힌 언어를 캐치해내는 감성이 살아 팔딱이는 것 같아요.♥
***동우***
2015.05.17 04:53
해나님.
따지고보면 표절 아닌게 있나요?
인류의 삶 자체가 표절입니다.
모방과 학습, 그 축적으로 인류는 발전하는게지요.
회억건대, 내 젊은 시절도 온통 뉜가의 아류(亞流)의 청춘이었던듯 싶습니다.ㅎ
<작별인사>
-신경숙 作-
***동우***
2014.05.07 06:26
연휴가 끝났습니다.
신경숙의 '작별인사'
2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소설은 <눈을 떴다. 먼데서 나를 데리러 오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로 문장을 열어 <눈을 감았다. 지척에서 나를 데려가는 자의 기척이 느껴진다.>라는 문장으로 닫습니다.
관계의 삶.
고독과 소통.
연민과 사랑.
그리고 죽음..
삶의 근원이 외로움일터인데,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할터입니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도 않고 아프지 않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이 소설에 등장하는 드라마, '초록색 모자'(김채원 원작)를 그 옛날 아주 인상깊게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박영규'(드라마 첫출연이었다던가)와 '서갑숙'이 출연하였었지요.
여기 등장하는 L이라는 인물은 '서갑숙'을 모델로 한것 같습니다.
외부와 단절되어 살아가는 남장의 독신녀를 연기하는 보이쉬한 서갑숙의 모습에 끌렸었습니다.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라는 책을 써 인구에 회자되기도 하였었는데, 투명한 매력이 있는 여우(女優)라고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신경숙은 '프란시스 잠'의 시를 그리 좋아한답니다.
++++
<그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프란시스 잠-
그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불쌍한 송아지
조금 전 막 도살장으로 끌려가면서 한참동안 발버둥친 일.
이 조그만 외로운 마을의 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송아지는 핥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아, 하느님! 동백나무 우거진 이 길의 길동무였던 그 송아지는
그렇게도 정다운 그렇게도 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 하느님! 견줄 데 없이 자애로우신 당신께서
제발 한번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용서 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언제나 그 금빛 찬란한 하늘나라에 가면,
거기서는 귀여운 송아지가 죽임을 당하는 일이 없고
우리들이 보다 더 선량해져서
그들의 작은 뿔에 우리들의 꽃을 장식하며 놀 것이라는 것을.
아, 하느님! 제발 송아지가 머리에 칼을 받을 때
너무 심한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
무릇 생명에 연민을 가지고 차카게들 삽시다.ㅎ
***동우***
2014.05.08 05:13
죽어, 육신을 빠져나온 영혼이 다시 육신의 주검으로 돌아가기까지 몇시간의 유예가 허락된 것일까.
물살을 가르는 저승사자의 노 젓는 소리. 적멸(寂滅)의 세계로 데려가려고 오는 소리는 시시각각 가까워 오는데.
인연과의 단절(斷絶).
느끼건대 신경숙은 관계의 결별(訣別)을 몹시도 공포스러워하는 사람인것 같다. (세속의 관계라도 그 헤어짐을 납득하는데는 꽤 힘들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영겁의 헤어짐을 위한 작별인사를 나누기 까지 영혼은 죽을수 없다.
[아직은 먼곳이다. 저 검은 배가 나에게 닿기 전에 나는 T네 집에 가야 한다. 작별 인사를 해야 한다.]
왜 그럴까.
생각건대, 삶에 대한 또는 관계에 대한 인식이 독하기 때문이다.
모순없는 관계, 이해가능한 삶, 완벽한 관계, 영원한 사랑..
그와 같은 이데아가 실존에는 반드시 존재할거라는 환상같은게 그녀만의 감정모체에는 자리잡고 있는듯 느껴진다.
유부남을 사랑하는 M.
[모순을 넘어서 내 그대를 사랑하리...달빛을 받으며 밤바다에 둥둥 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영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물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게 다 영원할 것 같았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그리고 홍과의 사랑도..]
그러나 M이라고 절대적으로 독할수야 없다.
홍을 죽일 만큼 사랑하지는 못하여, 남미로 도망갈 밖에.
[독한 사람 사랑하는 사람 봤냐? 사랑하려거든 우선 니 마음을 먼저 풀어줘야지.]
완벽, 영원, 절대, 순수...
위선과 위장인줄도 모른채로 스스로가 스스로를 기만하기 십상이지, 우리 삶의 모습에 그런게 어디 있던가.
인간의 조건이란 본질적으로 슬픈 것이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엄마를 부탁 해'의 엄마도 관계 위를 영혼으로 화하여 떠돌았었던가.
남은 자들에게 사랑의 불완전한 기억, 그 또한 그 기억을 모종의 사랑으로 완성하고자 함이었을까.
기선생은 M의 죽음의 기척을 느낀다.
[“M이니?” “기분이 이상하구나.” “저도 그래요.” “작별 인사 하러 왔니?” “네.” “...고맙구나.”]
이윽고 사랑하는 동무들도 M의 죽음의 기척을 감지한다.
그러나 죽음은 생(生)이 아니다.
[나는 죽음이고 너는 생이다. 나는 얼른 승이의 눈을 가렸다. 안 보여요. 그 계곡에서 바다까지 떠내려오는 동안 으스러진 내 손바닥을 아이가 팽개친다. 보지 말아라, 아직은.]
그렇다, 삶에서 죽음을 찾지말고 보지도 말라.
말랑말랑한 것의 껍질을 벗겨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들보들한 복숭아를 한입 베어물었을 때 감기던 어머니의 속눈썹을 떠올리는 L, 그 기억이 사랑이라면 삶과 죽음의 관계는 그로서 족하다.
죽음과 삶이란 게요리처럼 통째로 삶겨져 우리 앞에 놓여진 실존, 그 껍데기에서 흰살을 쏙쏙 파먹는 그 맛있음이 사랑이고 그 흰 게살이 삶일런지.
'엄마를 부탁 해'의 엄마도 영혼으로 관계 위를 떠돌았었지.
그 또한 불완전한 사랑의 기억을 사랑으로 완성하고자 함이었을까.
[L의 목덜미를 어루만졌다. 괜찮아, L. 기운을 차리렴, L. 죽음은 끝이 아니야. 죽어서도 너희를 찾아오는 날 보렴.
사랑하는 A, 그리고 L. 나를 기억해줘. 고분 속에서 토용을 출토할 때, 새 드라마에 출연할 때, 그런 때에. 나는 사라지지만 너희는 나를 기억해줘. 그 말을 하러 왔지. 살아서 행복한 날이면 한번만 나를 생각해줘. 봄바람이 살랑일 때, 과일에 단물이 들 때, 단풍이 질 때, 첫눈이 내릴 때에 한번만. M이라는 여자가 있었다고...함께 꽃게를 파먹었고, 옷을 바꿔 입었고, 기타의 G음을 배웠고, 세 시간짜리 산책을 했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고. 심야에 긴 전화 통화도 했었다고. 가끔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고...M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파타고니아.. 페루, 칠레, 숲과 사막과 호수와 늪지대와 만년설 봉우리들, 달의 계곡, 소금 바위들...
루소 분위기의 신비한 풍경화가 떠오른다.
이승같기도 하고 저승같기도 한 느낌의...
소설 속 '기선생'이라는 인물은 소설가이며 화가이며 노래도 부르는 '이제하' (1937~ , 앞에 그의 소설 '대산' 올린것 있음)씨를 모델로 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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