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허먼 멜빌]] (1,4,3,3,1)

카지모도 2020. 6. 2.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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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필경사 바틀비>

-허먼 멜빌 作-

 

***동우***

2016.08.25 04:55

 

'허먼 멜빌' (Herman Melville, 1819~1891)이라고 하면 단번에 소설 '백경 (白鯨. Moby Dick)'이 떠오릅니다.

‘백경’은 세계 10대 소설중 하나로 평가되기도 한다지요.

 

그런데 고백하는바, 나는 그 소설을 정독(精讀)은 커녕 제대로 완독(完讀)하지도 못했습니다.

책장을 들추자부터 나오는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적 장대한 서술... 작가의 박람강기(博覽强記)에 기가 질려 뭉텅뭉텅 페이지를 건너뛰어 가면서 대충 읽었을 뿐입니다.

그것도 지루하게..

 

모비딕, 두 편의 영화(존 휴스턴이 감독하고 에이허브 선장 역을 그레고리 펙이 紛한 것과 그 몇십년후 제작된 영화)는 재미있게 보았습니다만, 방대한 원작을 들춘 동인(動因)은 일종의 지적허영이었을겁니다.

그래서 허먼 멜빌은 영화 '백경'의 이미지로서만 굳어진채 그의 다른 작품들은 외면하였지요.

 

그런데, '필경사 바틀비'

이 소설을 읽고 나는 놀랐습니다.

허먼 멜빌이 이런 소설을 쓴 사람이라니.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이토록 정치하게 다룬 작가라니.

난해한듯 심플하게..

카프카나 카뮈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아, 책장에서 잠자고 있는 '백경'의 먼지를 다시 털어내야 할까봅니다.

 

바틀비의 면모...

바틀비를 얘기하는 일인칭 화자(話者)의 의식의 흐름...

그리하여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나의 바틀비를 만납니다.

 

'필경사 바틀비' (Bartleby, the Scrivener : A Story of Wall Street)

원어 제목에는 작금 신자유주의 본산 '월 스트릿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군요.

 

차츰 지껄이기로 하고.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함께 읽어요.

 

***동우***

2016.08.26 04:35

 

내가 자주 꾸는 꿈의 패턴이 있습니다.

무대는 예전 다니던 회사본관 시멘트 건물이거나 돌로 지어진 어떤 성곽, 어떨 적에는 일본식 목조건물인 보생의원..

그런데 그 곳은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입니다.

대개 휴일이나 연휴이거나 죄다 퇴근한 후이거나 모두 이사 가 버리고 난 뒤의 휑뎅그레하게 적요한 공간입니다.

오직 나혼자만이 그 공간의 어느 구석에서 유령처럼 기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곳저곳 사부작 사부작... 쥐새끼처럼 돌아다니면서.

가끔 그 곳이 멸망한 지구의 어느 도시가 되는 때도 있습니다.

인류가 멸절되고 오로지 나 혼자 살아 남아 빈거리 빈 건물을 돌아다닙니다.

 

<일요일이면 월스트리트는 페트라처럼 폐허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매일 밤이면 온 거리가 텅 비어 버린다. 이 빌딩 역시 평일의 낮 동안은 부지런함과 활기로 시끌시끌하지만 밤이 되면 철저한 공동이 메아리칠 뿐이고, 일요일은 온종일 버림받은 땅이다. 그런데 바틀비는 이곳을 집으로 삼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한낮의 광경을 보아온 그가 그 처절한 고독의 외로운 목격자가 되는 것이다. 카르타고의 폐허에서 명상하는 무고한 마리우스의 전락한 모습 같다고 할까.>

 

내 자아가 순치(馴致)된 공간으로부터의 대척점에 있는 듯한 공간.

질서의 이면(裏面).

개념의 이면.

집단(mass)의 이면.

 

고적한 분위기의 안온함같은게 있지만, 그렇다고 그게 사회기피증에 기인하는것 같지도 않습니다.

도피주의라기 보다 보다 근원적인 어떤.... 절실한 희구(希求)가 담겨있는 색감이지요.

 

그리고 꿈 속의 그런 나를 보는 또하나의 인식이 꿈 속에서도 느껴집니다.

소설 속 화자(話者)가 바틀비를 의식하는 것처럼.

 

<나의 첫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충심에서 우러난 연민의 감정이었으나,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이 점점 더 커지면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게 되었고 그와 비례하여 우울함이 공포로, 연민이 혐오로 변했다. 그것은 너무나 진실하고 또한 끔찍한 일이었다. 어떤 점에서는 비참함을 인식하거나 목격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친밀한 정을 불러일으켜 주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 그 선을 넘어버리면 오히려 그렇지 않게 된다. 이것을 예외없이 인간의 마음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이기심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차라리 그것은 과도하고 근본적인 병을 치유하는 것에 대한 어떤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감수성이 강한 사람에게 연민은 종종 고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연민이 효과적인 구원에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을 마침내 깨달았을 때 상식은 영혼에게 그것을 버리라고 명하는 것이다. 그날은 바틀비가 선천적인 불치의 정신이상 피해자라는 것을 내게 납득시켰다. 나는 그의 육체를 고통에서 풀어줄 수는 있었지만 정작 그를 괴롭히는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었다.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며 그의 영혼에는 내 손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으흠, 마저 올리고 지껄이기로...

 

그나저나 참으로 절륜(絶倫)합니다.

올 여름의 정력.

8월도 끝물, 지금 새벽인데도 열기 만만치 않군요.

 

염천에 지처 바야흐로 우울모드에 잠겨있는 친구여.

고개들어 선선한 바람냄새 맡으라.

대기에 섞여있는 생기있는 삶의 그 기미(機微)를..

 

***동우***

2016.08.27 04:55

 

<무저항의 저항만큼 성실한 인간을 화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만일 저항을 당하는 인간이 비인간적인 기질이 아니고 또 저항하는 인간이 그의 수동성에 전혀 악의가 없다면, 대개 저항을 당하는 인간은 자신의 판단력으로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지라도 기어이 상상력으로 짜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 틀림없다...그에게는 아무런 악의도 없는 것이다. 무례한 행동을 할 의도가 전혀 없는 것은 명백했다.>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바틀비는 예의 바르고 침착하게, 담담하지만 확실한 어조로 분명하게 거절합니다.

 

적극에 대응하는 소극.

능동성에 대응하는 수동성.

행위에 대응하는 무위(無爲).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아, 그렇지만 바틀비의 거절.

그것은 절대적으로 확고한 철학적인 저항입니다.

바틀비는 '소시얼 포비아(social phobia)'가 아닙니다.

 

"나를 제발 그냥 내버려 두시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가 떠오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바틀비에게는 좀머씨와 같이 겁에 질린 듯한 쫓기는 듯한 모습은 뵈이지 않습니다.

 

19세기 미국 뉴욕의 월가, 그 때부터 월스트리트는 자본주의의 중심이었을테지요.

금융 법률 부동산 고용(사용자와 근로자)등... 그런 자본의 로직(logic)이 지배하는.

 

그러나 바틀비의 저항을 그 질서에 대응하는 것이라고만 한정지을 필요도 없을것 같습니다.

켜켜이 축적된 인문적 질서 안에서의 인간조건에 대한 근본적 성찰...

그런 쪽으로 읽지 못할바도 없을듯.

 

스스로 선택하지도 수긍하지도 아니한 시스템.

오직 일회적인 나의 한살이가 거기 목매어 살아야하는 무슨 절대적인 이유라도 있는가요.

그에 순응하라는 어떤 소명이라도 내 삶에 주어져 있단 말인가요.

내 존재론적 숙명이 거기에 종속되어 있다는걸 도대체 어떻게 납득하란 말인가요.

 

막연하게나마 자신의 실존을 지배하는 <어떤> 인문적 조건이나 환경에 대하여 몹시 노여웠던 적이 없으신지요.

그때마다 여긴 내 별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한숨을 쉰 적은 없으신지요.

 

흐음, 내가 잘 못 읽었는지..

작가는 다른 메시지를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소통의 부재... 실존의 절대적 고독같은...

 

<인정 많은 사람이 급히 보내는 지폐 한장,

그 동정을 받을 사람은 이미 먹지도 굶지도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절망에 빠져죽은 사람에 대한 용서의 편지,

희망을 잃고 죽은 사람에 대한 희망의 편지,

구원 받을 길이 없는 재난에 짓눌려서 죽은 사람에 대한 좋은 소식조차도,

원래는 생명의 사자로 보내졌던 것이지만

결국 이 편지들은 죽음을 서두르고 있지 않은가.

아아, 바틀비!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여!>

 

살갗에 닿는 공기의 느낌, 어제 새벽과는 완연하게 다릅니다.

드디어 여름제국은 스러져가는 모양입니다.

 

좋은 주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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