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무인도에 사는 사람. 양손으로 목을. 피의 결혼]] (1,4,3,3,1)

카지모도 2020. 6. 1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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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무인도에 사는 사람> <양손으로 목을> <피의 결혼>

 

 

<무인도에 사는 사람>

-스텔라 벤슨 作-

 

***동우***

2017.01.31 04:20

 

나로서는 처음 읽는 '스텔라 벤슨 (Stella Benson, 1892-1933)'

영국의 여성작가라고 하는군요.

 

'무인도에 사는 사람'

문명이나 이성이나 이타(利他)와 같은 어휘가 연상되는 영국인.

반(反)하여, 미개나 감정이나 이기(利己)와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러시아인.

언뜻 러시아인을 폄하는 듯한, 민족적 특질에 관하여 풍자적으로 얘기하는듯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 은유하는 바는 그보다 매우 심오하고 신랄한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별적 인간성과 사회성을 연관짓는 자의식에 관하여, 그리고 일종의 <구별짓기>에 의한 도피주의에 관하여.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대충 읽어 본 책)

우리는 취향이라거나 기질 같은 것으로 스스로를 구분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 의해 구분됩니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개별이 경험하는 사회환경적인 요인에 의하는 것이랍니다.

그건 일종의 문화적 위계(位階)로 조직화되기 때문에 포함과 배제의 논리를 가지고 있지요.

유유상종, 말하자면 끼리끼리 논다는 것이지요.

 

국민을 개돼지로 보는 축들이나, 강남 돈쟁이 아줌마 최아무개들의 '아비투스'.

범부범부(凡夫凡婦)로서는 이해할수도 감히 범접할수 없습니다그려. ㅎ

 

<"나를 많은 사람들 가운데 그저 그런 한 사람으로 보는 것 같아 어쩐지 바보스러운 생각이 드니까요."

"우리는 누구나 여러 사람 중 한 사람일 뿐이야." 화이트 씨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화도 내지 않고 말했다.

"당신은 그럴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콘스탄틴은 말했다.>

 

콘스탄틴의 무인도, 로빈슨 크루소는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할 듯... 云云.

두번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 마저 올리고 나서 지껄입지요.

 

***野草***

2017.01.31 10:17

 

동우님.

설 잘 쇠셨죠~

중후한 음성, 목소리 뵈어 얼굴 마주 한 듯 정말 반가웠습니다.

정유년 더욱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동우***

2017.02.01 04:26

 

나도 반가웠습니다.

얼마전 첫 손주 보신 기쁨과 일취월장 좋아지는 건강 더불어.

정유년 새해 뜻하시는 바 모두 건승하심을 기원합니다.

 

***동우***

2017.02.01 04:22

 

부동산을 하면서 돈쟁이들과 좀 상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리거나 구사하는 일상의 패턴은 한마디로 럭셔리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황금이 만들어주는 그들의 아우라는 찬란하였지요.

衣라던가 車라던가 장신구라던가 먹거리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다방면 생활적 장르에 있어서 나와같은 가난뱅이에게는 전대미문의 것들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은연중에 과시하는 선민의식. 우월감과 여유로움과 자신감과 관대함같은 것들...

그때 나는 그런 따위에 주눅들지 않겠다고 이를 앙다물고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나는 정신적인 사람, 너희와 같은 부류가 아니야, 눈꼽만큼도 천민자본주의 너희가 부럽지 아니하노라."

아아,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그 때 내 감정모체는 질시와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부자 앞에서 나는 진실로 부자유하였습니다.

정신적 열패감으로 나의 내면은 신음하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돈은 자유함의 표상임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 때 만일, 그 돈쟁이가 내 감정모체의 진실을 간파하고는 '가엾어라, 가난뱅이의 왜곡된 자의식(自意識)이여' 하는 표정을 내게 던졌다면 나는 그를 죽이고 싶었을겁니다. 진짜로.

저 ‘콘스탄틴’처럼 말입니다.

 

<"이 무서운 기억을 어떻게 해서든 고쳐 놔야 한다. 화이트 씨가 나에 대한 추악한 기억을 없애버리기 전에는 이 사람을 떠나서는 안된다.">

 

그에게는 총탄에 쓰러진 화이트 씨가 얼마나 다행이었을까요.

 

<저 우연의 한 발이 은인의 머리에 박혀 그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기억을 깨끗이 씻어버린 지금, 콘스탄틴은 앞으로 이 강의 굽이까지 가는 동안 있을 총격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자기는 남들과는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임을 과시하는 콘스탄틴이라는 사나이의 저 우스꽝스러운 자만심.

그건 아무도 살지 않는 자신만의 섬에서의 홀로 즐기는 마스터베이션에 다름 아닙니다.

한사코 자신의 비루함과 남루(襤褸)를 직시하지 않으려는.

그리하여 세상과 단절된 그의 로빈슨 크루소는 더욱 견고해 질겁니다.

으흠, 그에게서 내가 보입니다그려.

나의 이 고적한 비루함을 어찌할꺼나요?

 

 

<양손으로 목을>

-알베르토 모라비아 作-

 

***동우***

2017.06.25 01:04

 

추리사이트에서 업어왔는데 전혀 추리소설같지 않습니다그려.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 (Alberto Moravia, 1907~1990)'

벨트, 창녀...

나는 몇편이나 읽어 보았을까.

과독(寡讀)인 내가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모라비아라면 변태적인 섹슈어리티와 모종의 실존적 권태와 절망적인 색감으로 기억합니다.

 

'양손으로 목을'

매조히즘과 사디즘,

커단 덩치, 자그마한 손은 왜소한 페니스, 기둥은 거대한 페니스의 은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쾌락과 열패감과 소외의식과...

 

남자의 의식속에서 혼미한 이중노출.

총을 쏘아 들개를 죽인 것인지, 목을 졸라 아내를 죽인 것인지.

 

'감각의 제국'이라던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또는 '안토니오 미켈란제로'의 영화들...

 

<가끔씩 이런 권태가 극심해질 때면 혹시 내가 죽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곤 했다. 사는 것을 내가 너무나 혐오스러워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사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모든 일이 음울한 춤처럼 쌍을 이뤄 교대로 내 머릿속에 침투해 들어왔는데, 그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내가 종종 생각했둣이, 나는 이런 식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을 그렇게 원치 않았듯이 죽기를 간절히 바라지도 않았다.- 모라비아 '권태' 中->

 

 

<피의 결혼>

-가르시아 로르카 作-

 

***동우***

2017.06.27 04:32

 

단막희곡 한편, 눈에 번쩍 띄어 얼른 업어 와 올립니다.

스페인의 유명한 시인이며 극작가 '가르시아 로르카(Garcia Federico Lorca, 1899~1936)'의 희곡 '피의 결혼'

로르카는 프랑코 정권이 들어서자 반역죄로 몰리어 사형 당하였지요.

 

피의 결혼,

다른 형식의 연극으로 보신 분 많으리라 여겨지는데. 이 대본은 김정옥이 우리나라 무속제의(巫俗祭儀)적 양식으로 구성한 대본인 것 같습니다.

스페인 안다루시아 지방을 우리나라 산골로, 플라멩코와 캐스트네츠의 율동과 노래를 굿거리장단과 장구같은 것으로, 장의(葬儀)도 우리나라 초상(初喪)의 형식을 빌어.

 

이 연극은 여러 양식을 빌어, 아마 세게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연극중 하나일겁니다.

생각건데, 이 연극의 원류는 축제이지요.

사랑, 욕망. 관습, 전통, 혈연, 가문, 명예, 죽음, 화해, 치유... 

그런 것들이 용해되어 한바탕 굿판을 벌이는. (부산서는 연극하는 사람들을 굿쟁이라고 한답니다.)

 

피의 결혼.

읽으면서 무대를 상상으로 한번 그려보시기를.

 

아래는 인터넷에서 주어 온 해설.

 

++++

로르카는 피의 결혼 에서 안달루시아에 뿌리박고 있는 비극성을 다루면서도 욕망에 대한 보편성을 다룬다. 다른 비극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성소수자인 여성의 욕망을 다루고 있다. 여성이기 때문에 욕망을 절제하고 살기를 강요받는 여성들, 특히 보수적인 시골 여성들의 억압된 욕망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에서 신부는 당당히 자신의 욕망을 선택한다. 그것은 단순한 욕망이 아니다. 그녀에게 애인 레오나르도를 향한 욕망은 이성으로 억제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식 날 신랑을 버려두고 애인과 도망치기를 결심한 그녀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자이다. 그러나 사회(도덕, 관습, 문화 등)는 그러한 욕망과 운명이 철저하게 억제되어야 함을 강요한다. 사회가 부정하는 개인의 욕망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극이다. 그리고 그 비극은 죽음으로 끝난다. 피의 결혼 도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피의 결혼 에서는 운명을 스스로 선택한 신부는 살아남고 그녀를 사랑했던 두 남자, 신랑과 애인 레오나르도만 죽었다. 대신 신부는 평생 죽음보다 더 괴로운 나날을 견디며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다.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했으나 결국 처참하고 참담하게 끝나고 마는 인물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영웅)이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피의 결혼 에서는 그 영웅의 역할이 평범한 시골의 여인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로르카 비극의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르카의 피의 결혼 에서의 주제적인 핵심은 바로 운명의 힘에 끌려가는 신부의 욕망에 있다고 하겠다.

또한 로르카는 신부의 욕망을 운명으로 연결시키면서 작품의 사건을 단순한 치정 사건에 머무는 것을 극복하고 있다.

피의 결혼 의 심층적인 구조에 흐르는 가장 중요한 모티브가 운명인 것이다.

운명은 무엇인가? 인간의 범주를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으로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설명될 수 없다. 아무리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할지라도 운명의 거대한 힘 앞에서 한 없이 나약한 인간은 그저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절대로 운명을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비극적이다.

피의 결혼 에는 여러 층위에서의 운명이 내재하고 있다.

우선 펠릭스 가문과의 비극적인 인연이다. 이 집안과의 불화로 남편과 큰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하나 남은 아들이 이 집안의 딸과 결혼하려고 하자 강한 불안감을 느끼며, 신부가 아들의 짝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이런 불안감은 ‘칼’의 은유로 인해 증폭된다. 더군다나 풍요를 상징하는 ‘밭’을 말할때도, 신부의 집이 위치한 땅의 물이 마른다고 말하는데, 이 역시 불모의 땅을 상징하는 불길한 전조를 암시하고 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행복을 위해 결혼을 허락한다. 그러나 가문의 남자를 잃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불길한 느낌은 비극적인 어머니의 운명으로 실현된다.

두 번째 운명은 작품의 가장 중심축이 되는 운명의 코드인,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부의 열정적인 사랑과 욕망이다.

신부의 이러한 열정적인 사랑은 이성, 도덕, 관습의 잣대로는 결코 설명되거나 정당화될 수 없다. 이성, 도덕, 관습의 범주에서 신부의 열정적인 사랑은 포기되어야 한다. 신부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사랑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열정적인 사랑은 이성의 힘보다 훨씬 더 강했다. 열정적인 사랑은 신부에게 절대적인 운명처럼 작용한다. 결국 운명의 힘에 이끌린 신부는 비극적인 결말이 초래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운명을 따른다. 자신의 선택으로,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신부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는 것이다.

세 번째 운명은 로르카가 가장 중요하고 멋진 장면으로 여기는 작품의 3막에 흐르는 운명으로 바로 달이 상징하는 운명이다. 농경사회에서 달은 초자연적이고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이다. 즉 농경사회를 다스리는 힘의 상징으로 농경사회를 유지시키는 질서를 대표한다.

3막이 시작되면 환상적인 분위기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달이 나타나 결혼이라는 질서 체계를 어지럽힌 신부와 레오나르도에게 비극적인 운명을 부여한다.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한 인간들이 초인간적인 힘 앞에서 파멸한다. 인간이 결국 운명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욕망, 억압, 명예, 죽음, 소외, 부재라는 로르카의 비극은 사랑과 욕망의 코드가 억압과 명예의 코드와 충돌하면서 죽음과 소외와 부재를 야기하는 비극이다. 피의 결혼 이런 요소들의 얽힘을 통해서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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