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붉은 나무젓가락>>> (1,4,3,3,1)

카지모도 2020. 7. 20.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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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붉은 나무젓가락>

-서진연 作-

 

***동우***

2017.08.14 00:17

 

붉은 나무젓가락.

서진연, 검색하여 사진을 보니 젊은 여성작가로군요. (生年은 알수가 없네요)

 

유려한 문체

연민하는 인간...

내면의 풍경화.

마음을 쓸쓸하게 하는 이미저리...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7.08.15 00:28

 

일본 땅의 한국인... 북조선과 대한민국, 조총련과 민단...

고아로 자란 여학생, 군대에서 자살한 뱃속 아기의 아빠...

딱히 그런 사회 지정학적 설정이 아니더라도 이 소설은 존재론적 쓸쓸함과 애린(愛悋)함이 가득합니다.

 

영혼은 바다를 건널 수 없대요…

상처 단절 고독 상실...

그리고 이승과 저승.

 

유적(流謫)의식.

어차피 근원적으로 지니고 있는 존재의식입니다.

 

우리 모두.

지구별 한살이 견디면서 흘려보낼 따름입니다.

 

소설의 대목

 

++++

―네… 내 아기.

너는 창밖에 시선을 둔 채로 무심하게 말을 이어갔다.

―분만대기실에 있을 때요. 너무 아팠어요. 아, 하면서 친구가 짧은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뒤로 주저앉았어요. 그리고 빠르게 병실을 나가는 거예요. 간호원이 들어오고 역시 당황해 하며 황급히 나가고 또 의사가 들어오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느껴졌는 걸요. 어떤 물체가 걸려 있는 느낌. 나중에 그 친구가 술에 취해 말해줬어요. 나무젓가락처럼 가느다란 다리가 먼저 나왔었대요. 이미 형태는 다 갖추어졌고 가는 핏줄들이 말갛게 비치는 붉은 나무젓가락….

저쪽으로 고개를 한껏 기울여 더 가냘프게 도드라진 목선의 서늘함이 아름다웠지만 너는 이미 비어 있었다.

본래의 너는 저 눈 속에 묻어버린 듯 서늘하게 빈 모습으로 껍데기만이 함초롬히 앉아 있었다.

파리하게 무표정한 얼굴에 흔들리지 않는 시선은 여전히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는 듯, 그 어둠 너머 더 먼 곳을 바라보는 듯.

그때 이미 육신을 버린 너의 영혼은 어느 낯선 곳을 헤매고 있었던 걸까. 저 설국의 어딘가에서, 아니면 더 먼 예전에 지나간 고장의 어느 곳에서, 너는 여전히 헤매고 있었던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다시 너를 만날 수 있었던 걸까.

너의 아기가 몸속에서 태동을 알릴 때 지났던 어느 길가 숲, 혹은 네가 바다를 건너오기 전 매일 지나다녔을 골목길 어느 모퉁이, 새벽을 가르며 달리는 낡은 버스 안,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언 몸을 녹이며 새벽 미명을 바라보았을 도서관의 복도 끝 창가, 혹은 부대 앞 작은 여관방.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가야 그곳에 남겨진 너의 영혼을 따뜻하게 안아 데려올 수 있었던 걸까.

서늘하게 앉아 그 빈 눈을 들어 나를 바라보던 너였지만 그 모습 그대로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리고 시간이 너를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렇게 곁에 있던 나도, 덧없이 흐르던 시간도 너를 채우지 못하고, 그날의 예감대로 너는 내게로 걸어 들어왔던 모습 그대로 다시 걸어 나갔다.

다녀올게요, 너는 가볍게 인사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몇 걸음 뒤에 남겨진 나를 돌아보며 싱긋, 맑게 웃어 보였다.

네가 그와 네 아기를 만나러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기를 보냈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영원히 그들 곁으로 가버렸다는 것은 너를 배웅하고 돌아오고 나흘이 지난 뒤, 너의 그 스넥바 친구가 전화로 알려 주어서야 알았다.

한밤이었고 봄은 너무 멀리 있었다.

나도 너처럼 그냥 살았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맥주를 마시고 네가 내 방에 남기고 간 칫솔이며 양말이며 볼펜들을 바라보며 그렇게 살았다.

가끔 한밤에 깨어 자기 전에 켜 둔 작은 등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렇게 깨어난 밤이면 오래 방안을 서성이기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창에 서리는 뿌연 김을 바라보며 추운 겨울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는 생각을 했고 빨리 여름이 되어 창을 열고 여름 내내 이어지는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겨울은 매년 계속되었던 것이고 또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었다.

++++

 

가엾은 영혼...

 

아, 외로운 영혼...

서로의 가엾음과 외로움을 핥아주는 연민 있어 존재는 그나마 따뜻한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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