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오정희]]
<동경> <중국인 거리>
<동경(銅鏡)>
-오정희 作-
***베로니카***
2013.01.06.
네, 저도 오정희작가 참 좋아하는데요
이방에만 오면 제가 다시한번 문학도나 예술가가 되어 심취합니다.
전 요즘 그냥 기분이 좀 그래서, 내리 삼일째 영화만 받아 보았습니다
첫째날엔 "레미제라블"을 보고 주욱 보았던거 하고 다른 영상에 가슴이 뛰고
둘째날엔 "반창꼬"에 잔잔한 감동의 눈물 훔치고
셋째날엔 "라이프 오브 파이", 전에 읽었던 책을 영화한 것이더군요. 이안 감독의 독특한 시선으로 만든 괜찮은 감동들이엇답니다
올해도 많은 블방 친구님들께 마른 갈증을 해소해주시는 멋진 동우님께 감사드리며
건강함과 축복이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동우***
2013.01.07
지난 해도 어김없이 행복한 인생을 사셨던 베로니카님.
해마다 그 행복감은 에스컬레이트되어, 매해마다 보내는 지난해는 언제나 '가장'이라는 최상급의 수사를 붙이시고..
부럽소이다. ㅎ
새 해 좋은 꿈 꾸셨어요?
품격있는 고전적 도시와 집과 동물과 푸른 것들과 그림들에 둘러쌓인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맞는 베로니카님의 새 해...
레미제라블,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찬사.
베로니카님도 팡틴느의 뮤지컬넘버에 뿅 가셨던가 봅니다만.
나도 꼭 꼭 보겠습니다.
반창꼬도, 라이프 오브 파이도.
좋은 영화라고 인구에 회자되고들 있으니, 그 또한.
오정희, 이 냥반은 나와 동갑이지요.
'동경'은 그녀가 30대 후반쯤에 쓴게 아닐까... (80년댄가 동인문학상을 받은 작품일겁니다)
어느 여름 한낮 늙은이의 일상을 그리고 있는 이 소설.
그들의 심리와 의식의 흐름을 꼼꼼하게 직조한 듯 합니다.
과연 작가는 30대 그 나이에 노인들의 의식을 어느 정도 만질수 있었기에.
느끼건대 '동경'은 참 쓸쓸하고 서글픈 소설입니다.
낫살 먹은 사람에게는 일종의 고통을 수반하는.
죽음이 드리워 진 늙은이의 일상이라니.
작가가 지금 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할런지 그게 조금 궁금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지금 바로 소설 속 인물의 그 나이일테니까.
막상 늙어 보니까, 저 오정희의 '동경'에는 리얼리즘이 결여된 느낌도 없지 않답니다.ㅎ
올 들어 첫 월요일.
베로니카님의 한 주, 좋은 출발을.
***성연***
2013.01.06
선생님.
메일로 인사드린 성연입니다.
동우선생님의 글은 늘 저의 배움이고 즐거움이고 그리움이기도 합니다.
근간에 올려주시는 리딩북의 작품들은 매일 기다려지는 독서의 기쁨이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
송구하게도 부탁말씀 여쭈어 올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올려주시는 작품들은 선생님 나름의 기호나 기준에 의할거로 사료되는데 동우 선생님의 간단한 해설, 아니 간단한 소감의 코멘트 댓글이라도 달아주신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지요.
가끔 다른 분의 답글에 달아 주시는 동우선생님의 댓글에서 많은걸 느낄수 있었거든요.
좋은 작품들 올려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이런 부탁의 말씀까지 여쭙는 무례를 용서하시와요. ^^
추운 동절기 건강 유의하십시오.
***동우***
2013.01.07
안녕하세요, 성연님.
요즘도 여행 자주 떠나시나요?
부럽습니다.
늘 읽어 주시는 성연님같으신 분 때문에 오히려 포스팅하는 기쁨은 내게 있습니다.
내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리딩북 올리는 작품들은 무슨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 아니라오.
당분간은 우리나라 작가들 중심으로, 작가는 가급적 중복하지 않고, 옛 것과 요즘 것을 교차하여..정도의 계획이라면 계획.
무례라니요? 천만의 말씀.
알겠습니다. 성연님.
모자란 생각이겠지만 한마디라도 느낌을 코멘트하도록 하지요.
올 겨울은 유난히 혹한이라고 합니다.
성연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밝은 한 주 시작하세요.
***베로니카***
2013.01.08 23:19
아유, 기냥 옆에서 줄줄 얘기해주시는 기분입니다
선생님 전 웃겨요
아님 좀 맹하니 좀 현실적으로 살긴살되 머리는 요상한 나라에서 헤메는
음..저가 생각해봐도 신기해요. 그런 맹함으로 어찌 현실에서 이리 잘 버텨내는지요
오날도 독립영화관에서 영화보고 미끄럼타며 왔습니다
유명배우들이 아점마가되어 마구 망가지는 뭐 가족드라마같은데 뒤죽박죽 싸우다 판나는그런내용이어요. 망가지니 너무나 인간적이고요
독립영화관 상영작은 좀 묘해요, 한옥마을 오면 좀 나사가 더 풀리는 저처럼요.
그런데 동우님은 부산에 사십니까? 전 여태 몰랐어요.
오늘도 부산대학생들이 왔어요.
주로 부산에서 오는 사람들은 쿨하고 젠틀하지요
동우님 부산 사시는 것, 댓글에서 본 것도 같은데, 그냥 싱겁게 별것을 물어보네요
***동우***
2013.01.10
살이의 몸체는 현실에 두되 생각은 공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그것이 맹하다면 베로니카님.
그 맹함이란 남이 가지지 못한 행복한 맹함이랍니다.
흐음, 나 역시 베로니카님과 같은 그런 맹함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어 스스로 자족하지요. ㅎ
삶의 부대끼는 모습처럼 생각까지도 영악함으로 이빨 옹다물고 있으면 한세상 어디 살 맛 나겠어요?
보셨다는 그 영화 무슨 영화일까.
독립영화, 나도 왠만한 메이저영화보다는 독림영화가 좋아요.
양준익 감독의 독립영화 '똥파리'는 가히 충격이었지요.
얼마전 모니터로 본 영화(쿠폰으로 다운받는거 불법 아니겠지요?ㅎ), '밍크 코트'였나?
그 영화도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갈등하는 한 가족 이야기던데, 상당히 괜찮게 보았어요.
하하, 그래요 베로니카님.
나는 부산에 산답니다.
두번인가 가보았던 전주의 기억은 매우매우 좋았답니다.
풍광들, 음식들, 사람들 모두.
내 블친 잉크님도 전주에 사시지요.
아침 대기 꽤 찹니다.
좋은 하루 되시기를.
<중국인 거리>
-오정희 作-
***동우***
2013.09.08 05:59
'오정희'(1947~ )는 나와 동갑인 여성 작가.
우리의 오감중 후각적(嗅覺的) 기억이 가장 강렬한 것일까. <어쩌면 미각(味覺) 더? '마르셀 푸르스트'의 미각에서 촉발된 기억여행...>
어쨌던 오정희의 소녀를 지배하였던 그 냄새를 내 후각도 기억해 낼수 있다.
묘하게 시큼한 그 냄새가 해인초 냄새라는 걸.
해인초는 예전 집지을때 흔히 회반죽과 섞어 드럼통에 넣어 끓였다고 기억되는데, 뱃속에서 회(회충)가 동할 적에도 먹었나 보다.
전후(戰後)의 풍경화.
양갈보, 흙먹는 아이, 튀기, 적산가옥, 조개탄..
그런 그림도 <좀 다른 색감의 기억이지만> 내게 익숙하다.
나의 그건 인천이 아닌 부산이었지만.
초량 언덕받이 피난민 초등학교.. 전차레일의 쇳조각.. 상이군인.. 문둥이.. 쓰리꾼..
어느 날 하교길 판잣촌 언덕 넘어 드리워진 피처럼 붉은 저녁놀도 기억 속 선연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저류(低流)를 관통하여 흐르는 어린 여자의 성장통, 그 의식을 내가 기억으로 느낄리는 없다.
저 소녀의 감정밭.
달착지근하게 아리고 그리웁고.
공연히 미웁고 서럽고 삐뚜루고 싶고. <자신의 엄마가 친모가 아니었으면 하는 소망도...>
그러면서도 엄마처럼 여늬 여자처럼 육체의 깨달음을 밟아가는.
그리하여 육체에 거역하지 못하고 자각되고 형성되어 깃들어가는 여성성이라는 의식.
초조(初潮) 무렵의 저 미묘한 그것을 소년이 알수 있으랴.
소녀보다 손쉽게 소년의 의식이 육체를 거역할수 있다면 그것을 자랑하지 말찌니,
월경을 모르는(아기를 싣지 못하는 구조의) 남성은 육체적으로 덜 성숙된 생물인지 모른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
빼어난 소설이다.
미지의 여성성의 그 난해함이 나는 몹시 사랑스럽다.
문득 '밀란 쿤데라'의 한 구절이 떠올라 찾아 베껴 쓴다.
<남의 집에서 잉크를 엎질러 양탄자를 더럽혔다면 미안할지언정 부끄럽지는 않을터인데 여성은 월경으로 시트를 더럽히면 왜 부끄러워 하는가? 여성의 기관들을 만들어낸 게 여성의 책임인가? 책임감은 부끄러움과는 전혀 무관하다. 수치(羞恥)는 우리가 범하는 어떤 실수에 바탕을 두고 있는게 아니라. 우리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현재의 우리가 되어 있다는 데서 느끼는 모욕감, 더구나 그 모욕이 도처(到處)에 보여진다는 데 대한 견딜 수 없는 느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베로니카***
2013.09.08 12:34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오정희작가 저도 참 좋아해요.
동우님은 뭐하는 분일까. 글을 쓰시는 분일까.
그동안 그냥 들락날락하면서 읽기만 하고, 동우님이 글 쓰시는 분이라면 쓰신 글 소개 좀..
딸아이가 얼마전 미동부로 유학을 떠나고 조금 마음이 그렇습니다.
전 그저 여전히 전 고추도 따야하고... 그런데 게을러서 붉은 고추가 땅바닥에 붉게 떨어져있네요. 가지와 호박은 잘 안따서 나자빠져 있고...
고추야 가지야 호박아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서점과 영화보는 시간은 낭비로 안여기니 농사꾼으로 안사는게 참 다행입니다
풀과의 전쟁도 며칠... 그나마 그래야만 내가 심어놓은 가을꽃들이 빵긋 날 행복하게 해주려 나오거든요.
봉다리 봉다리 따다 날라도 또 주렁주렁이네요
내 딴에는 이토록 일을 많이 하는데 날더러 일 못한다는 이웃 아줌마들.. 내가 심은 것 따다 바치는데도 말입니다. 호호
컨테이너박스도 황토 몇차 사다 발라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황토는 이 시골서도 귀하답니다.
내 물건들이 들어있는 컨테이너 두개가 쓰레기 더미가 되었네요.
주르르 펼쳐야 할 날이 언제가 될런지...
이젤들은 요기저기 널려있고 물감들은 우리애들이 뭋쳐다가 저쪽에 다 이동 중이네요.
수다 그만 떨게요, 동우님.
-독서 리뷰-
[[오정희]] -2-
<저녁의 게임> <적요(寂寥)>
<저녁의 게임>
-오정희 作-
***동우***
2014.01.14 05:26
'오정희'의 '저녁의 게임' (3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
[창은 먹지를 댄 듯 새카맣고 불빛 아래 아버지와 나는 어둠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동하는 의식의 흐름.
한편의 부조리 심리극을 연기하고 있는듯한 부녀.
화투치기와 오버랩되는 여자의 내적고백.
가족사의 기억에 갇힌채 여자는 시방 어떤 자유의 색감을 그리고 있는겐가.
[아가, 날 데려가다오. 여긴 무섭고 쓸쓸하단다. 그러나 어디나 마찬가지예요.]
그러나 나갈 길은 뵈지 않는다.
생동감없는 일상은 내일도 모레도 암담하고 우울하게 계속될 것이다.
[이윽고 집 전체가 수렁같은 어둠 속으로 삐그덕거리며 서서히 잠겨들기 시작했다. 여자는 침몰하는 배의 마스트에 꽂힌, 구조를 청하는 낡은 헝겊 쪼가리처럼 밤새 헛되고헛되이 펄럭일 것이다.]
일상의 안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상 기쁘던가.
어쩌면 나남없이 저렇게들 살아가는 것일런지...
오정희, 대단한 작가이다.
***teapot***
2014.01.14 12:49
동우님~변함없이 여전히 안녕 하시지요?
자유로운 내 시간이 많아도 또 그 시간이 없어도 안 좋구만요!
꼭 알맞게 갖는 법은 무언지요?
딸들도 다녀갔고 서울에 있는 아들도 잘 있고
번잡했던 연말연시도 보냈습니다. 좀 더 자주 마실 오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동우님, 미쎄쓰 동우님, 손주들, 따님 모두 안녕하시지요?
(동우님이 아드님 이야기는 하셨던가 안하셨던가요???)
일생사 이야기도 올려 주세요!! ㅎㅎㅎㅎ
다시한번 해피 뉴 이얼!!!
***동우***
2014.01.15 04:59
티팟님 여일하게 안녕하시듯, 나 또한 안녕합니다.
미쎄스 동우도, 딸도 두 손녀도, 노총각 아들도 안녕하구요.
한가하실적 많은 시간적 여유와 직장생활로 모자란 시간적 여유.
꼭 알맞게 시간을 갖는 법이 따로 있겠어요. 어디?
탱자탱자할때라도 얼마든지 압축된 시간을 보낼수있는 것이고, 바쁠 적이라도 짬을 내어 자신의 시간을 만들수 있는, 그런게 시간을 다루는 능력일법 합니다그려.
티팟님은 바쁜 중이라도 기왕 시작하신 그림은 아주 멀리하지 마시기를.
뉴욕의 따님은 티팟님 수다(?ㅎㅎ 실례)로 친숙하고.., 서울의 아드님도 이제 한국생활 많이 익숙해 지셨을..
티팟님 댁 모두 모두 해피 뉴 이얼!!
***김인순***
2014.01.18 13:46
새해를 잘 시작 하셨는지요?
고독하면서도 유려한 은유로 표현되는 오정희씨의 글을 제일 좋아합니다.
출연배우는 생각이 안납니다만 이 글은 영화화도 된걸로 알고 있어요.
예전에 학교 과제로 '마른꽃'이라는 단편을 쓴적이 있어요.
그땐 몰랐는데 오늘 다시 이글을 보고 나니 이 단편에서 영향을 받았구나 싶습니다.^^
***동우***
2014.01.19 04:53
복된 새해 맞으셨기를.
그동안 익명의 독자, 김인순님께 나도 새해인사 드립니다.
고독하면서도 유려한 은유...
오정희 작가에 대한 적실한 표현입니다.
전에 포스팅한 '동경'과 '중국인거리'에서도 여실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저녁의 게임'이 영화로도 만들어졌군요.
여자의 저 내밀한 의식의 유동성이 어떻게 영상으로 묘사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인순님의 '마른꽃'의 궁금함도 더불어.
자주 들러 얘기나누어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꿈쟁이***
2014.01.19 22:11
저 꿈쟁이입니다.^^
***동우***
2014.01.20 05:30
하하, 그랬군요.
덕분에 꿈쟁이님 본명 드러났네요. ㅎ
<적요(寂寥)>
-오정희 作-
***동우***
2016.03.08 00:19
오정희 (1947~ )의 '적요(寂寥)'
1975년에 발표한 작품이라니까, 작가가 스물여덟에 쓴 소설이로구나.
20대 여성의 노인에 대한 존재론적 탐구, 그러나 관념론 따위는 느껴지지 않는다.
반신불수 독거노인의 내면적 현실, 그 리얼리즘이다.
좀 엽기적이지만 감상적이지도 않고 1인칭 話者의 자기연민 따위도 실려있지 않다.
관찰력과 상상력, 정일(靜逸)한 감정이입....
오정희, 천상 작가(作家) 팔자로다. (나와 동갑인 그녀자신 노인이 된 지금 이런 소설을 다시 쓴다면 어떤 소설이 될까 궁금하다)
적멸(寂滅)에 이르기 위한 마지막 과정인가, 적요(寂寥).
그렇지만 우울해하지 말지어다.
작금은 백세 시대이거니와, 백수(白壽)를 바라보는 노철학가가 지난 세월 돌이켜보면서 말하지 않던가.
인생이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65세부터 75세까지라고.
일흔넘은 청춘이여, 너희에게도 황금같이 남아있으리니 그 시절을 공경하라.
적요, 충일한 삶의 시간이다.
그리하여 모쪼록 노추(老醜)는 없을지어다. ㅎ
++++
<늙은 사람>
-기형도-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
++++
<노인>
-황인숙-
나는 감정의 서민
웬만한 감정은 내게 사치다
연애는 가장 호사스런 사치
처량함과 외로움, 두려움과 적개심은 싸구려이니
실컷 취할 수 있다
나는 행위의 서민
뛰는 것, 춤추는 것, 쌈박질도 않는다
섹스도 않는다
욕설과 입맞춤도 입안에서 우물거릴 뿐
나는 잠의 서민
나는 모든 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변기 물 내리는 소리
화장수 병 뚜껑 닫는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잠에 겨운 소근거림
소리가 그친 뒤 보청기를 빼면
까치가 깍깍 우짖는다
나는 기억의 서민
나는 욕망의 서민
나는 생의 서민
나는 이미 흔적일 뿐
내가 나의 흔적인데
나는 흔적의 서민
흔적없이 살아가다가
흔적없이 사라지리라.
++++
-독서 리뷰-
[[오정희]]
<목련초> <어둠의 집>
<목련초>
-오정희 作-
***동우***
2016.03.31 04:58
<목련, 자목련, 백목련, 예전에는 집 안의 뜰에도 심지 않았다던 주술적인 초혼(招魂)의 꽃, 어머니의 백골에서 피어나던 영혼, 그것은 조화의 견고성을 가지고 한밤중 전등알처럼 흰빛을 내며 소리 없이 터져, 순결한 처녀의 혼백으로 동동 떠다닌다. 그것은 수많은 입이다. 밤새 요기스럽게 피어 밤의 정을 빨아들이는 흡반이다.>
헬스에서 내려오는 길, KT 건물 울타리너머 보도에 떨어져 뒹구는 자목련.
굳이 몇 송이 밟으며 걸었는데 꽃송이는 내 발밑에서 조용히 으깨졌다..
신발바닥에서 전해지는 감각이 좀 아팠을 뿐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곱도다 꽃이여, 슬프도다 관능이여, 헛되도다 생명이여.
'오정희' (1947~ )의 '목련초' (전에 야초님 댁에서 업어온 것이다)
<넋이야, 넋이로구나, 녹양심산 첫 넋이여, 넋을랑 넋반에 담고 신의 신첸 관에 담아 올려다보니 만학천봉, 내려다보니 백사지라.>
앉은뱅이 무당 어머니는 불꽃나무가 되어 불에 타서 죽었다.
올곧게 백화가 되지 못한 유골은 그러나 밤이 되면 하얗게 빛을 내면서 백목련이 피어났다.
시앗을 본 여인의 분노.
관능에 대한 것인가, 인습에 대한 것인가, 윤리에 대한 것인가. .
(그림 선생?) 한수씨가 들려주는 피리부는 사내, 그는 처용이 분명하렷다.
<동경 밝은 달에 밤드리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이런만 둘은 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만 빼앗긴 걸 어찌하릿고.>
좌절과 희망, 타성과 반발, 인습과 욕망, 순복과 반항과 반복과, 삶의 진부함 속에 갇힌 인간.
기억의 고통과 숙명론적 자포(自暴)와 억압되는 자아와 관능과 욕동과 ....
무릇 존재론적 절망감.
<내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두 개의 머리가 돋은 독사처럼 강렬하게 피어나고 있는 목련은 결코 그릴 수 없을 것이다.>
저 깊은 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무형의 것들은 도무지 바깥 세상과 조화를 이룰수 없으나 어쩌랴.
포기와 순복과 타협.. 그리하여 삶이란 본시 메마른 것이다.
<나는 느낌으로만 살아왔구나, 라는 것이 날카로운 정으로 골을 쪼개듯 쨍하나 선명한 의식으로 다가들 때마다. 무언가 저질러 버리고 싶다는, 풀무처럼 단내를 풍기며 뜨겁게 달아오르는 온갖 타락에 대한 열망, 죄악에 대한 열망에 시달릴 때마다 어머니의 뼈에서 피어나던 목련은 어둡고 민감하게 스멀대며 살아나곤 하였다.>
밟아라.
모가지 떨어져 길바닥 뒹구는 목련의 봄을.
***마르가레타***
2016.03.31 17:04
귀한 글 감사히 읽습니다.
***동우***
2016.04.01 04:33
반갑습니다.
귀한 글이라 하시니 쑥스럽고 고맙습니다.
며칠전 과레스키 소설에도 마르게리타라는 이름이 나오던데, 영세명이라 짐작합니다.
자주 들러주십시오.
***설레임***
2016.04.01 06:34
사람마다 꽃에 대한 추억도 다 다르겠지요
전 목련은 희망의 꽃으로, 아주 반갑고 특히 몽우리진 모습은 힘찬 젊은이를 보는 것처럼 기분이 업 되어 봄마다 만나는 목련은 제게 희망입니다
떨어질때의 지저분함만 감출 수 있다면.
동백 목련 다 크기 때문에 마지막은 처참하리만큼 보기가 안좋은 ㅎ
동우님.
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경기도에 있는 요양병원에 있습니다.
유방암 진단에 폐에도 암같은 혹이 보인다하여..
먼저 유방수술받고 어제 수술후 결과 보러 삼성병원 다녀왔어요.
다행히도 1기암이라 항암 방사선 다 안해도 된답니다.
4월25일에 폐 수술 잡혀 있어요.
한 1센티만큼한 혹이 있는데 수술해봐야 안다고 합니다.
암이든 아니든 복강경수술 해야해서 수술전 몸 만드느라 운동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유방수술은 생각보다 간단한 수술이었습니다.
생전처음 보는 수술실안 풍경에 놀라고 마취를 하는 충격에 남편과 헤어지는 수술실에서 흐르던 눈물은 목련 동백꽃이 떨어질때의 그것을 능가해서 저도 저 아래 끝없이 떨어져야 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성경 말씀이 아주 새삼 확 와 닿습니다.
이제 쬐금은 담담함에 여유까지 가져봅니다.
이 봄이 희망이 아닌 저에게 시련의 봄으로 가득 차 버렸습니다.
씩씩하게 잘 이겨낼려고 준비 또 준비해봅니다.
이제 많이 쉬어 가라고 저의 발목에 브레이크를 아주 꽉 밟아버리네요 ㅎ
안좋은 소식 전하게 되어 죄송해요.
이래저래 짐작은 하고 있으시겠지만 더블어 저에 대한 좋은 소식을 기다려 주세요.
술 담배는 아예, 무질서한 생활과 거리가 먼 저에게 이런 일이 있을즐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ㅎ
동우님은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건강을 잃고서야 소중함을 아는 바보 올립니다. ㅎㅎ
***동우***
2016.04.02 04:39
설레임님.
금시초문입니다.
블로그 뜨아하시길래 새로운 사업에 여념없으신줄만 알았어요.
얼마나 놀라셨을까..
심각한 증상이 아니라니 천만 다행,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맞아요, 설레임님.
이제 좀 쉬엄쉬엄 사시라는 뜻이 있으리이다.
늘 긍정적으로 열심히 아름답게 삶을 영위하시는 분인데, 더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고자 하는..
모든게 잘 될겁니다.
힘내세요!
설레임님의 빠른 쾌유, 나도 기도하겠습니다.
<어둠의 집>
-오정희 作-
***동우***
2019.02.28 05:26
'오정희 (吳貞姬,1947~ )'의 '어둠의 집'
의식의 흐름...
'어둠의 집'은 나이 든 한 여인의 내면을 은유하는겐지.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9.03.01 07:56
폐경기가 지난 쉰 즈음의 그 여자.
등화관제훈련이라는, 타인에 의하여 강요된 어둠 속에 갇힌 20여분 동안 일상과 혼화된 그 여자의 의식세계.
혼자 어둠 속에 버려진 소외감과 외로움.
그리고 정체 모를 불안.
그 여자의 감정모체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어둠 속에 난입한 여덟명의 쏘련군으로 부터 윤간 당하였던 기억.
<그날 어둠 속에 난입했던 것은 일곱 명을 사내였던가, 여덟 명의 사내였던가. 킬킬대는 웃음 끝에 독한 술내를 풍기며 그들은 알지 못할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때도 그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모든 건 어차피 끝나게 마련이다. 영원히 소멸되지 않고 떠다니는 고통에 가득 찬 심장이 있을까. 육체가 소멸한 뒤에, 그것은 물과 불과 공기와 흙이 되어 떠돌 뿐 세상의 눈 밝은 자 뉘라서 그걸 알랴. 그러면서도 그 여자는 지난 세월 동안 출근하는 남편, 문 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행해 손을 흔들며 내가 다시 저들을 볼 수 있을까, 지금의 작별이 추억의 한 순간으로 남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사내 앞에서 옷을 벗는 딸을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미래의 어느 날, 나는 사고가 있던 날 역시 여느 날과 다름없었던 아침이었다고 회상하며 평온한 기류 속에 숨어 있던 불행한 사건의 전조를 알리는 어떤 암시를 캐내어 보려고 애쓰게 되지나 않을까, 따위들을 아득하게 생각하곤 했다.>
그 여자의 개별적인듯한 트라우마는 그러나, 여성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여성성(女性性)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에서 '미투'를 본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까요.
당하는 입장, 여성성(女性性)은 수동성입니다.
원초적으로 여성기(女性器)라는 생물학적 구조에서 비롯된 것인지, 시몬느 보바르의 말처럼 후천적 사회성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모르겠으되.
<불이 들어오기까지의 일 초나 이 초, 혹은 그보다 짧은 순간 그 여자는 어둠 속을 섬광처럼 지나치는 무엇을 보았다. 그것은 무언가 차갑고 날카로운 이물스러움이 그녀의 생애를 궤뚫고 지나간 느낌이기도 했다.
아마도 일생을 동반해 온 벗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녀보다 앞서 이 집에서 웃고 숨 쉬며 떠들며 살아갔던 사람들, 아니 그들보다 앞서 살았던 사람들, 또한 그 여자의 흔적, 비탄, 막연한 불안과 분노, 비애 따위를 한 번의 페인트칠로 말끔히 지우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갈, 미래 사람들의 가면처럼 냉혹하고 창백한 얼굴들이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떠오르는, 아무리 분칠하고 회칠해 보았자 사라지지 않는 생의 본래 얼굴.
어쩌면 남성성(男性性)이라고 그닥 다르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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