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강신재]]
<젊은 느티나무> <해방촌 가는 길>
<젊은 느티나무>
-강신재 作-
***동우***
2012.12.04 04:50
‘강신재(康信哉, 1924~2001)’의 ‘젊은 느티나무’
엄마가 재혼한 가정.
의붓오빠 ‘현규’와 사랑에 빠져버린 ‘숙희’
두 젊은이의 사랑.
다시 읽어도 너무나 신선하고 몹시나 청결하다.
늙은 내 콧가에도 상큼한 비누냄새가 어린다.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이렇게 정치(精緻)하게 묘사할수 있는 작가, 요즘 작가중에도 흔치 않다.
소설의 모두(冒頭).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 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아차릴 수 있다.
티이샤쓰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꿈치를 집고 서면서 나에게 빙긋 웃어 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간다―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만약 내 생애에서 한번도 그를 만나는 일이 없이 죽고 말 경우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기까지 한다.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았다. 나는 그를 만났다는 일만으로 세상의 어느 여자보다도 행복한 것이다. 그의 곁에서 호흡하고 있는 기쁨을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에필로그.
<그가 이삼 미터의 거리까지 와서 멈추었을 때 나는 내 몸이 저절로 그 편으로 내달은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사실은 그와 반대로 젊은 느티나무 둥치를 붙든 것이었다.
그래, 숙희, 그 나무를 놓지 말어. 놓지 말고 내 말을 들어.
그는 자기도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말하였다. 그 얼굴에는 무언지 참담한 것이 있었다.
숙희는 돌아와서 학교에 가야 해. 무엇이고 다 잊고 공부를 해야 해. 나도 그렇게 할 작정이니까. 우리는 헤어져 있어야 해. 헤어져서 공부해야 해. 어머니가 떠나시려면 비용도 들테니까 집은 남 빌려주자고 말씀드렸어. 내가 갈 곳도 생각해 놓고. 숙희도 어머니 친구 댁에 가 있으면 될 거야. 그렇게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숙희, 우리에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 말을 알아 들어줄까?
그는 두 발로 땅을 꾹 딛고 서서 말하였다. 나는 느티나무를 붙들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때 숲속에서의 일은 우리에게는 어찌할 수도 없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부정하고는 살아가지도 못할 게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겐 길이 없지 않어. 외국엘 가든지--
그는 부르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말을 알어 줄까,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삶은 끝나 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이제는 집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주겠지? 내일이건 모레건 되도록 속히-
나는 또 끄덕여 보였다.
고마워, 그럼.
그는 억지로처럼 조금 미소하였다.
그리고 빙글 몸을 돌려 산비탈을 달려 내려갔다.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 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저녁산책***
2012.12.12 06:25
동우님! 오랜만에 방문하니..아주 맜있은 밥상을 정성껏 차려 놓으신듯 합니다.
그냥 저같은 사람은 밥 숟가락으로 퍼먹기만 하면 되는..ㅎㅎ
무엇을 먹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요.
아주 로맨틱한 젊은 날의 사랑 이야기 ..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체를 보니 조금 시대가 앞선때의 작품인가 싶기도 하고요.
제가 너무 무식합니다.ㅎㅎ 작가 이름은 들어본듯 한데요,
차츰 한편씩 읽어가는 재미를 즐깁니다.
감사합니다^^
***동우***
2012.12.13. 05:26
저녁산책님, 맛있게 드셔 주신다니 정말 기쁩니다.
낫살 들어 다시 읽는 내게도 젊은 느티나무는 여전히 상큼한 소설입니다.
건강한 젊음, 깨끗한 젊음, 아름다운 젊음.
정말 청결한 비누냄새가 나는 것 같은.
객쩍은 소리 한마디.
저 숙희에게서 저녁산책님 댁의 어떤 이미지의 냄새도 없지 아니합니다.
아까 파파게노 훔쳐 들었어요. ㅎ
<해방촌 가는 길>
-강신재 作-
***동우***
2014.06.06 04:43
남산 남녘 후암동 가파른 산자락의 해방촌은 중학교때 한반 친구가 살고 있는 동네라 가끔 들렀던 곳이다.
루핑 판자집이 즐비한 척박한 동네였지만, 산 속으로 좀 들어가면 남산은 (적어도 지금보다는)깊고 맑았다.
남산 뿐이 아니다, 전후(戰後)의 저 피폐하고 어두운 시대의 여자는 (적어도 남자보다는) 강인하고 아름다웠다.
<하리이가 지금 당장 어디루 가 버린댔자 나는 꿈적도 하지 않을 걸. 백 번 팽개쳐진댔자 꿈적도 하지 않을 걸……>
무기력한 남자는 좌절하여 죽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어머니와 누이들은 죽지 않았다.
살아내어 자존을 지켰다.
여자들이 집안을 일으켰다.
잉태한 미군 아이의 낙태, 다른 미군과의 동거.
추호라도 한민족 윤리의 존엄성을 버렸다고 여기지 말라, ‘기애’여.
'똑바로 자라나 다오'
동생 욱이에게 거는 소망.
기애의 정신은 순결하였고 기애의 자존은 늠름하여야 한다..
강신재(1924~2001), 손소희, 박순녀, 한무숙, 박경리등... 前세대 여성소설가들의 작품들.
느끼건대, 문장력 묘사력 구성력에 있어서 요즘 여성작가가 못미치는 경지 없지 아니하다.
고전적 감수성의 유니크 함에 있어서도.
전에 포스팅한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
<그 소설에서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한국소설중 그처럼 상큼하게 청결한 소설도 드물 것이다.
젊은 느티나무의 '숙희'와 이 소설 '해방촌 가는 길'의 기애.
(나이들수록 페미니스트가 되려는지) 둘에게서 (전혀 색갈이 다르지만)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본다.
소설이 끝나고 나서도, 두 여자는 인생을 찬연하게 긍정하여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남자는 '글라시아스 알라 비다'를 노래 할 줄 모른다.
비극성은 본질적으로 남자에게 있다.
***eunbee***
2014.06.06 07:31
재미있네요.
기애, 그녀의 시원시원하게 삶을 헤쳐나가는 저력? 근원적인 힘이 매력 넘쳐요.
빨강, 또는 금빛 나는 구두를 신는 발과 마음을 가진 기애.
정신 나가게 어지러운 색깔로 칠하고 신고 걷고 현실을 밟고 살아내는 여자.
우리 세대들에서 혹은 한참 아래들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었던 기애들.
기애가 뒷바라지한 욱이들이 사는 곳.
어쩌면 이웃의 일 같이 낯설지 않아 쉽게 읽혔기도 하였을 거예요.
현충일과 GI와 기애 이야기가 겹친 6월6일.
내 나라는 현충일,
이곳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오바마 대통령 등등이 모여 기념하는 그날 '롱게스트 데이' ㅎ
어릴적 그영화를 나는 어떤 감상으로 보았던가.
이제 잠이나 자자.
그리고 내일은 개선문으로 나가 보자.
역사적인 현장에 서있기를 즐기는 나. 하하핫
***동우***
2014.06.07 05:10
파리의 '롱거스트 데이' 메모리얼 행사.
은비님의 역사의식의 면모는 내게 그닥 짙지 않지만. (은비님은 사적으로 로코코하신 분...ㅎㅎ)
인파 속에서 은비님 어떤 감회에 젖었을라나.
수요일은 지방선거일, 어제 금요일은 현충일, 그리고 토일요일.
여기는 징검다리 연휴랍니다.
근데 어째유? 은비님.
나는 앓고 있다우. ㅠㅠ
몸살에 눈다래끼에.
***eunbee***
2014.06.07 05:50
동우님
건강하시라고 그리도 말씀드리건만
편찮으셔서 어쩐대요. 몸풀이로 또 한차례 지나갈 모양이에요.
가끔 몸풀이도 그렇게 해야 되니, 연중 행사로 여기셔야죠.
우리 나이에.ㅋㅋㅋ
징검다리 연휴에 편히 누우셔서 몸조리 하세요.
그런데 소년은 소년이세요. 다리끼가 난 걸 보면.^^
ㅎㅎ~
역사적 현장을 좋아하는 건 역사의식하고는 아무 상관없어요.
그 현장을 보고파하는 호기심 정도.ㅋ
화면에 비추이는 노병들 가슴에 무겁게 매어달린 훈장에서 어떤 감회가 있었지요.
내가 태어날 때 저분들은 스무살 쯤의 청년이었겠구나.
저 훈장은 전사한 전우의 피가 아닐까.. 목숨이 아닐까..
노르망디에서 행사를 하기에, 개선문 쪽으로 가지않고 퐁피두에 들러서 책을 사왔어요.
여기는 매일 뭔가가 축제 같아요. 팍크 드 쏘에서는 이 초여름 밤에도 역시 오페라가 예고 되어있고요.
{이번에는 돈 죠반니) 오늘도 쏘 이곳저곳에서는 뭔 축제가 벌어지고 있던 걸요.
이집 사람들은 관심도 없어요. ㅎㅎ
이제 막 푸른 저녁은 스러졌네요.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았어요.
동우님의 빠른 쾌유를 기도합니다.
***동우***
2014.06.09 04:48
많이 좋아졌어요.
기침도 몸살끼도, 눈 다래끼까지
은비님의 기도 덕분.
눈다래끼.
안과에 갔더니 의사가 당장 째자고 메스들고 달려듭디다.
마취를 하여도 상당히 아플테지만, 잠시만 참으면 된다고.
이 겁쟁이, 당연히 고개를 흔들었지요.
안약 안연고 복용약만 처방받고.
근데 인터넷에서 발견한 민간요법, 아들녀석이 시술하였는데 효과 만점.
눈다래끼, 이제 나한테 물어보시우. ㅎ
퐁피두에서 사신 책은 무슨 책?
돈 조반니 공연, 쏘공원의 야외극장은 어떨까.
지금 파리, 스러지기 전의 푸른 저녁 개와 늑대의 시간이겠네요.
코 주무시고 새로운 한주의 시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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