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볼프강 보르헤르트]] -1.2.3 (1,4,3,3,1)

카지모도 2020. 8. 8.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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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없는세대> <독본이야기> <버찌> <밤에는쥐들도...> <허공에떠도는...>

 

 

<이별 없는 세대>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1 04:24

 

볼프강 보르헤르트 (Wolfgang Borchert, 1921~1947)

그의 연극 '문밖에서'를 보고, 그 희곡을 읽고 전율한 적 있습니다만, 전쟁의 비극성을 볼프강 보르헤르트처럼 의식 속에 가득 담고있는 사람도 드물겁니다.

 

이별없는 세대.(Generation ohne Abschied)

내일을 기약할수 없는 이들의 이별방식은 다만 가만히 몸을 숨기는 것입니다.

죽음 속으로.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만나지만 이별없는 세대에게 그 만남은 지극히 짧고 진정한 이별은 없습니다.

 

정말로 천재는 요절하는 존재인가 봅니다.

이상(李箱)은 스물일곱에 자의식(自意識) 속에서 죽었고, 보르헤르트는 스물여섯에 시대(時代)의 의식 속에서 죽었습니다.

아, 보르헤르트.

차츰 지껄이기로 하지요.

 

세밑입니다.

좋은 한주의 시작을.

 

 

<독본 이야기>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2 01:19

 

'보르헤르트'는 대부분의 작품에서 매우 짧은 산문을 구사합니다.

한편의 詩처럼 축약된 이미지...

음울한 색채로 그려진 전후(戰後) 한 젊은 천재의 실존의 기록...

평이한 어휘, 하드보일드한 문체는 전혀 난해하지 않습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주어온 보르헤르트에 관한 단편(斷篇)의 프로필들입니다.

 

+++

<....독일 시인·극작가. 교사의 아들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실업학교를 중퇴하고 서점에서 견습을 하면서 연극의 길에 뜻을 두고 1941년 뤼네부르크의 <동하노버지방극단>배우로 들어갔으나, 곧 제2차 세계대전에 소집되어 병사로서 동부전선으로 파견되었다가 부상하고 황달과 발진티푸스로 인한 입원으로 제대하게 되었다. 반체제적 언동으로 여러 차례 감옥에 들어갔으며, 2회에 걸쳐 보호관찰처분을 받았다. 병역 기피의 혐의와 나치스 비방의 죄명으로 투옥되어 전선과 감방 사이를 오갔다. 종전 직후 무대생활로 돌아와, 함부르크에서 동료들과 희극을 상연, 극장의 감독조수가 되지만 간장병으로 요양을 받아야만 하였다. 47년 친구의 주선으로 스위스의 바젤병원으로 이송되는데 병상에서 집필한 《문 밖에서(1947)》의 함부르크 초연 전날 26세의 젊은 나이에 짧은 생애의 막을 내렸다....>

 

<....보르헤르트의 인생은 전쟁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다. 1942년 불과 20세의 청년 보르헤르트는 병역 의무기피로 총살형을 구형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4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고, 전선에 복무한다는 조건으로 형집행 정지로 풀려나 다시 러시아 전선에 배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결함과 명료함으로 인해 훗날 '보르헤르트문체(文體)'라는 명칭을 얻게 된 그의 글쓰기에 대해 평론가들은 "절망과 분노를 넘어서는 따사로운 용납과 유머를 전반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히틀러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을 당시, 보르헤르트는 당시의 권력자 괴벨스를 조롱했다는 명목으로 투옥당하면서 사형집행의 위기에까지 몰리는 극한 상황을 겪는다. 불의함이 정의를 조롱하면서 협박하는 숨막히는 현실…. 좌절의 심연으로 침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의 독특한 유머(humor)는 결코 꺽이지 않는다....>

 

 

<버찌>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3 04:55

 

아이는 열병에 걸렸습니다.

어머니가 차가와지도록 창밖에 내어 놓은 버찌.

아이는 차가운 버찌가 얼마나 먹고 싶을까요?

누군가 그 차거운 버찌를 가져다 주기를 목타게 기다리고 있는 아이입니다.

 

버찌가 담긴 유리잔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손에는 버찌의 붉은 물이 물들어 있습니다.

세상에나. 아버지가 버찌를 먹어치운 것입니다.

열병으로 뜨거운 자신이 먹어야 할 그 차거운 버찌를...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원망.

 

그러나 아버지는 버찌를 담아 아이에게 갖다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다 그릇을 깨 손을 베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버찌를 가지고 왔을때, 아이는 부끄러워 이불 속에 얼굴을 묻습니다.

 

붉음과 열병. 버찌와 피.

오해..

뜨거움과 차거움.

 

어떤 영상의 감각적 이미저리..

아이의 마음속 파동까지도..

 

필경 참혹한 어떤 것에 대한 은유, 그 흔적이 숨어있을 법 합니다만..

글쎄요. 느낌이야 읽는 이 마음대로. ㅎ

 

***동우***

2015.12.23 05:20

 

미국 버지니아로부터 날아온 The Lee Family의 크리스마스 카드와 편지.

레이몬드네 세식구의 행복한 모습들,

매년 이맘때 받는 기쁨입니다.

훌쩍 자라 훤출한 앤드류 도연 도령, 장가보내도 되겠습디다. ㅎㅎ

Merry Christmas.

Raymond, Minjung and Andrew !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5 05:17

 

천재의 영역. 이(理)인가 감(感)인가.

둘 다 일 것이다. 새는 좌우(保革)의 날개로 날고, 천재는 理와 感의 날개로 난다.

직관으로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압축된 이미지(혹은 logic으로)로 정제(精製)할수 있는 권능이 천재에게는 있다.

 

볼프강 보르헤르트.

책을 펴놓고 스마트 폰으로 그의 얼굴을 찍는다.

왼쪽(보는 측에서)은 '5월에 뻐꾸기가 울었다'에 실린 사진이고 오른쪽은 '문 밖에서'에 실린 사진이다.

이목구비에 깃든 음영이 어딘가 천재스럽다.

천재의 얼굴은 어딘가 다르다. 이상의 포의 오사무의 보들레르의 초상이 그렇듯.ㅎ

수염을 길러서 그런가, 오른쪽 얼굴은 20대로 보이지 않는다.

 

보르헤르트.

이 빠진 글조각들은 책을 펴 놓고 자판 두드려 채울 참이지만, 텍스트 파일이 많지 않아 아쉽다.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다.

아홉살 짜리 어린아이와 노인.

아이의 세계는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세계이다.

아이의 의식은 불안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폭격으로 무너진 파편 더미에 묻혀 있을 어린 동생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눈 부릅떠 지키고 있을 뿐이다.

 

얘야, 밤에는 쥐들도 잠을 잔단다...

지혜롭고 조심스럽게 아이를 폐허속 절망과 불신으로부터 인도해 내는... 무릇 노인은 저러해야 한다.

 

작금 우리 세상의 알레고리....

우리 노인도 저러해야 한다.

나도 저러해야 한다.

 

비니미니 안방 할미 곁에서 잠자고 있는 성탄절 아침.

다시 벗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허공에 떠도는 한밤의 소리>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6 04:32

 

허공에 떠도는 한밤의 소리는 죽은 사람들이 방황하는 소리입니다.

 

<여러분, 죽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너무 많아서 밤마다 허공에 밀쳐나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그들은 머물 자리가 없게 되었어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차버렸기 때문이에요. 가장자리까지 가득 차버렸어요. 그런데 그들은 마음속에만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이가 너무 많아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죽음이 산 자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들어앉기에는 산 자들의 마음 속에는 이미 죽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밤중 천지가 고요해지면 숱한 죽음들의 소리는 들어가 앉을 마음을 찾아서 허공을 떠돕니다.

그들의 수런대는 소리에 늙은이들은 도무지 잠을 이룰수 없습니다.

 

2차 대전으로 죽은 사람이 대략 6천만이라지요 (어떤 통계는 7천만명이라고도 합니다)

아, 자그만치 6천만, 그 숫자를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죽음의 인플레, 사람목숨 6천만은 무수(無數)가 아니라 무한(無限)의 숫자입니다.

 

보르헤르트는 100만의 죽음이 널부러진 스탈린그라드의 현장을 겪어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사랑하는 주님!...당신은 스탈린그라드가 마음에 드셨나요? 사랑하는 주님, 당신은 그곳이 마음에 드셨냐구요? 어떠신가요? 네? 당신이 마음에 든 것은 도대체 언제였나요?>

 

神이라도 그 숱한 죽음들을 어떻게 거둘수 있겠나요.

하물며 사람임에랴.

산 자들의 마음에 담기에 그것은 너무나 많은 숫자입니다.

 

그래서 죽음들은 들어 앉을 마음을 찾아 밤마다 허공을 떠도는겁니다.

늙은 신사도 늙은 여자도 차장도 마음에 담지 못한 그 많은 죽음들의 수런대는 소리로 불면의 밤을 지새웁니다.

 

<"그래, 젊은 놈들! 그놈들은 잠을 잘 수 있지. 오후에나, 밤에나. 젊은 놈들, 그 녀석들은 은밀한 말소리를 잠에 취해 흘려버린다오. 우리 늙은이들만이 귓속 깊이 간직하고 있는 거야. 젊은 놈들은 밤의 소리를 알아들을 귀가 없어. 그놈들은 잠을 잘 수가 있어.">

 

한밤중의 소리라니까 젊은 두 처녀는 남녀상열지사를 연상하여 얼굴을 붉히고 낄낄거립니다만, 젊은놈들에게 죽음은 창백한 현실로써 더욱 선연합니다.

 

<"어머님은 아침마다 십일월이 되거든 외투를 입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 압니다. 그렇지만 어머님은 돌아가신 지가 벌써 삼 년이 됐는걸요. 어머님은 제가 이제 외투가 없다는 걸 아실 리가 없죠. 아침마다 어머님은 얘야, 벌써 십일월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외투 같은 건 아실 리가 없죠. 정말로 돌아가셨으니까요.">

 

밖엔 안개가 끼었고 오후였고 십일월이었습니다.

젊고 몹시 창백한 사나이는 담배를 피워 물고 날이 저문 저녁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가 고팠습니다. 그는 외투가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죽었고 때는 십일월이었습니다.

 

축축하게 안개 낀 오후, 텅 빈 거리, 안개 속에 가뭇 뻗어있는 전찻길, 움직이는건 회색전차 한대 뿐, 차장 그리고 승객은 오직 다섯사람..

 

자욱한 이미저리에 잠겨있는 가슴저린 알레고리....

 

성탄절 연휴 잘 보내고 계시겠지요들. (성탄절 겸한 어떤 친구의 겹즐거움, 엊저녁 따님 생일파뤼는 성대했으리라.ㅎ)

늙은이의 적막한 크리스마스 연휴, 비니미니녀석 까르르 웃고 콩당콩당 마루를 굴려 그나마 즐거웠습니다.

난데없는 배탈로 골골대느라 할비는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습니다만.

 

 

 

 

 

-독서 리뷰- 

 

[[볼프강 보르헤르트]]

<적설> <빵> <세 명의 어두운 왕>

 

 

<적설>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7 04:47 

 

온 천지사방 적설(積雪)로 뒤덮인 하얀 세상.

설경(雪景)이 의식에 작용하는 바는 제가끔 어떤 색감일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설국)의 탐미적 허무주의도 있겠거니와 특별한 상황 속에서는 눈 속에 갇혀 페색(閉塞)된 의식, 모파상(산막)의 극한공포도 있을수 있겠다.

전에 소설가 백종선은 내게 ‘눈이 쌓인 하얀 세상에 잠기면 하염없이 졸음이 온다’고 말하였는데 그 또한 사방 적막하고 고요로운 풍광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의식작용일 것이다.

 

보르헤르트의 적설(積雪).

러시아 전선(戰線)의 영하 42도의 얼어붙은 백색세상.

교착상태의 전선일 망정, 어느 상황에서나 전쟁은 전쟁중이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적의 기습과 포탄과 총탄.. 

위험은 언제나 얼어붙은 눈세상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다.

 

한시도 늦출수 없는 긴장, 불안과 공포는 의식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있다.

사소한 소리라도 놓칠세라 아무리 추워도 귀덮개를 했다가는, 큰소리로 노래를 불렀다가는 곧바로 총살이다.

총이 얼어붙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15분마다 한번씩 빈덤불에다 대고 사격을 하는 것은 용납된다.

공포와 함께 얼어붙은 백색적막을 깨뜨리는 그 소리가 마음을 조금 안심시켜 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시라도 터질 위험이 잠재된 적막강산은 공포와 불안을 증폭시킨다.

들리는 것은 다만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떨어지는 소리..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숨소리는 내면의 공포가 만들어내는 무의식의 소리이다.

 

그 불안한 소리를 쫓아내려고 초병(기관총사수)은 노래를 부른다.

크리스마스 캐럴.

사랑하는 가족과의 난롯가의 흥겨운 추억, 창밖으로는 소복소복 눈이 내리고...

 

노래소리를 듣고 저만치서 상사가 달려온다.

아뿔사! 이제 총살이로구나.

 

<상사는 말하고 나서 다시 헐떡거리며 기관총 사수를 꼭 붙잡았다. 자네, 웃지 말게. 그렇지만 그것은 정적 때문이야. 몇 주씩이나 계속되는 이 적막함. 쥐새끼 소리 한 번 안 들린다! 아무 소리도! 그런데 어느 사이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리는 거야. 이미 때는 2월인데. 그렇지만 그것은 눈 때문이지. 여기에는 눈이 참 많기도 하다, 어이, 웃지 말게.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한단 말야. 자네는 이제 겨우 이틀째 여기 있지. 그렇지만 우리는 벌써 여러 주째 눈 속에 앉아 있다네. 숨소리도 없어. 아무 소리도 없이. 그것이 사람을 미치게 하지. 끝없이 천지가 조용하다. 숨소리조차 안 들린다. 몇 주 동안을. 그런데 점차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린단 말야. 응. 웃지 말아. 그런데 내가 자네를 보자마자 갑자기 노래들이 사라져 버렸어. 아이구,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니까. 이 영원한 정적이. 이 영원한.>

 

상사와 초병은 마주잡고 웃는다.

러시아의 숲 속에서. 이월에.

 

얼어붙은 정적. 백색의 적요.

그 배후에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보르헤르트가 시적(詩的) 문체로 보여주는 이미지는 그림같다.

설경(雪景)의 뒷편, 절망의 구덩이속에서 몸부림치는 해골의 실루엣이 내비치는.

 

 

<빵>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8 08:30

 

'빵'은 서글프면서도 따뜻한 소설입니다.

배가 고픈 남편은 한밤중에 몰래 부엌에 나와 빵을 잘라 입에 넣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들켜 아내에게 창피합니다.

무슨 소리가 들려서 부엌에 나왔을 뿐이라는 남편.

애써 변명하는 남편, 부인은 좀 역겹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편이 폭삭 늙어 보입니다.

 

잠자리의 옆에서 숨죽여 우물우물 빵을 씹는 소리.

부인은 남편의 그 소리를 못듣는듯 잠든척 합니다.

 

다음날 저녁 부인은 소화가 안되는척 자신의 몫의 빵을 남편에게 건네줍니다.

 

노부부.

상황묘사보다 부인의 심리묘사가 애틋합니다.

 

종전직후의 궁핍.

절망과 허무 뒤에 숨겨진 따스한 희망을 봅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가시버시 사이에 저런 체면차림과 배려 흔치 않을거라는..ㅎ

 

보르헤르트는 함부르크를 사랑하였습니다.

고향의 밤과 별과 달과 가로등을 그리 좋아하였다지요.

 

그의 詩 몇편, 책으로부터 옮겨 씁니다.

 

++++

 

<함부르크에서>

-보르헤르트-

 

함부르크의 밤은

다른 도시와는 달리

부드러운 파랑의 여인이 아니라네.

함부르크의 밤은 잿빛.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 곁에서

비를 맞으며 지켜준다네.

 

함부르크의 밤은

항구의 술집 마다마다에 깃들여

짧은 치마를 가볍게 걸치고.

좀다란 벤치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웃음소리 들리면

유령처럼 살그머니 기어와 서로를 묶어주네.

 

함부르크의 밤은

밤꾀꼬리의 목소리로

달콤한 곡조를 콧노래 부를 수 없다네.

항구에서 시내 쪽으로 뿌우뿌우 들려오는

뱃고동 노랫가락이 꼭 그렇게

우리를 행복하게 해줌을 알기에.

 

<가로등의 꿈>

-보르헤르트-

 

나 죽으면

어쨌든

가로등이 되고 싶네.

하여 너의 문 앞에 서서

납빛

저녁을 환히 비추리.

 

아니면 커다란 증기선이 잠자고

소녀들이 웃음을 짓는 항구.

가느다랗게 나 있는 불결한 운하 옆에서

나는 깨어

고독하게 걸어가는 사람에게

눈짓을 보내리.

 

좁다란

골목. 어느 선술집 앞에

붉은 양철 가로등으로

나는 걸려 있고 싶네...

 

하여 무심코

밤바람에 실려

그들의 노래에 맞추어 흔들리고 싶네.

 

아니면 한 아이가 있어

혼자 있음을 깨닫고, 창 틈에서

바람이 으르렁거리며

창 밖에는 꿈들이 귀신처럼 출몰하여

놀라워 하거든, 눈을 크게 뜨고

그 아이를 비추어주는 가로등이 되고 싶네.

 

그래, 나 죽거든

어쨌든 가로등이

되어.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잠든

밤에도 오로지 홀로 깨어

달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물론 너, 나 하는 친숙한 사이로.

 

<전설>

-보르헤르트-

 

매일 저녁 그대는 암담한 고독 속에서

기다리며, 행복을 동경하네.

아아, 그녀의 눈에 비애가 둥지를 트는 것은

그이가 돌아올 수 없기 때문.

 

어느 밤 어두운 바람이

그녀를 유혹하여 가로등이 되게 했네.

그녀가 비추는 불빛을 받으며 행복한 연인들이

나지막이 속삭이네, 나는 너를 좋아한다고....

 

++++

 

 

<세 명의 어두운 왕>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9 04:15

 

'세 명의 어두운 왕'

성탄절 날 이 소설을 포스팅할 걸 그랬습니다.

로맹 가리의 ‘벽’ 대신에, 진작 텍스트 파일을 업어왔었더라면 말입니다.

 

구세주의 탄생.

이천여년 전, 세사람의 동방박사는 별의 인도를 받아 먼 길을 걸어 말구유에 누운 아기 예수를 경배합니다.

 

어느 즈음 어느 장소일까요.

폭격으로 부서진 집들, 썩은 나무로 만든 낡은 울타리...

 

요셉인가요, 그는 굶주려 여윈데다가 방금 아이를 낳은 아내가 한데 추위에 떨어야하는 현실이 노여워 누군가 면상에 종주먹을 날리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별들은 없었습니다.

 

마리아인가요, 황량한 헛간에는 추위와 산고에 지친 여자의 시퍼렇게 창백한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숨결이 하얗게 걸려 있을 뿐입니다.

동방박사들인가요, 동상으로 두 손을 잃고, 수종으로 발을 싸매고 절룩이는 그들에게 황금과 몰약과 유향따위 예물은 없었습니다.

아기 예수인가요, 아기 주위의 따스한 한줌 빛의 테두리 안에는 연약하고 달콤한 냄새가 떠돌고 있습니다.

 

<한번 보세요, 아이가 살아 있는 모습을요, 라고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이는 입을 벌리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우는 건가? 남편이 물었다. 아니오, 웃고 있는 것 같아요. 아내가 대답했다. 과자 같군,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나무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과자 같아, 아주 달콤해. 오늘이 크리스마스지요, 아내가 말했다. 그래요, 크리스마스요, 그가 중얼거렸다. 화로에선 한줌의 빛이 잠자는 작은 얼굴에 밝게 내리비췄다.>

 

참혹한 시대가 귀환하는 곳, 희망이 잠재된 고향...

 

 

 

 

 

 

-독서 리뷰- 

 

[[볼프강 보르헤르트]]

<신의눈> <부엌시계> <여기있어줘요...> <열차의오후와밤> <뭐라고말할 수 없는...>

 

 

<신의 눈>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29 04:25

 

또 한편의 소설, '신의 눈'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

편재(遍在)하심.

 

킬링필드, 시베리아, 아우슈비츠.

그런 곳에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있을테지만 당신께서는 침묵하십니다.

당초, 당신께서는 이 현세(現世)의 지랄같고 지옥같은 상황에 대해서는 눈꼽만큼도 응답하실 의도가 없으신 것인지.

당신이 임재하시는 영역이란 오로지 저 편, 산(生) 것들의 실존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그곳, 죽음으로서만 도달할수 있는 그곳인지.

 

‘엘리 위젤’은 사뭇 시니컬합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그때 나는 나의 내부에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한 목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디 있느냐고? 그는 여기에 있어. 그는 여기 교수대위에 목이 매달려 있는거야.' -여러 민족가운데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밤낮으로 고문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들이 화장장에서 산채로 최후를 마치는 광경을 보게하신 영원한 우주의 주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고통의 절정, 그 감각의 극점에서 뉘라 하나님을 부르짖을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나 가능하지, 그 누구도 온전하게 존재의 전부를 신앙에 투사할수 있는 사람은 없을겁니다.

그러나 행간에서 느끼는바, 보르헤르트의 이 소설, 하나님을 향하여 노골적으로 감자떡을 먹이는건 아닙니다.

 

보르헤르트는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필경 그의 희망이 근거하는 바는 인간에게 깃들어있는 어떤 신적(神的)인 어떤 영역일 것입니다.

그 방향으로 보르헤르트의 신앙은 조신(操身)합니다.

 

<대지가 다시 가라앉는다. 족쇄도 고통도 다시 가라앉는다. 나는 하늘의 별이 되어. 우주에서. 신의 넓은 가슴의 고동을 느낀다. -보르헤르트->

 

보르헤르트는 허무주의자도 아닙니다.

전쟁과 감옥과 질병, 고난 속에서 비록 허무주의자처럼 뇌까릴지언정 그가 가장 되고 싶지 않았던게 바로 허무주의자였다고 합니다.

 

<도취하라! 이러한 삶은. 오로지 도취해서나 살아갈 수 있을뿐- 정신과 피와 포도넝쿨에 취하고. 빛과 어둠에 취해서! 삶을 들이켜라. 삶 그 자체는 포도주이니! -보르헤르트->

 

그는 병들어 지친 상태에서도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장엄하고 뜨겁고 무의미하고 이해할수 없고 미쳐 있는 이 삶을 남김없이 숟가락으로 떠먹고 빨아먹고 핥아먹고 맛보고 즙을 내서 먹고 싶어! 그런 일을 나더러 놓치란 말이야? 내가?>

 

새벽의 횡설수설이었습니다.ㅎ

 

 

<부엌시계>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30 04:20

 

매우 나이들어 보이는 스무살 짜리 남자.

그는 둥그스름한 접시 모양의 하얀 부엌시계를 들고 있습니다.

 

양철 시계바늘은 파랗게 칠해진 숫자의 두시반에 멈춰 서 있는 고장난 시계.

그의 집은 두시 반, 바로 그 시간에 폭격으로 폭삭 무너져버렸겠지요.

부모님 시신(屍身)이나마 수습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룻밤 새 청년은 얼이 빠져 버린듯 합니다.

 

폭탄이 집과 함께 어머니와 아버지를 산산조각 내 버린 그 시간.

새벽 두시반.

그 시간은 '또 이렇게 늦었구나'하시면서 언제나 어머니가 밥을 차려주시던 그 시간입니다.

 

<그는 하얗고 파란 시계의 숫자판에 대고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 지금 나는 알지요. 그때가 천국이었어요. 진짜 천국이었다구요.>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던 전쟁 속의 사람들..

가정이라는... 천국이라는... 그 단어의 생경함을 끊임없이 되씹고 있습니다.

 

이런 시가 눈에 띄어 옮겨옵니다.

이승하란 시인이 쓴 시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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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의 약속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부제 '볼프강 보르헤르트에 얽힌 추억'

-이승하-

 

가야 할 길은 또 얼마나 멀고 험할까

돌아다보면 참 아득도 해라 눈꽃 핀

세상, 사람들은 얼어붙어 정육점의 가축처럼

(어린 시절, 정육점 앞을 지날 때는 눈길을 돌렸었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모습을 하고 걸려 있었네

20세기의 지상 곳곳, 대리전과 침략전과 내전이 끝난 뒤

통곡하는 상복의 여인을, 미쳐버린 스물네 살의 처녀를

너는 본 적이 있는가 네가 본 세상의 어둠은

눈으로 덮여 있어 더 환하고 순결했을 것이네

 

얼마를 더 가야 쉴 곳이 나올까

밑창 다 떨어진 구두와 지폐 몇 장

젖은 가방을 베고 누워 운 적이 있었네

(그 가방 속에는 '이별 없는 世代'가 있었고)

젊은 탕아들이여 귀가하지 말라

너희들이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고 외치고 싶던 그날

눈 쌓인 길 위에서, 볼프강 보르헤르트

왜 너는 더없이 순수한 죽음에 관한 것들을 들려주었었나?

왜 너는 나한테 관련맺음의 아름다움을 들려주었었나?

 

나도 언젠가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수십 번도 더 내가 살해하고 용서했던

부모와 형제(=가족=가축?)가 준 상처는

(그 상처는, 다른 누가 주는 상처보다 깊으리)

이 우주의 역사와 더불어 불멸할 거라고 저주하며

집을 떠났었네, 네 짧은 소설마다 눈 내리고 눈은 꽃피워

겨울이 오면 늘 다시 읽고 싶은 볼프강 보르헤르트

그날, 길 위에서 너는 나한테 손 내밀며 말했었네

가장 가까운 것, 힘없이 늙어가는 것들은 다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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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어 줘요, 기린 아저씨>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5.12.31 04:53

 

여기 있어줘요 기린 아저씨, 젖은 나무냄새가 나는 네 머리에 얼굴울 묻고싶지만 나는 지금 가야 해...

역(驛), 창녀, 상이군인. 하룻밤 짧은 사랑...

 

<그러나 의족을 한 기린은 공허하게 울리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포도를 건너 떠나갔다. 그의 뒤에서 아침 회색의 거리가 그 바위같은 고독 속으로 다시 적막하게 가라앉았다. 창들은 우유 입김으로 유리가 된 듯이 파충류의 눈처럼 죽어 있었다. 커튼이, 잠에 겨워 몰래 숨쉬는 눈까풀이 가만히 흔들렸다. 좌우로 흔들거렸다. 하얗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애처롭게 그의 뒤에서 손을 흔들었다. 창의 문짝이 야옹 소리를 냈다. 그녀는 젖가슴이 시려왔다. 그가 돌아보자 창유리 뒤에는 지나치게 빨간 입이 있었다. 기린 아저씨, 그 입은 울고 있었다.>

 

옛날 우리나라 도회의 정거장에도, 분 바른 창녀의 창백한 웃음과 정처(定處)잃은 놈팽이의 어쯥잖은 슬픔이 역 광장에서 교직(交織)되었었지요.

그 때에도 전쟁 상흔(傷痕) 남아있던 슬픈 도시에는 일몰이 왔고 시계점 지붕 위의 청동비둘기는 바람부는 날은 구구 울었습니다.

뿌연 와사등 아래.

 

보르헤르트의 다른 책갈피를 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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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오후와 밤>

-보르헤르트-

 

우리는 아무도 고향에서 죽을 것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열차는 철로위에 지쳐 쓰러지거나 기관이 고장나 이름모를 공작창에 폐기되어 고철이 되거나 광장의 슬픔들도 차디찬 겨울밤 한방울 눈물로 얼어붙을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들은 어디론가 가려 하고 당당하고 잔혹하고 무한하게 돌아다니려 합니다.

밤과 낮, 철로 둑의 꽃들은 그을린 꽃송이로, 전깃줄 위의 새떼는 그을린 목소리로 그들과 친해지며 오랫동안 그들을 기억할 뿐입니다.

끝없이 멀리서 약속에 찬 기적이 울려올 때면 우리는 또 놀란 눈을 하고 멈추어 섭니다.

세상을 뒤집어엎기라도 할 듯 뇌우처럼 앞에 다가왔을 때 우리는 머리칼을 흩날리며 서 있습니다.

다시 끝없이 먼 곳에서 기적 소리가 울려올 때까지 우리는 그을은 얼굴로 막연히 서 있습니다.

저 멀리 사라져가는 기적 소리. 외치는 소리, 본시 그것은 무(無)였습니다.

혹은 전체였습니다. 우리처럼.?

당신은 열차입니다. 덜커덩거리며 기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열차입니다.

당신은 철로입니다. 온갖 일이 당신 위에서 일어나고 당신을 녹슬어 눈멀게 하거나 은빛으로 번뜩이게 합니다.

당신은 인간입니다.

당신의 두뇌는 기린처럼 외롭게 끝없이 긴 목 위쪽 어느 곳에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 마음을 속속들이 아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완벽한 절망, 그렇지만 끝없는 희망.

부당하게 약한 것들에 대한 사랑은..

 

빛의 탑이 되고 싶다.

대구와 황어를 위하여,

모든 작은 배를 위하여.

그런데 나 자신 스스로

난파선이네!>

 

++++

 

세밑의 끄트머리.

또 플랫홈에 서서, 낡은 짐짝 실어 열차를 떠나 보냅니다.

그 옛날 서울과 부산, 상거(相距)한 거리는 얼마나 멀었던지.

가뭇 사라져가는 열차의 꽁무니는 늘 별리(別離)의 눈물꼬리였습니다.

 

남겨진 자는 슬픔이었지만, 떠난 것들은 결국 허세였습니다.

떠난 열차는 괜히 으르렁대면서 마음밭 어느 외로운 간이역을 달릴터입니다.

 

새로이 맞는 벗님들의 열차.

이제 가득

복되소서.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

-볼프강 보르헤르트 作-

 

***동우***

2017.11.2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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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씨를 부르면 나요, 하며 나타나는 어제씨의 손

어제씨와 오늘씨는 시제가 바뀐 장소였네

눈길에 미끄러지고 추억에 쫓기는 거리

탈출에는 모험과 액션이 길이겠지만

길고양이는 이 건물 옥상 빨랫줄에서 부적처럼 다정히 말라가는 세 마리 물고기를 꿈꾸겠지

 

바람은 어디서 바람과 만나 기다리는 바람을 낳나

슬쩍 열어 보이는 바람 포켓은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숲

번식과 복제에 흉허물이 없다 외치네

숲의 입구에서 죽은 봄이 남은 꽃을 들고 계절을 흥정한다

 

다른 장소에서 들려오는 폭발음

꿈이군 꿈이야, 추억의 잔해가 들것에 실려 나간 공터는 쓸 만한 망명지라지

저이는 짝짝이 신발 신은 마네킹의 손을 잡고

게임의 끝까지 달려간다

또 다른 오늘씨는 막, 커피 잔은 빠져 죽기엔 너무 작다*는 문장에서

빠져나오는 중

 

-볼프강 보르헤르트,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커피 맛」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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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서, 「정객」, 《21세기문학》, 2015년 봄호

 

<오늘씨를 부르면 나요, 하며 나타나는 어제씨의 손”이라는 도입부가 우선 눈을 사로잡지만, 이 시인의 언어 감각은 곳곳에서 빛난다. 「정객」이라는 제목은 시간,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묘사하는 이 시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주조하는 데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고, 시어의 긴장감도 살아있다. 이를테면 이 시의 첫 번째 연에 쓰인 “탈출에는 모험과 액션이 길”이라는 어구는 독특하지만 시의 정서와 조금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다시 두 번째 연에서 “번식과 복제”, 세 번째 연에서 “게임의 끝까지 달려간다” 등의 표현이 반복됨으로써 균형을 찾는다. 특히 총 3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가 제각기 다른 표현들로 각 연의 완결성을 보여주고 있음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책임지는 부분을 시의 마지막 부분, 즉 “또 다른 오늘씨는 막, 커피 잔은 빠져 죽기엔 너무 작다는 문장에서/ 빠져나오는 중”이라고 했을 때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시인은 다시 “오늘씨”라는 시적 주체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바람은 어디서 바람과 만나 기다리는 바람을 낳나”와 같은 표현을 구사할 수 있는 시인이 선택한 마무리라기에는 다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