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공의 매혹 -장 그루니에- (1,4,3,3,1)

카지모도 2020. 8. 5.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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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공(空)의 매혹>

-장 그르니에 作-

 

***동우***

2014.10.18 04:50

 

철학자, 작가, 알베르 카뮈의 스승..

장 그르니에 (Jean Grenier, 1898~1971)

 

그 때, 무연하게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도 그러했을까.

나 뿐 아니라 어린 시절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을 듯 하다.

 

<보리수나무 아래 길게 누워서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을때> 직관으로 엄습하는 '空'의 순간을 한번쯤은 경험하였을 것이다.

인식여부는 불문하고.

어떤 절대적멸(絶對寂滅)의 텅 빈 느낌...

나라는 존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空.. 無...

그 느낌이 충만감이었던지 일종의 안도감이었던지는 모르겠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건 어쩌면 神으로부터 오는, 생명에 관한 포괄적 진리가 직관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런지.

無에서 태어나 無로 돌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각(覺)하는...

그 神은 철학자(논리, 추론, 형이상학)의 신이 아니라 파스칼(직관적 신앙)의 신이었을 것이다.

 

'그르니에'의 이런 정갈한 글을 접할 적에 엄습하는 고즈넉한 느낌.

타인으로부터 전해지는 사이비(似而非) '무심(無心)'일터이지만, 그래도 얼마나 마음을 온유(溫柔)하게 하는지.

 

적요한 산사(山寺), 대나무 스치는 바람소리 듣는다.

 

그러나 '무심'의 순간에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오는 건 순식간이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거의 다 '선택'의 것들이다.

 

우리를 지배하여 무심의 싹을 짓밟는 것들.

 

요즘, 책부족 텍스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반 넘어 읽고 있다.

참호와 독가스와 포탄과 돌격 앞으로와 백병전과 찢기고 터지고 처참하게 죽어나자빠지는 아수라장의 전쟁터에서 보름의 휴가를 나온 '파울 보이머', 자신의 방에서 2년전까지만 해도 그리 사랑하였던 서가의 책들을 들러본다.

 

<나는 두 눈으로 책들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나에게 말을 걸어 나의 마음을 받아 들여다오. 예전에 내 생명이자 아무런 걱정 없고 멋진 너에게 부탁하노니, 나를 다시 받아들여 다오."..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길은 차단 되어 있다...나는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망연자실해서 슬픈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있다..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한명의 군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나는 낙담한채 기가 꺾였다... 말들 말들 말들, 그 말들은 나의 폐부를 찌르지 못한다. 나는 그 책들을 다시 책꽂이의 빈 곳에 꽂아 넣는다, 끝났다. 조용히 나는 방에서 나간다.>

 

'무심'은 아니었을지라도 '파울 보이머'의 책은 일종의 '투명한 하늘의 기억'은 되었을 것.

불가피한 간택에 의하여 '선택'의 상황에 처한 '폴 보이머',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저 기억조차 얼마나 사치로운것인지.

그는 자신의 투명한 하늘은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의 순간은 그토록 처절하지 않다.

가없이 넓고 투명한 가을 바다와 가을 하늘.

 

한참을 멍때리며 무연하게 바라보고 싶다.

空의 매혹, 너그러운 무위(無爲)의 자유.

 

을왕리 저무는 바닷가의 가을사념.

그도 쓸쓸한 호사로움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