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잡설들

[[세개의 그림.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1,4,3,3,1)

카지모도 2020. 8. 4.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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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강은교]]

<세개의 그림> <우리가 물이 되어>

  

 

<세개의 그림>

-강은교 作-

 

***동우***

2013.12.21 05:37 

강은교의 수필 ‘세개의 그림’

 

<그 그림의 뒤켠에는 또 하나의 작은 그림이 딸려 나온다. 어느 날 그 여학생은 고무신을 신은 채로 밤에 집을 나선다. 걸어서 종로에 있는 큰 책방까지 간다. 파스테르나크라는 작가가 노벨상를 탔는데, 그의 소설이 번역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그림의 배경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라든가 베토벤의 음악의 선율들이. 그곳은 서울의 혜화동이다. 그 여학생은 여학생 시절의 '나'다. 국민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 육 년을 혜화동에서 살았으므로 나는 예전에는 혜화동을 가장 친근한 나의 옛 동네로 생각하였다. 한때는 그곳이 나의 '우주'의 거의 전부였다고나 할 수 있을는지. 거기에는 그러므로 눈에 잘 그려지는 '향수'가 있다. 내가 몇 시간씩이나 꼼짝 않고 쳐다본 하늘이 있으며, 양털 구름이 있으며, 혜화동집 (한옥이었다) 사랑채의 잡초 무성한 작은 뜰이 있다. 동생들을 데리고 무조건 걸어가다 보니, 그만 해질 무렵이 되어 자하문 밖 청운동에 닿아 버렸던 혜화동 뒷산이 있다(지금은 그곳에 큰 길이 뚫려 있지만, 그때는 숲과 나무만 무성한 산길이었다). 아, 그때의 기억들을 이제 어찌 할 것인가. 이젠 나이가 너무 많이 먹어 버렸다. 산길로 치자면 올라온 길이 너무 많아져 버린 것이다. 다시 내려가기에는 그러므로 저 아래, 그림이 있는 곳은 향수일 수밖에 없다.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 세상은 아니 진정한 삶은 '추억'속에만 있는 것인가. 우리의 삶은, 언제나, '향수'인가.>

 

크리스마스.

보아요 어머니.

저 성탄의 불빛 불빛 불빛.

언제나 꿈을 꾼다.

간밤에도 어김있으랴.

내 안의 옛 것들 수면 속에서 바라이어티 쑈를 펼친다.

혜화동, 자하문밖, 보생의원, 어머니, 형, 주원이, 젖엄마, 애순이, 따꾹이...

그리고 지금의 것들.

청학동, 동삼동, 태종대, 아내와 딸과 아들과 그리고 정빈이와 정민이...

 

강은교(1945년~ )의 이 수필은 어딘지 모르게 간 밤 내 꿈의 색감이로구나.

노상 써 먹는 문장.

[사람은 이야기하기 위하여 산다. 삶은 한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하여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마르케스-]

 

꿈은 데포르마숑된 기억...

기형도의 저 기억은 어둡고 우울하고 상처받은 것들일까.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동지의 환한 불빛을 보는 기형도는....

 

++++

<위험한 家系>

-기형도-

 

1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덜 해도 되겠구나.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에 등을 기댄 채 큰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 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이 났어요. 그래도 올겨울은 넘길 수 있을 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실 거구. 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 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봄엔 벌써 열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예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을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속에서 큰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록색 추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 소리를 냈다. 추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 고등학교라도 가야 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댕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 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 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깎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 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예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어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튀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시려고.

 

5

선생님. 가정 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고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서 석유 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그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 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 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 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들은 꺼지지 않았다. 아주 추운 밤이면 나는 이불속에서 해바라기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소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

 

 

<우리가 물이 되어>

-강은교 作-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그러나 지금 우리는

불로 만나려 한다.

벌써 숯이 된 뼈 하나가

세상에 불타는 것들을 쓰다듬고 있나니.

 

만 리 밖에서 기다리는 그대여

저 불 지난 뒤에

흐르는 물로 만나자.

푸시시 푸시시 불 꺼지는 소리로 말하면서

올 때는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로 오라.

 

***동우***

2014.02.09 08:24

조카의 결혼식.

 

흩어진 핏줄, 목숨의 힘들은 후제 후제 어드메서 모두어 질까.

삶의 신산(辛酸), 그 불이 다 탄 연후에.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유전자의 자취로.

허허허허.

 

이종언 지은주 부부 잘 살거라.

형과 형수 애썼수. 한철이도.

현기 정말 반가웠고 희진아빠 주원이부부 건강한 모습 참 보기 좋았어요.

상돈 정윤 부자, 배박사 주희 부부, 홍철이, 정자누나와 성호, 크리스 주은이 부부와 이쁜 아들네미 참으로들 고맙고 격조 후의 해후 정말 기뻤다오.

성훈이와 헌이 어미도 왔다는데 나는 못봤네 그랴.

핏줄들 관계들, 아무도 이곳 들여다 볼리 없을터이나 예다가라도 마음의 인사 눕힌다, 그냥.

 

***eunbee***

2014.02.10 00:58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 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

 

'우르르 우르르 비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

 

시인들은 마음머리(心腦-나만의 단어 ㅋ)라는 기관을 하나 더 달고 사나봐요.

언어감각들로 세포를 이룬 아주 특별한 기관이나 구조.ㅎㅎㅎ

 

시시때때 동우님도 그런 특수 기관을 어디 감추어 둔것 아닐까..의심하지요.ㅋ

 

나는 손을 씻기 위해(하루에도 몇번을 씻는)비누를 집어 들 때마다

어느 시인의 <비누>라는 육감적인 시가 떠올라 베시시 베시시 웃으면서 손씻고 세수하고....하하하

 

핏줄로 맺은 인연들, 신산스런 삶 불 다 탄 연후에

인적 그친 넓고 깨끗한 하늘에서 유전자의 자취로라도 모두 모여지길 바라는

동우님의 핏줄 사랑.

 

그것이 무언지 나도 알 수 있는 세월에 서 있어서인가, 내 가슴이 이리도 저려오네요.

 

***┗동우***

2014.02.10 05:30

심뇌(心腦)

마음이 생각한다....

 

느끼건데, 은비님이야말로 가슴 속에 특별한 감관기관(感官器官)을 하나 감추어두신 분이구만 무어.

 

핏줄이란 사랑이라지만 숙명의 애환이기도 할테지요.

어쩌면 그 팔자(八字)라는 것, 그 정체가 유전자 아니겠수?

 

요즘 은비님 일상의 생기 싱싱할듯.

사랑하는 파리 상면(相面) 기대 더불어 소치 동계 올림픽서껀. ㅎ

 

***jamie***

2014.03.31 00:56

강은교님의 풀잎을 읽고...이렇게 단순한 언어 몇 줄로

죽음에 관해 절절한 감정을 느끼게 하다니! 하고

놀랬던 기억이 납니다.

 

***동우***

2014.03.31 06:05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들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땅 속에 눕지 않아도 알수있는 죽음...

으흠, 제이미님.

쓸쓸해 집니다그려.

 

삶속에 죽음이 있고...

우리는 언제나 죽음을 사는 삶.

삶이라는 저 불이 지난 후에 만리 밖에서 흐르는 물로 만나는 삶이라는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