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에드거 앨런 포우]]
<어셔 가의 몰락> <검은 고양이>
<어셔 가의 몰락>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3.08.10 04:32
계절은 바야흐로 절정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혹서(酷暑)의 주말.
'에드가 앨런 포우'의 으시시한 소설, '어셔가의 몰락'을 올립니다.
좀 서늘하시라고.
지난 주에 이어...
이 짧은 소설의 음울한 늪 속에는 환상적 기괴미(奇怪美)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걸 '천재적 광기미(狂氣美)'라고 말하면 어떨까요.
오버랩 되는 어떤 영상.
히스클리프는 한밤중 폭풍 눈보라 치는 히스 광야를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캐시! 캐시! 죽음으로라도 돌아오라!"
혹 광기에 사로잡힌 때가 가장 조화롭게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천재의 순간은 광기의 순간.
빈센트 반 고흐는 왜 자신의 귀를 잘랐을까요?
고흐는 오베르의 하늘을 어쩌면 그토록이나 푸르디 푸르게 그렸을까요?
으흠, 둘 다 그건 그가 미쳤기 때문이지요. ㅎㅎ
어셔가의 몰락.
곧 여름은 몰락하겠지만 누구나 지녔을 광기는 무너뜨리지 마세요.
어쩌면 우리를 살게 하는 심지는 바로 그 광기인지도 모르잖아요?
다음은 이문열의 해설입니다.
++++
<현실에 바탕한 환상의 미학>
[어셔 가의 몰락]은 단편의 요체를 환상과 추리에서 찾은 포우의 문학론을 대변하는 듯한 작품이다. 여기서 환상은 추리적 수법으로 현실과 단단히 이어져 있다. 마지막을 환상적으로 장식하는 저택의 붕괴만 해도 꼼꼼이 읽어보면 처음부터 치밀하게 암시되고 있었다.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는 늪지대에 세워진 석조 건물, 그것도 이미 긴 세월이 흘러가 퇴락한데다 화자조차 곳곳에서 붕괴의 조짐을 느낄 정도였다.
매들린 부인의 괴기스러운 출현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었고, 어셔의 갑작스러운 죽음도 이미 지병의 형태도 여러 차례 암시된 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이 한결같이 환상적으로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포우가 사용한 여러 고풍스럽고 괴기스런 장치들과 화려한 문체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잘 알려지지 않은 중세의 마법서나 저승과 망령들에 관한 문서들, 그리고 전설에 바탕한 고풍의 시가는 자칫하면 유치하다는 느낌을 줄 소도구들이다.
또한 사용하고 있는 문체도 다른 곳에서라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과장스럽게 느껴질 위험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것들이 묘하게 어울려 현실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을 환상적이고 신비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년 시절 처음 이 작품을 읽었을 때는 다만 충격적인 감동 뿐이었다.
그러나 나중에 소설이 무엇인가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몇 군데 불만스런 곳이 눈에 띄었다.
환상적인 공간의 어셔와 현실 속의 화자가 무언가 거칠고 억지스럽게 만나고 있는 듯한 느낌과 매들린 부인이 가사 상태로 입관된데 대한 암시가 빠져있는 것 따위 주로 구성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그 바람에 나는 포우의 다른 단편 [붉은 죽음의 가면]으로 이 작품을 대신하는 것을 검토해 보았다.
그러나 [붉은 죽음의 가면]은 드러나는 흠이 없는 반면 구성이 단순할뿐더러 아무래도 소품이란 느낌이 있어 이 작품을 그래도 싣는다.
내 불만은 독법에 따라서는 해소될 수도 있거니와 설령 그게 객관적인 흠이 된다 하더라도 이 작품에는 그 흠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빛나는 부분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비평가인 포우는 1809년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고아가 되어 상인에게 양자로 입양되었고 17세 되는 해에 버지니아 대학에 입학했다.그러나 양부모로부터 학비가 조달되지 않는 등 어려운 형편과 무절제한 사생활 때문에 1년도 안되어 퇴학당했다.18세 때 이미 [티무르]를 익명으로 출판한 적이 있고 이름을 바꾸어 군대에 들어가 웨스트포인트 육군 사관학교에 적을 두기도 했다. 그러다가 22세 때부터 미망인 숙모와 그의 딸 버지니아와 함께 살면서 쓴 작품들이 여러 잡지와 신문의 현상공모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단편 전성시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27세 되는 해에 14세밖에 되지 않은 버지니아와 결혼하였고, 각종 잡지의 편집자로 전전하면서 단편을 계속 발표했다. 보들레르는 포우의 단편을 읽고 '여기에는 내가 쓰고 싶었던 작품의 모든 것이 있다.'고 극찬하면서 평생을 포우의 작품 번역에 바쳤다. 포우는 [어셔 가의 몰락]에서 주인공처럼 현실에 등을 돌리고 내면의 심연에 주목하는 한편, 추리와 분석 능력을 이용하여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 탐정 듀팡과 같은 인물을 창조, 추리 소설의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다.
++++
***eunbee***
2015.10.10 07:27
먼 어둔 하늘에선 번개 번쩍, 천둥 우루루~ 쾅.
내친김에 이 소설 다시 찾아 읽었답니다.ㅎ
어제 읽었어도 아리삼삼해지는 내 까마귀
언젯적 읽었는지 그 감동이 전혀 없어, 다시 검색해서 읽었지롱요.
동우님네 '리딩북스 도서관'은 참 편리해요.
내가 교보문고에 가서는 도서검색 컴에다 필요한 도서명이나 작가명을 기입하고 앤터키 누르면 몇번째 서가 몇번째 칸을 가르쳐주니, 그곳으로 가서 더러는 쪼그리고 앉기도 더러는 헤매며 이리저리...그러면서 찾아 읽거나 사오거나 해야하거든요.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검색하여 클릭하면 짜잔~ 내 눈앞에 펼쳐저 주다니... 얼마나 좋던가요.ㅎ
그래서
또 감사.
천둥 번개 작은 우주쇼 속에서 이 아침
애드가 알란 포우(예전엔 이렇게 발음했어욤)를 또 한 번 감동했습니다.ㅎ
<검은 고양이>
-에드거 알랜 포우 作-
***동우***
2013.02.08 06:09
보들레르가 흠취하였고 나보코프가 사랑하였던 시인.
그리고 소설가 평론가 추리소설창시자.
에드거 알랜 포우.
<오, 신비함이여. 오, 고통스러움이여. -롤리타->
<고통과 싸우며 칼날같은 날카로움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그의 남성도 포우 자신이요, 병들었으나 빛이 있고 모든 소리가 음악처럼 울리는 작품의 여성 또한 포우 자신이다. -보들레르->
생각건대, 포우는 하나의 순수한 개별(個別), 오로지 순수한 아름다움만을 추구하여 내적 요구에만 충실하였다.
사상이거나 시대는 그의 것이 아니었고 포우는 외부의 그 무엇과도 연대하지 않았다.
검은 고양이.
인간성에 내재된 병적심리.
죽음 공포 불쾌 우울 괴기...
심층심리, 자신 내부의 심연을 들여다 보라.
뉘에게나 있으리니.
에로스와 타나토스는 야누스의 얼굴.
증오가 되고 이윽고 자기파멸에 이르기도 하는게 사랑이기도 하지만.
'아무르'
우리의 어두운 것들.
바라옵건대, '아무르'의 승화를 이룰지어다.
++++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
In a kingdom by the sea,
That a maiden there lived whom you may know
By the name of Annabel Lee
And this maiden she lived with no other thought
Than to love and be loved by me.
I was a child and she was a child,
In this kingdom by the sea;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
I and my Annabel Lee;
With a love that the winged seraphs of heaven
Coveted her and me.
And this was the reason that, long ago,
In this kingdom by the sea,
A wind blew out of a cloud, ch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So that her highborn kinsman came
And bore her away from me,
To shut her up in a sepulchre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e angels, not half so happy in heaven,
Went envying her and me-
Yes!- that was the reason (as all men know,
In this kingdom by the sea)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by night,
Chilling and killing my Annabel Lee.
But our love it was stronger by far than the love
Of those who were older than we-
Of many far wiser than we-
And neither the angels in heaven above,
Nor the demons down under the sea,
Can ever dissever my soul from the soul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For the moon never beams without bringing me dream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the stars never rise but I feel the bright eyes
Of the beautiful Annabel Lee;
And so, all the night-tide, I lie down by the side
Of my darling- my darling- my life and my bride,
In the sepulchre there by the sea,
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
<애너벨 리>
아주 아주 오래 전
바닷가의 왕국에
한 소녀가 살았어요.
당신도 알까요,
나를 사랑하는 소녀. 애너벨 리-
소녀는 오직 내 사랑만으로 살았지요.
바닷가 우리들의 왕국.
우리는 어렸어요.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지고하였지요.
우리는 정말 사랑했어요.
천사들이 시샘할 만큼.
그래서였을까.
오래전 바닷가 우리 왕국에
폭풍우가 몰아쳐
아름다운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만들어 버렸어요.
그리곤 그녀의 고상한 친척들이 몰려와서
그녀를 내 곁에서 데려가
바닷가 이 왕국
무덤에 가둬 버렸죠.
우리처럼 해복하지 못했던 하늘나라 천사들.
그녀와 나를 시기한 것이었어요.
그래요!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지요.
그래서 한밤중 폭풍우가 나의 애너벨 리를 죽였다는 걸.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더 강했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
하늘의 천사들도 바다 밑의 악마들도
내 영혼과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을
떼어놓지 못해요.
달빛이 빛날 때마다 난 언제나 꿈을 꾸거든요,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별들이 뜰 때마다 나는 느껴요,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동자를.
나는 밤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내 생명, 내 신부의
곁에 눕는답니다.
그 곳 바닷가 무덤,
파도 철썩이는 바닷가 무덤 속에.
++++
***melon***
2013.02.10 01:19
오래전에 듣던 존 바이에즈가 부르던 애너벨리가 생각나 찾아보니 있네요.
놓고 갑니다. ^^
http://youtu.be/AIGj3CZ3uPQ
***동우***
2013.02.10 07:20
존 바에즈의 애너벨 리.
시 낭송인줄 알았더니, 곡이 있는 노래로군요.
존 바에즈의 음색에 맞는 어떤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BooRoo/불루보트***
2013.02.09 00:41
설입니다
평안하시고 행복함이 가정에 피어나는 시간되시고
가족과 다봇한 정담 가득한 평화로운 설 보내시기 바랍니다
***동우***
2013.02.09 09:25
고맙습니다, 블루보트님.
블루보트님께서도 사랑하는 이들과 가득한 사랑 나누는 행복한 명절 쇠시기를 기원합니다.
***teapot***
2013.02.14 03:46
받아들이기는 싫고 너무 과격한 것 같지만 그게 무슨 차이일까요?
그러기에 동우남의 마지막 코멘트 같이 그리 되기를 바랍니다.
노래 들으러 갑니다~???~
Annabel Lee - Rock Version으로 들었는데도 좋은데요~
Gilad Hesseg·가 부른.....(잘모르는 카수이지만)
***동우***
2013.02.14 05:53
티팟님.
인간성 속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발현되는 어떤 계기라는게 그래서 중요하겠지요.
그래서 수양이라는 덕목이 중요한것 아닐까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을 뇌어 봅니다.
애너벨 리.
여러 버젼의 노래가 있는가 보아요.
영어에 서툰 귀이지만 그냥 낭송만 하여도 듣기 좋은 시.... ㅎ
-독서 리뷰-
[[애드거 앨런 포우]]
<군중인간> <아몬틸라도의 술통> <적사병의 가면> <심술꾸러기> <절름발이 개구리>
<군중인간>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2 04:43
‘까마귀’ 때문에 다시 꽂히는, 에드거 앨런 포우 (1809~1849).
인간내부의 어두운 심연을 향하여 섬광과 같은 심안(心眼)을 가진 천재.
보들레르가 숭배하였던 시인이고 소설가이며 추리소설의 창시자이고 시론(詩論)을 쓴 예리한 평론가이며 술과 마약에도 빠졌었던 포.
<고통과 싸우며 칼날같은 날카로움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그의 남성도 포 자신이요, 병들었으나 빛이 있고 모든 소리가 음악처럼 울리는 작품의 여성 또한 포 자신이다. -보들레르->
한세기 半도 더 前에 씌어진 '군중인간'
21세기 현대의 인간상을 묘파함으로 읽더라도 조금의 모자람이 없습니다.
집단과 군중.
내 나름, 집단과 군중은 다르게 여깁니다.
개별성이 용해되어 일제히 붉은 함성을 지르는 전자(前者)에 비하여 후자(後者)는 고독한 개별들의 집합일듯 싶습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처로서의 집단과 군중은 동일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집단이 싫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
고독이 도피하는 군중.
다운타운의 횡단보도에서 빨간불에 발길이 묶인 건너편 사람들의 표정을 보십시오.
스타트 라인의 단거리 경주선수들마냥, 파란불이 무슨 스타트 총성인듯 일제히 바쁜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
무리에 묻힘으로 한편 안도하고 한편 저항하고 한편 무서워 하고 한편 탐욕스러운 개별들의 모션, 그 표정들.
<그때의 아주 짧은 순간적인 관찰에서도 이 표정의 의미를 어떻게든 분석해 보려고 하는 나의 마음에, 광대한 지력, 신중, 빈궁, 탐욕, 냉정, 악의, 잔혹, 득의, 좋은 기분, 파도치는 공포, 강력함 등 극도의 절망 따위의 뒤섞이고 모순되는 생각이 일제히 솟아올랐다. 나는 일종의 이상한 흥분과 경악스런 매혹에 마음이 사로잡혔던 것이다. "얼마나 기괴한 역사가 저 사나이의 가슴에 새겨져 있을 것인가.">
영혼의 매음, 파리의 우울.
아, 보들레르.
군중을 즐기는 것, 군중 속에서 고독하기...
자신의 고독을 채울줄 모르는 자는 또한 군중 속에서도 홀로 존재할수 없답니다.
++++
<군중>
-보들레르-
군중 속에 둘러싸이는 재능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이 아니다. 군중을 즐기는 것은 일종의 예술이니까.
어떤 선녀가 위장과 가면 취미, 보금자리에의 혐오, 여행에의 열정 등을 그의 요람에 불어넣어준 자만이 대중의 인간적 개념을 희생시켜 일종의 활력소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다.
대중과 고독, 이 두 어휘는 풍요하고 적극적인 시인(詩人)에게는 서로 교환할 수 있는 동등한 어휘일 수 있다. 자신의 고독을 채울 줄 모르는 자는 역시 분주한 군중 속에서 홀로 존재할 줄 모른다.
시인은 제멋대로 자기자신일수도 있고 타인일 수도 있는, 이 같은 비길 데 없이 훌륭한 특권을 누린다. 육체를 찾아 방황하는 영혼들처럼 시인은 자신이 원할 때 다른 사람의 인격 속에 들어간다. 그에게만은 모든 것이 공백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만일 어떤 장소들이 그에게 닫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다만 그의 눈에는 그 장소들이 방문할 가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고독하고 사색적인 산책자(散策者)는 이 같은 우주적 교류 속에서 어떤 독특한 자취를 찾아낸다. 쉽사리 군중과 결합하는 자는 어떤 열광적인 환희를 알고 있다. 에고이스트는 상자처럼 닫혀서, 나태한 자는 연체동물처럼 갇혀서, 영원히 박탈당한 즐거움이다.
그는 환경이 허락해 주는 직업, 모든 즐거움, 모든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같이 붓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향연, 즉 이 같은 영혼의 성스러운 매음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얼마나 제한된 것이며, 얼마나 미약한가.
이 같은 영혼의 매음은 지나가는 미지의 보행자에게, 혹은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아무에게도, 이것이 시심(詩心)이든, 자비심慈悲心이든, 자신을 전부 바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자들에게 때때로 (그것이 그들의 어리석은 자만심을 한 순간이나마 모욕하기 위해서라도 좋다.) 그들의 행복보다 더 상급인 더 위대하고 더 세련된 행복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일은 재미있는 일이다.
++++
***에코사운드***
2015.10.02 14:57
선생님 글을 애독하는 독자입니다.
아직 학생이구요.
다름아니라 포우의 검은고양이와 어셔가의 몰락 올려주시면 어떨까하여 외람된 글 남깁니다.
대선배님께 늘 감사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동우***
2015.10.03 04:27
반가워요, 젊은 벗.
그리고 애독자라시니 더불어 고맙습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어셔가의 몰락.
오래전 올렸습니다.
검색란에 검색해 보시면 찾아 읽으실수 있을거에요.
외람되다니, 천만의 말씀.
나로서는 그런 요청이 기쁘답니다.
***teapot***
2015.10.03 02:05
역시 가을이긴한가 봅니다.
떠들석하고 분주했던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니 책이 생각납니다.
올해 같이 책과 담을 쌓고 지낸적은 없었는데 그래도 가을이 되니 이렇게 책이 읽고 싶어지니....
게다가 어제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에 제가 소개했었던 동우님 도서실을 종종 찿는다 해서 동우님 블로그에 대해 이야기를 했답니다.
답글 한번 안달지만 좋은 글을 올려주시니 감사하다 인사 전해 달라 하는군요.
저도 문안 인사드립니다.
***동우***
2015.10.03 04:33
티팟님, 책이 고프시다니 캘리포니아의 가을을 느낍니다그려. ㅎ
나야말로 답글에 격조한 사람.
티팟님 사위보시는 성대한 잔치에도 축하 댓글 한마디 달지 않는.
알바니 뉴욕, 한복고운 티팟님께 눈인사만 드렸지요.
요즘 붓을 잠시 놓으시고 도예에 흠취하신 티팟님의 근황도 익히 알고 있답니다.
벗들의 근황은 스마트 폰 덕에 모두 내 손안에 있다오. ㅎ
근데 아무래도 스마트폰으로 글쓰기는 여엉 익숙치 않아서 눈팅으로 그치는 것이랍니다.
여기에다, 나 역시 오랜 벗 티팟님께 문안인사 눕힙니다.
리딩북 찾아주시는 친구분께도 고맙다는 말씀 전해주십시오.
<아몬틸라도의 술통>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3 04:23
'에드거 앨런 포'의 '아몬틸라도의 술통'
<포오튜나토가 아무리 심한 말을 하여도 꾹 참아 왔지만, 이번에 다시 모욕을 하려고 할 때 나는 복수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몽트레솔(話者)은 자신에게 모욕을 안겨준 상대를 살해하고자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포오튜나토(상대방)는 그의 복수의 염(念)을 짐작조차 못하고 있는데.
<결국은 원수를 갚아야겠다. -이것이 나의 결심이었다. 그러나 이 결심 가운데는 모험을 하려는 생각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벌을 주어도 나는 안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악을 처벌한 사람이 도리어 보복을 받는대서야 말이 되는가. 그것은 악을 벌 준 것이 못된다. 또한 악을 저지른 사람이 보복을 받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고서는 역시 악을 벌한 것이 되지 못한다.>
인간성의 한켠, 내면 깊숙한 곳에는 음습한 지하묘지가 있습니다.
싫은 것들, 미운 것들, 못마땅한 것들.,
해골이 뒹굴고 초석(硝石) 냄새 가득한 지하 깊숙한 공간에 가두어 벽돌을 쌓아 회를 바르고 밀폐시켜.. 쥐도 새도 모르게.
공포와 괴기와 음산함...
가학(加虐)의 쾌감으로 전율하는 새디즘적 요소가 우리 내부에는 분명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 그건 어쩌면 자학의 쾌감, 매조키즘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타나토스와 에로스...
에드거 앨런 포는 프로이트 이전의 프로이트였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참, 본문 폰트의 포인트를 11에서 12로 키웠습니다.
나 자신, 잔글씨가 눈에 상그러워서..
하루가 다르게.
좀 전 들여다보니, 고등학교 친구가 그랬더군요.
'달달하기만 했던 순간순간들
장미꽃 호사였음을'
젊은이들, 장미꽃 호사로운 시절이 얼마나 달달한 것인줄 아세요들.
나이 먹을수록 하루가 다르리니. ㅎ
<적사병의 가면>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4 04:36
'에드거 앨런 포우'의 '적사병의 가면' (The Masque of the Red Death)
데카메론(Decameron)은 흑사병(黑死病-Black Death)을 피해 별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적사병(赤死病)을 피해 고립된 성에 모인 사람들, 이 소설은 데카메론처럼 사람사는 이야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시종 괴기취미만이 가득합니다.
음산함과 공포와 전율과 단말마의 비명.. 그런 분위기의 소설입니다.
핏빛 유리창, 검은 벽모전에 드리운 붉은 조명, 흑단(黑檀) 나무시계의 괘종(卦鐘)소리, 피가 배어있는 시의(屍衣), 시체같은 가면을 쓴 사내...
사람들이 달려들어 가면을 벗겨내려 하지만 손안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습니다.
으악!! 그는 바로 적사병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쓰러져 죽어버리고 시계도 멈추었으며 조명도 꺼져버리고 오로지 암흑과 황폐와 적사병만이 폐쇄된 공간을 넘실거립니다.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 재깍재까 시계의 초침 돌아가는 소리, 일곱개의 방과 검은 방에 비추이는 핏빛조명, 광란의 카니발, 함께 어울리는 죽음의 가면을 쓴 사나이..
삶에 드리운 만져지지 않은 죽음... 어쩌면 우리 실존, 그 심연(深淵)을 그린 상징화(象徵畵)인지요.
하하, 그런 음울한 무드에 잠기지 마시고 휴일의 엔터테인먼트, 하나의 공포소설로 즐기시면...
적사병(赤死病-Red Death), 아무리 찾아봐도 이런 병은 없습디다.
<심술꾸러기>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5 04:25
부지불식간 저지르는 하찮은 실수라던가 꿈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
정신현상의 정체를 명징하게 밝혀나가는 프로이트의 신경증(노이로제)등에 대한 임상적 추론 강의.
예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입문'을 읽었을때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저 보이는대로의 단순한 존재가 아니로구나..
에드거 앨런 포우.
며칠전 나는 프로이트 이전에 프로이트가 있었다고 말하였는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심술꾸러기.
번역이 좀 느슨한 느낌이지만 우리 심리 기저에는 분명히 저런 경향이 없지 않습니다..
찾아보아도 원제(原題)가 무언지 모르겠는데 '심술꾸러기'라는 제목도 어색합니다.
프로이트도 분명 저와 같은 심리현상을 간파하였을겁니다만, 그런 걸 무어라고 이름지었을런지..
확실히 우리의 정신은 이성만이 지배하고 있는건 아닙니다.
내부에서 활활 타오르는 파토스의 불길을 뉘라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납득할수 있겠어요?
이성적 윤리적 제도적 상식적 금압(禁壓)에 대하여 반발하여 어깃장 놓으려고 하는.. 자기부정의 자기파괴의 저 괴상한 욕구.
뻔히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그 불꽃을 향하여 몸을 던지는 불나방이.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 꽉 막혀있는 실존.
그를 깨부수고 광적 파멸적 세계로 도피코자 하는.. 어떤 심리적 갈망일까..
자기파괴본능? 타나토스열망?
저 심리기제를 어떻게 납득해야 할런지 내 깜냥으로는 불가능합니다만 내 안에도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野草***
2015.10.05 11:18
동우님.
매일 올려주시는 리딩북.
더불어 날마다 동우님의 건필하심을 뵙고 있습니다.
에드가 알란 포의 소설들.
가져갑니다.
감사하게~~~
***동우***
2015.10.06 04:54
감사~~~ 널리 읽혀 주셔서.
<절름발이 개구리>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6 04:44
에드거 앨런 포우의 '절름발이 개구리'
한편의 잔혹동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천재에는 늘 모종의 광기가 내포되어 있는듯, 저마다 색감을 달리하는.
보통때 에드거 앨런 포우는 겉으로는 매우 예의바르고 반듯한 신사의 풍모였다고 합니다.
술과 마약에 취했을때 때로 충동적으로 분출되기도 하는, 속에서 들끓는 리비도와는 별개로.
수퍼에고와 에고의 갈등.
평소 현실에서 그런 내면이 발현될까, 스스로 무서워하여 작품 속에다 카타르시스하였던 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포 뿐이리까, 극심한 분노에 휩싸인 사람에게서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납니다.
많게든 적게든 대부분의 인격에는 이런 야누스적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을겁니다.
절름발이 개구리, 언뜻 권선징악의 이야기같은데 섬뜩합니다.
<임금은 품위, 다시 말해서 임금 자신의 말을 빌자면 기지(機智)의 <정신>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익살에 있어서도 내용이 풍부하고 짤막한 것을 좋아하였다. 그렇다고 내용이 풍부한데 길다고 해서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미묘한 것은 싫어하였다. 그는 볼테르의 <자이디>보다 라블레의 <가르간튀아>를 더 좋아하였으며 대체로 말로 떠드는 익살보다 실제의 어릿광대짓이 그의 취미에 맞는 것이었다.>
인간의 미묘한 정신세계를 도외시하는, 인간성의 깊이가 한참 모자라는 임금과 일곱신하들.
에드거 앨런 포우는 이런 인간을 무척이나 혐오했던게지요.
그들을 공중에 매달아 타르를 바른 몸뚱이에다 불을 붙여 산채로 태워죽입니다.
<이제야 분명히 알겠습니다. 이 가장객들이 누구인지 말예요. 저들은 임금과 일곱 명의 대신이올시다. 연약한 여자를 마음대로 후려갈기고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 임금과 이러한 임금의 행동을 부채질하던 일곱명의 대신이올시다. 자 그럼 나라는 이 작자는 누군고하니 바로 익살꾼 절름발이 개구리올시다. 그리고 이것이 저의 마지막 익살이올시다.>
궁정의 어릿광대 절름발이 개구리, 매우 침착하게 실행한 조직적인 복수였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지나쳤고 복수는 끔찍하였습니다. ㅎ
-독서 리뷰-
[[애드거 앨런 포우]]
<리지아> <함정과 추> <윌리엄 윌슨> <고자질하는 심장>
<리지아>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7 08:24
"내게 돌아오라 캐시! 주검으로라도 돌아오라 캐시!"
히스클리프는 눈보라치는 밤하늘을 향하여 울부짖습니다.
결코 죽음을 인정치 않는, 한사코 죽음을 거부하는 의지.
죽음이 모든 것에 침투시킨 신(神)의 의지라면 삶은 인간의 의지입니다.
<그 이면에는 의지(意志)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죽어 버리지 않는다. 누가 이 의지의 신비로움과 활기를 알 수 있겠는가? 즉, 의지란 신(神)이 스스로 모든 것에 침투 시키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인간이 천사들이나 또는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에너벨 리, 레노어.
그리고 기묘하면서도 완벽한 아름다움의 리지아.
그 아름다움은 고전적이며 현대적이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이고 특별하면서도 범상하고 조화이면서 또한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삶이며 죽음입니다.
리지아는 오로지 아름다움의 이데아로 그에게 존재합니다.
기억속 리지아의 아름다움은 모든 사물에 투사되어 범신론(汎神論)이 되었습니다.
그는 죽음까지도 탐미(耽美)합니다.
아아, 그리하여 리지아는 부활하였습니다.
<함정과 추>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8 04:31
함정과 추(錘) -Pit And The Pendulum-
에드거 앨런 포는 인간의 심연에 고여있는 어두움을 들깨워서 독자로 하여금 악몽을 꾸게 한다.
고문실(拷問室)
주인공은 무슨 종교재판에 의하여 갇힌듯 한데, '나'의 이름도 직업도 갇힌 이유도 모른다.
고문하는 자는 어디선가 숨어서 조종하고 있다.
반원형의 날카로은 칼날이 달린 추(振子)는 천정으로 부터 끊임없이 왕복하면서 아주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프랑스, 자꼬뱅, 라살장군등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단두대(길로틴)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을런지.
그러나 길로틴은 단숨에 내려와 목을 자르지만 칼날의 추는 아주 조금씩 내려오고 있다.
죽을 힘을 다하여 몸부림쳐봐도 별무소용, 사람을 말려 죽이는 것이다.
프롤로그.
<흉악하고 무시무시한 무리들은 무고한 피를 마시려는 오랜 열망을 채우기 위해 이곳에 모여 들었다. 복된 나라에 그러나 인제는 공포의 소굴이 파괴되었도다. 일찍이 죽음이 즐비하던 곳에 생기와 평화가 깃들어 있도다. -빠리의 자꼬방 클럽이 있던 곳에 세운 시장의 문에 새기기로 된 사행시->
에필로그.
<사람들의 말소리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 크게 나팔을 부는 소리도 들렸다. 또 우뢰 소리도 들렸다. 불타 오르던 철벽이 우람하게 뒤로 넘어갔다. 내가 까무라치며 함정 속에 깊숙히 빠져 들어가려고 할 때 누가 팔을 벌려 내 팔을 덥석 붙잡는다. 그것은 라살르 장군의 팔이었다. 프랑스 군대가 틀레도에 쳐들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교 재판소는 적군이 점령하게 되었다.>
현실의 구원인가.
악몽으로부터 깨어난 것인가.
보르헤스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포'와 이 소설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포의 글 속에 있었다...... 거의 60년 전, 나는 이젠 사라진 어느 층계의 마지막 단에 앉아 '함정과 진자'를 읽었다. 내가 몇 번이나 그 작품을 다시 읽었는지, 아니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는지는 잊어버렸다. 내가 끝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비좁고 네모난 감옥, 깊은 심연으로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끝내 도달하지 못하였던, 다시 돌아가야 하는 비좁고 네모난 감옥, 깊은 심연....
아아, 그것은 죽음인가.
<며칠이 지나갔다. 아니 몇 십일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그 추가 내 몸 가까이까지 쳐졌으므로, 강철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기도를 하였다. 그 놈의 추가 좀더 빨리 내려오기를 신에게 빌었던 것이다. 나는 이 움직이는 반월형(半月形)의 칼날에 애서 몸을 부딪치려고 하였으며, 조용한 마음으로 마치, 장난감을 받은 어린애 모양, 번쩍이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웃으며 누워 있었다.>
생사(生死)가 공존하는 삶, 그래서 찬란한가.
<윌리엄 윌슨>
-에드거 앨런 포우 作-
***동우***
2015.10.09 04:38
육체에 갇힌 영혼이 몸부림치는 시기가 있다.
아니 어쩌면 그 반대일런지 모른다.
영혼에 매인 육체가 꿈틀거리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변용.. 오리무중의 카오스.. 사춘기 (브란즈비학교의 묘사처럼)
그 때 윌리엄 윌슨에게 도플갱어, 또 하나의 자아는 생성되었나 보다.
훈련소 입소하여 불침번 선 내무반 창문에 비추인 너무나 낯선 얼굴을 향하여 '너는 누구냐'하고 물었던 기억이 있지만, 나는 자아분열을 겪어 보았을까.
저와 같이 명확한 것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내면에 어떤 분열된 자아는 공존하고 있을 것이다.
분열되는 자아의 소스가 의지인지 욕망인지 도덕률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우리는 곧잘 두 자아의 갈등을 경험한다.
어쩌면 하나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순과 대립은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발전, 그 에너지가 아닐런지.
에드거 앨런 포우와 같이 극단적이거나 그로테스크한 것이 아니라...
요염하고 사악하게 블랙스완을 춤추는 '니나' (나탈리 포트만)가 떠오른다.ㅎ
<고자질하는 심장>
-에드거 앨런 포 作-
동우
2015.10.10 04:33
'에드거 앨런 포'의 '고자질하는 심장'
'검은 고양이'의 서스펜스...
검은 고양이와 유사한 테마입니다.
'심술꾸러기'도 그렇거니와 스스로 파멸을 자청하는 저 이상심리.
나 역시 이상헌 놈인지라 저 요상한 심층심리를 십분 이해할수 있을듯 싶습니다. ㅎ
<나는 이런 생각이 어떻게 처음에 머릿속에 들어왔는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일단 그런 생각을 품게 되자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아무런 목적도 없었다. 격분한 적도 없었다. 나는 그 영감을 사랑하였다. 그도 나에게 고약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보화도 탐내지 않았다. 나는 그 까닭이 그의 눈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그의 한쪽 눈은 독수리의 눈을 닮아 있었다.―얇다란 막에 뒤덮인 싸늘한 푸른 눈―그 눈초리가 나한테 떨어질 적마다 나는 오싹 소름이 끼치곤 하였다. 그래 나는 은연중에 이 영감을 죽여 영원히 그 눈초리에서 벗어나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독수리 눈을 닮은 싸늘한 푸른 노인의 눈.
영감은 '나'의 아버지일까요.
그렇다면 저 살부의식(殺父意識)은 외디푸스 컴플렉스에서 발현된걸까요.
그러나 '나'는 줄곧 항변합니다.
미친 것이 아니라고.
<이윽고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것이 죽음의 두려움에서 나온 소리임을 알아차렸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괴로움이나 슬픔에서 나오는 신음소리가 아니라―정말 그렇다!―영혼이 두려움에 떨 때 그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목이 터지는 것 같은 나지막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여러 날 밤을 두고 온 세상이 잠든 자정에, 그 소리는 내 가슴 속에서도 우러나와 내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고 한층 더 공포심을 자아냈던 것이다. 그렇다. 나는 그 소리를 잘 알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 혼자 무척 기쁘면서도, 나는 영감이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고 있으므로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
영혼이 두려움에 떨때 그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신음소리.
'나'와 '영감'. 그건 자아와의 동일시(同一視)는 아닐까요.
'에드거 앨런 포'는 '바벨의 도서관'에서 제일 첫번째 꼽은 작가입니다.
적어도, 천하의 보르헤스(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선정하였다는 말입니다.
바벨의 도서관, 그 책을 다시 폅니다.
<에드거 앨런 포 또한 그가 쓴 어떤 글이나 작품들보다 더 분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미국 작가 두 명이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존재하지도 않거나 아니면 적어도 지금의 문학과는 아주 다른 문학이 되었을 것이다. 바로 포와 휘트먼이다.>
보르헤스가 언급한 포의 소설들.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윌리엄 윌슨, 이서 고든 핌의 모험, 도둑맞은 편지, 병속에서 나온 수기, 밸더머 사례의 진상, 군중인간, 함정과 추.
'에드거 앨런 포'의 문학.
다층적인 어프로치, 포가 천착하는 바가 그러하고 천재적 재능이 그러합니다.
인간의 심층심리를 예리하게 묘파하는 정신분석적 소설.
신비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음울한 환상에 잠기게 하는 그로테스크한 소설.
그리고 논리력과 통찰력으로 난해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미스테리(추리) 소설.
포의 추리소설, 재고가 여럿 있지만 포는 일단 접으렵니다.
***eunbee***
2015.10.10 06:23
'검은 고양이'로 처음 에드가 앨런 포를 만나게 되었던 것은 아주 까마득한 옛이야기
'어셔가의 몰락'은 영화로 보았으나 동우님 덕분에 읽게 되었지요.
추리소설의 창시자, 그의 생애마저 소설보다 더 소설같던..
'프로이트 이전의 프로이트'라고 동우님께서 말씀하신, 애드가 앨런 포.
이제 동우님의 수고로움과 친절하고 깊이있는 안내 곁들여
문학사에 큰 별로 매김된 이 분의 소설들을 좀 더 많이 읽고 느끼게 되었답니다.
어떤 것은 가닥이 잡히지 않아 되읽기도 했고, 어떤 것은 읽다가 재미없어 그만두기도 했지만요.ㅎ
재고 중에 그의 시가 있다면 맛 좀 보여주셨으면....ㅎ
동우님이 올려주시는 그의 시도 읽고 싶어욤~
'오 하느님! 이 무정한 파도로부터
모래 한 알도 건질 수 없는 건가요?
우리가 보고 믿는 것은 모두
꿈속의 꿈일 뿐인가요?' - 꿈속의 꿈. 마지막 연- 이라는데
이 시집을 갖고 계실까, 동우님은.
한 시간 전 내가 눈 떴을 때, 구름속에서
가여우리만치 야윈 그믐달이 샛별과 함께 숨바꼭질하더니.
지금 창밖엔 비 듣는 소리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쌀쌀해질 가을 날씨
동우님 감기 조심 하세요~ ^^
***동우***
2015.10.11 04:46
에드거 앨런 포우를 올리면서 거듭 느끼는건데, 번역의 문제.
포 특유의 서스펜스, 상황과 심리묘사... 이런 것들 영문을 깊이 해독하는 능력을 갖추고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 줄곧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 은비님 재미없어 하는 기분 충분히 이해합니다.
포우의 시집, 종이책은 없습니다만 디지털로 주워 온 건 있어요.
아래 말미에 꿈 속의 꿈 올리지요.
시(詩)야말로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글자 한글자 곰삭도록 읽고 시인의 오의에 도달하여 가장 알맞은 우리말로 치환하는 작업... 창작과 같은 노고가 필요할듯 싶습니다.
덴버의 노루 교수님이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합니다.
우리 시어(詩語)에 정통하심은 말할것 없거니와 영시에도 상당한 조예를 가진 분이시니.
분당, 어제 비왔어요?
남녘 하늘은 멀쩡했는데..
참, 은비아씨 캐임브리지 영어시험 합격, 축하! 축하!
++++
<꿈 속의 꿈>
-에드거 앨런 포우-
이 키스를 이마에 받아라!
이제 그대와 헤어짐에 있어
이만큼 나는 주장하련다.
내 지난 날들이 꿈이었다고
그대가 믿어도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가령 희망이
어느 밤, 어느 낮에
환상 속에든 아니든, 날아가 버렸다 한들
그렇다 해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할 것인가?
우리가 보거나 그렇게 보이는 모든 것이
단지 꿈 속의 꿈인 것을.
바닷가에 부딪쳐 부서지는
요란한 파도 소리 속에 서서
황금빛 모래알을
나는 손에 쥐고 있으니- 얼마 되지도 않는!
그러나 모래알은
손가락을 흘러 바다로 떨어진다,
내가 울고 있는 동안에 - 울고 있는 동안에!
오, 신이여! 더욱더 꼭
쥘 수는 없을까?
오, 신이여! 무정한 파도로부터
한 알만이라도 구할 수는 없을까?
우리가 보거나 그렇게 보이는 모든 것이
정녕 꿈 속의 꿈이런가?
-Edgar Allan Poe-
Take this kiss upon the brow!
And, in parting from you now,
Thus much let me avow-
You are not wrong, who deem
That my days have been a dream;
Yet if hope has flown away
In a night, or in a day,
In a vision, or in none,
Is it therefore the less gone?
All that we see or seem
Is but a dream within a dream.
I stand amid the roar
Of a surf-tormented shore,
And I hold within my hand
Grains of the golden sand-
How few! yet how they creep
Through my fingers to the deep,
While I weep- while I weep!
O God! can I not grasp
Them with a tighter clasp?
O God! can I not save
One from the pitiless wave?
Is all that we see or seem
But a dream within a dr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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