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추억>
-다자이 오사무 作-
***동우***
2014.02.11 06:06
다자이 오사무 (太宰 治, 1909~1948)의 '추억'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를 그린 자전적 소설입니다.
다자이 오사무에 대해서는 10 여차례나 지껄인바 있으나, 그의 작품을 포스팅하는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피에로, 나르시즘, 부끄러움, 죄의식, 과잉된 자의식... 그런 것들이 자학적으로 데포르마숑되기 전의 다자이의 모습을 봅니다.
예민하기 짝이 없는 성장기의 저 감수성은 여늬 소년들과 무에 그리 다르겠어요?
질풍노도, 혼란스러운 의식 속에 틈입한 소소한 절망들은 또 얼마나 과장되게 작용합니까?
한번쯤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은 소년도 드물 것입니다.
(며칠 전 포스팅한) '미시마 유키오'는 '다자이 오사무'를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허지만, 나는 자위대 본부 발코니에서 자신의 배를 가른 미시마 유키오가 더 천박하여 싫습니다.
전혀 다른 기질의 두 작가의 자살.
그런데 두 사람에게 드리워진 한조각 공통된 죽음의 빛깔 없을까요.
허무의 색감, 벅찰만큼 무의미한 실존의식...
일본적 삶의 형식에 관한 동일성.
아, 그러나 다릅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예술가로서는 빼어났지만, 그가 다자이 오사무의 <진실>에 이르기에는 족탈불급이지요. ㅎ
‘프로메테우스의 생간을 쪼는 것은 독수리이지만 다자이는 스스로 자신을 쪼고 있다.' -쓰시마 미치코-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나의 사념은 언제나 여일합니다.
좀 긴 단편소설, '추억'을 3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동우***
2014.02.12 04:57
다자이 오사무의 어린 시절.
아오모리의 대저택.
여러 형제들과 수많은 하인과 하녀들.
가문의 문장이 있는 마차, 정원, 영사기, 장서, 그림, 동인지, 연극...
내게 저런 호사는 없었지만, 보생의원은 넓었고 많은 식구와 여러 고용인들이 있었다.
다자이가 동생과 함께 마음을 두었던 하녀 '미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면서 ‘미요’에게서 카추샤를 떠올렸을까.
애순이가 생각난다.
나보다 한살 아래의 눈이 커다란 아이.
환경이 어려워 남의 집 부엌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애의 작은오빠였다.
두뇌가 비상하였고, 이미자의 노래를 정말 잘 불렀었다.
미군과 결혼하여 미국에 가 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쩌면 그 애가 '미요'였을까.
나처럼 늙었을... 애순이가 보고싶다.
'작은오빠'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가 듣고싶다.
***teapot***
2014.02.12 13:31
재미있게 읽는 중입니다.
동우님 아버님께서 보생의원을 하셨군요?
한의원집 아드님이라 불리웠나요? ㅎㅎㅎ
많은 식구들 고용인들 속에서
다자이 오사무에 버금가는 추억이 있을 만도 하실것 같은데
애순이만 생각만 나시나 보네요~ ㅎㅎㅎ
내 블방은 닫고 동우님방에는 좀 더 자주 올 수 있어야 할텐데요.....
***동우***
2014.02.13 05:25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문을 연 유서깊은(?ㅎ) 병원(한의원이 아니라)이었지요.
오사무처럼 정일한 감성으로 묘사할수는 없겠지만, 사춘기를 보낸 보생의원에 얽혀있는 추억이야 어디 한둘이겠어요?
다자이가 '미요'를 얘기하길래 애순이를 떠올리게 된거지요.
나이드니 애틋하게 애순이가 그립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애순이와 사이에 모종의 사연이 있었던건 아니랍니다. ㅎ
누이를 그리는 오라비의 순정한 애틋함이랍니다.
정말 보고싶어요.
며칠 남지 않았군요.
티팟님의 블방 문닫을 날.
그렇더라도 가끔은 들러 주시우, 캘리포니아의 벗 티팟님.
***teapot***
2014.02.13 11:05
녭~벗님!!
***동우***
2014.02.13 05:13
영화 '인간실격'의 끝무렵 '오바 요조'가 나이 든 반라의 여인(유모?) 곁에 태내의 아기처럼 벌거벗은채 웅크리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어떤 페르소나에는 뚜렷한 여성성이 보인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언제나 여성이 있었다.
'오바 요조'는 부르짖는다.
"여자가 없는 곳으로 갈테야!"
다자이의 그 섬세한 감성은 여성적인 것과 더불어 싹트고 자라고 함께 저물었다.
이 소설에서도 잠시 등장하지만 다른 글에서도 다자이는 고백한바 있다.
하인과 하녀로 부터 체득한 모종의 성적인 학대와 쾌락...
그의 내면, 순결한 어떤 영역은 몹시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숙모의 가슴은 현관의 조그만 쪽문 가득히 차 있었다. 그 홍조를 띠고 있는 커다란 가슴에서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 떨어지고 있었다. 숙모는, 네가 싫어져서야, 라며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나는 숙모의 그 젖가슴에 볼을 대고 그러지마, 가지마, 라고 빌면서 계속 눈물을 흘렸다.... 숙모가 나를 흔들어 깨웠을 때, 나는 이불 속에서 숙모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나는, 아직도 그 슬픔이 가시지 않아 한참 동안이나 훌쩍이며 울었다. 하지만 그꿈 이야기는 숙모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하지않았다.]
[우리들은 한쪽 귀통이에 있는 자그마한 쪽문을 열고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후끈하고 따뜻하였다. 두세 마리의 노란 쌍말벌이 붕붕소리를 내며 날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지붕에 걸린 포도잎과 둘레의 갈대밭 사이로 밝게 비추고 있었다. 미요의 모습도 연두색으로 보였다....우리들은 한 마디로 하지 않았다. 매우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그사이, 나는 점점 화가 치밀기 시작했다. 포도가 이제 막 바구니 가득히 되려고 할 때였다. 미요에게 건네주려고 포도 한 송이를 내밀자, 미요는 그것을 받으려고 한 손을 뻗다말고 움찔하며 거두어 버렸다. 나는 포도를 미요 쪽으로 억지로 떠넘기고, 이봐 왜 그래, 하며 혀를 찼다. 미요는 오른손을 왼손으로 꾹 누르고 숨을 들이키며 배에 힘을 주고 있었다. 벌에 쏘였냐고 물으나. 예, 라고 하며 눈이 부신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바보, 하고 나는 야단쳐 버렸다. 미요는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이 이상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약 발라 줄께, 하고 그 울타리 안에서 뛰쳐나왔다. 곧바로 안채로 데리고 돌아와, 나는 암모니아 병을 약 상자에서 찾아 주었다. 그 보랏빛 유리병을 될 수 있는 한 거칠게 미요에게 건네주었을 뿐 내가 발라주려고는 하지 않았다.]
유아기 숙모로 시작하여 사춘기적 '미요'에 대한 추억으로 마무리 짖는 '추억'
정일(靜逸)한 감성으로 쓴 치밀한 구성의 소설이다.
[나에게 있어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만큼 심한 치욕은 없었던 것이다,]
다자이에게는 확실히 귀족의식이 있었고, 한편 그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다.
그 양가감정은 그의 비극이었는데, 다자이는 그것을 극복할 뻔뻔스러움을 갖고 있지 못하였다.
[나는 달랐다. 범속이라는 관념이 나를 괴롭혔다.]
그는 자위를 할지언정 미요를 더럽힐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것은 플라토닉이라기 보다는 범속하지 않으려는 다자이의 어떤 기품이었을 것이다.
데모크라시.. 카추샤....네프류도프...
하녀와 결혼을 선언한다는 결심은 귀족 소년으로서는 작은 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요는 이미 다른 하인에 의하여 (그녀 자신도 그다지 싫은 것도 아니게) 더럽혀졌던 것이다.
소년의 혁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언제부터 '태어나서 미안합니다.'라는 의식이 깃들기 시작하였을까.
으흠, 세상에 대하여 뻔뻔할수 없었던 천래적 기질, 그것이 다자이 비극의 정체가 아닐까.
[뚜껑에 담쟁이 덩굴처럼 길게 구부러진 덩굴풀이 가득히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은제 콤팩트...]
분곽 뚜껑에 가득 새겨진 담쟁이 덩굴처럼 길게 구부러진 덩굴풀.
어머니 화장대에서 보았던지 내 눈에도 익은 문양이다,
시세이도였던가, 로레알이었던가..
지엽적 문장 하나에 씨잘데기없이 눈길 머무는 속물...ㅎ
***eunbee***
2014.02.14 00:11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을 읽노라면 사르르~착해지고 있는 나를 느껴요. 글이 아름답고 순해서요.
'사양'과 '인간실격'을 읽을 때도 그러하더니 이 소설 '추억'을 읽으면서도 그러하네요.
동우님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를 좀 더 잘 알게 되고 느끼게 되어 감사합니다.
나도 이분을 더욱 더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아름다운 슬픔이 배어있는 오사무의 글은 다시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보드라움과 순함과 안개같은 몽글몽글한 슬픔과 그리고 사분사분함...내가 생각하고 있는 일본인의 정형인가 한답니다.
나는 일본인을 겪어본 적 전혀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그렇게 생각하기에 좋아하는)일본인의 정조를 오사무의 글에서
많은 부분 맛보는 것 같아요.
법정스님께 꽁한 맘 갖는 내 깊이 없고 맺힌 한구석을 다자이 오사무를 읽으며 씻어내도 좋을 것 같아요.
늘 감사합니다. 동우님.
'뚜껑에 담쟁이 덩굴풀이 그려진 은제 콤팩트...'
그시절 동우님 어머님께선 귀족다우신 어머님께 어울리실
하이칼라^^ 화장품을 화장대 위에 두셨었네요.ㅎ
***동우***
2014.02.15 04:23
아름답고 순한 다자이 오사무의 글....
그보다 은비님의 표현이 아름답고 순해요.ㅎ
보드라움과 순함과 안개같은 몽글몽글한 슬픔과 그리고 사분사분한 감성들...
은비님 말씀대로 그런 것들도 일종의 일본적 색채감일겁니다.
그러나 베네딕트 여사는 '국화와 칼'에서 일본인의 이중성을 묘파하였지요.
'자리' '분수'에 대한 일본인들의 자의식을.
다자이 오사무와 같은 감성미학이 있는가하면 미시마 유키오와 같은 감성미학도 또한 공존하는.
일본문화는 적어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더 다양합니다.
요즘 일본과 상당히 불편한 정국, 일본의 혐한(嫌韓) 분위기에 눈을 곤두세우지만 여전히 호한(好韓) 분위기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독도는 일본땅 했다가는 몰매맞기 십상이지요, 그런데 일본에서는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논조가 인구에 회자되도 무방할겁니다.
우리 어머니, 일본문화에 흠취하셨고..., 은비님처럼 스포츠에 열광하셨고....
그다지 귀족다우신 분이 아니었다오, 은비님.
뚜껑에 담쟁이 덩굴풀이 그려진 은제 콤팩트...
코티분갑인가, 왜 분홍색조의 그 화장품 통 은비님도 아실듯 한데..
프랑스제인지, 일본제인지..
***teapot***
2014.02.17 09:29
은비님의 글의 느낌 동감합니당
표현이 안돼는 나의 느낌을 대신 표현 해 주신 것 같고예~
역사상 미워하는 일본인이지만
오뎅(어묵이라지요?) 사면서도 일제에 더 믿음이 가는 이유는 뭴까요?
혹 저만 그런지요? (에~궁~ 몰매 맞는 거나 아닌지......)
***eunbee***
2014.02.17 23:45
티팟님, 안녕? ^*^
(티팟님 닫힌 문 앞에 서서 울적한 마음 되더라구요 ㅠㅠ 왜들 문닫는 것을 유행시키는 고얌? ㅋㅋ)
내 어머니는 예전에 일본 그릇(얇은 나무로 된 예쁜 접시와 상아 포크가 한셋트로 들어있는, 색채 아름답고
무늬 어여쁘게 새겨진 도자기로 된 병과 밥공기 등)을 마루 그릇장에 채곡채곡 아껴두었었지요.
나도 일본제 모두 좋아해요.ㅎㅎㅎ 그런다고 몰매하면 그냥 맞죠. 무어~
***동우***
2014.02.18 04:56
하하, 은비님.
티팟님댁 닫힌 문짝 너머로 다 보이는 걸 무어.
내키실적 언제라도 여시겠지요. ㅎ
역사적인 사실과 일본인이나 일본문화에 대한 것은 좀 구분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건 좋은 것.
정서적으로는 매혹되는데도, 역사의 기억때문에 굳이 마음까지 닫를거까지야..
일본식 간또(어묵), 참 맛있지요.
우키요에에 흠취한 인상주의 화가들도 그러했을테지만, 나는 일본적 색감을 좋아합니다.
일본 그릇들, 특히 목공예품에 입혀진 색갈들...
일본적인 초록과 분홍색은 내게 아주 독특한 느낌이랍니다.
CMYK 이리저리 혼합하여 만들려 해도 그 간지가 잘 안나던데..ㅎㅎ
***jamie***
2014.04.02 22:50
다자이 오사무, 처음으로 읽었습니다. 1909-1948.
오래 전 작가시군요. 문장이 찍힌 마차를 타고 다닌게 놀랍네요.
한국엔 그런 부호는 없었지 싶은데...우리네 양반문화와 다른 귀족문화가
일본에는 있었던가 봐요. 구한 말에 무슨 백작, 그런 칭호는 우리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일본 작가들 자살한 분들이 꽤 여럿이었던게
의아했었어요. 할복한, 무서운 작가도 있고요. 요즘은 우리나라도
자살이 흔하지만요...인간실격도 올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님 이미 올리셨나요?
월든을 읽은 이후로, 이렇게 많은 글을 올리신 줄 목록보고 놀랐어요.^^
***동우***
2014.04.03 04:59
제이미님.
대표적인 세사람의 일본작가.
다자이 오사무,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극명하게 문학적 기질을 달리 하는 세사람이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들에게는 어쩌면 공통적인 일본적 미학의 색감이 서려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집안은 할아버지에 기반잡아 아버지대에 부를 이룬 신흥귀족이었지요.
그 귀족의식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의식에 자리잡은 중요한 요소였을겁니다.
태어나서 미안합니다라는 극단의 대척점과 함께.
인간실격은 텍스트 파일 구하게 되면 올리리다. 제이미님.
다자이 오사무의 어둡고 절망적인 자의식... 유쾌한 소설은 아닌지라 그다지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지만.
'다자이 오사무'를 주제로 몇편의 어줍잖은 포스팅을 하였는데 제이미님께 그걸 한번 훑어보시기를 일단 권하렵니다.ㅎ
***eunbee***
2015.02.18 01:58
미요의 부채의 바람의 양으로 짐작하는 미요의 마음길,
모기장 속의 반딧불이 놀이,
숙모의 젓무덤
미요를 생각하는 오사무의 순정과, 동생의 미묘한 표정들..
세세한 많은 부분들에서 느껴지는 오사무의 성격.
천재다운 여러 행위, 활동들, 자주 나를 웃게하는 소소한 사건속의 오사무가 사랑스럽고..
미모나 의상에 관심있던 은근한 고급멋장이 기질,
귀족적인 선민의식과 자부심...
그리고
거기에 겹쳐 떠오르는 동우님의 어린시절의 추억 메뉴들에 대한 내 상상...
전에도 읽었건만, 이번의 읽음은 또 다른 감상.
재미스럽고, 순하고, 오사무의 어린시절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을 다시 읽을 수 있어, 감사!!
다자이 오사무는 몇살 때 이글을 썼을까요.
자료 찾기 게으르니 찾아볼 생각은 않고.ㅋ
그런데 동우님, 나는 이번 읽기는 거꾸로 읽었다우.
뒷포스팅부터....ㅎㅎㅎ
그래도 잼나요.
***동우***
2015.02.18 07:09
은비님.
저와같은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 그런 오사무의 글맛을 진솔한 재미로 실감나게 느낄줄 아는...
은비님 정도가 되니까.
엄지손가락 척. ㅎㅎ
-독서 리뷰-
[[다자이 오사무]]
<앵두> <쾅쾅쾅> <피부와 마음>
<앵두>
-다자이 오사무 作-
***동우***
2016.08.18 08:24
내 방이 아닌 곳, 내 것 아닌 P/C로 글을 올리려니 좀 어색합니다.
이런 소소한 것에서도 낯선 것에 숫기없는 자의식이 드러납니다그려. ㅎ
검색하여 업어온 '다자이 오사무'의 '앵두'를 올립니다. (리딩북 거르지 않겠다는 강박이 내게는 있다오.ㅎ)
자식보다 부모가 중요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런 말도 하였지요.
‘가정의 행복은 제악(諸惡)의 근원’이라고.
오사무의 자의식.
슬픈 패러독스
전에 내가 썼던 '다자이 오사무'를 복사하여 덧붙입니다.
++++
{자연 속에 안겨 과거의 마른 뼈 속을 더듬어야 하는가. -월든-}
인문(人文)은 관습과 제도와 종교, 그리고 사고(思考)의 틀과 기질을 만든다.
세월 따라 본질은 후패(朽敗)하지만, 세월에 의하여 그 더께는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 더욱 강고히 고착(固着)된다.
우리의 자아를 지배하고 있는 도그마(dogma)는 ‘과거의 마른 뼈’, 그것이다.
도그마는 순수(自然)에 대하여 오만하고 타(他)에 대하여 완고하다.
개별의 삶에다가 자꾸 능동(能動)과 적극(積極)을 부추긴다.
그건 자연과 조화로운 삶의 방식이 아니다.
자연과의 본원적 관계에 있어서 존재란 본시 수동성(受動性)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과 영화 ‘안경’의 온유함과 평화로움.
생각건대, 삶을 대하는 수동성(受動性)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성정(性情)이다.
그러니까 누구나 내면에는 조금씩 다자이 오사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오사무가 과(過)하여 자훼(自毁)의 경지에는 이르지 않더라도 말이다.
처처(處處)의 불쌍한 것 부당한 것들을 접할때면 마음이 몹시 불편하여 쩔쩔매는 사람들.
위고가 말한 ‘너의 행복의 넘침에는 언제나 남의 몫이 들어가 있다.’투의 얘기를 들으면 괜히 미안하여 마음이 송구해지는 사람들.
‘이기적 유전자’에 살짝이라도 반기(叛旗)를 들수 있는, 타(他)의 불쌍함에 대한 연민으로 기꺼이 베풀려하는 사람들.
적극가치(積極價値)가 지배하는 세상의 구석에서 수동성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
세상 속에다 무작정 들이대지 못하는, 하냥 뻔뻔스럽지 못하는 사람들.
엉거주춤 그렇게 어색하게 살다 가는 사람들 어디 한 둘이랴.
그런걸 유독 진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테면 오사무의 종족들이다.
이데올로기
자본(資本)과 공산(共産).
오사무의 종족들은 ‘신자유주의적 무한경쟁’의 세상에서는 패배자로 살기 십상인 사람들이다.
또한 욕망이 제어되고 관리되어지는, 집단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주의적 세상에서도 숨쉬기 힘든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구의 삶을 체념하고 다른 별을 그리워 한다.
제3의 세상은 없는가하고.
아, 모두들 세상에 익숙한 척, 노련한 척, 굳센 척 잘들 살아 내고 있고나.
허세(虛勢)인가, 공갈인가, 혹은 다테마에(建て前)인가.
혹 그대들 내면아이는 신음하거나 울고있는건 아닌가.
오사무의 절망과 허무, 그리고 자의식과잉.
자의식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어떤 소년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떠오른다.
과잉된 자의식.. 열등감, 수치심, 외로움, 소외감, 결핍감, 부끄러움. 대인기피.
오사무의 죄의식, 자기부정과 자학(自虐)이 똑 자기 것처럼 느껴졌던.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레 가지고 있는듯한 보편적인 사고방식과 생활감각에 적응하지 못하여 짓는 피에로의 웃음.
뻔히 들여다보이는 상대의 ‘혼네(本音)’를 대하는 나의 리액션은 어떻게 해야하냐하는 문제는 실로 고민중의 고민.
‘다테마에(建て前)’에 맞추어 대응해야 하느냐 혼네에 맞추어 대응해야 하느냐...
그 이중구조(二重構造)의 인간성이란 내게 참으로 난해(難解)한 것이었다.
그런 경우의 내 어릿광대는 어쩔수 없는 나의 방어기제인 것이다.
<저는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는 만족스럽게 말도 하지 못할 만큼 나약한 성격이고, 따라서 생활력도 제로에 가깝다고 스스로 느끼며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내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염세주의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삶에 그다지 의욕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이 생활의 공포에서 도망치고 싶다, 이 세상에 작별을 고하고 싶다는 등의 일만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온 성격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저의 성격이 저로 하여금 문학에 뜻을 두게 한 동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저것 생각을 떠올리다보면 저는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제 문학관이나 작품이 술에 좌우될 것이라 여겨지지는 않지만, 단지 술은 제 생활을 상당히 흔들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람을 만나도 만족스럽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나중에서야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걸, 저렇게도 말했으면 좋았을 걸 하며 분해합니다. 언제나 사람과 만날 때면 대부분은 어질어질 현기증이 나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되는 성격이기에 끝내 술을 마시게 됩니다. 잠자리에 들어서 여러 가지로 그 개선책을 기도(企圖)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죽지 않으면 고치지 못할 정도로까지 되어버린 듯합니다. -수필 중에서->
<이웃사람의 고통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어느 정도의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밥을 먹기 위해 사는지, 돈 때문에 사는지. -인간실격->
<결국 나는 인간의 영위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 자신의 행복과 관념과 온 세상 사람들의 행복과 관념이 전혀 딴판으로 어긋나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불안, 거의 발광상태에 이를 것 같은. -인간실격->
아래 글은 다름아닌 바로 나의 내면을 오사무가 대신하여 얘기하고 있는듯 하였다.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 동물 야수의 본성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섭다.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 조용히 누워 있다가 돌연 꼬리를 치면서 뱃가죽에 붙어있는 등에를 후러쳐 죽이는 것 같은, 갑자기 인간의 무서운 정체를 분노에 의해서 폭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듯한 전율을 느끼며, 이 본성도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의 한가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완전히 절망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실격->
슬픈 위악(僞惡), 혹은 슬픈 어릿광대.
피에로가 되어서 가장하는 미소, 기묘하게 찡그리며 웃고 있는 피에로의 얼굴.
<그것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수단이며, 믿을 수 없고 두렵기만 한 인간에 대한 사랑할 의지를 버리지 않으려는 어린 요조의 ‘익살의 윤리’>
오사무의 슬픈 귀족(貴族), 그 한 조각 내게도 없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그처럼 세련되고 아름다움에 이르기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것이었지만.
기품과 오만함,
자존(自尊)과 나르시시즘.
고아한 감성과 세련된 기교.
그리고 역설의 미학.
퇴폐스러운듯 순결함.. 화려한듯 소박함.. 수락된 허무와 절망이 주는 따스함 같은,..
그리하여 오사무는 내게 하나의 '쁘띠뜨 프라즈' (일종의 개념적 이미지 -밀란 쿤데라의 ‘불멸’에 나오는 개념)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건대 인간성의 원형질이 희구하는 진짜배기 아름다움이란 ‘적극적인 불사의 욕망’에는 있지 않은 듯 하다.
허무와 멸망과 불쌍함이 내포되지 않은 ‘삶의 욕망’은 내게 아름답지 않다.
랭보, 고호, 슈베르트. 제임스 딘, 오자키 유타카...
이들은 왠지 아름답다.
흐음, 요절한 예술가들이라 그런가.
++++
<쾅쾅쾅>
-다자이 오사무 作-
***동우***
2016.12.05 04:21
'다자이 오사무'의 쾅쾅쾅.
다자이 오사무 자신의 이야기일겁니다.
세상으로부터도 자기자신에게서도 소외된 인간.
영원한 아웃 사이더의 자의식.
인간실격...
쾅쾅쾅.
어떤 비장함이거나 엄숙함이거나 감격적이거나 정의감이거나 사랑이거나 육체적 경도이거나 미적도취(美的陶醉)에 빠지려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
집단의 거대한 포름은 흔히 격앙과 흥분으로 거짓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최면과도 같습니다.
집단적 프로파간다가 불러일으키는 애국적 감동 따위가 그러합니다.
쾅쾅쾅.
그리하여 그 소리는 집단적 흥분상태, 몰아(沒我)의 주술(呪術)에 넘어가지 말라는 각성의 소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소리는 또 다른 주술적 강박이기도 합니다.
어떤 대상을 향한 정열의 기미가 보이면 들려오는 소리.
파묻히지 말라는.
인간도 세상사도 시시하기 짝이 없다는.
자살까지도 시시하게 만드는.
니힐을 강요하는 것도 아닌 그 소리.
광장에서의 아웃사이더이며 또한 자신의 밀실에서 마저도 소외된 회색인간...
쾅쾅쾅
그 소리는 필경 일생 동안 다자이 오사무의 실존을 지배하였던 내면의 소리였을겁니다.
그 소리에 쫓겨 몇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고 그예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야 말았던.
소설의 말미, 무학무사상(無學無思想)한 작가의 답장.
<배부른 고민이군요. 나는 각별히 당신을 동정하지는 않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것,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의, 모든 일에 아무런 변명이 성립되지 않는 추태를 당신은 여전히 피하고 있는 것 같군요. 진정한 사상은 예지보다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 ‘그리고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아울러 지옥에 던져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 이 경우의 ‘두려워하다’는 ‘외경(畏敬)’이라는 의미에 가까운 듯합니다. 이 예수의 말에서 청천벽력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의 환청은 그칠 것입니다. 그럼 이만.>
다자이 오사무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말일듯 싶은데, 알레고리는 모호합니다.
육신과 영원 공히 멸절시키는... 외경의 대상.
구원... 완벽한 죽음 云云...
비약일테지요?
***하늘의소리***
2016.12.06 07:14
숙부의 자신만만한 얼굴로 "나도 그럴줄 알았다. 머리가 나쁘면서 어려운 책만 읽으면 그렇게 될 줄 알았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성령으로 만난 후에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빌립보서 3장8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린도전서 2장9절_11절)
"이 예수의 말에서 청천벽력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당신의 환청은 그칠 것 입니다". 그럼 이만.
***송현***
2016.12.09 20:35
여러번 읽고 또 읽었습니다 ~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히셔서 인간을 하나님과 똑같은 영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만 죄성으로 눈이 멀고 귀가 멀어서....
다자이 오사무는 그소리를 들은 것이 아닐까요?
부질없는 인간사 ...죽어라 ~!버려라 ~!
꽝꽝꽝 !!!
***┗동우***
2016.12.10 00:25
하하, 송현님.
위 하늘의소리님도 그렇거니와 크리스찬의 '쾅쾅쾅'의 해석은 역시.
격앙하려 해도 쾅쾅쾅, 진지하려해도 쾅쾅쾅, 감동하려해도 쾅쾅쾅, 허무하려 해도 쾅쾅쾅...
다자이 오사무는 이런 말을 하였는데, 여기 무슨 은유가 있을런지.
<"사슬에 묶였다면 사슬 채 걷는다. 십자가에 매달렸다면 십자가 채 걷는다. 감옥에 넣어졌다면 감옥을 부수지 않고, 감옥 채 걷는다. 웃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밖에 살 방도가 없는 것이다. 지금은 그렇게 웃고 있지만, 언젠가 자네도 짚이는 바가 있을 것이다.">
여전하시지요? 송현님.
동경의 멜론님도.
예서 안부...
<피부와 마음>
-다자이 오사무 作-
***동우***
2017.04.25 04:05
'다자이 오사무 (太宰治, 1909~1948)'의 '피부와 마음(皮膚と心)'
표리(表裏)
피부는 여성성(女性性)의 표(表)이고 마음은 여성성의 리(裏)일테지요.
피부를 빙자하여 여자의 마음을 이토록 섬세하게 쓴 소설이 달리 있을까요?
'다자이 오사무' 정신의 원형질에는 여성성이 짙게 용해되어 있을듯 합니다.
자신의 ‘아니마’를 작품 속에서 여러 모로 발현하는 작가, 다자이 오사무.
다시 읽어도 '나루호도'하고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피부와 마음'
오늘 내일,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영도 벚꽃들은 후두둑 지고있는데 파리 등나무는 흐드러지게 늘어져 있고.
봄은 무르익는데 내 왼쪽 다리 관절통은 한겨울입니다그려. ㅎ
***동우***
2017.04.26 01:02
'다자이 오사무'의 '피부와 마음'
부족한 가정(弱い家庭), 게다가 스스로 얼굴도 무척이나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노처녀.
시집 갈 생각은 아예 포기하였는데 한 여자로 부터 버림받은 어느 홀아비와 인연이 닿아 결혼합니다.
무엇도 내세울 것 없는, 자신감없어 빌빌대는 남자는 용모마저 왜소하고 얼굴도 빈상입니다.
우물쭈물하던 여자는 문득 남자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승낙하였던 것이지, 그 결혼에 호리도 무슨 기대를 품었던 것은 아닙니다.
소학교만 나온 남자이지만 예술적 재능으로 돈벌이도 제법 하는 편이고, 많은 독서로 교양면으로는 대학출신 학사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결혼생활에 무슨 자극이나 행복을 느낀적은 전혀 없습니다.
<어차피 저는 불행합니다. 결혼하고 저는 행복했을까요. 아뇨. 아니, 역시 행복이라고 말해야만 하겠지요. 벌 받습니다.>
타성으로 살아가는 무미건조한 부부관계, 인생 그렇겠거니 여자는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그러구러 살아갑니다.
피부와 마음.
그런데 갑자기, 타성으로 길들어진 껍질(skin)에 갇혀 마냥 무심하였던 내면이 만져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젖가슴에 돋아난 피부 트러블, 그 뾰루지는 숨어있다 솟아난 팜므파탈의 꽃입니다.
그걸 매개체로 어떤 실존적(여성성의) 위기를 절절하게 의식하게 됩니다.
페르소나에 가려져 있던 자아의 발견은 여성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여성성의 욕망, 바로 보편한 여성성의 ‘선천적인 성질(生れつき)'.
여자는 비로소 자신 속의 '프로스티튜트(창녀)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제서야 남자의 옛 여자를 질투하는 염이 솟아납니다.
지극히 공손하고 마냥 나긋나긋한 일본의 여성성, 그런 정조(情調)로 다자이 오사무가 들려주는 이 소설.
저 부부는 이제부터 불행끝 행복시작입니다그려. ㅎ
여성성에 과문(寡聞)한 내가 잘 알고 있을리 없지만, 여성의 삶(팔자?ㅎㅎ)은 대체로 모종의 성적(?) 디테일이 결정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여자는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만으로 살고 있거든요. 내일은 어떻게 되더라도요. 있잖아요. 내일은 어떻게 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때 여자는 가장 여자다워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철학이니 이상이니 게거품 무는 남성성의 몽롱한 던적스러움에 비하여 여성성은 얼마나 리얼리틱한 아름다움입니까?
봄꽃, 아이의 노래소리에 자즈러지는 기쁨을 남성성은 관념의 그림으로 기뻐할 뿐입니다.
또한켠 생각.
생각건대 여성성의 본질은 섹슈얼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닐듯 합니다.
어쩌면 남성성도 역시.
자웅(雌雄)에는 이기적 유전자라거나 코이터스의 쾌락보다도 더 근원적인 어떤, 더 섭리적인 어떤 생명력이 깃들어 있지싶은.
다자이 오사무는 자신의 아니마를 발현하여 여러색갈의 여성성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냈습니다.
'뷔용의 처'에서, '불꽃놀이'에서 '쓰가루'에서.
그리고 사양에서의 '가즈꼬', 아, 그녀의 도덕혁명.
다자이 오사무의 여성들은 사뭇 혁명입니다
필경 오사무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몸부림치고 신음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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