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리뷰-
[[한수산]]
<타인의 얼굴> <날개와 사슬>
<타인의 얼굴>
-한수산 作-
***동우***
2015.01.26 04:54
한수산 (1946~ )의 '부초'(浮草).
그 옛날 가슴을 에이게 하였던 소설이었습니다.
유랑 서커스단의 사람들, 어머니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침흘리며 잠이 든 난쟁이 곡예사 칠룡이..석이네..지혜..하영이..
작가의 감각적인 문체는 아름다웠고, 그가 들려주는 삶의 애환은 통속이었지만 미학적으루다(?) 절절한 슬픔 없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우리들 청춘은 좀 외로웠었던가 봅니다.
자욱한 해무(海霧)를 물들이면서 내 귓가에서 푸르스름한 슬픈 음색으로 웅얼거리던 뱃고동소리..
어느 겨울 새벽이 떠오릅니다.
'타인의 얼굴'
‘영혼의 빛나는 발견’을 하게끔 이끌어주는 저런 스승 내게도 있었더라면..
저 선생과 제자의 태도는 참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라도 죽음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얼굴'입니다.
두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부초'를 함께 읽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 파일은 찾을수 없네요.
대신 한수산의 다른 작품의 텍스트 파일 몇 업어왔습니다.
***野草 박정호***
2015.01.26 12:03
잘 지내시죠, 동우님!
저도 '부초'를 찾아보려 했지만 구하기 힘드네요.
돈 안들이고 찾아 읽으려니 ㅎㅎ
올려주시는 좋은 작품들, 늘 마음을 적십니다.
오늘도 동우님 건승하시기를.
***동우***
2015.01.28 04:42
야초님 댁의 주옥같은 자료들은 어디에서 구해오시는건지?
내가 좀 업어오려고 하여도 긁을수 없도록 꼭 잠궈 놓으셨으니...
하하, 야초님.
청건대 좀 풀어주시면 여하?
***野草 박정호***
2015.01.29 10:05
아....그러네요!
다 풀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방법은 원글(카페 글)로 가셔서 스크랩하시면 될 듯~~
***동우***
2015.01.30 04:47
하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몇 페이지 스크랩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야초님.
***동우***
2015.01.28 04:06
자신에게 휴식이었고, 종교였으며 추악하지 않은 권력으로서 힘이 되었던 스승.
언제나 따뜻하였고 때로 단호했던 모습.
때로는 의연하게 때로는 나약하게...
<“그렇겠지. 막살아왔다면,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왔다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무슨 짓이든 하겠지. 그러나…… 난 그렇지가 못하잖아. 그렇게 막살지도 못했잖아.”>
죽어가는 은사의 모습.
죽음에 이르는 길은 병든 자아와 정상적인 자아와의 쟁투인가.
산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얼굴.
그러나 그것은 필경 도래하고야 말 자신의 얼굴, 삶이란 그 차례를 기다림에 다름 아니다.
단 일회적인 리얼리즘의 극점, 그 누구도 스스로의 죽음을 경험할수는 없다.
우리의 삶을 성찰하게 하는 것은 오로지 타인의 죽음이다,
메멘토모리~
***송명숙***
2015.02.03 01:53
한수산님의 소설들 읽은지는 오래전, 이젠 내용도 제목도 가물가물.
제가 읽었던 소설보다 이 소설 글도 수려하고 내용도 넘 좋은것 같습니다
동우님 올려주시는 글 언제나 주옥같이 제 가슴에 와 박힙니다.
왜 이제야 글맛을 알게 되었는지 미련하다고 저 자신을 타박해봅니다
글에 짜임새가 있고 문장이 탄탄해... 읽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감사합니다. 동우님~~
***동우***
2015.02.03 05:03
어줍잖은 블로그의 리딩북으로 글맛을 좀 알아 가신다니.
나야말로 보람 가득하고 기쁩니다.
탱큐.
***송명숙***
2015.02.06 17:21
낯설음.!
그게 나에게 보여진 죽음일까
전혀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지만 늘 가깝게 존재하는 실체
어쩜 친부모 시부모님 다 돌아가시면서 몇번의 죽음을 겪으면서 낯설기만 하였던 죽음...
이젠 많이 친숙도 해졌지만 그래도 낯설움이 먼저다.
그래서 삶은 늘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내 가족 나자신 주위의 지인 모두들 죽음과는 먼 것만 같다
타인의 얼굴이 정말 죽음이 아닐까?
존경하던 스승님의 얼마남지 않은 시간을 가까이서 보면서
자신이 할 수있는 일이 그저 과일 바구니 사들고 가는것 밖에 할 수 없을때의 안타까움 가슴이 저릴 것이다.
알 수없는 죽음의 시간들.
이 글을 읽으면서 현재를 아무렇게나 버리지 말자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잘 쪼개어 언제 나도 타인의 얼굴이 될지라도 아깝지 후회하지않게 미련없이 맞이 할수있도록.
미련없는 삶이 존재하지 않겠지만 최선의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기가 오고 있는지 편도션이 약간 붓고 머리가 묵직합니다,
동우님 즐건 주말 보내세요
***동우***
2015.02.07 04:36
메멘토 모리.
너의 죽음을 잊지 말라....
송명숙님의 말씀, 이 오의를 깨닫고 있는듯합니다.
감기는 초장에 다스려야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산행의 유혹도 좀 뿌리치시고...
<날개와 사슬>
-한수산 作-
***동우***
2015.02.13 04:59
한수산의 '날개와 사슬'
세번으로 나누어 올립니다.
내가 그러하였듯, 작가는 다자이 오사무에 그리 사무쳤던가 보아요.
날개와 사슬.
삶은 다자이 오사무에게 오로지 사슬이었을까요.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천상의 날개가 꺾인채 지상으로 유배되어 한세상 살다간 사람, 다자이 오사무.
이 소설 속의 주인공인 화가(畵家)는 필경 작가자신이었겠지만, 사슬을 끊고 자유로이 날고 싶은 사람이 비단 예술가뿐이겠습니까.
<그때 그는 자신이 견고한 껍질 속에 웅크리고 물밑을 기고 있는 달팽이처럼 생각되었었다. 달팽이가 어디로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 나선형의 그 껍질을 무겁게 끌고 물 밑 모래밭을 기어나가면서도 그 속에서 달팽이가 하루살이가 날아다니는 저 강 언덕의 저녁 무렵을 꿈꾸고 있지 않으리라고 누가 말할 수 있으랴. 그것이 그의 열아홉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 만난 소설이 [사양]이었다. 그것은 읽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그에게 있어 [사양]은 한 눈부신 세계와의 만남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살아가는 일이란, 농부가 되어 밭을 갈거나 우편집배원이 되어 하루 몇 십리를 걸어야 하거나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면서 알사탕을 파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일깨우는, 사람이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눈뜸을 가르치는 감동이었던 것이다. 무엇을 쓴다고 하는 행위의 자유, 자신의 삶이란 자신이 재단하고 수를 놓으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그는 거기에서 읽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인가를 창조한다는 일의 그 눈부신 아름다움까지를.>
아, 한수산도 ‘다자이 오사무’를 소스라치게 깨달았던 사람이었군요.
나처럼.
이 소설은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가는 이야기입니다.
매년 그의 기일에 '오토키'가 열리는 도쿄 근교 센린지(神林地)의 묘지, 그리고 여관으로 변해버린 아오모리에 있는 그의 생가(生家).
은비님은 사막의 별 '쌩텍스' 날개에 사념을 싣고 부슬부슬 비오는 파리의 '페르 라세즈'를 거닙니다.
저녁산책님은 사이타마현 '오자키 유타카'의 무덤에다 물망초꽃의 하늘색 푸른 날개를 달아주지요.
나도 사랑하는 이의 무덤가를 걷고 싶습니다.
신불산 자락 어머니 유택(幽宅) 앞에 서면, 사슬끊어 이윽고 날개로 꿈꾸어질까요.
***eunbee***
2015.02.17 08:25
엊그제
개울가를 산책했습니다.
포근한 햇살아래 반짝이며 흐르는 개여울의 정취가
마치 봄을 안고 도는 소녀의 포실함 같았다지요.
신불산 자락 어머니,
늘 동우님 마음속을 헤집는 어머님에 대한 사랑, 그리움.
나 또한 그러하답니다. 음력설날이 다가오니 더욱 그러하지요.
내 엄마 계실적의 그 명절이 진정한 명절이었기에.
노오란 마른 잔디가 덮인 양지바른 무덤가에 앉아
졸리웁게 내려쏟는 볕을 받으며, 우리들, 엄마를 추억할 때가 오고 있네요.
신불산은 양산 부근에 있나요? 어느 소설 속에선가 신불산이란 산이름을 본듯해서요.
동우님,
설날, 많이 기쁘고 행복하게 번다한(ㅋㅋㅋ)날 되세요.
<날개와 사슬>
쉽게 읽혀지기도 했거니와, 일본으로 건너가 동우님을 생각케하는(내게는)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 보고도 싶어지는 독서였어요. 그러나 동우님 말씀이 그는 그곳에 없고 '추억'에 있다 하시니
오늘 '추억'을 다시 찾아 읽어보렵니다.
***동우***
2015.02.18 07:01
은비님.
봄을 안고 도는 소녀의포실함.. 벌써 봄기운 물씬한 탄천.
북녘이 오히려.
내일 설입니다.
은비아씨 멀리 있으니 마음으로만 그리시고.
아드님 며느님 함께 복되고 즐거운 명절 쇠세요.
***동우***
2015.02.14 04:54
<그는 그에게 있어 최초로 삶을 가르친 은사였고 독약이었으며 깨어 나온 조그만 알껍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었다.>
한 인간이 살다간 자취를 찾아 꼼꼼하게 더듬어 가노라면 그의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할수 있을랑가.
<나는 화를 내고 있는 인간의 얼굴이 동물 야수의 본성을 보는 것 같아서 너무 무섭다. 이를테면 소가 풀밭에 조용히 누워 있다가 돌연 꼬리를 치면서 뱃가죽에 붙어있는 등에를 후러쳐 죽이는 것 같은, 갑자기 인간의 무서운 정체를 분노에 의해서 폭로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언제나 머리카락이 거꾸로 서는듯한 전율을 느끼며, 이 본성도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의 한가지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에게 완전히 절망을 느꼈던 것입니다.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저 공포에 동감하는 바 내게 없지 아니하다고 느끼고는 있지만, 그건 등에 진 나의 달팽이껍데기의 무게가 느끼는 이를테면 장님 코끼리 더듬는 격일 뿐이다.
어찌 살아있을적 한 인간의 실존 속에 담겨있을 그 삶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런가.
남겨놓은 작품이, 일기가, 유품이, 그를 둘러싼 환경이, 살았던 장소와 집과 방이, 다른 이의 증언이, 글씨가, 그림이 한 인간의 총체적인 모습인가.
생각건대 죽은 이의 흔적과 자취에서 우리는 한 인간의 지엽만을 들여다 볼뿐 그의 진실을 파악할수는 없다.
다자이 오사무.
그의 선택된 황홀과 불안을, 그의 당디와 프로레타리아의 모순된 결합을, 그토록 부조화한 바깥 세상에 조응하는 내면의 부조화를, 존재에 대한 미안함과 죄의식을, 그가 갖고있었던 생활에 대한 공포를, 하다못해 '가정의 행복은 제악의 근원이다'라는 그가 남긴 아포리즘의 진실조차 우리는 겉만 훑어 보고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다 꼴도 보기 싫어서 없애 버렸어요. 그 양반 생각이 날 만한 건 모두요.">
사랑을 기리고 간직하는 방법이 일본과는 달라서였을까, 아니면 험한 시대 월북한 가장에 대한 공포때문이었을까마는 내게는 그나마 아버지의 흔적 하나 남아있지 아니하다.
나는 호리도 내 아버지의 지엽이나마 파악할수 없다.
에고다.
삶도 죽음도 모두 남들이 파악할수 없는 자기만의 것, 에고다.
++++
<뼈 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람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 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
***홍애(虹厓)***
2015.02.15 05:39
동우님
3월의 책 다자이 오사무로 고르는게 어떨까요.
낮에 전화 드릴께요.
***동우
2015.02.15 08:47
홍애님의 팔라우 통신으로 한겨울에 남태평양 풍광 눈호사하였는데, 귀국하셨군요.
돌아와서도 씽씽하신 홍애님보는 즐거움.
3월 책, 모리 오가이로 고르겠습니다.
4월은 이방인, 이방인도 전문(全文)을 포스팅하였는데, 모두 읽었을 법하고 그 리뷰라면 나는 이미 과제완수..? ㅎ
'페스트'로 하는게 어떠하올지?
리스본행 야간열차, 문학이 주는 여운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어제 영화도 보았는데, 영화도 매우 좋았습니다. (은비님께도 보내드렸는데 아직 미접수...)
이따 얘기해요.
***동우***
2015.02.16 04:28
'다자이가 살았던 거리가 있다. 그곳은, 소설의 거리 가나기.'
다케의 벚꽃에만 남아있고, 아오야마 츠가루에는 다자이 오사무가 없습니다.
가나기에는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은 없습니다.
그 소설의 거리는 상업주의거나, 장님 코끼리의 거리일 뿐입니다.
가버린 사람의 흔적은 죄 허깨비일 뿐입니다.
나는 일본에서 다자이 오사무의 흔적따위 찾아볼 염도 품지않았지요. ㅎ
다자이 오사무의 '추억'에 다자이 오사무가 있지요. (포스팅한 것 있습니다)
다시 읽었습니다.
요 위 홍애님, 3월의 책으로 다자이 오사무를 추천하라고 하시는군요.
하하, 그런데 다자이 오사무는 내가 하도 지껄여서 다른 부족님들 식상하시리다.하하,
이번 달 나스메 소세끼의 소설도 그렇고 일본소설은 환영인지라, 차라리 다자이 오사무가 존경해 마지 않았던 모리 오가이의 소설을 추천하렵니다. (그의 소설 한편도 포스팅한것 있습니다)
***홍애(虹厓)***
2015.02.17 08:30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영화는 영화대로 각본을 달리하고 영화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각색이나 배우의 연기나 좋았습니다
책은, 읽는 맛이 아주 좋았습니다. 비행기 태워 가지고 가서 팔라우에서 읽었는데, 그 책을 읽는 더운 날이 다시 생각납니다.
행복했던 글읽기 시간이었습니다.
***동우***
2015.02.18 07:03
리스본행 야간열차.
그 영화 이따 한번 더 보려구요.
책부족 과제 수행을 위하여.
홍애님.
행복하고 복된 설을.
***홍애(虹厓)***
2015.02.17 04:36
동우님 죄송..
저 위에ㅜ댓글을 누른다는 게 삭제가 되어 버렸어요.
되돌려지자 않네요,
스마트폰 보다 좀 큰 태블릿이지만, 화면은 역시 작아서 ㅠㅠ.
3월 책 모리오가이.. 저는 처음 만나는 작가구요,
4월 책은 페스트와 이방인 둘 다 하기로 해요
***동우***
2015.02.18 07:02
모리 오가이 단편집, 카뮈의 페스트.
오케이.
-독서 리뷰-
<먼 그날 같은 오늘>
-한수산 作-
***동우***
2015.04.17 04:28
한수산(1946~ )에게서는 그 옛날 '부초'의 인상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습니다만, '먼 그날 같은 오늘'은 처음 읽는 소설입니다.
예전 P/C 통신시절, 하이텔 연재소설이라고 하니 역시 젊은이에게 소구(訴求)코자 감성적 언어를 구사하여 씌어진 감각적인 소설이로군요.
그런데 두번째 이야기 '밤기차'부터는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요. (내일分 부터)
한수산 하면 '한수산 필화사건'이 떠오릅니다.
5공 시절, 신문연재소설 '욕망의 거리'에 나오는 지엽적인 문장 몇개로 보안사에 끌려가 치도곤을 당했지요.
도무지 이념이라던가 반체제같은 쪽과는 전혀 색감을 달리하는 '한수산'이라는 작가가 말입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군인, 제복, 훈장 같은걸 폄하는듯한 불과 몇줄의 문장때문이었을겁니다.
전두환 정권의 보안사 요원(그것도 말단이었을겁니다)이 어쩌다 그 소설을 읽다가 몇개의 대목에서 비위가 상했겠지요.
한수산과 함께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문단 동료였던 시인 박정만도 끌려가 고문을 받았답니다.
고작 말단권력 하나가 두 문인의 영육을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린 무소불위의 폭력.
참으로 끔찍한 시절이었습니다.
극도의 환멸과 회의로 한수산은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오랜 기간 머물다가 문민정부로 바뀌고서야 돌아왔고 박정만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사망했다고 하지요.
경향주의 문학이념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문인을 지사(志士)로 만들어 버린 아이러니,
박정만은 자신이 민주투사로 취급되는, 그 왜곡된 전설에 몹시 괴로워 했다고 합니다. (이윤기의 소설 '전설과 진실')
이 소설 모두(冒頭)에서의 작가의 말
<다 용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 겨우 저는 잊었을 뿐입니다.>
근데 과연 잊혀졌을까요.
***동우***
2015.04.19 04:22
밤기차.
한수산의 저 중국여행은 1990년 쯤이었던것 같습니다.
중국 공산당이 내부 갈등을 억누르면서 한창 개혁 개방에 매진하였던 무렵.
중국.
1989년 천안문사태, 1990년 북경 아시안게임.
우리나라는 1992년에 오랜 맹방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정식으로 수교하게 되었지요.
도저히 한 하늘 아래에서 상종할수 없을것 같았던 싯뻘건 도깨비들.
철두철미 반공교육에 젖어 있었던 우리는 그들과의 접촉은 마치 무슨 몹쓸 세균에라도 오염되는 것으로, 당국의 허락없이 접선했다가는 응당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들 단단히 인식하고 있어야 했지요.
1980년대.
다니던 회사에 중공과 공산주의권 나라 사람들이 슬슬 드나들기 시작하였습니다.
80년대 말쯤이었나, 나는 중국 고위인사들 배석한 회사의 세레모니(중국발주 신조선 진수)때 오성홍기가 게양되고 중국국가가 울려 퍼지는 현실에 어찌나 기분이 묘하였었던지요.
그로부터 회사에서 차츰 접하게되었던 소련 폴란드 중국 사람들은 전혀 도깨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서 어떤 사회주의적 인간상의 면모도 찾아볼수 없었습니다.
사회주의에 대하여 내가 품고 있었던 어설픈 선입관.
강렬한 정의감, 사회윤리, 도덕성, 공동선에 헌신하는 자기희생적 모습 같은..이념적 인간의 낭만주의적 면모.
그들이 갖고 있는 이기주의 현실주의는 자본주의적 인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인간성의 변혁, 레닌 이래 사회주의적 실험이 내게는 그때 이미 실패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중국, 짧은 기간 동안 얼마나 엄청나게 변하였습니까?
작금의 중국 어디에서 공산국가의 모습이나 사회주의적 인간상의 편린을 찾아볼수 있을꺼나요.
김정일이 '상전벽해'라고 혀를 내둘렀던 샹하이 푸동지역..시장경제에 푸욱 젖은 생활양식, 사적소유의 원리에 따라 쏠려다니는 거대한 군중들..
우리나라 백화점 명품을 싹쓸이하는 요우커들.
'취향이 계급을 나타낸다'고 부르디외가 말하였지요.
하하, 중국에 대한 내 사설 어수선하였습니다만 한수산의 '밤기차'에 전혀 그런 쪽의 어프로치는 없습니다.
권력에 의하여 파괴된 영육이 종교에 귀의하면서 다시 삶과 화해하는 얘기이지요.
25,6 년전 중국의 풍광을 배경으로 잔잔한 감동이 있습니다.
***홍애(虹厓)***
2015.04.19 10:05
전에 들른 이야기인데 중국제ㅡ만년필 갖고ㅜ오다가 검색에서ㅜㅁ뺏기고 조사도 받았다고 합니다.
80년대 사업차 연결이 되어 해외ㅜ다녀오던 사람이야기인데
중국도 변했지만, 우리 정치가 이렇게 몇 십 년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싹 뒤집히는 것도 사실 요상한 ㅜ일입니다.
세계정세를 따라간다 해서ㅜ이해해ㅜ보려해도 저 시대의 공안의 태도는 웃기는 것이었어요.
ㄱ,때는 몰랐는데 지금 와ㅡ다시ㅜ보니, 우리는 반공민족주의ㅜ교육의 국민으로 잘도 세뇌되었습니다.
***동우***
2015.04.20 05:11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받았던 반공교육이란 참 웃기는 것이었어요.
홍애님 말씀처럼, 상전벽해의 작금의 우리나라 정책적 입장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세계사적 격변이 있었다지만.
아마 한 인간이 십여년새 그렇게 표변한다면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였을걸요. ㅎ
모바일로 만든 홍애님의 글자들. 삐뚤빼뜰. ㅎㅎ.
홍애님 댁, 나 역시 흔적없이 모바일로 읽기만 합니다만.
모리 오가이는 완독.
잔잔한 정취 흐르는 좋은 소설 무희, 기러기, 다카세부네...
그렇지만 작가가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역사를 기록하는듯한 '아베일족'.
담담하게 가라앉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어떤 전률같은걸 느끼게 됩디다.
일본에 연연히 흐르는 정서,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을 들쳐보기도 합니다.
독후감 과제수행때 다시 얘기 나누기로.
마감 30일까지 느긋하게 올리겠습니다. ㅎㅎ
***동우***
2015.04.20 04:58
밤기차.
내게는 경부선이었고 통일호였다.
내 기억 속에 어떤 것이 남아 있을까.
좁다란 한반도(그나마 반토막)인지라 가장 길다는 경부선 옛 통일호라도 기껏 너댓시간 정도.
캄캄한 차창 밖 눈 길 둘 일없으니 그저 술이나 마신 기억 밖에 없는듯.
자작나무 숲의 실루엣 스처 지나가는 세베리아 횡단열차,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밤의 밑바닥이 하얘지는 니카타현의 설국에 닿는 밤기차.
밤기차의 정취는 남의 글을 읽고 느낄 뿐이다.
배설물의 지독한 암모니아 냄새 싣고 대륙을 달리는 1980년대 말 즈음 중국의 밤기차.
그 안에서 한수산은 신앙을 조우하는구나.
똥냄새 자욱한 오욕 속에 잠겨 있었던 그 영혼은 이제 숨통이 열리려는가.
<우리들이 살아간다는 건 무엇일까. 무엇을 사는 걸까.>
과연 우리는 시간을 사는 걸까, 공간을 사는걸까.
아니면 사람을 사는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거치는 시간과 공간(특히 내 경우) 그리고 사람이란 얼마나 작고 적은 것인가.
아무리 고함치고 활개짓 해보아야 먼지 한알갱이처럼 지극히 작디작은 우리 삶 아니런가.
으흠, 침묵과도 같다.
침묵이기 때문에 우리 한살이가 다소 고결해 지는건지도 모르겠다.
***eunbee***
2015.04.20 23:36
이런저런 오만이야기가 등장하는 이 소설 잼나게 읽혀요.
어떤 여자는 잘 때 엎드려서 자는데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가슴이 아파서라는 대목에선 웃었어요. 공감의 쓴웃음.ㅎㅎ
나는 내 강아지인형 브라우니를 껴안고 자면 한결 나아지거든요.ㅋ
중국. 나의 청소년기까지의 중국은' 중공'일 뿐이었지요.
그냥 한줄 문화사의 기록 '황하유역,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암기해 버리면 그만이었던, 적성국 뙈놈의 나라.
한수산의 중국을 따라가 봅니다.
밤기차, 고향 시골 동네 한밤, 멀리서 들려오는 애달픈 기적소리
나의 밤기차는 그것이랍니다. 둑에 서서 바라보던 밤기차 차창의 불빛은 먼곳에 대한
아지못할 그리움을 심어 주었구요.
소설속에서 만나는 물푸레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사이프러스..같은 나무 이름들은 시로 다가왔구요.
각설하고
동우님이 보내주신 영화, 정말 좋았어요.
송로버섯과 푸아그라의 생산지인 페리고르, 도르도뉴는 지난해 가족여행지여서 반가웁던걸요.
엘리제궁 끼쉰에서 프레지덩 미테랑의 입맛을 매혹시킨 개인요리사 라보리의 고향,
이 영화를 알고 그곳 여행을 했더라면..하고 아쉬워 했어요.
이제라도 말씀하신대로 프랑스에서의 입맛을 돋우어볼까요? ㅎㅎ
은비엄니랑 오늘 오후에 함께 보며, 은비도 무척 좋아할 영화라며 은비모친이 더 고마워 했답니다.
요리에 관심 많고, 우아한 식탁을 소원하는 은비거든요.
고맙습니다. 동우님!!^^♡^^
***동우***
2015.04.21 04:33
글쎄 말이에요. 은비님.
우리의 그 때 중공은 죽의 장막으로 가리워진 어디 멀고 먼 별나라 쯤이었는데.
참으로 격세지감.
격세지감이라면 어디 그뿐입니까?
프랑스와 한국, 그 상거한 거리가 얼만데 이렇게 실시간의 교통.
영화까지도 휘익 날려보낼수 있고.
'엘리제 궁의 요리사'
은비님 모녀 좋게 보셨다니 정말 기분 좋습니다.
근래 보았던 영화중 참 인상적인 영화 Downfall (몰락) 곧(수일내 내 단골?에게서 내려 받아가지고) 보내드릴께요.
독일서 만든 히틀러와 제3제국의 몰락을 다룬 영화.
히틀러를 극도의 악인으로 묘사하거나 미화하거나 하지 않고 평범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나오지요.
여성 취향적인 내용은 아닙니다만, 몰입도가 대단한 영화입니다.
고마워해서 고마워요. 은비님!!^^♡^^
***동우***
2015.04.21 04:18
가을 햇살 아래 천지의 물빛.
둘러서 기도하는 신실한 아홉 사람들.
신의 소속.
자연에 속함일까, 관계에 속함일까.
인간에 속함이 아닐까.
먼 먼 옛날 어느 달 밝은 밤.
한마리의 오스트랄로 피데쿠스가 물끄러미 달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먼 먼 훗날의 호모 사피엔스가 발아되는 순간이다.
그 때 누미노제도 함께 깃들었다.
으흠, 내 속, 신앙을 뒤져보자.
***동우***
2015.04.21 04:23
OK목장의 결투.
<유일하게 하나, 낯익은 음율로 다가와 내 귓가에 얹히던 노래가 있었다. 영화 "OK목장의 결투"의 주제곡. 오케이, 크으럴, 오케이. 크럴... 하는 그 노래. 박박깎은 고등학생 머리를 숨기느라 모자를 뒤집어 쓰고 몰래 영화관에 들어가서 보았던, 학생입장 불가의 그 영화 주제곡이었다. 거기서 나는 처음으로 배우 스티브 맥퀸을 보았었다. 아주 훗날, 그가 암에 걸려 재혼한 부인이자 "러브 스토리"의 여주인공을 맡았던 알리 맥그로우와도 헤어져서, 무슨 민간 식이요법을 하러 멕시코로 내려갔다는 해외토픽을 읽었을 때, 내가 싸아하게 가슴 아파했던 것도 그때, 그 열아홉의 겨울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한수산의 기억, 오류가 아닌지.
서부영화의 클래식, OK목장의 결투에는 버트랭커스터와 커크더글러스가 출연하였었는데.
스티브 맥퀸은 그 배우들보다 한 세대 아래라고 나는 기억하는데.
***김인주***
2015.04.21 06:09
<황야의 7인> 장면을 OK 라고 연결된 듯합니다.
***동우***
2015.04.22 04:55
목사님.
OK목장의 결투의 주제곡을 듣고 영화를 떠올렸으니, 황야의 7인의 장면을 왜곡하여 기억하는 건 아닐것 같습니다.
아마 기억 속의 배우를 잘못 오버랩 시켰지 싶습니다. ㅎ
***동우***
2015.04.22 04:49
달아매고 두드려 패고 전기로 지지고 물을 먹여 한 인간의 육체를 모욕하고 한 인간의 영혼을 압살하였던, 그것을 과연 한수산은 용서하였는가.
용서의 감정처럼 어려운 것이 있을까.
입으로 용서를 말하고 머리로 용서를 희구할지라도 가슴속에 낙인된 원한과 분노의 앙금을 말끔하게 털어버릴수 있을까.
<어제보다 이른 시간의 그 햇빛 때문이었을까. 나무는 더 희게 바라보였다. 나는 갑자기 종이처럼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다 용서했다. 어디선가 말이 하나 다가왔다. 어디서 오는가. 다 용서했다. 그 말이 다가와 내 어깨에 앉았다. 흰 자작나무들이 점점 더 희게 변하면서 나무의 형태는 사라지고 다만 흰 빛의 바다처럼 변해갔다. 다 용서했다. 그 말과 함께 나는 내 어깨에 와 얹히는 손을 느꼈다. 무게와... 온기를 그리고 감촉을. 지나간 것들, 그것마저도 다 사랑하거라. 아끼거라. 네가 부딪고 있는 그 많은 것들 다 용서했으니 이제 그렇게 돌아가면 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않니.>
감정모체에 어둡게 고착되어 있던 지옥으로부터의 자기해방.
진짜배기 용서란 자기희생적 감정이 아니다.
누가, 상대가 알건 모르건 그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진정한 용서는 인간의 감정영역에 속한게 아닐 것이다.
느끼건대 용서는 자아로써 획득하기란 불가능한 감정이다.
알수없는 곳에서 내려오는 신비한 은총이리라.
통성으로 울부짖는 교회당(敎會堂), 용서를 자랑하는 너 외식(外飾)하는 입술이여.
혹여 바리새의 위선은 아닌지, 혹여 종교적 액스터시는 아닌지 경계하고 성찰하라.
***동우***
2015.04.23 04:36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 교훈적 은유로 들려주고 싶은 사막이기도 할터이지.
사막.
사막은 적멸(寂滅)이고 또는 스토익(stoic)이다.
그러나 사막의 디테일은 움직임이고 또는 욕망이다.
<유동이 모래의 생명이다, 절대로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밤이 되면 모래 위에는 별떨기가 쏟아져 내려와 박힌다.
영원이 그러하고 삶이 그러하고 마음이 그러하런가...
존재함과 소멸함은 영원의 침묵 속에서 동일하다.
사랑의 한 가운데 있는 그런 절대침묵.
<만개한 꽃나무, 한여름 태양이 끓어오르는 정오의 시각, 정오의 캄캄함,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산정(山頂), 무시무시한 단애(斷涯), 망망한 바다... -서영은 '꿈길에서 꿈길로'->
'요강'의 디테일은 광막하고 고적(孤寂)한 원경(遠景) '푸른색 점'으로 치환되어 이윽고 소실점으로 사라진다.
<푸른색 점, 푸른색 점...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덧없음, 아무것도 아님... 나는 내가 (보았던) 것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그녀가 깨닫고자 하는 것을 (본) 것은 나였다. -서영은 '꿈길에서 꿈길로'->
서영은의 사막, 책장을 좌르륵 펴들어 본다.
***동우***
2015.04.24 04:41
앤도 슈사쿠의 말처럼, 풍토에서 만들어지는 신의 이미지.
유대광야
푸른 것 별로 없는 황량한 산, 가열한 햇볕, 숨막힐듯한 무더위, 메마른 갈색땅.
자연이 인간에게 끼치는 외포감과 외로움.
그곳 야훼께서는 노여워 하고 심판하고 벌을 주는 아버지 하나님.
훗날의 나사렛 예수는 그러니까 쓰다듬고 보듬어 안는 어머니 하나님일까..
사막, 마호멧, 이슬람.
<자연은, 그 가없는 사막에서 바라볼 때, 조금도 인간의 편이 아니다. 묵묵히 다만 존재하는... 그 사막에서 바라볼 때 자연은 너무나 강해서 인간이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없으리라는 운명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 속에서 신은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결국 우리는, 기후 혹은 풍토라고 말해지는 이 자연과... 그리고 신, 그 종교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음을 이제 깨닫는 거다. 자연과 종교, 그 땅과 그 신. 그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그를 둘러싼 자연과 종교 속에서 살다가... 그 신의 뜻에 따라 누군가는 묻히고 누군가는 불태워져서 저 땅으로 사라져 간다. 그것이 우리들이다. 사막이 그것을 가르친다. 내게. 말없이 다만 거기 있으면서.>
++++
<바보사막>
-신현정-
오늘 사막이라는 머나먼 여행길에 오르는 것이니
출발하기에 앞서
사막은 가도 가도 사막이라는 것
해 별 낙타 이런 순서로 줄지어 가되
이 행렬이 조금의 흐트러짐이 있어도
또 자리가 뒤바뀌어도 안 된다는 것
아 그리고 그러고는 난생 처음 낙타를 타 본다는 것
허리엔 가죽수통을 찬다는 것
달무리 같은 크고 둥근 터번을 쓰고 간다는 것
그리고 사막 한가운데에 이르러서
단검을 높이 쳐들어
낙타를 죽이고는
굳기름을 꺼내 먹는다는 것이다
오, 모래 위의 향연이여.
++++
내 안의 사막, 뜨거우런가.
***eunbee***
2015.04.24 08:06
어제밤에는 더러더러 내려앉는 눈꺼풀을 달래며 읽는 사막에서 쓰는 편지의 '아들아~'가 눈에 가장 잘들어오더니,(ㅎㅎ)
오늘은 '작가는 어쩌면 매우 심약하고 또한 여성스러운 성정이겠다,'며 소설 읽기를 마쳤어요.
PC소설이란건 처음이에요. 늘 이렇게 '리딩북'을 컴퓨터화면으로 읽으면서. ㅋ
간밤-이제 자정이 지났으니-에, 영화 [몰락]보았어요.
8시30분부터 보기 시작해서 11시가 다 돼서 마쳤어요.
나란히 앉아 감상하던 은비는 "한국어 자막이라서 이해가 잘 안돼"라며 거실로 나가고...
매우 감동적인 영화.
전쟁, 전범자, 나치, 히틀러, 소년병,전쟁속의 사람들..
그런데 동우님, 나는 3면 거울 앞에 앉아 립스틱을 바르고
엷게 미소지어 보이는 에바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영화에서 비추이는 그녀의 모든것도.
다시 한번 더 보고 이야기해야겠어요.
몰입해서 보게되는 무언가 긴장되고 묵직한 영화.
***동우***
2015.04.25 05:08
아닌게 아니라 이 영화.
하나의 제국이 멸망해 가는 분위기과 단말마적인 절망의 모습은 '에바 브라운'의 표정과 연기와 분위기로 여실하였습니다.
은비님의 섬세하고 예리한 촉수는 어김없이 그 영상의 오의를 포착하는군요.
***eunbee***
2015.04.26 00:20
이 영화속의 두 여인은 도무지... 정상을 넘어선..
특히 괴벨스의 아내. 그럴 수가 있다니..
에바 브라운, 그녀의 난해함엔 일말의 연민스런 이해도 끼어들긴해요. ㅋㅋ
생각없고 사치한 여자가 생의 종말앞에 놓였기도 하고. ㅎ
이 영화, 고마워요.
동우님.^^
***동우***
2015.04.26 04:31
에바 브라운, 필경 닥쳐올 파멸을 앞 둔 여심의 난해함.
괴벨스의 아내의 냉혹하기 그지없는 그 단호함에 비하여 한없이 여성스러운, 삶에 대한 자포와 미련이 교직된 그녀의 표정과 연기.
나 또한 연민하였어요, 은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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